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율장

공동체를 위한 네 가지 항목 - 초기 열반경에서 찬나 범단법의 의의 -

실론섬 2015. 7. 1. 15:29

공동체를 위한 네 가지 항목

__초기 열반경에서 찬나 범단법의 의의__

원혜영/ 연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머리말. 

Ⅰ 법과 율. 

Ⅱ 호칭 문제. 

Ⅲ 소소계. 

Ⅳ 찬나에게 내린 범단법.

맺음말: 찬나 범단법의 의의. 참고 문헌.

 

요약문 

본론은 초기 열반경 6종에서 붓다가 당부한 4가지 항목에 대한 설명을 위주로 하여 공동체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에 대하여 고찰한다. 경전에서는 네 가지가 한 묶음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공동체를 위한 네 가지 항목’으로 주제로 삼았다. 그 이유는 붓다가 이 네 가지 항목을 연달아서 설명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6종의 경전들은 각각의 부파에서 그 항목의 순서상에는 차이가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항목의 제1항은 법과 율을 스승으로 삼아라, 제2항 호칭 문제, 제3항 소소계 문제, 제4항 찬나의 범단법이다. 이 네 가지 항은 공동체에 대한 확고한 체계를 세우고 있다. 본론에서 찬나의 범단법에 대한 항목에 특히 주력하는 것은 그가 공동체, 집단주의에 협력하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본론을 통해 공동체의 안위의 문제로 다른 항목들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머리말

이 논문은 초기 열반경에서 붓다가 유언 형식으로 당부한 에피소드에 관하여 거론하고자 한다. 유언의 당부라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 없거든 이렇게 하라’는 형식을 말한다. 붓다가 거론한 당부는 직접적이고 그 항목들에 관해서는 아주 구체적이다. 6종의 초기 열반경 텍스트에서 그 항목들은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언급되고 있다. 여기서는 붓다가 직접 설법하였다고 전해지는 빨리어 텍스트로 그 거론의 순서 항목을 정하였다. 그리고 다른 부파의 텍스트들은 그 조항에 맞추었다. 붓다가 제시한 항목은 네 가지이며, 그 항목들은 차례로 나열되어 있다.

 

그 첫 번째는 ‘법과 율을 붓다 사후에 스승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초기 열반경의 대표적 언설이다. 붓다는 이 언설을 사후의 흔들림 없는 가르침의 표준으로 믿고 있었다. 두 번째는 ‘호칭문제’인데, 이것은 붓다가 조직 체계 확립을 위해 내린 결정이다. 세 번째는 ‘소소계 문제’이며, 이 문제는 결집의 상황과 맥을 잇고 있어서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네 번째 항목은 ‘찬나에게 내린 범단법’1) 인데, 여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공동체, 집단주의에 협력하지 않은 개인 찬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항들이 공동체 안위 문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구체적인 찬나의 언급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찬나에게 내린 범단법’에서 중요한 점은 ‘찬나’라는 인물을 거론하면서 일종의 형벌을 내리도록 붓다가 권고하였다는 점이다. 붓다가 내린 징계조치는 확고한 것이며, 율장에서도 구체적인 ‘찬나’에 대한 묘사가 보여지고 있어 인물에 대한 성격에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1) Channa : 천노(闡怒), 천타(闡陀) 라고 음사한다. 석가족의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서, 
   붓다가 처음 고향에 돌아갔을 때 출가한다. 붓다와 그의 가르침을 가까이하여 오히
   려 교만하게 되고, 붓다가 입멸하기 직전에 범단(梵檀)에 처해진다.

 

붓다가 입멸 직전에 당부한 네 가지 항목들을 초기 열반경 텍스트에서 살펴보는 것은 붓다의 의도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더불어서 이 글에서 언급되는 조항들은 ‘결집 문제’와 관련이 있고, 후대의 공동체의 변화 정도를 가늠할 수도 있다. 특히 ‘결집 문제’와 관계를 따져보는 것은 공동체가 변화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인정하는 데 있어서는 중요한 근거들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핵심적인 인물인 붓다가 입멸하여 그에 따른 변화가 있었다는 일반적인 사실보다도 더 구체적인 항목들의 변화 과정을 거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적 차이를 보이고 있는 고전의 텍스트 분석이 필수적이다. 이 논의에서는 그러한 제시들을 초기 열반경 텍스트를 통해서 하고자 한다. 초기 열반경의 텍스트들은 온전하게 그 근거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각각의 경전들에서 묘사하는 표현방식과 내용을 보면서 붓다가 말하는 공동체에 대하여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우리가 중요하게 챙겨야 할 점은 이 네 가지 항목들을 살펴봄으로써 붓다 생전의 공동체에 대하여 엿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결집’의 사건에서 보여 진 결과인데, 초기 열반경에서 거론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각 항목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를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각 항목에 대한 공동체 주체자의 상이한 해석을 보게 됨으로써 붓다가 바라는 공동체에 대한 의중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초기 열반경 텍스트에서 보여지는 네 항목은 붓다의 정확한 의도를 짚어보게 할 수 있는 근거들을 가지고 있다. 각 부파의 경전들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맥락들은 근거들에 대한 의심스러움을 일축시키고 있어서 고스란히 네 가지 항목에 대하여 검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고 있다.

 

Ⅰ. 법과 율

 

붓다가 당부하는 첫 번째는 ‘법과 율을 사후에 스승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법과 율’이라는 단어는 초기 열반경의 모든 텍스트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 첫 번째 당부는 승단을 이끌고 있는 카리스마적 핵심인물에서 언어 또는 문자로 넘어가는 지배 양식의 변화가 있게 됨을 의미한다. 살아있는 공동체의 리더가 있을 때는 모든 것의 가치 기준이 붓다에게 있어 왔으나, 붓다가 열반한 후에는 그 기준 점은 없어지게 된다. 즉 법과 율이 새로운 기준 점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법과 율에 의지하라’는 것은 인간 중심의 지배양식에서 문자와 언어인 ‘법과 율’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이동되어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크게는 부파 불교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고, 공동체가 사실상 논쟁중심의 한 가운데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붓다는 미래에 ‘법과 율’이라는 기준 점으로 공동체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논거들은 열반경 텍스트들에서 말하는 법과 율에서 볼 수 있으며, 법과 율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서 우리는 각 부파가 지향하는 방향들을 알 수 있다.

 

우선 빨리본에서 보이는 문구를 살펴보면, 다른 한역 경전에서 볼 수 없는 추측, 가정의 발언을 발견할 수 있다. 빨리본에서 추측과 가정의 발언인 ‘Siyā kho pana’는 미래 지향적이면서 후대의 혼란스러움에 대한 보완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붓다가 죽고 나서 “아난다여 너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말하는 주인은 가셨다. 우리는 더 이상 스승이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둔 가정과 추측의 말이다. 이 말은 스승이 가셨고 의지하고자 하는 스승의 말을 다시 듣지 못한다고 하여 실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붓다가 가고 난 뒤에도 ‘내가 가르치고 설한 법과 계율이 [너희들한테 있는데] 내가 열반에 든 뒤에 스승이 될 것이다’는 해답을 내 놓았다. 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으라는 것은 스승과 동등한 자격을 법과 계율에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법과 계율이 붓다 사후에 기준으로 자리할 것이라는 자문 자답성의 문구이다. 이것은 공동체가 변화의 한 가운데 있을 때, 혼돈을 막아줄 스승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유행경』에서도 같은 뉘앙스로 언급하고 있다.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걷어잡아라. 아난아, 너는 여래가 멸도한 뒤에는 다시 보호할 이가 없어 닦아오던 것을 잃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 내가 부처가 된 뒤로 지금까지 말한 경(經)과 계(戒)는 곧 너를 보호하고 네가 가져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 경전에서는 붓다가 멸도 후에 기준점이 없어졌다 해도 경과 계를 지니고서 지키고자 한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점을 인식시켰다. 즉 『유행경』에서는 붓다가 생전에 설한 경과 계가 있었으며, 이것을 보호하고 지녀야 함을 당부하고 있다. 법과 계율이 기준 점으로써 보호막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과 법과 율을 수지 해야 할 대상임을 정확하게 알리고 있다.

 

『불반니원경』에서도 붓다의 사후에 경과 계를 그 믿음의 근거로 삼으라고 하고 있다. 즉, “내가 열반한 후에, ‘부처님이 갔기 때문에 다시 믿을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나의 경(經)과 계(戒)를 믿어야한다. 내가 열반한 후에 서로서로 받들고 이용하여 경을 보고 계를 받들어 250계를 지니라.” 전한다.

 

제자들에게 붓다는 믿고 의지하는 대상으로 존재해 왔다. 하지만 붓다의 부재는 제자들에게 믿고 의지할 대상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붓다가 설법한 경과 계는 살아있는 붓다를 대신하여 의지할 대상으로 자리하게 됨을 알렸다. 특히 이 경전에서는 250계라는 구체적인 계율의 수를 거론하고 있어서 당시에 이미 계율이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일게 한다.

 

『반니원경』에서는 부처가 말한 십이부경(十二部經)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잘 수지(受持) 하도록 전하고 있다. 이 십이부경을 법이라고 하며, “법을 좇는 이는 현세에 편안하여지고 현세에 앎을 얻게 된다” 하였다. 그래서 이 법을 잘 들어서 법답게 실행하고, 자세히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바른 마음으로 생각하면 깨끗한 도가 오래 머무르게 된다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법과 계를 스승으로 삼는 실천 방안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2)

2) 般泥洹經, TD 1 p. 188a19~188a21 謂佛所說. 十二部經, 一文, 二歌, 三記, 四頌, 五譬喩, 
   六本記, 七事解, 八生傳, 九廣博, 十自然, 十一道行, 十二兩現, 是名爲. 십이부경의 첫째는 
   문(文)이요, 둘째는 노래요, 셋째는 기(記)요, 넷째는 송(頌)이요, 다섯째는 비유이며, 여섯
   째는 본기(本記)요, 일곱째는 사해(事解)요, 여덟째는 생전(生傳)이요, 아홉째는 광박(廣博)
   이요, 열째는 자연(自然)이요, 열한째는 도행(道行)이요, 열두째는 양현(兩現)이니 이것들을 
   법이라고 한다.

 

이 경전에서는 ‘반드시 법교(法敎)를 이어서 항상 한 달에 두 번씩 계법을 강설하고 육재일(六齋日)에 높은 자리에서 경을 외우고 마음을 경에 돌리어 부처가 생존했을 때와 같이 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경과 계’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실천적 방법을 거론한 것이다. 정확한 날을 지정하고 모임의 방법까지 묘사하였는데 이것은 붓다 생존 때와 같은 방법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붓다와 같은 위치에서 십이부경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수망갈라윌라시니(Sumaṇgala-vilāsinī)』에서 붓다고사는 이 ‘법과 율’에 대한 항을 좀 더 장황하게 거론하고 있다. 후대의 텍스트이기 때문인지, 무척이나 상세하다. 이것은 후대의 법과 율이 다양하고 넓게 세분화하여 해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열반경의 텍스트가 단순, 간략하며 함축적인 것에 대하여 후대 붓다고사의 주석서는 하나 하나의 문구에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설명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있다. 물론 횡적인 연구가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렇지만 후대의 주석들을 지나치는 것은 고대 경전의 이해에 있어서 결핍적 요소를 지니게 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붓다고사의 전문 주석을 소개하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초기 열반경 텍스트들에서 보는 경과 율에 어떠한 점이 첨가되었는지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비구승가(比丘僧伽)에게 교계(敎誡)를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세존이 보게 하려는 것’ 등이 설해졌다. ‘가르쳐진 것이고 시설된 것’은 법이 가르쳐진 것일 뿐 아니라 시설된 것이고, 율이 가르쳐진 것뿐 아니라 시설된 것으로서 정해진 것을 암송하라는 의미이다. ‘그는 실로 나의 사후에’ 라는 것은 그 법과 율이 나의 사후에 너희들의 스승임을 뜻한다.

 

나에 의해서 실로 세워졌다:[즉] ‘이것은 가벼운 것이고 이것은 중대한 것이다. 이것은 용서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세간죄(世間罪)이고 이것은 시설분(施設分)이다. 이것은 계를 어긴 사람의 면전에서 일어난다(죄를 참회하고 승단에 복귀한다). 이 회중(會衆)의 죄는 승단 면전에서 일어난다(죄를 참회하고 승단에 복귀한다)’는 것은 7죄의 무리에 의해 영향을 받은 상태에서 빠리바라(附隨)의 무리를 지닌 양분별론(兩分別論)이 나에 의해서 율로 시설되었다. 모든 율장은 내가 열반에 들었을 때 너희들에게 스승으로써 의무를 행하게 될 것이다. 나에 의해서 세워진 4念處, 4正斷, 4神足, 5根, 5力, 7覺支와 8正道가 있다.: [즉] 그러한 모습으로 이 법들을 분별하고 분별해서 경장을 가르쳤다. 그 모든 경장은 내가 열반에 들었을 때 너희들에게 스승으로써 의무를 행하게 될 것이다. 나에 의해서 세워진 이 5蘊, 12處, 18戒, 4聖諦, 22根, 9因, 4食, 7觸, 7受, 7想, 7思, 7心이 있다. 거기에서 이 많은 욕계의 법들과 색계의 [법들과] 무색계의 [법들과] 구경의 [법들과] 출세간의 [법들과] 세간의 [법들과] 초세간의 [법들이] 있다. 이 법들을 분별하고 분별해서 24 모든 발취론(아비담마 발취)이 끝이 없는 추론의 대 조건으로 잘 설명되었다. 논장이 시설되었고, 그 완전한 논장은 내가 열반할 때 너희들에게 스승으로써 의무를 행하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깨달은 자는 반열반한 후 4우안거 동안에 설명했고 말했던 3藏, 5니까야, 9분교, 팔만 사천의 법온 들이다. 이와 같이 거대하게 분석된 것이 있다. 이렇게 해서 이 팔만 사천의 법 온 들이 세워졌다. 나는 홀로 반열반에 든다. 그러나 나는 지금 홀로 훈계하고 가르친다. 내가 열반에 들었을 때, 이 팔만 사천의 법문들을 너희들에게 가르칠 것이고 훈계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세존은 많은 임무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나의 사후에 스승이다’ 라고 가르치고서 다시 오지 않으시고 실천을 보이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3)

3) SV(1971) pp. 591~593. 

 

초기 열반경 텍스트들이 예(禮)의 차원에서 말하는 ‘법과 율’이라면, 주석서에서 거론되는 ‘법과 율’은 지켜야할 법칙이며, 어기면 안 되는 가벼운 것, 무거운 것 등의 죄로써 참회해야할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색계와 무색계의 철학적인 법들과 출세간과 세간의 인간사적 법들을 총 망라한 장대한 법들로 설명되고 있다. 이 법들은 논장까지 시설되었고 팔만 사천의 법들까지 펼쳐지게 되었다. 주석서에서 언급하는 대로 ‘법과 율’은 거대하게 분석되어서 스승으로써 의무를 다 하도록 하고 있다. 초기 텍스트들이 ‘법과 율’이라는 단순한 의미가 엄격하고 세세하게 변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류의 차이가 있더라도 장대한 법과 율이 스승의 가르침으로 후대에 존재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대반열반경』에서는 “내가 열반에 드는 것을 보고 정법(正法)이 여기에서 영원히 끊어졌다고 말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내가 옛적에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제정한 계 즉, 바라제목차와 또 그밖에 말한 바 가지가지 미묘한 법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니 내가 세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였다. 여기서는 비구들을 위해 제정한 바라제목차를 거론하고 있다. 이 바라제목차가 다른 열반경 텍스트에서와 다른 점은 아난다에게 당부하는 것이 아니라, 비구들을 위해 당부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법과 율’ 대신에 바라제목차를 거론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입장을 가진 텍스트가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이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에서는 “너희들 비구야, 내가 열반한 뒤에 이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우리에게 이제 큰 스승이없으시다’라고 그러나 너희들은 그런 소견을 일으키지 말라. 내가 너희들로 하여금 매양 반 월마다 바라제목차를 설하게 하였으니 마땅히 알라. 이것이 너희의 큰 스승이며 이것이 너희들 의지처로서 내가 세상에 머무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였다. 이 경전에서도 비구들을 당부의 대상으로 해서 직접적으로 넓혔다.

 

『대반열반경』과 『근본설일체유부비냐야잡사』를 살펴보면, 두 경전에서 유사점을 볼 수 있다. ‘바라제목차’라는 용어의 등장이 똑 같고, 비구들에게 당부하였다는 점에서 일치를 보고 있다. ‘바라제목차’라는 용어로 알 수 있는 것은 붓다 재세시에 이미 바라제목차가 성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 종류의 텍스트에서 이 용어가 보여졌기 때문에 바라제목차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붓다가 말하는 ‘법과 율’과 같은 동등한 위치에 그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법과 율을 스승으로 삼아라’는 항목은 6종의 열반경 텍스트에서 표현을 다르게 하고 있지만, 하나의 큰 흐름으로 동일하게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Ⅱ. 호칭 문제

 

붓다가 당부한 두 번째는 ‘호칭 문제’이다. 붓다는 입멸 후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상하관계를 우려했으며 그렇기에 이 ‘호칭’에 대한 설명으로 대안을 세웠다. 이 ‘호칭 문제’에서는 붓다가 살아있을 당시의 통용되는 호칭과 붓다 사후에 비구들간에 통용되는 호칭의 차이로 공동체의 위계질서를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사실상 사람들 간에 어떻게 호칭하는가에 따라서 관계를 알 수 있다. 두 사람만의 관계는 서로가 부르는 말로 설정된다. 제삼자는 두 사람 사이에서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부르는 호칭으로 파악하게 된다. 붓다는 열반경의 텍스트에서는 제삼자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붓다 사후에 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불려지는 호칭에 대하여 명확하게 한 것은 관계 설정에 있어서 제삼자들이 보았을 때도 모호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호칭 자체가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서 모호함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분명한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고전의 텍스트에서 불려지는 호칭에 관한 건을 붓다가 당부하는 형태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공동체를 원활히 돌아가게 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빨리본에서 “아난다여, 지금 비구들은 서로에게 벗이라는 말로 대화한다. 내가 떠난 뒤에 그와 같이 대화해져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나이 많은 비구는 나이가 어린 비구에게 이름 또는 성 또는 벗이라는 말로 대화해야 한다. 나이가 어린 비구는 나이가 많은 비구에게 ‘대덕이시여’ 또는 ‘구수시여’라고 대화해야 한다.”하고 있다.

 

여기서는 비구들간의 호칭에 대해 붓다의 생전과 사후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āvuso’라는 말은 ‘벗이여’라는 호칭으로 붓다 생전에 비구들 간의 통용되었다. ‘벗이여’라는 호칭은 비구들간의 상하관계가 크게 성립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붓다 생전에 붓다를 부르는 호칭은 ‘bhante’로 ‘대덕이시여’로 칭하였다. 『율장』에 의하면, “비구들이여, 이름을 말하거나 ‘벗이여!’라고 여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 여래는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며, 정각자(正覺者)이기 때문이다.” 하고 있어 붓다에게 ‘벗’이라는 호칭은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텍스트에서 분명하게 거론하고 있는 것은 다른 비구들 간의 호칭을 ‘벗이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 ‘āvuso’라는 말은 우리말로 ‘벗’이란 말로 번역되지만, 빨리어에서 이 용어는 비구들 사이에 대화할 때 사용하는 정중한 표현이다. 비구들 간에 서로 ‘벗이여’라는 호칭으로 대화한다는 것과 붓다에게는 이 ‘벗’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은 승단 공동체핵심이 붓다에게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호칭의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제시하고 있다. “내가 떠난 후에 그와 같이 대화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은 붓다의 사후의 공동체의 핵심이 붓다에서 다른 장로비구들에게 있음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상가라는 공동체에서는 엄격하게 상하관계가 존재하며, 질서를 잘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분명한 상하관계의 엄격함이 배어나던 것은 후대 공동체의 특징이다. 호칭은 이런 변화 속에도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나이 많은 비구는 나이 어린 비구에게 이름 혹은 성(性)을 부르거나, ‘벗이여’라고 통용한다. 그런데 붓다 생전에 비구 동료들 간에 사용되던 칭호가 사후에 아랫사람에게 사용하는 호칭로 변하였다. 나이가 어린 비구는 나이가 많은 비구에게 ‘대덕이여! ’또는 ‘구수여!’라고 불러야 한다. ‘bhante’는 붓다 생전에 붓다에게 불려진 호칭이었으나, 붓다 사후에는 장로 비구들의 호칭으로 변화를 겪는다. 또 ‘구수’는 나이를 갖춘, 적당한 연령에 도착하면 불려지는 호칭으로 연륜을 동반한 호칭이다. 이 빨리본의 호칭 변화는 붓다 생전과 사후를 축으로 공동체의 변화함을 지적하고 있다.

 

또 빨리본에서 ‘thera-tara’는 ‘더 연장자인’이라는 의미로 비교급의 ‘tara’가 붙어있으며, ‘navaka-tara’도 ‘더 젊은’이란 뜻으로 비교급 ‘tara’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더 연장자인 비구는 더 젊은 비구에게 벗이라고 대화해야 한다’라는 말로 두 비구를 비교할 수 있는 근거를 ‘나이’로 보고 있다. 이것이 법랍을 뜻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빨리본과 붓다고사 주석서에서 이점을 더 거론하지 않았으므로 고대 텍스트에서 보여지는 비교급에 따라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DN.Ⅱ, pp. 148-150. 23 참조. 같은 열반경 텍스트에서 ‘아난다와 수밧다의 대화’를 살펴보면, 아난다는 수밧다에게 ‘벗이여’(āvuso)라고 칭하였고, 수밧다는 아난다에게 ‘구수여’(āyasmā)라고 칭하고 있다. 다른 경전들에서 수밧다의 나이가 아난보다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으므로 호칭은 빨리본에서 비교급을 쓴 것에 충실히 해석하자면, 상충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밧다가 외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법랍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역의 초기 열반경류에서 쓰이는 용어로 보아서는 나이에 관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후대에 결집이 진행되는 동안의 공동체에 관한 완벽한 체계에서 거론되는 ‘납수(臘數)’에 관한 것은 승단의 조직이 체계적인 토대를 갖춘 후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고대 텍스트의 번역을 그대로 따르고자 한다. 이것보다 후대 것인 대중부의 텍스트 『마하승지율대비구계본』에 거론한 것을 보면, “자기의 납수(臘數)를 억념(憶念)한다.” 하고 있다. 여기서 납수는 구족계를 받고서부터의 연수를 말한다. 비구는 이 납수의 대소(大小)로, 작은 비구는 큰 비구에게 예배하며 자리를 양보하고, 세족수(洗足水) 등을 준다. 납수가 같으면 달의 전후, 같은 달이면 일수의 전후, 동년 동월 동일에 구족계를 받은 비구는 그 날에 오전인가 오후인가 등으로 선배 후배의 순서를 정한다. 그러므로 비구로서는 자기의 납수를 기억한다는 것은 집단생활을 하는 데에 위계질서를 바로 잡는 기준이 된다.

 

상좌부 계통의 텍스트인 열반경과 대중부 계통의 텍스트인 『마하승지율대비구계본』에서 ‘나이’와 ‘연수’의 문제 즉, 세속의 나이를 말하는지, 구족계를 받은 납수를 말하는 것인지에 관한 것은 좀 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상좌부 계통의 빨리본에 따르면, 나이와 관계가 있고, 대중부 계통의 『마하승지율대비구계본』에서는 정확하게 납수를 언급하고 있다.

 

『수망갈라윌라시니(Sumaṇgala-vilāsinī)』에서 붓다고사는 여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 때에 ‘대화하다’는 이름으로써나 성(性)으로써 대화하고 사용한 것이다. 신참자가 들어오고서: ‘티싸 나가(Tissa Nāgā)’라는 이름으로 한다. 또 ‘가섭 고타마’라는 가문으로 한다. (즉) 벗 티싸여! 벗 가섭이여! 라고 이와같이 ‘벗이여’라고 부르는 것으로 대화하여야 할 것이거나, 존자여! 또는 구수(具壽)여! 라고 (즉) 존자 팃사여! 구수 팃사여! 라고이와 같이 대화되어야 할 것이다.17)”라고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세속에서 이름과 가문의 성으로써 서로 대화하고 불러 주었지만, 상가의 공동체에 들어와서 그 호칭이 변화하여 ‘벗 티싸여!’, ‘벗 가섭이여!’라고 하거나 ‘존자 티싸여!’, ‘구수 티싸여!’라고 대화하여야 한다고 설명한다.18)

 

붓다 당시에는 수직적 관계인 획일과 규격을 벗어나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한 것으로 보이고, 붓다 사후에 변화되어야 하는 호칭에서는 분명한 상하관계의 엄격함이 보이고 있다. 호칭의 변화를 제안한 것은 붓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붓다 당시에 일반화된 호칭이 통용되었다는 것은 공동체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친목 도모에 유용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놀라운 점은 아주 고대의 시대에 호칭 파괴 문화가 확산되었다고 할 수 있고, 후대에 와서 변화된 호칭의 어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평등한 관계에서 수직적 관계로 발달하고 있음을 이 텍스트에서 알 수 있다.

 

『유행경』에서는 구체적인 호칭의 예를 들고 있지는 않지만, 그 의도하는 바는 같다. 이 텍스트에서 ‘위아래는 서로 화(和)해 마땅히 예도를 따르라’고 인용한 점은 상하관계에 대한 질서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위아래는 서로 화합하라는 것’은 승단의 화합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위아래’라고 언급함으로써 위계질서를 세우고 있다. 『유행경』에서도 구체적으로 호칭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으나, 공동체가 서로 화합하라는 직접적인 말을 하고 있다. 

 

즉, “아난아, 내가 열반 후에 여러 비구들은 각기 차례를 따라 크고 작은 이가 서로 공경하며 성(性)을 부르지 말고 이름을 부를 것이다.”라고 『대반열반경』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하였다.

 

이 텍스트에서 성(性)을 부르는 것은 속세의 인연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붓다가 깨닫기 전에 ‘석가(Sakkha)’라는 석씨의 아들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지만, 출가하면서 속명을 쓰게 되었다. 앞에서 ‘차례를 따른다’는 것은 위와 아래를 구별한다는 것이고 서로 상하가 있게 되면 공경심이 생긴다. 이 ‘차례에 따라 크고 작은 이’라는 것 나이를, 또는 납수를 의미할 수도 있다. 『대반열반경에서는 구체적으로 ‘성(性)을 부르지 말고 이름을 부를 것’이라고 하여 호칭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이것은 속세의 끈을 놓고 승단의 화합을 위해 새로 정비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인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에서도 호칭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또 오늘부터 젊고 아래인 비구는 어른이고 나이 많은 비구에게 그 씨족과 성명을 부르지 말고 마땅히 대덕이라고 하거나 혹은 구수(具壽)라고 부를 것이며, 늙은 비구는 젊은이에게 마땅히 구수라고 불려진다.21)

 

우리는 비구들 간의 상하 차이를 나이의 기준으로 그 구체적인 호칭을 거론하면서 체계를 잡아가게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경전에서는 나이에 따라 비구들 간의 경어를 쓰도록 하고 있다. ‘대덕(大德)’은 빨리어로 ‘bhante’를 표현한 것인데 출가 연수에 따라 경륜이 많은 비구에게 부르게 하는 호칭이다. ‘구수(具壽)’라는 용어는 비구에 대한 또 다른 호칭이며, ‘āyasmā’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 경전에서는 ‘벗’ 이란 칭호인 ‘āvuso’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빨리본에서 ‘장로’라는 칭호 역시 ‘thera’인데, 나이가 어린 비구가 나이 많은 비구에서 쓰이는 호칭이다.

 

여기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에서 ‘老大苾芻’라고 언급한 것을 보아서 ‘나이를 먹은 비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의거해서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는 호칭이 나이와 상관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 해석상으로도 이 텍스트에서 ‘대비구(大苾芻)’라고 언급하는 것은 앞에 ‘老大苾芻’에 근거하여 나이 먹은 비구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붓다는 “나이 먹은 비구(大苾芻)는 젊은이(小)에게 마땅히 가엾이 하는 생각으로 널리 보호하여 인자한 마음을 내고 혹은 의발과 발락, 허리띠 따위로 함께 서로 공급하여 모자라는 일이 없이하여라.” 하였다. 이것은 호칭문제를 거론하면서 따라 오는 상황이다. 즉 대(大)비구가 소(小)비구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을 제시하였다.

 

이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에서는 소(小)비구에 대한 호칭은 생략되었다. 다만 존경의 대상인 장로 비구들은 젊은 비구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일면을 지시하고 있다. 특히 상하의 관계가 원만하기 위해서 설명되는 논의가 ‘호칭’의 시작이지만, 그 호칭에 대한 비구들간의 관계 역할에 대하여도 상세히 설명하였다.

 

『불반니원경』에서는 “서로서로 공경하고 받들기를 효도로 어버이 섬기는 것 같이 하며 장로 비구는 당연히 후배와 상좌를 가르치되 내가 있을 적과 같이 해야 한다. 후진 비구가 만일 질병이 있으면 장로 비구는 응당 관심을 가지고 잘 보살피고 간호하도록 해야하며, 교리에 통달하고 경을 독송하며 부드럽게 잘 지도하여 부처님의 계를 지니게 하면 우리의 도가 오래 전해질 것이다.”고 상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장로 비구의 의무를 거론하면서 후배를 잘 보살피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더 나아가서 교리를 잘 전수하고 계를 지니는데 모자람이 없게 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붓다의 생전에 도가 그대로 이어지게 하는데 장로 비구의 책임이 막중함을 전하는 것이다. 화합과 더불어서 경과 계의 온전함이 붓다의 도를 장구히 전하는 길이므로 신참 비구들에게 잘 지도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승되는 경과 계를 붓다 사후에도 이어가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이런 ‘호칭문제’의 구체적인 언급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위계질서의 확립이다. 승단의 화합은 붓다 생전과 사뭇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며, 그 체계를 어느 정도 정비할 수 있게 하는 기준은 비구들 간의 차이를 두는 것이며, 그것은 호칭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Ⅲ. 소소계(小小戒)

 

붓다의 세 번째 당부는 ‘소소한 계율을 제거하라’는 충고이다. 이 점에서 유의할 점은 ‘결집’때 승단의 비구들이 소소하게 계율을 잘 지킬 것을 논의하였다는 점에서 다르다. 붓다의 ‘소소계 문제’와 상충되어 관심을 갖게 된다.4)

4) 모든 자료는 열반하는 그 해에 라자가하에서 결집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일치한다. 
   긴 연대기에 의하면 B.C.486년이고 짧은 연대기에 의하면 B.C.368년이다. 바이샬리 
   결집은 열반의 100년과 110년 사이에 위치한다: Sinhalese 자료는 긴 연대기를 적용
   한다. 그 결과로 B.C.386년에 둔다. Kālāśoka의 통치기간 10년째에 대응한다: 두 
   산스크리트 문헌은 짧은 연대기를 따르는데, Sarvastivādin Vinaya(TD 1451, p. 
   450a 28)뿐만 아니라 Hsüan-tsang(TD 2087, p. 909b14)은 B.C. 25년에 결집을 
   놓고 있다. 즉 마우리아의 Aśoka의 성별(聖別)식 후의 10년으로 놓고 있다. 역사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불교문헌에서 거의 없었다. 초기 서지학의 자료에서 뛰어난 설
   명을 L. De Vallée Poussin, Councils, ERE. IV, pp. 179-85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이래 개관 연구의 문헌의 두 작품이 보여지는데, 이것들은 권위를 가진 채로 후에 남
   게 될 것이다. J. Przyluski, Le Concile de Rājagṛha, paris, 1926; M.Hofinger, 
   Ètude sur le concile de Vaiśāli, Louvain, 1946.)

 

빨리본에서 붓다의 충고는 시대와 상황에 맞는 충고로 보여진다. “아난다여, 붓다 사후에, 승가가 원한다면, 소소한 계법(戒法)들을 제거하라.” 전해진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사소한 것까지 잘 지켜야 한다는 왕사성 결집의 논란거리가 이 대목에서 의심의 여지를 낳게 한다. ‘결집’에서 아난의 죄목으로 소소한 계가 문제되었던 점과 다르게 이 초기 열반경 텍스트에서는 소소계를 버리라고 한다.5)

5) Lamotte(1988) pp. 124~126. 사건의 서술- 수많은 설명 가운데서 처음의 두 결집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Pāli Vinaya(Ⅱ pp. 284-308)을 요약할 것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우월하게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Singhalese의 지식인들의 학문
   적인 본체에 의해서 권위를 가지기 때문이고, 이치에 맞는 형식의 의관에서 사건들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Vinaya에서, 라자가하(Rājagṛha)의 결집에 대한 설명이 
   예비적인 소개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한다. 가섭(Kāśyapa)은 파바(Pāvā)에서 
   쿠시나가라(Kuśinagara)의 500비구들 승단에서 여행하는 중에 아지비카(Ājīvika)는 
   7일 전에 미리 예견하고서 그에게 붓다의 죽음을 알렸다.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어떤 
   이는 슬퍼했고 좀 더 현명한 다른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알고 단념했다. 그러나 
   수밧다(Subbaddha) 비구는 공공연하게 붓다를 잃음에 기뻐하여 그를 관찰한 비구들
   을 노하게 하였다. 그는 모든 비구들이 지금 자유롭게 그들이 바라는 바대로 살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섭은 무질서함이 승단에 스며들지 못하게 함을 책임 지우기 위해
   서 비구들에게 법(dharma)과 율(vinaya)의 합송을 제안했다. 그는 그들의 요구로 499 
   아라한을 골랐고, 비록 아라한은 아니지만, 붓다의 가르침에 가장 정통한 아난다를 
   소집하였다. 
   공동협의 후에 500비구들은 우기동안 라자가하로 가기로 결정했다. 법과 율의 합송은 
   거기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집회는 그런 까닭에 마가다의 수도에 가서 예비적인 작
   업이 그 계절의 첫 달에 전념되었다. 바로 그 날 아침 비밀회의에서 아난다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서 아라한과에 도달했다. 회의가 그 다음에 열렸다. 가섭은 우발리
   (Upāli)에게 율(Vinaya)을 -붓다가 비구와 비구니의 계율을 구상하기 위해 (그와 같은 
   상태로 만든 장소, 사람, 관련된 것)가르침을 널리 폈었다는 것에 대해서- 물었다. 
   아난다는 그런 다음에 그의 동료들에게 말했다. 죽기 전에 붓다가 소소한 학처를 승단
   에서 폐지하도록 권한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아난다는 붓다가 의미하는 소소한 것들
   을 구체적으로 그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하기 때문에 집회 날 소소계 일치에 관계
   하여 의견이 일치하지 못했다. 가섭은 붓다에 의해서 공포된 모든 학처들을 구별함 없
   이 폐지하지 않고 존속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제안했다.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결집에
   서 장로가 그런 다음 아난에게 일련의 비난의 말을 걸었다: 그는 소소한 학처에 대하
   여 붓다에게 질문할 것을 간과했다는 사실에 비난받았다.

 

이 ‘소소계’ 문제를 히라가와 아끼라(平川彰)은 또 다른 관점으로도 보고 있다. 즉 “『대반열반경』에 있어서 석존이 열반에 드실 즈음에 아난에게, ‘승가가 하고자 한다면 소소계를 버려도 좋다’고 하는 유언을 하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석존의 성도이래 45년 사이에 상당히 많은 수의 계율이 제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추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석존의 재세의 바라제목차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자료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불재세(佛在世)시에 약간의 조문을 포함한 바라제목차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논하고 있다.

이런 히라가와 아끼라는 논의에 대하여, 이미 우리는 바라제목차에 관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반열반경』과 『근본설일체유부비냐야잡사』에서 알 수 있었다. 즉 법과 율에 의지하라는 1항에서 붓다 재세시에 이미 바라제목차가 있었음을 거론하였다. 그러므로 히라가와 아끼라의 바라제목차에 관한 건을 초기 열반경들에서 새롭게 다시 정리하게 되는 셈이 되었다.

‘제거하라’는 것은 만약 제거되어야 할 것을 바란다면 원하는 것을 제거하라는 의미이다. ‘누구로부터 제거하는가’ 라고 확실히 말하고서 생각과 말을 실로 정했는가? 라는 것은 대 가섭의 위력이고 사견이다. 세존을 이해한다.; [즉] ‘[너희들은] 제거하라’라고 말해진 것 역시 경전 결집의 시기에 가섭은 제거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그런 생각으로부터 정해졌다. 그 때에 몇몇의 장로들이 이와 같이 말했다: ‘4바라이(波羅夷)를 정하고 나서 나머지들은 소소한 것들’이라는 것에 관해서 500결집에서 소소한 것들이 유래되었다. 여기 이점은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율 주석에서 설해진 결정이다. 누군가 다시 말했다. 존자 나가세나여! 어느 것이 작은 것이고 어느 것이 사소한 것인가? 라고. 밀란다 왕으로부터 질문을 받고서: ‘대왕이여! 돌길라(突吉羅)는 작은 것이고 악설(惡說)은 사소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나가세나 장로가 소소한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가섭 장로도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벗이여! 승단은 나로부터 배워라’ 우리들의 학처는 재가녀, 재가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실로 사문들과 부처님의 제자들을 위해서 시설되었다. 이것은 실로 시설되지 않았다. 라고. 만약 우리들이 소소한 학처를 제거한다면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문 고타마에 의해 화장할 때까지만 성문들을 위해 규정된 학처이다. 스승이 그들을 위해 살아있을 때만 이 학처들에서 배웠었고, 지금 스승이 반열반하는 때에는 이 학처들에서 배우지 않는다.’ 라고. 만약 승단을 위해 상가가 건전한 발우를 규정하지 않았으면, 시설하지 말아야 하고, 규정되지 않은 것을 제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시설된 학처들에서 수지하고 설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발표되었다는 것은 갈마의규(羯磨儀規)에서 듣게 되었다. 라고, 이와 같은 것을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가세나 장로는 실로 반대자들이 허락하지 말라고 했다고 이와 같이 말했다. 마하가섭 장로는 소소한 계의 어김을 제거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갈마의규(羯磨儀規)에서 알렸다.
6) SV(1971) pp. 592~593. 3

 

이 주석서를 살펴봄으로써 붓다는 소소계 폐지론에 대하여 가섭은 ‘결집’에서 다른 결론을 얻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부분 소소계에 대한 논의는 소소계가 ‘작고 사소한 것’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고, 또 예를 들어가며 ‘돌길라(突吉羅)는 작은 것이고 악설(惡說)을 사소한 것’이라고 하여 소소계를 제시하였다. 또한 바라이 즉, 6취죄(聚罪)의 하나로 승단에서 추방되는 무거운 죄로 소소한 것과 대비하였다. 바라이는 단두죄(斷頭罪)라고도 하고 구빈죄(驅賓罪)라고도 하여 중한 죄이다.

 

‘4바라이’를 4중죄라고 하여 『십송율』에서는 비구로서의 자격을 잃은 음계(婬戒)와 도계(盜戒)와 살인계(殺人戒)와 대망어계(大妄語戒)로 네 종류의 중죄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음계는 여성과 통하는 것, 도계는 타인의 소유물을 훔치는 것, 살인계는 사람을 죽이는 것, 대망어계는 자신이 성자(聖者)라고 하여 거짓말을 하는 것을 말하여 불도 수행상의 어느 단계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그 자격이 있다고 거짓말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으로 부터 존경이나 공양을 받는 것이다. 이상의 네 가지의 중한 죄를 범하면 비구가 공동체인 승가에서 추방된다.

 

이 바라이(波羅夷: pārājika)는 250계 중에서 가장 무거운 죄가 되는데, 이것은 국가의 법률로 말하면 사형에 상응하는 것이다. 불교의 벌칙에서 승가 공동체로부터 추방은 최고의 형벌이지만, 신자로는 남을 수 있다. 바라이가 되면 비구의 자격을 잃기 때문에 그 사람은 속인으로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살인을 행하고 비구가 바라이 죄가 되어 승가로부터 추방되어 속인이 되었을 때, 비구 때의 살인을 이유로 국왕이 그를 잡아서 벌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는 세속의 법률의 정해져 있는 것이고 승가는 관계하지 않는다. 즉 비구는 살인을 범하였어도, 도둑질을 범하였어도 비구 자격을 가지는 동안은 마가다 법률에서는 처벌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이 주석서에서 “ ‘4바라이를 정하고 나서 나머지 소소한 것들’에 관해서 500결집에서 소소한 것들이 유래되었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소소한 것’이 어떠한 것인지 붓다 생전에 아난이 물어보지 못한 것과 다르게 500결집에서는 소소한 것을 정하였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물론 이 문제로 아난이 결집상황에서 비난받았지만, 붓다고사의 주석서가 후대의 것임을 감안할 때 소소계에 대한 정의는 붓다가 내린 것이 아니란 점은 확실하다.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율』 주석은 율장에 대한 주석서이기 때문에 후대 것이다. 열반경에서 붓다가 내린 ‘소소계를 제거하라’는 결정을 ‘결집’의 과정에서는 위배하였다. 그러나 이런 붓다의 결정에 따르지 않고 소소계를 지키는 이유에 대하여 ‘결집’의 상황을 대변해 주는 문구가 『수망갈라윌라시니(Sumaṇgala-vilāsinī)』에서 보여진다. 다시 말해서, “만약 우리들이 소소한 학처를 제거한다면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문 고타마에 의해 화장할 때까지만 성문들을 위해 규정된 학처이다. 스승이 그들을 위해 살아 있을 때만 이 학처들에서 배웠었고, 지금 스승이 반열반하는 때에는 이 학처들에서 배우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논리에 의해서 붓다가 재세시에 주장한 ‘소소계를 제거하라’설은 논리를 잃었다.

 

‘붓다의 소소계 폐지’의 성향은 다원적 성격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동체라는 이름 하에 상가의 규율이 획일적으로 강제적이거나 억압하는 성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소소계를 제거하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결집에서 이것은 인정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공동체는 황금률의 사회적 차원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조직된다. 여기서 ‘황금률의 사회적 차원’이란 가치들의 단일한 집합은 모든 분배의 영역에서 지배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며, 가치들에 대해서 결정적이다. 

 

‘결집’의 상황이 그러하다. 가치나 가치들의 집합은 통상적으로 공동체의 핵심인물들에 의해 독점되며, 붓다 사후의 ‘결집’에서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들은 ‘결집’의 주체자들이 갖는 힘과 결속에 의해 보존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그것을 소유한 개인이나 집단이 그것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수많은 가치들을 강제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지배적 성격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붓다는 이 지배적인 성향에 대해 우려했으며, 초기 열반경에서 공동체의 네 가지 항목 중, 이 ‘소소계에 대한 문제’는 이것을 극명하게 조명하고 있다. 후대의 결집에서 보여준 ‘소소계의 인정’은 집단에 대한 소유자들이 갖는 힘과 결속을 위한다는 명분아래서묵인되었다.

 

붓다가 말한 ‘소소계를 제거하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한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고 후대의 공동체도 이것을 부정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내린 당부였을 것이다. 즉, ‘소소계의 제거론’은 그 자체가 다원주의적인 정의 원리들이 형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소계’에 관한 문제는 붓다의 생전과 사후에 공동체의 원리로써 변화하였다. 이러한 상이한 이해들은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특수성의 필연적 산물일 것이다. 이 모든 차이들은 사회적 가치들 그 자체가 갖는 서로 다른 이해들로부터 나타난다. ‘소소계’의 문제는 공동체의 이해에 관한 노력에서 기인되었으며, 상이한 주체들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다른 이유근거들로 인하여 나누어졌다. 다만 붓다가 내린 결정은 ‘소소계를 제거함’으로써 다른 가치들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것은 공동체를 통합하기 위해 내린 결정임에는 틀림 없다는 것이다.

 

Ⅳ. 찬나에게 내린 범단법

 

붓다가 당부한 네 번째는 ‘찬나에게 내린 범단법’이다. ‘범단(Brahma-daṇḍa)’는 ‘범천( 天)의 매’ 혹은 ‘최상의 벌(罰)’이라는 의미로, 글자 그대로 번역한다면 ‘성스러운 몽둥이’가 될 것이다. ‘범단(梵檀, 梵壇)’이라 음사 되었고, ‘묵빈(黙擯)’이라 번역되었다. 묵빈이란 죄를 짓거나 고만(高慢)하여 화합하지 않는 수행승에 대한 벌칙으로 그에게 말을 걸거나 상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 경전(Pāli-Nikāya)내에서 ‘범단’은 항상 묵빈의 의미로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암밧따경(Ambaṭṭha sutta)』에서 ‘범단’은 두렵고 위협을 느끼는 ‘범천( 天)의 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서,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거나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무서운 벌을 의미하는 것이다.

 

빨리본에서 찬나에게 부여된 범단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즉 ‘아난다여, 붓다 사후에 찬나 비구에게 범단법을 가해야 한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범단법입니까? 아난다여, 찬나 비구가 원하는 것을 말하게 하더라도 그는 비구들과 말해서 안되고, 충고해서도 안되고, 가르쳐서도 안 된다.’고 하였다. 이에 의하면 세존은 찬나가 입이 험하고 욕설을 잘 하는 비구이므로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라고 지시한 것으로 이해된다. ‘범단’은 최상의 처벌에 속하며, 일시적 사형선고와 같은 심한 처벌의 하나이다. 이 처벌은 침묵이 제일 좋은 약이며,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상대하지 않는 처벌이다.

 

『유행경』은 찬나에게 내린 범단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 ‘천노(闡怒)비구는 노예 무리로서 처음부터 제 고집대로 부리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멸도하신 뒤에는 어떻게 합니까.’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하였다. ‘내가 멸도한 후에 만일 저 천노가 위의에 따르지 않고 교계를 받지 않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함께 범단법을 행하라. 모든 비구들에게 명하여 더불어 말하지 말고 서로 왕래하지 말고 가르치기와 일하기를 함께 하지 말라.” 하였다.

 

이 텍스트에서는 ‘노예의 무리’라는 예전의 카스트 계급을 언급하였다. 이것은 다른 텍스트와 다르다. 출가자는 카스트를 이야기하지 않는데, 천노라는 출신을 거론한 것이다. 또 ‘범단법’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말하지 말고 서로 왕래하지 말고 가르치기와 일하기를 함께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불반니원경』에서는 이 부분을 “‘전단(栴檀)이라는 이름의 한 비구가 있습니다. 성질이 급하고 꾸짖기를 좋아하여 여러 비구들과 자주 다툽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는 저희들 비구가 어떻게 부처님의 경과 계를 받들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하였다. ‘내가 열반한 후에는 너희들은 그와 다시 말하지 말 것이니 여러 비구들이 그와 말하지 않으면 전단비구는 여러 비구들과 자주 다툰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다.” 하였다.

 

여기서는 전단의 성격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으며, 공동체의 화합을 저해하는 인물로 평가되어 있다. 또 범단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와 다시 말하지 말 것이니 여러 비구들이 그와 말하지 않으면 전단 비구는 여러 비구들과 자주 다툰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다’고 하였다.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라는 것’은 범단법의 효과를 지적한 것이다.

 

『반니원경』에서 아난은 천(梴)의 성격을 직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천(梴) 비구는 천성이 패악하고 다급하여 욕하기를 좋아하고 말이 많으니,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는 어떻게 합니까.’ ‘내가 열반한 후에 천 비구를 위하여 범단법을 하여 여러 대중들이 침묵(黙屛)으로 그를 상대하지 말아라. 그러면 그는 부끄러움을 느껴 저절로 뉘우치게 될 것이다.’”라고 거론하였다. 여기서도 천 비구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였으며, 범단법의 효과를 『불반니원경』과 마찬가지로 부끄러움을 느껴 저절로 뉘우칠 것이라고 하였다.

 

『대반열반경』에서는 차익(車匿)의 이야기가 빨리본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언급하였다. 다른 세 가지 항을 거론 한 후에 “‘차익(車匿)비구에게는 당연히 중한 벌을 주어야 한다.’ 아난은 부처님께 물었다. ‘어떠한 중한 벌을 주어야 합니까’ 부처님이 말하였다.‘ 아난아, 중한 벌을 주려면 일체 비구들이 그와 함께 말하지 말 것이다’” 하였다. 범단법의 용어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중한 벌이라고 하여 함께 말하지 않는 것이라는 설명을 하였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에서는 “‘세존이시여, 천타(闡陀)비구는 성질이 사나와서 많이 성을 내고 급합니다. 그래서 모든 비구에게 항상 불순하고 추악한 말을 하는데,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에 어떻게 공주(共住)하겠습니까’ 부처님이 말하였다. ‘아난아, 내가 멸도 후에 천타와 같은 악성(惡性)비구는 묵빈(黙擯)으로 다스려라. 그가 그때, 만약 뉘우치고 경앙심을 일으키거든 대중이 고친 것으로 알고 함께 기뻐하면서 평상시와 같이 말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 텍스트에서는 ‘성격이 사나와서 많이 성을 내고 급하며 항상 불순하고 추악한 말을 하는 비구’를 ‘악성비구’라고 규정하였다. ‘악성비구’는 다른 비구들과 화합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이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에서 ‘악성비구’라는 용어가 보이며, 악성비구에 대한 처벌은 묵빈으로 다스리라고 하였다. 묵빈은 범단의 번역어이다. 또, 뉘우친다면 평상시와 같이 공어(共語), 즉 함께 말하여도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범단법’의 효과는 찬나를 대중과 대화하지 못함으로써 소외감을 느끼고 견디기 힘든 상황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홀로 생각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게 하는 것이다. 붓다는 범단법이란 중한 처벌을 내림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찬나의 성격은 비구들 중에 어떠한 비구도 있을 수 있는 성격이다. 승단에서 이런 비구들에 대한 제약을 가함으로써 승단의 질서를 바로 설 수 있게 하였다.

 

초기 열반경의 텍스트들에서 찬나의 이름이 각각 다르게 표현되는 것은 각 부파가 음사하면서 차이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한 인물임이 분명하고 붓다가 생전에 찬나에 대한 징벌을 미리 아난에게 당부했으며, ‘결집’에도 이 사건은 거론된다. 결론적으로 후대 ‘결집’ 회의에서 아난은 찬나 비구에게 징계처분이 주어졌음을 통고하기 위해서 코삼비로 가도록 지시되었다. 다른 항목이 ‘결집’에서 차이를 보이는 반면 ‘찬나의 범단법’만은 동일한 흐름으로 결론지어졌다. 『수망갈라윌라시니』에서 붓다고사는 “범단법도 결집에서 선견율비바사에서 유래되어 결정되었다.” 전하고 있다.

 

찬나의 악성은 율장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승잔법 『악성거승위난계』는 『근본유부율』에서 「악성위난학처」라 하고, 도선 율사는 「악성거승위난계」라고 부르고 있다.

 

이 계의 제계 인연이 된 것은,『빨리율』에 의하면 천타(闡陀, Channa)이었다고 한다. 이 찬나와 석존이 출가해서 성을 나오실 때의 시종인 찬나(Channa)가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결정하기 힘들지만, 아까누마지젠(赤沼智善)도 다른 사람이라고 보고 있다. 어쨌든 찬나는 코삼비에 살았고, 여러 가지 불선행(不善行, anācāra)을 행하였다. 그 때문에 비구들이 그를 충고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한다. “벗이여, 그대들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생각하느냐? 나야말로 그대들에게 말해야 한다. 佛은 우리들의 것이다. 法은 우리들의 것이다. 우리들의 聖主(ayya-putta)에 의해 법은 깨달아진 것이다.” 말하며 비구들이 찬나의 불여법(不如法)을 충고하려고 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전한다.7)

7) 다른 율장도 제계의 장소가 코삼비이고, 제계의 인연이 된 이는 천타이었다고 하는 
   점에 일치하고 있다. 승기율에는 “이 때 장노 천타는 악성(惡性)으로써 함께 말
   하기 힘들고, 모든 비구가 여법(如法)․여율(如律)로 가르쳐도 함께 말을 하지 않으
   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모든 장로여, 나에게 혹 좋다거나 나쁘다는 말을 하지 말
   라. 나도 역시 모든 장로의 좋고 나쁨을 말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 
   잡성(雜姓)으로서 우리 집의 민리(民吏)이었다. 예를 들면 까마귀의 잡유골(雜類骨)
   을 포함해 모아서 한 곳에 둔 것과 같다. 어찌 나에게 불법승사(佛法僧事)를 가르
   치려 하는가? 云云이라 말하고 있다. 즉 불타가 석가족 출신이고, 천타도 석가족 
   출신이므로 출생을 자랑으로 삼아 다른 비구의 교계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오분률』은 천타가 범한 계행으로서, ‘천타비구는 종종 죄를 범하고, 백의사(白衣舍)
   에 들어가서 上床 下床하는 것이 모두 여법하지 않다. 별중식(別衆食)하고, 자주자주 
   먹고, 비시(非時)에 취락에 들어가기에 선한 비구라고 말할 수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十誦律(TD 23) 27. 여기에 설해진 것은 逸提法에 금지되어 있는 계행이다.
   어느 것이나 小罪이다.
  『십송율』에도 “장노 천타는 小悔過罪를 범했다.”고 말하고 있다. 
  『근본유부율』에는 “이때에 구수 천타는 이미 범죄를 하고서도 여법하게 說悔하지 
   않는다.”(『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TD 23 p. 707a)고 말하고 있고, 천타가 여법하게
   참회하지 않았으므로 제 비구가 충고하면, 천타는 “그대들은 나의 好惡를 말하지 말라. 
   나도 역시 제구수의 好惡을 말하지 않겠다.”라고 말하고, 다른 비구의 간언을 거부하였
   다고 한다. 
  『사분율』에는 “이 때에 천타비구는 악성으로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비구
   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나에게 혹 호악(好惡)를 말하지 말라. 나 역시도 또한 모든 대
   덕의 好나 惡를 말하지 않겠다.’” 四分律, TD 22 p. 599a. 
   찬나 비구는 共語 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승가에는 자기의 과실을 지적당하면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죄를 인정하고 참회를 하고 서로 간고 하고 서로 교계하면서 수행
   을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충고하지 않고, 자기도 타인의 충고
   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불교의 수행에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하게 가책
   하고 승잔죄를 제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비구가 ‘악구성’이어서 설계(設戒)에 포함되는 학처에 의해 교계(敎誡)를 할 때, 비구들이 여법․여율로 말하는데도 자기를 ‘함께 말해서는 안 되는 자’라 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노들이여, 나에게 혹은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이거나 어떤 일이라도 말하지 말라. 나도 또한 장로들에게 만약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이거나 어떤 일이라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장노들이여, 나에게 말하는 것을 그만 두라”라고. 저 비구는 비구들에 의해 다음과 같이 말해지게 될 것이다. “장노여, 설계에 포함되는 학처에 의해 교계를 할 때, 비구들에 의해서 여법․여율로 말하는데도 자기를 ‘함께 말해서는 안 되는 자’라고 말하지 말라. 장노여, 자기를 ‘함께 말하는 자’라 하라. 비구들도 또한 교계에 있어서 장노에 대해서 여업․여율로 말해야 하고, 장노도 또한 교계에 있어서 비구들에게 여법․여율로 말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해서 또한 世尊․如來․阿羅漢․正等覺者의 衆會는 하나로 결합되고, 곧 상호간에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죄에서 벗어나도록 하여야 한다” 라고. 이와 같이 해서 그 비구는 비구들에 의해 말해지게 될 때 그 일을 버리면 좋고, 만약 버리지 않으면 그 비구는 비구들에 의해 그것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 세 번까지 추구되고 간고 될 것이다. 세 번까지 추구되어서 그 일을 버리면 좋고, 만약 버리지 않고 수지하고, 견지하여 서 있으면 승잔이다.) LP, pp. 11~12

 

악구성(惡口性, dubbacajātika)이라는 말은 ‘악어(惡語)이고, 교계하기 어려운 성질을 갖추고 있고, 다른 사람의 교수(敎授)에 있어서 시인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들임에 교묘함이 없는 것’46)을 말한다. 또 ‘악성으로서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교회(敎誨)를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악성으로서 타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만약 선한 비구가 순한 말로써 바르게 다스림에 어긋나지 않고 바르게 권하여 가르치려 할 때, 스스로 자기 감정을 사용해서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범단법은 이 악구성에 대한 징벌이다. 초기 열반경에서 ‘찬나의 범단법에 대한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징벌의 주체자와 수용자를 찾을 수 있다. 징벌의 주체자는 훌륭한 것들을 ‘산출하는 사람이고 징벌의 수용자는 그것들을 수용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만약 벌을 받는 것이 훌륭한 것들을 경험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것은 선한 것이다. 여기서 징벌의 주체자는 붓다가 될 것이며, 징벌의 수용자인 ‘찬나’는 이 범단법을 수용하는 것으로서 선한 것들을 수용하는 것이고 유용한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기에 벌을 받는 것은 선한 것을 수용해서 유용해지는 것이다. 나아가 잘못을 저지른 찬나가 올바르게 벌을 받게 된다면, 그 벌을 받기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다. 찬나가 범단법을 받음으로써 사악함을 덜어버리기 때문이다.

 

‘찬나에게 내린 범단법’은 가장 수치스러운 것이 무엇인가를 전하는 것이고, 그것이 가장 악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처벌법이다. 가장 수치스러운 것은 항상 가장 큰 고통이나 가장 큰 해악을 준다. 붓다는 찬나에게 이러한 벌을 준 것이고, 찬나에게 부여된 범단법은 훈계와 징벌 그리고 처벌을 받은 사람으로 거듭 날 수 있는 기회의 처벌이다. 악구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것들을 제거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더 불행할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충고의 가르침은 붓다가 돌아가신 후에 나열식 충고법에 강조점을 둔 것이다. 찬나에게 벌을 내리라는 강한 충고는 마지막 마무리로써 승단의 위기에 강하게 대처하라는 무게 중심이 실려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찬나에 대한 범단법은 찬나에게만 가해진 것이 아니라, 후대에 있을 육군 비구들에 대한 엄한 훈계이다. 범단법이라는 중한 처벌에 대하여 찬나는 불만을 토로하였으나, 곧 후회하고 청정한 법의 가르침을 따랐다는 『오분율』의 전거들을 본다면 시기적절하고 효력 있는 법임을 알 수 있다. 또 이 범단법은 붓다의 징계 조치였고, 이 조치의 실행은 아난다에게 위탁되었다. 이 징계 조치를 선고하자, 그의 자만심과 독자성이 눌러지게 되어, 겸손하여지게 되고, 그의 눈이 열리게 되었다. 찬나는 따로 떨어진 곳에 거주하면서 열심히 수행하여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고, 따라서 그 징계도 자동적으로 소멸되게 된다.

 

찬나에게 부여된 범단법은 법과 율을 스승으로 삼으라는 충고, 비구들 간의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한 호칭 문제, 소소한 계율에 너무 치중하지 말라는 권유와 더불어서 구체적인 항목을 지목하면서 당부하고 열거한 것이다. 이 항목들은 후대의 ‘결집’ 문제와 많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후대의 결집에서 이러한 네 가지 항목은 다른 방향으로 거론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과연 어느 것이 진정 붓다의 의도였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맺음말: 찬나 범단법의 의의

 

‘찬나에게 내린 범단법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초기 불교의 공동체를 위한 원형중 일부인, 네 가지 항목에 대하여 살펴 볼 수 있었다. 이 네 가지 항목을 살펴보면서 ‘결집’의 상황과 비교해서 얻는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는 것은 보편성이 있겠지만 그러나 진리는 대중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가섭 제 1결집의 약점이 있다고 생각되어 진다. 초기 불교 석존의 직설을 계승했다는 것을 칭하고 있으며, 거기에 확고한 전통을 그들이 획득하여 상좌(上座部, Theravāda)라고 하여 분열을 일으키지 않고 100년간을 존속하였지만 그 안에도 진정한 공동체에 대한 붓다의 의도를 생각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이 찬나에 대한 처벌에서 다른 항목과는 다르게 초기 열반경 텍스트와 ‘결집’에서 같은 원칙으로 일관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찬나에 대한 악구성에 대해 초기 열반경과 ‘결집’의 상황은 일치를 보인다고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은 공동체의 이익과 가치에 해악을 끼칠 수 없다는 단호한 붓다의 당부이며, 상가의 확고한 바램으로 찬나에게 내리는 벌은 ‘결집’에서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악구성을 지닌 비구에게 다원성이란 차원에서 붓다는 가정의 경우로 그 문제점을 유동성 있게 열어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후대에 이것을 붓다의 확고함으로 오인하여 공동체의 독점적 지배성에 의해서 처벌이 내려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소소계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인해 가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에 대한 완전한 보호막은 온건한 것과 엄격함의 두 요소를 소유하는데 있다는 점이다. 초기 열반경에서 붓다의 온건함은 제1항 ‘법과 율을 스승으로 삼아라’와 제3항 ‘소소계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으로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엄격함을 주장하는 대목은 제2항 호칭에 관한 문제와 제4항 찬나에게 내린 범단법을거론함에 있다. 특히 찬나에게 내린 범단법에 해당하는 조항은 처벌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세운 법이다. 미리 세운 법으로 후대 공동체를 위한 보호막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좀더 다른 각도로 본다면, 범단벌을 받은 찬나는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인물이 아니다. 공동체가 끌어안은 인물이다. 바라이가 상가의 처형과 같은 처벌이라면 찬나의 범단법은 조치가능면서 교계가능하고 모든 공동체의 일원들에게 엄격과 온건함을 실어서 내린 조치로, 공동체 안에서 처방하는 조치이다.

 

바라이는 비유적으로 ‘사람의 목을 쳐서 다시 붙일 수은 없는 것’이라는 엄격성을 그 주안점으로 삼고 있는 처벌이다. 즉 승단에서 추방당한 사람을 다시 승단에서 허락하지 않는 심한 벌이다.『열반경』에서 이 바라이를 범한 사람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공동체의 조직이 더욱 가늘고 촘촘해 지면서 후대에 승단의 엄격성은 더욱 칼날을 세우고 있다. 초기 고대 텍스트에서 보여지는 붓다 재세시의 설법이 과연 어느 정도로 그 공동체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열반경의 공동체에 대한 특징을 율장의 바라제목차와 비교하면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율장의 바라제목차는 비구들이 생활하다 보면서 나타나는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이것은 비유담이 먼저 있고 그 다음 조문이 따른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들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비구는 바라제목차를 외우고 숙지하고 지켜야 비구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구의 청정한 생활을 위주로 하다 겪게 되고 생겨나는 사건들로 인해 비구 개인과 상가의 비난에 대하여 붓다가 그 후에 불합리를 위해 제정한 것이다. 법이 있고 그 법에 맞추어 인간을 끼어 맞춘 것이 아니라, 인간이 먼저이고 그 인간을 위해 제정된 인본주의적인 방편이 바로 학처인 것이다.

 

다만, 초기 열반경은 그 관점을 다르게 한다. 처방적 차원의 범단법과 그 외의 조항들을 설명한다. 그 배경이 열반을 목전에 둔 붓다의 상황으로 이해한다면,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여기서 거론한 네 가지 항목들의 열거는 그 구체성을 살펴볼 때, 그 줄기는 상가 공동체의 안위에 대한 기준에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따로 불리 될 수 없는 사항들이란 것이다. 찬나에게 내린 범단법은 공동체에 흠집을 낼 수 있는 비구에 대한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위엄 있는 조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