177칙 백장야압 百丈野鴨
[본칙]
백장회해선사가 마조를 따라 걸어가다가 들오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마조가 물었다. “저것은 무엇인가?” 백장이 말했다. “들오리입니
다.” “어디로 가는가?” “날아갔습니다.” 마조가 백장의 코를 잡아 비틀자,
백장이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냈다. 마조가 말했다. “언제 날아간 적이
있느냐?”
百丈懷海禪師, 隨馬祖行次, 見野鴨子飛過. 祖云, “是什
麽?” 師云, “野鴨子.” 祖云, “什麽處去也?” 師云, “飛過去
也.” 祖遂扭師鼻頭, 師作忍痛聲. 祖云,“ 何曾飛過去?”
[설화] 1)
1) 이 <설화>는『碧巖錄』53則 大48 p.188a11에 나오는 원오(圜悟)의「평창」에 따
른다.
‘들오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 날아간 적이 있느냐?’라고 한 문
답은 하루 24시간 중 만나는 경계와 마주치는 인연이 모두 결국은 자기 자
신에게 귀착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알아차리면 현상 속 어디서나 자유자
재로 써먹을 수 있지만, 만약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세간에 널리 행해지는
그릇된 말만 퍼뜨리는 꼴이 될 것이다.2) 이것을 ‘두 가지가 아닌 성품으로
들어간다’라고 말한다.
見野鴨子至過去者, 十二時中, 遇境逢緣, 宛轉歸就自己也. 會
則途中受用, 不會則世諦流布. 此謂無二性得入.
2) 도중수용(途中受用)과 세제유포(世諦流布)라는 말이 동시에 나오는 예는『雲門
廣錄』등에 보인다. “‘무엇이 도중수용입니까?’ ‘7에 9를 곱하면 63이다.’ ‘무엇이
세제유포입니까?’ ‘강서·호남·신라·발해.’”(『雲門廣錄』권상 大47 p.549c18. 問,
‘如何是途中受用?’ 師云, ‘七九六十三.’ 進云, ‘如何是世諦流布?’ 師云, ‘江西湖南
新羅渤海.’);“근본적인 뜻을 알아차렸다면 현상 속 어디서나 자유자재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이 마치 용이 물을 얻고 호랑이가 산에 의지하여 사는 것과 같이 자유롭
겠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세간에 널리 행하여지는 그릇된 말만 퍼뜨려 마
치 숫양이 울타리를 받다가 뿔이 울타리에 걸려 꼼짝 못하거나 그루터기를 지
키며 토끼가 걸려들기를 바라는 사람과 같은 꼴이 될 것이다.”(『碧巖錄』8則「垂
示」大48 p.148a20. 會則途中受用, 如龍得水, 似虎靠山;不會則世諦流布, 羝羊觸
藩, 守株待兎.)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송
들오리여, 어느 곳에 있는가?
마조가 이를 보고 말을 걸었다네.
산과 구름, 바다와 달의 실정을 모두 말한 것인데,3)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날아갔다고 하네.
날아가려는 순간 꽉 붙들었노라.4)
말해라, 말해!5)
雪竇顯頌, “野鴨子, 知何許? 馬祖見來相共語. 話盡山雲海月
情, 依前不會還飛去. 欲飛去, 却把住. 道道!”
3) 마조는 들오리가 이곳저곳 등 무수한 곳에 있다는 것에 대하여 이미 말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
4) 파주(把住). 여기서는 ‘꽉 붙잡다’라는 직접적인 뜻으로 쓰였지만, 파주는 조사
선의 도구이기도 하다. 곧 사유분별과 언어의 통로를 완전히 막아버리고 본분
을 고수하는 입장이며, 상황에 따라 갖가지 언어와 분별의 길을 펼치는 방행(放
行)의 방법과 상대된다.
5) 아무 수단도 부리지 못하도록 붙들린 상태에서 말해 보라는 설두의 주문이다.
[설화]
설두의 게송 중 첫 구절은 백장에 관한 말일 뿐만 아니라 또한 들오리
를 두고 한 말이기도 하다.
산과 구름, 바다와 달의 실정:들오리가 본래 날아다니는 곳을 나타낸다.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하고:‘날아갔습니다’라고 한 백장의 대답을 가리킨다.
(그렇게 대답했으니 마조가) 어찌 꼼짝 못하게 붙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해라, 말해:(마조가) 백장의 코를 비튼 것과 상응한다.
雪竇:上句, 非但百丈, 盡是野鴨子也. 山雲海月情者, 野鴨本
來行李處也. 依前不會云云者, 飛過去也. 豈不是把住! 道道
者, 扭師鼻頭也.
불인지청(佛印智淸)의 송
스승과 제자가 한가롭게 풀 속을 거닐다가,
들오리 날며 우는 소리에 문득 생각이 일어났다네.
코를 비틀면서 도리어 이 일6)이 성립되었으니,7)
신라에서 정오에 삼경을 알리는 종을 친 격이로다.8)
佛印淸頌, “師資閑向草中行, 野鴨飛鳴意忽生. 鼻孔扭翻成底
事, 新羅日午打三更.”
6) 저사(底事). 본래의 일. 궁극적인 일이라는 뜻으로 본분사를 가리킨다. “중생과
부처가 서로 침범하지 않으니, 산은 높을 뿐이요 물은 깊을 뿐이로다. 천차만별
의 현상에서 본분사[底事]를 밝히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이 신선하구나.”
(『洞山語錄』大47 p.516a15. 衆生諸佛不相侵, 山自高兮水自深. 萬別千差明底
事, 鷓鴣啼處百花新.)
7) 평범한 현상을 보았을 뿐이지만 마조가 백장의 코를 비틀면서 본분사를 지시하
는 지침이 되었다는 뜻이다.
8) 정오에 삼경(밤 11시~새벽 1시)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서 실제로 삼경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다. 이렇게 착각을 유도한 마조의 언행이 곧 본
분을 지향하는 관문이다. 코를 비튼 것에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님에도 마치
그런 듯이 유도한 것에 선사로서 마조의 뛰어난 기량이 보인다.
상방일익(上方日益)의 송
물은 서쪽과 동쪽으로 흐름이 정해지나,
갈대꽃은 흔들리는 방향이 따로 없다네.9)
사조(沙鳥)10)가 홀연히 날아오니,
고기 잡는 이는 한밤의 새소리에 놀라네.
달빛을 찾을 곳이 없다고 누가 말하는가?
본래부터 가을 강 바로 그곳에 있었노라.
上方益頌,“ 流水有西東, 盧花無背向. 沙鳥忽飛來, 漁人驚夜
唱. 誰道月明無處尋? 元來只在秋江上.”
9) 흐르는 방향이 정해져 있는 물과 흔들리는 방향을 미리 가늠할 수 없는 갈대꽃
을 대비시켰다. 이는 날아가는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오리의 이미지를 부각시
키기 위한 설정이다.
10) 사주(沙洲) 등 물가에 사는 새를 일컫는 말.
숭승원공(崇勝院珙)의 송
오리도 오리가 아니요,
사람도 사람이 아니니,
슬피 우는 소리 예나 지금이나 신선하구나.
조주와 문원은 함께 못난이 내기를 하였고,11)
왕로는 누구에게도 제 몸을 팔 수 없었다.12)
다만 삼 년마다 윤달이 드는 해에는
일 년에 두 번 돌아오는 봄을 맞기 때문이라네.
崇勝珙頌,“ 鴨非鴨, 人非人. 噯噯之聲今古新. 趙州文遠同鬪
劣, 王老無人獨賣身. 只因三歲閏之餘, 一年翻遇兩廻春.”
11) 조주(趙州)와 그의 제자 문원(文遠)의 다음 문답을 말한다. “조주가 어린 스님인
문원과 누구든 나은 편을 차지하면 지는 것이니 나은 편을 차지하는 사람이 진
대가로 호떡을 사오기로 약속을 정했다. 조주가 먼저 ‘나는 한 마리의 나귀이다’
라고 하자 문원이 ‘저는 나귀의 위장입니다’라고 응수했다. ‘나는 나귀의 똥이
다.’ ‘저는 그 똥 속에서 사는 벌레입니다.’ ‘너는 그 속에서 무얼 하느냐?’ ‘저는
그 속에서 하안거를 보냅니다.’ ‘호떡을 가져오너라.’”(『趙州語錄』古尊宿語錄14
卍118 p.330a1. 師與小師文遠論義, 不得占勝, 占勝者輸餬餅. 師云, ‘我是一頭驢.’
遠云, ‘我是驢胃.’ 師云, ‘我是驢糞.’ 遠云, ‘我是糞中虫.’ 師云, ‘你在彼中作麽?’ 遠
云, ‘我在彼中過夏.’ 師云, ‘把將餬餅來.’)
12) 왕로(王老)는 왕노사(王老師) 곧 남전보원(南泉普願)을 말한다. “남전이 대중에
게 말했다. ‘왕노사가 몸을 팔고자 하는데, 누가 사겠는가?’ 어떤 학인이 나와 말
했다. ‘제가 사겠습니다.’ ‘그(왕노사)는 비싸게 값을 매기지도 않고 싸게 매기지
도 않았는데, 너는 얼마에 사겠느냐?’ 학인은 대답하지 못했다.”(『景德傳燈錄』
권8「南泉普願傳」大51 p.258a18. 師示衆云, ‘王老師要賣身, 阿誰要買?’ 一僧
出云, ‘某甲買.’ 師云, ‘他不作貴價, 不作賤價. 汝作麽生買?’ 僧無對.)
원오극근(圜悟克勤 : 장산극근)의 송
들오리가 앞개울을 지나가는데,
온갖 봉우리가 찬 빛을 띠고 우뚝 서 있다.
돌아보나 그들이 돌아갈 곳을 모르니,
옆에서 두드려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네.
의심덩어리를 비틀자 쓸모없는 말13)도 녹아버리니,
휩쓰는 바람이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구나.
구름과 산과 바다와 달이 모두가 하찮은 현상이로다.
한마디로 근본에 돌아가야 모든 나라가 조공을 바치리.
蔣山勤頌,“ 野鴨過前溪, 千峯凜寒色. 相顧不知歸, 未免資傍
擊. 扭破疑團葛怛銷, 捎風直土透靑霄. 雲山海月渾餘事. 一語
歸宗萬國朝.”
13) 갈달(葛怛). 갈등(葛藤)과 달달(怛怛)을 혼합한 말로 보인다. 모두 복잡하게 얽
힌 말 또는 쓸모없이 많은 말을 나타낸다.
불감혜근(佛鑑慧懃)의 송
마조는 그대가 안목이 없음을 애처롭게 여겨,
들오리를 빌려와 그 소식에 통하도록 하였네.
코에서 비린 피가 흐르게 되고서도
노파의 있는 힘을 다 허비했을 뿐이로다.
佛鑑懃頌, “馬師憫汝無知識, 借來鴨子通消息. 直得鼻頭羶血
流, 費盡老婆多少力.”
불안청원(佛眼淸遠)의 송
풀 속에 오리 언제나 수없이 많이 있는데,
‘날아갔다’고 알리니 어찌 까닭 없이 그랬으랴!
코쯤이야 얼마나 쓸데없는 가죽에 불과한가?
가로세로 어디로든 마음대로 뚫어라.
佛眼遠頌,“ 草裏尋常萬萬千, 報云飛去豈徒然! 鼻頭是甚閑皮
草,14) 十字縱橫一任穿.”
14) ‘革’의 잘못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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