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

250칙 반산심월 盤山心月

실론섬 2016. 12. 2. 19:20

250칙 반산심월 盤山心月1)
1) 반산보적(盤山寶積)이 제시한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진 경계’의 대척점에 동산
   양개(洞山良价)가 ‘빛과 경계가 사라지지 않은 경계’를 제시하여 두 가지를 모두
   열거나 차단함으로써 설정된 공안이다. 다른 주안점 하나는 ‘마음의 달’이라는
   하나의 허언(虛言)을 조성하여 분별로 포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함정에 빠뜨리
   는 것이다.

 

[본칙]

반산이 대중에게 말했다. “홀로 둥근 마음의 달이 그 빛으로 만상을 머

금었다. 빛은 경계를 비추지 않고 경계 또한 남아 있지 않아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졌으니, 이것은 그 무엇일까?” 동산이 말했다. “빛과 경계가 아

직 사라지지 않았으니, 이것은 그 무엇일까?”

盤山, 示衆云, “心月孤圓, 光呑萬象. 光非照境, 境亦非存,
光境俱亡, 復是何物?” 洞山云,“ 光境未亡, 復是何物?”

 

[설화]

『청량소』2)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마음의 달’이라고 한 이유는 시각(始

覺)이 밝은 달처럼 원만하기 때문이다. ‘홀로 둥글다’라고 한 이유는 마음

은 오로지 하나요 두 가지도 없고 다른 것과 뒤섞임도 없지만 원만하게

완성되지 않은 덕도 없기 때문이다. ‘빛’이란 지혜로 비춘다는 상징이고,

‘머금었다’는 말은 깨달음을 얻었다[得證]는 뜻이다. ‘만상’이란 삼세간(三

世間)이 모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문이기 때문이니, 이는 곧 모든 부처

님께서 깨달은[證得] 경계를 나타낸다. 그런 까닭에 옛사람은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고 본래 고요하다3)’라고 한 것이다. ‘빛은 경계를 비추지 않고’

라는 말은 증득한 주체[能證]의 지혜에는 분별하는 상[解相]이 없다는 뜻

이다. ‘경계 또한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은 증득의 대상[所證]이 되는 경계

에도 상이 없기 때문이다.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졌다’는 말은 증득한 주

체와 증득의 대상이 모두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 무엇일까?’라고

물은 말은 모두 사라진 바로 그때는 그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

이다.” 이로써 보면 아마도 반산은 경전의 문구를 끌어와서 선의 화제(話

題:공안)로 삼은 것 같다.

2) 淸凉疏. 누구의 어떤 저작을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고, 인용 범위도 애매
   하다.
3) 정확히 일치하는 구절은 없지만,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구절과 ‘본래
   고요하다’라는 구절이 동일한 맥락에서 나오고 전체적으로 이 <설화>의 취지와
   일치하는 내용이『法界圖記叢隨錄』권상1 大45 p.730a13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중도란 삼세간을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삼기에 몸과 마음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옛날부터’라고 한 말은 위의 증분(證分) 중에서 ‘본래 고요하다’
   라고 한 구절과 상응한다.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말은 위의 증분 중에서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한 구절과 상응한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침상
   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30여 개소의 역을 돌아다니다가 깨어난 다음에
   야 비로소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침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같다.”(中道
   者, 以三世間爲自身心, 無有一物非身心者故也. 舊來者, 上證分中, 本來寂也. 不動
   者, 上證分中, 諸法不動也. 比如有人在床入睡, 夢中迴行三十餘驛, 覺後方知不動在床.)

 

옛사람은 “구리거울에서 구리라는 질료는 자성의 본체이고, 구리의 밝

은 속성은 자성의 작용이며, 나타나는 영상을 밝게 비추는 것은 인연에 따

르는 작용이다”4)라고 하였다. 곧 마음의 달은 자성의 본체이고, 빛은 자성

의 작용이며, 만상은 인연에 따르는 작용이다.

4) 종밀(宗密)의『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 卍110 p.874b5에 나오는 구절. 이는
   자성에 본래 갖추고 있는 작용[自性本用]과 인연에 따라 반응하는 작용[隨緣應
   用]을 설명하기 위하여 구리거울[銅鏡]을 비유로 삼은 것이다.

 

‘홀로 둥글다’라는 말은 훌쩍 벗어나 모든 대상이 끊어졌으므로 ‘홀로’

라 하고, 원만하게 완성되지 않은 덕이 없으므로 ‘둥글다’고 한다.

 

‘빛이 만상을 머금었다’라는 말은 텅 빈 푸른 하늘에 달이 처음 뜨는 바

로 그 순간의 달빛에 비친 허공이 만상을 머금는 형상을 나타낸다.

 

‘빛은 경계를 비추지 않고 경계 또한 남아 있지 않다’라고 한 말은 빛과

경계가 서로 상대를 빼앗아 부정하는 것이니, 곧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이것은 그 무엇일까?’라고 물은 말은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졌으므로

그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일까? 마음의 달조차도 사라졌다는

뜻이다.

 

동산이 ‘빛과 경계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니, 이것은 그 무엇일까?’라

고 한 말은 반드시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질 것도 없이 빛과 경계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더라도 더 이상 제2의 그 무엇도 없다는 뜻이다.

 

淸凉疏云,“ 心月者, 始覺圓滿如明月故. 孤圓者, 心獨無二無
雜, 無德不圓故. 光者, 智照也. 呑者, 得證也. 萬像者, 三世間
皆是無量法門故, 斯乃諸佛所證境也. 所以古人道, ‘諸法不動
本來寂.’ 光非照境者, 能證之智, 無有解相故. 境亦非存者, 所
證之境, 亦無有相故. 光境俱亡者, 能證所證俱亡也. 復是何物
者, 俱亡當時, 不可言其某物也.” 則疑盤山引經文爲禪話. 古
人云,“ 銅之質自性體, 銅之明自性用, 明所現影隨緣用.” 則心
月自性體, 光自性用, 萬像隨緣用也. 孤圓者, 逈然絶對故孤,
無德不圓故圓. 光呑萬像者, 靑天寥寥月初生, 此時影空含萬
像. 光非照境云云者, 光境互奪也, 則光境俱亡也. 復是何物
者, 光境俱亡故, 不可言其某物耶? 心月亦亡也. 光境未亡云
云者, 何必光境俱亡, 光境未亡, 更無第二.

 

정엄수수(淨嚴守遂)의 송5)
5) 반산과 동산의 말이 하나로 어울릴 때 조사의 가풍이 드러난다는 취지의 송
   이다

 

눈 가득히 들어찬 모든 존재 철저하게 공이니,

모두 사라진 것은 사라지지 않은 것과 같도다.

여기에 어떤 이름 붙여 단정할 필요도 없이,

아득한 세월 이어진 도리로 조사 가풍 떨치리.

淨嚴遂頌, “滿目森羅徹底空, 俱亡還與未亡同. 箇中不用安名
字, 千古由來振祖風.”

 

[설화]

모두 사라진 것과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 서로 다른 법이 아니라는

말이니, 이에 대하여 한층 높은 안목으로 살펴야 비로소 조사의 가풍을 떨

칠 수 있다는 뜻이다.

淨嚴:俱亡未亡, 非是別法, 於此高著眼, 方振祖風.

 

송원의 송

 

밑그림도 그릴 수 없고 붓질로 나타낼 수도 없으니,

누운 용은 언제나 깊고 검푸른 연못 맑아질까 두려워하네.6)

분별하는 마음으로 달려들어도 끝내 이해하지 못하니,

통달한 자라면 반드시 어둠 속에서도 놀라워하리라.7)

松源頌,“ 描不成兮畫不成, 臥龍長怖碧潭淸. 擬心湊泊終難
會, 達者應須暗裏驚.”
6) 누운 용[臥龍]은 자신의 뛰어난 모습을 세상으로부터 숨기고 은둔하며 살아가
   는 자를 상징한다. 물이 맑으면 본래의 뜻이 좌절되므로 두려워한다고 말한 것
   이다. 이 공안의 말에 대하여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듯이 언어와 분별에 의지하
   여 낱낱이 묘사하려는 것은 그 본질에 접근하는 태도로서는 바르지 못하다는
   취지이다.
7) 한 부분에 달통한 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 속에서도 미세한 조짐을
   단서로 삼아 그 대상을 느낄 수 있다는 말.

 

[설화]

밑그림도 그릴 수 없고 ~ 두려워하네: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진 뜻과 상응

한다.

3구와 4구:빛과 경계가 사라지지 않은 뜻과 상응한다.

松源:描不成云云者, 光境俱亡也. 下二句, 光境未亡也.

 

운문문언(雲門文偃)의 거 1

 

반산의 말을 제기하고 평가했다. “온 세상이 빛인데, 무엇을 가리켜 자

기 자신이라 부르는가? 그대가 만일 빛의 본질을 안다면 경계 또한 얻을

수 없거늘 무슨 변변치 못하게 빛이니 경계니 나눌 여지가 있겠는가! 빛

과 경계를 얻을 수 없다면 이것은 그 무엇일까?” 또 다시 “이것은 옛사람

이 자비심 때문에 거듭 해설해 준 말에 불과하니, 이에 대하여 특출나게

분명히 알았더라도 그대로 허용하면 안 된다.8) 만약 그대로 허용하지 않

는다면 …… ”라 한 다음 손을 들고서 말했다. “소로, 소로!9)”
雲門偃, 擧盤山語云,“ 盡大地是光, 喚什麽作自己? 你若識
得光去, 境亦不可得, 有什麽屎光境! 光境旣不可得, 復是何
物?” 又云,“ 此是古人慈悲之故, 重話會語, 這裏倜儻分明去,
放過則不可. 若不放過.” 擧手云,“ 蘇嚧, 蘇嚧!”
8) 반산의 말은 방편상 자세히 설명해 준 것일 뿐이므로 본분 자체를 드러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말에 대하여 분명히 이해했더라도 그 상태를 완전한 것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말.
9) 蘇盧. 이와 같이 진언(眞言)을 선어(禪語)의 맥락으로 활용하는 예는 조사선이
   나 간화선에서 일반적이다. 특별한 의미가 들어 있지 않은 몰자미(沒滋味)한 
   소리이기 때문에 그때까지의 모든 의미체계를 무너뜨리고 한층 높은 본분을 
   시 하는 기능을 한다.

 

[설화]

온 세상이 빛인데 ~ 이것은 그 무엇일까:자기 자신이 마음의 달이니, 빛과 경

계를 얻을 수 없다면 얻을 수 있는 자기 자신도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옛사람이 ~ 말에 불과하니:자비 때문에 번뇌의 숲에 떨어져서 전하

는 이야기10)를 두었다는 뜻이다. 이것을 가리켜 ‘거듭 해설한다’고 평가했

다. 이것으로 보아 반산이 경전의 문구를 거론하여 자신의 법문 소재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야기 중에 한 모든 말이 그 뜻이 아니겠

는가!

이에 대하여 특출나게 ~ 허용하면 안 된다:비록 특출나게 분명히 알았더라도

그가 이해한 그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소로, 소로:한마디의 진언11)이니, 이 또한 괴이함을 물리치는 주문이다.

雲門:盡大地至何物者, 自己則心月也. 光境旣不可得, 亦無
自己可得也. 又云至會語者, 慈悲之故, 有落草之談也. 此云重
話會. 以此故知盤山擧經文, 作自己用也. 話中云云, 不其然
乎! 這裏倜倘云云者, 雖然倜倘分明, 不可放過也. 蘇嚕蘇嚕
者, 一道眞言, 亦是遣怪也.
10) 낙초지담(落草之談). 이 역시 운문의 말에 따른다. 숲[草]은 번뇌망상의 경계를
    나타낸다. 이곳에 떨어져서 전하는 이야기[落草之談]란 그 번뇌의 경계에서 벗
    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 수준에 맞도록 기준을 낮추어서 전하는 말을
    가리킨다. 번뇌의 경계에서 벗어나 본분사를 직접 가리킨다는 뜻의 출초담(出
    草談)과 대칭되는 말이다. “옛날부터 덕이 높은 스님들은 모두 자비심 때문에
    번뇌의 숲에 떨어져서 전하는 이야기를 두었으니, 사람들이 하는 말에 따라 그
    사람의 수준을 파악했던 것이다. 만일 번뇌의 숲을 벗어나는 이야기라면 이렇
    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한다면 이는 쓸모없이 거듭 해설하는 말이 될 뿐이다.”
   (『雲門廣錄』古尊宿語錄16 卍118 p.352b16. 古來老宿, 皆爲慈悲之故, 有落
    草之談, 隨語識人. 若是出草之談, 卽不與麽. 若與麽, 便有重話會語.)
11) 일도진언(一道眞言). 다른 모든 진언의 비밀스러운 뜻을 성취하는 하나의 진언
    이다. 밀교의 이 뜻을 간화선의 맥락에서 활용한 것이다. 곧 하나의 화두를 타파
    하면 모든 화두를 한꺼번에 다 타파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두 번째는 빠르게
    성취하는 문이다. 곧 모든 공덕을 빠르게 성취할 방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오로
    지 일도진언만 지니고 외워야 한다. 이것을 성취할 때 모든 진언의 공덕을 남김
    없이 성취하게 된다.”(『顯密圓通成佛心要集』권상 大46 p.996a3. 二者, 疾得
    成就門. 謂欲求一切功德疾得成就, 宜專持誦一道眞言. 成時, 一切眞言功德, 皆
    悉成就.)

 

운문문언의 거 2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졌으니, 이것은 그 무엇일까?’라는 구절을 다시

제기하고 말했다. “설령 이렇게 말하더라도 여전히 목적지까지는 반 정도

더 남았으니, 아직도 하나의 길을 완전히 뚫고 벗어나지는 못했다.” 어떤

학인이 “무엇이 하나의 길을 완전히 뚫고 벗어난 것입니까?”라고 묻자 운

문이 대답했다. “천태산의 화정봉(華頂峰)이요, 조주의 돌다리이니라.”12)
又擧, ‘光境俱亡, 復是何物?’ 師云, “直饒伊麽道, 猶在半途,
未是透脫一路.” 僧便問,“ 如何是透脫一路?” 師云,“ 天台華
頂, 趙州石橋.”
12) 그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각각의 명물을 가지고 던진 화두이다. 반산이 지혜의
    빛인 주관과 그 대상인 경계가 모두 사라진 무차별의 경지를 물었지만, 운문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는 차별의 경계를 제시하였다. 본칙에서 반산의 대척점에
    설정한 동산의 말과 동일한 기능을 갖는다. 이와 같이 앞에서 제시된 화두를 그
    대로 수긍하지 않고 비판적 구절로 대적하는 방식이 화두를 활구로 이끌어가는
    선사들의 상용 방법이다.

 

[설화]

천태산의 화정봉이요 조주의 돌다리이니라:이것과 저것의 차별을 나타낸다.

又擧云云:天台華頂云云者, 彼此差別也.

 

운문문언의 거 3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졌으니, 이것은 그 무엇일까? 동해 속에 몸을 숨

기고, 수미산 정상에서 말을 타고 달린다.” 주장자로 선상을 한 번 치자 대

중이 영문을 몰라 눈알을 두리번거렸다. 이에 운문이 주장자를 휘둘러 대

중을 내쫓으면서 말했다. “영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로구나. 이 칠통

들아!”

又云, “光境俱亡, 復是何物? 東海裏藏身, 須彌山上走馬.” 師
以拄杖打床一下, 大衆眼目定動. 師乃拈拄杖趂散云, “將謂靈
利, 這漆桶!”

 

[설화]

동해 속에 몸을 숨기고:동해는 차별을 나타내고, 몸을 숨기는 것은 자취가

전혀 없도록 몸을 감추는 것이다.

수미산 정상에서 말을 타고 달린다:수미산 정상은 차별된 상과 이름이 모두

사라진 곳이며,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활발한 작용이다.

선상을 한 번 치자 ~ 두리번거렸다:선상을 한 번 친 것이 어찌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진 경지가 아니겠는가!

주장자를 휘둘러 대중을 내쫓으면서 ~ 이 칠통들아:남을 가르치려면 철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첫째로 상대가 하는 그대로 허용해서는 안 되며

(무차별), 그 다음으로는 한 걸음 크게 떼고 걸어야 한다(차별). 이는 차별

중의 무차별이요 무차별 중에 차별이 있다는 뜻이다.

又云云:東海裏藏身者, 東海則差別, 藏身則隱身沒蹤迹也.
須彌云云者, 須彌山頂, 則相盡名亡, 走馬則活用也. 打床一
下云云者, 打床一下, 豈不是光境俱亡地! 拈柱杖趂散云云者,
爲人須爲徹也. 第一, 不放過;第二, 闊一步. 此則差別中無差
別, 無差別中有差別也.

 

고목법성(枯木法成)의 상당

 

“반산은 마치 사람들을 대문 입구와 방문 아래까지 이끌어준 것과 아주

흡사하게 친절했다. 만일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니, ‘등롱이 빛을

뿜어내어 납승의 해골을 비추고, 주장자가 뛰어올라 조사의 콧구멍을 틀

어막는다’라고 말하리라.” 주장자를 잡고 “바로 검은 옻칠을 한 이 주장자

도 빛을 뿜어내고 땅을 진동시킬 줄 안다”라고 말한 뒤 주장자를 던져 놓

았다.

拈木成, 上堂云,“ 盤山, 大似引人向門頭戶底, 若是香山卽不
然. 燈籠放光, 照破衲僧髑髏;拄杖跋跳, 築著祖師鼻孔.” 乃
拈拄杖云,“ 秖遮黑漆烏藤, 也解放光動地.” 擲下拄杖.

 

[설화]

등롱이 빛을 뿜어낸다:광채가 있다는 뜻이다.13)

납승의 해골을 비추다:앞에서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졌다는 부분은 곧 노

주14)에 해당한다.

주장자가 뛰어올라 조사의 콧구멍을 틀어막는다:해골을 비추지만 또한 조사의

콧구멍이 또 남아 있다. 주장자에는 동쪽을 가리키면서 서쪽을 표시하는

등 활발한 작용이 있으므로 틀어막은 것이다.

검은 옻칠을 한 ~ 진동시킬 줄 안다:비추는 작용이 없는 검은 주장자가 어

찌 이전에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졌다’고 한 그러한 존재이겠는가! 이것

또한 빛을 뿜어내고 땅을 진동시킬 줄 안다. 그렇다면 납승의 해골에는

무슨 결함이 있어서 등롱이 빛을 뿜어내어 비추어 줄 필요가 있겠느냐는

뜻이다.15)
枯木:燈籠放光者, 有光彩也. 照破至髏者, 前光境俱亡處, 乃
是露柱也. 柱杖跋跳云云者, 照破髑髏, 則又有祖師鼻孔, 在柱
杖, 則指東畫西有活用故, 築著也. 秪這黑云云者, 無照燭的,
豈是前光境俱亡的! 這的亦解放光動地也. 然則衲僧髑髏, 有
什麽過, 則何必燈籠放光照破.
13) 등롱(燈籠)은 등불을 놓아두는 곳이므로 빛이 있다는 뜻.
14) 露柱. 건물의 기둥을 말하는데, 빛을 발하는 등롱의 반대편에서 빛이 사라진 소
    식을 나타내는 상징물로서 흔히 이렇게 등롱과 짝을 이루어 거론된다.
15) 납승의 해골도 검은 옻칠을 한 주장자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빛을 뿜어낼 수 있
    다는 뜻.

 

보림본의 상당

 

“빛은 경계를 비추지 않고 경계 또한 남아 있지 않으니, 빛과 경계가 모

두 사라졌다고 한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주장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옛사

람은 여기에 이르러 어째서 그 진실을 몰랐을까?” 주장자를 잡고 말했다.

“잘 살펴보라! 반산의 콧구멍은 오늘 나의 주장자에 뚫려버렸다.16) 여러분

은 알겠는가?” 잠깐 침묵하다가 “아침에 3천 대를 때리고, 저녁에 8백 대

를 때려줄 것이다”라고 말한 다음 주장자로 선상을 쳤다.

寶林本, 上堂云,“ 光非照境, 境亦非存, 光境俱亡, 都來是一
條拄杖子. 古人, 到遮裏, 因什麽不識?” 乃拈起拄杖云, “看
看! 盤山鼻孔, 今日被雙林穿却了. 你等諸人, 還委悉麽?” 良
久云,“ 朝三千暮八百.” 擊禪床.
16) 반산의 속뜻을 알아차렸다는 말. 콧구멍은 본분의 핵심을 나타내며, 여기서는
    반산이 제기한 화두의 본질을 가리킨다.

 

[설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주장자를 가리키는 말이다:동쪽을 가리키면서 서쪽을 표

시한다는 뜻이다.

옛사람은 ~ 몰랐을까:옛사람은 반산을 가리킨다. 반산에게 이 주장자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었으므로 ‘반산의 콧구멍은 오늘 나의 주장자에 뚫려

버렸다’라고 말한 것이다.

아침에 3천 대를 ~ 때려줄 것이다:주장자의 활발한 작용을 나타낸다.

寶林:都來是一條柱杖者, 指東畫西也. 古人至不識者, 古人
謂盤山. 盤山有識這个柱杖子, 故云,‘ 盤山鼻孔, 今日被雙林
穿却了也.’ 朝三千云云者, 柱杖子之活用也.

 

황룡유청(黃龍惟淸)의 상당

 

반산의 말을 제기하고 평가했다. “반산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자마

자 뒤통수를 한 번 찔러주고 그가 머리를 돌리는 순간 ‘이것은 그 무엇일

까?’라고 물었다면, 설령 그 자리에서 분명하게 밝히지 못했더라도 틀림

없이 그렇게 가르쳐 준 은혜가 가슴 속 깊이 남았을 것이다.”

黃龍淸, 上堂, 擧盤山語云,“ 才見伊麽道, 便與腦後一箚,
待他轉頭來, 却問復是何物, 從敎直下難分雪, 管取恩深懷
抱中.”

 

[설화]

뒤통수를 한 번 찔러 주고:반산이 설정한 화두의 함정17)을 부순다는 뜻

이다.

이것은 그 무엇일까:이렇게 모두 사라졌다는 말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설령 그 자리에서 분명하게 밝히지 못했더라도’라고

한 것이다.

틀림없이 ~ 남았을 것이다:이렇게 가르쳐 준 은혜가 대단히 크다는 뜻이다.

黃龍:腦後一箚云云者, 破他窠窟也. 復是何物者, 是俱亡未
亡也. 故云,‘ 從敎直下難分雪’也. 管取云云者, 此恩重大也.
17) 과굴(窠窟).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졌다’라는 말이 바로 함정이다. 선어(禪語)는
    상대를 그 말에 빠지도록 유인하는 일종의 함정과 같다. 곧 그 말 그대로 수용하
    는 순간 함정이 된다. 그래서 ‘사라졌다’는 말에 ‘사라지지 않았다’라는 말로 대
    응하지만, 이것 또한 함정이라는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함정을 함정으로 대적
    하고, 착각을 착각으로 물리치는 것이 조사선 선문답의 기본 전략이다.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백로가 밭에 내려앉으니 천 점의 눈송이

요, 꾀꼬리가 나무에 앉아 있으니 한 송이의 꽃이로다.”

雲門杲, 上堂, 擧此話, 師云,“ 白鷺下田千點雪, 黃鸎上樹一
枝金.18)”
18)『大慧語錄』권1 大47 p.813c1에 따라 ‘金’을 ‘華’로 보고 번역한다.

 

[설화]

백로에 대한 묘사는 동산의 입장을 가리키고, 꾀꼬리에 대한 묘사는 반

산의 입장을 나타낸다.19)
雲門:白鷺云云者, 謂洞山地也. 黃鶯云云, 謂盤山地也.
19) 동산은 차별 중의 무차별, 반산은 무차별 중의 차별을 입장으로 삼는다. 천 점의
    눈송이는 모두 차별 없이 같은 것 같지만 제각각 차별되고, 꽃나무에 앉은 꾀꼬
    리는 꽃과 차별되는 새이지만 다른 꽃과 무차별하게 하나로 어울려 있다.

 

대혜종고의 거

 

다시 반산의 말을 제기하고 평가했다. “천 년 상주하는 터에 하루살이

스님이로구나.”

又擧, 盤山語云,“ 千年常住一朝僧.”

 

[설화]

이것은 반산과 동산의 입장을 밝힌 말이다. 앞의 법문에서는 반산의 입

장을 벗어나서 동산의 입장이 없고, 동산의 입장을 벗어나서 반산의 입장

이 없다는 도리를 밝혔지만, 이것은 두 스님의 입장에 조금의 거리도 없다

는 뜻을 밝혔다.

又擧:此明盤山洞山地也. 前明盤山地外, 無洞山地;洞山他
外, 無盤山地. 此明二師地, 去離不得也.

 

심문담분(心聞曇賁)의 상당

 

반산의 말을 제기하고 평가했다. “반산은 채석20)의 나루터에서 달을 건
지려다 실족하여 강에 빠진 꼴이고, 만년21)은 기세를 타고 달을 쫓던 원숭
이가 물속에 뛰어든 격이다.22)
 여러분은 마음의 달을 알고자 하는가? 도둑

은 비록 소인이지만 그 지혜는 군자보다 낫다.”

心聞賁, 上堂, 擧盤山語云,“ 盤山, 采石渡頭失脚;萬年, 乘勢
赶猿猴入水. 汝等諸人, 還識心月麽? 賊是小人, 智過君子.”
20) 采石. 채석기(采石磯)의 줄임말. 중국 안휘성(安徽省) 마안산시(馬鞍山市) 장강
    (長江)의 동쪽에 있는 험한 절벽. 이백(李白)이 술에 취하여 강에 잠긴 달을 건
    지려다가 익사한 곳으로 전한다. 태백루(太白樓)와 착월정(捉月亭) 등의 고적이
    남아 있다.
21) 萬年. 심문담분의 호.
22)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졌다’는 구절과 ‘마음의 달’이라는 말이 실어(實語)가 아
    니라는 비유. 그것이 말 그대로 진실한 실어로 생각하여 의미를 포착하려 하면
    달그림자를 실제의 달로 착각하여 건지려다 익사하는 꼴과 같다는 뜻이다. 이
    공안에 대한 무시개심(無示介諶)의 다음과 같은 평가도 이 모든 것을 허언(虛
    言)으로 보는 동일한 견해이다. “한바탕의 잘못이다. 여기서 진실을 간파하면,
    대장경 전체의 교설은 물속의 달을 건지려는 것과 같고, 역대 조사들의 언행은
    달빛 속에서 그림자로부터 달아나려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성문과 연각은 가
    리키는 손가락에 대한 집착을 아직 잊지 못한 것과 같고, 범부와 외도는 물동이
    를 뒤집어쓰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납승
    들은 이러한 책략에 분노를 일으켜 마음속에 가지런히 받아들이지 말 것이며,
    결코 이마에 손을 대고 특별한 것이 있는 듯이 살피지 마라.”(『無示介諶和尙語』
    續古尊宿語要4 卍119 p.57b9. 一場罪過. 這裡見得, 則知一大藏敎, 是水底捉月;
    歷代祖師, 是月中逃影;聲聞緣覺, 未忘所標之指;凡夫外道, 住在覆盆之下. 衲僧
    家, 慷慨作略, 不受安排, 切忌以手斫額.)

 

[설화]

채석의 나루터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원숭이가 달그림자를 건지려

는 경우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한 강가에 살던 여자

가 물에 들어가 돌을 주었는데, 좋은 사내아이를 낳았다’라고 했다. 그러

므로 반산이 마음의 달을 따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발을 헛디뎌 실패했다

는 말이다.

기세를 타고 달을 ~ 뛰어든 격이다:산승 또한 원숭이와 같이 물에 뛰어들어

달을 건지려 했다는 뜻이다.

도둑은 ~ 군자보다 낫다:도둑질하는 사람의 마음은 불안하다는 뜻이다.

心聞:采石渡頭, 未詳, 疑是猿猴捉月處. 又他處云,‘ 有一水
妱女, 沉水取石, 則生善男子.’ 然則謂盤山採取心月, 不覺失
脚也. 乘勢赶云云者, 山憎亦如猿猴, 入水採月也. 賊是小人云
云者, 作賊人心虛也.

 

묘지곽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이 두 존숙들은 이와 같이 말했기에 바로

빛과 경계 속에 떨어진 것이다. 점검해 보면 모두 깨닫기에는 모자라다.

만일 나였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자를 꼿꼿이 세우고 말했

다. “알겠는가? 3만 6천 이랑[頃] 너비의 태호23)에, 달그림자가 물 가운데

잠긴 것을 누구에게 말하랴?”

妙智廓, 上堂, 擧此話, 師云, “此二尊宿, 恁麽說話, 正墮光境
中. 撿點將來, 俱欠悟在. 若是育王則不然.” 堅起拂子云, “還
會麽? 大24)湖三萬六千頃, 月在波心說向誰?”
23) 太湖. 강소성(江蘇省)과 절강성(浙江省)을 모두 끼고 있는 거대한 호수. 진택(震
    澤)·구구(具區)·오호(五湖)·입택(笠澤) 등이라고도 한다. 중국 3대 담수호(淡
    水湖)의 하나로 예로부터 그 너비를 3만 6천 경이라 불렀다.
24) ‘大’는 ‘太’자의 오식.

 

[설화]

두 존숙들은 ~ 떨어진 것이다:모두 사라졌다거나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거

나 두 경우 다 판에 박힌 인식 틀[規模]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불자를 꼿꼿이 세우고 ~ 누구에게 말하랴:이 하나의 달은 다른 것과 섞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빛과 경계가 모두 사라졌다고 이해한들 무슨 잘못이 있

겠느냐는 뜻이다.

妙智:二尊宿至境中者, 俱亡未亡, 皆未離規模也. 竪起拂子
云云者, 這一月卽不混也. 然則會得光境俱亡, 更有什麽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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