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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상윳따 - 제3장 꼬띠가마 품(SN56:21-SN56:30. Koṭigāma-vagga)

실론섬 2014. 9. 7. 14:31

 

제3장 꼬띠가마 품
Koṭigāma-vagga

paṭhamakoṭigāmasuttaṃ (SN 56.21-꼬띠가마 경1)  

1091. 한 때에 세존께서는 왓지에서 꼬띠가마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철저히 알아 차리지 못해서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유전하고(옮겨가고) 윤회하였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철저히 알아 차리지 못해서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유전하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철저히 알아 차리지 못해서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유전하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철저히 알아 차리지 못하해서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유전하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철저히 알아 차리지 못해서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유전하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철저히 알아 차렸다.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철저히 알아차렸다.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철저히 알아차렸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철저히 알아차렸다. 존재에 대한 갈애를 잘랐고(끊었고), 존재의 그물을 걷어내었다(존재로 인도함은 부수어졌다). 다시 태어남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이제 다음의 존재는 없다).”라고.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거듭 태어나면서 긴 세월을 윤회하였다.

 

네 가지 진리를 철저히 알아차려서 존재의 그물을 벗겨 버렸다.  

괴로움의 뿌리를 잘랐고, 다시 태어남이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dutiyakoṭigāmasuttaṃ (SN 56:22-고띠가마 경 2)
1092.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면,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지 못하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 답지 못하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도 아니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證智.증지) 겪어 알아(現證.현증), 갖추어 머무는 것도 아니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아는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이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문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괴로움을 철저히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근원을 철저히 알지 못하며  

어디서 괴로움이 남김없이   

모두 소멸하는지도 철저히 알지 못하고  

괴로움을 가라앉힘에 이르는   

길도 철저히 알지 못하는자들은  

 

마음을 통한 해탈을 성취하지 못하고 

지혜를 통한 해탈도 성취하지 못한다.

그들은 끝을 이룰 수 없기에  

태어남과 늙음으로 윤회한다.    

 

괴로움을 철저히 알고  

괴로움의 근원을 철저히 알며  

어디서 괴로움이 남김없이  

모두 소멸하는지도 철저히 알고  

괴로움을 가라앉힘에 이르는  

길도 철저히 아는 자들은  

 

마음을 통한 해탈을 성취하고  

지혜를 통한 해탈도 성취한다.

그들은 끝을 이루었기에  

태어남과 늙음으로 윤회하지 않는다.”

 

sammāsambuddhasuttam (SN 56.23-정등각 경)
109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렸기 때문에 여래∙아라한∙정등각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arahantasuttaṃ (SN 56.24-아라한 경)
1094.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과거에 있는 그대로 깨달았던(알아차렸던) 아라한∙정등각들은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미래에 있는 그대로 깨달을 아라한∙정등각들은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깨달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현재에 있는 그대로 깨달은 아라한∙정등각들은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깨닫는다. 

 

어떤 네 가지인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과거에 있는 그대로 깨달았던(알아차렸던) 아라한∙정등각들은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미래에 있는 그대로 깨달을 아라한∙정등각들은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깨달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현재에 있는 그대로 깨달은 아라한∙정등각들은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깨닫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āsavakkhayasuttaṃ (SN 56.25-번뇌의 부서짐 경)
1095. “비구들이여,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을 나는 말한다.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에게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이 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이 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이 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mittasuttam (SN 56.26-친구 경)
1096.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연민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 또한 그대들 말이라면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친구나 동료나 친지나 혈육들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철저히 알아차리도록 그대들은 격려해야 하고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믿음]을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연민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 또한 그대들 말이라면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친구나 동료나 친지나 혈육들이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철저히 알아차리도록 그대들은 격려해야 하고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믿음을]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tathasuttam (SN 56.27-진실함 경)
1097.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는 진실하고 거짓이 아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성스러운 진리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lokasuttam (SN 56.28-세상 경)
1098.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비구들이여, 하늘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의 인간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 가운데에서 여래가 바로 성스러운 분이다. 그래서 성스러운 진리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pariññeyyasuttam (SN 56.29-철저히 알아야 함 경)
1099.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가운데 철저하게 알아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철저하게 버려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철저하게 실현해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철저하게 닦아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철저하게 알아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인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철저하게 버려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인가?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는 철저하게 버려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철저하게 실현해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인가?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는 실현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철저하게 닦아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인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는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닦아야 한다."

 

gavampatisuttam (SN 56.30-가왐빠띠 경)  
1010. 한 때에 많은 장로 비구들이 쩨띠에서 사하자띠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많은 장로 비구들은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원형천막에 함께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반들이여, 괴로움을 본 사람은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도 봅니까?”
이렇게 말하자 가왐빠띠 존자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저는 이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을 본 사람은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본다.’라고.”

 

 

제3장 꼬띠가마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