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양주 소암전 대사 1) 시중
근래에 돈독히 뜻을 세워 참선하는 자가 드물고,
설혹 참선한다 하여도 혼산이마(昏散二魔) 2) 에 얽히고 결박되어
정히 혼산과 의정이 서로 상대가 되어 대치되는 줄을 아지 못하는구나!
신심이 큰 즉 의정이 반드시 크고
의정이 큰 즉 혼산은 스스로 없어진다.
▒ 용어정리 ▒
[1] 소암전(素庵田) :
남악하 26세. 법을 하안거사(何庵居士)에게 이었다.
[2] 혼산이마 :
마음을 어지럽히고 어둡게하여 공부를 방해하고 공덕을 좀 먹는 것이 "마(魔)" 이니, 공부에는 혼침과 산란심이 두 가지 큰 마(魔)이다.
12. 처주 백운무량창 선사 1) 보설
26(二六)시 중에 화두로 가고 화두로 머물며 화두로 앉으며 화두로 눕되,
마음 속이 흡사 밤송이를 삼킨 것 같기만 하면,
일체의 시비분별과 무명 2) 과 오욕 삼독(三毒) 3) 등에 휩쓸리지 않아
행주좌와(行住座臥)가 온통 한 개의 의단(疑團)이 되리니,
의단으로 오고 의단으로 가서 종일 숙맥같이 어리석게 지내가면,
어느덧 경계를 당하여 "왁!" 한 소리 칠 것이 분명하다.
▒ 용어정리 ▒
[1] 무량창(無量滄) :
남악하 28세. 법을 이암진(이庵眞)선사에게 이었다.
[2] 무명(無明) :
"어둑한 마음" "어리석은 마음" 을 뜻한다. 중생이 미하여 지혜의 밝음이 없어져 사물과 도리를 바로 이해못하는 정신상태이니 중생 윤회는 무명이 근원이 된다. 공안을 요달할 때 무명은 타파된다. 곧 자재(自在)하게 된다는 말이다.
기신론(起信論)에는 무명을 나누어,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그로 말미암아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고 있다.
[3] 삼독(三毒) :
"세가지 독" 이니 원만청정한 마음을 흐리고 어둡게 하여 그 공능을 감색하는 것이 "독"인데, 우리에게 있어 탐냄(貪)과 성냄과(瞋) 어리석음(痴)이 근본이 되어 8만4천 번뇌와 정욕과 온갖 죄악이 생기게 된다.
이 삼독이 6근(根)에 나타나면 6적(賊)이 되고, 6적은 즉시 6식(識)이라 이 6식이 제근(諸根)에 출입하여 온갖 경계를 탐착하므로 악업(惡業)을 이루어 진여체(眞如體)를 장애하는 것이니, 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마땅히 능히 삼독을 굴려 삼취정계(三聚淨戒)를 만들고, 6적을 굴려서 6바라밀을 만들면 자연히 일체 모든 고에서 벗어날 것이다.
"삼계(三界)"라는 것은 곧 삼독이다. 탐이 욕계(欲界)가 되고, 성냄이 색계(色界)가 되고, 어리석음이 무색계(無色界)가 되나니 이 삼독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악한 것을 결집하여 업보가 성취되고 육취(六聚)로 윤회하는 것이 삼계업보는 오직 마음에서 난 바이나 만약 능히 마음을 요달하면 즉시에 삼계중에 있으면서도 삼계에서 해탈한다."
13. 사명 용강연선사 1) 선인에게 답함
공부를 지음에는 첫째 큰 의심을 발하여야 한다.
비록 너의 공부가 아직 한달이나 반달 동안도 한뭉치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만약 진의(眞疑)만 현전하면 설사 흔들어도 동하지 아니하여
자연 혹란(惑亂) 중에서도 한결 같으리니
이런 때를 당하여 오직 용맹히 분심을 내어 한결같이 밀고 나가면
마치 종일 숙맥같이 되리니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공안 타파는 저 옹기 속에 잡아놓은 자라 2) 이리라.
▒ 용어정리 ▒
[1] 사명 용간연(四明用剛軟) :
남악하 28세. 법을 화암충(和庵忠)선사에게 이었다.
[2] 옹기 속 자라 :
"옹기 속에 잡아 놓은 자라가 다름질쳐도 걱정할 것 없다"는 말인데, 옹기 속의 자라는 손만 넣으면 곧 잡히니 이와 같이 일념상응(一念相應)이 확실하다는 비유다.
종문무고(宗門武庫)에 이 말이 보이는데, 하루는 서사천(徐師川)이 원오극근(圓悟克勤)스님의 정상(頂上)을 보고
"이 노장이 아직도 발밑이 땅에 닿지 않는군!" 하자, 원오스님이
"옹기 속 자라를 어찌 놓치랴." 하였고, 이에 서사천이
"이 노장 발밑이 땅에 닿는 것이 기쁘다." 하자, 원오스님이
"남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14. 원주 설암흠선사 1) 보설
때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눈을 돌리면 곧 내생인데,
어찌하여 신력이 강건한 동안에 철저히 깨치지 못하며
명백하게 밝혀내지 않느냐!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랴.
이 명산대택(名山大澤) 신룡세계(神龍世界) 조사법굴(祖師法窟)에
승당이 명정(明淨)하고 죽반이 정결하며 탕화(湯火)가 온편하니...
만약 이곳에서도 철저히 타파하지 못하고 명백히 밝혀 내지 못한다면
이것은 너희들의 자포자기라,
스스로 퇴타를 달게 여겨 우치한 자가 되는 것 뿐이다.
만약 아직도 알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널리 선지식을 찾아 묻지 않느냐!
대중은 대개 오참(五參) 2) 마다 곡록상(曲菉床) 위의 노장이
가지가지로 간곡히 일름을 만날 터인데
어찌하여 귀뿌리에 깊이 간직하여 두고 반복하여
"필경 이것이 무슨 도리일까?" 하고 생각하지 않느냐!
산승이 5세에 출가하여 상인(上人) 3) 시하에 있을 때, 하루는 화상이 손과 이야기하시는 것을 듣고 문득 이 일 있음을 믿게 되어 곧 좌선을 시작하였다. 16세에 중이 되고 18세에 행각하여, 쌍림원(雙林遠)화상 회하에 있으면서 백사를 제쳐 놓고 정진하는데 온종일 뜰 밖을 나서지 않았으며 설사 중료(衆寮)에 들어가 후가(後架) 4) 에 이르더라도 차수하고 좌우도 돌보지 아니하였으며 눈앞에 보이는 바가 3척에 지나지 않았었다.
처음에 "무" 자를 간(看)하는데, 문득 한생각 일어나는 곳을 뒤쳐 살펴보니 저 한생각은 즉시 얼음과 같이 냉냉하며 밝고 고요하여 전혀 동요가 없었으니 이때는 하루를 지내기가 눈 깜짝할 사이 같았으며 종일토록 종이나 북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냈었다.
19세에 영은(靈隱)에서 지내는데 처주(處州)화상의 하서에 이르시기를,
"흠선(欽禪)아, 너의 공부는 죽은 불이라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하느니라.
동정이상(動靜異相)으로 항상 두쪼각을 내는구나!
참선은 모름지기 의정을 내어야 하니
적은 의정에 적은 깨침이 있고
큰 의정에 큰 깨침이 있는 것이니라"
하셨기에 화상의 말씀을 듣고 곧 화두를 간시궐(乾屎獗) 5) 로 바꾸고 한결같이 이리도 의심하고 저리도 의심하여 이리도 들어보고 저리도 들어보았으나 도리어 혼산에 시달려서 잠시도 공부가 순일하지 못하므로 자리를 정자(淨慈)로 옮겨 지냈는데, 거기서는 7인의 도반과 짝을 맺고 좌선하는데 와구(臥具)는 아주 치워놓고 아예 눕지를 않았다.
그때에 따로 수상좌(修上佐)가 있었는데, 매일 포단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마치 철장대(鐵杖子)와 같고, 걸어다닐 때도 두눈을 크게 뜨고 두팔을 축 늘어 트려서 역시 그 모양이 철장대 같으며, 친근하여 이야기를 하고저 하여도 할 수 없더라.
두해 동안을 눕지 않고 지냈더니, 피곤하고 지쳐서 드디어 한 번 누음에 마침내 내쳐 모두를 다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두 달이 지난 후 종전을 정돈하고 다시 마음을 거두니 비로소 정신이 새로웠으니, 원래 이 일을 발명하는데는 잠도 아니 잘 수는 없더라. 그래서 밤중에 이르러 한숨 깊이 자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이러고 지내는 중 하루는 수상좌를 만나 친근할 수 있었기에 묻기를,
"거년에는 상좌와 말하고저 하여도 항상 나를 피하니 웬일이었습니까?" 하니
"진정한 공부인은 손톱 깎을 겨를도 없다는 것인데 어찌 너와 더불어 이야기 하고 있으랴?" 한다. 내가 다시 묻기를
"내 지금도 혼산(昏散)을 쳐 없애지 못하였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네가 아직도 정신이 맹렬하지 못한 때문이다. 모름지기 높이 포단을 돋구고 척량골을 똑바로 세우고 있는 힘을 다합쳐 온 몸뚱이 채로 높이 한 개의 화두를 만들면, 다시 어드메에 혼산을 찾아볼 수 있으랴!" 한다.
그래서 수상좌가 이른대로 지으니 과연 불각중에 신심을 모두 잊고 청정하기 3주야- 그동안 잠시간도 눈을 부치지 않았는데, 제3일째 되는 오후 삼문 6) 아래에서 화두인 체로 가다가 문득 수상좌를 만났다. 수가 묻기를
"너 여기서 무엇을 하는거냐?"
"도를 판단하오."
"너는 무엇을 가지고 도라 하는 거냐?" 하는데,
내 마침내 대답하지 못하고 속만 답답하여 곧 선실에 돌아가 좌선하고저 하는데 또 수좌를 만났다. 말하기를
"너 다만 눈을 크게 뜨고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 하고만 하라."
이 한마디를 듣고 곧 자리에 돌아와 겨우 포단에 앉았는데 홀연 눈앞이 활짝 열리니 마치 땅이 툭! 꺼진 것과 같은데, 이 경지는 남에게 들어 보일 수도 없고 세간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도 없었으니, 곧 단(單) 7) 에서 내려와 수상좌를 찾았더니, 수 내말을 듣고 "좋다 좋다" 하고 손을 잡고 문 밖에 있는 버드나무가 심긴 뚝 위를 한바퀴 돌며 천지간을 우러러보니, 삼라만상 눈에 보이는 것이며 귀에 들리는 것이며 기왕에 싫어하고 버리던 것이며 무명 번뇌 등이 온통 원래 자기의 묘하고 밝은 참성품에서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계가 반달이 넘도록 동하는 상이 없었는데 아까울새라! 이 때에 명안(明眼) 종사(宗師)를 만나지 못하여 애석하게도 저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견처(見處)를 벗지 못하면 정지견을 장애한다고 하는 것이니, 매양 잠들 때는 두 조각이 되었고 공안에 의로(義路)가 있는 것은 곧 알 수 있으나 의로가 끊어져서 은산철벽(銀山鐵壁) 8) 과 같은 것은 아주 알 수 없었다.
비록 무준(無準)선사 9) 회하에서 다년 입실 10) 청법하였으나, 한마디도 이 심중의 의심을 건드리고 집어내는 말씀이 없었고, 경교나 어록을 찾아도 또한 이 병을 풀 한마디도 발견하지 못하였으니, 이와 같이 하여 가슴 속에 뭉텅이를 넣어둔 채 10년이 지났는데,
천목(天目)에서 지낼 때 하루는 법당에 올라 가다가 눈을 들어 한 큰 잣나무를 쳐다보자 번득 성발(省發)하니 기왕에 얻었던 경계도 가슴 속에 걸렸던 뭉텅이도 산산이 흩어져서 마치 어두운 방에 있다가 햇빛으로 나온것만 같았다.
이로부터 생(生)도 의심하지 않으며 사(死)도 의심하지 않으며, 불도 의심하지 않으며 조사도 의심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에 경산(徑山) 노인의 입직처를 보니 족히 30방을 주기 알맞더라.
▒ 용어정리 ▒
[1] 설암법흠(雪巖法欽) :
남악하 21세. 경산(徑山) 사범무준(師範無準) 선사의 법을 이었다.
[2] 오참(五參) :
옛 총림에서는 초5일, 10일, 25일의 설법을 5참이라 했다.
[3] 상인(上人) :
안으로 지혜와 덕을 갖추고 밖으로 수승한 행을 겸하여 사람의 위에 가기 때문에 상인이라 하는데, 대덕 대화상의 존칭으로 쓴다.
[4] 후가(後架) :
총림에서 선당(禪堂) 뒤에 있는 대중이 세수하는 곳을 후가라고 하는데 동사(東司-변소)에도 있다.
[5] 간시궐(乾屎獗) :
"마른 똥막대기" 라는 말인데 조사공안의 하나다.
한 스님이 운문선사에게 묻기를
"삼신(三身) 중 어떤 몸이 법을 설합니까?" 하니,
"요(尿)" 라 하였다. 또 묻기를
"어떤 것이 석가신(釋伽身)입니까?" 하니,
"마른 똥막대기다" 하였다.
[6] 삼문(三門) :
절에 들어가는데는 세 문을 지나간다. 이것은 삼해탈문(三解脫門)을 의미하는 것이니 공문(空門), 무상문(無上門),무작문(無作門)을 상징한다. 본래 절은 계를 가지고 도를 닦아 열반에 이르기를 구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며 또한 대웅세존 부처님을 모신 대궁전이기도 하므로 삼해탈문을 문으로 삼는다.
[7] 단(單) :
선실의 각자의 자리.
[8] 은산철벽 :
공부의 한 경계인데, 의단이 치성하여 온통 의정뿐이어서 의정이 극(克)하여 마침내 다시 더 생각을 어찌할 수 없는 ㅡ 마치 길을 가다가 코끝과 등 뒤에 하늘에 치닿은 듯이 철벽을 당한 것과 같은 경지를 말하는데, 이 경지는 무슨 말로 형용하는 것이 모두가 거짓이니 친히 맛보아야 한다.
백운단(白雲端)선사 시중에 이르기를,
"고인은 일언반구를 받아 듣고 혹 알아듣지 못할 때는 철벽(鐵壁)에 맛닿은 것과 같았다. 하루 아침 홀연히 이를 뚫고 나면 비로소 자기가 즉시 철벽임을 아는 것이다. 자! 일러라 이제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이냐?" 하시고, 이어 말씀하되
"철벽 철벽" 하였다.
[9] 무준(無準) :
경산(徑山) 무준사범(無準師範). 바로 설암흠선사의 법사다. 와룡조선(臥龍祖先)선사의 법을 이었다. 9세에 출가하여 독서하는데, 눈이 한번 지나가면 다 외웠다고 하는데, 얼마 후에 성도(成都) 정법사(正法寺) 익요(益堯) 스님에게 참선을 배웠다.
스님이 묻기를
"선이 무엇이며 앉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데 대답 못하고 주야로 체구하여 한 번은 변소에서 똥누면서 화두를 들어 마침내 깨쳤다.
그 영은(靈隱)으로 파암(破庵)스님을 찾아갔는데 한 납자가 파암에게 묻기를
"잔나비가 마구 붙잡으려고 허대니 어떡합니까?" 하니, 파암이
"붙잡아서 무엇하느냐! 바람이 물 위에 불면 자연히 무늬(紋)가 일어나느니라" 하였는데, 곁에서 이 말을 듣고 언하에 대오하였다.
뒤에 경산에 있으면서 절 40리 밖 길가에 큰 집을 지어 만년정속이라 하고, 방을 백개나 갖춰 놓고 오고가는 운수(雲水)를 쉬게 하였다.
말년에 대중을 모아 놓고
"나는 이미 늙고 병들어서 대중들과 이말 저말 할 수 없게되었다. 이제 내가 특히 힘을 내어 여기 나온 것은, 이제까지 말하지 못한 것을 남김없이 다 털어놓고저 하는 것이다."
하고는, 몸을 일으켜 옷을 활활 털더니
"이것이 얼마나 되느냐?"
하고 방장에 돌아와서 얼마 후에 시적하였다.
남송의 영종(寧宗)과 이종(理宗)의 두터운 귀의를 받았는데 사호는 불감(佛鑑)선사다.
[10] 입실(入室) :
방장(方丈) 화상 앞에 나아가 문답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가(師家-스승)는 학자를 시험하고 다뤄보아 아직 공부가 미진한 것을 채찍하고, 허황하여 실이 없는 것은 부수고, 치우친 것은 바로 잡는다. 이 입실 감변(勘辯)이야말로 종사를 만들어 내는 풀무요 대장간이니 고래로 종사의 묘하고 치밀한 방망이질 밑에서 공부인의 푸른 눈알은 이뤄진다.
15. 천목 고봉묘선사 1) 시중
이 일은 오직 당인의 간절한 생각만이 요긴하니
잠시라도 간절하기만 하면 곧 진의(眞疑)가 날 것이니
아침에서 밤까지 빈틈없이 지어 나가면
스스로 공부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흔들어도 동하지 아니하며 쫓아도 또한 달아나지 아니하여
항상 소소령령(昭昭靈靈)하여 분명히 편전하게 되리니
이때가 공부에는 득력하는 시절이라.
이러한 때에 정념을 확고히 잡고, 부디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라.
그중에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아있는 줄을 모르며
추운 것도 더운 것도, 배고픈 것도 목마른 것도, 모두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니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이때가 곧 집에 돌아온 소식이니
이런 때에는 다만 때를 놓치지 아니 하도록 잘 지키며
공부를 잊지 아니하도록 단단히 붙잡고 오직 시각을 기다릴 뿐이다.
이런 말을 듣고 도리어 한 생각이라도 정진심을 내어 구하는 것이 있거나
마음에 깨치기를 기다리는 생각을 하거나
또는 되는 대로 놓아 지내면 아니되니
단지 스스로 굳게 정념을 지켜 필경 깨침으로 법칙을 삼어야 한다.
이 때를 당하면 8만4천 마군들이 너의 육근문(六根門) 앞에서 엿보다가
너의 생각을 따라 온갖 기이한 선악경계 2) 를 나툴 것이니,
네가 만약 터럭끝 만큼이라도 저 경계를 여겨 주거나(認正) 착심(著心)을 내면,
곧 저의 올가미에 얽힘이 되어서,
저가 너의 주인이 되어 너는 저의 지휘를 받고 입으로 마의 말을 하고
몸으로는 마사(魔事)를 행하여 반야의 정인(正因)은 이로조차 영원히 끊어져서
보리 종자가 다시는 싹트지 못하게 된다.
이 경지에서 단지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저 수시귀(守屍鬼)와 같이하여 정념을 지켜오고 지켜가면
홀연 의단이 탁! 터져 결정코 천지가 경동함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옷을 갈아입고, 정자(淨慈)에 가서 3년을 한사코 선을 배웠었다. 처음 단교(斷橋) 화상에게 참예하니,
"날 때 어디서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를 참구하게 하시는데 생각이 두 길로 갈려 도무지 순일하지를 못했다. 후에 설암화상을 뵈오니, "無" 자를 참구하라 하시고 또한 이르시기를
"사람이 길을 갈 때 하루의 갈 길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처럼 너는 매일 올라와 한마디 일러라" 하시더니, 그후 차서 있음을 보시고는 짓는 곳은 묻지 아니하고 다만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대뜸
"어느 물건이 이 송장을 끌고 왔느냐?" 하시고는 말씀도 채 마치지 않고 때려 쫓아내셨다.
후에 경산으로 돌아와 지내는데 하루밤 꿈 속에서 문득 전날 단교화상실에서 보았던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가 생각나니 이로부터 의정이 돈발하여 동서로 남북으로 분별하지를 못하였다.
제6일 되던 날, 대중을 따라 누각에 올라가 풍경(諷經)하다가 문득 머리를 들어 오조연(五祖演) 화상의 진찬(眞讚) 3) 을 보니, 끝 두귀에 이르기를
"백년이라 3만6천, 온갖 조화 부린 것이, 원래가 단지 바로 이놈이니라."
하였음을 보고 홀연 일전의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 을 타파하고, 즉시 혼담이 날아가 버린 듯 기절하였다가 다시 깨어나니 이 경지를 어찌 1백20근 짐을 벗어버린 것에 비하랴! 그때는 정히 24세요, 3년한이 다 차던 해였다.
그후 화상께서 물으시기를,
"번잡하고 바쁠 때에 주재(主宰)가 되느냐?"
"됩니다."
"꿈속에서 주재가 되느냐?"
"네! 됩니다."
다시 물으시기를,
"잠이 깊이 들어 꿈도 없고 생각도 없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없을 때, 너의 주인공 4) 이 어느 곳에 있느냐?" 하시는데, 이에는 가이 대답할 말도 없고 내어보일 이치도 없었으니 이에 화상께서 부촉하시기를
"너 이제부터는 불도 법도 배울 것 없으며 고금도 공부할 것 없으니 다만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곤하면 잠을 자되, 잠이 깨거던 정신을 가다듬고
"나의 이 일각(一覺) 주인공이 필경 어느 곳에 안심입명(安心立命)하는 것일까?" 하라 하시었다.
그때 내 스스로 맹세하기를
"내 차라리 평생을 버려 바보가 될지언정 맹세코 이 도리 5) 를 명백히 하고야 말리라" 하고 5년이 지났더니, 하루는 잠에서 깨어 정히 이 일을 의심하고 있는데, 동숙하던 도우가 잠결에 목침을 밀어 땅에 떨어뜨리는 소리에 홀연 저 의단을 타파하고 나니 마치 그물에 걸렸다가 풀려 나온 듯하고 불조의 심난한 공안과 고금의 차별 인연에 밝지 않음이 없게 되어 이로부터 나라가 평안하고 천하가 태평하여 한 생각 함이 없이 시방을 좌단하였느니라.
《평》
앞에 보이신 공부를 지어가는 대문이 지극히 친절하고 요긴하니, 공부인은 마땅히 깊이 명심해 두라. 또 사의 경우를 말씀하신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자라" 한 이것은 발명 이후의 일이니 그릇 알지 않도록 하라.
▒ 용어정리 ▒
[1] 고봉원묘(高峰原妙) :
(1238-1295) 남악하 22세. 설암흠 선사의 법을 이었다. 속성은 서(徐)씨. 소주(蘇州) 오강현(吳江縣)에서 출생. 용공(用功) 득법 경위는 본문에 상세하거니와, 그후(1279) 천목산(天目山) 서봉(西峯)에 들어가서 저 유명한 사관(死關)을 짓고 들어 앉았다. 사는 이곳에서 16년 동안을 문턱을 넘지않고 마침내 이곳에서 입적하였는데 그동안 학도를 가르치기 빈 날이 없었으며, 승속간에 계를 받은 사람이 기만명이 넘었다. 원나라 원종(元宗) 원년, 대중에게 설법하고 그 자리에서 시적하였다. 향수 57 세. 지금 제방에서 성행하고 있는 선요(禪要)가 바로 사의 어록이다.
[2] 선악경계 :
공부 중에 나타나는 온갖 선악경계가 공부인을 망치는 것을 흔히 본다. 이것을 경계하신 불조의 말씀은 실로 간곡하다. 본래 한 물건 없는 이 가운데 무슨 경계나 형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사견 망각이다. 대개 경계가 벌어지는 그 원인은 공부가 순수하지 못하고 또한 정밀하지 못한데 있으니, 터럭끝 만큼이라도 밖으로 구하는 생각이 있거나(馳求心) 의정이 불분명(혼침,산란,망념)하여서는 아니된다. 오직 화두만 간절히 성성히 들면 있던 경계도 즉시 사라지는데 무슨 경계가 있을리 없다.
혹 생각이 바깥경계로 흩어지고 잡념이 있거든 곧 화두를 잡아 긴절(緊切)히 들라. 이 화두는 불꽃과도 같아서 일체망념 경계나 혼침산란의 불나비가 부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계가 벌어지거든 환관(幻觀)으로 대치하고, 그래도 경계가 멸하지 않거든 이것은 선근으로 인한 좋은 경계이니 걱정하지 마라" 하는 것을 보나 공부인은 어떠한 경계이든 ㅡ 혼침, 산란 등 일체병통과 선악경계 중에 오직 화두로 당적함이 요긴하다. 공부를 하고저 하거든 반드시 경계를 대치할 방법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이 서 있어야 한다.
[3] 진찬(眞讚) :
덕 있는 사람의 초상화에 지은 글인데, 여기 오조진찬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상을 가져 상 취하니 모두가 환몽 되고
진을 가져 진 구하니 더욱 더 멀어지네
공안이 현전하니 무슨 일이 안될손가
백년이라 삼만육천 온갖 조화 부린 것이
원래가 다못 바로 이놈 일러라
以相取相 都成幻夢
以眞求眞 轉見不親
見成公案 事無不辨
百年三萬六千
日反履元來是這漢
[4] 주인공(主人公) :
주인공이란 자신과 만유의 근원적 한물건을 의미하는 것인데, 교리적인 용어로 말하면 본질 이전의 진심(眞心)을 가리킨 말이다. 종문에서는 이밖에 여러 가지 이름이 있으니, 경우에 따라서 혹 자기(自己), 무저발(無底鉢), 몰현금(沒絃琴), 이우(泥牛), 목마(木馬), 심인 (心印), 심월(心月), 심주(心珠)등 가지가지로 부르기도 한다.
종문에서는 필경 이 주인공을 바로 아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며, 주인공 다운 지혜와 덕성과 역량을 자재 구사하여 주인공의 국토다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구경으로 삼는 것이다.
대주(臺州) 서암사언(瑞巖師彦) 스님은 단구(丹丘)의 서암에 있을 때 반석 위에 나와서 종일토록 우두커니 앉아서 "주인공!" 하고 부르고는 "네!" 하고 대답하고 "정신차려라. 너 뒤에 남에게 속지마라!" 하였다.
[5] 이 도리 한 소식 :
이 말은 일착자(一著子)를 옮긴 말인데, 일착자는 바둑 둘 때의 "한수" 라는 뜻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부산원(浮山遠)선사가 마침 문충공(文忠公)이 손과 바둑두는 데에 이르렀다. 사가 곁에 가니 공이 곧 바둑을 거두고 사에게 바둑을 인하여 설법하여 줄 것을 청하니, 사 곧 북을 치게 하고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기를,
"만약 이 일을 논할진댄 두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과 상사하라.
어찌 한 까닭이랴.
적수와 지음(知音)이 서로 기틀을 당하여 사양치 않으니...(中略)...
일러라 일러!
흑백(黑白)이 나뉘기 전에 한 수는 어느 곳에 있는가!"
16. 철산경선사 1) 보설
산승이 13세에 불법 있음을 알고, 18세에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먼저, 석상(石霜)에 갔는데 상암주(詳庵主)가 항상 코 끝의 흰 것 2) 을 관하라 하기에, 이 법을 익혔더니 얼마 아니하여 청정한 경계를 얻었었다.
그후 한 사람이 설암(雪巖)화상 회상에서 왔는데 그가 가지고 온 설암 화상의 좌선잠(坐禪箴)을 베끼어 두고 보니 나의 공부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을 알고 드디어 설암화상에게 참예하여 가르침을 따라 공부하였는데 오직 "無" 자를 참구하였다.
4일째 되는 밤에 온 몸에 땀이 흐르고 나니 십분 상쾌하기에 이어 선실에 돌아와 사람들과 말도 끊고 오로지 좌선만 힘썼다. 후에 묘고봉(妙高峰) 화상을 뵈오니 말씀하시기를
"12시 중에 끊일 사이를 두지 말지니
사경(四更)에 일어나거든 곧 화두를 들어 눈앞에 분명하게 잡아 두라.
혹 졸음이 오거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되,
땅으로 내려올 때도 화두를 들고 걸어갈 때도 화두를 들고
자리에 앉을 때도 발우를 들 때도 수저를 놓을 때도
또한 대중일에 참예할 때도 항상 화두를 여의지 말며
밤이고 낮이고 이와 같이 지어가면 자연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아무도 발명하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기에, 이어 화상의 가르침을 따라 지어가니 과연 타성일편이 되었다.
3월 20일, 암화상 상당에 이르시기를
"형제들아, 포단 위에 앉아 마냥 졸기만 하는구나!
모름지기 땅으로 내려와 한 바퀴 거닐고 냉수로 관수하고
두 눈을 씻고 다시 포단 위에 앉아 척량골을 바로 세우고
만길 되는 절벽 위에 앉은 듯이 생각하고 다만 화두만 들어라.
이와 같이 공을 들이면 결정코 7일이면 깨치리라.
이것은 바로 산승이 40년 전에 이미 시험한 방법이다."
하셨는데,내 그때 그 말씀대로 지으니 곧 공부가 심상치 않음을 알겠더라.
제2일에는 두 눈을 감고저 하여도 감아지지 않았으며, 제3일에는 몸이 마치 허공을 가는 듯 하였고, 제4일째는 일찌기 세간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고, 그날밤 난간에 의지하여 잠시 서 있으니 마치 잠든 듯이 아주 아는 것이 없으매 화두를 점검하니 또한 분명 한지라, 몸을 돌려 포단에 앉으니 문득 머리에서 발끝까지가 흡사 두골(頭骨)을 쪼개는 것과 같으며, 또 한 만길 되는 샘 밑에서 치켜 올려져 공중에 떠 있는 듯도 하여 그때의 환희를 가히 말할 수 없었다.
암화상에게 이 일을 사뢰니 "아직 멀었다. 더 지어 가라" 하셨는데, 내가 법어 3) 를 청하니 법어 끝에 이르시기를
"불조의 향상사를 높이 이어 떨치려면 뒤통수에 한방망이 아직도 모자라오" 하셨다. 이 법어를 받아가지고 내 스스로 생각하기를
"어찌하여 한 방망이가 아직도 모자란다 하실까?" 하기도 하고 또한 이 말을 믿지 않으려 하여도 또한 의심이 있는 듯하여 마침내 결단을 짓지 못하고 매일 포단 위에 주저앉아 좌선하기를 반년이 되더니, 하루는 두통이 나서 약을 달이다가 각적비(覺赤鼻) 4) 를 만났더니
"나타태자(那咤太子) 5) 가 뼈를 발라서 아버지에게 돌리고 살을 베어서 어머니에게 돌린" 말을 꺼냈는데, 전 날에 오지객(悟知客)이 이 말을 물을 때에 대답하지 못하였던 것을 생각하고, 홀연 저 의단을 타파하였던 것이다.
그 뒤에 몽산(蒙山) 화상을 뵈오니 물으시기를
"참선은 어느 곳에 이르러서 공(功)을 마치는 곳이냐?" 하시는데, 마침내 말문이 막히니 그때에 화상은 나에게 다시 정력(定力)공부를 지어 망상 습기를 씻어 없애라고 하시고 매양 입실할 때마다 다만 "아직 멀었다." 고만 하셨다.
하루는 해거름에서 5경이 다할 때까지 정력으로 밀어대니 곧 지극히 그윽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정에서 나와 화상에게 이 경계를 말하니 화상 물으시기를,
"어떠한 것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하시는데, 내가 대답하려 하자 갑자기 문을 닫아 버리시니 이로부터 공부가 날로 묘처(妙處)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대개 너무 일찌기 설암화상 회하를 떠난 까닭에 세밑공부를 짓지 못하였다가 이제야 다행히 본분종사(本分宗師)를 만나 마침내 여기에 이른 것이다. 원래 공부는 긴절(緊切)하게 지으며 시시로 깨침이 있고 거름마다 진취가 있는 것이라, 하루는 벽에 붙여 놓은 삼조(三祖) 신심명(信心銘)을 보다가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을 것이요. 비춤에 따라가면 종(宗)을 잊는다."
하였음을 보고 다시 한층 껍질(欠)을 벗어났었다.
화상 말씀이
"이 일은 흡사 구슬을 가는 것과 같아서,
갈면 갈수록 더욱 빛이 나고 밝으면 밝을 수록 더욱 맑아지나니
한 껍질 벗기고 또 벗기는 것이 저 몇생 공부하느니보다 낫느니라."
하시고, 다만 번번히
"아직 흠이 있다" 고만 하시었다.
하루는 정중에게 홀연 "흠(欠)" 자를 깨치니 신심이 활연하여 골수에 사무쳐, 마치 적설이 순시에 녹아 없어짐과 같았으니, 준일(俊逸)을 참을 수 없어 땅에 뛰어 내려와 화상의 멱살을 잡고,
"내게 무엇이 모자라오!"
하니 화상이 뺨을 세번 치시는데, 내가 삼매(三昧)하니 화상 말씀이
"철산아! 이 소식이 몇 년만이냐 이제야 마쳤구나!" 하셨다.
잠시라도 화두를 잊으면 죽은 사람과 같은 것이니 온갖 경계가 핍박하여 오더라도 다만 화두를 가져 이에 저당하며, 시시로 화두를 점검하여 동중(動中)이나 정중에 득력(得力)과 부득력을 살펴라.
정중에 있을 때 화두를 망각하지 말아야 하니,
화두를 망각하면 곧 사정(邪定)이 되는 것이다.
또한 마음에 깨치기를 기다리거나 문자 상에서 알아 얻어려고 하지 말며,
사소한 견처를 가지고 일을 마쳤다는 생각을 마라.
다만 어리석은 듯 숙맥인 듯이 하여 불법(佛法)도 세법(世法)도 통털어
한 뭉치를 만들면 평상의 행동거지가 다못 심상할 뿐
오직 옛 행리처만을 고칠 뿐이니라.
고인도 이르시기를
"대도는 본래로 말에 속한 것이 아니니
현묘(玄妙)를 말하련 즉 천지로 현격하리,
반드시 능소(能所) 6) 를 뛰어나야사
배고프면 밥 먹고 곧 하면 쉬리." 하였던 것이다.
▒ 용어정리 ▒
[1] 철산경(鐵山璟) :
남악하 22세. 법을 몽산이(蒙山異)선사에 이었다.
[2] 코 끝의 흰 것 :
관법의 하나인데, 생각을 지어 마음을 어느 한 곳에 모아서 마음이 흩어지거나 혼침에 떨어지는 것을 막고, 마음을 관찰하여 마음의 경계를 지키고 닦아가는 공부 법인데 이 관법은 옛부터 여러 가지가 있다.
세존 당시의 성문 제자들은 대개 이런 법을 공부하였다. 능엄경에는 <손다 라난타>가 "내가 처음 출가하여 부처님 따라 도에 들어와 비록 계율은 갖추었으나 삼매를 닦는데 항상 마음이 흩어지고 흔들리므로 무루(無漏)를 얻기를 구하였더니, 세존께서는 나와 <구제라>에게 코 끝의 흰 것을 관하도록 하셨다." 하고 있음을 본다.
[3] 법어 : 여기의 법어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허공을 한 손 아래 가루를 만들으니
무쇠나무 꽃은 피어 구슬가지에 흩어지네
불조의 항상사를 높이 이어 떨치려면
뒤통수에 한방망이 아직도 모자라오"
虛空一수粉졸時 花開鐵樹散璟枝
紹降佛祖向上事 腦後以前欠一槌
[4] 각적비. 오지객 :
둘 다 사람 이름인데, 절에서는 흔히 이름 윗자를 부르지 않고 아래 자에다 무슨 칭호를 붙여서 부른다. 적비는 코가 남달리 붉어 얻은 이름인 듯, 지객은 소임명.
[5] 나타태자 :
나타태자는 뼈를 발라서 어버지에게 돌리고 살을 베어서 어머니에게 돌리고 나서, 다시 신변을 이르켜 연화좌 위에 본신을 나타내어 부모를 위하여 설법하였다.
[6] 능소(能所) :
주(主)와 빈(貧) 또는 주관과 객관과 같은 말로 표시되는 능히 동작하는 주체와 객체·대상을 말하는 것인데 공부에 있어서 이와 같은 대대(待對)가 있게 되면 절대인 참도리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능소를 뛰어넘는 것이 공부의 중요한 마루턱이다.
17. 천목 단애의 선사 1) 시중
만약 범부를 뛰어 넘어 성위(聖位)에 올라
영영 진로(塵勞)를 벗어나고저 하거든
가죽을 베끼고 뼈를 바꾸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마치 찬 재(寒炭)속에서 불꽃이 튀며
마른 나무에서 새싹이 나는 듯 하여야 하니,
어찌 용이한 생각을 내랴.
내가 선사(先師) 회하에 다년간 있으면서 늘 큰 방망이를 맞았으나
한 생각도 싫은 생각이 없었으니
금일에 이르러 전날에 맞은 곳을 건드리니
불각 중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구나!
어찌 너희들이 약간 쓴 맛을 보고는
머리를 흔들고 다시는 돌보지도 않음에 비하랴.
▒ 용어정리 ▒
[1] 단애요의(斷崖了義) :
남악하 23세, 고봉묘(高峰妙)선사의 법을 이었다. 고봉에 참예하여 "만법귀일" 공안을 참구하여 깨치고 게송을 짓기를
"대지여 산하여 한 조각 눈이로다.
햇빛 한 번 비치니 자취조차 볼 수 없네
이로조차 제불조에 의심이 끊어지고
동서고 남북이고 모두가 없어졌네
大地山下一片雪 太陽以照便無踪
自此不疑諸佛祖 更無南北與東西
하니, 고봉스님이 인가하면서
"세가 후에 공봉절정에서 크게 소리칠 것이다." 하였다. 이때에 이름을 요의(了義)라 고쳤다. 시호는 불혜원명정각보도(佛慧圓明正覺普度)대사다.
18. 천목 중봉본 선사 1) 시중
선사(先師) 고봉화상은 항상 학인에게 이르시기를,
"오직 본참공안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다닐 때도 이러히 참구하고 앉을 때도 이러히 참구하라.
궁구하여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생각이 머무를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문득 타파하여 벗어나면 바야흐로 성불한지 이미 오래임을 알 것이다.
이 한 도리는 이것이 기왕의 모든 불조가 생을 요달하고
죽음에서 벗어남에 이미 시험하신 묘방이다.
오직 귀한 것은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 뿐이니
오래오래 퇴전하지만 않으면 상응(相應)을 얻지 못할자 없느니라." 하셨다.
화두를 들고 공부 지어감에 첫째 입각처가 온당하여야 깨침도 친절하니라.
설사 이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다만 신심만 퇴전하지 않으면
한생 두생을 넘지 않고 누구나 깨침을 얻을 것이다.
혹 20년 30년을 공부하여 깨치지 못하더라도, 부디 다른 방편을 구하지 마라.
다만 마음이 다른 인연에 끄달리지 않으며,
또한 모든 망념을 끊고 힘써 화두를 향하여 가부좌를 결하고,
살면 살고 죽으면 죽기로 작정하고 정진하면
누가 3생이나, 5생, 10생, 내지 백생이라도 괘의하랴.
만약 철저히 깨치지 못하거든 결코 쉬지 말지니, 이러한 정인(正因)만 있으면
대사(大事)를 마치지 못할 것을 걱정할 것 없느니라.
병중 공부에는 용맹정진도 필요없으며 눈을 부릅뜨고 억지 힘 쓸 것도 없으니
단지 너의 마음을 목석과 같게 하고 뜻을 찬재(寒炭)와 같이하여
이 사대환신(四大幻身)을 타방세계 밖으로 던져 버리고,
병들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
사람이 와서 돌보아 주어도 그만 돌보아 줄 사람이 없어도 그만
향기로워도 그만 추한 냄새가 나도 그만
병을 고쳐 건강히 되어 백20세를 살아도 그만
혹 죽어서 숙업에 끌려 화탕 노탕 속에 들어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경계 중에 도무지 동요함이 없이
다뭇 간절하게 저 아무 맛도 없는 화두를 가지고
병석에 누운 채 묵묵히 궁구하고 놓아 지내지 말아야 한다.
《평》
이 노인의 천만 마디 말이 단지 화두를 들고 진실하게 공부를 지어 바른 깨침을 이루기를 기약하니, 그 말씀이 간절하고 투철하여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마치 귀를 잡고 눈 앞에서 이르심과 같구나! 자세한 것은 전서(全書)에 있으니 생각대로 두루 보라.
▒ 용어정리 ▒
[1] 중봉명본(中峰明本) :
(1263-1321) 남악하 23세. 법을 고봉 묘선사에 이었다. 사관(死關)에서 고봉화상을 뫼시고 각고정진하여 마침내 대오하였는데 사관에서 의정진담 일단이, 뒤의 제조고공절약 제21에 보인다.
고봉 화상 진찬에,
"내 모양은 부사의라 불조도 짐작 못하나,
오직 못난 우리 아이가 나의 코 반쪽은 본다"
我相不思議 佛祖莫能視 獨許不肖兒 見得半邊鼻
하고 있으니 가히 사의 기봉을 짐작하게 한다. 원 인종(仁宗)이 청하여도 가지 않으니, 인종은 금문(金紋)가사를 보내고 불자원조광혜(佛慈圓照廣惠)선사라 사호하였다.
19. 사자봉 천여칙선사 1) 시중
나(生)되 온 곳을 알지 못하니 생태(生胎)라 하는 것이요,
죽어가되 가는 곳을 알지 못하니 사대(死大)라 하는 것이라.
공(功)이 없이 납월 30일이 닥치면 오직 손발을 버둥거릴 뿐이며
더우기 앞길이 망망하여 업을 따라 보를 받게 되니
참으로 요긴한 일은 이 생사의 과보를 받는데 있느니라.
생사업의 근본을 말한다면, 지금의 한 생각 중에서 소리를 따르고
빛을 쫓아 허둥지둥하는 이것이다.
이 까닭에 불조가 대자비를 운용하시어 혹은 참선을 하라 하시고
혹은 염불하라 하심은, 너로 하여금 망념을 소제(消除)하고
본래 면목을 알게 하여 말끔하고 훤출한 대해탈인을 만들고저 하심인데,
그럼에도 아직 영험을 얻지 못한 자는 세 가지 병통이 있는 까닭이다.
첫째는 진정한 선지식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한 것이요,
둘째는 통절히 생사대사를 생각에 두지 아니하고 그럭저럭 지내어서
어느덧 일없는 집에 들어앉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셋째는 세간의 명예나 이권이란 온전히 헛된 것임을 밝게 알지 못하여
아주 털어 버리지 못하고, 망연과 악습에 주저앉아 이것을 끊지도 못하여
경계에 부닥치면 불각중에 휩쓸려 송두리째 업해(業海)속에 빠져들어
동으로 서로 떠돌아 다님을 깨닫지 못함에 있나니,
진정한 도류(道流)일진대 어찌 이와 같으랴!
마땅히 믿을지라, 조사 이르심을
"분분히 이는 잡념, 어찌하여 소탕할까!
하나의 화두는 쇠(鐵)뭉치 빗자루니, 쓸으면 쓸을수록 더욱 일으나
더욱 일거던 더욱 쓸어라.
쓸어도 안 쓸리면 목숨을 걸고 죽을 힘 다하여서 쓸어 내어라
홀연히 허공마져 쓸어낼지면 천만 가지 갈래길 한 길로 통하리" 하신 것이다.
제 선덕아, 노력하라.
모름지기 금생에 분명히 요달하여 영원히 재앙을 받지 않도록 하라.
또한 염불과 참선이 같지 않다고 의심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참선은 단지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려함이요,
염불은 자기 성품이 미타(彌陀)요 마음이 곧 정토(淨土)임을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니, 어찌 이치에 둘이 있으랴.
경에 말씀하시기를
"불을 생각하고 염불하면 현세나 당래에 반드시 불을 뵈오리라." 하셨으니,
이미 현세에서 불을 볼진대 어찌 참선하여 도를 깨치는 것과 다름이 있으랴!
어떤 사람의 물음에 답함 -
단지 "아미타불" 넉자를 가지고 화두를 삼아 26시 중에 분명히 들어
한 생각도 나지 않은 곳에 이르면
차서 2) 를 밟지 않고 불위(佛位)에 뛰어오르리라.
▒ 용어정리 ▒
[1] 천여우칙(天如惟則) :
남악하 24세, 법을 중봉본(中峰本)선사에 이었다.
[2] 차서 :
대개 범부가 성불하는 데는, 간혜지(乾慧地)에서 성불까지에 55 절차의 차례가 있다. 그러나 종문에서는 "마음을 잡아가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갖춘다" 고 하고 또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대번에 부처를 이룬다" 하여 하등의 차서를 두지 않는다. 그리하여 공안을 요달하면, 단번에 부처땅(佛地)에 들어가는 것이다.
20. 지철 선사 정토현문
염불을 한 번 혹은 3,5,7편 하고, 묵묵히 반문하라.
"저 염불 소리가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가?"
또 생각하기를,
"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
하여 의심이 있거든 다만 한결같이 의심해 가며 만약 묻는 곳이 분명하지 아니하고 의정이 간절하지 않거든, 다시 거듭
"필경에 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 하라.
또한 앞의 일문에 의심이 간절하지 않거든 다만
"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 하여 자세히 살피고 자세히 지어가라.
《평》
전문은 그만두고 곧 "염불하는 것이 이 누구인가?" 하고 참구하여도 좋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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