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상윳따 니까야

제47상윳따 - 제5장 불사(不死) 품(SN47:41-SN47:50. Amata-vagga)

실론섬 2014. 7. 27. 13:33

제5장 불사 품 
Amata-vagga (SN 47.41-50)

amatasuttaṃ(SN 47.41-불사(不死) 경)
407. 사왓티에서 설해짐. "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잘 확립된 마음을 가진 자로 머물러야 한다. 그대들은 불사(不死)를 잃지 말라(불사가 그대들을 놓쳐버리지 않게 하라).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해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잘 확립된 마음을 가진 자로 머물러야 한다. 그대들을 불사를 잃지 말라.”

 

samudayasuttaṃ (SN 47.42-자라남 경)
408.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하겠다. 그것을 들어라.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몸의 일어남인가?
자양분의 일어날 때 몸이 일어나고, 자양분이 소멸할 때 몸이 소멸한다. 감각접촉의 일어날 때 느낌들이 일어나고, 감각접촉이 소멸할 때 느낌들이 소멸한다. 정신.물질(명색)이 일어날 때 마음이 일어나고, 정신.물질이 소멸할 때 마음이 소멸한다. 마음의 기울임이 일어날 때 법들이 일어나고, 마음의 기울임이 소멸할 때 법들이 소멸한다.”

 

*정신.물질은 마음(Citta) 혹은 의식(viññāṇa)의 조건이 된다. 마음은 항상 육체적인 토대를 의지하여 일어나며,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감각접촉[觸], 느낌[受], 인식[想], 의도, 마음의 기울임[作意, 주의] 등와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초기불전의 입장이 아비담마에 전승되어서 심(心)과 심소(心所)의 관계는 "함께 일어나고 함께 멸하며 동일한 대상을 가지고 동일한 토대를 가지는 것”으로 정의된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2장 §1을 참조할 것)

*'마음의 기울임의 일어남' – 여기서 지혜롭게 마음의 기울임[如理作意]이 일어나는 것은 깨달음의 구성요소(칠각지)의 법들이 일어나는 것이고 지혜롭지 못하게 마음의 기울임이 일어나는 것은 장애[五蓋]의 법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뿌리 경에서도 ”모든 법은 마음의 기울임을 근원으로 하며, 모든 법은 감각접촉 때문에 일어나며, 모든 법은 느낌에서 마주치며" 등으로 설하고 있다.

 

maggasuttaṃ (SN 47.43-도(道) 경)

409. 사왓티에서 설해짐.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비구들이여, 한때 나는 처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나서 우루웰라의 네란자라 강둑에 있는 아자빨라니그로다(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머물렀다. 그때 한적한 곳에 홀로 머무는 나에게 이런 마음의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길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비탄을 건너가게 하고, 고통과 고뇌를 사라지게 하고, 진리의 길에 이르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길이다. 그것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이다(사념처.四念處).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는 몸에 대해서 몸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이 길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비탄을 건너가게 하고, 고통과 고뇌를 사라지게 하고, 진리의 길에 이르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이 나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린 후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재빠르게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서 내 앞에 나타났다.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여 세존께 경의를 표한 뒤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선서시여!  이 길은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수.愁)과 비탄(비.悲)을 건너기 위한, 고통(고.苦)과 고뇌(우.憂)를 사라지게 하고, 올바른 길에 이르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길 즉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입니다. 어떤 네 가지입니까?

​비구는 몸에 대해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러야 합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러야 합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러야 합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러야 합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이 길은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수.愁)과 비탄(비.悲)을 건너기 위한, 고통(고.苦)과 고뇌(우.憂)를 사라지게 하고, 올바른 길에 이르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길 즉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입니다."라고.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씀드렸다. 이렇게 말씀드린 뒤에 다시 이렇게 말씀드렸다.

“태어남의 부서짐의 끝을 보는 사람, 이익과 연민을 위하는 유일한 길을 분명히 압니다.
그들은 이 길을 따라 예전에도 폭류를 건넜고, 이 길을 따라 건널 것이고, 건넙니다.”

 

satisuttaṃ (SN 47.44-사띠 경)

410.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챙김을 가진 자로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마음챙김을 가진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들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챙김을 가진 자이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챙김을 가진 자로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kusalarāsisuttaṃ (SN 47.45-유익함의 덩어리 경)
411. “
비구들이여,  '유익함의 덩어리'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사람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말해야 한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은 전적으로 유익함의 덩어리이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유익함의 덩어리'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사람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말해야 한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은 전적으로 유익함의 덩어리이다.

 

pātimokkhasaṃvarasuttaṃ (SN 47.46-계목의 단속 경)
412.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저에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은 뒤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합니다.”

“그렇다면 비구여, 그대는 유익한 법들[善法]의 시작점(출발점)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유익한 법들의 시작점인가? 여기 비구여, 그대는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아야 한다. 비구여, 그대가 계목을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물고,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을 때, 비구여, 그대는 계를 의지하고 계에 굳게 섰기 때문에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을 수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여, 그대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여, 그대가 계를 의지하고 계에 굳게 서서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을 때, 비구여, 그대는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아니라 오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그 비구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존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 그리고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문 그 비구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았다. 그 비구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duccaritasuttaṃ (SN 47.47-나쁜 행위 경)
413.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저에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은 뒤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합니다.”  

“비구여, 그렇다면 그대는 유익한 법들[선법.善法]의 시작점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유익한 법들의 시작점인가? 여기, 비구여, 그대는 몸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몸의 좋은 행위를 닦아야 한다. 말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말의 좋은 행위를 닦아야 한다. 마음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닦아야 한다. 비구여, 그대가 몸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몸의 좋은 행위를 닦고, 말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말의 좋은 행위를 닦고, 마음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닦을 때, 그대는 계를 의지하고 계에 굳게 섰기 때문에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을 수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여, 그대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여, 그대가 계를 의지하고 계에 굳게 서서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을 때, 비구여, 그대는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아니라 오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그 비구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존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 그리고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문 그 비구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았다. 그 비구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mittasuttaṃ (SN 47.48-친구 경)
414.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연민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나 동료나 친지나 혈육들을,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의 닦음을 위해 격려하고 인도하고 확립시켜야 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연민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나 동료나 친지나 혈육들을,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의 닦음을 위해 격려하고 인도하고 확립시켜야 한다.”  

 

vedanāsuttaṃ (SN 47.49-느낌 경)
415.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느낌이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느낌을 철저히 알기 위해서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아야 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느낌을 철저히 알기 위해서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아야 한다.”

 

āsavasuttaṃ (SN 47.50-번뇌 경)
416.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번뇌가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감각적 쾌락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번뇌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번뇌를 철저히 알기 위해서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아야 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번뇌를 철저히 알기 위해서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아야 한다.” 

 

제5장 불사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