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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상윳따 - 제11장 부분(측면) 품(anta vagga. SN22:103-SN22:112)

실론섬 2014. 5. 12. 00:30

제11장 부분(측면) 품 
Anta-vagga (SN 22.103-112)

antasuttaṃ (SN 22.103-부분(측면) 경)

103.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부분(측면)이 있다. 어떤 넷인가?

몸이 있다는 견해[有身]에 대한 부분, 몸이 있다는 견해의 일어남에 대한 부분, 몸이 있다는 견해의 소멸에 대한 부분, 몸이 있다는 견해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부분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몸이 있다는 견해에 대한 부분인가?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五取蘊. 오취온]이라고 말해야 한다. 어떤 다섯인가?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몸이 있다는 견해에 대한 부분이라고 불린다.

 

물질적 요소 = 색, 감수작용 = 수, 지각작용 = 상, 형성작용 = 행, 식별작용 = 식

 

비구들이여, 무엇이 몸이 있다는 견해의 일어남에 대한 부분인가?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갈애로써, 기쁨과 탐냄과 더불어 여기저기서 즐거워하는 것으로,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몸이 있다는 견해의 일어남에 대한 부분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몸이 있다는 견해의 소멸에 대한 부분인가?

갈애로부터의 남김없는 탐냄의 떠남, 소멸, 포기, 버림, 해탈, 집착 없음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몸이 있다는 견해의 소멸에 대한 부분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몸이 있다는 견해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부분인가?

오직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다.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몸이 있다는 견해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부분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부분이 있다.”

 

dukkhasuttaṃ (SN 22.104-괴로움 경)
104.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괴로움과 괴로움의 일어남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하겠다. 그것을 들어라.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인가?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오취온)이라고 말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들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이다. 이것을, 비구들이여, 괴로움이라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인가?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갈애로써, 기쁨과 탐냄과 더불어 여기저기서 즐거워하는 것으로,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가 그것이다. 이것을,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이라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인가? 이러한 갈애로부터의 남김없는 탐냄의 떠남, 소멸, 포기, 버림, 해탈, 집착 없음이다. 이것을,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이라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인가?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다. 이것을,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한다.”

 

sakkāyasuttaṃ (SN 22.105-몸이 있다(유신.有身)는 견해 경)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몸이 있다는 견해와, 몸이 있다는 견해의 일어남과, 몸이 있다는 견해의 소멸과, 몸이 있다는 견해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하겠다. 그것을 들어라. 그러
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몸이 있다는 견해인가?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라고 말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들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이다. 이것을, 비구들이여, 몸이 있다는 견해라고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몸이 있다는 견해의 일어남인가?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갈애로써, 기쁨과 탐냄과 더불어 여기저기서 즐거워하는 것으로,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가 그것이다. 이것을, 비구들이여, 몸이 있다는 견해의 일어남이라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몸이 있다는 견해의 소멸인가? 이러한 갈애로부터의 남김없는 탐냄의 떠남, 소멸, 포기, 버림, 해탈, 집착 없음이다. 이것을, 비구들이여, 몸이 있다는 견해의 소멸이라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몸이 있다는 견해의 소멸에 이르는 길인가?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다. 이것을, 비구들이여, 몸이 있다는 견해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한다.”

 

pariññeyyasuttaṃ (SN 22.106-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 경)

106.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들과 완전한 지혜와 완전히 안 사람을 설하겠다. 그것을 들어라. 무엇이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물질적 요소는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이다. 감수작용은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이다. 지각작용은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이다. 형성작용들은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이다. 식별작용은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들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완전한 지혜인가? 탐욕이 부서지고, 성냄이 부서지고, 어리석음이 부서진 지혜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완전한 지혜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누가 완전히 안 사람인가?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가진 아라한 존자라고 말해져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완전히 안 사람이라고 불린다.”

 

samaṇasuttam (SN 22.107-사문 경1)
107.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이다.  


비구들이여, 어떠한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러한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비구들이여,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지 못하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지 못하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도 아니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만일, 비구들이여,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라도 이러한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면, 비구들이여,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도 사문답고 바라문 중에서도 바라문답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이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문다.”

 

dutiyasamanasuttam (SN 22.108-사문 경2)
108.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이다.

 
비구들이여, 어떠한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러한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비구들이여,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지 못하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지 못하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도 아니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만일, 비구들이여,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라도 이러한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면, 비구들이여,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도 사문답고 바라문 중에서도 바라문답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이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문다.”

sotāpannasuttaṃ (SN 22.109-예류자 경)
109.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이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릴 때,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예류자.預流者]여서 악처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arahantasuttaṃ (SN 22.110-아라한 경)
110.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이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 뒤에, 집착 없이 해탈할 때,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아라한으로서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했다고 한다.”

 

chandappahānasuttaṃ (SN 22.111-욕탐(欲貪)을 버림 경)
111.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물질적 요소에 대한 탐욕과 바람과 즐거워함과 갈애를 버려야 한다. 이렇게 그 물질적 요소는 버려지고 뿌리가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감수작용에 대한 ··· 지각작용에 대한 ··· 형성작용들에 대한 ··· 식별작용에 대한 탐욕과 바람과 즐거워함과 갈애를 버려야 한다. 이렇게 그 식별작용은 버려지고 뿌리가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dutiyachandappahānasuttaṃ (SN 22.112-욕탐을 버림 경2)
112.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물질적 요소에 대한 바람, 탐욕, 즐거워함, 갈애, 집착으로 이끄는 마음의 결정과 경향과 잠재성향들을 버려야 한다. 이렇게 그 물질적 요소는 버려지고 뿌리가 뽑히고 ··· 감수작용에 대한 ··· 지각작용에 대한 ··· 형성작용들에 대한 바람, 탐욕, 즐거워함, 갈애, 집착으로 이끄는 마음의 결정과 경향과 잠재성향들을 버려야 한다. 이렇게 그 형성작용들은
버려지고 뿌리가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상태가 될 것이다. 식별작용에 대한 바람, 탐욕, 즐거워함, 갈애, 집착으로 이끄는 마음의 결정과 경향과 잠재성향들을 버려야 한다. 이렇게 그 식별작용은 버려지고 뿌리가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상태가 될 것이다."

 

 

제11장 부분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