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6. 원한다면 경(âkankheyyasuttam)
6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계를 갖추고, 빠띠목카(戒目.계목)를 갖추어 머물러야 한다. 빠띠목카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바른 행동(행실)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결점에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고 익혀야 한다.
*"'빠띠목카(patimokkha, 계목, 戒目)'란 학습계율(sikkhapada-sila)을 뜻한다. 이것은 '이것을 보호하고(pati) 지키는 사람을 해탈케 하고(mokkheti), 악처 등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빠띠목카(patimokkha)라고 한다."(Vis.i.43)
상좌부 전통의 비구 계목은 모두 227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른 행동(acara)'이란 몸과 말로 범하지 않는 것이 바른 행실이다. 계를 통한 단속은 모두 바른 행실이다. '행동의 영역(gocara)'이란 기생집을 행동의 영역으로 삼지 않고, 과부의 집, 술집을 행동의 영역으로 삼지 않으며 훌륭한 사람들의 출입을 좋아하고 이로움을 바라고 유가안온을 바라는 그런 가족을 의지하는 것이 행동의 영역이다.
*"배워야 할 조목이라 해서 '학습계목(sikkha-pada)'이라 한다. 학습하는 항목(kotthasa), 혹은 학습해야 할 조목이라 해서 학습계목이라 한다."(DA.ii.1026)
65.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동료 수행자들의 사랑과 마음에 들어함과 존중과 존경이 있기를(받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를 실천하고, 선(禪)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빈 장소)에 머물러야 한다(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계에 충실하고'란 네 가지 청정한 계를 원만히 한다는 말이다."(MA.i.156)
네 가지 청정한 계란 계목의 단속에 관한 계, 감각기능의 단속에 관한 계, 생계의 청정에 관한 계, 필수품에 관한 계이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가사, 탁발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얻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가사,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보시해 준 그들에게 큰 결실과 큰 공덕이 있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깨끗한 마음으로(고운 마음으로) 나를 기억하는 친지와 혈육인 죽은 이들, 돌아가신 분들에게 큰 결실과 큰 공덕이 있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66.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내가 싫어함과 좋아함을 극복하기를. 싫어함이 나를 극복하지 않기를. 생겨난 싫어함을 거듭 지배하여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며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내가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기를. 두려움과 공포가 나를 극복하지 않기를. 생겨난 두려움과 공포를 거듭 지배하여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높은 마음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물질[色]을 넘어선 물질이 없는[無色] 평화로운 해탈을 몸으로 실현하여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청정도론 주석서」는 '평화로운 해탈(santa vimokkha)'을 무색계 선(禪)(arupa-jjhana)이라고 설명하고 있다(santavimokkhato ti arupajjhanato-Pm.394=Vis.X.5에 대한 주석).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평화로운 해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평화로운(sata)'이란 것은 구성요소가 평화롭고 대상이 평화롭기 대문에 평화롭다. '해탈(vimokkha)'이란 반대되는 법들로부터 해탈했고 또 대상에 대해 확신이 있기 대문에 해탈이다. '물질을 초월한다.'는 것은 색계선을 초월한다는 것이다."(MA.i.162)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평화로운 해탈들(santa vimokkha)'이란 구성요소들도 평화롭고 대상도 평화롭기 때문에 평화로운데 이것은 무색계의 해탈들을 말한다. '몸으로 체득하여'란 정신적인 몸으로 체득하여, 증득하여라는 뜻이다."(SA.ii.126)
「맛지마 니까야 복주석서」는 '정신적인 몸'이란 함께 생긴 정신의 무더기(수.상.행.식의 4온)를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MAT.i.265)
67.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악취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해탈이) 확실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깨달음을 겨냥한) 흐름에 든 자[예류자.預流者]이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세 가지 족쇄(samyojana)'란 유신견과 의심과 계금취(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의 세 가지 속박(bandhana)이다. 이들 무더기와 태어날 곳과 존재등으로써 무더기와 태어날 곳과 존재 등을 얽어매기 때문에 족쇄라고 부른다."(MA.i.162)
*"'흐름에 든 자(sotapanna)'란 흐름(sotam)을 얻은 자(apanno)를 말한다. '흐름(sota)'은 도(amgga)를 두고 한 말이고, '흐름에 든 자'는 첫 번째 도(예류도)의 순간에 있는 자를 두고 한 말이다.
'[악취에]떨어지는 법이 없다(avinipata-dhammo).'는 것은 처참한 곳에서 떨어지게 하는 법들을 이미 다 버렸기 때문에 그에게는 더 이상 없다는 말이다.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sambodhi-parayano)'란 첫 번째 도를 얻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더 높은 세 가지 도(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를 성취한다는 뜻이다."(MA.i.162-163)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을 끝내는 한 번만 더 돌아올 자 [일래자.一來者]이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탐진치가 엷어져(raga-dosa-mohanam tanutta)'라는 것은 가끔씩 어떤 때에 일어나고, 흘림이 약한 상태라는 말이다. 그에게는 탐진치가 윤회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처럼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가끔씩 일어난다. 일어나더라도 윤회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처럼 파괴하고, 널리 퍼지고, 덮어버리고, 암흑을 만들 듯이 그렇게 일어나지 않고 아주 약하게 일어난다. 한 번만 더 인간 세상에 돌아와서 윤회의 괴로움을 끝낸다."(MA.i.163)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내가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는 자이니, 그 세계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불환자.不還者]이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68.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하며,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으며,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속에서와 같으며,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위에서와 같으며,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달린 새와 같으며,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브라흐마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위력이 미친다.라고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체험하기를(실행하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를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렸으면 좋겠다. 즉 탐욕을 지닌 마음을 탐욕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탐욕을 떠난 마음을 탐욕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 차리며,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성냄을 떠난 마음으로 성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을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산란한 마음을 산란한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광대한 마음을 광대한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광대하지 못한 마음을 광대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위가 없는 마음은 위가 없는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삼매을 얻은 마음을 삼매를 얻은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 차리고,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 차리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면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하면 좋겠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넷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천 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고통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 라고. 그러한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등을 기억하기.'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의 죽음과 삶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즉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리기를. '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邪見業)을 받는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正見業)을 받는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善處], 고통스러운 곳[惡處]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리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더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69.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에 충실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삼매를 멀리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 집에 머물러야 한다.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마음이라는 단어를 아라한과와 함께하는 삼매가 지혜라는 단어를 아라한과와 함께하는 지혜가 설해졌다.여기서 삼매(samadhi)는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해탈하였기 때문에 마음의 해탈이고, 지혜는 무명으로부터 해탈하였기 때문에 지혜에 의한 해탈이라고 알아야 한다. ... 감각적 욕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마음의 해탈이라고 하고, 무명이 사라졌기 대문에 지혜에 의한 해탈이라 한다. 그리고 사마타의 결실이 마음의 해탈이며, 위빳사나의 결실이 지혜에 의한 해탈이라고 알아야 한다."(MA.i.164-165)
여기서 보듯이 마음은 삼매의 동의어로 마음의 해탈은 삼매에 의한 해탈이고, 지혜의 해탈은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에서 지혜를 통한 해탈과, 마른 위빳사나를 닦은 자(sukkha-vipassaka)와 네 가지 禪으로부터 출정하여 아라한과를 얻은 자들로 모두 다섯 가지 경우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DA.iii.879)
그리고 마음의 해탈이 단독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이렇게 지혜에 의한 해탈과 함께 나타난다. 그러나 지혜에 의한 해탈은 단독으로 나타나는 곳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양면해탈(ubhato-bhaga-vimutti)도 설명해야 하는데, 요약하면 양면으로 해탈한 자(ubhato-bhaga-vimutta)는 무색계 삼매(공무변처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와 더불어 아라한과를 증득한 자를 뜻하고, 지혜로 해탈한 자는 무색계 삼매 없이 아라한과를 증득한 자를 말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계를 갖추고, 빠띠목카(戒目.계목)를 갖추어 머물러야 한다. 빠띠목카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바른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결점에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고 익혀야 한다.' 라고 앞서 설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께서 말씀을 기뻐하였다.
원한다면 경(M6)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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