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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상윳따 - 제15장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품(SN35:146-SN35:155. Navapurāṇa-vagga)

실론섬 2014. 6. 13. 13:48

제15장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품
Navapurāṇa-vagga (SN 35.146-155)

kammanirodhasuttaṃ (SN 35.146-업(業)의 소멸 경)

146. “비구들이여, 새로운 업과 이전의 업, 그리고 업의 소멸과 업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이전의 업인가? 비구들이여, 눈은 이전의 업[이라는 조건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고, 의도의 토대가 되는 것이고, 느낌의 토대가 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음은 오래된 업[이라는 조건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고, 의도의 토대가 되는 것이고, 느낌의 토대가 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전의 업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새로운 업인가? 비구들이여, 몸과 말과 마음에 의해 지금 짓는 업이 새로운 업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업의 소멸인가? 비구들이여, 몸의 업과 말의 업과 마음의 업의 소멸로부터 해탈에 닿는 것, 비구들이여, 이것이 업의 소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업의 소멸에 이르는 길인가? 비구들이여, 바로 이 여덟 가지 성스러운 바른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업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이전의 업을 설했고, 새로운 업을 설했고, 업의 소멸을 설했고,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설했다. 비구들이여, 제자들을 위해 베푸는 자인 스승이 행해야 하는 것을, 연민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들을 위해서 했다. 비구들이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 집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삼매를 닦아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뉘우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aniccanibbānasappāyasuttam (SN 35.147-열반에 도움 됨 경1)
147.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열반에 도움이 되는 닦음에 대해서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열반에 도움이 되는 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은 무상하다고 본다. 형색은 무상하다고 본다. 눈의 의식은 무상하다고 본다. 눈의 감각접촉은 무상하다고 본다.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상하다고 본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음은 무상하다고 본다. 법(마음현상)은 무상하다고 본다. 마음의 의식(마음에 의한 식별)은 무상하다고 본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무상하다고 본다. 마음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상하다고 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열반에 도움이 되는 닦음이다.”  

 

dukkhanibbānasappāyasuttam (SN 35.148-열반에 도움 됨 경2)
148. 비구들이여, 무엇이 열반에 도움이 되는 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은 괴로움이라고 본다. 형색은 괴로움이다고 본다. 눈의 의식은 괴로움이라고 본다. 눈의 감각접촉은 괴로움이라고 본다.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괴로움이라고 본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음은 ··· 법은 ··· 마음의 의식은 ··· 마음의 감각접촉은 ··· 마음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괴로움이라고 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열반에 도움이 되는 닦음이다.”  

anattanibbānasappāyasuttam (SN 35.149-열반에 도움 됨 경3)

149. "비구들이여, 무엇이 열반에 도움이 되는 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은 무아라고 본다. 형색은 무아라고 본다. 눈의 의식은 무아라고 본다. 눈의 감각접촉은 무아라고 본다.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아라고 본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음은 무아라고 본다. 법은 무아라고 본다. 마음의 의식은 무아라고 본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무아라고 본다. 마음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아라고 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열반에 도움이 되는 닦음이다.”

 

nibbanasappayapatipadasuttam (SN 35.150-열반에 도움이 되는 경4)
150. "비구들이여, 무엇이 열반에 도움이 되는 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간주하는 것이 옳은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색은 ··· 눈의 의식은 ··· 눈의 감각접촉은 ···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간주하는 것이 옳은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귀는 ··· 소리는 ··· 귀의 의식은 ··· 귀의 감각접촉은 ··· 느낌은 ···

코는 ··· 냄새는 ··· 코의 의식은 ··· 코의 감각접촉은 ··· 느낌은 ···
혀는 ··· 맛은 ··· 혀의 의식은 ··· 혀의 감각접촉은 ··· 느낌은 ···
몸은 ··· 감촉은 ··· 몸의 의식은 ··· 몸의 감각접촉은 ··· 느낌은 ···
마음은 ··· 법은 ··· 마음의 의식은 ··· 마음의 감각접촉은 ··· 마음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간주하는 것이 옳은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귀에 ··· 코에 ··· 혀에 ··· 몸에 ··· 마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법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음의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음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음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비구들이여, 염오하는 자는 탐욕이 떠나고, 탐욕의 떠남으로부터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이 상태 외에 다른 삶은 없다.’라고 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열반에 도움이 되는 닦음이다.”

 

antevasikasuttam (SN 35.151-제자 없음 경)

151. “비구들이여, 이 청정범행은 제자가 없이 닦아지고 스승이 없이 닦아진다. 비구들이여, 제자가 있고 스승이 있는 비구는 괴롭고 편안하게 머물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제자가 없고 스승이 없는 비구는 행복하고 편안하게 머문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제자가 있고 스승이 있는 자는 괴롭고 편안하게 머물지 못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눈으로 형색을 보면서 족쇄에 묶이기 마련인 기억과 사유의 악한 불선법들이 일어난다. 그것들이 안에 머문다. ‘악한 불선법들이 안에서 머문다.’라고 해서 제자가 있는 자라고 불린다. 그것들이 그에게 몰려든다.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이 그에게 몰려든다.'라고 해서 스승이 있는 자라고 불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귀로 ··· 코로 ··· 혀로 ··· 몸으로 ··· 마음으로 법을 인식하면서 족쇄에 묶이기 마련인 기억과 사유의 악한 불선법들이 일어난다. 그것들이 안에 머문다. ‘악한 불선법들이 안에서 머문다.’라고 해서 제자가 있는 자라고 불린다. 그것들이 그에게 몰려든다.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이 그에게 몰려든다.'라고 해서 스승이 있는 자라고 불린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제자가 있고 스승이 있는 비구는 괴롭고 편안하게 머물지 못한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제자가 없고 스승이 없는 자는 행복하고 편안하게 머무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눈으로 형색을 보면서 족쇄에 묶이기 마련인 기억과 사유의 악한 불선법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들이 안에 머물지 않는다. ‘악한 불선법들이 안에 머물지 않는다.’라고 해서 제자가 없는 자라고 불린다. 그것들이 그에게 몰려들지 않는다. ‘악한 불선법들이 그에게 몰려들지 않는다.’라고 해서 스승이 없는 자라고 불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귀로 ··· 코로 ······ 몸으로 ··· 마음으로 법을 인식하면서 족쇄에 묶이기 마련인 기억과 사유의 악한 불선법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들이 안에 머물지 않는다. ‘악한 불선법들이 안에 머물지 않는다.’라고 해서 제자가 없는 자라고 불린다. 그것들이 그에게 몰려들지 않는다. ‘악한 불선법들이 그에게 몰려들지 않는다.’라고 해서 스승이 없는 자라고 불린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제자가 없거나 스승이 없는 비구는 행복하고 편안하게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청정범행은 제자가 없이 스승이 없이 닦아진다. 비구들이여, 제자가 있고 스승이 있는 비구는 괴롭고 편안하게 머물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제자가 없고 스승이 없는 비구는 행복하고 편안하게 머문다.”

 

kimatthiyabrahmacariyasuttaṃ (SN 35.152-무엇을 위한 범행 경)

152. “비구들이여, 만약에 외도 유행승들이 그대들에게 ‘도반들이여, 무슨 목적을 위해서 사문 고따마 아래서 청정범행의 삶을 삽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질문을 받은 그대들은 그 외도 유행승들에게 ‘도반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목적으로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의 삶을 삽니다.’라고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만약에 외도 유행승들이 그대들에게 ‘도반들이여, 괴로움이 무엇이기에 그것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위해 사문 고따마 아래서 청정범행의 삶을 삽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질문을 받은 그대들은 그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야 한다.

 

‘도반들이여, 눈은 괴로움입니다. 그것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위해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의 삶을 삽니다. 형색은 괴로움입니다. 그것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위해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의 삶을 삽니다. 눈의 의식은 괴로움입니다. 그것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위해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의 삶을 삽니다. 눈의 감각접촉은 괴로움입니다. 그것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위해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의 삶을 삽니다.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괴로움입니다. 그것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위해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의 삶을 삽니다. ··· 귀는 ··· 는 ···  혀는···  몸은 ··· 마음은 괴로움입니다. 그것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위해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습니다.  ··· 법은 괴로움입니다. 그것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위해 세존 아래서 청정점행을 닦습니다. ··· 마음의 의식은 괴로움입니다. 그것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위해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의 삶을 삽니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괴로움입니다. 그것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위해서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의 삶을 삽니다. 마음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괴로움입니다. 그것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위해서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의 삶을 삽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런 질문을 받은 그대들은 그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야 한다.”

 

atthinukhopariyāyasuttaṃ (SN 35.153-방법이 있는가 경)

153. “비구들이여, 믿음과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좋아함과 관계없이, 구전과 관계없이, 이론적인 생각과 관계없이,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관계없이 비구가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이 상태 외에 다른 삶은 없다.’라고 구경의 앎을 선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믿음과 관계없이, 좋아함과 관계없이, 구전과 관계없이, 이론적인 생각과 관계없이,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관계없이 비구가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이 상태 외에 다른 삶은 없다.’라고 구경의 앎을 선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믿음과 관계없이, 좋아함과 관계없이, 구전과 관계없이, 이론적인 생각과 관계없이,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관계없이 비구가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이 상태 외에 다른 삶은 없다.’라고 구경의 앎을 선언할 수 있는 방법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본 뒤 안으로 존재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나의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존재하지 않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를 ‘나의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다.’라고 분명히 안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눈으로 형색을 본 뒤에 안으로 존재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나의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존재하지 않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나의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다.’라고 분명히 아는 나의 법들이, 비구들이여, 믿음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개인적으로 좋아함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구전에 의해서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이론적인 생각에 의해서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사색에 의해서 알려져야 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나에게 법들은 지혜로써 본 뒤에 알아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이 믿음과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좋아함과 관계없이, 구전과 관계없이, 이론적인 생각과 관계없이,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관계없이, 비구가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이 상태 외에 다른 삶은 없다.’라고 구경의 앎을 선언할 수 있는 방법이다. ···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혀로 맛을 본 뒤에 안으로 존재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나의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존재하지 않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나의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다.’라고 분명히 안다비구들이여, 비구가 혀로 맛을 본 뒤에 안으로 존재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나의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존재하지 않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나의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다.’라고 분명히 아는 나의 법들이, 비구들이여, 믿음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개인적으로 좋아함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구전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이론적인 생각에 의해서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사색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나에게 법들은 지혜로써 본 뒤에 알려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도 믿음과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좋아함과 관계없이, 구전과 관계없이, 이론적인 생각과 관계없이,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관계없이, 비구가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이 상태 외에 다른 삶은 없다.’라고 안다고 구경의 앎을 선언할 수 있는 방법이다. ···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으로 법을 인식한 뒤에 안으로 존재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나의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존재하지 않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나의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다.’라고 분명히 안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마음으로 법을 인식한 뒤에 안으로 존재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나의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존재하지 않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나의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다.’라고 분명히 아는 나의 법들이, 비구들이여, 믿음에 의해서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개인적으로 좋아함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구전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이론적인 생각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사색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나에게 법들은 지혜로써 본 뒤에 알려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도 믿음과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좋아함과 관계없이, 구전과 관계없이, 이론적인 생각과 관계없이,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관계없이, 비구가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이 상태 외에 다른 삶은 없다.’라고 안다고 구경의 앎을 선언할 수 있는 방법이다.

 

indriyasampannasuttam (SN 35.154-감각기능을 갖춤 경)

154.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감각기능의 구족, 감각기능의 구족’이라고들 합니다. 어떤 것이 감각기능의 족입니까?”

“비구여, 만약 눈의 감각기능에 대해서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여 머물면 눈의 감각기능에 대해서 염오한다. 귀의 ··· 코의 ··· 혀의 ··· 몸의 ··· 마음의 감각기능에 대해서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여 머물면 마음의 감각기능에 대해서 염오한다.

비구들이여, 염오하는 자는 탐욕이 떠나고, 탐욕의 떠남으로부터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이 상태 외에 다른 삶은 없다.’라고 안다.

비구여, 이것이 감각기능의 구족이다.”

 

dhammakathikapucchasuttaṃ (SN 35.155-법을 설하는 자(설법자) 질문 경)
155.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는 자(설법자), 법을 설하는 자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법을 설하는 자입니까?”라고.

 

“비구여, 눈의 염오, 탐욕의 떠남, 소멸을 위하여 법을 설하면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약 비구가 눈의 염오, 탐욕의 떠남, 소멸을 위하여 닦으면 그를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길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약 비구가 눈의 염오, 탐욕의 떠남, 소멸으로부터 집착 없이 해탈하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성취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 만약 비구가 마음의 염오, 탐욕의 떠남, 소멸을 위하여 법을 설하면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약 비구가 마음의 염오, 탐욕의 떠남, 소멸을 위하여 닦으면 그를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길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약 비구가 마음의 염오, 탐욕의 떠남, 소멸으로부터 집착 없이 해탈하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성취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제15장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품이 끝났다. 

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