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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상윳따 - 명료한 앎(관통) 상윳따(Abhisamaya samyutta. SN13:1-SN13:11)

실론섬 2014. 5. 4. 16:52

제13주제(S13) 명료한 앎(관통) 상윳따

Abhisamaya-saṁyutta (SN 13.1-11)

 

nakhasikhāsuttaṃ (SN 13.1-손톱 끝 경)

7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적은 양의 흙을 손톱 끝에 올린 뒤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손톱 끝에 올린 적은 양의 흙과 저 대지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라고.

“세존이시여, 저 대지가 더 많습니다. 세존께서 손톱 끝에 올리신 작은 양의 흙은 적습니다. 세존께서 손톱 끝에 올리신 작은 양의 흙은 대지에 비하면 백 배도(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 배(10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배도(100000만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견해를 성취하고 명료한 앎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적다. 최대 일곱 번을 이 세상에 돌아온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을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법에 대한 명료한 앎(법의 관통)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고, 법의 눈(법안)을 얻는 것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다.”

 

*명료한 앎(abhisamaya. 現觀. 현관)이란 abhi-sasamvi에 기원을 둔 말로 여기에서 abhi는 ' 에 대해''에 접촉하여'의 의미이며, sam은 '함께'. vi 는 '가다'의미이다. 말 그대로 번역하면 '맞닿아 함께 가는 것'이 된다. '(현재의 사물을) 가까이서 보는 것' 혹은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등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명료한 앎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주석서인 빠디심비다막가의 'III 빤나박가 3. 명료한 앎에 관한 논의'에 자세히설명되어 있다. 다른 번역서에는 대부분 '관통'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pokkharaṇīsuttaṃ (SN 13.2-호수 경)

75.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50요자나의 길이와 50요자나의 너비와 50요자나의 깊이를 가진 호수가 물이 넘칠만큼 가득 차서 까마귀가 마실 수 있다. 거기에서 어떤 사람이 꾸사 풀잎으로 그 물을 찍어 올릴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꾸사 풀잎으로 찍어 올린 물과 호숫물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이 호수의 물이 더 많습니다. 꾸사 풀잎으로 찍어 올린 물은 적습니다. 꾸사 풀잎으로 찍어 올린 물은 호수의 물에 비하면 백 배도 미치지 못하고 천배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배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견해를 성취하고 명료한 앎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적다. 최대 일곱 번을 이 세상에 돌아온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을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법에 대한 명료한 앎(법의 관통)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고, 법의 눈(법안)을 얻는 것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다.”   

 

sambhejjaudakasuttaṃ (SN 13.3-합류한 물 경)
76.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강가, 야무나, 아찌라와띠, 사라부, 마히 같은 큰 강들이 만나서 합류하는 곳에서 어떤 사람이 두세 방울의 물을 퍼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두세 방울의 퍼낸 물과 합류한 물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합류하는 물이 더 많습니다. 두세 방울의 퍼낸 물은 적습니다. 두세 방울의 퍼낸 물은 합류하는 물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견해를 성취하고 명료한 앎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적다. 최대 일곱 번을 이 세상에 돌아온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을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법에 대한 명료한 앎(법의 관통)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고, 법의 눈(법안)을 얻는 것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다.”     

 

dutiyasambhejjaudakasuttaṃ(SN 13.4-합류한 물 경2)
77.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강가, 야무나, 아찌라와띠, 사라부, 마히 같은 큰 강들이 만나서 합류하는 곳에서 그 물이 고갈되고 소진될 것이고, 흘러 나가서 두세 방울의 물만 남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갈되고 소진된 합류한 물과 남아있는 두세 방울의 물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고갈되고 소진된 합류한 물이 더 많고, 남아있는 두세 방울의 물은 적습니다. 남아있는 두세 방울의 물은 고갈되고 소진된 합류한 물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견해를 성취하고 명료한 앎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적다. 최대 일곱 번을 이 세상에 돌아온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을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법에 대한 명료한 앎(법의 관통)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고, 법의 눈(법안)을 얻는 것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다.”        

 

pathavīsuttaṃ (SN 13.5-땅 경)
78.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대지 위에 대추씨 일곱 개 만큼의 작은 덩어리를 올려놓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추씨 일곱 개 만큼의 작은 덩어리와 대지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대지가 더 많고, 대추씨 일곱 개 만큼의 작은 덩어리는 적습니다. 거기에 놓인 대추씨 일곱 개 만큼의 작은 덩어리는 대지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견해를 성취하고 명료한 앎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적다. 최대 일곱 번을 이 세상에 돌아온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을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법에 대한 명료한 앎(법의 관통)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고, 법의 눈(법안)을 얻는 것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다.”          

 

dutiyapathavīsuttaṃ (SN 13.6-땅 경2)

79.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대지가 부서지고 소진될 것이고 대추씨 일곱 개 만큼의 작은 덩어리만 남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서지고 소진된 대지와 남아있는 대추씨 일곱 개 만큼의 작은 덩어리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부서지고 소진된 대지가 더 많고, 남아있는 대추 씨 일곱 개 만큼의 작은 덩어리는 적습니다. 부서지고 소진된 대지에 비하면 남아있는 대추씨 일곱개 만큼의 작은 덩어리는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견해를 성취하고 명료한 앎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적다. 최대 일곱 번을 이 세상에 돌아온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을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법에 대한 명료한 앎(법의 관통)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고, 법의 눈(법안)을 얻는 것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다.”          

      

samuddasuttaṃ (SN 13.7-바다 경)
80.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큰 바다에서 두세 방울의 물을 퍼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두세 방울의 퍼낸 물과 큰 바다에 있는 물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큰 바다에 있는 물이 더 많고 두세 방울의 퍼낸 물은 적습니다. 두세 방울의 퍼낸 물은 큰 바다의 물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견해를 성취하고 명료한 앎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적다. 최대 일곱 번을 이 세상에 돌아온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을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법에 대한 명료한 앎(법의 관통)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고, 법의 눈(법안)을 얻는 것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다.”          

 

dutiyasamuddasuttaṃ (SN 13.8-바다 경2)
81.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큰 바다가 고갈되고 소진될 것이고, 흘러나가서 두세 방울의 물만이 남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큰 바다에 있는 고갈되고 소진된 물과 남아있는 남아있는 두세 방울의 물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큰 바다에 있는 고갈되고 소진된 물이 더 많고, 남아있는 두세 방울의 물은 적습니다. 남아있는 두세 방울의 물은 고갈되고 없어진 큰 바다의 물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견해를 성취하고 명료한 앎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적다. 최대 일곱 번을 이 세상에 돌아온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을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법에 대한 명료한 앎(법의 관통)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고, 법의 눈(법안)을 얻는 것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다.”       

 

pabbatasuttaṃ (SN 13.9-산 경)
82.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산의 왕 히말라야에 겨자씨 일곱 개 만큼의 돌을 올려놓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겨자씨 일곱 개 만큼의 돌과 산의 왕 히말라야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산의 왕 히말라야가 더 많고 올려놓은 겨자씨 일곱 개 만큼의 돌은 적습니다. 겨자씨 일곱 개 만큼의 올려놓은 돌은 산의 왕 히말라야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견해를 성취하고 명료한 앎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적다. 최대 일곱 번을 이 세상에 돌아온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을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법에 대한 명료한 앎(법의 관통)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고, 법의 눈(법안)을 얻는 것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다.”     

 

dutiyapabbatasuttaṃ (SN 13.10-산 경2)
83.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산의 왕 히말라야가 소진되고 없어져서 겨자씨 일곱 개만큼의 돌만 남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소진되고 없어진 산의 왕 히말라야와 남아있는 겨자씨 일곱 개만큼의 돌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소진되고 없어진 산의 왕 히말라야가 더 많고 남아있는 겨자씨 일곱 개 만큼의 돌은 적습니다. 남아있는 겨자씨 일곱 개의 만큼의 돌은 소진되고 없어진 산의 왕 히말라야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견해를 성취하고 명료한 앎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적다. 최대 일곱 번을 이 세상에 돌아온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을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법에 대한 명료한 앎(법의 관통)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고, 법의 눈(법안)을 얻는 것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다.”           

 

tatiyapabbatasuttaṃ (SN 13.11-산 경3)
84.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산의 왕 수미산에 강낭콩 일곱 개 만큼의 돌조각을 올려놓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올려놓은 강낭콩 일곱 개 만큼의 돌조각과 산의 왕 수미산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산의 왕 수미산이 더 많고, 올려놓은 강낭콩 일곱 개 만큼의 돌조각은 적습니다. 올려놓은 강낭콩 일곱 개 만큼의 돌조각은 산의 왕 수미산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견해를 성취하고 명료한 앎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적다. 최대 일곱 번을 이 세상에 돌아온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을 이미 파괴되어 끝나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법에 대한 명료한 앎(법의 관통)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고, 법의 눈(법안)을 얻는 것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다.”           


명료한 앎 상윳따(S13)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