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

399칙 환중식병 寰中識病

실론섬 2016. 12. 6. 20:11

399칙 환중식병 寰中識病

 

[본칙]

대자산의 환중선사가 법좌에 올라앉아 말했다. 

“산승은 질문에 대답할 줄 모른다. 단지 병을 알 뿐이다.” 

그때 어떤 학인이 앞으로 나오자 대자는 곧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大慈山, 寰中禪師, 上堂云, “山僧不解答話. 只是識病.” 時
有僧出, 師便歸方丈.

 

[설화]

병이란 부처에 집착하는 병[佛病]과 조사에 집착하는 병[祖病] 등을 말

한다.1) 어떤 학인이 나온 것은 병인가, 병이 아닌가? 대자가 방장으로 돌

아간 것은 병을 안 것인가, 병을 알지 못한 것인가?2)
病者, 佛病祖病等也. 有僧出者, 是病不是病? 便歸云云, 是識
病不是識病?
1) 불병(佛病)과 조병(祖病)이라는 말은 조사선(祖師禪) 이후에 쓰이는 용어이다.
   “그런 까닭에 옛사람은 부처님의 경지로 향상하는 도리를 물을 경우 ‘부처가 아
   니다’라 대답하고, 또한 ‘방편으로 부처라 부른다’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곧 견
   성성불이야말로 통발이나 올무와 같은 속박인데, 이에서는 어떤 이유로 이러니
   저러니 지시하고 말하는 것일까? 반드시 빈틈없이 계합하여 스스로 보호할 수
   있어야 비로소 깨끗이 씻은 듯이 떨어져 나갈 것이니, 더 이상 무슨 열반을 증득
   하거나 생사와 계합한다는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러한 것들은 모두 말만 늘리
   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다만 내가 이렇게 한 말도 궁극적인 법도라고 취
   하지 말아야 비로소 불병과 조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圜悟語錄』권15「示
   諸禪人」 大47 p.784c5. 所以, 古者問佛向上, 答非佛, 又答, 方便呼爲佛. 則見性
   成佛, 乃筌蹄爾, 是中, 云何指東畫西? 直須密契, 自能將護, 方得灑灑落落 , 更說
   甚證涅槃契生死! 皆增語也. 雖然, 只山僧恁麽道, 也未可取爲極則, 始免佛病祖病.)
2) <설화>에서 즐겨 쓰는 배촉관(背觸關)에 따르는 해설이다. 학인은 다만 앞으로
   나왔을 뿐이고 대자는 돌아갔을 뿐 그밖에 어떤 말이나 분별을 붙일 여지는 없
   다. 이 명백하고 단순한 사건을 화두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배촉관이다.
   병이라고 해도 안 되고[觸] 병이 아니라고 해도 안 된다[背]고 봄으로써 이 문답
   은 화두의 관문으로 재생된다. ‘현각의 징’에 보이는 뜻이다.

 

법안의 염

 

“대중들 중에는 ‘병이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알지 못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法眼拈,“ 衆中喚作, 病在目前不識.”

 

[설화]

대자가 그렇게 한 행위가 병을 몰랐던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으니,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대자의 본의가 아니라는 뜻이다.

法眼:大慈伊麽, 似不識病, 伊麽會, 不是大慈意也.

 

현각의 징

 

“말해 보라! 대자는 병을 알았던 것일까, 알지 못했던 것일까? 그 학인

이 나온 것은 병인가, 병이 아닌가? 만일 병이라고 한다면 매일같이 가고

머무는 행위들이 모두 병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니 틀린 말이며, 병이 아

니라고 한다면 나온 것은 또한 무엇이겠는가?”

玄覺徵,“ 且道! 大慈識病不識病? 此僧出來, 是病不是病?
若言是病, 每日行住, 不可惣是病;若言不是病, 出來, 又作
麽生?”

 

[설화]

병을 알았던 것일까, 알지 못했던 것일까:대자에게도 병에 응하여 약을 주는

뜻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그 학인이 나온 것은 ~ 또한 무엇이겠는가:만일 병이라 한다면 그 학인에게

어떤 병이 있었던 것이며, 만일 병이 아니라고 한다면 대자가 방장으로 돌

아간 것은 병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니, 대자가 방장으로 돌아간 뜻은 또한

무엇이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玄覺:識病不識病者, 亦有應病與藥之義也. 此僧云云者, 若
言是病, 這僧有什麽病? 若言不是病, 大慈歸方丈, 不是識病,
大慈歸方丈, 又作麽生?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염

 

“대체로 근본적인 가르침을 일으켜 세우려면 득과 실을 가려내야 한다.3)

대자는 병만 알고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고, 그때 어떤 학인이 앞으

로 나오자 대자는 곧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나라면 병은 알지만 질문에

대답하지는 않는다고 한 다음, 만일 어떤 학인이 나온다면 그의 등을 겨누

고 곧바로 때렸을 것이다. 여러 선문(禪門)에서도 병은 알지만 질문에 대

답하지 않는 경우 어떤 학인이 앞으로 나오면 틀림없이 그것에 대응하는

별도의 묘방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그 입장에서 흔

들린다면, 당나라의 천자와 더불어 세 사람이 있을 뿐이다.4)”
雪竇顯拈,“ 大凡扶竪宗乘, 須辨个得失. 且大慈識病不答話,
時有僧出, 便歸方丈. 雪竇識病不答話, 或有僧出, 劈脊便打.
諸方識病不答話, 有僧出, 必然別有長處. 敢有一个動着, 大唐
天子只三人.”
3) 득과 실이 없는 경계에서 득과 실을 가려내라는 말이니, 시험을 위한 덫이요 함
   정이며 본분 화두의 속임수이다.
4) 화두라는 그 본래의 입장을 벗어나 비본질적으로 반응한다면, 그 뜻을 아는 사
   람은 대자환중과 설두 자신일 뿐이라는 뜻. 당나라의 천자는 세상의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하여 덧붙여진 말로 해석된다. <설화> 참조.

 

[설화]

그의 등을 겨누고 곧바로 때렸을 것이다:대자가 방장으로 돌아간 행위가 분

명하게 밝힌 점이 없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으므로 여기서 득

과 실을 분명히 가려내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러 선문에서도 ~ 묘방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반드시 제3의 공안5)이  있다는

뜻으로 아래에서 해인초신(海印超信)이 ‘차나 마시게’라고 한 말이 그 예

이다.

5) 대자나 설두와 다르게 대응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두 선사가 각각 다르게 반응
   을 보였지만 모두 규정된 방식에 따르지 않았듯이 제3·제4의 공안도 가능하다.

 

당나라의 천자와 더불어 세 사람이 있을 뿐이다:잘 알 수는 없으나,『조정사원』

23장6)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선(禪)에는 대위,7) 시(詩)라면 주박,8) 당나

라의 천자 바로 이 세 사람이 있을 뿐이로다.’ 주박의 「벽왕소어소설(辟王

巢語小說)」을 참조하라.” (이 세 사람이)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관계와
같다는 말이다.9)
6)『祖庭事苑』권2 卍113 p.38b16 참조.『佛果擊節錄』권2 卍117 p.479a10에 따르
   면, 이 인용문은 주박이 대위에게 준 시이다. “주박이 대위에게 바친 시에는
   ……”(周朴贈大潙詩云, ……)
7) 大潙.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를 높여 부르는 말.
8) 周朴(?~878). 이 말을 한 주박 자신을 가리킨다. 자는 견소(見素) 또는 태박(太
   朴). 복주(福州) 장락(長樂) 출신.『全唐詩』에는 오흥(吴興) 출신이라고 되어 있
   다. 황소(黄巢)의 난 때 반란군이 항복하면 죽이지 않겠다고 했지만 크게 웃으
   면서 죽음을 받아들였다.
9) 이백과 두보와 같이 걸출한 인물로 분류된다는 뜻인지 전후의 맥락이 불확실
   하다.

 

雪竇:劈脊便打者, 大慈歸方丈, 似乎無辨白故, 此須辨得失
也. 諸方識病至長處者, 須有第三公案, 下海印信云,‘ 喫茶
去.’ 是也. 大唐天子云云者, 未詳, 祖庭二十三丈云,“ 禪是
大潙詩是朴, 大唐天子只三人. 見周朴辟10)王巢語小說.” 云李
杜也.
10) 『祖庭事苑』 권2 卍113 p.38b17에는 ‘辟’이 ‘解’자로 되어 있다.

 

대우수지(大愚守芝)의 염

 

“그 학인은 앞으로 나왔고 대자는 곧바로 방장으로 돌아갔으나, 양자에

도리라고는 전혀 없다. 도대체 어떤 언행이 병을 알아차린 부분일까? 지

금이라도 자세하게 밝혀야 한다.11)”
大愚芝拈,“ 這僧出來, 大慈便歸方丈, 並無个道理. 什麽處是
識病處? 如今也須子細.”
11) 이들의 말과 행위에 어떤 도리도 없었다면, 그것에 도리가 있다고 예상하고 헤
    아리는 것이 바로 병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단지 병을 알 뿐”이라고 한 대자의
    말 자체가 인식할 어떤 도리도 없는 화두로 제기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우는
    자세히 밝힐 도리가 없는 곳에서 밝히라는 관문(關門)을 제기한 결과가 된다.

 

[설화]

방장으로 돌아간 것에 도리가 없는 듯하지만 있다는 것이니, 병을 알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대자의 본의를 등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大愚:歸方丈, 似無道理也, 若言不識病, 辜負大慈.

 

해인초신(海印超信)의 상당

 

이 공안과 더불어 설두가 ‘등을 겨누고 곧바로 때렸다’라 한 말을 제기

하고 말했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누군가 앞으로 나

왔다면 그에게 ‘차나 마시게’12) 라고  말했을 것이다.”

海印信, 上堂, 擧此話, 連擧雪竇云, ‘劈脊便打.’ 師云, “薦福
卽不然. 忽有人出來, 向道喫茶去.”
12) 앞으로 나온 자의 반응을 점검하기 위해 의미 없이 던진 말(화두)이다.

 

황룡조심(黃龍祖心)의 거

 

“안타깝다, 그가 하는 그대로 놓아두다니! 당시에 만일 그가 앞으로 나

오는 것을 보자마자 등을 겨누어 곧바로 때리고서 그가 몽둥이질한 이유

를 알아차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남들에게 점

검당하는 꼴은 모면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병도 알고 질문에 대답할 줄도

안다. 만일 대단한 기개를 가진 자13)가 나와서 선상(禪床)을 뒤집어엎었

다면 여기서 어떻게 대응해야만 할까? 상좌들이 시험 삼아 상황을 반전시

키는 한마디 말을 나 대신 해 보라.”

黃龍心, 擧此話云, “可惜, 放過! 當時, 若見伊才出來, 劈脊便
打, 待他得知行棒來處, 免見千古之下, 遭人點檢. 黃龍今日
也識病, 會答話. 忽若有个漢出來, 掀倒繩床, 者裏合作麽生支
遣? 請上座, 試代一轉語.”
13) 개한(个漢·箇漢·個漢). 한 사람을 가리키지만, 선문헌에서는 본분을 깨우친 납
    자(衲子) 또는 납자로서의 기개가 넘치는 자를 말한다.

 

[설화]

등을 겨누어 ~ 꼴은 모면했을 것이다:득과 실을 분별해 보라는 뜻이니 이것

이 바로 병을 아는 것[識病]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제 ~ 대답할 줄도 안다:병을 안다는 것은 병에 따라 약을 준다는 뜻

이고, 질문에 대답할 줄 안다는 것은 엄정한 법령을 남김없이 제기한다는

뜻이다.

선상을 뒤집어엎다:하나하나 모두 쓸어 없앤다는 뜻이다.

상황을 반전시키는 한마디 말을 나 대신 해보라:30방을 때려 내쫓으라는 뜻

이다.

황룡의 말을 이해했는가? 아래서 천동이 제시한 뜻도 이와 같다.

黃龍:劈脊云云者, 辨箇得失也, 是識病也. 黃龍今日云云者,
識病則應病與藥, 答話則全提正令也. 掀倒禪床者, 一一掃蕩
也. 代一轉語者, 打三十棒趂出去. 還契得黃龍麽? 下天童意,
與此同.

 

천동정각(天童正覺)의 시중

 

이 공안과 더불어 설두가 ‘등을 겨누고 곧바로 때렸을 것이다’라고 한

말을 제기하고 말했다. “대자와 설두 두 선사는 모두 작가였지만, 문제는

눈앞의 일만 돌아보았을 뿐 다리 아래 닥친 위험은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일 좋고 싫은 분별도 없고 동쪽과 서쪽의 차별도 따지지 않는 기개가

넘치는 납자가 앞으로 나와서 선상을 뒤집어엎었다면, 설령 온전한 기틀

을 남김없이 활용했더라도 아마도 당황하여 손발을 어떻게 두어야 할지

조차 몰랐을 것이다. 바로 이러할 때 병을 식별하는 안목을 갖출 수 있겠

는가?”

天童覺, 示衆, 擧此話, 連擧雪竇云, ‘劈脊便打.’ 師云, “大慈
雪竇, 二俱作家, 要且, 只顧目前, 不防脚下. 或有个不識好惡,
不問東西底漢, 出來便掀倒禪床, 直饒你全機大用, 也只恐着
手脚不辦. 正當與麽時, 還有識病底眼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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