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관한 여덟 가지 담론]
유교의 깨달음에 대한 비판과 의미 / 최일범
불교평론 [66호] 2016년 06월 01일 (수)
1.
‘깨달음’은, 긴 잠에서 깨어 새삼 자기를 확인하듯, 자기의 본래면목에 대한 자기의 직각적 확인인가, 아니면 인식주체의 인식대상에 대한 명료한 활동인가? 어느 편에 서는가에 따라 ‘깨달음’은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본래면목과 인식대상의 정체성에 따라 ‘깨달음의 콘텐츠’가 달라진다. 불교의 본래면목은 공체(空體)이며, 유교의 본성은 인체(仁體)이다. 송명(宋明)의 이학자들이 ‘선(禪)에는 이(理)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종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종지에 근거하여 ‘돈오(頓悟)’라는 독특한 깨달음의 유형을 배태하였다. 중국사상사에서 불교의 발전은 수당(隋唐) 시대에 극에 달했다. 천태지의(538~579)의 천태종, 길장(549~623)의 삼론종, 현장(602~664)의 법상종, 현수법장(643~712)의 화엄종 등 교학(敎學) 불교가 화려한 불꽃을 날린 후에 선종의 시대가 막을 열었다.
보리달마를 초조로 한 초기 선종의 성립기는 9세기 초, 중만당(中晩唐) 무렵 6조 혜능(638~713)과 법손 마조도일(馬祖道一, 709~ 788)과 그를 계승한 제자들의 혁신적 활약에 의해 조사선이 수립되는 시대까지, 전후 약 3백여 년간이라고 할 수 있다. 조사선이 흥기한 당시 유교에서는 사대부(=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상운동이 시작되었다. 한유(韓愈, 768~824), 유종원(柳宗元, 779~831)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문운동은 이고(李翶 ?~844)의 복성서(復性書)에 이르러 송명이학(宋明理學)을 배태할 씨앗을 뿌리게 되었다.
이는 중국사상사에서 선종의 뒤를 이은 신사조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였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형태의 사상이 교섭하였다는 사실은, 양교를 감싸듯 포용하는, 보다 넓은 사상적 토양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아라키 겐코에 의하면, 그것은 ‘본래성불(本來成佛)’ ‘본래성인(本來聖人)’ 등으로 일컬어지는 ‘본래성(本來性)’이다. 유불 양교의 종파 간, 학파 간의 대립은 인간의 마음에 내재하면서도 세계의 근저에 있는 본래적인 것의 현현 양식, 파악 방법, 반성 태도와 관계되어 있다. 양교는, 천명설(天命說)과 공관(空觀), 천운순환설(天運循環說)과 환망관(幻妄觀),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등의 차이에서 드러나듯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양교가 모두 ‘인간-세계’ 존재의 본래적 기지를 확인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는 것이다. ‘깨달음’(=頓悟)은 바로 그 본래적 기지를 확인하는 독특한 방법이다.
‘깨달음’은 불교만이 아니라 유교의 전통에서도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혹자들은 송명이학이 온전히 불교, 특히 선종의 영향으로 성립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맹자》와 《주역》 《중용》에 이미 깨달음의 초기 형태가 나타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주역》의 “적연(寂然)히 부동(不動)하다가 천하의 원리를 감통(感通)한다.”를 포함해서, 유교의 고전에는 송명이학에서 전개된 유학적 ‘깨달음’의 원형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송명이학이 비록 선종의 영향으로 흥기했지만, 또한 선종을 비판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이다.
송명이학의 선종의 깨달음에 대한 비판은 몇 가지 유형을 이룬다.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이정(二程) 형제를 중심으로 북송의 유학자들은 대체로 선종에 대해 긍정과 부정이 혼합된 태도를 취하였는데, 그것은 주역의 ‘경이직내(敬以直內), 의이방외(義以方外)’라는 구절을 인용해서 표현되었다. 즉 선종의 관심(觀心) 공부는 ‘경이직내(敬以直內)’와 비슷하지만 ‘의이방외(義以方外)’의 사회윤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와 달리 주자는 선종에 대해 가장 폭넓은 주제들을 다루었고, 부정 일변도의 비판을 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명 대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은 선종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구스모토분유(久須本文雄)와 누카리야 가이텐(怱滑谷快天)은 각각 《왕양명의 선사상 연구(王陽明の禪的思想硏究)》와 《양명여선(陽明與禪)》에서 왕양명의 사상과 혜능의 선사상의 유사성을 강조하였고, 왕양명이 7개 성(省)에 퍼져 있는 40여 개의 사찰을 무려 50차례나 방문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왕양명 역시 주자와는 다른 각도에서 불교에 대해 부정적인 비판을 가하였다. 주자의 성즉리(性卽理)를 비판하고 심즉리(心卽理)를 제창한 왕양명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유교의 심성론은 선진시대에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에서 발단하여 송명이학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으로 전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깨달음’의 공부법을 발전시켰다. 맹자의 존심(存心) · 수심(守心) · 지지(持志) 등과 순자의 허(虛) · 일(壹) · 정(靜)은 유교 공부론의 원형에 해당하며, 이는 송명이학에서 도남학맥(道南學脈)의 구중(求中) 공부와 호상학파의 찰식(察識) 공부 및 주자학의 거경궁리와 격물치지, 양명학의 치양지(致良知)로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불교, 특히 화엄과 선의 영향, 상호 교섭과 대립이 작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황, 조식, 이이 등 조선 성리학자들 모두 정좌 공부를 실천하였다. 조식은 그릇에 물을 담아 두 손으로 받들고 밤을 새우며 지지(持志)를 체험했고, 성성자(惺惺子)라는 쇠방울을 달고 경 공부를 실천하였다. 죽음에 임해서 제자들에게 “학자는 공부가 익어야 마음에 한 생각도 없는(胸中中無一物) 경계에 도달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이 역시 독서보다 정좌에 힘썼고, 초학자에게 특히 정좌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양명학파에서는 특히 깨달음이 중시되었다. 왕양명이 양지(良知)를 깨달았다고 알려진 용장오도(龍場悟道)는 선종의 스토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그의 제자 왕용계는 “도(道)의 깨달음에는 ‘해오(解悟)’ ‘증오(證俉)’ ‘철오(澈悟)’가 있다.”(王畿 《龍溪全集》 卷17)고 하여 깨달음의 투철한 경지를 추구하였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전통 종교 사상은 동서 문명융합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우리가 ‘깨달음’이라는 유교와 불교의 전통적 진리인식 방법을 문제 삼을 때, 대립적 관점에서 어느 한 편을 선택, 주장하는 종파적, 학파적 갈등을 재현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오히려 이를 통해서 새로운 철학적 지평을 열어 갈 것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불교의 ‘깨달음’을 비판하는 유교의 논리를 평면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그 이면에서 서로 어울리고 있는 철학 문제를 입체적으로 파헤쳐 그 현대적 의미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2.
송명이학가들은 사상적 순결성을 강조하면서 불교 배척을 당연시했고, 이런 양상은 불교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라키 겐코(荒木見悟)가 지적한 바와 같이, 진정으로 유불 양교의 핵심을 파악하고 대립 갈등의 원인을 찾아 사상 변천의 철학적 기저를 해명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유교와 불교를 대립으로만 보는 시각은 동아시아 사상사의 해명을 교착에 빠지게 한다. 우리는 송명이학이 학술적 업적을 이룬 배경에, 유불 양교를 감싸면서도 그 대결을 성립시킨, 풍요로운 사상적 토양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유불 양교를 포함한 심원하고도 복잡한 사상의 조류에서 그 사고나 체험, 행위 등을 끊임없이 산출하게 한 철학적 토양은 무엇일까?
그것은 역시 아라키 겐코가 지적했듯이 ‘본래성불(本來成佛)’ ‘본래성인(本來聖人)’ 등으로 일컬어지는 ‘본래성(本來性)’이며, 본래성이 자신을 드러낼 현실성이다. 다시 말하면 유불 양교의 종파 간, 학파 간의 대립은 인간의 마음에 내재하면서도 세계의 근저에 있는 본래적인 것의 현현 양식, 파악 방법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양교는 천명(天命)과 공관(空觀), 천운순환설(天運循環說)과 환망관(幻妄觀),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등의 차이가 있지만, 양자가 ‘인간-세계’ 존재의 본래적 기지의 확인을 목표로 한다는 점, 그에 기초하여 자아의 실현(부처, 성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송명이학과 화엄 · 선종은 마음을 주체로 본래성과 현실성의 괴리를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인간과 우주의 일여(一如)를 추구한다는 논리와 실천적 목표에서 소통한다. 다만 그 목표를 추구하는 주체적 계기와 목표의 성격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유교는 도덕의식을, 불교는 고업(苦業) 의식을 계기로 하여, 성덕(成德)과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주체적 · 내면적 계기에 의거하여 성덕과 해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시 양교는 소통한다. 성덕과 해탈의 목표를 향하는 주체적·내면적 계기가 양교에서 ‘깨달음’의 길로 나타났다.
남선의 창시자 혜능은 “진리에는 돈점(頓漸)이 없건만 사람의 근기에 이둔(利鈍)이 있기 때문에 돈점이 있다.”(대정장 권48, p.342)고 말하였다. 또 “근기가 둔한 사람도, 반야의 지혜가 있다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으나, 마음이 미혹하여 밖에서 부처를 찾아 자성(自性)을 깨닫지 못한다. 돈교를 듣고 자심(自心)에서 본성(本性)으로부터 정견(正見)을 일으키면 곧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대정장 권48, p.340)라고 말하였다. 이는 근기의 이둔은 “마음의 내면에서 본성으로부터 정견을 일으키는가? 아니면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내 마음에서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에 돈(頓)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맹자》에는 “마음을 다하는(盡心) 사람은 본성을 알고(知性), 본성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안다(知天). 그 마음을 보존하여(存心) 본성을 기르는 것은(養性) 하늘을 섬기는 것(事天)”(〈진심장〉 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인간의 마음이 곧 우주 본체인 하늘과 하나(一如)라는 뜻이며, 마음에서 본성과 하늘을 발견할 수 있다는 공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는 혜능이 마음에서 부처를 구함으로써 돈교가 성립한다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논리이다. 《중용》 〈수장〉에서 “하늘이 명한 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인간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라고 말한 것도 《맹자》와 같은 의미이다.
북송의 정명도(程明道)는 또한 “마음이 곧 하늘이다. 다하면 본성을 아니, 본성 아는 것이 곧 하늘을 아는 것이다. 이를 당처(當處)에서 깨달으니 다시 밖에서 구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는 《맹자》의 표현이 ‘심, 성, 천’에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둔 것 같은 데 반해서, 진일보하여 원돈적(圓頓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명도는 또 “학자는 먼저 인을 알아야(識仁) 한다. 인(仁)은 만물과 동체이다.”라고 말하였고, 이를 계승한 호오봉(胡五峰, 1102~1161)은 “인(仁)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먼저 마음에서 인체(仁體)를 살펴 알아야 한다. 제선왕이 소를 차마 죽이지 못한 것이 곧 양심의 싹이니 이것을 잘 조존(操存)하고 존양(存養)하면 하늘과 같이 된다.”(知言)고 하였다.
《중용》에서는 “도(道)는 인간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 후에 ‘희로애락’의 감정이 발동하지 않은 ‘미발지중(未發之中)’과 이미 발동한 ‘이발지화(已發之和)’를 말하고, “중화를 이룸(致中和)으로써 천지가 자리 잡고 만물이 화육된다.”고 하였다. 이는 인간의 마음 구조와 천지만물의 존재 구조가 다 같이 중화의 체용 구조임을 뜻한다. 지눌이 《화엄론절요》에서 “심의 체와 용이 곧 현실적 세계의 성과 상이다.”라고 하여, 인간의 본질적 사유의 구조와 존재의 구조는 상호 일치한다는 뜻을 드러낸 것과 다르지 않다. 정명도의 제자 양시(楊時, 1053~1135)는 《중용》 〈수장〉에서 착안하여 새로운 공부법을 창시하였으니 이를 구중(求中) 공부라고 한다. 구중이란 “희로애락이 발동하지 않았을 때 정좌하여 내심의 깊은 곳에서 본체(=중)를 구하는 것”이다.
3.
맹자와 순자의 인성론은 유교 심성론의 원형에 속한다.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본성을 따르면 악(惡)하게 된다는 것이다. 순자의 본성은 생리적 욕구(欲求)로서 프로이트의 이드 또는 리비도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자는 인위적인 학습을 통해서 욕구를 통제해야 비로소 선하게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인위적인 학습이란 허(虛) · 일(壹) · 정(靜)의 마음공부를 가리킨다. 마음에는 장(臧) · 양(兩) · 동(動)의 인지 기능이 있기 때문에 혼란하여 본성의 악을 통제할 수 없다. 장(臧)이란 기억(藏)의 인지기능인데 예를 들면 심리적 상처로 기억되는 트라우마 같은 것이 한 예이다. 또 양(兩)은 마음이 여러 사태를 동시에 인지할 수 있는 기능으로, 몰입해야 할 때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오르는 것이다. 동(動)은 공상 같은 잡념이나 공연히 마음이 들뜨는 부념(浮念) 등을 가리킨다. 장(臧) · 양(兩) · 동(動)은 명료한 인식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허(虛) · 일(壹) · 정(靜)의 공부를 통해서 다스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 순자의 주장이다.
허(虛)는 ‘기억으로 인해 새로운 인지가 방해’되는 장(臧)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마음을 집착 등에서 벗어나게 하는 공부이고, 일(壹)은 ‘이것에 대한 인식이 저것에 대한 인식을 방해하지 않도록’ 마음을 몰입, 집중하는 공부이며, 정(靜)은 ‘잡념이나 공상으로 마음을 혼란하게 하지 않는’ 공부이다.
순자 인성론은 마음을 선험적, 초월적인 ‘본성’ ‘본래면목’이 아니고, 후천적 인위적인 사유 주체라고 보는 것이 특징이며, 순자의 마음공부는 점오(漸悟) 또는 점수(漸修)에 속한다고 하겠다.
맹자의 본성은 선험적이며, 본성과 마음은 체용(體用) 관계이다. 《맹자》에 보이는 제선왕과 대화는 그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대화를 정리하면 이렇다.
제선왕은 부들부들 떨며 도살장으로 향하는 소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소를 살려주라는 명령을 내린다. 소는 종(鐘)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흔종(釁鐘)을 위해 도살될 것이었으나, 제선왕은 죄도 없이 부들부들 떨면서 죽으러 가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흔종을 폐할까요?”라는 신하의 물음에 제선왕은 순간 양을 대신 잡으라고 명한다. 그 후 제선왕은 “왜 소를 살려주라고 했는가?”라는 맹자의 질문에 “참으로 내가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제선왕이 자신의 마음을 모르겠다고 토로한 것은 소가 불쌍하면 양도 불쌍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맹자는 소를 살려준 것은 인(仁)의 본성이 측은지심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본성은 직각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불쌍한 소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제선왕은 자신도 모르게 소를 살려주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만약 제선왕이 논리적으로 생각했다면 소를 살려주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스토리에서 맹자가 나타내려는 것은 바로 본성이 직각적(直覺的)으로 작용하는 본심의 실체(=측은지심)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인(仁)의 본성이 측은지심으로 직각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은, 측은지심의 내면에 본성이 자리 잡는다는 것, 측은지심이 곧 본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왕양명이 맹자를 계승했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왕양명의 심즉리(心卽理)는 측은지심이 곧 본성의 작용이라고 하는 맹자의 논리와 부합한다. 그래서 맹자는 “마음을 다하면(盡心) 본성을 알고(知性),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안다(知天).”고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하늘이 본성으로서 마음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늘’을 ‘부처(佛)’로 바꾸면, ‘부처는 곧 본성으로 마음이며,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 선종의 종지가 된다. 또한 측은지심은 평상심이므로, 마조도일(馬祖道一)의 ‘평상심이 곧 도(道)’와도 일치한다. 이와 같이 맹자와 선종은 그 사상 내용은 다르지만 심성 체용의 직각적 논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항상 본성이 작용하는 측은지심과 같은 도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마음이 곧 본성이라면 어째서 맹자는 “마음을 다해야(盡心) 본성을 안다.”고 했을까? 진심(盡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맹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감각 기관(耳目之官)’과 측은(惻隱) · 수오(羞惡)의 ‘도덕본심(心之官)’을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감각기관은 단지 외물에 대한 감각이므로, 감각에만 몰입하면 외물에 이끌려 도덕본심을 은폐할 수 있다. 그러나 도덕본심의 기능은 ‘사(思)’로서 한순간 깨달으면 감각에 은폐된 본심을 회복할 수 있다. 맹자와 제선왕의 일화는 바로 이러한 심성론의 스토리텔링이다.
맹자는 인간은 누구나 인의예지의 본성이 있고, 그것이 측은(惻隱) · 수오(羞惡) · 공경(恭敬) · 시비(是非)의 마음(=감정)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따라서 측은지심으로 발현한 도덕본성을 깨달아 보존하고 확보해 감(存養)으로써 자신의 본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한다. 맹자는 자신의 마음(=감정)에서 본성을 구하므로 “스스로 결단해서 구하면 깨달을 수 있고 버리면 잃는다.”고 하였다. 이는 혜능이 “마음의 내면에서 본성으로부터 정견을 일으키는 것”을 돈오(頓悟)라고 한 것과 같은 논리이다.
4.
이제 주자의 선종 비판 논리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주자의 선종 비판은 여래선의 ‘관심간정(觀心看淨)’과 조사선의 ‘식심견성(識心見性)’에 대해 모두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관심’은 초기불교의 공부법인 지관(止觀)과도 연관이 있지만, 신수(神秀)가, 오조 홍인의 《수심요론(修心要論)》 《최상승론(最上乘論)》에서 주장한 ‘본수진심(本守眞心)’을 계승하여 저술한 《관심론》에도 나타난다. 또한 《관심론》은 종래에 선종의 초조 보리달마의 설법집의 하나로 인식되어 온 만큼 선종 전반에서 중요성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식심’ 역시 혜능 이래 조사선의 공부법으로 알려진 선종 공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관심’과 ‘식심’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할 여유는 없고, 다만 주자가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이유에 대해서 논급할 것이다.
주자가 ‘관심’에 대해 비판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관심’과 ‘식심’은 ‘관’ ‘식’의 주체와 대상이 모두 ‘마음(=심)’이기 때문이, 마음을 주체와 객체의 이심(二心)으로 대립시키는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마음을 주-객 대립 구조로 파악하는 것은 하나의 마음으로써 다른 또 하나의 마음을 보는 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서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주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은 하나일 뿐이니, 깨닫는 주체가 곧 마음이다. 그런데 지금 깨달은 마음으로 또 다른 마음을 구하고, 깨달은 마음으로 또 다른 마음을 쓴다면 혼란하고 급해서 그 병폐가 조장(助長)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일용 사이에 경(敬)을 주로 하여 자연히 본심을 어둡지 않아 사물에 따라 감통하여 깨닫고자 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닫지 않음이 없는 것만 못하다.
주자는 또 “마음은 몸의 주재로서 하나요 둘이 아니며, 주체요 객체가 아니다. ……지금 어떤 것이 도리어 마음을 본다고 하면 이 마음 외에 다른 마음이 있어서 이 마음을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은 하나인가 둘인가? 주체인가 객체인가? 이 말의 오류를 저절로 알 수 있다. ……불교는 마음으로 마음을 구하고, 마음으로 마음을 부리니, 이는 마치 입으로 입을 저작하고 눈으로 눈을 보는 것과 같아 모순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하였다.
선종의 관심(觀心)은, 주자가 이해한 것처럼, 하나의 마음으로 다른 또 하나의 마음을 본다는 의미일까? 《관심론》에는 관심의 실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문, 어떻게 관심을 깨달음이라고 합니까?
답,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사대오음이 본래 공(空), 무아(無我)라는 것을 깨닫고, 자심의 작용에 정심(淨心)과 염심(染心)이 있어 서로 상대함을 요견(了見)한다. ……또 《열반경》에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였다.
즉 신수는 일체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으며, 불성은 곧 깨달음(覺性)으로서 이 불성을 자각하여 염심(染心)을 제거하면 해탈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을 《관심론》을 통해 피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신수의 관심은 주자가 이해한 것처럼 마음을 둘로 나누어 주-객 대립의 구조로 본 것은 아니었으며, 주자의 오해는 이미 학자들에 의해 지적되었다. 홍인이나 신수의 관심법문은 청정한 진심의 수호를 주장하는 것이었으며, 소위 ‘관(觀)이란 수호(守護), 존양(存養)의 뜻’이었다. 즉 마음을 정좌를 통해서 일상적인 상태에서 격리하여 진심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혜능의 ‘식심견성(識心見性)’에서 인식되는 심은 망심(妄心)이지만 일념의 깨달음에 의해 망심이 곧 반야지혜로 전화되는 것이므로 ‘진망불이(眞妄不二)’이므로 결코 주자가 지적한 것처럼 ‘두 개의 마음(二心)’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주자가 선종의 관심, 식심을 오해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주자가 근본적으로 본체에 대한 마음의 직각적 깨달음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주자는 성(性=理)은 마음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사물, 사태에 존재한다고 보고, 마음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라고 하였다. 따라서 선종을 비판했을 뿐 아니라, 당시 유교에서 정명도를 계승한 호상학의 선찰식(先察識) 공부와 도남학맥의 미발체인(未發體認) 공부 역시 비판하였다. 호상학파는 “먼저 인(仁)을 인식한 후 존양한다.”는 정명도의 ‘식인(識仁)’ 공부를 계승하여 ‘선찰식후함양(先察識後涵養)’을 주장하였는데, 주자는 이로써 〈중화구설(中和舊說)〉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곧 주자는 정이천의 경(敬) 공부에 착안하여 ‘선함양후찰식(先涵養後察識)’ 공부에 의한 〈중화신설(中和新說)〉을 수립하게 되었다.
주자의 〈중화구설〉은 우주 본체가 내면화한 본성은 쉼 없이 작용하여 본심으로 드러나므로, 본심을 찰식(察識)하고 존양하면 본성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자는 오래가지 않아 선찰식(先察識) 공부는 마음으로 마음을 살피는 번잡하고 혼란한 병폐가 있다고 비판하게 되었다. 이에 주자는 정이천이 주장한 경(敬) 공부로 눈을 돌려, 먼저 ‘미발시(未發時) 정(靜) 공부’로서 함양(涵養)을 확보하고 나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격물궁리 공부를 수립하였다. 이로 인해 주자는 그의 스승이요 도남학맥의 계승자인 이통(李侗)의 ‘미발체인(未發體認)’ 구중(求中) 공부도 비판하게 돤 것이었다.
주자의 경 공부는 마음의 “사려는 싹트지 않으나 지각은 어둡지 않은(思慮未萌而知覺不昧)” 상태를 확보하는 것이다. 북송 이래로 경(敬)은 상성성(常惺惺), 즉 ‘항상 깨어 있는 마음’이라고 알려졌는데, 주자는 ‘깨어 있음’은 결코 ‘사려분별’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주자의 공부는 격물치지(格物致知)로서 도남학맥의 미발체인(未發體認)에 의한 구중(求中) 공부와도 다르고, 호상학의 찰식 공부와도 달랐다. 구중 공부와 찰식 공부의 목표는 내면의 본체(=본성) 체인(體認)에 있었는데 반해, 주자의 공부는 외물에 존재하는 사물의 이(物理)를 궁구하여 지식을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자는 외물의 이를 궁구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인식주체를 확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에 ‘사려는 싹트지 않으나 지각은 어둡지 않고 깨어 있는’ 경(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격물치지의 관건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북송의 이학자들이 선종을 ‘경이직내(敬以直內)’의 차원에서 인정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즉 도남학이나 호상학 모두 본성직관, 본체체인의 공부를 주장하여, 선종의 돈오 공부와 같은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주자는 외물의 리를 궁구하여 지식을 이루는 격물치지를 주장하였으므로 점수(漸修)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주자의 경 공부는, 마치 거울의 면이 깨끗할수록 외물의 형상을 더욱 온전히 비출 수 있듯이, 마음을 깨끗이 하는 공부였다. 마음의 잡티는 이미 경험해서 기억으로 저장된 관념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주자의 경 공부는, 마치 불교의 유식학에서 아라야식의 망식을 제거하는 것처럼,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주자가 극히 주의한 것은 마음으로 마음을 다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고요한 마음 상태를 추구할 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어, 결국 번잡한 마음에 그것을 부정하는 또 하나의 번잡한 마음을 보태는 결과에 도달한다. 그래서 주자는 미발(未發)을 심무물(心無物)의 경계라고 규정하고, 저울의 비유로써 설명하였다. 저울에 물건 A를 올려놓은 후 물건 B를 놓고 B의 무게를 측정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心)도 사태(事態) A에 대한 사려나 감정을 담은 상태에서 사태 B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기존의 관념이 다른 사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주자는 “장일개심파착일개심(将一箇心把捉一箇心)” 즉 “하나의 마음이 다른 마음을 붙잡아 매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미발(未發)에 대한 율곡의 설명은 경(敬)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묻는다. ‘미발시(未發時)에도 듣고 보는 작용이 있는가?’ 율곡이 답하기를, ‘만약 사물을 볼 때 본다는 생각이 따라 일어난다면 이발에 속한다. 그러나 사물이 눈앞을 지날 때 단지 볼 뿐 본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소리를 귀가 들을 때 단지 들을 뿐 듣는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즉 비록 보고 들음이 있어도 사유를 하지 않는다면 미발이다. 그러므로 정자가 말하기를, 눈은 보고 귀는 듣는다고 했고, 주자가 말하기를, 보지도 듣지도 않는 것을 미발이라고 한다면 오직 정신이 혼매한 사람일 뿐이다.’
이상에 의하면 미발시는 아무런 의식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인식주체의 지각은 뚜렷하되 사물을 대상화한 사유 작용은 일으키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주자는 이런 정(靜)의 상태를 경(敬)이라고 했고, 대상을 인식하는 동(動)의 상태에도 경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주자가 말한 ‘경관동정(敬貫動靜)’, 즉 경이 정(靜)의 미발시와 동(動)의 이발시를 관통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필자는 주자의 경(敬)에서 원시불교의 사마타, 위빠사나의 공부와 유사함을 발견한다. “보되 봄에 의한 사려는 일으키지 않고 그대로 대상 사물의 이(理)를 궁구한다.”는 주자의 공부법은 마음챙김(혹은 마음차림)을 통해 사물을 ‘지금’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는 초기불교의 공부와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이 사마타, 위빠사나의 공부가 중국에 들어온 후에는 점차 중국 고유의 초월적 본성론의 영향으로 중국 선종으로 변화했는데, 주자는 다시 그것을 비판하고 본래면목의 자기 체험이 아닌, 대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주장한다는 것이 흥미로운 사실이다.
주자의 경 공부의 핵심은 인식의 대상화에 대한 경계였다. 이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고형곤 선생의 고견을 살펴보자.
꿈속에서는 꿈의 세계가 소상하게 있건만 깬 뒤에는 온데간데없이 허망한 것같이, 주-객 대립에서 지각되는 일체대상 세계와 이를 지각하는 인식주관 및 이 양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의식계는 모두 우리가 ‘주-객’ 대립의 대상적 파악의 입장을 취하는 한에서만 상대적으로 있는 것이요, 독자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미혹의 세계를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대상적 파악의 주-객 대립적 태도를 버리는 무념(無念)에 들어서야 한다. 첫째 일체허망경계인 대상적 세계를 버려야 하고, 다음엔 이 대상적 세계를 버려야 한다는 이 마음(遠離心)도 버려야 하고, 원리심을 버려야 한다는 이 마음도 한낱 사념에 불과한 것이니 또 버려야 한다. 외물을 집념하는 것만이 집념이 아니라, 이 집념을 버린 무념을 의식하는 것도 또한 집념이기 때문이다.
주자는 마음을, 맹자의 초월적 본심이 아닌 인지주체로만 보았기 때문에 대상화를 지양한 인지주체의 확보를 주장하였다. 따라서 송 대 이학자들 중에서도 정명도 계열에 대해, 심지어 자신의 스승인 이통(李侗)마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그 연장선 위에 선종의 관심(觀心), 식심(識心)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맹자의 초월적 본심을 계승하여 주자학과 쌍벽을 이룬 양명학을 수립한 학자는 왕양명이었다. ‘용장(龍場)의 오도(悟道)’라고 알려진 깨달음의 과정은 일반적인 유학과 다르다. 왕양명은 37세 때 귀주 용장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풍토병으로 인해 생명이 경각에 달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왕양명은 “성인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화두를 잡고 정좌 명상에 돌입하였는데, 한밤중에 홀연히 성인의 도(道)가 자신의 본성에 구족하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 크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올라 종자들이 모두 놀랐다고 한다. 이후 왕양명은 사물에서 이(理)를 구하는 주자의 격물치지가 오류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왕양명은 그의 친구가 “저 산 뒤편에 꽃은 저절로 피고 지는데 그것이 그대의 마음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묻자 왕양명은 “그 꽃이 저절로 피고 지는 것을 그대는 어떻게 아는가?”라고 반문하고 모든 사태는 인간의 주관에 인식될 때 비로소 그 존재를 드러낸다고 하였다. 이러한 왕양명의 인식론은 주관의식과 지각되는 대상을 떠나서 존재하는 사물과 사태는 없다는 것이다.
송명이학에서 핵심은 본체와 공부의 문제이며, 본성이 본심으로 작용한다는(맹자, 왕양명) 인성론과 심의 인식적 전일성(專一性)을 확보하는 거경(居敬) 공부를 통해서 심과 이의 합일을 주장하는(정이천, 주자) 인성론의 양대 주류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유교와 불교의 깨달음에서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세속적 이(理)의 문제였다. 이에 대해서 조선의 18세기 유학자 이현익(李顯益)이 “주정(主靜) 공부는 반드시 먼저 이(理)를 밝혀야 한다. 이(理)를 밝히지 못하면 단지 선(禪)일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주자학이든 양명학이든 유교라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하나의 원칙은 인간의 자기실현이 기본적인 감정을 출발점이요 참된 기초라는 것이다. 유학자들이 표방하는 이(理)는 바로 그것을 가리킨다. 왕양명 역시 선종의 사찰을 수도 없이 방문하고 선사들과 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3년간이나 묵언과 참선수행에 정진하고 있는 한 선승을 향해 그의 모친에 대해 물었다는 기록은 유명하다. 그 승려는 눈물을 흘리며 모친을 잊기는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왕양명은 자기실현의 궁극적 기초인 내면의 성스러움이 결코 양도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한 측면이라고 느낀 것이다.
5.
국내에서 최근 ‘깨달음’에 대해 현응 스님과 수불 스님 간 한 차례 논쟁이 있었고, 이에 대한 불교학계의 반응이 뜨겁다는 사실은 수백 년 전통으로 전해진 ‘깨달음’의 가르침이 이제 새로운 장에서 논의될 국면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유교의 관점에서 보면 흥미롭게도 현응 스님의 관점은 주자의 격물궁리의 공부법과 유사하고, 수불 스님의 주장은 맹자나 양명학의 초월적 깨달음과 통한다. 왕양명의 양지(良知)는 곧 초월적 천리(天理)이며, 치양지(致良知)는 내면의 양지를 사사물물에 구현한다는 점에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이룬다. 이 경우는 돈오돈수 혹은 돈오점수에 해당될 수 있다. 반면 주자학은 마음을 본성의 작용으로 보지 않고 본성(=理)을 인지할 주체로 보고 경(敬) 공부를 통해서 인식주체를 명료하게 한 후 사물의 이(理)를 인지, 지식화하고 이를 실천한다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주장한다. 경(敬)은 주-객 대립의 대상적 인식을 지양하는 ‘지각은 불매(不昧)하되 사려는 싹트지 않은(知覺不昧, 思慮未萌)’ ‘의식독로(意識獨露)’의 경계를 나타낸다. 이는 인식의 주-객 대립은 초월하지만 결코 형이상적 본체에 대한 깨달음은 아니기 때문에 일종의 합리적 사유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사상사적으로 유학자들은 주자학과 양명학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주자학을, 자기실현을 위한 세계에 대한 이성적 자기반성으로 보고, 양명학을 주체에 대한 직각적 자기확인으로 본다면, 이 두 가지 철학은 인간에게 모두 필요하고 유용한 것이 아닐까? 불교의 경우에도 본래면목에 대한 자기의 직각적 확인은 물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해 또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양자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둘 다 포용해서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직각적 자기확인으로서 ‘깨달음’이나 세계에 대한 합리적 이해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마음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
최일범 /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교수. 성균관대 유학과, 동 대학원 졸업(박사). 주요 논저로 〈불교의 중도와 유교의 중용사상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논문) 등의 논문과 《한국의 윤리사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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