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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상윳따 - 제3장 우다이 품(SN46:21-SN46:30. Udāyi-vagga)

실론섬 2014. 7. 7. 21:00

제3장 우다이 품
Udāyi-vagga (SN 46.21-30)

 

bodhāyasuttaṃ (SN 46.21-깨달음 경)

202.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깨달음의 요소들, 깨달음의 요소들’이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점에서 '깨달음의 요소들'이라고 불립니까?”
“비구여, ‘깨달음으로 이끈다.’라고 해서 깨달음의 요소들이라고 불린다.
비구여, 여기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 희열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 여기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비구여, ‘깨달음으로 이끈다.’라고 해서 깨달음의 요소들이라고 불린다.”

 

bojjhaṅgadesanāsuttaṃ (SN 46.22-각지를 설함 경)
203.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설하겠다. 그것을 들어라.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인가?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법의 간택으로(법에 대한 선별)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편안함(고요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희열(기쁨)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이다.”

 

ṭhāniyasuttaṃ (SN 46.23-토대 경)
204. “비구들이여, 욕탐의 토대가 되는 법들에게 마음을 기울임을 많이 행할 때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일어나고,
일어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는 증장하고 충만으로 이끌린다. 비구들이여, 악의의 토대가 되는 법들에게 마음을 기울임을 많이 행할 때 일어나지 않은 악의가 일어나고, 일어난 악의는 증장하고 충만으로 이끌린다. 비구들이여, 해태와 혼침(졸음)의 토대가 되는 법들에게 마음을 기울임을 많이 행할 때 일어나지 않은 혼침과 졸음이 일어나고, 일어난 해태와 혼침은 증장하고 충만으로 이끌린다. 비구들이여, 들뜸과 후회의 토대가 되는 법들에게 마음을  기울임을 많이 행할 때 일어나지 않은 들뜸과 후회가 일어나고, 일어난 들뜸과 후회는 증장하고 충만으로 이끌린다. 비구들이여, 의심의 토대가 되는 법들에게 마음을 기울임을 많이 행할 때 일어나지 않은 의심이 일어나고, 일어난 의심은 증장하고 충만으로 이끌린다.

 

비구들이여,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의 토대가 되는 법들에게 마음을 기울임을 많이 행할 때 일어나지 않은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고, 일어난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는 닦아져 완성으로 나아간다. ··· 비구들이여,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의 토대가 되는 법들에게 마음을 기울임을 많이 행할 때 일어나지 않은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고, 일어난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는 닦아져 완성으로 나아간다.”

 

ayonisomanasikārasuttaṃ (SN 46.24-이치에 맞지 않게 주의를 기울임 경)

205. “비구들이여, 이치에 맞지 않게 마음을 기울이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일어나고, 일어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은 증장하고 충만으로 이끌린다. 일어나지 않은 악의가 일어나고, 일어난 악의는 증장하고 충만으로 이끌린다. 일어나지 않은 해태와 혼침이 일어나고, 일어난 해태와 혼침은 증장하고 충만으로 이끌린다. 일어나지 않은 들뜸과 후회가 일어나고, 일어난 들뜸과 후회는 증장하고 충만으로 이끌린다. 일어나지 않은 의심이 일어나고, 일어난 의심은 증장하고 충만으로 이끌린다. 일어나지 않은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는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는 소멸한다. ··· 일어나지 않은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는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는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이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은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은 버려진다. 일어나지 않은 억의는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악의는 버려진다. 일어나지 않은 해태와 혼침은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해태와 혼침은 버려진다. 일어나지 않은 들뜸과 후회는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들뜸과 후회는 버려진다. 일어나지 않은 의심은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의심은 버려진다.

 

일어나지 않은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는 일어나고, 일어난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는 닦아져 완성으로 나아간다. ··· 일어나지 않은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는 일어나고, 일어난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는 닦아져 완성으로 나아간다.”

 

aparihāniyasuttaṃ (SN 46.25-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 경)
206.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버리지 않아야 하는 일곱 가지 법들을 설하겠다. 그것을 들으라.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버리지 않아야 하는 일곱 가지 법들인가? 그것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이다. 어떤 일곱 가지인가?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법에 대한 선별(법의 간택)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희열(기쁨)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버리지 않아야 하는 일곱 가지 법들이다.”

 

taṇhakkhayasuttaṃ (SN 46.26-갈애(愛)의 멸진 경)
207. “비구들이여, 갈애의 멸진으로 이끄는 길과 닦음을 닦아야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갈애의 멸진으로 이끄는 길이고 무엇이 닦음인가? 그것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이다. 어떤 일곱 가지인가?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법의 간택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희열(기쁨)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우다이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행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가 갈애의 멸진으로 이끕니까?”

“여기, 우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크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크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 그에게 갈애가 버려진다. 갈애가 버려질 때 업이 버려지고, 업이 버려질 때 괴로움이 버려진다. ···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크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크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 그에게 갈애가 버려진다. 갈애가 버려질 때 업이 버려지고, 업이 버려질 때 괴로움이 버려진다. 이렇게, 우다이여, 갈애의 부서짐에서 업의 부서짐이 있고, 업의 부서짐에서 괴로움의 부서짐이 있다.”

 

taṇhānirodhasuttaṃ (SN 46.27-갈애의 소멸 경)
208. “비구들이여, 갈애의 소멸로 이끄는 길과 닦음을 닦아야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갈애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고 무엇이 닦음인가? 그것은 바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이다. 어떤 일곱 가지인가?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법의 간택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희열(기쁨)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행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가 갈애의 소멸로 이끄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행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가 갈애의 소멸로 이끈다.”

 

nibbedhabhāgiyasuttaṃ (SN 46.28-꿰뚫음과 연결됨 경)

209.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꿰뚫음과 연결된 길을 설하겠다. 그것을 들어라.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꿰뚫음과 연결된 길인가? 그것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이다. 어떤 일곱인가?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법에 대한 선별(법의 간택)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희열(기쁨)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우다이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행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가 꿰뚫음으로 이끕니까?”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크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그는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은 마음으로 이전에 꿰뚫지 못하고 이전에 부수지 못한 탐욕의 무더기를 꿰뚫고 부순다. 이전에 꿰뚫지 못하고 이전에 부수지 못한 성냄의 무더기를 꿰뚫고 부순다. 이전에 꿰뚫지 못하고 이전에 부수지 못한 어리석음의 무더기를 꿰뚫고 부순다. ···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크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그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은 마음으로 이전에 꿰뚫지 못하고 이전에 부수지 못한 탐욕의  무더기를 꿰뚫고 부순다. 이전에 꿰뚫지 못하고 이전에 부수지 못한 성냄의 무더기를 꿰뚫고 부순다. 이전에 꿰뚫지 못하고 이전에 부수지 못한 어리석음의 무더기를 꿰뚫고 부순다. 우다이여,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행한 일곱 가지 깨달음이 요소가 꿰뚫음으로 이끈다.”

 

ekadhammasuttaṃ (SN 46.29-하나의 법 경)
210. “비구들이여, 이렇게 닦고 많이 행할 때 족쇄가 되는 법들의 버림으로 이끄는 다른 어떤 하나의 법도 나는 아직 보지 못하니, 비구들이여, 그것은 바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이다. 어떤 일곱 가지인가?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희열(기쁨)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행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가 족쇄가 되는 법들의 버림으로 이끄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 여기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행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가 족쇄가 되는 법들의 버림으로 이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족쇄가 되는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눈은 족쇄가 되는 법이다. 여기서 족쇄에 의한 속박과 묶임들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귀는 족쇄가 되는 법이다. 여기서 족쇄에 의한 속박과 묶임들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코는 족쇄가 되는 법이다. 여기서 족쇄에 의한 속박과 묶임들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혀는 족쇄가 되는 법이다. 여기서 족쇄에 의한 속박과 묶임들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몸은 족쇄가 되는 법이다. 여기서 족쇄에 의한 속박과 묶임들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마음은 족쇄가 되는 법이다. 여기서 족쇄에 의한 속박과 묶임들이 생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족쇄가 되는 법들이라고 불린다.”

 

udāyisuttaṃ (SN 46.30-우다이 경)

211. 한 때에 세존께서는 숨바에서 세따까라는 숨바들의 성읍에 머무셨다. 그 무렵 우다이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후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우다이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세존께 대한 공경과 존중과 잘못에 대한 두려움과 남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은 제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전에 재가자였을 때 저는 법에도 많은 관심이 없었고 승가에도 많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저는 세존께 대한 공경과 존중과 잘못에 대한 두려움과 남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을 보면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였습니다. 그런 제게 세존께서는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물질적 요소요, 이것이 물질적 요소의 일어남이요, 이것이 물질적 요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감수작용(느낌)이요, 이것이 감수작용의 일어남이요, 이것이 감수작용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지각작용(인식)이요, 이것이 지각작용의 일어남이요, 이것이 지각작용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형성작용이요, 이것이 형성작용의 일어남이요, 이것이 형성작용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의식작용(식별)이요, 이것이 의식작용의 일어남이요, 이것이 의식작용의 사라짐이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런 저는 한적하고 비어 있는 곳에 머물면서 이러한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五取蘊. 오취온]이 일어나고 소멸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닦고 많이 행한 저는 법을 잘 알았고, 저는 길를 증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대로 머무르면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게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닦고 많이 행한 저는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증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대로 머무르면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게 될 것입니다. ··· 세존이시여, 닦고 많이 행한 저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증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대로 머무르면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은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게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닦고 많이 행한 저는 이 길을 증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대로 머무르면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은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라고 알게 될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우다이여. 우다이여, 닦고 많이 행한 그대는 그 길을 증득하였다. 그래서 그대가 그대로 머무르면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은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게 될 것이다.”

 

 

제3장 우다이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