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야단법석

기구한 인생의 여인 파타카라

실론섬 2015. 11. 25. 21:15

한국불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여기서는 중학교 불교시간에 필히 배우는 이야기중의 하나가 파타카라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근본 목적은 붓다의 위대함과 대자비심에 대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세상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곳인가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삶을 살면서 힘들고 망각하고 싶은만큼 힘든 괴로움이 닥쳤을 때 파타카라 여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 어디에도 파타카라 여인만큼 기구한 삶과 괴로움을 당한 사람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어려움들은 자신이 지은 업의 결과이며 그리고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가 붓다께서 윤회와 업이라는 교리를 통해서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결코 '그 고통이 자신이 지은 업보를 받는 것이니 그저 자애의 눈길로 바라만 볼 뿐이다...'라고 하면서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윤회와 업의 교리를 배우는 진정한 목적은 윤회에서 벗어나고 그리고 업보로 인한 괴로움이 닥쳤을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나가느냐에 있을 것입니다. 그저 자신이 지은 업보를 받는다는 수동적 운명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아나게끔 하는 것이 윤회와 업의 가르침입니다.


개인이든, 가족이든, 민족이든, 국가든 우리는 잊고 싶은 과거가 있고 벗어나고 싶은 현재와 미래가 있습니다. 업보는 운명론도 숙명론도 아닙니다. 얼마든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가 바꿀 수 있고 다가올 인생을 빛으로 나아가는 삶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파타카라라는 기구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살이를 보면 미치지 않고서는 도무지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붓다를 만난 후 자신이 처한 고통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정상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붓다는 그 여인을 자애의 눈으로 바라만 본채 내 몰라라하고 내팽개치지 않고 그녀에게 옷을 입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뷸자들이 비록 불속에 갇혀 있더라도 보살의 이름만 부르면 달려가 구해주거나, 지옥에 한명의 중생이라도 남아 있다면 성불하지 않겠다거나, 중생들이 아프기에 자신의 육신도 아프다는 그러한 위대한 불교의 보살정신을 발휘하지는 못할망정 우리들 모두는 연기로 얽혀있고 인드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을 조금만 하더라도 내이웃에게 보다 쉽게 보시와 자비의 마음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파타카라 여인

옛날 돈 많은 부자의 딸인 파타카라 (Patacara)라는 여자가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하인과 결혼해 도망갔습니다. 도망 중 그녀는 남편 사이에 두 아이를 낳으면서 살다가 어느날 고향집에 너무나 가고싶어 남편을 졸라서 고향집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다 길에서 폭풍우를 만나게 되는데 남편이 비를 피할 곳을 마련하기 위하여 나뭇가지를 모으다가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고향집으로 계속 향합니다.


큰 강가에 다다라 강을 건너려 했지만, 강이 깊어 두 아이를 한꺼번에 데리고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태어난 갓난 아이를 일단 강둑에 두고 큰 아이를 안고 강을 건넜습니다. 다시 갓난아이를 데려 가기 위해 강 중간쯤 왔을 때 매가 아이를 덮쳐서 낚아채 날아 갔습니다. 그녀는 매가 놀래 아이를 놓고 가도록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강 건너 편 큰 아이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강에 뛰어들어 그만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남편과 두 아이를 잃고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로 그녀는 부모를 만나러 갔지만, 지나가는 길 손을 통해서 부모의 집에 불이나서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넋이 나가 미쳐 버렸습니다. 그녀는 옷을 벗어 버리고 알몸이 된 채로 이리저리 유리 방황하였습니다.  그녀를 본 사람들은 오물을 던지면서 쫓아 내 버렸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고타마 붓다를 만나게 되었을 때, 자비심으로 가득한 붓다는 그녀를 거처로 데리고 가서 옷을 입히고는 이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설법을 통해 알려 주었습니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 그녀는 고통의 본질을 깨닫고 정상인이 되어 자신이 당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