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근본불교) 이야기

Re: 출가에 대한 오해

실론섬 2008. 6. 1. 16:44

 

불교는 우리 각박한 세상의 선남선녀가  실천할 수 없는 아주 지고하고 숭고한 체계라서, 진정한

불제자가 되고 싶다면 절간이나 좀 한적한 곳에 은둔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슬픈 오해이며, 분명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데 기인한 것이다. 사람들은 

소문을 듣거나 어쩌다가 읽어본  것을 가지고 그런 경솔하고 그릇된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불교라는

주제를 전반적으로 이해치 못하여서 단지 부분적이고 편향된  시각만을 제공하는 사람이 쓴 것
을 읽어 본데 따른 결과이다.

 

부처의 가르침은 절간의 승려들만이 아니라 집에서 가족들과 생활하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거룩한 여덟 길"은 불제자가  사는 방법이며, 어떤 차별도 두지  않고 모든 이를
위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대다수가 승려가 되거나, 동굴이나 숲 속으로 들어가 버릴 수는 없다. 아무리

불교가 거룩하고  순수하다 하여도 요즘 세상에 일상생활을 하면서 따를 수 없는 것이라면 인간

대중들에게 쓸모가 없다. 그러나 당신이 불교의 정신을 정확히 이해한다면(문자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분명, 일반인의 삶을 영위하면서도  따르고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사회에서 단절되어 외딴 곳에서 산다면 불교를 받아들이기가 더 수월하고 편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이들은 그런 식의 은둔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것을

무디고 침체하게 만들어서 정신적, 지적 생활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참된 출가란 육체적으로 속세를  떠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처의 수제자 사리뿟따는 어떤

사람이 금욕적인 수행에 헌신하면서 숲 속에 살더라도 불순한 생각과 '더러움'이 가득할 수도

있으며, 다른 어떤 사람은 금욕적인 수행을 하지 않으면서 고을이나 도회지에 살더라도 순수하고
'더러움'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사리뿟따는 이들 둘 중에 고을이나 도회지에서

순수하게 사는 사람이  숲 속에 사는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고 더 위대하다고 말했다.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 생활을 떠나야 한다는 상식적인 믿음은 잘못된 생각이다. 사실,

그것은 실천하지  않는 데 대해 생각없이 변명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불교 문헌에는 평범한 보통

가정생활을 하면서 부처의 가르침을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열반을  깨달은 남녀들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한번은 "방랑수행자"  밧차곳따가 부처에게 가정생활을 꾸려가면서 부처의 가르침을 성공적으로

따르고 높은  정신적 경지에 도달한 남녀 평신도(優婆塞와 優婆夷)가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부처는 한 둘이 아니고 일이백이나 오백도 아닌  훨씬 많은 수의 평신도들이  가정생활을

꾸려가면서 자기 가르침을 성공적으로 따르고,  높은 정신적 경지에 도달하였다고 분명히 말한다.
 

어떤 이는 소음과 혼잡에서 멀리  떠나 조용한 곳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것이 기분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료들 사이에 살면서 그들을 도우며, 봉사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불교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더 칭찬할 만하고 용기 있는 일이다. 도덕적, 정신적  그리고 지적 훈련을 미리 하여 충분히

성숙된 다음에는 남을 도울 양으로, 자기 마음과 성품을 향상시키려 한동안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의 경우는 유익한 것일 수 있다.

 

그럼

왜 출가를 하는가???
나 동료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행복과 '구원'만을 생각하며  고독하게 온 생애를

산다면 이는 분명히,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연민하며 봉사하는데 근거를 둔 부처의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제 물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보통 평신도로 살아가면서 불교를 따를 수 있는데 왜

부처가 설립한 "승려들의 모임"인 승가가 있는가? 승가는 자신의 정신적, 지적 발전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데 생애를 바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가족이 있는 보통 평신도가 승려같이 자기 전 생애를 남에게 봉사하는데 바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부양 의무가 있는 가족이나 다른 어떤 속세의 구속이 없는 승려는 부처가 지도하는 바에

따라 자신의 전 생애를 '많은 이의 이익을 위해,

많은 이의 행복을  위해' 바쳐야될 위치에 있다.

 

역사적으로 불교사원이 정신적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과  문화의 중심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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