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장자 품 Gahapati-vagga (AN 8.21-30)
paṭhamauggasuttaṃ (AN 8.21-욱가 경1)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뾰족지붕 건물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웨살리에 사는 욱가 장자는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다.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웨살리의 욱가 장자의 집으로 갔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웨살리의 욱가 장자가 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웨살리의 욱가 장자에게 그 비구는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세존께서는 그대가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 그대가 갖추었다고 말하는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은 무엇입니까?”
“존자시여, 세존께서 제가 어떤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말씀하셨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존자시여, 저에게 있는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제가 말하겠습니다.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장자여.”라고 그 비구는 웨살리의 욱가 장자에게 대답했다. 웨살리의 욱가 장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존자시여, 제가 맨 처음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뵈었을 때, 존자이시여, 세존을 뵙자마자 저의 마음은 세존에게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첫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그런 저는, 존자이시여,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세존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 저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은 순차적인 가르침을 설해주셨습니다. 보시의 가르침, 계의 가르침, 천상의 가르침, 감각적 쾌락들의 위험과 타락과 오염원, 출리의 공덕을 밝혀주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저의 마음이 준비 되고, 부드러워지고, 장애가 없어지고, 환희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긴 것을 아셨을 때, 정등각들께서 직접 얻으신 괴로움과 일어남과 소멸과 길(고苦, 집集, 멸滅, 도道)이라는 법의 가르침을 설명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얼룩이 없는 깨끗한 천이 고르게 잘 염색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그것은 모두 멸하기 마련인 법이다.'라는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존자이시여,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체득하고, 법을 통찰하고, 의심을 건너고, 불확실에서 벗어나고, 자기 확신을 얻고, 스승의 가르침에서 다른 스승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세존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청정범행을 다섯 번째로 하는 학습계목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두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그런 저에게, 존자시여, 네 명의 젊은 아내가 있었습니다. 존자이시여, 그때 저는 아내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들이여, 나는 청정범행을 다섯 번째로 하는 학습계목을 받아들였습니다. 원하는 대로 여기서 재물을 즐겨도 되고, 공덕을 지어도 되고, 혹은 그대의 친척이나 친정 집으로 돌아가도 되고, 혹은 생각하는 남자가 있으면 그에게 보내주겠소.’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존자이시여, 첫 번째 아내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자여, 이러이러한 사람에게 저를 보내주십시오.'라고. 그때, 존자이시여, 저는 그 남자를 불러서 왼손으로 아내를 잡고 오른 손으로 물병을 잡고서 그 사람에게 뿌리는 의식을 거쳐 그녀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존자이시여, 젊은 아내를 보내는 나에게 마음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세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그리고, 존자시여, 저는 저의 집안에 있는 나누어지지 않은 재물은 계행을 갖추고 선한 성품을 가진 분들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네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그리고, 존자시여, 저는 비구에게 예배할 때 공손히 예배합니다. 공손하지 않게 예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다섯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만약, 존자이시여, 그 비구가 저에게 법을 설하면, 저는 정성을 다해서 듣고 성의 없이 듣지 않습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여섯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그리고, 존자시여, 신들이 제게 와서 ‘장자여, 세존으로부터 법은 잘 설해졌습니다.’라고 알려주는 것은 경이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 존자이시여, 저는 신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 신들이 ‘참으로 세존으로부터 법은 잘 설해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까? 아니면 말하지 않았습니까?’라고. 그러나, 존자시여, 저는 그 사실 때문에 ‘신들이 내게 다가왔고 나는 신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라고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일곱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존자시여, 세존께서 설하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五下分結] 가운데 어떤 것도 제게서 버려지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합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여덟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존자시여, 제게는 이러한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어떤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말씀하셨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비구는 웨살리의 욱가 장자의 집에서 탁발음식을 얻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그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는 지금까지 있었던 웨살리의 욱가 장자와의 대화를 모두 세존께 말씀드렸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여! 웨살리의 욱가 장자가 그와 같이 바르게 말한 것처럼, 비구여, 그러한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춘 웨살리의 욱가 장자를 나는 말했다. 비구여, 이런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춘 웨살리의 욱가 장자를 알아야 한다.”
dutiyauggasuttaṃ (AN 8.22-욱가 경2)
22. 한 때에 세존께서는 왓지에서 핫티가마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춘 핫티가마의 욱가 장자를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다.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핫타가마의 욱가 장자의 집으로 갔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핫타가마의 욱가 장자가 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핫타가마의 욱가 장자에게 그 비구는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세존께서는 그대가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 그대가 갖추었다고 말하는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은 무엇입니까?”
“존자시여, 세존께서 제가 어떤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말씀하셨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존자시여, 저에게 있는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제가 말하겠습니다.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장자여.”라고 그 비구는 핫타가마의 욱가 장자에게 대답했다. 핫타가마의 욱가 장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존자시여, 코끼리 숲에서 놀고 있던 제가 세존을 멀리서 처음 뵈었을 때, 존자이시여, 세존을 뵙자마자 저의 마음은 세존에게 믿음을 가졌고, 술기운은 싹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첫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그런 저는, 존자이시여,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세존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 저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은 순차적인 가르침을 설해주셨습니다. 보시의 가르침, 계의 가르침, 천상의 가르침, 감각적 쾌락들의 위험과 타락과 오염원, 출리의 공덕을 밝혀주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저의 마음이 준비 되고, 부드러워지고, 장애가 없어지고, 환희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긴 것을 아셨을 때, 정등각들께서 직접 얻으신 괴로움과 일어남과 소멸과 길(고苦, 집集, 멸滅, 도道)이라는 법의 가르침을 설명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얼룩이 없는 깨끗한 천이 고르게 잘 염색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그것은 모두 멸하기 마련인 법이다.'라는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존자이시여,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체득하고, 법을 통찰하고, 의심을 건너고, 불확실에서 벗어나고, 자기 확신을 얻고, 스승의 가르침에서 다른 스승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세존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청정범행을 다섯 번째로 하는 학습계목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두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그런 저에게, 존자시여, 네 명의 젊은 아내가 있었습니다. 존자이시여, 그때 저는 아내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들이여, 나는 청정범행을 다섯 번째로 하는 학습계목을 받아들였습니다. 원하는 대로 여기서 재물을 즐겨도 되고, 공덕을 지어도 되고, 혹은 그대의 친척이나 친정 집으로 돌아가도 되고, 혹은 생각하는 남자가 있으면 그에게 보내주겠소.’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존자이시여, 첫 번째 아내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자여, 이러이러한 사람에게 저를 보내주십시오.'라고. 그때, 존자이시여, 저는 그 남자를 불러서 왼손으로 아내를 잡고 오른 손으로 물병을 잡고서 그 사람에게 뿌리는 의식을 거쳐 그녀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존자이시여, 젊은 아내를 보내는 나에게 마음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세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그리고, 존자시여, 저는 저의 집안에 있는 나누어지지 않은 재물은 계행을 갖추고 선한 성품을 가진 분들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네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그리고, 존자시여, 저는 비구에게 예배할 때 공손히 예배합니다. 공손하지 않게 예배하지 않습니다. 만약, 존자이시여, 그 비구가 저에게 법을 설하면, 저는 정성을 다해서 듣고 성의 없이 듣지 않습니다. 만약, 저에게 그 비구가 법을 설하지 않으면, 제가 법을 설합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다섯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그리고, 존자이시여, 승가를 초청할 때 신들이 다가와서 ‘장자여, 이런 비구는 양면해탈자이고, 이런 비구는 혜해탈자이고, 이런 비구는 몸으로 체험한 자이고, 이런 비구는 견해를 성취한 자이고, 이런 비구는 믿음으로 해탈한 자이고, 이런 비구는 법을 따르는 자이고, 이런 비구는 믿음을 따르는 자이고, 이런 비구는 계를 중시하고 선한 성품을 가진 자이고, 이런 비구는 계를 경시하고 나쁜 성품을 가진 자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저에게는 경이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존자이시여, 승가에 공양 올리는 저는 ‘이분에게는 적게 드리고, 이분에게는 많이 드릴 것이다.’라고 마음을 일으킨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존자이시여, 저는 평정한 마음으로 드릴 것입니다. 이것이, 존자이시여, 저의 여섯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그리고, 존자시여, 신들이 제게 와서 ‘장자여, 세존으로부터 법은 잘 설해졌습니다.’라고 알려주는 것은 경이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 존자이시여, 저는 신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 신들이 ‘참으로 세존으로부터 법은 잘 설해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까? 아니면 말하지 않았습니까?’라고. 그러나, 존자시여, 저는 그 사실 때문에 ‘신들이 내게 다가왔고 나는 신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라고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것이, 존자시여, 저의 일곱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입니다.
만약, 존자시여, 제가 세존보다 먼저 몸이 무너져 죽으면, 세존께서 ‘핫티가마의 욱가 장자는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게 하는 족쇄가 없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라는 것은 저에게는 경이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존자이시여, 저의 여덟 번째 놀랍고 신기한 법입니다.
존자시여, 저에게 이런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제가 어떤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말씀하셨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비구는 핫타가마의 욱가 장자의 집에서 탁발음식을 얻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그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는 지금까지 있었던 핫타가마의 욱가 장자와의 대화를 모두 세존께 말씀드렸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여! 핫타가마의 욱가 장자가 그와 같이 바르게 말한 것처럼, 비구여, 그러한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춘 핫타가마의 욱가 장자를 나는 말했다. 비구여, 이런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춘 핫타가마의 욱가 장자를 알아야 한다.”
paṭhamahatthakasuttaṃ (AN 8.23-핫타까 경1)
23. 한 때에 세존께서는 알라위에서 악갈라와 탑묘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알라위에 사는 핫타까) 장자는 일곱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알아야 한다. 무엇이 일곱인가? 참으로,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믿음이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계를 잘 지키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많이 배웠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보시를 하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지혜가 있다.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이러한 일곱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알아야 한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다.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알라위의 핫타까 장자의 집으로 갔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알라위의 핫타까 장자는 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알라위의 핫타까 장자에게 그 비구는 이와 같이 말했다.
“장자여, 그대는 일곱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세존께서 설명하셨습니다. 무엇이 일곱입니까?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믿음이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계를 잘 지키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많이 배웠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보시를 하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지혜가 있다.’라고. 장자여, 그대는 이러한 일곱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세존께서는 설명하셨습니다.”
“존자시여,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실 때에 흰옷을 입은 재가자는 아무도 없었습니까?”
“장자여, 흰옷을 입은 재가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존자시여, 흰옷을 입은 재가자가 아무도 없었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 비구는 알라위의 핫타까 장자의 집에서 탁발음식을 얻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그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알라위 핫타까 장자의 집을 갔습니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습니다. 알라위의 핫타까 장자는 제게 다가왔습니다. 와서는 제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습니다. 한 곁에 앉은 알라위의 핫타까 장자에게 저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장자여, 그대는 일곱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세존께서 설명하셨습니다. 무엇이 일곱입니까?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믿음이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계를 잘 지키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많이 배웠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보시를 하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지혜가 있다.’라고. 장자여, 그대는 이러한 일곱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세존께서는 설명하셨습니다.’라고.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위의 핫타까 장자는 제게 말했습니다. ‘존자시여,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그때에 흰옷을 입은 재가자는 아무도 없었습니까?’라고. ‘장자여, 흰옷을 입은 재가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라고. ‘존자시여, 흰옷을 입은 재가자가 아무도 없었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라고.”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여! 비구여, 그 좋은 가문의 아들은 바라는 바가 적다(원하는 것이 적다). 자신에게 유익한 법이 있는데도 그것이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비구여, 알라위의 핫타까 장자가 이 여덟 번째의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알아야 한다.
dutiyahatthakasuttaṃ (AN 8.24-핫타까 경2)
24. 한 때에 세존께서는 알라위에서 악갈라와 탑묘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알라위의 핫타까는 오백 명의 재가 신도들에 둘러싸여 세존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알라위의 핫타까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핫타까여, 그대의 회중은 크다. 그런데 그대는 어떻게 이 큰 회중을 따르게 하는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설하신 네 가지 따르게 하는 토대[사섭법.四攝事.cattari sangahavatthuni]에 의해서 저는 이 큰 모임을 따르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사람은 보시에 의해 따라지는 사람이다.’라고 알면, 베풂으로써 따르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사람은 사랑스런 말에 의해 따라지는 사람이다.’라고 알면, 사랑스런 말로써 따르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사람은 이익 되는 행위에 의해 따라지는 사람이다.’라고 알면,이익되는 행위로써 따르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사람은 함께 함에 의해 따라지는 사람이다.’라고 알면, 함께 함으로써 따르게 합니다.
참으로, 세존이시여, 저의 집안에는 재물이 있습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함(동사.同事)'은 samanattat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 경우에는 보시를 하는 등의 행위는 없지만 함께 먹고 마시고 앉는 등으로 자신과 동일하게 만들어서 따르게 하는 것을 뜻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AA.iv.115)
“훌륭하고, 훌륭하다, 핫타까여! 그것이 이 큰 회중을 따르게 하기 위한 성품이다. 핫타까여, 누구든지 과거에 큰 회중을 따르게 한 사람들은 모두 이 네 가지 따르게 하는 토대에 의해 큰 회중을 따르게 했다. 핫타까여, 누구든지 미래에 큰 회중을 따르게 할 사람들은 모두 이 네 가지 따르게 하는 토대에 의해 큰 회중을 따르게 할 것이다. 핫타까여, 누구든지 현재에 큰 회중을 따르게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네 가지 따르게 하는 토대에 의해 큰 회중을 따르게 한다.”
세존께서는 알라위의 핫타까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그러자 알라위의 핫타까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 세존께서는 알라위의 핫타까가 물러간지 오래되지 않아서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알아야 한다. 무엇이 여덟인가?”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믿음이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계를 잘 지키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부끄러운 할 줄 아는 힘이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많이 배웠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보시를 하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지혜가 있고, 알라위의 핫타까는 바라는 바가 적다.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이러한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알아야 한다.”
mahānāmasuttaṃ (AN 8.25-마하나마 경)
25.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사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삭까 사람 마하나마가 세존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삭까 사람 마하나마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재가 신도가 됩니까(누가 재가 신도입니까)?”
“마하나마여, 세존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할 때 재가 신도가 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재가 신도가 계를 지킵니까(누가 계를 지닌 재가 신도입니까)?”
“마하나마여, 재가 신도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난다. 이렇게 재가 신도는 계를 지킨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재가 신도가 자신의 이익은 위하지만 남의 이익은 위하지 않는 실천을 하게 됩니까?”
“마하나마여, 재가 신도가 자신은 믿음을 갖추지만 남으로 하여금 믿음을 갖추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계를 갖추지만 남으로 하여금 계를 갖추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보시를 갖추지만 남으로 하여금 보시를 갖추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비구들을 친견하고자 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비구들을 친견하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정법을 듣고자 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정법을 듣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들은 법을 바르게 잘 호지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법을 호지하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호지한 법들의 뜻을 면밀히 관찰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뜻을 면밀히 관찰하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뜻을 완전하게 알고 법을 완전하게 안 뒤에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읋 실천하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마하나마여, 이렇게 재가 신도가 자신의 이익은 위하지만 남의 이익을 위하지 않는 실천을 하게 된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재가신도가 자신의 이익도 위하고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을 하게 됩니까?”
“마하나마여, 재가 신도가 자신도 믿음을 갖추고 남으로 하여금 믿음을 갖추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계를 갖추고 남으로 하여금 계를 갖추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보시를 갖추고 남으로 하여금 보시를 갖추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비구들을 친견하고자 하고 남으로 하여금 비구들을 친견하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정법을 듣고자 하고 남으로 하여금 정법을 듣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들은 법을 바르게 잘 호지하고 남으로 하여금 법을 호지하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호지한 법들의 뜻을 면밀히 관찰하고 남으로 하여금 뜻을 면밀히 관찰하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뜻을 완전하게 알고 법을 완전하게 안 뒤에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고 남으로 하여금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도록 격려한다.
마하나마여, 이렇게 재가 신도가 자신의 이익도 위하고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을 하게 된다.”
jīvakasuttaṃ (AN 8.26-지와까 경)
26.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지와까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지와까 꼬마라밧짜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지와까 꼬마라밧짜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재가 신도가 됩니까(누가 재가 신도입니까)?”
“지와까여, 세존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할 때 재가 신도가 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재가 신도가 계를 지킵니까(누가 계를 지닌 재가 신도입니까)?”
“지와까여, 재가 신도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난다. 이렇게 재가 신도는 계를 지킨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재가 신도가 자신의 이익은 위하지만 남의 이익은 위하지 않는 실천을 하게 됩니까?”
“지와까여, 재가 신도가 자신은 믿음을 갖추지만 남으로 하여금 믿음을 갖추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계를 갖추지만 남으로 하여금 계를 갖추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보시를 갖추지만 남으로 하여금 보시를 갖추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비구들을 친견하고자 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비구들을 친견하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정법을 듣고자 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정법을 듣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들은 법을 바르게 잘 호지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법을 호지하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호지한 법들의 뜻을 면밀히 관찰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뜻을 면밀히 관찰하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자신은 뜻을 완전하게 알고 법을 완전하게 안 뒤에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읋 실천하도록 격려하지 않는다.
지와까여, 이렇게 재가 신도가 자신의 이익은 위하지만 남의 이익을 위하지 않는 실천을 하게 된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재가신도가 자신의 이익도 위하고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을 하게 됩니까?”
“지와까여, 재가 신도가 자신도 믿음을 갖추고 남으로 하여금 믿음을 갖추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계를 갖추고 남으로 하여금 계를 갖추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보시를 갖추고 남으로 하여금 보시를 갖추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비구들을 친견하고자 하고 남으로 하여금 비구들을 친견하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정법을 듣고자 하고 남으로 하여금 정법을 듣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들은 법을 바르게 잘 호지하고 남으로 하여금 법을 호지하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호지한 법들의 뜻을 면밀히 관찰하고 남으로 하여금 뜻을 면밀히 관찰하도록 격려한다.
자신도 뜻을 완전하게 알고 법을 완전하게 안 뒤에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고 남으로 하여금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도록 격려한다.
지와까여, 이렇게 재가 신도가 자신의 이익도 위하고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을 하게 된다.”
paṭhamabalasuttaṃ (AN 8.27-힘 경1)
27. “비구들이여, 이런 여덟 가지 힘이 있다. 무엇이 여덟인가?
비구들이여, 아이들은 우는 것이 힘이다. 여자들은 화내는 것이 힘이다. 도둑들은 무기(武器)가 힘이다. 왕은 통치권이 힘이다. 어리석은 자는 불평하는 것이 힘이다. 현자들은 신념(확신)이 힘이다. 많이 배운 사람들은 숙고하는 것이 힘이다. 사문과 바라문들은 인욕하는 것이 힘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힘이 있다.”
dutiyabalasuttaṃ (AN 8.28-힘 경2)
28.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사리뿟따여, 번뇌 다한 비구에게는 몇가지 힘이 있어서 그 힘을 갖춘 번뇌 다한 비구가 ‘나에게 번뇌들은 다했다.’고 번뇌의 소멸을 천명하는가?”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에게는 여덟 가지 힘이 있어서, 그 힘을 갖춘 번뇌 다한 비구는 ‘나에게 번뇌들은 다했다.’라고 번뇌들의 소멸을 천명합니다. 어떤 여덟입니까?”
여기,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는 모든 형성된 것들[諸行]을 무상하다고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봅니다.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가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보는 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입니다. 그 힘을 가져서 번뇌 다한 비구는 ‘나에게 번뇌들은 다했다.’라고 번뇌의 소멸을 천명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는 숯불구덩이의 비유를 통해 감각적 쾌락을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봅니다.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가 숯불구덩이의 비유를 통해 감각적 쾌락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보는 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입니다. 그 힘을 가져서 번뇌 다한 비구는 ‘나에게 번뇌들은 다했다.’라고 번뇌의 소멸을 천명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의 마음은 멀리 떠남으로 향하고, 멀리 떠남으로 기울고, 멀리 떠남에 기대고, 멀리 떠남에 머물고, 출리를 기뻐하고, 모든 곳에서 번뇌를 일으킬만한 법들을 없애버립니다.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의 마음이 멀리 떠남으로 향하고, 멀리 떠남으로 기울고, 멀리 떠남에 기대고, 멀리 떠남에 머물고, 출리를 기뻐하고 모든 곳에서 번뇌를 일으킬만한 법들을 없애버리는 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입니다. 그 힘을 가져서 번뇌 다한 비구는 ‘나에게 번뇌들은 다했다.’라고 번뇌의 소멸을 천명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四念處]을 잘 닦았고 완전하게 익혔습니다.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잘 닦았고 완전하게 익힌 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입니다. 그 힘을 가져서 번뇌 다한 비구는 ‘나에게 번뇌들은 다했다.’고 번뇌의 소멸을 천명합니다.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는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잘 닦았고 완전하게 익혔습니다.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가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잘 닦았고 완전하게 익힌 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입니다. 그 힘을 가져서 번뇌 다한 비구는 ‘나에게 번뇌들은 다했다.’고 번뇌의 소멸을 천명합니다.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는 다섯 가지 근[五根]을 잘 닦았고 완전하게 익혔습니다.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가 다섯 가지 근[五根]을 잘 닦았고 완전하게 익힌 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입니다. 그 힘을 가져서 번뇌 다한 비구는 ‘나에게 번뇌들은 다했다.’고 번뇌의 소멸을 천명합니다.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잘 닦았고 완전하게 익혔습니다.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잘 닦았고 완전하게 익힌 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입니다. 그 힘을 가져서 번뇌 다한 비구는 ‘나에게 번뇌들은 다했다.’고 번뇌의 소멸을 천명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는 성스러운 여덟 가지 바른 길을 잘 닦았고 완전하게 익혔습니다.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가 여덟 가지 성스러운 바른 길을 잘 닦았고 완전하게 익힌 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입니다. 그 힘을 가져서 번뇌 다한 비구는 ‘나에게 번뇌들은 다했다.’고 번뇌의 소멸을 천명합니다.
세존이시여, 번뇌 다한 비구에게는 이러한 여덟 가지 힘이 있어서 그 힘을 가진 번뇌 다한 비구는 ‘나에게 번뇌들은 다했다.’고 번뇌의 소멸을 천명합니다.”
akkhaṇasuttaṃ (AN 8.29-기회 아님 경)
29. “비구들이여, ‘해야 할 일을 위해 적당한 기회(순간, 시간, 기회)가 있는 세상, 해야 할 일을 위해 적당한 기회가 있는 세상'이라고,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말한다. 그러나 그는 적당한 기회(시간)와 적당하지 않은 기회를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덟 가지는 범행을 닦는 삶을 위한 기회가 아니고 때가 아니다. 어떤 여덟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선서에 의해 선언된, 오염원들을 고요하게 하고, 오염원들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법이 설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지옥에 태어났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범행을 닦는 삶을 위한 기회가 아니고 때가 아닌 첫 번째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선서에 의해 선언된, 오염원들을 고요하게 하고, 오염원들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법이 설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축생계에 태어났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범행을 닦는 삶을 위한 기회가 아니고 때가 아닌 두 번째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선서에 의해 선언된, 오염원들을 고요하게 하고, 오염원들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법이 설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귀계에 태어났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범행을 닦는 삶을 위한 기회가 아니고 때가 아닌 세 번째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선서에 의해 선언된, 오염원들을 고요하게 하고, 오염원들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법이 설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긴 수명을 가진 신들의 무리에 태어났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범행을 닦는 삶을 위한 기회가 아니고 때가 아닌 네 번째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선서에 의해 선언된, 오염원들을 고요하게 하고, 오염원들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법이 설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비구와 비구니와 청신사와 청신녀가 가지 않는 변방 지역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존재감없는 낮은 신분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범행을 닦는 삶을 위한 기회가 아니고 때가 아닌 다섯 번째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선서에 의해 선언된, 오염원들을 고요하게 하고, 오염원들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법이 설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중심 지역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삿된 견해를 가져서 바르게 보지 못한다. ‘보시란 없다. 제물이 없다. 제사(헌공)한 것도 없다. 선업과 악업에 대한 결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세상에 없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범행을 닦는 삶을 위한 기회가 아니고 때가 아닌 여섯 번째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선서에 의해 선언된, 오염원들을 고요하게 하고, 오염원들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법이 설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중심 지역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지혜가 없고 어리석고 바보여서, 잘 설해진 것인지 잘못 설해진 것인지 그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없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범행을 닦는 삶을 위한 기회가 아니고 때가 아닌 일곱 번째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지 않는다. 그리고 선서에 의해서 선언된 오염원들을 고요하게 하고 오염원들을 완전하게 소멸시키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법이 설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중심 지역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지혜를 가졌고 어리석지 않고 바보가 아니어서 잘 말해진 것인지 잘못 말해진 것인지 그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범행을 닦는 삶을 위한 기회가 아니고 때가 아닌 여덟 번째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범행(梵行)을 닦는 삶을 위한 기회가 아니고 때가 아닌 여덟 가지이다.
비구들이여, 오직 한 가지가 범행을 닦는 삶을 위한 기회이고 때이다. 무엇이 하나인가?
비구들이여,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선서에 의해 선언된, 오염원들을 고요하게 하고, 오염원들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법이 설해진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중심 지역에 태어났다. 그는 지혜를 가졌고 어리석지 않고 바보가 아니어서 잘 말해진 것인지 잘못 말해진 것인지 그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오직 한 가지가 범행을 닦는 삶을 위한 기회이고 때이다."
'정법이 잘 설해질 때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때를 얻지 못하는 자들은
그 때를 놓쳐버렸다. 적당하지 않은 시기는 사람에게에게 크나큰 장애라고 말한다.
여래들은 참으로 드물게 세상에 태어난다. 그들을 친견하기란 세상에서 참으로 어렵다.
그러므로 인간으로 태어남을 얻었고 정법의 가르침이 있을 때 번영을 원하는 사람은
거기서 정진해야 한다.
어떻게 정법을 알고서도 그 시기를 그냥 보내버린단 말인가?
바른 시간을 놓쳐버린 자들은 지옥에 태어나서 슬퍼할 것이다.
여기서 정법의 확실성을 잃어버린 자는 상인이 이익을 놓쳐버리고
오래도록 괴로워하는 것과 같다. 무명에 가린 사람은 정법으로부터 멀어진다.
오랫동안 나고 죽는 윤회를 받는다.
정법이 잘 설해질 때 인간으로 태어나서 스승의 가르침대로 행했고 행할 것이고
행하는 자들은 세상에서 위없는 청정범행을 닦을 바른 시간를 얻은 것이다.
여래가 선언한 법을 닦고 눈을 가진 태양의 후예가 설한 대로 단속하고 제어하고
항상 마음 챙기고 욕망이 일어나지 않게 하며 마라의 영역이라 불리는 윤회로 나아감을
끊어버리고 번뇌 다함을 얻은 자는 세상의 피안에 이르 게 된다.'
anuruddhamahāvitakkasuttaṃ (AN 8.30-아누룻다의 깊은 사유 경)
30.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박가에서 숨수마라기리의 베사깔라 숲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에 아누룻다 존자는 쩨띠에서 빠찌나왕사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아누룻다 존자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있을 때에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법은 바라는 바가 적은[少慾]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바라는 바가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만족할 줄 아는[知足]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홀로 평온하게 머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법은 무리지어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마음 챙김을 확립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마음 챙김을 놓아버린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삼매를 성취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삼매를 서취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지혜를 갖춘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지혜가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누룻다 존자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리시고 마치 힘 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과 같은 시간에 박가에서 숨수마라기리의 베사깔라 숲에 있는 사슴동산에서 사라져 쩨띠에서 빠찌나왕사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는 아누룻다 존자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아누룻다 존자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누룻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여!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 법은 바라는 바가 적은[少慾]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바라는 바가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만족할 줄 아는[知足]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홀로 평온하게 머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법은 무리지어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마음 챙김을 확립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마음 챙김을 놓아버린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삼매를 성취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삼매를 성취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지혜를 갖춘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지혜가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일곱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떠올린 것은 훌륭하다. 그렇다면, 아누룻다여, 그대는 이 여덟 번째 대인의 생각도 떠올려야 한다.
‘이 법은 희론 없음을 좋아하고 희론 없음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희론을 좋아하고 희론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러한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을 떠올릴 때, 아누룻다여, 그대는 바라는 만큼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러한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을 떠올릴 때, 아누룻다여, 그대는 바라는 만큼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러한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을 떠올릴 때, 아누룻다여, 그대는 바라는 만큼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러한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을 떠올릴 때, 아누룻다여, 그대는 바라는 만큼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 [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러한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을 떠올리고, 또한, 높은 마음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을 때, 아누룻다여, 그대에게, 마치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인 옷이 가득 담긴 옷상자처럼, 분소의는 그대를 만족하면서 머물게 하고, 기쁘게 하고, 산만하게 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열반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러한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을 떠올리고, 또한, 높은 마음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을 때, 아누룻다여, 그대에게, 마치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주어진 잡곡이 섞이지 않은 최상의 쌀밥과 여러 가지 국과 여러 가지 반찬처럼, 탁발음식은 그대를 만족하면서 머물게 하고, 기쁘게 하고, 산만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열반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러한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을 떠올리고, 또한, 높은 마음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을 때, 아누룻다여, 그대에게, 마치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소유한 안팎이 회반죽으로 잘 칠해졌고 바람막이가 잘 되어 있으며 빗장이 채워졌고 여닫이 창문이 부착되어 있고 누각이 있는 저택처럼, 나무 아래에 머무는 것은 그대를 만족하면서 머물게 하고, 기쁘게 하고, 산만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열반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러한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을 떠올리고, 또한, 높은 마음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을 때, 아누룻다여, 그대에게, 마치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소유한 긴 양털의 덮개가 펴져있고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흰색의 모직 이불이 깔려있고 사슴 가죽의 깔개가 있고 양쪽에 빨간 받침이 있는 침상처럼, 건초를 깔아 만든 침상은 그대를 만족하면서 머물게 하고, 기쁘게 하고, 산만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열반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러한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을 떠올리고, 또한, 높은 마음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을 때, 아누룻다여, 그대에게, 마치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사용하는 생 버터, 정제된 버터, 기름, 꿀, 당밀과 같은 여러 가지 약처럼, 썩은 오줌으로 만든 약은 그대를 만족하면서 머물게 하고, 그대를 기쁘게 하고, 산만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열반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누룻다여, 그대는 다가오는 우기철의 안거를 여기 쩨띠의 빠찌나왕사 사슴동산에서 지내도록 하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누룻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가르침을 주신 뒤에 마치 힘 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과 같은 시간에
쩨띠의 빠찌나왕사 사슴동산에서 사라져서 박가의 숨수마가기리의 베사깔라 숲에 있는 사슴동산에 나타나셨다.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셧다. 자리에 앉으시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을 설하겠다.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인가?
비구들이여, 이 법은 바라는 바가 적은[少慾]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바라는 바가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만족할 줄 아는[知足]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홀로 평온하게 머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법은 무리지어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마음 챙김을 확립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마음 챙김을 놓아버린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삼매를 성취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삼매를 성취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지혜를 갖춘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지혜가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희론 없음을 좋아하고 희론 없음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희론을 좋아하고 희론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바라는 바가 적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바라는 바가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바라는 바가 적은 비구는 ‘나를 바라는 바가 적은 자라고 알아주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나를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알아주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홀로 머무는 사람은 ‘나를 홀로 머무는 사람이라고 알아주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은 ‘나를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이라고 알아주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마음 챙김을 확립한 사람은 ‘나를 마음 챙김을 확립한 사람이라고 알아주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삼매를 성취한 사람은 ‘나를 삼매를 성취한 사람이라고 알아주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지혜를 갖춘 사람은 ‘나를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고 알아주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희론 없음을 즐기는 사람은 ‘나를 희론 없음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알아주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바라는 바가 적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바라는 바가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의복이나 탁발음식이나 거처나 병구완을 위한 약품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그것으로 만족한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홀로 평온하게 머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무리지어 사는 것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가 홀로 평온하게 머물 때 비구들이나 비구니들이나 남자 신도들이나 여자 신도들이나 왕들이나 왕의 대신들이나 외도들이나 외도의 제자들이 찾아온다. 그러면 거기서 비구는 멀리 떠남으로 향하고 멀리 떠남으로 기울고 멀리 떠남에 기대고 멀리 떠남에 머물고 출리를 기뻐하는 마음으로 멀리 떠남을 칭송하는 것과 관계된 이야기를 한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홀로 평온하게 머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무리지어 사는 것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선하지 않은 법을 제거하고 선한 법들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며 머문다. 그는 굳세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선한 법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열심히 정진하는 자를 위한 것이지 게으른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마음 챙김을 확립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마음 챙김을 놓아버린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 챙김을 닦는 자이다. 그는 최상의 마음 챙김과 신중함을 갖추어 오래 전에 행하고 오래 전에 말한 것일지라도 모두 기억하고 생각해낸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마음 챙김을 확립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마음 챙김을 놓아버린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삼매를 성취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삼매를 성취하지 못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삼매에 든 자를 위한 것이지 삼매에 들지 못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지혜를 갖춘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지혜가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지혜를 가졌다. 그는 일어나고 사라짐을 철저히 알아 차리고, 성스러운 통찰에 의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지혜를 갖추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지혜를 갖춘 자를 위한 것이지 지혜가 없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희론 없음을 좋아하고 희론 없음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희론을 좋아하고 희론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의 마음은 희론의 소멸에 들어가고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안정되고 확고하고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희론 없음을 좋아하고 희론 없음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희론을 좋아하고 희론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아누룻다 존자는 다가오는 우기철의 안거도 쩨띠에서 빠찌나왕사의 사슴동산에서 지냈다. 그리고 아누룻다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성취하고자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았다. 아누룻다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아누룻다 존자는 아라한과를 얻은 바로 그 시간에 이런 게송을 읊었다.
'세상의 위없는 스승께서는 나의 사유를 잘 아신 뒤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신통으로써 내게 다가오셨다.
나의 사유와 그것을 넘어선 여덟 번째 사유를 말씀하셨다.
희론 없음을 좋아하는 세존께서는 분별 없음을 말씀하셨다.
나는 그분의 법을 잘 알아서 가르침을 기뻐하며 머물렀다.
세 가지 명지를 증득해서 세존의 가르침을 완성하였다.'
제3장 장자 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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