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입보리행론

제6장 인욕품(忍辱品)

실론섬 2015. 6. 6. 17:13



제6장 인욕품 忍辱品


천 겁 동안 쌓은 보시와

부처님께 올린 공양,

그 모든 선행이

한순간의 분노로 무너지네.


분노보다 더한 악은 없고

인욕보다 더한 고행은 없네.

그러므로 진지하게

모든 방법으로 인욕을 수행할지니.


분노의 고통으로 가득하면

마음의 평온은 사라지고

기쁨과 안락을 얻지 못하니

잠도 오지 않고 불안해지네.


어떤 이가 재물과 명예로

은혜를 입었다 해도

그 주인이 화를 낼 때에는

대들고, 죽이려고 하네.


분노는 친한 이들조차 싫어하네.

베풂으로 회유해 보려 하지만 외면하네.

화를 내어 행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네.


분노라는 원수는

이렇게 고통을 주니.

주의하여 화를 내지 않는다면

이생에도 다음 생에도 행복할 것이네.


원하지 않는 것을 시키고

원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서 분노가 생기네.

마음의 불만을 먹이 삼아 분노를 키워

결국 나를 삼키네.


이런 나의 적, 분노의 먹이를

모두 없애야 하리.

나를 해치는 이 적보다

더 큰 적은 없네.


어떤 일이 닥쳐도

흔연한 마음만은 잃지 말지니

흔연해서 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모든 선행은 시드네.


10 

만약 바꿀 수 있다면

싫어할 것이 무엇이며

만약 바꿀 수 없다면

싫어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11 

나와 내편인 사람에게는

고통이나 경멸, 험담,

명예롭지 않는 일이 없길 바라는데

적에게는 그 반대이길 바라네.


12 

행복의 원인은 드물지만

고통의 원인은 너무나 많네.

고통 없이 싫어서 멀리하는 마음(염리심厭離心)은 생기지 않으니

마음 그대여! 굳건하게 머물지니.


13 

두르가 여신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 고행을 하는

까르나빠 사람은

태우고, 잘리는 고통에도

무의미한 인내를 하는데

해탈을 하겠다는 내가 어찌 이리도 겁쟁이처럼 구는가?


14 

익숙해지면

모든 것은 쉬워지네.

작은 어려움에 익숙해지면

큰 어려움도 견딜 수 있으리.


15 

뱀이나 해충을 피해,

굶주림이나 목마름,

옴 같은 피부병을 의미 없는 고통으로만 여기는가?

어찌 인내의 기회로 보지 못하는가?


16 

더위와 추위, 비바람,

질병, 결박, 구타 앞에서

나약해지지 말아야 하네.

나약해지면 피해만 더욱 커지네.


17 

떤 이는 자신의 피를 보고도

더 큰 용기를 내는데

어떤 이는 남의 피를 보고도

놀라 혼절을 하네.


18 

이는 마음의 강건함과

나약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외부의 해악에 휘둘리지 말고

고통이 자리 잡을 수 없도록 할지니.


19 

현자는 고통이 생겨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네.

번뇌와 싸울 때에는

많은 고난이 따르네.


20 

모든 어려움에 상관하지 않고

분노와 같은 적을 무찌르는 사람,

그를 큰 영웅(대웅大雄)이라 하네.

세속의 영웅은 시체를 죽이는 것에 불과하네.


21 

고통에도 득이 있으니

염리심은 교만을 없애고

윤회하는 중생에게 자비심을 일으키게 하고

악을 삼가고 선을 좋아하게 하네.


22 

황달과 같은 큰 병고에는

분개하지 않으면서

어찌 중생에게만 화를 내는가?

모든 것은 조건(연緣)이 시켰을 뿐인데.


23 

비유하건데 원치 않아도

질병이 생기는 것처럼

바라지 않아도

계속하여 번뇌는 생기네.


24 

‘화를 내겠다.’는 생각 없이도

사람들은 쉽게 화를 내네.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 없이도

분노는 저절로 일어나네.


25 

세상의 모든 허물과

모든 죄악들,

전부는 조건의 힘으로 생기나니

스스로의 힘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네.


26 

이런 조건들 역시

‘고통을 발생시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며

조건에 의해 생긴 것들 역시

‘나는 조건에 의해 생겼다.’고 주장하지 않네.


27 

원질Parkriti이라 여기는 것과

나Atman라고 이름 붙인 것

이것을 ‘내가 생기겠다.’ 해서

일부러 생긴 것은 아니니.


28 

어떤 것도 생기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때 무엇이 생길 것이라고 바라겠는가?

(아我는) 항상 대상에 관여하고 있다면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29 

만약 아(我)가 ‘항상 하는 것’이라면

허공과 같이 결과를 있게 하는 것이 없음이 분명하니

다른 조건들과 만난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30 

대상에 반응 할 때에도 변함없이 남아있으니

무엇이 그것을 변하게 하겠는가?

조건이 이것(원질)에 작용한다고 한다면

그 둘의 관계는 어떤 것이겠는가?


31 

모든 존재는 서로 의지해 생기니

그러므로 항상 하는 ‘자아의 힘’은 없네.

이 사실을 알면 환영과 같은 현상에

노할 일은 없네.


32 

누가 있고, 무엇이 있어

분노를 억제한단 말인가?

그래서 없애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한다면

환영에 의지하여

환영의 고통을 끊는 것은 이치에 맞는 것이네.


33 

앞에서 말했듯이

적이나 혹은 친구의 부당한 행동을 볼지라도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

미워하지 말아야 하네.


34 

만일, 원하는 일만 일어난다면

고통을 원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그 누구에게도

고통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네.


35 

조심성 없이 자신에게조차

가시 같은 것으로 해를 입히거나

여인을 얻기 위한 탐착으로

단식까지 하네.


36 

어떤 이는 자살을 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며,

독과 해로운 음식을 먹고

박복한 행동으로

스스로를 해치기도 하네.


37 

번뇌의 힘은

소중한 자신마저 죽이는데

하물며 타인을 해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네.


38 

번뇌로 인해

자신을 해치는 사람에게

자비심은 못 낼망정

화를 내는 것은 옳지 않네.


39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어리석은 자의 본성이라면

거기에 화를 내는 것은 옳지 않으니

태움이 본성인 불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네.


40 

중생의 허물은 일시적인 것,

중생의 성품은 본래 선하네.

그러니 화를 내는 것이 옳지 않으니

허공에 연기 낀 것을 나무라는 것과 같네.


41 

몽둥이에 맞았을 때

만일 때린 사람에게 화를 낸다면

그 사람 역시 분노에게 부림을 당한 것이니

분노에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리라.


42 

내가 이전 중생에게

해를 입혔네.

내가 중생에게 해를 끼쳤듯이

나에게 해가 생기는 것은 마땅하네.


43 

적의 무기와 나의 몸,

이 두 가지 모두 고통의 원인이네.

적이 무기로 나의 몸을 해친다면

어떤 것에 화를 낼 것인가?


44 

건드리면 참을 수 없는 종기와 같이

고통으로 가득한 몸을

애착에 눈이 멀어 자신으로 여기니

그 해악을 누구에게 화 낼 것인가?


45 

어리석은 사람! 고통은 원하지 않으나

고통의 원인에는 탐착하니

자신의 허물로 비롯된 해악이거늘

왜 남을 원망하는가?


46 

비유하건대 지옥의 사자와

날카로운 칼 숲과 같이

자신의 업으로 고통이 생기나니

어느 누구에게 화를 낼 것인가.


47 

내가 지은 업에 의해

나를 해치는 이들이 생겼네.

나를 해친 중생이 지옥으로 간다면

내가 그들을 망친 것이 아닌가!


48 

적을 향해 인내한다면

나의 업은 많이 정화되겠지만

나로 인해 그들은

기나긴 고통의 지옥으로 떨어지네.


49 

나는 그들에게 해를 입힌 사람이며

그들은 나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네.

그런데 어찌 거꾸로 생각하는가?

흉악한 마음에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리라.


50 

만약, 고통을 주는 적이 내 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인욕의 미덕이 있다면 지옥에는 가지 않네.

그로인해 나는 보호를 받겠지만

그들은 무엇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겠는가?


51 

오히려 보복을 한다면

그들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내 수행마저 어긋나니

나의 인욕은 무너지네.


52 

마음은 형상이 없으니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없앨 수가 없네.

정말로 몸을 애착해서 일어난 고통이

오히려 마음을 해칠 뿐이네.


53 

모욕과 거친 말, 불쾌한 말들이

몸에 해를 끼치지 않는데

마음 그대여!

어찌 그렇게 화를 내는가?


54 

다른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이

이생에도 다음 생에도

나를 해치지 못하는데

무엇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가?


55 

재산을 얻는 것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싫어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네.

내가 얻은 이 재산은 사라지지만

죄업은 언제까지나 남을지니.


56 

차라리 오늘 죽는 것이

삿된 삶을 오래 영위 하는 것보다 나으리.

이처럼 오래 산다 해도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네.


57 

꿈 속에서

백 년간의 행복을 누리고 깨어났건

순간의 행복을 누리고

깨어났건


58 

깨어난 뒤,

행복은 다시 되돌릴 수 없네.

삶이 길거나 짧거나

죽음 앞에선 꿈과 같으리.


59 

많은 부를 얻어

오랫동안 행복을 누렸다 해도

도둑맞은 것처럼

빈 몸 빈손으로 가야 하네.


60 

만약 재물을 모은 후

죄를 없애는 복덕을 짓겠다고 하면서

재물을 벌면서 화를 낸다면

오히려 죄가 되지 않겠는가?


61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내가 살아왔는데

만일 그것이 흩어진다면

악행만 저지른 것이니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62 

만일, 서로 신뢰가 떨어져

내 험담을 할 때, 화를 낸다면

다른 사람을 험담할 때

그대는 왜 화를 내지 않는가?


63 

믿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라며

불신을 그대가 참을 수 있다면

번뇌에서 비롯된 곱지 않은 말들을

어찌 참지 못하는가?


64 

불상과 불탑,

정법을 비방하고 훼손해도

내가 화를 내는 것은 옳지 않네.

그것은 부처님께 해가 되지 않네.


65 

스승과 형제와 같은 가까운 이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 역시

이전의 업연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아

분노를 없애야 하네.


66 

몸을 가진 중생은

다른 중생과 무정물 둘 다로부터 해를 입는데

왜 중생에게만 화를 내는가?

그러므로 해악을 인내할지니.


67 

한 사람은 무지 때문에 죄를 짓고

이에 다른 사람이 무지로 인해 화를 낸다면,

누구는 허물이 없다 하고

누구는 허물이 있다 할 것인가?


68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치게끔 하는

그런 업을 내가 왜 지었던가?

모든 현상이 지은 업에 의한 것이라면

내가 지은 업에 어찌하여 화를 내는가?


69 

이제 알았으니

반드시 모두가 자애로운 마음을 갖도록

나는 복 쌓는데

마음을 쓰리라.


70 

예로 집을 태우는 불이

다른 집으로 번진다면

지푸라기 같이 불길을 번지게 하는 것들을

끌어내는 것이 옳네.


71 

어떤 것에 집착하여 (재물과 명예와 같은 것에 집착하여)

분노의 불길이 번질 때면

복덕의 보배가 불타지 않도록

집착의 근원을 없애야 하네.


72 

사형선고를 받은 이가 손이 잘리는 것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다면 다행스런 일.

인간으로 살면서 겪는 고통으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73 

지금의 이 고통 정도도

내가 인내하지 못한다면

지옥 고통의 원인인 성냄은

어찌 버리지 못한단 말인가!


74 

욕심 때문에 불타는 지옥을

수 천 번 경험했지만

나는 자신을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선행을 하지 않았네.


75 

이타행을 위한 고행에는 어떤 손해도 없으며

깨달음 또한 이룰 수 있으니

중생의 해를 없애 줄 수 있는 고행을

오직 기뻐하며 행해야 마땅하리라.


76 

다른 사람이 적의 덕을 칭찬하며

기뻐한다면

마음 그대여, 그것을 찬탄하며

왜 좋아하지 못하는가?


77 

그대가 좋아하는 행복은

즐거움의 근원이지 악한 것은 아니며

성현들이 좋아하시며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하네.


78 

다른 사람에게는 행복해진다고 말하면서

그대 자신은 오히려 원치 않는다면

마치 품삯이나 보시를 거절하는 것과 같이

이승과 저승에서도 행복이 사라지네.


79 

나의 덕을 칭찬할 때

그 사람까지도 즐거워하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의 덕을 칭찬할 때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옳지 않네.


80 

일체 중생을 위해

깨달으려 하면서

중생 스스로가 행복을 구하는 것에

어찌 시기하는가?


81 

모든 중생이

삼계의 귀의처인 부처가 되길 바란다 하면서

그들이 받는 작은 존경을 보고서

어찌 그렇게 싫어하는가?


82 

내가 돌보고

베풀어야 할 중생이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왜 도리어 화를 내는가?


83 

중생이 행복해지는 것은 바라지 않으면서

그들이 깨닫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 얻는 이익에 화를 낸다면

보리심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84 

만일 보시자가 재물을 적에게 주든

스스로 갖고 있든

그것이 그대 것이 아닌데

(적에게) 주든 주지 않든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85 

복덕과 신심 같은

자신의 공덕을 왜 버리는지?

공덕의 씨앗은 버리는 자신에게는

왜 화를 내지 않는지 말해보라.


86 

그대는 스스로 지은 죄악에

괴로워하기는커녕

다른 사람이 지은 복덕에

시기 질투하는가?


87 

만일, 그대가 적을 미워하여 그가 불행해진다면

그대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그대의 저주만으로는

그를 해칠 수 없네.


88 

그대의 바람대로 그에게 고통이 생겼다고

그대가 좋아할 까닭이 있는가?

만약 ‘통쾌하다.’ 한다면

나와 남이 파멸하는 것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89 

번뇌의 어부가 던진 낚시 바늘은

흉악하고 날카롭네.

그 바늘에 꿰어 지옥 가마솥으로 들어가면

지옥사자가 나를 삶을 것은 분명한 일.


90 

칭찬을 듣고, 명성을 얻는다 해서

복덕이 되는 것은 아니며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무병장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몸이 편안해지는 것 또한 아니네.


91 

진정 자신에게 무엇이 이익인지 안다면

그런 일에 무슨 가치를 두겠는가?

다만 내가 즐거움을 바라기 때문이라면

차라리 도박이나 술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이네.


92 

명예를 위해 재산을 탕진하고

영웅이란 이름을 얻기 위해 나 자신까지 죽인다면

세상의 명성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죽고 나면 누구에게 이득이 되겠는가?


93 

모래성이 무너질 때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울던가?

그처럼 칭찬과 명예가 사라질 때

우리 마음은 어린 아이와 같아지네.


94 

소리 그 자체는 마음이 없기에

나를 칭찬할 수 없네.

‘나를 칭송하는 사람이 좋아한다.’는 것이

내가 기뻐하는 이유라 한다면.


95 

나나 남이나 할 것 없이

다른 사람의 기쁨이 나에게 무슨 득이 될까?

기쁨과 행복은 칭찬하는 사람의 몫이기에

내가 얻을 것은 없네.


96 

그의 행복에서 나의 행복을 찾는다면

모든 사람에게 그와 같이 해야 할지니.

이처럼 다른 사람의 기쁨이 내 행복이 된다면

나도 행복하지 않겠는가?


97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하는 것으로

스스로 기뻐한다면

그것 또한 옳지 않으니.

우치한 행동일 뿐이네.


98 

타인의 칭찬은 나를 미혹케 하고

염리심을 사라지게 하며

덕이 있는 사람을 질투하게 하고

원만함도 사라지게 하네.


99 

내가 칭찬 받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내가 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100 

나는 해탈에 뜻을 두었으니

부와 존경에 구속될 필요가 없네.

어떤 사람이 이런 속박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려 하는데

어찌 그에게 분노를 일으키랴.


101 

‘윤회’ 라는 고통의 집으로 들어서려는 나에게

부처님의 가피와 같이,

막아서는 문이 되니

내 어찌 거기에 분노를 일으키랴.


102 

내가 공덕을 쌓는데 방해가 되기에

화를 내는 것은 옳지 않네.

인욕만한 고행이 없으니

거기에 내가 머물러야 하지 않겠는가?


103 

만일 내 허물로

인내하지 못한다면

공덕을 지을 기회를

스스로가 훼방하는 것이네.


104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도 멸하네.

이것이(원수) 있으므로 저것(인내)가 있는 것인데

어떻게 원수가 방해라 하는가?


105 

(공양) 때에 맞춰 나타난 걸인이

보시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네.

출가의 장애 요인들이

출가를 방해 할 수는 없네.


106 

세상에 ‘구걸하는 사람’은 많아 보시할 기회는 많지만

해를 입히는 자는 드물어 인욕할 기회는 적네.

이처럼 내가 남을 해치지 않으면

그도 나를 해치지 않네.


107 

별 어려움 없이

집안에 앉아 보물을 얻은 것처럼

보살행에 도움이 되는

적을 나는 좋아하리라.


108 

적을 통해 내가 인욕을 성취했다면

인내의 결과를

적에게 먼저 보답해야 하니

그가 인욕의 씨앗이기 때문이네.


109 

적이 나에게 인욕을 성취하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기에

공양을 올릴 대상이 아니라 한다면

깨달음의 씨앗이 되는

정법에는 어찌하여 공양을 올리는가?


110 

적은 나를 해칠 의도가 있으므로

공양을 올릴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의사처럼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서

내가 인욕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111 

큰 분노에서 인욕이 생기나니,

적은 인욕의 씨앗이므로

정법처럼

공양을 받을만하네.


112 

중생심이 곧 부처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네.

중생을 기쁘게 함으로써

완전한 피안에 이를 수 있네.


113 

중생과 부처로 통해

불법을 성취하는 것은 같은데

부처님을 존경하듯이

중생들을 왜 존경하지 않는가?


114 

생각의 공덕은 다르지만

그 열매는 같네.

중생에게도 공덕이 있으니

동등하네.


115 

자애심으로 중생에게 공양을 하는 것은

중생의 덕이며

부처님을 믿는 것은

부처님의 덕이네.


116 

부처가 되는 것은

부처나 중생이나 같다고 할 수 있네.

그러나 부처님의 무한한 공덕의 바다는

같을 수 없네.


117 

무량한 부처님의 공덕을

한 부분만이라도

여러 사람에게서 본다면

그에게 공양을 하기 위해 삼계를 다 바쳐도 부족하리라.


118 

수승한 불법의 한 부분이라도

누군가가 갖추고 있다면

그 공덕만으로도

내가 공양을 올리는 것은 마땅할지니.


119 

사심 없는 진실한 이웃이 되어 주시고

한량없는 도움을 주시는 부처님께

중생을 기쁘게 하는 것 외에

어떤 것으로 보답을 할 수 있겠는가?


120 

모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고

무간지옥으로 들어가신 그 은혜에 보답하려면

비록 중생이 큰 해를 입힌다 해도

그들을 오로지 도와야 하리라.


121 

나의 본존이신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위해 자신도 버리셨는데

나는 어찌 어리석게 자만에 빠져

중생의 종이 되지 못하는가?


122 

중생이 행복하면 부처님께서 기뻐하시고

중생을 해치면 부처님께서 슬퍼하시네!

중생을 기쁘게 하는 것이 곧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며

중생을 해치는 것이 곧 부처님을 해치는 것이네.


123 

전신이 불타고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어도 소용이 없는 것처럼

만약 중생에게 해를 끼친다면

대자대비하신 분께 기쁨을 드릴 방법이 없네.


124 

내가 중생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대자대비하신 분께서 싫어하시는 일이네.

그 모든 죄악, 하나하나 오늘 참회하오니

당신을 슬프게 한 저를 용서 하소서.


125 

여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오늘부터 결단코 ‘세상의 종’이 되리니.

수많은 중생이 나를 때리고, 죽인다 해도 보복하지 않아

세상의 보호자를 기쁘게 하리라.


126 

대자대비하신 분께서 모든 중생을

한 치의 의심 없이 자신과 같이 여기시니

그런 중생을

내 어찌 존경하지 않으리.


127 

인욕 수행만이 여래를 기쁘게 하네.

자신의 바른 뜻을 성취하는 것도 인욕 수행이라네.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것도 이것이라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인욕 수행을 하리라.


128 

예로 왕의 몇몇 신하들이

백성을 괴롭힌다 해도

긴 안목을 가진 이는

힘이 있어도 맞서지 않는다네.


129 

왜냐하면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왕의 권력과 왕의 신하들이 호위하기 때문이네.

이런 것처럼 사소한 해를 끼치는 하찮은 사람들도

무시하지 말아야 하니.


130 

그것은 (중생을 해치는 내 뒤에) 지옥의 사자 있으며

(중생 뒤에는) 대자대비하신 불보살이 계시기 때문이네.

백성이 흉포한 왕을 조심하듯이

중생을 위해야 하네.


131 

왕을 분노케 해도

백성은 고통을 당하는데

중생을 해친 과보로 겪어야할 고통을

지옥의 고통에 견주겠는가?


132 

아무리 왕을 기쁘게 해 부귀를 얻는다 해도

중생을 이롭게 해서

얻게 될

부처의 경지에 견줄 수 없네.


133 

중생을 기쁘게 해서 얻을,

‘미래의 부처’는 제쳐 두고라도

이생에서 얻을 부와 명성, 행복을

어찌 보지 못하는가?


134 

윤회하는 존재는 인내의 결과로

아름다움과 명성과

무병장수와

전륜성왕의 복락을 얻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