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들의 가르침

우리가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 난 지금...

실론섬 2006. 2. 4. 15:22

 

  지각력 있는 모든 존재(중생)들의 가장 강한 충동은 행복을 누리고 고통을 피하려는 것이다.
  전세계의 각기 다른 문명들이 어떻게 하면 이 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수많은
  체계적 연구를 해왔다. 인간의 행복에 관한 수많은 철학이 출현했고, 행복을 얻기 위한 방법론이
  수없이 개발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의 대부분은 현생의 한계 속에서만 도달 할 수 있는 종류의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 방법론에는 어처구니 없게도 죽음과 죽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 되어 있고, 또한 힘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사후의 세계에 들어 갈 수 있게 해 주는
  지식 뿐만 아니라 현생에서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정신적 수행 과정에 대한 인식까지도
  결여 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다.

 

  두려워 할 까닭이 없는데 두려워 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두려워 해야 할 이유가 있는데 두려워 하지 않는 자도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 두 어리석은 사람은 모두 낙오 될 것이다

 

  죽음과 죽음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모르면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도 없으며
  우리가 어느 정도의 수행에 의한 정신적 성숙을 이룬 상태로 사후 세계에 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도 못한다.

 
  우리는 살면서 두가지를 쌓고 모은다. 한가지는 물질적인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마음이 지은
  업보이다. 내가 쌓은 물질적인 것은 죽은 뒤에 남겨 지지만 내가 쌓은 정신적인 재산인
  업보는 다른 누군가에게 유산으로 남겨지지 않는다. 오직 나 자신만이 그것을 들고 사후세계로
  들어 갈 뿐이다.

 

  죽고나면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인간은 언제나 인간으로 태어나고
  벌레들은 항상 벌레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유가 윤회적인 발전의 본질이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육도 윤회의 모든 순환 존재가 될 수 있는 숙명적 잠재력을 우리
  내부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존재들이 높은 육도의 界(계) 에서 낮은 계로,
  그리고 낮은 계에서 높은 계로 윤회 한다.

 

  다시 태어 나는 육도의 장소의 결정은 우리 손에 직접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업보와 미혹에 의해서 결정된다. 수행에 의한 높은 정신적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죽음에 임박했을 때 자신의 운명을 조종 할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한 존재들에게는 그 과정이
  그가 뿌린 업보의 씨앗에 대한 매우 기계적인 응보의 연쇄이며, 습관적인 방식일 뿐이다.

 

  죽은후에 자기에게 밀어 닥칠 업보의 상황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면
  혼란과 폭력의 아수라 속으로 던져질 뿐이다. 그리고 우리를 내몰고 있는 과거의
  행위의 업보와 정신적 수행에 가장 합당한 육도의 세계와 조건을 찾아 헤매게 된다.

 

  수행에 의한 정신적 깨달음의 체험을 하지 못한 세속의 인간이 죽으면 그에겐 희망이
  거의 없다. 죽음의 본질적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머리속에
  떠오를때 마다 그 생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 시키면서 한평생을 산 사람은 죽은후에
  자기앞에 무슨 일이 다가 올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육도 윤회에 대한 인식과 그리고 스스로  높은 단계의 계(界)에 태어나는 업보는
  인생 전체에 걸쳐서 획득되고 쌓아 지는 것이지 결코 죽는 순간이나 아니면
  죽은후에 나 아닌 제삼자의 힘에 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우리는 자신의 구원자가 될 수도 있고 동시에 자신의 적이 될수도 있다.

 

  우리의 현 상황은 아무 이유없이 생겨난 것도 아니고 우연히 야기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지난날 우리 육신이 행한 일련의 결정과 행위,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난 말과
  마음을 통해 우리 자신이 부단히 쌓아 온 것에 의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불행이나 불만 그리고 비참함등의 책임을 자기 외부의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게
  전가하는 것은 더욱 큰 혼란과 부정의 원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심화 시키기만 할 뿐이다.

 

  우리의 되풀이 되는 여러가지 불만과 비참함은 그것을 야기시킨 근본 원인이
  외부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개발되지 못한데 있다.


  그리고 우리를 고통으로 이끄는 것은 자유로운 정신이나 사랑, 지식이 아니라 집착과 분노
  그리고 무지인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인식하고 나면 비로소 불도(佛道)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것이다.

 

  명상수행을 하고 마음을 정화시킨다는 것은 시작도 없는 무한히 긴 영겁의 시간속에서
  우리가 현재 살아 있는 짧은 생애속에서 과거에 쌓아온 무명과 미혹의 모든 원천을
  없애 버리고 근절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무명과 미혹이 완전히 정화될 때 비로소
  계속되는 부정적인 업보를 만들게 하는 육체적 정신적 조건을 더이상 갖지 않게 된다.
  그리고 부정적인 업보의 씨앗이 정화될 때 , 자기 자신속에 분노와 비참의 원인을
  들여 놓지 않게 된다.

 

  만일 업보와 미혹이 우리 마음속에서 전횡하도록 조종하는 것을 근절 시키려면
  우리는 효과적인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얻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와 고통속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인 정법을 제대로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던 윤회의 계(界) 는 없고 우리가 향유하지 않았던 윤회의 기쁨은
  없으며, 헤아릴 수 없이 긴 전생의 삶속에서 우리가 얻지 못했던 삶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우리는 대부분은 인간으로 태어 났으면서도 마치 눈먼 짐승처럼
  우리의 내부에서 전개되는 삶의 형태를 분간하지 못한 채, 마음을 개발하고 깨달음을
  얻을려는 노력은 뒷전에 팽개쳐 두고 동물적이고도 감정적인 육체적인 욕구만 쫓는다.
  내적 즐거움을 만드는 정신적 방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저속한 것을 열망하고
  건전한 것을 혐오한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고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만난 바로 이때에 우리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부처님과 훌륭하신 영적 정신적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받아 들여야 한다. 깨달음을
  얻기에 가장 적합한 환생을 이룩한 지금, 수행을 하지 않으면 희망찬 미래나 아니면 사후에
  보다 높은 계(界) 에 태어날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

 

  지각을 가진 존재 가운데 많은 종류가, 즉 예를 들어 절부근에 살고 있는 개는 언제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기는 하지만 가르침을 받들고 수행할 육체적 정신적 기반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교훈을 이해 할수도 사용할수도 없다. 우리가 동물을
  제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정신적 자질을 함양하는 명상법을 가르칠 수는 없다.

 

  우리 인간은 우리보다 낮은 界(계) 의 존재들과는 달리 살아 있는 동안에 가장 성스러운
 
수행을 하고 깨달음에 이를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행에 전념하는 대신에 부정한 길로 빠져들고 망령된 생각을 갖는다면.
  또는 부처님의 말씀이 존재하지 않는 먼 다른 나라에 태어 났더라면, 결코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버리거나 얻고 싶어도 못 얻는 것이다.

 

  불교를 접할 수 있는 우리는 참으로 운이 좋은 편이다. 그러기에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 바로 지금 우리는 불도(佛道) 의 길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중생의 삶은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너무나 짧다. 이렇게 앉아 있는
  순간에도 인간의 삶은 끝없이 변하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스스로의 삶의 기억속에서
  얼마나 많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죽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우리의 생명은 유한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분명해 진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의 실체를 매우 구체적으로 느끼면서도 그것이 매우 먼 일이겠거니
  생각한다. 그러나 시시각각 죽음의 실체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고, 우리들 중 누구도
  우리가 저녁까지 살아 있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우리가 죽어서 다음생에 과연 하등한 윤회의 계에 떨어지지 않고 인간으로 다시 태어 있을까...

  태어 난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나은 조건을 받을 수 있을까...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 하십시요.

실론섬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