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책진(禪關策進)

선관책진(禪關策進) - 어록 모음(3)

실론섬 2015. 8. 27. 21:31

21. 여주 향산 무문총선사 1) 보설


산승이 처음 독옹(獨翁) 화상을 뵈었더니

"마음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물건도 아님" 2) 을 참구하라고 이르셨는데, 후에 운봉(雲峰) 월산(月山)등 6인의 도반과 더불어 서원을 세우고 서로 탁마하다가, 회서(淮西)의 교 무능(敎無能) 화상을 뵈우니 "무" 자를 들라 하시므로, 장로(長瀘)에 이르러 도반과 서로 짝을 맺고 연마하였다.


후에 회상(淮上)의 경형(敬兄)을 만났더니 묻기를

"너 지난 6,7년 동안에 견지가 어떠하냐?" 하시는데, 내가 대답하기를

"매일 단지 이 심중에 한물건도 없습니다." 하니, 경이

"너 그 한 소견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시는데, 내 생각에 알듯말듯하여 감히 입을 열지 못하니, 경이 나의 공부가 성발이 없음을 알고

"너 정중(靜中)공부는 그만하나 동중(動中)공부가 아직 멀었구나!" 하신다.

   

내 이 말을 듣고 놀래어

"필경 이 대사를 밝히려면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하니 말씀이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천로자(川老子) 3) 가 이르기를

'적실한 뜻 4) 을 알고져 하거든 북두(北斗)를 남쪽으로 향하고 보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마치고 곧 가버리셨는데, 이 말을 듣고는 곧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있는 줄을 모르고서, 5,7일간을 "無" 자는 들지 아니하고 혹 넘어지면서라도 다만

   

"적실한 뜻을 알고져 할진대 북두를 남쪽으로 향하고 보라" 를 참구하였다.

   

하루는 마침 정두료(淨頭寮) 5) 에서 대중과 같이 한 나무에 걸터 앉아 있는데, 오직 의정이 풀리지 아니하더니 한참 동안 있다가 갑자기 심중이 탕연히 비고 가볍고 맑아지며 모든 정상(情想)이 찢어져 없어지는 것이 흡사 가죽을 벗기는 거와 같았다. 그때는 눈 앞의 사람도 일체 보이지 아니하여, 마치 허공과 같았다. 반시 가량 있다가 일어나니 온몸에 땀이 흐르더라.

   

이윽고 "북두를 남면하고 보라" 를 깨치고, 경형을 찾아서 문답하고 송을 짓는데 6) 조금도 걸림이 없었다. 그러나 향상일로(向上一路)에 있어서는 아직 헌출하지를 못하여 후에 향암산(香庵山)에 들어가 여름을 지내는데 모기가 심하여 두손을 가만히 둘 수 없기에 생각하기를


"고인은 법을 위하여 몸을 잊었는데 나는 어찌 모기를 겁내는가!"


하고, 모든 생각을 놓아 버리고 어금니를 꽉 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다만 "無" 자를 들고 참고 또 참았더니 불각 중에 심신이 고요하여지며 마치 한채 집 사방벽이 툭! 무너진 듯하고 몸이 허공과 같아서 한 물건도 생각에 걸림이 없더라.


진시(辰時)에 앉아 미시(未時)에 정(定)에서 나오니 이에 불법이 사람을 속임이 아니고 자기의 공부가 미치지 못하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비록 견해는 명백하나, 아직 미세하고 은밀한 망상이 다하지 아니하므로, 광주산(光州山)에 들어가 6년 동안 정을 익히고, 다시 육안산 (陸安山)에 머물기를 6년, 광주산에 또다시 3년을 머물고 바야흐로 빼어남을 얻은 것이다.


《평》


고인은 이와같이 부지런히 힘들었으며 이와 같이 오래오래 닦고서야 바야흐로 상응 7) 함을 얻었는데, 지금 사람은 총명과 생각으로 헤아려 찰나(刹那)에 알아듣고 그리고는 오히려 스스로 돈오(頓悟) 8) 에 부치려 하니, 어찌 그릇치지 아니하랴!


▒ 용어정리 ▒


[1] 무문총(無聞聰) :

남악하 23세, 법을 철산경(鐵山境)선사에 이었다. 사의 선자송을 소개한다.


       "잡아 들으니 심히 분명하고 묘하구나,

청풍은 솔솔 불어 가슴 속에 사무치네.

이 사이 소식이 별것이 없으니,

스스로 온통 환희가 넘친다."


[2] 마음도 아니고(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

한 중이 남전(南泉) 스님에게 물었다.

"이제까지 모든 성인이 사람들을 위하여 아직 설하지 않은 법이 있습니까?"

"있지!"

"어떠한 법이 아직 설하지 않은 법입니까?"

"마음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것이다."


[3] 천노자 :

야부실제도천(治父實際道川) 선사다. 남악하 16세. 법을 정인성(淨因成)선사에 이었다. 곤산(崑山)에서 출생. 속성은 적(狄)씨. 처음 현(縣)의 궁급(弓級)을 하고 있었을 때 동제겸(東齊謙)이 도속을 위한 법회에 참예한 일이 있었다. 그때부터 좌선을 힘쓰다가 하루는 직무상의 과오로 곤장을 맞다가 홀연 대오하였다. 드디어 직무를 사퇴하고 겸스님에 의지하여 출가하였는데, 겸은 사의 이름을 고치면서 말하기를


   "이제부터 네 이름 적삼(狄三)을 도천(道川)으로 고친다.

   천(川)은 즉 삼(三)이라 네가 능히 굳게 척량골을 세워,

   이 일을 판단하면 도가 내의 물과 같이 불어 흐를 것이고,

   그러지 않고 마음을 놓고 누어 지내면 도로 옛 삼(三)이 된다." 하였다.


사 명심하고 더욱 정신에 힘쓰고 뒤에 천봉(天封)에 이르러 만암(만庵) 선사를 만나 서로 기봉이 삼투하여 인가를 받았고, 다시 돌아와 동재(東齋)에서 교화하고, 곧 이어 회서(淮西)에 가서 개당(開堂)하였다. 지금 제방에 크게 성행하고 있는 천로금강경(川老 金剛經)-금강경야부송)은 사가 동재에 있을 때 학인에게 가리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4] 적실한 뜻 :

금강경야부송의 한 구절이다.

   

"촉천의 고운 비단, 꽃 수(繡) 놓아 더욱 곱네,

적실한 뜻 알고져 할진댄, 북두를 남면하고 보라.

蜀川十樣錦 添花色轉鮮 欲知端的意 北斗南看" 하는 것이다.


[5] 정두료(淨頭寮) :

총림의 변소 소제하는 소임이 있는 곳.


[6] 송을 짓다 :

경(敬)이 부채를 들어 보이면서 "자! 일러라. 빨리 일러라" 하니 송을 짓기를,


"아! 뚜렷함이여. 뉘라 이를 알려는고,

직하에 시방을 끊고, 찬 빛 사무쳐야지

圓圓一片 要見人人 坐斷十方 寒光수電" 하였다.


[7] 상응(相應) :

"어떠한 것이 일념상응입니까?" 하는 물음에 대하여 남양충(南陽忠)국사는

"생각(憶)도 지혜(智)도 모두 잊으면 즉시 상응이라" 하고 있다.


[8] 돈오(頓悟) :

공부를 하여 깨치는 데도 당인의 근기를 따라 심천이 있으니, 차츰차츰 차서를 밟아 닦아가서 대각을 이루는 사람도 있고, 대번에 크게 깨치는 사람도 있다. 전자를 점수(漸修) 후자를 돈오(頓悟)라고 들한다.

   

대개 이치로 말하면 깨치면 곧 원만자족한 본래의 자기를 아는 것이니 다시 닦아 증할 법도 털어 없앨 습기도 없는 것이다. 만약 오후에 다시 증할 법이 있거나 털어 없앨 습기가 있다면 이것은 아직도 깨침이 뚜렷하지 못한 것이니, 모름지기 용진하여 대철 대오를 기약할 따름인 것이다.

   

그런데 대개 말하기를 돈오면 곧 불이라 견해는 명백하나 이치 그대로 사사여일(事事如一)하기는 쉬운 것이 아니니, 현실에 처해서 자재하게 되려면 다시 더 닦아야 한다고 한다.

   

   "이치인즉 몰록 깨닫는지라 깨달음을 따라 다 안다 하거니와,

   사(事)는 몰록 제해지는 것이 아니니 차제를 인연하여 없어진다." 하고,


   "얼음은 못(池)이 온전히 물인줄은 아나 햇빛을 빌어서 녹여야 하고,

   범부가 곧 불인 것을 깨쳤더라도 법력을 가자하여 닦아야 한다"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닦는 것을 오후진수(悟後進修)또는 목우행(牧牛行- 소를 먹인다)이라 하는데 돈오점수에 대하여는 많은 논의가 있다.


22. 독봉화상 시중


도를 배우는 자 무엇이 손잡이가 되는가,

저 화두를 드는 것 이것이 손잡이가 되느니라.


23. 반야화상 1) 시중


   형제들이여,

   3년 5년을 공부하다가 입처(入處)가 없으면 종전의 화두를 내버리니

   이것은 길을 가다가 중도에 폐하는 것과 같은 것을 알지 못함이라,

   전래로 지어 온 허다한 공부가 가이 아깝구나!

   

   뜻이 있는 자면 이 회중에 나무 좋고 물 좋고 승당이 명정한데,

   맹세코 3 년만 문을 나서지 마라. 결정코 수용할 날이 있을 것이다.


   어떤 무리는 공부하다가 겨우 심지(心地)가 좀 맑아져

   약간의 경계가 현전하면 문득 게송을 읊으며

   스스로 큰 일 다마친 사람이라 자처하고

   혀뿌리나 즐겨 놀리다가 일생을 그르치고 마니,

   세치 혀뿌리의 기운이 다하면 장차 무엇을 가져 보임(保任)하려는 거냐!

   

   불자야,

   생사를 벗어나고저 하거든 공부는 모름지기 참되어야 하고

   깨침 또한 실다워야 하느니라. 2)

   혹, 화두가 면밀하여 간단이 없어 몸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면, 이것은

   "인(人)은 없어졌으나 법(法)이 아직 없어지지 않음" 3) 이라 하는 것이니,


   여기에 이르러 몸을 잊고 있다가 문득 다시 몸을 생각하게 되면

   마치 꿈 속에 만길절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때에

   다만 살려고만 발버둥 치다가는 마침내 실성하는 것을 보는 것이니,

   이 경지에 이르거든 오직 화두만 단단히 들고 가라.


   홀연 화두를 따라서 일체를 잊어 버리면,

   "인(人) 법(法)이 모두 없어짐" 이라 하는 것이니,

   이때에 활탁 찬재에서 콩이 튀어야 비로소

   장서방이 마시고 이서방이 취하는 도리를 알게 될 것이니,

   바로 이러한 때에 반야문하에 와서 방망이를 맞도록 하라.

   

   어찌한 까닭이랴, 다시 제 조사의 중관(重關)을 타파하여야 하는 까닭이니,

   그리하여 널리 선지식에 참예하여 일체 얕고 깊음을 다 알고,

   다시 물가(邊)나 숲 아래에서 성태(聖胎)를 보양하다가 4)

   용천(龍天)이 밀어냄을 기다려서, 세상에 뛰어나와 종교를 붙들어 드날리고

   널리 중생을 제도하여야 하느니라.


▒ 용어정리 ▒


[1] 반야(般若) :

남악하 24세. 법을 영운지정(靈雲持定)선사에 이었다.


[2] 실참실오(實參實悟) :

신정인(神鼎인)선사 이르기를


"길가는 사람이 노상에서 재미를 붙여 놀면, 그 사람은 마침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견해가 미세하다 하여 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니, 모름지기 공부는 실참(實參)이어야 하고 깨달음 또한 실오(實悟)여야 한다. 염라왕은 말 많은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라고.


[3] 인은 없어지고 :

이 구절은 "인망(人忘) 법미망(法未忘)" "인법쌍망(人法雙忘)" 을 가려 말하고 있다. 증도가(永嘉禪師證道歌)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마음은 이것이 근(根)이요, 법(法-一切施爲와 萬象)은 이것이 진(塵)이라.

   둘이 모두가 거울 위의 흠이니 흠이 다할 때 광(光)은 비로소 나타난다.

   심과 법을 모두 잊어야 성품이 곧 참 도이니라."


[4] 성태를 보양(保養聖胎) :

옛 도를 얻은 자는 산속 깊숙히 살며 다만 단지에 밥이나 익혀 먹으면 족할 뿐, 20년 30년을 이름이나 이해를 아예 생각 밖에 두고 인생을 아주 크게 잊고, 다만 그 도만 지켰으니 이것을 옛사람은 "성태를 보양한다" 고 하였다.


24. 설정화상 시중


   12시 중에 씻은듯이 가난한 마음 1) 으로

   "부모가 낳기 전 어떠한 것이 나의 본래 면목인가' 를 참구하되,

   득력하든 득력하지 못하든 혼산(昏散)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하지 말고

   다만 한결같이 지어 나가기만 하라. 


▒ 용어정리 ▒


[1] 가난한 마음 :

가난한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 속에 일체의 알음알이나 소득심(所得心)이나 아만심을 툭! 털어버린 말끔한 마음이라는 뜻이니, 마음에 조그마한 것이라도 들어 있으면 불조의 말씀이 바로 들어가지 않고 공부가 올바르게 나가지를 못하게 된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25. 앙산 고매우 선사 1) 시중


   반드시 용맹심을 발하고 결단한 뜻을 세워,

   평생에 깨친 것과 배운 것과 일체 불법과 세속 학식이나 말재주를

   단번에 저 큰 바다 속에 쓸어 버리고 다시는 생각하지 말며,

   저 8만4천 미세한 잡념을 한번 앉음에서 단번에 모두 끊어버리고,

   본참화두를 가져 한결 같이 들고 들어서 의정으로 가고 의정으로 오며,

   밀어 오고 밀고 가며 심신을 굳게 정하여

   오직 이 도리를 분명히 밝혀 내도록만 하되,

   다만 깨침으로 법칙을 삼아야 하느니라.


   부디 공안을 가져 생각으로 헤아려 알아 마치려고 하거나,

   경서상에서 찾아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하니,

   반드시 탁! 끊어지고 툭! 터져야사, 비로서 집에 돌아온 것이니라.

   

   혹 화두를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거든, 연거푸 세 번 들면 즉시 힘을 얻을 것이요,

   혹 심신이 피로하고 지쳐 마음이 불안하거든,

   조용히 땅으로 내려와 한동안 거닐다가 다시 포단에 앉아

   본참화두를 가지고 전과 같이 밀고 나가도록 하라.


   만약 포단 위에서는 마냥 졸기만 하다가, 졸음에서 깨어서는 망상만 일으키고,

   몸을 돌려 땅으로 내려와서는 두 셋이 짝을 지어 모여앉아

   한 뱃속 가득한 어록이나 경서를 들먹이면서

   크고 작은 말로 마구 말 주변이나 부린다면

   이러한 공부는 납월 30일을 당하여는 아무 쓸 데도 없는 것이다.


▒ 용어정리 ▒


[1] 고매정우(古梅正友) :

남악하 25세. 법을 반야세성(般若世誠)선사에 이었다.


26. 구주 걸봉우선사 1) 오대의 선강주에게 이름


   가사 문수(文殊)가 금색광명을 놓으면서 너의 이마를 만지며,

   사자가 너를 태우러 오며 관음(觀音)이 천수천안을 나투며

   앵가(鸚歌) 2) 가 네 손에 잡히더라도,

   이것은 다 빛을 쫓고 소리를 따름이니 너의 본분에는 아무런 이익도 없는 것이다.

   

   진실 자기대사를 밝혀서 생사의 굳은 관문을 뚫어내고져 하거든

   먼저 일체의 성(聖)이니 범(凡)이니 하는 허망한 견해를 모두 끊어버리고,

   12시중에 마음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되, 다만

   "마음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것이 이 무엇인가?" 하고 지어가라.

   

   부디 밖을 향하여 구하지 말지니

   설사 자그마한 소견이 열리거나 신통성해(神通聖解)가 있어

   저 대지(大地)를 잡아 좁쌀알 만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이런 것은 모두가 자기를 속이며 불법을 비방하는 것이니

   모름지기 힘써 참구하여 일체에서 헌출히 벗어나

   의지한 바가 없어 한 터럭이라도 설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눈을 얻으면

   문득 "청주포삼(靑州布衫)" 3) 과 "진주라복 (鎭州蘿蔔)" 4) 이

   다 내 집에서 쓰고 있는 물건임을 알 것이니

   다시 따로 신통성해를 구할 것이 없느니라. 


▒ 용어정리 ▒


[1] 걸봉세우(傑峰世愚) :

(1301-1370) 남악하 23세. 법을 지암성(止巖 成)선사에 이었다. 서안(西安)에서 출생. 속성은 여(余)씨. 사의 모(母) 모(毛)씨가 꿈에 관음보살이 청의동자를 보내온 것을 보고 사를 낳았다 하는데, 사는 어려서부터 불탑에 예배하기를 좋아하더니, 20세에 고악 (孤嶽)스님에게 나아가 축발하고 피를 뽑아 금강경을 사서 공양하였다.

  

사의 고공정진한 이야기는 뒤의 제조고공절요 19에 보이거니와, 처음 고애순(古崖純)등 제사에게 참예하여 법요를 듣고, 마치 마른 나무둥치처럼 앉아 배겨 참구하더니 계합하지 못하고, 이어 포납(布衲), 단애(斷崖), 중봉(中峰)제사를 찾고 이윽고 대자산(大慈山) 지암성 선사에 이르러 역구(力究)하여, 마침내 대오하였다.

  

지암스님의 인가를 받고 3년을 섬기다가 서안(西安) 복혜사(福慧寺)를 중창하고, 다시 석계(石 溪)의 용흥사(龍興寺)로 옮기면서부터 법석이 크게 성화하였다. 그 후 여 러 곳의 개산 제1세가 되고 명 태조 3년 군수 황씨의 수륙재에서 돌아와 대중에게 "힘써 정진하여 입도하라" 이르고 붓을 들어,

   

"남(生)이라 본래로 남이 없으며, 죽음(死)이라 본래로 죽음 없는데,

두손 털고 빈 손으로 훨훨 떠나니 중천엔 밝은 달이 꽉 찼구나!

生本無生 滅本無滅 撤手便行 一天明月"


하고 붓을 던지고 갔다. 향수 70세. 시호는 불지홍변(佛智弘辯)선사.


[2] 앵가 :

앵무새의 작은 것을 앵가라고 한다는데 흔히 말하는 관음조를 가르키는 듯.


[3] 청주포삼 :

조사공안이다. 한 중이 조주에서 묻기를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데로 갑니까?" 하니

"내가 청주에 있을 때 장삼을 한벌 만들었더니 무게가 일곱근 이더라" 하였다.


[4] 진주라복 :

한 중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듣잡건데 화상께서 친히 남전화상을 뵈었다고 하는데 정말입니까?" 하니

"진주에 큰 무가 나느니라" 하였다.


27. 영은할당 선사 1) 제 2) 에 답함


송 효종(孝宗)황제 묻되

"어찌하면 생사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대승도(大乘道)를 깨치지 못하면 마침내 생사는 면하지 못합니다." 하였다.

   

다시

"어떻게 하면 깨칠 수 있습니까?" 하니,

"본래로 가지고 있는 성품을 세월을 가져 연마하여 나아가면

깨치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하시었다.


▒ 용어정리 ▒


[1] 영은할당(靈隱할堂) :

(1103-1167) 임안부(臨安府) 영은할당 혜원(慧遠)선사다. 남악하 16세. 원오근 선사의 법을 이었다. 송 휘종때 미산(眉山) 금유진(金留鎭)에서 출생. 속성은 팽(彭)씨.

   

13세에 약사 원(藥師院) 종변(宗辯)스님에게 출가하고 성도(成都)에 가서 경론을 배우고 운암사(雲巖寺)에 돌아와 휘(微) 선사에게 참예하여 묻기를


"문수보살은 7불의 스승이라 하옵는데 문수보살의 스승은 누구 입니까?" 하니

"금사 시냇가(金沙溪)의 마가집 며느리(馬家婦)다." 라고 일러 주었으나, 2년 동안 참구하여도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더니, 하루는 혼자 정좌하고 있는데 어떤 중이 지나가면서 혼자말로

"사대(四大)를 빌어서 몸둥이로 삼고, 육진(六塵)을 인연하여 마음이 나니, 육진이 없을 때 무엇을 가져 마음을 삼을건가" 하는 말을 듣고 문득 깨치고, 수좌에게 가서 소견을 말하니 "옳다" 하고 방장에 가서 휘화상에게 말씀드려도 또한 "됐다" 하셨으나, 어딘가 석연치 못한 곳이 있어 다음날 동료가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떠났다.


곧 원오극근선사에게 갔는데, 하루는 근화상 보설(普說)에 말씀하기를

"방거사가 마조(馬祖)에 묻기를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니 마조가 '네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입에 다 마시는 것을보아 일러주마.' 하셨다." 는 말을 듣고 대중 가운데 있다가 벌떡 자빠지면서 활연대오 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대중은 놀래면서 풍기(風氣)가 동했다고 다들 당황하여 부축하여 일으키니, 사 말이 "내가 꿈을 깼다"하였다. 그날 밤 소참에 극근 화상에게 나아가 묻기를,

   

"발가벗은 듯 한 물건도 없고, 적골이 드러날 듯 가난하여 돈 한 푼 없사오며, 집은 허물어지고 집안은 망하였사오니 화상께서는 도와주옵소서." 하니, 말씀이

"칠진팔보(七珍八寶)를 일시에 잡으렴!" 하시는데, 사

"어찌 도적이 문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하니, 근화상은

"기틀은 제자리를 여의지 않고 독바다(毒海)에 떨어져 있느니라" 하는 것을,

사 그 말씀을 이어 "할" 을 하니,

화상이 주장자로 선상(禪床)을 치면서

"방망이 맛을 보앗느냐?" 하시는 것을,

사 또한 "할" 하니, 화상도 연거푸 두 번 "할" 하셨다.

사는 즉시 예배하니 극근이 크게 기뻐하면서 게송을 지어주고 인가하였다.


이로부터 아무도 사의 기봉(機鋒)을 당적하는 사람이 없게 되니 대중들은 사를 가리켜 철설원(鐵舌遠)이라 불렀다. 그 후 얼마 아니하여 극근이 열반에 드니 회남(淮南)으로 내려와 제방에서 연마하여 대자재삼매(大自在三昧)를 이루고 크게 도풍을 떨쳤다. 마침 그때는 대혜 종고(大慧宗고) 선사가 매주(梅州)에서 귀양살이 할 때인데 왕래하는 사람에게서 대혜스님의 게송을 전해 듣고 놀라며 극구 칭찬하고

"노사께서 말년에 이런 법자가 있었던가?" 하여 글과 원오근이 전한 법의(法衣)를 보냈다. 그때에 천하에 종풍을 드날리니, 칙명으로 고정산 숭선사(高亭山 崇先寺)에 있다가 얼마 아니하여 다시 칙명으로 영은(靈隱)에 머물게 되었다.

   

이후 효종(孝宗)의 귀의가 두터워 자주 왕중에 참례하였는데, 여기 본문에 보이는 문답은 건도(乾道) 7년(서기1171 년) 1월30일, 찬덕전(찬덕전)에서 문답한 일절인데, 이날 처음 효종황 제를 만나서 여러 문답이 있었다. 다음에 본문에 계속하는 일단을 더 소개한다.

   

사가 "본유지성(本有之性)을 닦아 대승도를 깨쳐야 생사를 면한다" 하니,

황제가 "깨치면 어떠합니까?" 하고 물었다.

"깨치고 나야 비로소 알 일이오니, 폐하께서 물으시는 바나 신이 대답하는 것이 다 옳지 않습니다."

"일체 처(一切處)가 옳지않을 때 어떠합니까?"

"체(體)를 벗어난 것이 현전하면 터럭끝 만큼도 가히 찾아볼 상(相)이라고는 없습니다. 고덕이 말하기를 '옳은 바가 없는 것이 이것이 보리(菩提)라' 하였습니다."

"즉심즉불(卽心卽佛)은 어떠합니까?"

"눈 앞에 한 법도 없아온데 폐하께서 무엇을 가져 마음이라 하시옵니까?"

"어떠한 것이 마음입니까?"

사 일어나 차수(叉手)하면서 "단지 이것 뿐입니다." 하였다.


사는 입적하기 전에 이미 오는 1월15일에는 입적한다는 소문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관속(官俗)이며 단도(檀徒) 제자들과 도하(都下) 많은 사람들이 사의 열반상(涅槃相)을 본다고 다투어 절에 모여 들었다. 왕의 밀사(密使)도 와서 사의 거지를 살폈다.

  

그날 큰 재식이 있었는데 사의 왕래거저가 평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날 재를 파하고 시자와 속관이 다 같이 방장(方丈)에 들어 갔는데 사는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꼭 닫았다. 사가 방에 들어 가신후 방장에 있던 사람들이 문 틈으로 보니 다만 원행자(猿行者 평소에 사가 기르던 검은 원숭이)가 한 종이 두루마리를 들고 섰을 뿐 사가 보이지 않으므로, 뒷문으로 들어가 보니 사는 이미 탑 위에서 시적하였다. 원행자가 가진 종이는 바로 사의 사세송(辭世誦)이었다. 향수 74세.


[2] 제(制) :

천자의 말씀을 '제'라 한다.


[3] 대승도(大乘道) :

소승도(小乘道)에 대한 말로서 범어를 음대로 적어 "마하연(摩訶衍)" "마하야나" 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본분도리, 종문일착자를 가르키고 있다.


소승은 인간을 보기를, 구속 한정 상황하에서 자유 해탈을 구하는 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자연 그 수행이 자기 일신의 구제에 치우치는 것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수행이 개인 중심의 수행이며 구속 한정 상황을 전제하고 그에서 벗어나고저 하는 수행과 얻을 바 법이 있고, 그밖에 타인을 제도하거나 내지 본래부터 이루어져 있는 참된 자기에 대한 믿음과 그에 상응하는 보살행 즉 해탈행이 애당초 없다. 그러므로 작은 수레라 하며 소승으로 불리운다.


대승은 이에 반하여, 본불생(本不生), 본불멸(本不滅), 본자해탈(本自解脫), 본자구족(本自具足),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본상을 믿는 신앙으로 출발하여, 그에 따른 큰 원력과 수행이 있게 되어 여기서 대승의 원력(願力)과 육도만행(六度萬行)이 벌어진다.

   

일체 중생을 자기로 삼는 대승이 일체 중생의 고를 덜기 위하여 그 몸을 희생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 하기 위하여 무량겁으로 천만억의 목숨을 버리며, 마침내 일체중생과 더불어 같이 성불하고저 하는 원력은 그대로 대승도의 본연적 원력이며 당연한 귀결이다.

   

석가모니불을 위시한 많은 불보살이 이 본분 원력의 시현으로서 백억화신을 나투는 것이며 항사(恒沙)보살이 이 대승수행을 하여 마침내 성불하게 된다.


28. 대승산 보암단애화상 시중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공부를 짓되, 화두를 참구하지 아니하고 비고 고요한 것을 지켜 앉아있지 말며,

   염화두(念話頭) 1) 를 하여 의정없이 앉아있지 말지니라.

   

   혹 혼침이 오거나 산란심이 들면 생각을 이르켜서 이를 쫓으려 하지 말고,

   곧 힘차게 화두를 들고 신심을 가다듬어 용맹히 정채를 더 하라.

   그래도 아니 되거든 땅으로 내려와 경행하고

   혼산이 사라지거든 다시 포단에 앉을지니

   

   화두가 들지 않아도 스스로 들리고 의심하지 않아도 스스로 의심되며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있는 줄을 알지 못하여

   오직 참구하는 생각 뿐이어서

   공부가 ‘외로이 헌출하고 뚜렷하게 밝게 되면’

   이곳을 번뇌가 끊어진 곳이라 하여 또한 아(我)가 없어진 곳이라 하느니라.


   비록 이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아직 구경에 이른 것은 아니니

   다시 채찍을 더하여 ‘저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를 궁구하라.

   이 경지에 이르러 화두를 드는 데는 별다른 절차가 없느니라.

   화두가 간단이 없어 오직 의정이 있을 뿐이나,

   혹 화두를 잊거든 곧 들지니 그 중에 돌이켜 비추는 마음이 다하게 되면

   이때를 ‘법(法)이 없어졌다’ 고 하는 것이라

   비로소 무심처(無心處)에 이른 것이다.

   

   이곳을 구경처라 할 것인가?

   고인이 이르시기를

   “무심을 도라 이르지 마라.

   무심이 오히려 한 중관(中關) 격(隔) 하였네” 2) 하였으니

   여기서 다시 문득 소리나 빛을 만나 축착합착하여

   한바탕 크게 웃음치고 몸을 뒤쳐 돌아와야 비로소

   “회주소(懷州牛) 여물 먹고 익주말(益州馬) 배부르다” 3) 하게 되는 것이다. 


▒ 용어정리 ▒


[1] 염화두 :

화두에 의정을 내지 않고, 염불하듯이 화두를 생각에서 외우고 있는 것을 말한다.


[2] 무심을 :

이 구절은 동안상찰(同安常察)선사의 십현담(十玄談)중 심인송(心印頌)의 일절인데 심인송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묻노니 심인(心印)이란 그 얼굴이 어떠한가?

   심인을 누가 있어 감히 주고 받으랴,

   역겁(歷劫)으로 단연(但然)하여 다른 빛이 없으니,

   심인이라 부를 때 벌써 허언(虛言)인 것을!

   모름지기 본래인 허공심을 알아서, 활활 타는 불꽃 속에 핀(發) 꽃으로 비유할까!

   무심을 도라 이르지 마라. 무심이 오히려 한 중관 격 하였다."


[3] 회주소:

두순(杜順)화상 법신송(法身頌)이다.


"회주소 여물 먹고, 익주말 배가 불러,

천하명의 구했더니 돼지 좌박(左膊)에 뜸 뜨더라."


29. 고졸선사 1) 시중


   제 대덕이여,

   어찌하여 대정진을 일으켜 삼보전에 대하여 깊이 큰원을 발하지 않느냐!

   

   만약 생사를 밝히지 못하여 조사관을 뚫지 못하면 결코 산을 내려가지 않겠다고

   장련상상(長連床上) 칠척단전(七尺單前)을 2) 향하여 높이 바랑을 걸어 놓고

   천길되는 절벽 위에 앉은 듯 생각하고, 온 평생을 다하여서라도

   기어이 이일을 철저히 밝히고야 말기로 작정하고 지어가야 하니,

   만약 이와 같은 마음만 결정되면 결코 어긋남은 없는 것이다.


   만약 발심이 참되지 아니하고 입지(立志)도 맹령하지 못하여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저곳에서 여름을 지내며,

   금일은 전진하고 내일을 후퇴 하며 이와같이 닦고서,

   혹 오래 지어도 얻지 못하면 문득 반야에 영험이 없다하고 도리어 외변으로 달려,

   헛된 문서나 한배 그득히 기억하거나 한부질 베끼어 가지고 제 살림을 삼아,

   마치 저 냄새나는 수채통과 같게 하여 듣는자로 하여금 구토를 참을 수 없게 하니

   이와 같이 하고서는 비록 미륵하생까지 지어간들 공부에 무슨 상관이 있으랴.

   

   딱한 노릇이다. 


▒ 용어정리 ▒


[1] 고졸(古拙) :

호는 조정(祖庭). 남악하 24세. 법을 복림도(福林度) 선사에 이었다. 10세때 벌써 법화경을 매일 한편씩 외웠다 한다. 13세에 일주사(日鑄寺)에서 출가, 뒤에 고매(古梅)선사에 참예하면서 손가락 셋을 연지하고 지성을 다하여 공부하여 9일만에 대오하였다.


[2] 칠척단 :

승당 상전(床前)의 단판(單板) 1척과 상(床)의 길이 6척을 합한 것인듯.


30. 태허 선사 1) 시중


   너희들 아직도 깨치지 못하였거든

   모름지기 10년 20년 내지 30년이라도 포단 위에 앉아 배겨

   "부모가 낳기 전 본래면목" 을 참구하라. 


▒ 용어정리 ▒


[1] 태허원(太虛圓) :

남악하 30세. 법을 묵당조(默堂照)선사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