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야단법석

불설 비불설의 논쟁에 대한 의견

실론섬 2015. 9. 9. 20:54

불설 비불설 논쟁의 글을 올려 놓았다. 훌륭하신 스님과 그리고 학자들의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어느 한 쪽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지지하기는 곤란하지만 나 개인의 생각은 마성스님이나 전재성 박사의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다.


왜 빠알리어 경전과 스리랑카의 상좌부가 권위와 전통을 이어받은 적통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만약에 빠알리어 경전(아함경도 포함된다)의 전통이나 상좌부의 권위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 빠알리어 경전에 설법되어 있지 않은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또다른 길을 기록해 놓은 경전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도대륙에서 이미 사라진 부파불교와 인도 대승불교의 전통을 이은 불교들이 세계 어디에서든가는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빠알리어 경전을 능가하는 초기경전이 발견된 적도 없고, 인도에서 일어난 부파 대승불교 중에서 상좌부 이외에 그 어느 분파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붓다께서 열반에 드신지 이미 2600년의 세월이 지났다. 붓다께서 계시지 않은 지금 우리는 그분의 육성을 담아 놓은 경전이 과연 무엇인지 분명히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빠알리어 경전(아함경)은 절대적 권위를 부여받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완벽하고 100% 순수하지는 않더라도 분명히 붓다의 육성이 담겨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통째로 부정하는 것은 결코 상식적이지 않다. 


어떤 종교이든 교조가 있고 그 교조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가르침이나 분파가 있어야 한다. 분파들끼리 싸움을 하든 말든 그것은 지엽적인 문제이다. 시작이 없는데 지금이 있을 수가 없고 현재가 없는데 미래가 있을 수가 없다. 전통이나 권위란 누가 시작점을 선점하고 누가 시작점에 대해서 좀더 가까이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붓다의 가르침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그 가르침을 전승한 분파가 없다면 그래서 각자가 자신이 원조라고 주장한다면 도대체 불교가 어떻게 되겠는가. 일년에도 수십개씩 원조불교가 생겨날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날처럼 남방불교가 원칙을 지키고 수많은 논쟁과 분파들을 잠재울 수 있는 것도 결국 빠알리어 경전의 전통성과 그리고 상좌부의 권위에 감히 어느 누구도 도전할 이유나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2600년 동안의 세월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각자의 주장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의 주장은 논서로 남았을 뿐이고 그리고 현재의 빠알리어 경전이나 상좌부 불교의 형태로 남아서 그들의 주장을 전승하고 있는 분파가 없다. 100% 상좌부가 옳지 않다고 하여 전부를 부정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할 것 같다. 


논픽션과 같은 역사적인 사실과 사상의 발전과 가르침의 전승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권오민 교수님의 말처럼 이미 인도에서 부파불교 시대에 1차 경전결집의 전승은 깨어졌고 상호간에 불설 비불설의 논쟁이 있었다고 하여 상좌부의 전통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물론 상좌부도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았고 전통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많은 요소들도 있지만 대나무가 여러개의 마디로 이루어져 하나의 대나무이듯 즉 여러개의 마디로 나뉠 수는 있지만 결그런 마디가 모여 있어서 하나의 대나무가 되듯이 상좌부의 전통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홍사성 선생님은 '대승경전을 찬술한 사람들의 태도는 정당한가' 라는 글에서 대승경전 찬술자들의 태도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홍 선생님은 대승경전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대승경전을 마치 붓다께서 직접 말한 것처럼 '여시아문(이렇게 나는 들었다)' 이라고 거짓으로 스토리를 꾸몄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한 것이다. 그들이 대승경전을 찬술할 때 '붓다의 생각은 이랬을 것이다' 라든가 '이게 붓다가 말씀하신 진정한 가르침이다라고 생각한다'라든가 또는 백번 양보하더라도 경전이라는 용어보다는 '논서'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찬술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깨달았다고 전부다 경전을 만들어 남발한다면 무엇이 붓다의 육성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어질 것이다.

불설과 비불설이 처음 제기된 것은 일본에서였다. 그리고 그 내용은 분명히 대승경전이 붓다의 직설처럼 되어 있지만 알고보니 후대에 가탁(가짜로 스토리를 만든것)된 것이고 붓다가 아닌 누군가의 작품이라는 점이었다. 즉 역사적으로 볼 때 그것이 붓다의 직설이 아니라는 것이었지 결코 붓다의 가르침이 아닌 외도들의 가르침이라고 한 적은 없다. 그런데 논쟁이 가열되면서 역사적인 부분과 사상적인 부분까지 확대되어 왔다. 

한국의 대부분의 불자들은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을 갖다 놓고 상호 비교하면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대부분의 불자들은 역사적으로 실존하셨던 붓다와 대승경전 속의 부처님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할 수 없다. 더우기 불자들은 대승경전이 붓다의 직설로만 알고 있다. 유마경의 유마거사가 실존인물로 알고 있으니 다른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사실적으로 아미타불의 생물학적 부모님이 누군인지 관세음보살의 고향이 어디인지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점에서 대승경전은 분명히 비불설이다. 즉 붓다의 육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 전통성도 없고 권위도 인정받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대승경전은 가짜로 스토리를 꾸몄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비불설이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불설이다. 

금이 100% 순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90% 밖에 없다고 그것을 구리로 폄훼할 이유는 없다. 또한 대승경전이 붓다의 직설이 아니라고 그것을 애써 감추거나 구차한 변명이나 강변을 할 이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