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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상윳따 - 제12장 설법자(법사) 품(Dhammakathika Vagga. SN22:113-SN22:125)

실론섬 2014. 5. 12. 03:01

제12장 설법자 품
Dhammakathika-vagga(SN 22.113-125)

avijjāsuttaṃ (SN 22.113-무명 경)
113.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무명, 무명’이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무명이고, 어떤 점에서 무명에 속한 것입니까?”
“비구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물질적 요소를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물질적 요소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물질적 요소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물질적 요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감수작용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 지각 작용을 ··· 형성 작용들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 식별작용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것이 무명이라고 불린다. 이런 점에서 무명에 속한 것이다.”

 

vijjāsuttaṃ (SN 22.114-명지(明) 경)
114.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명지, 명지’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명지이고, 어떤 점에서 명지에 속한 것입니까?

“비구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 요소를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물질적 요소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물질적 요소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물질적 요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감수작용을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 식별작용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비구여, 이것이 명지라고 불린다. 이런 점에서 명지에 속한 것이다.”

 

dhammakathikasuttaṃ (SN 22.115-법을 설하는 자(설법자) 경)
115.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는 자, 법을 설하는 자 ’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법을 설하는 자입니까(얼마만큼 법을 설하는 자입니까)?”라고.  

“만약 비구가 물질적 요소를 염오(싫어하여 떠남)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법을 설하는 비구’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 만약 비구가 물질적 요소를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는 비구’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

만약 비구가  물질적 요소를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로부터 집착 없이 해탈하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성취한 비구’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 만약 비구가 감수작용을 ··· 만약 비구가 지각작용을 ··· 만약 비구가 형성작용들을 ··· 만약 비구가 식별작용을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법을 설하는 비구’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 만약 비구가 식별작용을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는 비구’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 만약 비구가 식별작용을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로부터 집착 없이 해탈하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성취한 비구’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

 

dutiyadhammakathikasuttaṃ (SN 22.116-법을 설하는 자 경2)
116.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는 자, 법을 설하는 자’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법을 설하는 자입니까? 어떻게 해서 열반으로 이끄는 법을 닦는 비구입니까? 어떻게 해서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성취한 비구입니까?”라고.

 

“만약 비구가 물질적 요소를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절하다. 만약 비구가 물질적 요소를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열반으로 이끄는 법을 닦는 비구’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 만약 비구가 물질적 요소를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로부터 집착 없이 해탈하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성취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절하다. 만약 비구가 감수작용을 ··· 만약 비구가 지각작용을 ··· 만약 비구가 형성작용들을 ··· 만약 비구가 식별작용을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법을 설하는 비구’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 만약 비구가 식별작용을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는 비구’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 만약 비구가 식별작용을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로부터 집착 없이 해탈하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성취한 비구’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    

 

bandhanasuttaṃ (SN 22.117-속박 경)
117.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여기에 거룩한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범부가 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해, 물질적 요소(色)을 나(我)로 간주하고, 나를 물질적 요소를 지닌 자로 간주하고, 혹은 나에게 물질적 요소가 있다고 간주하고, 혹은 물질적 요소에 내가 있다고 간주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물질적 요소의 속박에 묶인 자, 안팎의 속박에 묶인 자, 이 언덕을 보지 못한 자, 저 언덕을 보지 못한 자라고 불린다. 묶인 자는 늙고, 묶인 자는 죽고, 묶인 자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간다. 감수작용(受)을 나(我)로 간주하고, ··· 혹은 감수작용에 내가 있다고 간주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감수작용의 속박에 묶인 자, 안팎의 속박에 묶인 자, 이 언덕을 보지 못한 자, 저 언덕을 보지 못한 자라고 불린다. 묶인 자는 늙고, 묶인 자는 죽고, 묶인 자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간다.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 혹은 식별작용에 내가 있다고 간주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식별작용의 속박에 묶인 자, 안팎의 속박에 묶인 자, 이 언덕을 보지 못한 자, 저 언덕을 보지 못한 자라고 불린다. 묶인 자는 늙고, 묶인 자는 죽고, 묶인 자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간다.

 

*'이 언덕을 보지 못함(atira-dassi)'에서 '언덕(tira)'이란 윤회를 말하고, '저 언덕(para)'은 열반을 말한다. '속박(baddha)'이란 오염원의 구속에 속박된 것이다.(SA.ii.333) 

 

비구들이여, 여기에 거룩한 이를 알아보고, 거룩한 가르침을 알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우는 성스러운 제자가 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보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서, 물질적 요소를 나로 간주하지 않고, 나를 물질적 요소를 지닌 자로 간주하지 않고, 혹은 나에게 물질적 요소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고, 혹은 물질적 요소에 내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 요소의 속박에 묶이지 않은 자, 안팎의 속박에 묶이지 않은 자, 이 언덕을 본 자, 저 언덕을 본 자라고 불린다. '그는 괴로움의 영역에서 벗어났다.'라고 나는 말한다. 감수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고 ··· 지각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고 ··· 형성작용들을 나로 간주하지 않고 ··· 식별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고, 나를 식별작용을 지닌 자로 간주하지 않고, 혹은 나에게 물질적 요소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고, 혹은 식별작용에 내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식별작용의 속박에 묶이지 않은 자, 안팎의 속박에 묶이지 않은 자, 이 언덕을 본 자, 저 언덕을 본 자라고 불린다. '그는 괴로움의 영역에서 벗어났다.'라고 나는 말한다."

 

paripucchitasuttam (SN 22.118-질문 경1)
118.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물질적 요소를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물질적 요소를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감수작용을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 식별작용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식별작용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감수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지각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작용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식별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는 자에게 탐욕이 떠나고, 탐욕이 떠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梵行)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가 되지 않는다(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다.”

 

dutiyaparipucchitasuttam (SN 22.119-질문 경2)
119.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물질적 요소를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간주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물질적 요소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감수작용을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 식별작용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간주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식별작용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감수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지각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작용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식별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는 자에게 탐욕이 떠나고, 탐욕이 떠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梵行)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가 되지 않는다(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다.”    

saṃyojaniyasuttaṃ (SN 22.120-족쇄에 묶이는 것 경)

120.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족쇄에 묶이는 법들과 족쇄를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족쇄에 묶이는 법들이고, 무엇이 족쇄인가? 비구들이여, 물질적 요소는 족쇄에 묶이는 법이고, 욕탐이 거기에서 족쇄이다. 감수작용은 ··· 지각작용은 ··· 형성작용들은 ··· 식별작용은 족쇄에 묶이는 법이고, 욕탐이 거기에서 족쇄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족쇄에 묶이는 법들이고, 이것이 족쇄라고 불린다.”

 

upādāniyasuttaṃ (SN 22.121-집착되는 것 경)
121.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집착되는 법들과 집착에 대해서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집착되는 법들이며, 무엇이 집착인가? 비구들이여, 물질적 요소는 집착되는 법이고, 욕탐이 거기에서 집착이다.
감수작용은 ··· 지각작용은 ··· 형성작용들은 ··· 식별작용은 집착되는 법이고, 욕탐이 거기에서 집착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집착되는 법들이고, 이것이 집착이라고 불린다.”

 

sīlavantasuttaṃ(SN 22.122-계(戒)를 중시하는 자 경)
122.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띠까 존자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마하꼿띠까 존자가 저녁 무렵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까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계를 중시하는(지키는) 비구는 어떤 법들을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까?”

“도반 꼿띠까여, 계를 중시하는 비구는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오취온)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앙이라고, 고뇌라고, 귀의처가 아닌 것으로, 견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어떤 다섯입니까?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들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입니다. 도반 꼿티따까, 계를 중시하는 비구는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앙이라고, 고뇌라고, 귀의처가 아닌 것으로, 견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도반 꼿띠까여,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앙이라고, 고뇌라고, 귀의처가 아닌 것으로, 견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이는 비구가 예류과를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습니다.”

 

*마하 꼿티까(따) 존자(ayasma Mahakotthita(ko))는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하나의 모음에서 "무애해(patisambhida)를 얻은 비구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그는 사왓티의 부유한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세 가지 베다에 통달했다고 하며 세존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곧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AA.i.286)   


“도반 사리뿟따여, 예류자인 비구는 어떤 법들을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까?”

“도반 꼿띠따여, 예류자인 비구도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앙이라고, 고뇌라고, 귀의처가 아닌 것으로, 견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도반이여,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앙이라고, 고뇌라고, 귀의처가 아닌 것으로, 견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이는 예류자인 비구가 일래과를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일래자인 비구는 어떤 법들을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까?”

“도반 꼿띠까여, 일래자인 비구도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도반이여,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이는 일래자인 비구가 불환과를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불환자인 비구는 어떤 법들을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까?”

“도반 꼿띠까여, 불환자인 비구도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도반이여,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이는불환자인 비구가 아라한을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아라한은 어떤 법들을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까?”

“도반 꼿띠까여, 아라한도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앙이라고, 고뇌라고, 귀의처가 아닌 것으로, 견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한 아라한이 다시 더 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닦고 많이 행한 이 법들은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고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으로 이끕니다.”

 

sutavantasuttaṃ (SN 22.123-잘 배운 자 경)
123.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띠까 존자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마하꼿띠까 존자가 저녁 무렵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까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잘 배운 비구는 어떤 법들을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까?”

“도반 꼿띠까여, 잘 배운 비구는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어떤 다섯입니까?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 식별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입니다. 도반 꼿티까여, 잘 배운 비구는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도반이여, 잘 배운 비구가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이는 비구가 예류과를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예류자인 비구는 어떤 법들을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까?”

“도반 꼿티까여, 예류자인 비구도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도반이여,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이는 예류자인 비구가 일래과를 ··· 불환과를 ··· 아라한과를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아라한은 어떤 법들을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까?”
“도반 꼿띠까여, 아라한도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앙이라고, 고뇌라고, 귀의처가 아닌 것으로, 견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한 아라한이 다시 더 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닦고 많이 행한 이 법들은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고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으로 이끕니다.”

 

*주석서에는 다섯 온을 무상한 것, 고통스러운 것, 병듦, 종기, 화살, 죄지음, 질병, 다른 것, 무너짐, 돌림병, 해로움, 두려움, 재앙, 동요하는 것, 훼손된 것, 견고하지 않은 것, 보호재 주지 않는 것, 편안하지 않는 곳, 귀의처가 아닌 것, 결함이 있는 것, 공허한 것, 공한 것, 무아인 것, 잘못됨, 달라지는 법, 부실한 것, 죄의 근본, 살인자, 있지 않은 것, 유류의 것, 유위의 건, 마라의 자양분, 태어남의 법, 늙음의 법, 병듦의 법, 죽음의 법, 슬픔의 법, 비탄의 법, 번민의 법, 더러움을 지닌 법으로 본다고 설명하고 있다.

 

kappasuttaṃ (SN 22.124-깝빠 경)  
124.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깝빠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깝빠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자에게 식별작용(의식)과 함께한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에서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없습니까?”

“깝빠여, 그것이 어떠한 물질적 요소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것이건 간에, 혹은 내부나 외부의 것이건 간에,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것이건 간에,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것이건 간에,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모든 물질적 요소를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 어떠한 감수작용이건 간에 ··· 어떠한 지각작용이건 간에 ··· 어떠한 형성작용이건 간에 ··· 어떠한 식별작용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것이건 간에, 혹은 내부나 외부의 것이건 간에,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것이건 간에,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것이건 간에,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모든 식별작용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깝빠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식별작용과 함께한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서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없다.”

 

dutiyakappasuttaṃ (SN 22.125-깝빠 경2)
125. 사왓티에서 설해짐. 한 곁에 앉은 깝빠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자에게 마음(의.意)은 식별작용(식.識)을 가진 이 몸과 밖의 표상들에 대해서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을 제거하고, 여러 가지 차별된 생각을 뛰어넘어, 원만하게(평화롭게) 잘 해탈합니까?”
“깝빠여, 그것이 어떠한 물질적 요소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것이건 간에, 혹은 내부나 외부의 것이건 간에,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것이건 간에,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것이건 간에,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모든 물질적 요소를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집착없이 해탈한다. ··· 어떠한 감수작용이건 간에 ··· 어떠한 지각작용이건 간에 ··· 어떠한 형성작용이건 간에 ··· 어떠한 식별작용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것이건 간에, 혹은 내부나 외부의 것이건 간에,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것이건 간에,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것이건 간에,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모든 물질적 요소를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집착없이 해탈한다. 깝빠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마음은 식별작용을 가진 이 몸과 밖의 표상들에 대하여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을 제거하고, 여러 가지 차별된 생각을 뛰어넘어, 원만하게 잘 해탈하게 된다.”

 

 

제12장 설법자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