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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상윳따 - 제16장 소망의 부서짐 품(SN35:156-SN35:167. Nandikkhaya-vagga)

실론섬 2014. 6. 19. 21:18

제16장 소망의 부서짐 품
Nandikkhaya-vagga (SN 35.156-167)

 

ajjhattanandikkhayasuttaṃ (SN 35.156-안의 소망의 부서짐 경)

156.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한 눈을 무상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한다. 소망(즐김)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욕의 부서짐이 있고,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한 귀를 ··· 무상한 코를 ··· 무상한 혀를 ··· 무상한 몸을 ··· 무상한 마음을 무상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한다. 소망(즐김)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욕의 부서짐이 있고,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bāhiranandikkhayasuttaṃ (SN 35.157-밖의 소망의 부서짐 경)
157.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한 형색을 무상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한다. 소망(즐김)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욕의 부서짐이 있고,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한 소리를 ··· 무상한 냄새를 ··· 무상한 맛을 ··· 무상한 감촉을 ··· 무상한 법(마음현상)을 무상하다고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한다. 소망(즐김)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욕의 부서짐이 있고,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ajjhattāniccanandikkhayasuttaṃ (SN 35.158-안의 무상과 소망의 부서짐 경)
158. “비구들이여, 눈을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이고, 눈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야 한다. 눈을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이고, 눈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한다(싫어하여 떠난다). 소망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욕의 부서짐이 있고,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귀를 ··· 코를 ··· 혀를 ··· 몸을 ··· 마음을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이고, 눈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야 한다. 눈을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이고, 눈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소망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욕의 부서짐이 있고,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bāhirāniccanandikkhayasuttaṃ (SN 35.159-밖의 무상과 소망의 부서짐 경)
159. “비구들이여, 형색들을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이고, 형색들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야 한다. 비구들이여, 형색들을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이고, 형색들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자는 형색들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소망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욕의 부서짐이 있고,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소리들을 ··· 냄새들을 ··· 맛들을 ··· 감촉들을 ··· 법들을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이고, 형색들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야 한다. 비구들이여, 형색들을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이고, 형색들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자는 형색들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소망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욕의 부서짐이 있고,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욕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jivakambavanasamadhisuttam (SN 35.160-지와까의 망고 숲의 삼매 경)

160.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지와까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와까 혹은 지와까 꼬마라밧짜(Jivaka Komarabhacca)는 세존의 주치의로 잘 알려진 분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라자가하의 기녀였던 살라와띠(Salavati)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태어나자마자 광주리에 담겨서 쓰레기 더미 위에 버려졌다고 한다. 빔비사라(Bimbisara) 왕의 아들이며 아자따삿뚜와는 이복형제인 아바야(Abhaya) 왕자가 이를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가 묻자, '그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Jivata)'라고 대답해서 그의 이름이 지와까가 되었으며, '왕자(kumara)'에 의해서 양육되었다(posapita).'고 해서 꼬마라밧짜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AA.i.399)   

그는 자라서그의 출신에 대해서 알게 되자 아바야 왕자 몰래 딱까실라(Takkasila)로 가서 칠 년 동안 의술을 배웠다고 한다. 공부를 마치고 라자가하로 돌아와서는 빔비사라 왕의 고질병을 치료하여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왕과 궁중의 주치의로 임명이 되었고 세존과 승가의 주치의 역활도 하였다. 아버지 빔비사라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아자따삿뚜도 지와까를 주치의로 삼아서 가까이에 두었다.(AA.i.399) 그래서 「디가 니까야」 「사문과 경」(D2)에서도 아버지를 살해한 괴로움에 시달리던 아자따삿뚜 왕은 지와까를 통해서 세존을 친견하고 참회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지와까가 세존을 치료한 일화는 율장과 주석서 등에 나타나고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 「하나의 모음」(A1.14)에서 세존께서는 지와까를 "사람들을 신뢰하는 자(puggala-ppasann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셨다. 지와까는 예류과를 증득한 뒤 항상 하루에 두 번씩 세존께 인사드리러 갔으며 세존께서 머무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왕사성의 죽림정사.Veluvana)가 너무 멀어서 그가 소유하고 있던 망고 숲을 승가에 기증하여 세존과 승가가 머물게 하였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여기에 나타나는 지와까의 망고 숲이다. 「디가 니까야」 「사문과 경」(D2)도 이곳에서 설해졌다.   

 

“비구들이여, 삼매를 닦아라. 비구들이여, 삼매를 닦는 비구에게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무엇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가? '눈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형색들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눈의 의식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눈의 감각접촉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눈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귀는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 '코는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 '혀는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 '몸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 '마음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법(마음현상)들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마음의 의식(마음에 의한 식별)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마음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삼매를 닦아라. 비구들이여, 삼매를 닦는 비구에게 이처럼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jīvakambavanapaṭisallānasuttaṃ (SN 35.161-지와까의 망고 숲의 홀로 머묾 경)

161.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지와까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홀로 머물며 닦고 익히며 많이 행함에 열중하여야 한다. 비구들이여, 홀로 머물며 닦고 익히며 많이 행함에 열중하는 비구에게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무엇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가? 비구들이여, '눈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형색들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눈의 의식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눈의 감각접촉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눈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귀는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 '코는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 '혀는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 '몸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 '마음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법(마음현상)들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마음의 의식(마음에 의한 식별)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마음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 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홀로 머물며 닦고 익히며 많이 행함에 열중하여야 한다. 

비구들이여, 홀로 머물며 닦고 익히며 많이 행함에 열중하는 비구에게는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koṭṭhikāniccasuttaṃ (SN 35.162-꼿티까 무상(無常) 경)

162. 그 무렵 마하꼿티까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마하꼿티까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저에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은 뒤 홀로 외딴 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물 것입니다.”라고.

 

“꼿티까여, 무상한 것,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그러면, 꼿티까여, 무엇이 무상한가? 

꼿티까여, 눈은 무상하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형색들은 무상하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눈의 의식은 무상하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눈의 감각접촉은 무상하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눈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 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무상하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 귀은 무상하다. ··· 코는 무상하다. ··· 혀는 무상하다. ··· 몸은 무상하다. ··· 마음은 무상하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법(마음현상)들은 무상하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마음의 의식(마음에 의한 식별)은 무상하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무상하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마음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무상하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koṭṭhikadukkhasuttaṃ (SN 35.163-꼿티까 괴로움(苦) 경)

163. 그 무렵 마하꼿티까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마하꼿티까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저에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은 뒤 홀로 외딴 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물 것입니다.”라고.  


“꼿티까여, 괴로움인 것,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그러면, 꼿티까여, 무엇이 괴로움인가? 
꼿티까여, 눈은 괴로움이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형색들은 괴로움이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눈의 의식은 괴로움이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눈의 감각접촉은 괴로움이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눈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괴로움이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 마음은 괴로움이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법들은 괴로움이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마음의 의식은 괴로움이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괴로움이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마음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괴로움이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koṭṭhikānattasuttaṃ (SN 35.164-꼿티까 무아(無我) 경)
164. 그 무렵 마하꼿티까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마하꼿티까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저에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은 뒤 홀로 외딴 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물 것입니다.”라고.    


“꼿티따여, 무아인 것,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그러면, 꼿티까여, 무엇이 무아인가? 
꼿티따까, 눈은 무아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형색들은 무아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눈의 의식은 무아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눈의 감각접촉은 무아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눈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아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혀는 무아이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 마음은 무아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법들은 무아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마음의 의식은 무아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무아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마음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아다. 거기에 대한 그대의 탐욕은 버려져야 한다."  

 

micchādiṭṭhipahānasuttaṃ (SN 35.165-삿된 견해를 버림 경)

165.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자에게 삿된 견해가 버려집니까?”라고.

 

“비구여, 눈을 무상으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삿된 견해가 버려진다. 형색들을 무상으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삿된 견해가 버려진다. 눈의 의식을 무상으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삿된 견해가 버려진다. 눈의 감각접촉을 무상으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삿된 견해가 버려진다. ··· 마음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무상으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삿된 견해가 버려진다. 비구여, 이렇게 알고 보는 자에게 삿된 견해가 버려진다.”

 

sakkāyadiṭṭhipahānasuttaṃ (SN 35.166-유신견을 버림 경)
166.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자에게 유신견(有身見)이 버려집니까?”라고.

 

“비구여, 눈을 괴로움으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유신견이 버려진다형색들을 괴로움으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유신견이 버려진다. 눈의 의식을 괴로움으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유신견이 버려진다. 눈의 감각접촉을 괴로움으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유신견이 버려진다. ··· 마음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괴로움으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유신견이 버려진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알고 보는 자에게 유신견이 버려진다.

 

attānudiṭṭhipahānasuttaṃ (SN 35.167-자아(我)가 있다는 견해를 버림 경)
167.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자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버려집니까?”

 

“비구여, 눈을 무아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버려진다. 형색들을 무아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버려진다. 눈의 의식을 무아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버려진다. 눈의 감각접촉을 무아라고 알고 보는 자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버려진다. 눈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무아로부터 알고 보면 자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버려진다. ··· 혀를 무아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버려진다 ··· 마음을 무아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버려진다. 법들을 무아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버려진다. 마음의 의식을 무아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버려진다. 마음의 감각접촉을 무아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버려진다. 마음의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무아로부터 알고 보는 자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버려진다."  

 

 

제16장 즐거움의 소멸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