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율장

승단 추방에 관하여 - 멸빈(nāsana)을 중심으로- 이자랑

실론섬 2015. 6. 30. 18:54

승단 추방에 관하여

- 멸빈(nāsana)을 중심으로-

이 자랑 

 

Ⅰ. 서론

Ⅱ. 멸빈의 의미

Ⅲ. 멸빈의 대상

    1. 차법(遮法, antarāyikā dhammā)

    2. 십분구족(十分具足) 사미

    3. 무근비방

    4. 바라이 음욕법

Ⅳ. 멸빈 작법

Ⅴ. 결론

 

Ⅰ. 서론

 

모든 집단에는 구성원의 권리를 보호하고, 또한 집단의 질서 유지와 화합을 실현하기 위한 독자적인 규범이 존재한다. 불교 승단에도 율장(律藏, Vinayapiṭaka)이라고 하는 승단 특유의 규범집이 있어, 깨달음의 획득이라는 동일한 목적 하에 출가의 세계로 뛰어든 사람들의 원만한 공동 생활과 질서 유지, 그리고 출가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규칙들이 정해져 있다. 

 

이 규칙들은 율(律, vinaya)이라고 불리며, 내용에 따라 개인으로서 지켜야 할 것과 승단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것의 두 가지로 나뉜다. 구속력을 지니는 타율적인 규칙이므로, 어겼을 경우에는 일정한 벌을 받게 된다. 죄의 종류에 따른 다양한 속죄 방법이 있어, 가벼운 죄인 경우에는 두 세 명이나 한 명의 비구 앞에서 참회의 뜻을 밝히거나, 혹은 범계자가 혼자서 마음속으로 참회함으로써 속죄할 수 있다. 그러나 바라이(波羅夷,pārājika)나 승잔(僧殘, saṃghādisesa)과 같은 중죄(重罪)나, 징벌갈마를 받을 만한 행동을 했을 경우에는 승단이 제재력을 갖고 일정한 벌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승단이 내리는 벌 중에서 가장 가혹한 것이 바로'추방'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깨달음을 얻겠다는 일념으로 불교 승단에 출가한 자에게 있어 승단 추방이란 출가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박탈함과 동시에 수행의 기회마저 빼앗는 것이므로 이보다 더 가혹한 벌은 없다. 화합과 자비를 중시하는 불교 승단에서 추방과 같은 극단적인 처벌은 물론 그리 흔한 조치는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분명 이와 같은 상황을 암시하는 듯한 용어들이 율장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바라이죄를 지은 자에게 내려지는 바라이 불공주(不共住, asaṃvāsa)를 비롯하여, 구출(驅出, pabbājana), 불공수(不共受, asaṃbhoga), 부동주(不同住, nānāsaṃvāsaka), 그리고 멸빈(滅擯, nāsana) 등이 있다. 이들은 각각 구체적인 용법과 그 의미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지만, 동일한 현전승가의 일원으로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생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는 유사한 상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용어 중에서, 승단으로부터의 영원한 추방을 의미하는 말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마도 '바라이 불공주'와 '멸빈'일 것이다. 특히 바라이 불공주는 단두죄(斷頭罪)라고 하여 마치 사람이 머리가 잘리면 재생할 수 없듯이, 영원히 추방되어 다시는 승단에 복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는 것을 의미하는 승단 추방의 대표적인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바라이죄를 지으면 영구 추방되어 다시는 승단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종래의 일반적인 이해에 대하여, 바라이죄를 지은 자가 승단으로부터 영구 추방된 것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하는 논문이 최근에 발표되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앞으로 좀 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바라이 불공주에 관한 율장의 정의를 비롯하여 바라이학회(波羅夷學悔, Śikṣādat ā-śrāmaṇerī)라고 하는 특수한 지위의 존재를 고려하는 한, 이 용어가 반드시 승단으로부터의 영구 추방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은 분명 납득이 가는 의견이다. 지금까지 승단 추방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어 온 바라이 불공주라는 말에 이와 같이 재검토의 여지가 제기된 이상, 율장을 통하여 승단 추방의 문제를 세심하게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1)

1) Shayne, C., Pārājika: the Myth of Permanent and Irrevocable Expulsion from the 
   Buddhist Order: A Survey of the Śikṣādat aka in Early Monastic Buddhism, MA thesis 
   to the University of Canterbury, New Zealand, 1999; 이 논문의 일부를 발표한 것으로 
  「The Existence of the Supposedly Non-existent Śikṣādat ā- śrāmaṇerī ― A New 
   Perspective on Pārājika Penance」,「佛敎硏究」, vol. 29, 2000, pp. 149~176이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번 기회에 멸빈을 중심으로 승단 추방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멸빈은 바라이 불공주와 함께 흔히 승단으로부터의 영구 추방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매우 가혹하고도 중대한 징벌이다. 그런데 이 용어가 승단 운영상 지니는 영향력에 비하여, 정작 율에서는 체계적인 설명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기존의 연구에서도 또한 막연히 승단 추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한국 불교 승단에서도 멸빈은 중요한 징계 중의 하나로 실제로 사용되어 왔으나, 최근에 그 적절함을 둘러싸고 논의가 많다. 이에 제 율의 멸빈 용례를 중심으로 인도 불교 승단에서의 승단 추방의 실태를 알아봄으로써, 멸빈의 구체적인 실태, 즉 멸빈이 의미하는 상황이나, 그 대상과 작법 등에 관한 제 문제를 고찰하고 이것이 승단 운영상 지니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한다.2)

2) 필자는 본 논문에 앞서「월간 선원」7월 호에서 빨리율을 중심으로 멸 빈의 용례를 
   조사하여, 멸빈 대상 및 작법에 관하여 간단하게 소개한 적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 원고의 내용에 한역 제 율의 검토 결과 를 추가하고, 또한 빨리율의 용례도 좀 더 
   상세하게 고찰하였다. 월간 선원 7월 호,「초기 승단, 갈마와 참회로 화합」pp. 18~20.

 

Ⅱ. 멸빈의 의미

 

일반적으로 멸빈이란 '승단 추방'이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이 말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황을 의미하는가에 관해서는 좀 더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승단 추방에는 죄를 짓고도 이를 반성하지 않는 비구에게 참회를 촉구할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승단 생활에 제약을 부과하는 경우와, 출가자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박탈하여 더 이상 불교 승단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의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율장에는 승단 추방을 암시하는 몇몇 용어들이 발견되는데, 이 중에서 구출(驅出, pabbājana)이나 불공수(不共受, asaṃbhoga)는 분명 일시적인 추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비구가 부녀자들과 교제하거나 여러 가지 오락이나 유희를 즐기며 스스로도 타락하고 재가신자들의 믿음도 타락시키는 등의 출가자로서 부끄러운 행동을 할 때, 이 비구를 문제를 일으킨 일정한 지역으로부터 추방할 경우에 구출을 행하게 되는데, 이는 분명 일시적인 추방이다. 구출된 비구는 일정한 주처의 경계 밖에서 살게 되지만, 여법하게 행법(行法)을 실천한 후에 해(解)갈마를 청함으로써 다시 승단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다(Vinaya piṭaka, vol. ⅱ, pp. 9~15). 

 

불공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불공수란 비구가 죄를 짓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참회하지 않거나, 또는 부처님의 법이나 율에 비추어 반하는 것을 주장하며 승단의 충고도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고집할 경우, 승단이 그에게 거죄갈마를 행하고 다른 비구들과 법식 미식을 공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공수의 입장에 놓인 비구는 일반 비구가 지니는 많은 권리를 빼앗기게 되지만, 승단이 부과하는 일정한 행법을 실천하고 여법하게 복죄(服罪)한 후에 승단에 참회의 뜻을 전달하게 되면, 승단은 그의 참회 상태를 검토한 후에 자비와 화합의 정신에 기초하여 해빈(解擯)갈마를 통하여 그를 승단에 복귀시키게 된다. 이렇게 복귀된 비구는 다시 청정한 비구의 입장으로 정상적인 승단 생활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역시 참회를 촉구하기 위한 일시적인 추방임을 알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경우에도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거나 참회할 마음이 없으면 자의(自意)에 의해 환속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승단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추방은 아니며,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멸빈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추방을 의미하는 것일까? 멸빈, 즉 빨리율에서'nāsana'3), 한역 제 율에서 '멸빈(滅擯)'이라고 사용되는 경우는 분명 구출이나 불공수와 같은 일시적인 추방을 의미하는 용어들과는 구별되는 문맥에서 나타난다.4)

3) 빨리율에서는 승단으로부터의 완전한 추방, 즉 멸빈을 나타낼 때는「추방하다」는 
   의미의 동사 nāseti로부터 파생된 말들을 사용한다. 즉 명사형인 nāsana나 과거수
   동분사형인 nāsita 등이다. 
4) 한역 제 율의 경우는 구출(驅出)이나 불공주(不共住), 멸빈 외에도 빈출(擯出) 빈(擯) 
   구빈(驅擯) 등 승단 추방을 의미하는 용어들이 다양한데, 이들이 다소 혼동되어 사용
   되고 있어 이들간의 명확한 의미 파악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초래한다. 예를 들어 분명 
   구출갈마를 언급해야 할 문맥에서 빈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마하
   승기율 권24, 대정장22, p. 425a). 구출과 빈출을 동일한 용법 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이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빈출이 단순한 추방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구출이나 
   빈출이나 모두 추방의 의미를 지니므로 사실 이 양자를 혼동하여 사용한다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단, 명확하게 승단 추방의 실태를 파악하고자 할 경우에는 이와같은 혼동
   이 연구에 많은 어려움을 초래한다. 멸빈을 의미하는 경우도 한역 제 율에서는 멸빈이
   라는 역어 뿐만이 아니라 빈출이나 빈과 같은 말을 사용할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빈출이나 빈과 같은 경 우는 언급한 바와 같이 추방을 의미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혼동
   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멸빈이란 용어는 비교적 제 율에서 일치된 용법
   을 보인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빨리율에서 추방하 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nāseti를 
   비롯하여 이로부터 파생된 단어인 nāsana, nāsita 등과, 한역 제 율에서 이에 상응하여
  「滅擯」이라고 사용되는 부분만을 우선 고찰의 대상으로 삼기로 한다.

 

그 용례를 세심하게 살펴보면, 멸빈은 죄를 참회시키기 위한 일시적인 비구로서의 권리의 제한이라기보다는, 완전한 추방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추측된다. 참회를 목적으로 한 승단 추방의 경우는 정해진 행법을 실천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 승단의 해갈마를 통하여 승단 복귀가 가능하므로, 행법과 승단 복귀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멸빈의 경우는 멸빈된 자가 지켜야 할 행법에 대한 언급도 없을뿐더러, 멸빈된 자가 참회하고 승단의 해갈마를 통하여 승단에 복귀한 경우를 보여주는 기술 또한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똑 같이 승단 추방이라 하더라도 멸빈의 경우

는 완전히 출가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승단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바라이학회의 신분에 놓인 자가 다시 바라이를 저지를 경우에 멸빈된다는 사실로부터도 짐작할 수 있다. 즉 바라이 음욕죄를 저지른 자는 만약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또한 본인이 원한다면 바라이학회라고 하는 특수한 신분으로 승단에 머무를 수 있는데, 이 신분에 놓인 자가 다시 바라이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멸빈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바라이학회의 비구는 보통 비구가 누릴 수 있는 35종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참회하며 살아가야 하므로, 바라이학회를 받은 자가 다시 바라이를 저질렀을 경우에 다시 일시적인 추방을 부과한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멸빈은 분명 승단으로부터의 완전한 추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영원한 추방, 다시 말해서 재 출가까지도 부정하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제 율에서도 명확하지 않으므로 단언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멸빈은 승단으로부터의 영원한 추방을 의미한다고 이해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불광사전'에서는 '빈출(擯出) 구빈(驅擯) 빈(擯)등과 같은 말로 승적을 삭제하는 것을 의미하며, 비구가 바라이죄를 짓고도 뉘우치는 마음이 없을 경우에 승적을 없애고 빈척하는 것으로 세간의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정의에서는 멸빈을 세간의 사형에 비유함으로써 멸빈된 자가 다시는 불교 승단의 일원이 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불교 조계종단의 현행 승려법 제45조를 보면, 멸빈된 자는 '승적을 박탈하고, 승복 법복 승려증 등 승려신분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회수하고, 사찰에서 빈척하고, 복적 또는 재 득도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여, 멸빈된 자의 재출가가 명확히 부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하여 제 율에서는 명확한 설명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멸빈된 경우라도 그 내용에 따라 재 출가 여부가 결정되었던 듯 하다. 예를 들어 빨리율에서는 사미가 멸빈 당하는 열가지 잘못된 행동을 거론하고 있는데(Vinaya piṭaka, vol. ⅰ, p. 85) 주석인 『선견율비바사』에서는 이 열 가지 행동 중에서 비구니를 범한 경우만이 영원히 멸빈되고 재 출가가 허용되지 않으며, 다른 아홉 가지 경우는 만약 능히 고치고 뉘우쳐서 다시 짓지 않으면 출가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승단으로부터 멸빈되어 쫓겨난 경우라도 재 출가의 허용 여부는 일률적이지 않았으며, 그 내용에 따라 조치가 달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멸빈은 분명 구출이나 불공수와 같은 참회를 촉구하기 위한 일시적인 승단 추방과는 구별되는 좀 더 엄중한 처벌이며, 승단에서 완전히 추방되어 승려로서의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는 경우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승단으로부터 일정한 갈마를 통하여 멸빈된 자는 더 이상 불교 교단의 출가자로 행세할 수 없으며, 모든 권리를 완전히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단 멸빈된 자의 재 출가 허용 여부에 관해서는, 제 율에서 이를 완전히 금지하는 규정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죄의 내용에 따라 재 출가를 허용하는 기술도 있으므로 지금으로서는 단언할 수 없는 문제이다. 바라이 불공주와 관련하여 앞으로 좀 더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Ⅲ. 멸빈의 대상

 

멸빈이 승단으로부터의 완전한 추방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불교 승단이 내리는 처벌 중에서 가장 가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떠한 죄를 지은 자들이 멸빈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제 율에 나타난 멸빈 용례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 율의 멸빈 용례를 분류하면, 크게 다음의 네 가지로 나뉜다.

 

1. 차법(遮法, antarāyikā dhammā)

차법에 저촉하는 것을 숨기고 구족계를 받았다가 나중에 발각된 자는 멸빈의 대상이 된다. 차법이란, 비구가 될 수 없는 몇 가지 조건을 가리킨다. 승단의 정식 구성원인 비구가 되기 위해서는 10명 이상의 비구가 모인 자리에서 구족계(具足戒, upasampadā)를 받아야 하는데, 바로 이 구족계 의식을 행할 때 승단은 수계 희망자가 20여 종의 차법, 즉 비구가 될 수 없는 결격 사항에 해당 사항이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만일 이 중에 하나라도 해당 사항이 있으면 구족계를 받을 수 없으며 비구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구족계를 받았다가 나중에 발각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제 율은 바로 이와 같은 경우에 멸빈을 규정한다. 즉 차법에 저촉하는 것을 숨기고 구족계를 받은 자는 나중에 사실이 발각되면, 멸빈해야 한다는 것이다.

 

빨리율에서는 구족계를 주어서도 아니 되며, 모르고 이미 주었다면 멸빈해야 할 사람으로 다음 11종을 열거한다. 즉, 황문(黃門,paṇḍaka), 적주자(賊住者, theyyasaṃvāsaka), 외도로 전향한 자(titthiyapakkantaka), 축생(tiracchānagata), 어머니를 살해한 자(mātughātaka), 아버지를 살해한 자(pitughātaka), 아라한을 죽인 자(arahantaghātaka), 비구니를 범한 자(bhikkhunīdūsaka), 파승자(破僧者, saṃghabhedaka), 부처님 몸에서 피를 낸 자(lohituppādaka), 이근자(二根者, ubhatovyañjanaka)이다(Vinaya piṭaka,, vol.ⅰ, pp. 85~89; vol.ⅴ, p. 140.11). 이들은 차법에 저촉하므로 사실상 처음부터 구족계를 받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자들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속이고 비구가 되었다 하더라도 애초 자격이 안 되는 자들이 비구가 된 것이니 후에 발각되면 멸빈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역 제 율의 기술도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빨리율과 거의 동일하다.『사분율』에서는 13종의 사람을 열거한다.5) 즉, '스스로 변죄(邊罪)를 지었다고 말하는 자, 비구니를 범한 자 적주자, 이도(二道)를 파괴한 자, 황문, 아버지를 살해한 자, 어머니를 살해한 자, 아라한을 살해한 자, 파승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 몸에서 피를 낸 자, 비인(非人) 축생, 이근자이다(사분율권60, 대정장22, p. 1014a. 1).『오분율』에서는 14종을 든다. 빨리율의 11종에 비인(非人), 스스로 변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자, 불능남(不能男)6) 의 3종을 더하여 14종이다.『사분율』과『오분율』의 내용은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5) 한편『사분율』의 다른 곳에서는, 이 13종 외에도 외도와 스스로 자신 의 힘으로 
   남근과 불알을 끊은 자, 즉 불능남(不能男)도 멸빈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사
   분율』권34~35, 대정장22, pp. 806c~807b, 813c) 13) 
6) 불능남은『사분율』이나 『오분율』에서 모두 멸빈의 대상에 포함되지만, 이 두 
   문헌의 불능남에 대한 설명은 각기 다르다.『사분율』에서 는 스스로 자신의 힘
   으로 남근을 끊은 자 만이 해당되지만,『오분율』은 스스로 거세한 경우이든 나
   쁜 짐승에게 깨물리거나 원수에게 해를 당한 경우이든 혹은 저절로 문드러져 못
   쓰게 된 경우이든 상관없이, 다시는 남자가 될 수 없을 때는 모두 멸빈이 적용된
   다. (『사분율』권35, 대정장22, p. 813b~c;『오분율』권17, 대정장22, p.119a)

 

한편,『십송율』의 경우는 다른 제 율과 취지는 같으나, 몇 가지 다른 항목이 보인다. 비구니를 더럽힌 자, 적주자, 불능남, 외도, 전향자, 부모를 살해한 자, 아라한을 살해한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 몸에서 피를 낸 자, 파승자를 거론하는 것은 다른 율과 공통된다. 그런데 이 9종에 축생과도, 음욕죄를 저지른 자, 5전이나 그에 해당하는 물건을 훔친 자, 살인자, 대망어를 저지른 자라고 하여 4바라이를 저지른 자, 그리고 구족계를 받은 후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겠다고 해 놓고는 하지 않는 자, 여근과 남근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이근인불능녀(二根人不能女), 소변을 보는 기관과 대변을 보는 기관이 함께 있는 이도합불능녀(二道合不能女), 항상 생리가 나오는 상유월기불능녀(常有月忌不能女), 늘 생리가 없는 상무월기불능녀(常無月忌不能女), 여자의 모습이 약간 있는 소유여상불능녀(少有女相不能女), 남근을 지닌 채 여근이 생기거나, 여근을 지닌채 남근이 생긴 불실남근득여근(不失男根得女根)과 불실여근득남근(不失女根得男根)의 11종을 더하여 전부 20종을 든다.

 

이 중에서 신체적인 것을 문제로 하는 조항은 다른 율에서 언급하는 이근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특히 불능녀에 대하여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점이 다른 율과는 다르다. 한편, 4바라이를 어긴 경우는 다른 율에서 말하는 스스로 변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자를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이미 출가하기 전에 이 네 가지 중죄를 어긴 경우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자를 출가시켜서도 아니 되며, 설사 모르고 출가시켰다 하더라도 멸빈해야 하는 이유로써, 원래부터 계를 어긴 자는 여래의 선법비니(善法比尼)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십송율』의 기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구족계를 받은 후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겠다고 하고는 이를 실행하지 않는 자라고 하는 기술이다. 이것은 이전에 출가하였을 때 죄를 짓고도 인정하지 않아 승단으로부터 거죄갈마를 받은 자가, 비구로서의 권리에 많은 제한을 받게 되자 구족계를 반납하고 환속하였다가 다시 출가하고자 할 경우에, 구족계를 받고 난 후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겠다고 해 놓고는 실천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거죄갈마를 받은 자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정해진 행법을 실천하여, 승단으로부터 해갈마를 받고 출죄한 후에만 승단에 복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출죄하지 않고 다시 정식 비구로 승단 생활을 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율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차법에 저촉되는 자가 그 사실을 숨기고 출가하였다가 나중에 발각되면 멸빈해야 한다는 취지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2. 십분구족(十分具足) 사미

빨리율에서는 사미가 멸빈되는 경우를 10가지 든다. 즉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십분(十分)을 구족한 사미를 멸빈할 것을 허락한다. 즉, 살생하거나, 투도하거나, 비범행(非梵行)을 하거나, 망어를 하거나, 음주하거나, 부처님을 비방하거나, 법을 비방하거나, 승을 비방하거나, 사견(邪見)이 있거나, 비구니를 범한 경우이다. 비구들이여! 이와같은 십분 구족 사미를 멸빈할 것을 허락한다" 7)
7) Vinaya piṭaka, vol. ⅰ, p. 85.
   anujānāmi bhikkhave dasah 'aṅgehi samannāgataṃ sāmaṇeraṃ nāsetuṃ: pāṇātipātī hoti, 
   adinnādāyī hoti, abrahmacārī hoti, musāvādī hoti, majjapāyī hoti, buddhassa avaṇṇaṃ 
   bhāsati, dhammassa avaṇṇaṃ bhāsati, saṃghas a avaṇṇaṃ bhāsati, micchādiṭ hiko hoti, 
   bhikkhunīdūsako hoti, anujānāmi bhikkhave imehi dasah' aṅgehi samannāgataṃ 
   sāmaṇeraṃ nāsetun ti. 
   한편『선견율비바사』권17 에서도 사미에게 십악(十惡)이 있음을 기 술하면서, 
   이 중에서 비구니의 깨끗한 행을 파괴하는 것만은 영원히 멸빈되어 다시 출가할 수 
   없으며, 나머지 아홉가지 계는 만약 고치고 뉘우쳐서 다시 짓지 않으면 출가할 수 
   있다고 한다.(沙彌有十惡 應滅 擯 何者爲十 殺盜婬欺飮酒毁佛法僧邪見壞比丘尼 
   是名十惡法 唯壞比丘尼 淨行 永擯不得出家 餘九戒若能改悔 不更作得出家) 
   『선견율비바사』권17, 대정장24, p. 792a.)

사미의 경우는 출가할 때 사미 10계를 받게 되는데, 이는 비구의 250계에 비해 훨씬 적은 수이다. 그리고 10계의 내용 또한 재가자에게 요구하는 오계 내지 팔재계의 내용과 거의 유사하므로, 이는 주로 불교도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에 불과하며, 엄격한 생활을 요구하는 것들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는 사미를 승단의 정식 출가자가 아닌 견습생으로 간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은 견습생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본적인 계율의 수지를 더욱 더 철저하게 요구받았던 것 같다. 즉 불살생, 불투도, 불음행, 불망어, 불음주의 오계를 비롯하여, 불법승 삼보에 대한 비방, 그리고 사견을 지니거나 비구니를 범하는 등의 행동은 불교 승단의 출가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라고 간주하고 이를 저지른 사미의 멸빈을 규정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편, 한역 제 율에서는 사미의 멸빈 사유를 빨리율과 같이 10종으로 규정하는 기술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열 가지 중에서 특히 사미가 사견을 버리지 않을 경우에 관해서는 제율이 공통으로 멸빈을 명확히 규정한다. 먼저 빨리율의 바일제 제70조 '공주빈사미계(共住擯沙彌戒)'를 보면, 깐다까(Kaṇḍaka)라는 사미가 '내가 세존이 설하신 법을 이해하는 바에 의하면 세존이 장도법이라고 말씀하신 것들은 이를 실행하는 자에게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악견을 주장하며, 비구들의 충고도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일을 전해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학처를 제정하셨다고 한다.

 

어떤 사미이든 '내가 세존이 설하신 법을 이해하는 바에 의하면 세존이 장도법(障道法, antarāyikā 

dhammā)이라고 말씀하신 것들은 이를 실행하는 자에게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비구들은 그 사미에게 '사미여! 그와 같이 말해서는 안 된다. 세존을 비방하지 마라. 실로 세존에 대한 비방은 좋지 못하다. 세존은 그와 같이 말씀하시지 않았다. 사미여! 많은 방법으로 세존께서 장

도라고 설하신 장도법은 그것들을 실천하는 자에게 분명히 장애가 되느니라'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 그 사미에게 이렇게 말하는데도, 여전히 그와 같이 주장한다면, 비구들은 그〔악견〕을 버리도록 하기 위하여 그 사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사미여! 오늘 이후 너는 세존을 너의 스승이라고 칭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미는 비구들과 함께 이틀 밤이나 삼일 밤을 동숙할 수 있으나 너는 할 수 없다. 멀리 떠나 사라지거라.'

어떤 비구라 하더라도 알면서 이와 같이 멸빈당한 사미를 설득하거나, 돌보거나, 함께 식사를 하거나, 함께 잔다면 바일제이다.8)

8) Vinaya piṭaka, vol. ⅳ, p. 139. 

 

이 학처로부터 알 수 있듯이, 사미가 다른 비구들의 충고도 무시한 채 끝내 사견 내지 악견을 주장한다면 멸빈된다. 이것은 한역 제 율에서도 동일하다. 『사분율』에서는 발난타(跋難陀) 석자가 데리고 있던 갈나(羯那)와 마후가(摩睺迦)라는 두 사미가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는 '우리들이 부처님께 법문을 듣건대 음욕을 행하여도 도법에 장애되지 않는다 하시더라'라고 하는 악견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승단이 백사갈마로 악견을 버릴 것을 간고해도 버리지 않았으므로, 백사갈마를 하여 이 사미를 멸빈해야 한다고 한다. 『오분율』과 『십송율』에서도 마찬가지로 백사갈마로 멸빈해야 한다고 기술한다. 악견을 주장하는 비구에게 바일제가 적용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동일한 죄라도 사미에게는 훨씬 더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3. 무근비방

만일 아무런 근거 없이 바라이죄로 비구를 비방한다면, 이 역시도 멸빈 대상이 된다. 빨리율 「멸쟁건도」에 의하면, 답바 말라뿟따(Dabba Mallaputta)비구는 승단에서 와좌구(臥坐具)를 분배하거나 신자의 청식에 응하는 순서를 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자지(慈地) 비구가 좋지 못한 대접을 받게되었다. 이것을 답바말라뿟따의 탓이라고 여겨 원한을 품은 이들은 누이 동생인 자 비구니에게 '답바 말라뿟따가 저를 더럽혔습니다'라고 부처님께 고하여 답바 비구를 멸빈당하게 하려 한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계신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자 비구니를 무근 비방죄로 멸빈하셨다고 한다. 『사분율』과『오분율』도 빨리율과 동일하다. 한편『십송율』에서는 단지 답바 말라뿟따가 차회인(差會人)의 역할을 공정하게 수행하지 못했다고 무근으로 비방하여 멸빈시키려고 한다.

 

율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다른 비구에게 근거 없이 누명을 씌워 비방하는 자, 특히 죄를 짓지 않은 청정 비구를 바라이 음욕죄를 저질렀다고 거짓으로 승단에 고하는 자는 멸빈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바라제목차에 의하면, 원래 무근비방죄, 즉 죄를 저지르지 않은 청정한 비구에게 바라이죄의 누명을 씌워 승단에 고하는 것은 승잔죄 제8조 '무근방계(無根謗戒)'에 해당하므로, 이는 멸빈이 아닌 승잔죄의 대상이 된다. 이 무근방계의 인연담 역시 위에서 소개한 답바 말라뿟따 비구의 사건과 동일하다. 즉 근거없이 다른 비구를 바라이죄로 비방하는 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멸빈이 아닌 승잔죄이다. 승잔죄는 죄를 짓고 숨긴 날 만큼 별주(別住, parivāsa) 생활을 하고, 또한 마나타(摩那埵, mānat a)라고 하는 일주간의 근신 생활을 보낸 후에 10명 이상으로 구성된 승단에서 출죄할 수 있다고 하는 명확한 규정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명 멸빈과는 다르다. 따라서 무근 비방을 저지른 자가 모두 멸빈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근 비방과 관련하여 어떠한 경우에 멸빈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지금까지 언급한 무근방계와 「멸쟁건도」에 보이는 답바 말라뿟따에 관한 전승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이것은 비구니가 비구에게 바라이죄의 누명을 씌운 경우에만 한정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무근방계를 보면, 음모를 꾸민 자지 비구에게는 승잔죄를 적용하고 이들을 도와 부처님께 답바 말라뿟따에게 더럽혀졌다고 직접 거짓말을 한 자 비구니는 멸빈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멸쟁건도」의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 전승을 통해서 보는 한은, 비구에게 바라이 음욕죄의 누명을 씌운 비구니가 멸빈의 대상이며, 무근 비방이라 하여도 비구의 경우는 승잔죄가 됨을 알 수 있다.

 

4. 바라이 음욕법

이상 언급한 세 가지 경우는 제 율의 기술이 거의 동일하며, 의미하는 바도 비교적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라이죄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멸빈은 율에 따라 기술에 차이가 있으며 내용에도 혼란이 있어 그 실상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비교적 일치하는 기술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 두 가지 점은 분명하다.

 

첫째, 4바라이를 저지른 식차마나 사미 사미니는 멸빈된다. 이것은 본 장의 2. 십분구족사미에서 언급한 빨리율의 '사미가 멸빈되는 10가지 경우'중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분율』에서는 4바라이, 즉 음욕 살생 투도 대망어를 저지른 비구나 비구니는 바라이이며, 식차마나, 사미, 사미니는 돌길라이며 멸빈이라고 한다. 바라이와 멸빈을 이와 같이 구별하고 사용하는 것은, 구족계를 받은 비구나 비구니는 바라이죄를 저지르면 바라이 불공주라고 하는 벌이 적용되지만, 식차마나나 사미, 사미니의 경우는 구족계를 받지 않았으므로 이 벌을 적용할 수 없는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양자에 의미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구별하여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바라이 불공주와 관련하여 앞으로 좀 더 검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둘째, 비구가 바라이 음욕죄를 저지르고 난 후 참회하는 마음이 없이 그 사실을 숨기려 하거나, 바라이 음욕죄를 짓고 바라이학회의 입장에 있으면서 다시 음욕죄를 저지를 경우는 멸빈된다. 멸빈

은 바라이죄 중에서도 특히 음욕법과 관련하여 나타나는데, 예를들어 『오분율』에서는 음욕죄를 저지른 비구를 백사갈마로 멸빈한다는 기술이 보이며, 빨리율에서는 어떤 비구가 자고 있는 비구에게 성행위를 하였을 경우, 만약 자고 있던 비구가 깨어난 후에 쾌감이 있다면 두 사람을 함께 멸빈해야 하며, 만약 깨어난 후에 쾌감이 없다면 더럽힌 자만 멸빈해야 한다고 한다. 빨리율의 또 다른 부분에서는, 웨살리에 살고 있던 리챠비족의 청년들이 비구를 끌고 가서 비구니와 성행위를 하도록 하였다. 이 때 만약 쾌감이 있다면 둘 다 멸빈해야 하며, 쾌감이 없다면 둘 다 무죄라고 한다. 즉 바라이 음욕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쾌감이 있는 경우와 적극적으로 더럽힌 자가 멸빈의 대상이 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비구를 비롯하여 비구니, 사미, 사미니, 식차마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바라이 음욕죄를 저지른 비구도 멸빈의 대상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음욕죄를 저질렀다고 즉시 멸빈되는 것은 아니다. 바라이 음욕법은 범계 후에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또 범계자가 바란다면 바라이학회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승단에 머무를 수 있다. 바라이학회는 바라이 음계에만 적용되는 특례로써, '여학사미(與學沙彌) 진형학회(盡形學悔)'라고도 불린다. 음욕의 경우에는 교묘하게 유혹 당하면 수행의 의지가 있는 비구라도 범계할 수 있으므로, 이를 구제하기 위한 방법이다. 즉 음욕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즉시 뉘우치고 숨기지 않으며, 또한 자신이 희망한다면 바라이학회라는 신분으로 승단에 머무를 수 있다. 바라이계를 받고 바라이학회의 신분이 된 자는 35사(事)라고 하여 일반 비구가 누릴 수 있는 35종의 권리에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를 잘 지키는 한 승단에 머물 수 있다. 『사분율』에서는 '만일 어떤 비구에게 바라이의 충고를 주었는데 그 비구가 다시 음욕의 부정한 행을 범하면 다시 바라이의 충고를 줄 수 있습니까?'라고 비구들이 묻자, 부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 마땅히 멸빈해야 한다.'라고 하신다(『사분율』권34, 대정장22, pp. 809a~c: 권55, 973a). 이것은 바라이 음욕죄를 저지른 자가 바라이계를 받은 후에 다시 음욕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멸빈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처음 음욕죄를 저지른 자는 스스로 참회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멸빈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와 같은 사정은 『승갈마(僧羯磨)』의 「제죄편」에 잘 정리되어 있는데, '바라이죄를 소멸시키는 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참회할 수 없는 죄를 바라이라고 한다. 바라이죄를 범하고서 법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죄를 범하고 덮어 숨긴 자에게 멸빈갈마를 주는 경우이고, 둘째는 죄를 범하고 덮

어 숨기지 않은 자에게 진형학회갈마(盡形學悔羯磨)를 주는 경우이고, 셋째는 학회갈마를 하고서도 거듭해서 죄를 범한 자에게 멸빈갈마를 주는 경우이다.9)

9)『승갈마』 대정장40, p. 521b.29).

 

이 기술로부터 바라이죄를 범하더라도 숨기지 않는 자에게는 진형학회갈마, 즉 바라이학회를 주며, 멸빈갈마는 바라이죄를 저지르고 그 사실을 숨기거나, 바라이학회의 신분에 있는 자가 다시 반복해서 이 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만 한정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언급되는 바라이란 4 바라이죄 중에서도 특히 음욕죄를 가리킨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제 부파의 현존하는 광율은 바라이 음욕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한해서만, 바라이학회라는 특수한 신분을 인정하며, 또한 음욕죄를 저지르고도 숨기려 하거나 재범할 경우에 한정하여 멸빈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 살생, 투도, 대망어와 같은 바라이죄의 경우에는 보통 바라이 불공주 만이 언급되며, 멸빈이라는 표현은 거의 직접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음욕죄 외의 다른 바라이죄의 경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만약 바라이 불공주가 종래의 일반적인 이해와는 달리 승단으로부터의 영원한 추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분명 멸빈과는 구별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살생 투도 대망어를 저질렀을 경우는 멸빈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사실상 살생이나 투도는 세간법에 의해 처벌될 죄이므로 승단이 적극적으로 멸빈을 규정할 필요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대망어는 중한 죄이기는 하지만 범계자 본인이 적극적으로 범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멸빈과 같은 중대한 벌을 적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제 율에서 멸빈을 음욕죄에만 한정하여 사용하는 것은 바로 살생이나 투도, 대망어와 같은 바라이죄가 음욕법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제 율에서 명확히 멸빈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① 차법에 저촉하는 것을 숨기고 구족계를 받았다가 나중에 발각된 자 ② 10가지 악행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사미, 그 중에서도 특히 악견을 버리지 않거나 비구니를 범한 사미 ③ 비구에게 바라이죄의 누명을 씌워 비방하는 비구니 ④ 바라이 음욕죄를 저지르고 그 사실을 숨기거나, 바라이학회의 신분에 놓인 비구가 다시 음욕죄를 저질렀을 경우의 4 종임을 알 수 있다.10)

10) 빨리율「부수(parivāra)」에서는 'nāsitakā tayo vuttā'라고 하 여 3 가지 종류의 
    멸빈자를 든다 (Vinaya piṭaka, vol. ⅴ, p. 211). 이 에 대한 사만따빠사디까의 주
    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nāsitakā tayo nāma Mettiyaṃ bhikkhuniṃ nāsetha, dūsako 
    nāsetabbo, dasah aṅgehi samannāgato sāmaṇero nāsetabbo, Kaṇḍakaṃ 
    samaṇuddesaṃ nāsethāti evaṃ liṅga-saṃvāsa-daṇḍakamma-nāsanavasena 
    tayo nāsitakā veditabbā. (Samantapāsādikā, vol. ⅶ, pp. 1383~1384.) 
    세 종류의 멸빈자란, 멧띠야 비구니를 추방하여라, 즉 더럽힌 자가 추방 되어야 한다 
    십분구족(十分具足) 사미는 추방되어야 한다 '깐다까 사미를 추방하여라'라고 하는 
    것으로, 이와 같이 옷을 빼앗는 것 다른 비구들과의 교제를 금하는 것 범계에 대한 
    벌로써 사미를 내쫓는 것에 의하여 세 종류의 멸빈자가 있다고 알아야 한다.

 

제 율에 나타난 멸빈의 용례로부터 보아 불교 승단에는 분명 멸빈이라는 조치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식 비구의 경우에는 바라이 음욕죄를 저지르고 그 사실을 숨기거나, 반복해서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멸빈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차법의 경우는 비구가 될 자격이 없는 자가 이를 숨기고 출가한 것이니 나중에 발각되면 비구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멸빈되는 것은 당연한 조치이다. 이것은 정식 비구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 두 번째는 사미의 경우이니, 비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세 번째에 기술한 무근비방의 경우는 비구라면 승잔죄가 적용되므로, 비구니가 비구를 무근 비방한 경우에만 멸빈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남는 것은 '바라이 음욕죄를 저지르고 참회하는 마음이 없이 그 사실을 은폐하려 하거나, 승단으로부터 바라이학회를 받은 비구가 다시 음욕죄를 저질렀을 경우'뿐이다. 정식 비구에게 멸빈이 이루어진 것은 이 경우 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바라이학회의 신분에 놓인 자는 이미 정식 비구가 아닌 사미의 신분에 있는 자이므로 이 역시 정식 비구라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정식 비구의 경우에는 바라이 음욕죄를 저지르고도 참회하는 마음이 없이 그 사실을 숨기려고 했을 때만 멸빈의 대상이 됨을 알 수 있다.

 

Ⅳ. 멸빈 작법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멸빈은 적은 예이기는 하지만, 분명 특별한 몇 가지 죄에 대하여 이루어진 처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자.

 

먼저 사미를 멸빈하는 경우를 보면, 율에 따라 내용에 차이는 있으나 바일제 '공주빈사미계'에서 악견을 주장하는 사미를 멸빈하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31). 빨리율의 이 학처에 의하면,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사미를 멸빈시키는 작법을 다음과 같이 제정하셨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승단은 깐다까 사미를 멸빈해야 한다.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멸빈해야 한다. '벗 깐다까여! 오늘 이후 너는 세존을 너의 스승이라고 칭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미는 비구들과 함께 이틀 밤이나 삼일 밤을 동숙할 수 있으나 너는 할 수 없다. 멀리 떠나 사라지거라.'"

 

이 기술에 이어 '이렇게 하여 승단은 깐다까 사미를 멸빈했다'라는 기술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빨리율에 의한다면 사미의 멸빈은 승단의 갈마를 통하지 않고, 단지 위의 말을 읊는 것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사분율』에서는 빨리율과 거의 유사한 멸빈 작법을 기술하고는 있지만, 멸빈을 백사갈마로 진행한다고 하는 점에서 다르다. 즉 승단의 간고에도 악견을 버리지 않는 사미를 대중 앞에 데려다가 눈으로는 보이고 귀로는 들리지 않는 곳에 세워 두고는 비구들 중에서 유능하게 갈마를 할 수 있는 자를 선발하여, 이 사미가 악견을 버리지 않으니 멸빈하자는 내용의 백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어서 빨리율과 마찬가지로, '지금부터 이 두 사미에게 부처님은 나의 스승이다 라고 하지 못하게 하며, 다른 비구들을 따르지 못하게 하며, 다른 사미들은 비구들과 함께 두 밤 세 밤을 잘 수 있거니와 너희들은 못한다. 너희들은 떠나라. 너희들은 사라져라. 여기에 있지 말라 하겠습니다.'라고 하여 멸빈 갈마를 행한다고 한다. 이를 백사갈마로 하면, 이것이 곧 그 사미를 멸빈하는 작법이 되는 것이다.『사분율』에서는 멸빈을 승단이 멸빈백사갈마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오분율』에서도『사분율』과 마찬가지로 백사갈마로 멸빈을 행 할 것을 규정한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한 비구가 큰 소리로 '대덕 스님들은 들으십시오. 아무개 사미가나쁜 사견을 버리지 않으므로 이제 대중은 그에게 멸빈을 짓겠습니다. 만약 대중이 때에 이르렀으면 대중은 승인하고 허락하십시오. 이와 같이 아룁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큰 소리로 '대덕 스님들은 들으십시오. 아무개 사미가 나쁜 소견을 버리지 않으므로 이제 대중은 그를 멸빈시키겠습니다. 어느 장로께서든지 승인하시면 잠자코 계시고 만일 승인하지 않으시면 말씀하십시오.'라고 한다. 두 번째, 세 번째도 이렇게 말하고는, '승가는 아무개 사미를 멸빈하는 일을 마쳤습니다. 스님들께서 승인하시어 잠자코 계셨기 때문이니, 이 일은 이와 같이 지니겠습니다.'라고 하며 끝맺는다고 한다. 즉 『오분율』에서는 백사갈마로 멸빈을 행하기는 하지만, 빨리율이나 『사분율』에 보이는 것과 같은 '오늘 이후 너는 세존을 너의 스승이라고 칭해서는 안 되며, ...멀리 떠나 사라지거라.'라는 말은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십송율』에서는 이 말은 보이지 않지만, 한 비구가 승단에 악견을 버리지 않는 사미를 멸빈할 것을 고하는 형식으로 갈마를 통하여 멸빈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제 율에 따라 멸빈 작법에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빨리율에서는 더 이상 불법을 함께 하지 않겠다는 것과 사미로서의 권리를 빼앗는다는 것을 비구들이 당사자인 사미에게 선언함으로써 멸빈이 이루어지지만, 한역 제 율에 의하면, 멸빈은 백사갈마로 행하여야 한다. 단 백사갈마로 멸빈을 행하는 구체적인 과정은 율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한편 비구니의 멸빈 과정은 『오분율』에서만 상세하게 전해진다. 『오분율』에서는 비구니도 사미와 마찬가지로 백사갈마로 멸빈한다. 예를 들어, 미다라 비구니가 다바 비구를 근거 없이 바라이죄 음욕죄로 비방하자, 부처님께서는 '다바에게는 억념비니(憶念比尼)를 주어 일을 거론하지 말아야 하며, 미다라에게는 백사갈마(白四羯磨)를 하여 자언비니(自言比尼)를 주고 멸빈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백사갈마로 멸빈을 행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소개한다. 먼저 한 비구가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십시오. 이 미다라 비구니는 스스로 말하기를, 〔다바가 나를 더럽혔다〕고 하였으니, 대중은 이제 자언비니를 주어 멸빈하겠습니다. 대중이 때에 이르렀으면 대중은 승인하고 허락하십시오. 이와 같이 아룁니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십시오. 이 미다라 비구니는 스스로 말하기를, 〔다바가 나를 더럽혔다〕고 하였으니, 대중은 이제 자언비니를 주어 멸빈하겠습니다. 어느 장로이든지 승인하시면 잠자코 계시고 만일 승인하지 않으시면 말씀하십시오.'

이와 같이 두 번째와 세 번째도 그렇게 하고는 '대중은 이미 미다라 비구니에게 자언비니를 주어 멸빈하는 일을 마쳤습니다. 스님들께서 승인하시어 잠자코 계셨기 때문이니, 이 일은 이와 같이 지

니겠습니다.'"

 

즉 이것이 백사갈마에 의한 멸빈 작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자언비니란 미다라에게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여 실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승단이 갈마를 행할 경우 지켜야 할 사항 중의 하나로써, 반드시 당사자를 불러다 놓고 스스로 인정하게 해야 한다. 본인이 없는 장소에서 멸빈갈마를 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데 무리하게 갈마를 하여 처벌을 내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이 외의 다른 율에서는 비구니의 멸빈에 관한 상세한 기술은 발견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사미의 경우에도 율마다 멸빈작법이 불일치하며, 비구니의 경우 역시 상세하게 소개하는 율은 적다.

 

한편, 비구를 멸빈하는 작법에 관해서는 더욱 더 설명이 부족하며, 광율(廣律)에서는 거의 상세한 설명을 찾아 볼 수가 없다.『사분율』에서는 '멸빈이란 승단이 백사갈마로 제거한 것'이라고 하며, 『십송율』에서는 '멸빈이란 불법에 따라 한 마음으로 화합승단이 멸빈 갈마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하여, 일반적으로 멸빈이 백사갈마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11)

11) 백사갈마(白四羯磨)란 구족계 수여나 포살 자자와 같은 승단 운영상 매우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 사용되는 갈마의 형식이다. 1회의 의제 선언과 이에 대한 3회의 찬부 여부 
    확인 절차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승단의 갈마는 현전승가의 모든 비구들의 참석 및 올
    바른 갈마 형식 에 의한 회의 진행 등의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을 경우에만 그 유효
    성이 인정된다. 즉 승단의 모든 결정은 반드시 현전승가 내의 모든 비구들의 의견에 
    근거하여 나중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가능한 한 완벽한 조건을 갖춘 상태
    에서 내리는 것이다. 멸빈 역시 백사갈마로 이루어졌다면, 현전승가의 모든 비구들이 
    참석한 자리에 서 멸빈 대상에 오른 비구를 불러다 놓고 그의 말을 충분히 들어 본 후, 
    모든 비구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올바른 갈마 절차로 멸빈을 선언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조계종의 현행 종헌에 보이는 멸빈의 절차는 전통적인 제 율 에 보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총무원법 20조 2항에 의하면, "등원 또는 출석 요구는 최다 3회까지 
    하며, 3회까지 출석 요구를 받고 도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아니하는 자는 제소된 
    내용대로 징계에 회부할 수 있다. 다만, 피제소자가 주소 불명인 경우 3회의 출석 요구 
    후 총무원 게시판과 종단 기관지에 1회의 등원 공고를 함으로써 등원 요구 절차를 완
    료한다."라고 하여 '3번 출석 통보를 하여 출석하지 않을 시에는 불참해도 그대로 징
    계를 진행할 것'을 규정 하고 있다. ("대한 불교 조계종 법령집" 대한 불교 조계종 총
    무원, 1995, pp. 86~87) 호계원 심판부법 제12조 4항에서도 '3번 송달 후에 만일 연
    락이 없을 때는, 주소 불명인 경우에는 3회 송달 후 총무원 청사 게시판과 종단 기관
    지에 1회 공고한 것으로 송달을 대신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前揭書, p. 153)

 

그러나 이 외에 상세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빨리율에는 아예 멸빈을 갈마에 의해 실행한다는 기술조차 없다. 이것은 다른 징벌 갈마와 비교할 때, 매우 큰 차이이다. 일반적으로 율장 건도부「갈마 건도」에는 거죄갈마나 하의 갈마 구출 갈마 의지 갈마 등과 같은 징벌 갈마에 대하여 그 작법이나 대상에 관하여 매우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멸빈갈마에 관한 설명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승단이 제재력을 발휘하는 징벌 갈마의 일종이자 승단 운영상 가장 엄중한 처벌인 멸빈 갈마에 관해서 체계적인 설명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승단 운영에서 멸빈이 중요한 징벌로써 기능하지 못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율장의 규칙은 필요에 따라 제정되고 정리되어 가는 경향이 있는데, 만약 멸빈이 정말 승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시 말하자면 멸빈을 실행해야 할 경우가 많았다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그 과정이 상세하게 남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위의 멸빈의 대상에 관한 고찰 결과로부터도 알 수 있듯이, 멸빈 대상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으며 사실상 정식 비구에게 멸빈이 이루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멸빈의 작법이 체계화되지 못한 채, 단지 승단의 중요한 결정에 사용되는 백사갈마로 행하라는 기술만이 한역 제 율에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Ⅴ. 결론

 

이상, 제 율을 중심으로 멸빈의 의미와 대상, 그리고 그 작법에 관하여 알아보았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집단에서는 그 단체의 규율을 어기는 자에게 일정한 처벌을 내린다. 그 처벌 중에서 가장 가혹한 것이 바로 추방이다. 불교 승단에서도 승단 추방이라는 가혹한 처벌이 분명 존재하였으며 이것은 멸빈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인도불교승단에서는 멸빈이 정식 비구를 대상으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징벌이었다고 보여진다. 즉 비구가 될 수 없는 조건인 차법을 숨기고 출가한 자나, 악견을 주장하고 버리지 않는 등의 열 가지 악행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른 사미, 혹은 비구를 바라이 음욕죄로 근거 없이 비방한 비구니, 그리고 바라이 음욕죄를 짓고 이를 숨기려 하거나, 바라이 음욕죄를 저질러 바라이학회라고 하는 특수한 신분에 놓인 자가 다시 음욕죄를 범하는 경우에만 멸빈은 실행된다. 결국 정식 비구의 경우는 음욕죄를 저지르고 이를 숨기려고 한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청정함을 생명으로 하는 출가자가 음욕죄를 저지르고도 참회하지 않고 이를 숨기려 하거나 재범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최악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때는 멸빈이라는 가혹한 처벌을 행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현존하는 제 율에 의한다면, 승단으로부터의 완전한 추방인 멸빈은 사실상 정식 비구에게 쉽게 적용되는 처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승단 추방과 같은 엄중한 처벌로 다스려야 할 경우에는, 일시적인 승단 추방, 즉 악행을 징계할 목적으로 멸빈과 유사한 상황에 두고 반성과 참회를 촉구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멸빈된 자가 승단으로부터 완전히 추방 당하는 것과는 달리, 승단이 정해 준 행법을 실천하고 나중에 참회하게 되면 해빈 갈마를 통하여 다시 승단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다. 비구로서의 권리를 대부분 박탈하여 정상적인 승단 생활을 어렵게 함으로써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승단의 다른구성원들과 법식(法食) 미식(味食)을 공유하지 못하므로 사실상 멸빈과 다름없이 승단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주어진 행법을 여법하게 실천하고 참회의 뜻을 밝힘으로써 사면 복권이 가능하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12)

12) 최근에 한국 불교 승단에서도 멸빈 처분에 관하여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제 율의 멸빈 대상에 관한 본 논문의 연구 결과 는, 현행 종헌 종법상의 멸빈 처분 관련 
    규정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조계종단의 현행 현승려법 제46조에 의하면, 멸빈은 다음 
    일곱 가지 경우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① 불조에 대하여 불경한 행위를 한 자 ② 도당을 
    형성하여 반 불교적 행위를 한 자 ③ 불계 중, 4 바라이 죄를 범하여 실형을 받은 자 ④ 
    불법 부당한 개인의 사욕을 도모하 기 위하여 종단의 법통과 교권을 침해코자 종단내의 
    조정기관(소청 심사위원회, 법규위원회, 호계원) 또는 판정 기관의 시정절차를 밟지 아
    니하고 허위사항을 유포 조작하여 고의로 사직 당국에 민 형사간 제소를 일으키는 자 
    ⑤ 집단으로 행각하면서 타인에게 포력 행위를 하는 자 ⑥ 1회 이상 제적당하고 참회의 
    정이 없는 자 ⑦ 본종의 승 적을 취득하고 있으면서 종지가 다른 타 종단의 승적을 취득
    하고 있 는 자이다.(「대한 불교 조계종 법령집」 대한 불교 조계종 총무원, 1995, p. 
    210) 본 논문의 연구 결과와는 상당히 다른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조계종이『사분율』을 
    소의 율장으로 하며, 구족계를 근본규범 으로 하는 출가승단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것은 매우 의외의 결 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조계종단에서 사용되고 있는 멸빈법은 고려 시대 이래로 사용 되어 온 치탈도첩
    (褫奪度牒)법에 유래한 것으로, 94년 종단 개혁 때 종헌이 개정되면서 치탈도첩을 멸빈
    으로 그 용어만 개칭하여 지금까 지 사용하고 있다(현대불교, 2003. 6. 11일자). 위에서 
    언급한 조계종단의 현행 멸빈 사유와 율장의 멸빈 사유에 보이는 차이점도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앞으 로 율장의 멸빈법과 
    치탈도첩법의 법적 근거 및 처벌 방법 등의 비 교 검토에 근거하여 다시 생각해 볼 필
    요가 있다.)

 

멸빈의 재출가 허용 여부에 관해서는 좀 더 검토해 보아야겠지만, 만약 멸빈이 조계종단의 현행 승려법 제45조에 규정된 바와 같이 복적 또는 재득도할 수 없는 처벌이라면 이것은 매우 신중하게 행해져야 할 처벌이다. 멸빈은 종종 세간의 사형 제도에 비교되는데, 이미 세간에서도 사형 제도가 초래할 회복 불가능한 결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있다. 하물며 깨달음의 획득을 목표로 모여든 사람들이 화합을 추구하며 공동 생활을 하는 집단인 불교 승단에서, 영원히 수행의 기회를 빼앗는 멸빈과 같은 가혹한 처벌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인도불교 승단에서도 아마 멸빈이 초래할 이와같은 중대한 결과를 고려하여, 구족계를 받고 승단의 정식 구성원이 된 비구에게는 승단으로부터의 완전한 배제를 전제로 한 멸빈을 최대한 자제하고, 일시적인 추방을 선언하여 범계자의 참회를 촉구함으로써 이에 의하여 불화를 해결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이야말로 자비와 화합에 근거하여 함께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수행자들이 보여 주어야 할 진정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