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에 귀의 하옵고...()...
[성스럽고 참된 불제자는 법에 대해 파괴됨이 없는 믿음을 성취한다.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 졌다. 즉 이 법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성질의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果報(과보. 사람이 짓는 선악의 업에 대한 결과(보답))가 있는 성질의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또 지혜 있는 자가 각자 스스로 이해할 성질의 것이다." 라고.] 상응부경전
이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불교 歸依者(귀의자)들의 느낌이나 감상을 말한 형태로 표현된 것이며, 아함부의 여러 경전에 되풀이 하여 나온다. 즉 다시 말하자면 이는 붓다의 가르침(교리)에 대한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이를 다음과 같이 다시
요약해 볼 수 있다.
1.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
2. 때를 기다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
3. 아서 보라고 (체험해 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
4. 잘 열반으로 인도 하는 것
5. 지혜 있는 사람이 각자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첫째의 조항인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 이라는 말은 한역에서는 現見(현견) 이라고 표현 되었듯이 현재에서 볼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다시말하자면 붓다의 가르침은 철두철미한 현실적인 성격의 것이라는 뜻이다. 붓다가 [인생은 苦(고)다] 할 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임에 틀림없다. 또한 만물이 緣起 (연기) 로 이루어져 있다 할 때 그것도 잘 생각하면 사실이 그러함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붓다는 생노병사의 현실을 인정하고 온몸으로 걸머진채 용맹정진후에 마침내 그 해결책을 발견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의 한마디 한마디는 다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그것이 진실임을 지금 이 시각에 볼 수 있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를 만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나 중생들은 현실적으로 그것이 사실임을 보고 믿음으로 귀의를 한 것이었다.
둘째 조항인 [때를 기다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 이라는 말은 한역에서는 卽時的(즉시적) 또는 現生的(현생적) 이라고 번역 되었다. 즉 붓다의 교리를 믿고 실천하는 과보 즉 성과가 나타나는 시기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붓다가 불국토가 미래에 온다느니 또는 극락왕생이니 하는 것을 내용으로 이야기 한 것이라면, 그것은 불국토에 대해서는 그것이 올 때까지 기다려봐야 알 수 있는 것이며 아직은 미지수이고 또한 극락왕생은 내가 죽어봐야 그 결과를 아는 것이다.
하지만 참된 붓다의 제자들은 그런 과보를 미래에 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가르침에 의해 조금이라도 진리에 접근 했다든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깨끗해 지고 행복해 졌다면 그것 자체가 자신이 스스로 거둔 성과 이기 때문이다. 과보의 유무나 그 크기같은 것은 스스로 조용히 반성하고 조금만 성찰을 해봐도 누구라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 항목인 [와서 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 은 한역에서는 來見的(내견적) 이라고 표현 했다. 즉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open 되어 있느 진리 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세상에는 그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납득하거나 받아 들여지지 않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 종교가 많다. 즉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원죄" 라는 개념이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것이고, 다른 입장에서 무량수경의 법장보살의 서원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염불왕생이 가슴에 와 닿을리가 없다(설명을 할려고 보니 이런말을 했아오니 이해 바랍니다). 그러나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은 그러한 '폐쇄된 진리" 는 절대로 아니며 누구에게나 이해되는 내용이다. 또 누구나 실천함으로써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둣된 선입견이나 편견을 지니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받아 들일 수 있는 가르침이며 어떠한 제한도 없는 가르침이다.
네번째 항목은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부분이 불교의 교리를 제대로 이해 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 "열반" 이란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이상이다. 물론 다른 종교들도 모두들 궁극적인 목료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내세를 강조하며 타의에 의한 구원을 강조한다. 하지만 붓다는 그것을 "열반"에 두었다. 열반(Pali 어로는Nibbana(닙바나)이란 우리들의 마음속에 타고 있는 激情(격정). 渴愛(갈애. 근본경전에서는 번뇌의 근원으로 간주함)의 불꽃이 꺼진 상태를 가르킨다.
붓다는 우리 중생들을 괴로움으로 이끄는 갈애의 불꽃이 꺼진 자유롭고 고요한 경지를 내세워 이를 중생들의 가장 현실적인 이상으로 내세웠다. 만약에 붓다가 내세운 불교의 이상이나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가 죽은 다음 내세의 행복에 있었다면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1),2), 3) 과 상반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불교가 중생들에게 내세의 행복을 약속하거나 치중하는 점이 있으나 그것은 붓다의 가르침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 항목인 [지혜있는 자라면 누구나 자기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 이란 말 그대로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는 의미이다. 붓다는 우연히 길거리를 지나가다 진리를 안 것도 아니고 스스로 발명한 것도 아니다. 그는 수행정진 끝에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렀고 또한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타종교처럼 계시자나 절대자나 예언자가 필요 없다.특정 한 사람을 지목하여 그 사람만이 구세주이며 그사람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할 수가 없다. 참된 지혜와 선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자기 마음을 되돌아보고 힘써 깨끗이 닦을 때 반드시 그는 붓다와 같은 진리를 발견할 것이고 붓다와 동일한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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