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근본불교) 이야기

불교는 인과법이다

실론섬 2015. 1. 2. 17:15

윤회란 무엇인가?

윤회란 도덕적 인과율이다. 즉 다시말해서 우리가 신.구.의로 의도적으로 행하는 행위에 대한 도덕적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행하는 행위에는 선하거나(십선행) 또는 악하거나(십악행) 딱 두 가지 밖에 없다. 그리고 행한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결과물을 받게 된다. 그것이 인과응보이며 자업자득이며 연기인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어떠한 경우에도 없다는 것이다.


식물이나 인지나 지각의 능력이 없는 동물들도 윤회하는가?

윤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윤회는 의도된 행위에 의한 업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의도된 행위란 인지나 인식의 능력이 있는 중생들(동물포함)에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무가 죽어서 씨앗을 남기고 그것이 다시 싹을 틔우고 또는 미생물이나 굼벵이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연현상이고 자연의 순환이라는 것이다. 윤회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많은 불자분들은 윤회를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한다고 착각을 하곤한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의도된 행위에 의한 업의 결과가 바로 윤회이니 의도된 행위를 할 수 없는 미생물이나 지각이나 인지능력이 없는 생명체들이 윤회를 하며 업보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네 발 달린 짐승까지만을 윤회계에 속한 중생들로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물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윤회계에 넣지 않는다. 그럼 이런 동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그것을 본능 본능적 행동이라고 표현한다. 즉 의도된 행위 행동이 아니다.


불교는 살생을 금지하며 온 세계에 두루한 자비를 주장한다. 하지만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좁게 보면 죄의 크고 낮음이 있다. 즉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가장 큰 죄로 보고 그다음에 네발 달린 짐승 그다음에 인지능력 순으로... 이런식으로 죄의 높고 낮음을 이야기한다. 윤회가 가능한 중생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무거운 죄로 다루고 그리고 윤회계에 속하지 않는 생명들을 빼앗는 것은 그 다음으로 보는 것이다. 다시말하자면 모기를 죽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의 값이 다르다.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짓기 위하여 물을 끓이는 그 속에도 수많은 미생물들이 있다. 김치나 발효식품속에도 엄청난 생명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김치를 먹어서 그 안에 있는 생물들을 먹어서 죽였다고 이게 목숨을 빼앗은 것인가? 


윤회는 지금 여기 이곳에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모습이 다르듯이 환경도 다르게 태어난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하고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허약하고 가난하게 태어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과거의 업보에 따라 태어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혹자는 로또복권식으로 당첨되어 태어난다는 말도 하는 것을 들었지만 한마디로 평가할 가치도 없는 논리이다. 그리고 살면서 잘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부도를 내고 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만히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럴만한 원인이 모두다 있다. 원인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다. 모든 원인은 나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붓다께서는 윤회와 중생들의 삶에 대해서 엄중하게 훈계하고 계시다. 즉 "어둠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빛에서 어둠으로, 빛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삶"을 네 가지로 분류하시고 각자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냉철하게 판단하여 선택하라고 하신다. 


불교는 인과법이다

불교는 인과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인과법이 숙명론이나 운명론은 절대로 아니다. 왜냐하면 인과에 따른 업보란 우리들이 얼마든지 고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렵게 태어나더라도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면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더라도 "빛에서 어둠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면 반드시 그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다.


불교는 남을 탓하는 종교가 아니다. 참회란 내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행위이다. 나와 관련하여 일어나는 일들이 나와 관련되어 있지 않고 전부다 남의 탓이다는 망상은 참으로 허망한 것이다. 타종교처럼 절대자나 신이 나를 대신해서 죄를 감면해주지도 않는다. 무조건 믿으면 죄가 면해져서 천당간다고 불교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모두다 내 탓일뿐 남의 탓이 아니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고 그것이 연기이다.


윤회는 세 치 혀끝의 희론이나 철학놀음의 교리가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며 중생들의 삶과 함께하는 법칙일 뿐이다.


믿든가 말든가

경전에서는 업보에 따른 천상과 지옥행을 믿고 안 믿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옥이 없다고 믿고 현생을 온갖 악행으로 함부로 살다가 죽어 막상 지옥이 없다면 그는 한 가지를 잃어 버린다.  현생에서 비난받는 것이다. 하지만 몸이 무너진 뒤 지옥이 있다면 그는 두 가지를 잃어 버린다. 한 가지는 현생에서 비난 받는 것이요 두 번째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지옥이 있다고 믿고 현생에서 착한 일을 하며 살다가 몸이 무너진 뒤 지옥이 없다면 그는 한 가지를 얻는다. 즉 현생에서 공경받고 존경받는 것이다. 하지만 몸이 무너진 뒤 지옥이 있다면 그는 두 가지를 얻는다. 한 가지는 현생에서 존경과 공경을 받은 것이요 또다른 한 가지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