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근본불교) 이야기

나를 위해서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다

실론섬 2015. 1. 3. 14:07

내가 슬프다고 남에게 그것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사회적으로 큰 사건 사고가 나면 온 국민이 슬퍼하고 애도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써 일정한 도덕적 의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감정과 판단의 문제이다.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더라도 어떤 장면에서 우는 사람과 울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내가 슬프니까 너도 슬프해야 한다는 억지가 한국사회에는 만연하고 있다. 내 감정에 동조하지 않으면 곧바로 적이 되어 버린다. 타인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너무 앞세우는 것이다. 자신만이 옳다는 황당한 사고방식이 지배해 버린 결과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이념과 정치적 성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뿐더러 최고의 가치관인냥 떠벌리는 묘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이 실제적인 비극의 촛점은 사라지고 정치적 이념적 사고방식이 사회를 짓눌렀다. 몇개월씩 식당문을 닫아야 하고 tv 에 나온다고하면 무조건 노란 리본을 웃주머니에 달아야 했다. 내가 슬프니 너도 슬퍼해야 한다는 억지가 이렇게까지 통하는 사회는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 


세월호에는 학생들을 잃어버린 부모도 있지만,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 자식도 있고, 다 큰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등도 있다. 하지만 모두다 집단 체면이나 걸린듯 학생을 잃어버린 부모가 전부인냥 행세하고 그들의 슬픔을 모든 국민들이 다함께 짊어지고 가는 것도 부족하여 학생들을 잃어버린 부모들 이상으로 타인들도 슬퍼해야 한다는 광대놀음같은 분위기가 휩쓸고 갔다. 같은 시각에 20여명이 넘는 우리들 어머니 아버지가 불에 타서 죽은 요양원의 화재사건도 있었고 젊은 학생들이 눈과 건물에 깔려 죽은 경주리조트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사건에 뭍혀 버렸다. 같은 죽음인데도 이념과 정치사상이 세월호 사건에 광풍처럼 휘몰아 쳤기 때문이다.


내 아들 살리라고 남의 죽음을 강요할 수는 없다

화재현장에 소방수가 달려왔다. 그런데 건물 내부에 아직 생존자들이 있다. 그런데 건물이 무너지니 그 생존자들을 구해내기 위해서 달려든다면 100% 죽게 된다. 그렇다면 소방수는 들어가지 않는게 당연한 이치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애꿎은 잠수부들이 여럿 희생되었다. 외국의 실례로 본다면 위험이 있고 가망성이 없으면 구조를 하지 않는게 상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죽든말든 내자식 찾아내라고 윽박지르고 강요한다. 그리고 죽은 내자식을 위해서 남의 생명 내 놓지 않았다고 농성한다. 


얼마전 일본에서 화산폭발로 수십명이 매몰되었다. 하지만 구조대가 도착했지만 구조에 나서면 구조대의 목숨이 위험하기 때문에 구조를 포기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도 구조대가 위험때문에 구조를 포기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한해에도 수만명의 인류들이 배침몰사고로, 산사태로, 화재로, 차량사고등등으로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내 가족의 목숨을 위해서 타인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법은 없다. 그리고 정부나 사회를 탓하지도 않는다. 내가 남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할 권리나 이유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죽는 모습은 인과응보이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타인들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다. 가까이는 부모님들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의 죽음과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들의 죽음을 본다.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기도 하고, 어떤 부모는 몇년간의 병으로 자식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남기고 죽고, 어떤 자식들은 가정을 패가망신으로 몰고가면서 죽는다. 반면 어떤 부모들은 많은 재산을 자식에게 남기고 죽고, 어떤 자식들은 평생 부모가 벌어도 못 벌 큰 돈을 남기고 죽는다. 죽음이라는 결과는 같아도 남기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왜 그럴까? 인과응보이며 자업자득이며 연기이기 때문이다. 연기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것이 연기이다. 우리가 남에게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해야하는 이유도 바로 우리들은 각자 모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연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의 불행이 남의 행복이 되고, 남의 불행이 결코 나의 행복이 되지 않는다고 불교는 말한다. 


죽음을 공부해야 불교도이다

불교에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글을 올려 놓았다. 한국인들만큼 죽음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는 국민들도 없다. 특히 불교도라고 하면서도 너무나 죽음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이 많다. 죽음에 대한 공부는 철저하게 하면 할수록 내 인생에 큰 도움으로 다가온다. 죽음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되면 "당하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되고,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들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울부짖고 당황하고 몸부림치게 된다. 하지만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막상 죽음이 내게 다가와도 편안하고 안락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들도 언젠가는 죽게 된다. 내 죽음이 "당하는 죽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준비된 죽음이 될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