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상윳따 니까야

제47상윳따 - 제4장 이전에 들어보지 못함 품(SN47:31-SN47:40. Ananussuta-vagga)

실론섬 2014. 7. 27. 13:09

제4장 이전에 들어보지 못함 품
Ananussuta-vagga (SN 47.31-40)

ananussutasuttaṃ (SN 47.31-들어보지 못함 경)

397.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것이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무는 것이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앎[智]이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나에게 ‘이러한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것은 닦아져야 한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앎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나에게 ‘이러한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것은 닦아졌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앎이 생겼다. 혜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것이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것이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앎이 생겼다. 혜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나에게는 ‘이러한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것이 닦아져야 한다.’라는 ··· 닦아졌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앎이 생겼다. 혜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것이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것이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앎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나에게는 ‘이러한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것이 닦아져야 한다.’라는 ··· 닦아졌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앎이 생겼다. 혜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것이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것이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앎이 생겼다. 혜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나에게는 ‘이러한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것이 닦아져야 한다.’라는 ··· 닦아졌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앎이 생겼다. 혜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virāgasuttaṃ (SN 47.32-탐욕의 사라짐(이탐.離貪) 경)

398.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행할 때(익히면) 확실한 염오(싫어하여 떠남)로, 탐욕의 사라짐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철저한 앎으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확실한 염오(싫어하여 떠남)로, 탐욕의 사라짐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철저한 앎으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한다."    

viraddhasuttaṃ (SN 47.33-소홀 경)

399.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길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확고한 사람은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길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에 한 비구가 있어,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길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확고한 사람은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길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bhāvitasuttaṃ (SN 47.34-닦음 경)
400.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행할 때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게 된다.

 

무엇이 넷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행할 때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게 된다.”

 

satisuttaṃ (SN 47.35-마음챙김 경)
401.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이것이 그대들을 위한 우리의 가르침의 근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마음 챙기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 챙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알아차리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느낌은 보이는 것이 일어나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사라진다.
생각은 보이는 것이 일어나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사라진다. 인식(상.想)은 보이는 것이 일어나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사라진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알아차린다.

 

*'느낌(vedana)'을 명상하여 아라한됨을 얻는 그런 느낌 등이 분명하게 지각되면서 일어나고, 분명하게 지각되면서 머물고, 분명하게 지각되면서 사라진다는 말이다.(SA.iii.229)   
"여기 비구는 토대(vatthu,의식이 일어나는 토대)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대상을 철저하게 파악한다. 그가 이처럼 토대와 대상을 철저하게 파악하면 '이와 같이 일어나서 이와 같이 머물다가 이와 같이 멸한다.'라고 분명하게 지각되는 느낌들이 일어나고, 분명하게 지각되는 느낌들이 머물며, 분명하게 지각되는 느낌들이 사라진다. 이것은 '생각(vitakka)'과 '인식(sanna)'에도 그대로 적용된다."(SA.iii.85;Cf.SA.iii.229)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aññāsuttaṃ (SN 47.36-구경의 지혜 경)

402.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행할 때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의 결실이 예상된다.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집착의 자취가 남아 있을 때 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불환자.不還果]의 상태이다.”

 

chandasuttaṃ (SN 47.37-욕망 경)

403.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몸에 대해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그에게 몸을 향한(몸에 대한) 욕망이 버려진다. 욕망을 버릴 때 불사(不死)가 실현된다.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 대해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그에게 느낌을 향한(몸에 대한) 욕망이 버려진다. 욕망을 버릴 때 불사(不死)가 실현된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마음에 대해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그에게 마음을 향한(몸에 대한) 욕망이 버려진다. 욕망을 버릴 때 불사(不死)가 실현된다.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그에게 법을 향한 욕망이 버려진다. 욕망을 버릴 때 불사가 실현된다.”

 

pariññātasuttaṃ (SN 47.38-완전히 앎 경)
404.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그가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 때 몸을 철저히 안다. 몸을 철저히 알 때 불사(不死)가 실현된다.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그가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 때 느낌을 철저히 안다. 느낌을 철저히 알 때 불사(不死)가 실현된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그가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 때 마음을 철저히 안다. 마음을 철저히 알 때 불사(不死)가 실현된다.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그가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 때 법을 철저히 안다. 법을 철저히 알 때 불사가 실현된다.”


bhāvanāsuttaṃ (SN 47.39-수행 경)

405.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을 설하겠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이다.“

 

vibhaṅgasuttaṃ (SN 47.40-분석 경)
406.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마음 챙김의 확립과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과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으로 인도하는 길에 대해서 설하겠다. 그것을 들어라.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마음 챙김의 확립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마음 챙김의 확립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들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 법들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거나, 법들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거나, 법들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자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이라고 불린다.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라는 것은 마치 대장장이의 자루와 풀무의 튜브와 적절한 노력을 반연하여 바람이 계속해서 움직이듯 비구의 육체와 콧구멍과 마음을 연하여 들숨과 날숨이라는 몸이 계속해서 움직인다. 몸 등의 현상을 일어나는 현상이라 한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머문다.’라고 설하셨다.(DA.iii.765)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라는 것은 마치 자루를 치워버리거나 풀무의 튜브가 부서지거나 적절한 노력이 없으면 그 바람은 생기지 않듯이 몸이 무너지고 콧구멍이 부서지거나 마음이 소멸하면 들숨과 날숨이라는 몸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몸 등이 소멸할 때 들숨과 날숨도 소멸한다고 보면서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머문다.’라고 설하셨다.(DA.iii.765)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라는 것은 때로는 일어남을 때로는 사라짐을 따라가며 보면서라는 말이다.(DA.iii.765)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으로 인도하는 길인가?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불린다.”

 

 

제4장 이전에 들어보지 못함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