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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의 모음 - 1. 자애(자비) 품(Mettā-vagga. A8.1-10)

실론섬 2014. 8. 15. 22:03

여덟의 모음 Aṭṭhaka-nipāta

제1장 자애 품Mettā-vagga (AN8.1-10)

 

mettāsuttaṃ (AN 8.1-자애 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자애(자비)에 의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자심해탈]을 익히고, 닦고, 많이 행하고, 정통하고, 철저히 실천하고, 따라 이루고, 축적하고, 노력을 잘 다진 비구에게 여덟 가지 공덕(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무엇이 여덟인가?
편안하게 잠든다.
편안하게 깨어난다. 악몽을 꾸지 않는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비인간들의 사랑을 받는다. 여러 신들이 보호한다. 이러한 사람은 불이나 독이나 칼이 해치지 못한다. 나아가 통찰하지(꿰뚫지) 못하더라도 범천의 세상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자애에 의한 마음의 해탈을 익히고, 닦고, 많이 행하고, 정통하고, 철저히 실천하고, 따라 이루고, 축적하고, 노력을 잘 다진 비구에게 이런 여덟 가지 공덕을 기대할 수 있다."

 

'무량한 자애를 닦는 마음 챙기는 자는 족쇄들이 엷어지고

재생의 근거가 파괴됨을 본다.

 

만약 오염되지(거칠지) 않은 마음을 가진 자가 하나의 생명에게라도

자애를 일으키면 그로 인해  유익함이 있다.

모든 생명을 마음으로 연민하는  

성스러운 자는 많은 공덕을 짓는다.  

 

중생의 무리가 살아가는 땅을 정복한 왕인 선인(仙人)은 널리 제사를 지냈다.

말의 희생과 인간의 희생 제사와 말뚝을 던지는 제사와 소마 즙을 바치는 제사와

대문을 열고 크게 공개적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애의 마음을 잘 닦는 자에게 그 제사들은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마치 모든 별들의 무리가 달빛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죽이지 않고, 죽이게 하지 않고, 정복하지 않고, 정복하게 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를 위해 자애로운 자에게는 어떠한 원한도 없다.'

 

paññāsuttaṃ (AN 8.2-지혜 경)

2.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이 있다. 이것은 아직 얻지 못한 청정범행(梵行)의 시작인 지혜를 얻게 하고, 이미 얻은 것은 더욱더 증가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닦게하고 완성으로 이끈다. 어떤 여덟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스승이나 어떤 존중할 만한 동료 수행자를 의지하여 머문다. 거기서 그에게 뉘우칠 줄 아는 힘과 부끄러운 줄 아는 힘과 사랑과 존경심이 확립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아직 얻지 못한 청정범행(梵行)의 시작인 지혜를 얻게 하고, 이미 얻은 것은 더욱더 증가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닦게하고 완성으로 이끄는 첫 번째 원인이고 첫 번째 조건이다.

 

그 스승이나 어떤 존중할 만한 동료 수행자를 의지하여 머물고, 거기서 그에게 뉘우칠 줄 아는 힘과 부끄러운 줄 아는 힘과 사랑과 존경심이 확립된

그는 적절한 때에 그들에게 다가가서 ‘존자시여, 이것은 어떻게 됩니까? 이것의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 보고 질문한다. 그에게 그 존자들은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분명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해서 의문을 가진 여러 가지 법들에 대한 의문을 제거해 준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아직 얻지 못한 청정범행(梵行)의 시작인 지혜를 얻게 하고, 이미 얻은 것은 더욱더 증가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닦게하고 완성으로 이끄는 두 번째 원인이고 두 번째 조건이다. 

 

그는 그 법을 배운 뒤 몸의 떠남과 마음의 떠남이라는 두 가지 떠남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아직 얻지 못한 청정범행(梵行)의 시작인 지혜를 얻게 하고, 이미 얻은 것은 더욱더 증가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닦게하고 완성으로 이끄는 세 번째 원인이고 세 번째 조건이다.  

 

그는 계를 잘 지킨다.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결점)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 계목들 위에서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아직 얻지 못한 청정범행(梵行)의 시작인 지혜를 얻게 하고, 이미 얻은 것은 더욱더 증가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닦게하고 완성으로 이끄는 네 번째 원인이고 네 번째 조건이다. 

 

그는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명심하고, 배운 것을 잘 정리한다.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내는 가르침을 많이 배우고, 만족하고, 말로써 실천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아직 얻지 못한 청정범행(梵行)의 시작인 지혜를 얻게 하고, 이미 얻은 것은 더욱더 증가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닦게하고 완성으로 이끄는 다섯 번째 원인이고 다섯 번째 조건이다.

 

그는 불선법(不善法)들의 제거를 위해, 선법(善法)들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은 강한 자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아직 얻지 못한 청정범행(梵行)의 시작인 지혜를 얻게 하고, 이미 얻은 것은 더욱더 증가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닦게하고 완성으로 이끄는 여섯 번째 원인이고 여섯 번째 조건이다.

 

그는 승가에 가면 이런저런 잡담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 법을 말하거나,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하거나, 성스러운 침묵을 지킨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아직 얻지 못한 청정범행(梵行)의 시작인 지혜를 얻게 하고, 이미 얻은 것은 더욱더 증가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닦게하고 완성으로 이끄는 일곱 번째 원인이고 일곱 번째 조건이다. 

 

그는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五取蘊 오취온]들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문다. 그는 ‘이것이 물질[色]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受]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想.지각]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형성[行]이다. 이것이 형성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형성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의식이[識.식별]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라고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아직 얻지 못한 청정범행(梵行)의 시작인 지혜를 얻게 하고, 이미 얻은 것은 더욱더 증가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닦게하고 완성으로 이끄는 여덟 번째 원인이고 여덟 번째 조건이다. 


이런 그를 동료 수행자들은 이렇게 존경한다.

‘이 존자는 스승이나 어떤 존중할 만한 동료 수행자를 의지하여 머물고 있다. 거기서 그에게 뉘우칠 줄 아는 힘과 부끄러운 줄 아는 힘과 사랑과 존경심이 확립된다. 이 존자는 아는 자로서 알고, 보는 자로서 본다(알아야 할 것을 알고 보아야 할 것을 본다).’라고. 이런 조건은 그를 사랑받게 하고, 존중받게 하고, 공덕이 생기게 하고, 참다운 사문이 되게 하고, [마음의] 전일한 상태로 이끈다(인도한다).

 

이런 그를 동료 수행자들은 이렇게 존경한다.

‘이 존자는 그 스승이나 어떤 존중할 만한 동료 수행자를 의지하여 머물고, 거기서 그에게 뉘우칠 줄 아는 힘과 부끄러운 줄 아는 힘과 사랑과 존경심이 확립된 그는 적절한 때에 그들에게 다가가서 ‘존자시여, 이것은 어떻게 됩니까? 이것의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 보고 질문한다. 그에게 그 존자들은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분명하지 않은 것을 분명히 해서 의문을 가진 여러 가지 법들에 대한 의문을 제거해 준다. 이 존자는 아는 자로서 알고, 보는 자로서 본다.’라고. 이런 조건은 그를 사랑받게 하고, 존중받게 하고, 공덕이 생기게 하고, 참다운 사문이 되게 하고, [마음의] 전일한 상태로 이끈다.

 

이런 그를 동료 수행자들은 이렇게 존경한다.

‘이 존자는 그 법을 배운 뒤 몸의 떠남과 마음의 떠남이라는 두 가지 떠남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존자는 아는 자로서 알고, 보는 자로서 본다.’라고. 이런 조건은 그를 사랑받게 하고, 존중받게 하고, 공덕이 생기게 하고, 참다운 사문이 되게 하고, [마음의] 전일한 상태로 이끈다.

 

이런 그를 동료 수행자들은 이렇게 존경한다.

‘이 존자는 계를 잘 지킨다.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는다. 이 존자는 아는 자로서 알고, 보는 자로서 본다.’라고. 이런 조건은 그를 사랑받게 하고, 존중받게 하고, 공덕이 생기게 하고, 참다운 사문이 되게 하고, [마음의] 전일한 상태로 이끈다.

이런 그를 동료 수행자들은 이렇게 존경한다.

‘이 존자는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명심하고, 배운 것을 잘 정리한다.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내는 가르침을 많이 배우고, 만족하고 말로써 실천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이 존자는 아는 자로서 알고, 보는 자로서 본다.’라고. 이런 조건은 그를 사랑받게 하고, 존중받게 하고, 공덕이 생기게 하고, 참다운 사문이 되게 하고, [마음의] 전일한 상태로 이끈다. 

 

이런 그를 동료 수행자들은 이렇게 존경한다.

‘이 존자는 불선법(不善法)들의 제거를 위해, 선법(善法)들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이다. 이 존자는 아는 자로서 알고, 보는 자로서 본다.’라고. 이런 조건은 그를 사랑받게 하고, 존중받게 하고, 공덕이 생기게 하고, 참다운 사문이 되게 하고, [마음의] 전일한 상태로 이끈다. 

 

이런 그를 동료 수행자들은 이렇게 존경한다.

이 존자는 승가에 가면 이런저런 잡담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 법을 말하거나,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하거나, 성스러운 침묵을 지킨다. 이 존자는 아는 자로서 알고, 보는 자로서 본다.’라고. 이런 조건은 그를 사랑받게 하고, 존중받게 하고, 공덕이 생기게 하고, 참다운 사문이 되게 하고, [마음의] 전일한 상태로 이끈다. 

이런 그를 동료 수행자들은 이렇게 존경한다.

'이 존자는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들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문다. 그는 ‘이것이 물질[色]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受]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想]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형성[行]이다. 이것이 형성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형성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의식이[識]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라고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이 존자는 아는 자로서 알고, 보는 자로서 본다.’라고. 이런 조건은 그를 사랑받게 하고, 존중받게 하고, 공덕이 생기게 하고, 참다운 사문이 되게 하고, [마음의] 전일한 상태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이 있다. 이것은 아직 얻지 못한 청정범행(梵行)의 시작인 지혜를 얻게 하고, 이미 얻은 것은 더욱더 증가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닦게하고 완성으로 이끈다."

 

paṭhamāppiyasuttaṃ (AN 8.3-사랑함 경1)

3.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고, 존중되지 않고, 존경을 받지 못한다. 무엇이 여덟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칭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이득을 탐하고(얻음을 원하고), 존경을 탐하고,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악한 바램(願)을 가졌고, 삿된 견해를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런한 여덟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고, 존중되지 않고, 존경을 받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어 하고, 존중하고, 존경을 받는다. 무엇이 여덟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칭찬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 이득을 탐하지 않고, 존경을 탐하지 않고, 뉘우칠 줄아는 힘이 있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악한 바램을 가지지 않고, 바른 견해를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덟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어 하고, 존중하고, 존경을 받는다.”

 

dutiyappiyasuttaṃ (AN 8.4-사랑함 경2)

4.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고, 존중되지 않고, 존경을 받지 못한다. 무엇이 여덟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득을 탐하고, 존경을 탐하고, 멸시받지 않는 것을 탐하고, 적당한 시간을 알지 못하고,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하고, 깨끗하지 않고, 말을 많이 하고, 청정범행을 닦는 자들에게 거친 말(욕설)과 비방을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고, 존중되지 않고, 존경을 받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어 하고, 존중하고, 존경을 받는다. 무엇이 여덟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득을 탐하지 않고, 존경을 탐하지 않고, 멸시받지 않는 것을 탐하지 않고, 적당한 시간을 알고, 적당한 양을 알고, 깨끗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청정범행을 닦는 자들에게 거친 말과 비방을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어 하고, 존중하고, 존경을 받는다.” 

 

paṭhamalokadhammasuttaṃ (AN 8.5-세상의 법 경1)

5. “비구들이여, 이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이 세상을 돌게 하고, 또한 세상은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을 돌게한다. 무엇이 여덟인가?”
이득과 손실(얻음과 잃음), 명성과 악명, 비난과 칭찬, 즐거움과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이 세상을 돌게 하고, 또한 세상은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을 돌게한다. 

 

'얻음과 잃음, 명성과 악명,
비난과 칭찬, 즐거움과 괴로움
인간에게서 이것들은 무상(無常)한 법들이니
영원하지 않고 변화하는 것이다.

 

이것들을 알아서 마음챙김을 하는 현명한 자는
변화하는 것들에 대해 마주 본다.
마음에 드는 것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서 반감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순응과 적대감이 
흩어지고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다.
오염 없고 슬픔 없는 [열반의] 경지를 알아서
존재의 저 언덕에 도달하여 이를 바르게 꿰뚫어 안다.'

 

dutiyalokadhammasuttaṃ (AN 8.6-세상의 법 경2)

6.“비구들이여, 이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이 세상을 돌게 하고, 또한 세상은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을 돌게한다. 무엇이 여덟인가?”
이득과 손실(얻음과 잃음), 명성과 악명, 비난과 칭찬, 즐거움과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이 세상을 돌게 하고, 또한 세상은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을 돌게한다.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도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비난과 칭찬,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기고,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도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비난과 칭찬,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여기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특별한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의 뜻을 직접 밝혀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잘 듣고 비구들은 마음에 새겨 지닐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나는 이제 설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이득이 생기면 그는 다음과 같이 숙고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득이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그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 손실이 생기면 ··· 명성이 생기면 ··· 악명이 생기면 ··· 비난이 생기면 ··· 칭찬이 생기면 ··· 즐거움이 생기면 ··· 괴로움이 생기면 다음과 같이 숙고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괴로움이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그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득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손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명성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악명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칭찬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비난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즐거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괴로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문다. 그는 이득에는 순응하고 손실에는 적대하며, 명성에는 순응하고 악명에는 적대하며 , 칭송에는 순응하고 비난에는 적대하며, 즐거움에는 순응하고 괴로움에는 적대한다. 그는 이렇게 순응함과 적대감을 가져서 태어남∙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슬픔∙비탄∙고통∙번민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득이 생기면 그는 다음과 같이 숙고한다. 
‘나에게는 이득이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그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 손실이 생기면 ··· 명성이 생기면 ··· 악명이 생기면 ··· 칭찬이 생기면 ··· 비난이 생기면 ··· 즐거움이 생기면 ··· 괴로움이 생기면 그는 다음과 같이 숙고한다. ‘나에게는 괴로움이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그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리하여 이득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하고, 손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하고, 명성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하고, 악명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하고, 칭찬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하고, 비난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하고, 즐거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하고, 괴로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그는 이득에 순응하지 않고 손실에 적대하지 않으며, 명성에 순응하지 않고 악명에 쟉대하지 않으며, 칭찬에 순응하지 않고 비난에 적대하지 않으며, 즐거움에 순응하지 않고 괴로움에 적대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순응함과 적대감을 버려서 태어남∙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고, 슬픔∙비탄∙고통∙번민으로부터 해탈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의 차이점이고, 특별한 점이고, 다른 점이다."

 

'얻음과 잃음, 명성과 악명,
비난과 칭찬, 즐거움과 괴로움
인간에게서 이것들은 무상(無常)한 법들이니
영원하지 않고 변화하는 것이다.

이것들을 알아서 마음챙김을 하는 현명한 자는
변화하는 것들에 대해 마주 본다.
마음에 드는 것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서 반감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순응과 적대감이 
흩어지고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다.
오염 없고 슬픔 없는 [열반의] 경지를 알아서
존재의 저 언덕에 도달하여 이를 바르게 꿰뚫어 안다.'

 

devadattavipattisuttaṃ (AN 8.7-데와닷따 파멸 경)
7.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무셨는데, 데와닷따가 승가를 분열시키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데와닷따에 대해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때때로) 자신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자신의 성공(번영)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성공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바르지 못한 법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에 혼미한 마음을 가진 데와닷따는 죽은 뒤에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져 일 겁을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받을 수가 없다. 어떤 여덟인가?

 

비구들이여, 얻음(이득)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에 혼미한 마음을 가진 데와닷따는 죽은 뒤에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져 일 겁을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받을 수가 없다. 비구들이여, 손실(잃음)에 ··· 비구들이여, 명성에 ··· 비구들이여, 악명에 ··· 비구들이여, 공경에 ··· 비구들이여, 천대에 ··· 비구들이여, 삿된 바램(願)에 ··· 비구들이여, 나쁜 친구를 사귐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에 혼미한 마음을 가진 데와닷따는 죽은 뒤에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져 일 겁을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받을 수가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얻음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무는 것이 옳다(머물러야 바람직하다). 잃음(손실)이 ··· 명성이 ··· 악명이 ··· 공경이 ··· 천대가 ··· 삿된 바램이 ··· 나쁜 친구와 사귈 일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무는 것이 옳다.

 

비구들이여, 어떤 이유를 연(緣)하여 비구는 얻음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물러야 하는가? 잃음(손실)이 ··· 명성이 ··· 악명이 ··· 공경이 ··· 천대가 ··· 삿된 바램이 ··· 나쁜 친구와 사귈 일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물러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얻음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생길 것이다. 얻음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며 머무는 자에게 그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잃음이 ··· 명성이 ··· 악명이 ··· 공경이 ··· 천대가 ··· 삿된 바램이 ··· 악한 친구를 사귈 일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생길 것이다. 악한 친구를 사귈 일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며 머무는 자에게 그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런 이유를 연(緣)하여 비구는 얻음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잃음이 ··· 명성이 ··· 악명이 ··· 공경이 ··· 천대가 ··· 삿된 바램이 ··· 악한 친구를 사귈 일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얻음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물 것이다. 잃음이 ··· 명성이 ··· 악명이 ··· 공경이 ··· 천대가 ··· 삿된 바램이 ··· 악한 친구를 사귈 일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물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uttaravipattisuttaṃ (AN 8.8-웃따라 파멸 경)
8. 그 무렵 웃따라 존자는 마히사왓투에서 상케이야까 산의 와따잘리까에 머물렀다. 거기에서 웃따라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자신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성공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라고.

 

*DPPN에는 웃따라(Uttara)라는 이름을 가진 30명에 가까운 사람이 언급되어 있다. DPPN에 의하면 본경의 웃따라 존자는 사께따(Saketa)의 바라문의 아들이었다. 그는 어떤 일 때문에 사왓티에 왔다가 세존께서 나투신 쌍신변을 보았으며, 그 후에 세존께서 사께따에 오셔서 본서 제2권 깔리까 경(A4.24)를 설하시자 그 법문을 듣고 출가하였으며, 세존을 따라 라자가하에 갔다가 거기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Thag.22,vv.161-2;ThagA.ii.37)
*와따짤리까(Vatajalika)는 다와잘리까(Dhava-jalika)라는 이름으로도 나타난다. 다와잘리까는 마히사왓투(Mahisavatthu) 지방의 상께이야까 산(Samkheyyaka pabbata)에 있는 승원의 이름이라고 하며, 이 승원이 다와나무 숲(Dhava-vana) 속에 건립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AA.iv.73)

 

그때 [사대왕천의] 웻사와나 대왕이 어떤 해야 할 일이 때문에 북쪽 지방에서 남쪽 지방으로 가고 있었다. 웻사와나 대왕은 마히사왓투에 있는 상케이야까 산의 와따잘리까에서 웃따라 존자가 설한 이런 법을 들었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자신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성공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라고.

 

그러자 웻사와나 대왕은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빠른 시간에 마히사왓투에 있는 상케이야까 산의 와따잘리까에서 사라져서 삼십삼천에 나타났다. 그리고 웻사와나 대왕은 신들의 왕 삭까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신들의 왕 삭까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여, 그대는 아셔야 합니다. 마히사왓투에 있는 상케야까 산의 와따잘리까에서 윳따라 존자가 비구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자신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파멸에 ··· 자신의 성공에 ··· 남의 성공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라고. 

 

이 말을 들은 신들의 왕 삭까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빠른 시간에 삼십삼천에서 사라져서 마히사왓투에 있는 상케이야까 산의 와따잘리까에 있는 웃따라 존자의 면전에 나타났다. 그리고 신들의 왕 삭까는 웃따라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웃따라 존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신들의 왕 삭까는 웃따라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웃따라 존자께서 비구들에게 비구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했습니까?

‘도반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자신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파멸에 ··· 자신의 성공에 ··· 남의 성공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라고.”
“그렇습니다, 신들의 왕이여.”

“존자시여, 그러면 이것은 웃따라 존자 자신의 지혜에서 생긴 것입니까? 아니면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의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신들의 왕이여, 이제 비유를 하나 들겠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여기서 어떤 지혜로운 사람들은 말의 뜻을 잘 압니다. 

 

예를 들면, 신들의 왕이여, 마을이나 성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곡물 무더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군중들이 거기서 통이나 바구니나 허리에 달린 주머니나 두 손으로 곡물을 가져갈 것입니다. 신들의 왕이여, 어떤 사람이 그 군중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그대들은 어디에서 이 곡물을 가져갑니까?’라고.

신들의 왕이여, 그 군중들이 어떻게 설명할 때 바르게 설명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존자시여, ‘이러저러한 큰 곡물 무더기로부터 가져갑니다.’라고 말을 할 때 그 군중들은 바르게 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신들의 왕이여, 잘 말해진 모든 것은 어떤 것이든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의 말씀입니다. 저나 다른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기쁩니다, 존자시여. 정말 기쁩니다, 존자시여. 웃따라 존자께서는 ‘잘 말해진 모든 것은 어떤 것이든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의 말씀입니다. 저나 다른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잘 말해졌습니다. 웃따라 존자시여,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무셨는데, 데와닷따가 승가를 분열시키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데와닷따에 대해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때때로) 자신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자신의 성공(번영)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성공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바르지 못한 법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에 혼미한 마음을 가진 데와닷따는 죽은 뒤에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져 일 겁을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받을 수가 없다. 어떤 여덟인가?

비구들이여, 얻음(이득)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에 혼미한 마음을 가진 데와닷따는 죽은 뒤에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져 일 겁을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받을 수가 없다. 비구들이여, 손실(잃음)에 ··· 비구들이여, 명성에 ··· 비구들이여, 악명에 ··· 비구들이여, 공경에 ··· 비구들이여, 천대에 ··· 비구들이여, 삿된 바램(願)에 ··· 비구들이여, 나쁜 친구를 사귐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에 혼미한 마음을 가진 데와닷따는 죽은 뒤에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져 일 겁을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받을 수가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얻음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무는 것이 옳다(머물러야 바람직하다). 잃음(손실)이 ··· 명성이 ··· 악명이 ··· 공경이 ··· 천대가 ··· 삿된 바램이 ··· 나쁜 친구와 사귈 일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무는 것이 옳다.

비구들이여, 어떤 이유를 연(緣)하여 비구는 얻음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물러야 하는가? 잃음(손실)이 ··· 명성이 ··· 악명이 ··· 공경이 ··· 천대가 ··· 삿된 바램이 ··· 나쁜 친구와 사귈 일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물러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얻음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생길 것이다. 얻음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며 머무는 자에게 그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잃음이 ··· 명성이 ··· 악명이 ··· 공경이 ··· 천대가 ··· 삿된 바램이 ··· 악한 친구를 사귈 일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생길 것이다. 악한 친구를 사귈 일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며 머무는 자에게 그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런 이유를 연(緣)하여 비구는 얻음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잃음이 ··· 명성이 ··· 악명이 ··· 공경이 ··· 천대가 ··· 삿된 바램이 ··· 악한 친구를 사귈 일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얻음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물 것이다. 잃음이 ··· 명성이 ··· 악명이 ··· 공경이 ··· 천대가 ··· 삿된 바램이 ··· 악한 친구를 사귈 일이 생길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머물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라고."

 

“웃따라 존자시여, 사람들에게는 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의 네 가지 회중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문은 이들 가운데 잘 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존자시여, 웃따라 존자께서는 이 법문을 수지하십시오. 존자시여, 웃따라 존자께서는 이 법문을 통달하십시오. 존자시여. 웃따라 존자께서는 이 법문을 명심하십시오. 존자시여, 이 법문은 이익을 가져다주며 청정범행의 시작입니다.”

 

nandasuttaṃ (AN 8.9-난다 경)

9. “비구들이여, 난다에 대해서 바르게 말하는 자는 ‘그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난다에 대해서 바르게 말하는 자는 ‘그는 힘 있는 자'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난다에 대해서 바르게 말하는 자는 '그는 믿음을 가진 사람'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난다에 대해서 바르게 말하는 자는 ‘그는 아주 정열적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난다가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고, 음식에 대한 적당한 양을 알고, 깨어있음에 전념하고,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을 갖추지 못했다면 어떻게 난다가 완전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닦을 수 있겠는가!

 

거기서, 비구들이여, 난다는 이렇게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한다.

만약, 비구들이여, 난다가 동쪽 방향을 바라본다면, 모든 마음을 집중하여 난다는 동쪽을 본다. ‘이렇게 동쪽을 보는 나에게 간탐과 고뇌(탐욕과 싫어하는 마음),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이(악한 불선법들) 흘러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여기서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만약, 비구들이여, 난다가 서쪽 방향을 바라본다면 ··· 북쪽 방향을 바라본다면 ··· 남쪽 방향을 바라본다면 ··· 위쪽을 바라본다면 ··· 아래쪽을 바라본다면 ··· 중간 방향을 바라본다면, 모든 마음을 집중하여 난다는 중간 방향을 본다. ‘이렇게 중간 방향을 보는 나에게 간탐과 고뇌,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이 흘러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여기서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난다는 이렇게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난다는  이렇게 음식에 대해 적당한 양을 안다. 

비구들이여, 여기 난다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음식을 수용한다. '이것은 살찌기 위함도 아니고, 맛을 즐기기 위함도 아니고, 꾸밈을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이 몸을 유지하고 건강을 해치지 않을 만큼의 영양분을 위해서, 범행에 도움이 되기 위함이다. 이렇게 나는 이전의 배고품의 느낌을 사라지게 하고,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허물없이 안온하게 머물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난다는 이렇게 음식에 대해 적당한 양을 안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난다는 이렇게 깨어있음에 전념한다. 
비구들이여, 난다는 낮 동안에는 경행하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밤의 초경에는 경행하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한밤중에는 발에다 발을 포개어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으로 향한채 사자처럼 누워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正念正知] 일어날 시간을 인식하여 마음에 새긴다. 밤의 삼경에는 일어나서 경행하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난다는 이렇게 깨어있음에 전념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난다는 이렇게 마음 챙기고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난다에게는 분명하게 지각되는 느낌들이 일어나고 머물고 소멸된다. 분명하게 지각되는 인식들이 일어나고 머물고 소멸된다. 분명하게 지각되는 생각들이 일어나고 머물고 소멸된다. 비구들이여, 난다는 이렇게 마음 챙기고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난다가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고, 음식에 대해 적당한 양을 알고, 깨어있음에 전념하고,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을 갖추지 못했다면 어떻게 난다가 완전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닦을 수 있겠는가!"

 

kāraṇḍavasuttaṃ (AN 8.10-쓰레기 경)
10. 한 때에 세존께서는 짬빠에서 각가라 호수의 언덕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비구들이 어떤 비구를 계(戒)를 어긴 것 때문에 그에게 훈계를 하고 있었다. 비구들로부터 계를 어긴 것 때문에 훈계받는 그 비구는 다른 것에 의해 다른 것을 대처하고, 주제 밖의 이야기로 이야기를 떨쳐버리고, 성급함과 성냄과 불만족을 드러내었다.

 

그 모습을 보신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저 사람을 쫓아버려라. 비구들이여, 저 사람을 쓸어내라. 비구들이여, 저 사람을 추방하라. 왜 다른 사람이 그대들을 성가시게 한단 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계를 어기는 것을 보지 못하는 한 어떤 사람은 다른 훌륭한 비구들과 같이 나아가고, 물러나고, 앞을 보고, 돌아보고, 구부리고, 펴고, 가사∙발우∙의복을 지니는 것과 꼭 같이 한다. 그러나 계를 어기는 것을 비구들이 볼 때, 비구들은 그런 그를 ‘이 사람은 타락한 사문, 사문의 왕겨, 사문의 쓰레기’라고 안다. 비구들은 그를 이렇게 알고 나서 밖으로 쫓아버린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다른 훌륭한 비구들을 오염시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보리밭에서 보리가 익어갈 때 거기에 제대로 자라지 못한 보리, 찌꺼기 보리, 쓰레기 보리가 생기게 된다. 이삭이 맺기 전까지 그것은 다른 양질의 보리들의 종자와 꼭 같고, 다른 양질의 보리들의 줄기와 꼭 같고, 다른 양질의 보리들의 잎과 꼭 같다. 그러나 일단 이삭을 맺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 보리이고 찌꺼기 보리이고 쓰레기 보리인 줄 안다. 그것을 이렇게 알고 나서 그것을 뿌리째 뽑아서 보리밭 밖으로 내던져버린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다른 양질의 보리들을 오염시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계를 어기는 것을 보지 못하는 한 어떤 사람은 다른 훌륭한 비구들과 같이  비구들이 앞을 보고 돌아보고 구부리고 펴고 가사∙발우∙의복을 지니는 것과 꼭 같이 한다. 그러나 계를 어기는 것을 비구들이 볼 때, 비구들은 그런 그를 ‘이 사람은 타락한 사문, 사문의 왕겨, 사문의 쓰레기’라고 안다. 비구들은 그를 이렇게 알고 나서 밖으로 쫓아버린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다른 훌륭한 비구들을 오염시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커다란 곡식 무더기를 키질할 때, 단단하고 알찬 고식은 한 쪽에 쌓이고, 바람은 쭉정이와 찌꺼기 곡식을 한쪽으로 날린다. 곡물 주인은 빗자루를 가지고 그것을 더 멀리 쓸어버린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다른 양질의 곡식들을 오염시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계를 어기는 것을 보지 못하는 한 어떤 사람은 다른 훌륭한 비구들과 같이  비구들이 앞을 보고 돌아보고 구부리고 펴고 가사∙발우∙의복을 지니는 것과 꼭 같이 한다. 그러나 계를 어기는 것을 비구들이 볼 때, 비구들은 그런 그를 ‘이 사람은 타락한 사문, 사문의 왕겨, 사문의 쓰레기’라고 안다. 비구들은 그를 이렇게 알고 나서 밖으로 쫓아버린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다른 훌륭한 비구들을 오염시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물통을 만들려는 사람이 날카로운 도끼를 가지고 숲에 들어갈 것이다. 그는 이 나무 저 나무를 도끼자루로 두드려 볼 것이다. 거기서 단단하고 심재가 있는 나무들은 도끼자루로 두드리면 빈틈없는 소리가 날 것이고, 안이 썩었고 물기가 흐르고 깨끗하지 못한 나무들은 도끼자루로 두드리면 텅 빈 소리가 날 것이다. 그러면 그는 이것의 뿌리를 자른다. 뿌리를 자른 뒤 꼭대기를 자른다. 꼭대기를 자른 뒤 안을 깨끗하게 씻어낸다. 안을 깨끗하게 씻어낸 뒤 물통으로로 사용한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계를 어기는 것을 보지 못하는 한 어떤 사람은 다른 훌륭한 비구들과 같이  비구들이 앞을 보고 돌아보고 구부리고 펴고 가사∙발우∙의복을 지니는 것과 꼭 같이 한다. 그러나 계를 어기는 것을 비구들이 볼 때, 비구들은 그런 그를 ‘이 사람은 타락한 사문, 사문의 왕겨, 사문의 쓰레기’라고 안다. 비구들은 그를 이렇게 알고 나서 밖으로 쫓아버린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다른 훌륭한 비구들을 오염시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이 사람을 이렇게 알아야 한다. 삿된 바램을 가졌고, 분노하며  

격분하고, 고집스럽고, 횡포를 부리고, 질투하고, 인색하고, 교활하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조용히 말하는 사문인양 말한다.
혼자 있을 때는 나쁜 견해를 가지고 악업을 짓는다.

 

게으르고 거짓을 말한다. 그것을 사실대로 알아서
모두 화합하여 그를 추방하라.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인 체 할 때, 그것 때문에 쓰레기를 치우고

오물을 치우라. 사문이 아니면서 겉보기만 사문인 쭉정이를 쫓아내라.

 

삿된 바램들, 나쁜 행동의 영역들에서 벗어난 뒤에
청정한 자들은 청정한 자들과 함께 살고, 함께 마음챙김을 지니고 지낸다
그래서 화합하는 현명한 자들은 그것 때문에 괴로움을 끝낸다.

 


제1장 자비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