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야단법석

한국 선불교의 깨달음의 논쟁을 읽고(3)

실론섬 2016. 1. 20. 13:32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초기불교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된 지도 어연 십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4부 니까야도 한글로 완역이 되어 많은 불자분들이 손쉽게 붓다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기존의 한국불교 종단들이 초기불교를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불자들이 많아졌고 재단도 설립이 되었습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 입장에서 보면 초기불교의 등장과 세력확장은 사실 기독교나 천주교의 세력확장과는 전혀 다른 또다른 목에 가시와 같은 것일 것입니다. 특히 수행법에 있어서 간화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으며 많은 납자들이 선방에 앉아서 화두 대신에 위파사나를 몰래(?) 수행할 정도이니 더더욱 가시방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불교내에서 대승불교로 출가를 하고 대승불교를 신봉하는 많은 수행승들이나 불자들도 초기불교권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한국불교이지만 속으로는 초기불교를 신봉하는 수행승들이 예외로 많다는 것이고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 이중적인 행태의 수행승들이 쉽게 "나는 초기불교를 신봉한다"라고 양심고백을 못하고 있고 이는 현 불교계의 풍토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응스님은 오래전부터 조금씩은 초기불교의 입장을 내세웠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계종 교육원장에 취임을 하면서도 발표한 글에 보면 초기불교나 아함경 그리고 승가대학등에서 초기불교를 도입해야 한다는 뜻으로 글을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몸을 담고 있는 승가가 한국불교의 조계종이니 선뜻 "나는 초기불교를 신봉한다"라는 양심선언을 못하는 것이고 어정쩡한 모습을 취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번 논쟁을 촉발시킨 글도 지엽적으로 보질 않고 전체적으로 본다면 내용은 극히 단순명쾌합니다. "간화선으로는 안되니 초기불교 수행법을 도입하자" 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조계종이라는 종단의 개명을 거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당연히 기존의 승가 특히 간화선을 신봉하는 주류 입장에서는 반발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말로 선종의 간화선 수행법이 그토록 최고이고 뛰어난 것이라는 간화선 수행승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일년에 한분 정도는 부처가 탄생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한국불교의 침체와 특히 조계종은 온갖 비난에 직면해 있는게 현실이며 앞으로 종단의 힘은 갈수록 약화될 것은 뻔한 이치 입니다. 이대로는 가면 언젠가는 한국불교 특히 선불교는 공멸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존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고 오히려 불교의 정법을 훼손하는 사건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간화선이 그토록 좋다면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서 최고인 간화선을 수행한 수행승들인데 .. 불자로서 도저히 얼굴을 들지 못할 불법 훼손 사건들이 생기지 말아야 할 것 입니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진실중의 하나가 간화선 수행이라는 것이 중국화 된 중국불교에서 태동한 것입니다. 또한 도교의 영향이 상당했다는 것도 부인못할 사실입니다. 더우기 붓다의 원음이 있다는 니까야이든 아함경이든 그 어디에도 간화선 수행을 말한 것이 없습니다. 


그토록 좋은 수행법이라면 왜 붓다께서 말씀하시지 않았겠는지요? 붓다께서 미쳐 알지 못한 최고의 수행법을 조사들이 알아냈다는 것인가요? 한국의 수많은 선승들은 한결같이 "간화선이 최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철스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럼 붓다께서 일러주신 수행법은 이류이고 간화선이 일류다..? 그런데 왜 성불하는 분들은 없나요? 


과거 오고가는 길이 힘들고 정보교류가 힘들었던 시대에는 불교를 중국에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불교가 곧 붓다의 불교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 이른 교류의 장벽이 모두다 허물어 졌고 이제는 세살짜리 어린애도 초기불교를 쉽게 접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불교도 시대 상황에 따라서 변해야 하고 그리고 과거의 잘못된 답습을 버려야 합니다. 2000천녀이 되었든 2만년이 되었든 중국불교에서 건너온 것이 변형되고 변질된 것이 있다면 이제라도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저같은 우매한 중생의 눈에는 이번 논쟁을 하면서 선불교를 옹호하는 분들의 낡고 낡은 중국식의 용어들을 동원하고 깨달음의 신비화와 환상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을 보고 솔직히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지금이 어느때인데 옛날의 중국한문 용어를 퍼다 나르고 온갖 어려운 단어들을 동원하여 마치 선불교를 굉장하고 신비로운 것으로 포장할려는 그 눈물나도록 안쓰러운 모습이 참으로 가소가소 했습니다. 요즈음 인터넷 세대들이 뭐라고 하는지 한번쯤 뒤돌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수십년전에 무덤이나 쓰레기장에 갖다 버려야 할 한문용어들을 동원하는 그 용기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만 그 용기의 절반만이라도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과 청정한 수행풍토에 보탰으면 지금처럼 불교가 휘청거릴 정도로 활력을 잃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깨달음이나 수행법을 이야기한다면 어느 글귀 중간정도에는 팔정도 이야기 정도는 들어가야 하지 않나요? 그런 이야기 한마디 하지 않으면서 중국불교를 답습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가요? 손에 가슴을 얹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려는 행동은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유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 예로 선불교는 문자를 멀리 합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그것을 비난하고 논리적으로 혁파하면 얼른 선불교에서도 교학을 중시한다거나 자비행을 중시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빠져나갑니다. 진짜로 선불교에서 교학을 중시하나요? 강원등에서 배우는게 모두다 선불교 관련 책자들이 아닌가요? 예전에 일아스님이 한국의 강원교육을 처음부터 백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발표를 하니까 온갖 압력을 다해서 글도 지우고 ... 했던 것이 꾸며낸 이야기인가요? 


교학이라고 다 교학이 아닙니다. 선불교 관련 책자를 들고 진짜 교학을 폄훼하고 알음알이니 뭐니 하면서 아상과 아견만 세우는게 교학인가요? 공부하는게 쉽습니까?절대로 아닙니다. 공부만큼 어려운게 없습니다. 공부할때 정신 엉뚱한테 팔고 하지 않습니다. 정신집중하고 문제를 풀고 이해를 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그게 간화선의 화두타파보다 쉽게 보이나요? 


간화선도 좋고 위파사나도 좋고 사띠도 좋습니다. 하지만 원칙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원칙이 무너지면 전부다 무너집니다. 불교에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아야 할 원칙은 "팔정도" 입니다. 팔정도 토대위에서 수행법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변화이지 결코 변질이 아니지만 팔정도를 애써 무시하고 다른 수행법을 들고 나오면 그건 변질일 뿐 결코 발전적 변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발 변화좀 하세요. 변질은 그만 멈추어 주세요.

 

성불 = 탐진치 삼독심 제거 

깨달음 = 사성제를 여실지견하는 것 

수행법 = 팔정도 


위의 것이 불교의 원칙 아닌가요? 성불하는 법을 몰라서 평생을 화두들고 산 속에서 보내는건가요? 저같은 중생은 1시간이면 성불하는 길이 무엇인지  깨닫고 훤히 알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성불못하는지 아시는지요? 행이 안 따르니 못하는 것입니다. 탐진치 삼독심을 제거하지 못하니 성불 못하는 것이지 성불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게 아닙니다. 37조도품의 내용을 몰라서 못하는게 아닙니다. 37조도품의 수행법 중에 이런게 있습니다. 


이미 일어난 악한 마음이 더이상 증장하지 않도록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한 마음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이미 일어난 선한 마음이 더욱더 증장하도록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한 마음이 일어나도록 노력하고... 

  

그런데 


성불 = 견성 

깨달음 = ?? 

수행법 = 간화선 


저게 붓다께서 말씀하신 불교의 원칙인가요?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니까야나 아함경 전부다 불살라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간화선도 좋은 수행법일 것입니다. 인도에서 유식학파들이 수행법으로 요가수행을 택했듯이 여러 방법들이 동원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간화선을 옹호하는 그 편협된 아견과 하챦은 중국식 지식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면  그건 간화선을 옹호하는게 아니라 망치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진정으로 간화선의 발전을 위한다면 불교의 원칙에 충실하고 그리고 절대로 변질되지 않기를 합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