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의 모음 Chakka-nipāta
I. 첫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Paṭhama-paṇṇāsaka
제1장 공양받을만한 품 Āhuneyya-vagga(AN 6.1-10)
paṭhamāahuneyyasuttaṃ (AN 6.1-공양받을만함 경1)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보면서 기쁘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며,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문다.
여기 비구는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기쁘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며,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문다.
여기 비구는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기쁘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며,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문다.
여기 비구는 혀로 맛을 맛보면서 기쁘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며,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문다.
여기 비구는 몸으로 감촉을 닿으면서 기쁘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며,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문다.
여기 비구는 마음으로 법을 알면서 기쁘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며,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dutiyāahuneyyasuttaṃ (AN 6.2-공양받을만함 경2)
2.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들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본 경을 비롯하여 본서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에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라는 경의 도입부의 정형구가 생략되어 있다. 전통적인 모든 [앙굿따라 니까야] 판본에 이렇게 생략되어 나타난다. PTS본 뿐만 아니라, 6차결집본과 스리랑카본, 태국본 등 모든 문자본들과 필사본들에서 [앙굿따라 니까야]와 [상윳따 니까야]는 이렇게 경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정형구들을 생략하여 편집하고 있다.
생략하여 편집하는 방법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는 거의 예외 없이 모든 경에서 생략하고 있다. 다만 다섯의 모음, 여섯의 모음 등 새로운 '모음'이 시작 될 때에 그 모음의 제일 처음 경에서만 도입부에 해당하는 정형구를 모두 살려서 편집하고 있다.
둘째, '한 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도 거의 예외 없이 다 생략하여 편집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형구가 없는 경들은 모두 사왓티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카 승원에서 세존께서 설하신 경이라고 알아야 한다. 물론 설법의 주인공이 세존이 아니고 설법의 장소가 사왓티 제딸 숲의 아나타삔디카 승원이 아닌 경우에는 각 경에서 반드시 이를 밝히고 있다.
셋째, 법을 듣고자 하는 자들이 세존을 뵙고 인사드리고 하는 형식의 정형구나 세존께서 경을 설하시기 전에 행하시는 일상적인 생활에 관계된 정형구도 모두 생략하여 편집하고 있다.
그러면 [앙굿따라 니까야]와 [상윳따 니까야]는 왜 이러한 편집을 하였을까?
[앙굿따라 니까야]는 대부분 짧은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경들의 갯수도 아주 많다. PTS본에 의하면 [앙굿따라 니까야]는 대략 2,300여개의 경으로 편집되어 있고, 6차결집본에 의하면 대략 7,200여개로 편집되어 있으며, 주석서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9,557개라고 언급하고 있다.(그렇다고 해서 각 판본이 다른 내용을 첨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렇게 경의 갯수가 다른 이유는 경의 번호를 매긴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이러한 반복되는 정형구를 생략하지 않고 모두 살려서 편집한다면 경의 내용과 관계가 없는 이러한 정형구 때문에 정작 경의 내용을 전달하고 파악하는 것이 아주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모든 판본들뿐만 아니라 PTS본까지도 이처럼 정형구를 생략하여 편집했다고 이해된다.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실행한다.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그는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를(天耳界)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
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린다. 그는 탐욕을 지닌 마음을 탐욕을 지닌 마음이라고 알고, 탐욕에서 벗어난(떠난) 마음을 탐욕에서 벗어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그는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성냄에서 벗어난 마음을 성냄에서 벗어난 마음이라고 알아차린다. 그는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이라고 알아차리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마음을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마음이라고 안다. 그는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산란한 마음을 산란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그는 광대한 마음을 광대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광대하지 못한 마음을 광대하지 못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그는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알아차리고,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이라고 알아차린다. 그는 삼매를 얻은 마음을 삼매를 얻은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삼매에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에 얻지 못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그는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라고.
indriyasuttaṃ (AN 6.3-기능(근.根) 경)
3.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그는 믿음의 근과, 정진의 근과, 마음 챙김의 근과, 삼매의 근과, 지혜의 근을 구족하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
balasuttaṃ (AN 6.4-힘 경)
4.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그는 믿음의 힘과, 정진의 힘과, 마음 챙김의 힘과, 삼매의 힘과, 지혜의 힘을 구족하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
paṭhamāajānīyasuttaṃ (AN 6.5-좋은 혈통(품종) 경1)
5.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왕의 당당한 좋은 혈통의 말은 왕을 위한 자격이 있고, 왕에게 쓰일 만하고,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왕의 당당한 좋은 혈통의 말은 형상들을 감내하고, 소리들을 감내하고, 냄새들을 감내하고, 맛들을 감내하고, 감촉들을 감내하고, 멋진 용모를 갖추었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왕의 당당한 좋은 혈통의 말은 왕을 위한 자격이 있고, 왕에게 쓰일 만하고,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들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이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형상들을 감내하고, 소리들을 감내하고, 냄새들을 감내하고, 맛들을 감내하고, 감촉들을 감내하고, 법들을 감내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들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이다.”
dutiyāajānīyasuttaṃ (AN 6.6-좋은 혈통 경2)
6.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왕의 당당한 좋은 혈통의 말은 왕을 위한 자격이 있고, 왕에게 쓰일 만하고,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왕의 당당한 좋은 혈통의 말은 형상들을 감내하고, 소리들을 감내하고, 냄새들을 감내하고, 맛들을 감내하고, 감촉들을 감내하고,
힘을 갖추었다.
비구들이여, 이론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왕의 당당한 좋은 혈통의 말은 왕을 위한 자격이 있고, 왕에게 쓰일 만하고,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들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이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형상들을 감내하고, 소리들을 감내하고, 냄새들을 감내하고, 맛들을 감내하고, 감촉들을 감내하고, 법들을 감내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들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이다.”
tatiyāajānīyasuttaṃ (AN 6.7-좋은 품종 경3)
7.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왕의 당당한 좋은 혈통의 말은 왕을 위한 자격이 있고, 왕에게 쓰일 만하고,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왕의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은 형상들을 감내하고, 소리들을 감내하고, 냄새들을 감내하고, 맛들을 감내하고, 감촉들을 감내하고,
속력을 갖추었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왕의 당당한 좋은 혈통의 말은 왕을 위한 자격이 있고, 왕에게 쓰일 만하고,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들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형상들을 감내하고, 소리들을 감내하고, 냄새들을 감내하고, 맛들을 감내하고, 감촉들을 감내하고, 법들을 감내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들을 갖춘 비구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 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
anuttariyasuttaṃ (AN 6.8-위 없음 경)
8.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이런 위 없음이 있다. 어떤 여섯인가?
보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 듣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 얻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 공부(닦음)들 가운데 위없음, 섬기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기억의 위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위 없음이 있다.”
*'보는 것들 가운데 위없음(dassana-anuttariya)'이란 형상을 보는 것 가운데 최상이라는 뜻이다. 코끼리 보배등을 보는 것은 보는 것 가운데 위없는 것이 아니다. 굳건한 신뢰와 굳건한 신앙심으로 십력을 가진 세존이나 비구 승가나 까시나나 부정의 표상등에서 어떤 것을 보는 것이 위없는 것이다. 끄샤뜨리야들의 공덕에 관한 얘기를 듣는 것은 드는 것들 가운데 위없는 것이 아니다. 삼보의 공덕에 관한 말을 듣거나 삼장의 부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위없는 것이다. 보배와 보석을 얻는 것이 얻는 것들 가운데 위없는 것이 아니다. [믿음 등 출세간의] 일곱 가지 성스러운 보배를 얻는 것이 위없는 것이다. 공예술을 배우는 것이 공부들 가운데 위없는 것이 아니다. 삼학을 원만히 하는 것이 위없는 것이다. 끄샤뜨리야들을 섬기는 것이 섬기는 것들 가운데 위없는 것이 아니다. 삼보를 섬기는 것이 위없는 것이다. 끄샤뜨리야들의 공덕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 공덕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들 가운데 위없는 것이 아니다. 삼보의 공덕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 위없는 것이다.(AA.iii.336)
anussatiṭṭhānasuttaṃ (AN 6.9-계속해서 생각함(기억함)의 토대 경)
9.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기억함)의 토대가 있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세존을 계속해서 생각함(기억함), 법을 계속해서 생각함, 승가를 계속해서 생각함, 계를 계속해서 생각함,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함, 천신을 계속해서 생각함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의 토대가 있다.”
mahānāmasuttaṃ (AN 6.10-마하나마 경)
10.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삭까 사람 마하나마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삭까족 마하나마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과(果)를 증득하고 가르침을 아는 성스러운 제자는 어떤 머묾으로 주로(많이) 머뭅니까?”라고.
“마하나마여, 과를 증득하고 가르침을 아는 그 성스러운 제자는 이런 머묾으로 주로 머문다.
여기,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여래를 계속해서 생각한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여래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그때 마음은 탐욕이 스며들지 않고, 성냄이 스며들지 않고, 어리석음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때 마음은 여래에 대해 올곧아진다. 그러면, 마하나마여, 올곧아진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의미에 대한 앎을 얻고, 법에 대한 앎을 얻고, 법으로 이끄는 환희를 얻는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마음의 희열이 있으면 몸은 편안해 진다. 편안해진 몸은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이것이,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고요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서 고요함을 얻은 자로 머문다. 악의(해칠려는 마음)에 찬 사람들 가운데서 악의 없는 자로 머문다. 법의 흐름을 증득한 자로서 세존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는다.’라고 불린다.
다시,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법을 계속해서 생각한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고 있는것이고,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법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그때 마음은 탐욕이 스며들지 않고, 성냄이 스며들지 않고, 어리석음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때 마음은 여래에 대해 올곧아진다. 그러면, 마하나마여, 올곧아진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의미에 대한 앎을 얻고, 법에 대한 앎을 얻고, 법으로 이끄는 환희를 얻는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마음의 희열이 있으면 몸은 편안해 진다. 편안해진 몸은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이것이,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고요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서 고요함을 얻은 자로 머문다. 악의(해칠려는 마음)에 찬 사람들 가운데서 악의 없는 자로 머문다. 법의 흐름을 증득한 자로서 법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는다.’라고 불린다.
다시,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승가를 계속해서 생각한다.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四雙], 여덟 단계에 있는 분들[八輩]이시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서 다시 없는 복전[福田]이다.’라고.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승가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그때 마음은 탐욕이 스며들지 않고, 성냄이 스며들지 않고, 어리석음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때 마음은 여래에 대해 올곧아진다. 그러면, 마하나마여, 올곧아진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의미에 대한 앎을 얻고, 법에 대한 앎을 얻고, 법으로 이끄는 환희를 얻는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마음의 희열이 있으면 몸은 편안해 진다. 편안해진 몸은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이것이,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고요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서 고요함을 얻은 자로 머문다. 악의(해칠려는 마음)에 찬 사람들 가운데서 악의 없는 자로 머문다. 법의 흐름을 증득한 자로서 승가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는다.’라고 불린다.
다시,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계는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얼룩지지 않고, 구속되지 않고, 현자들이 칭찬하고, (성취한 것을)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자신의 계를 계속해서 생각한다.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계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그때 마음은 탐욕이 스며들지 않고, 성냄이 스며들지 않고, 어리석음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때 마음은 여래에 대해 올곧아진다. 그러면, 마하나마여, 올곧아진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의미에 대한 앎을 얻고, 법에 대한 앎을 얻고, 법으로 이끄는 환희를 얻는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마음의 희열이 있으면 몸은 편안해 진다. 편안해진 몸은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이것이,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고요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서 고요함을 얻은 자로 머문다. 악의(해칠려는 마음)에 찬 사람들 가운데서 악의 없는 자로 머문다. 법의 흐름을 증득한 자로서 계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는다.’라고 불린다.
다시,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자신의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한다.
‘참으로 나에게 이익이다. 참으로 나에게 큰 이익이다! 나는 인색에 오염된 사람들 가운데서 인색의 오염을 떠난 마음으로 아낌없이(자유롭게)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고, 베풂과 나눔을 좋아하며 재가에 산다.'라고.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그때 마음은 탐욕이 스며들지 않고, 성냄이 스며들지 않고, 어리석음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때 마음은 여래에 대해 올곧아진다. 그러면, 마하나마여, 올곧아진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의미에 대한 앎을 얻고, 법에 대한 앎을 얻고, 법으로 이끄는 환희를 얻는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마음의 희열이 있으면 몸은 편안해 진다. 편안해진 몸은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이것이,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고요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서 고요함을 얻은 자로 머문다. 악의(해칠려는 마음)에 찬 사람들 가운데서 악의 없는 자로 머문다. 법의 흐름을 증득한 자로서 보시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는다.’라고 불린다.
다시,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천신을 계속해서 생각한다.
‘사대왕천의 신들이 있고, 삼십삼천의 신들이 있고, 야마천의 신들이 있고, 도솔천의 신들이 있고, 화락천의 신들이 있고, 타화자재천의 신들이 있고, 범신천의 신들이 있고, 그보다 높은 천의 신들이 있다. 이런 신들은 믿음을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서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다. 이런 신들은 계를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계가 있다. 이런 신들은 배움을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배움이 있다. 이런 신들은 보시를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보시가 있다. 이런 신들은 지혜를 구족하여 여기서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났다. 나에게도 그런 지혜가 있다.’라고.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자신과 그 천신들의 믿음과 계와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그때 마음은 탐욕에 묶이지 않고, 성냄에 묶이지 않고, 어리석음에 묶이지 않는다. 그때 마음은 탐욕이 스며들지 않고, 성냄이 스며들지 않고, 어리석음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때 마음은 여래에 대해 올곧아진다. 그러면, 마하나마여, 올곧아진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의미에 대한 앎을 얻고, 법에 대한 앎을 얻고, 법으로 이끄는 환희를 얻는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마음의 희열이 있으면 몸은 편안해 진다. 편안해진 몸은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이것이,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고요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서 고요함을 얻은 자로 머문다. 악의(해칠려는 마음)에 찬 사람들 가운데서 악의 없는 자로 머문다. 법의 흐름을 증득한 자로서 천신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는다.’라고 불린다.
마하나마여, 과(果)에 도달하고 가르침을 아는 그 성스러운 제자는 이런 머묾으로 주로 머문다.”
제1장 공양 받아 마땅함 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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