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4. 두려움과 공포 경(bhayabheravasuttam)
3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왔다. 가서는 세존과 인사를 나누었다. 두 분이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바라문 자눗소니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고따마 존자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이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의 인도자이고, 고따마 존자께서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고따마 존자께서는 그들을 이끌고, 그들은 존자 고따마에게서 보이는 것을 뒤따릅니다.?”라고.
“그것은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그것은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바라문이여, 나는 나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의 인도자이고, 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나는 그들을 이끌고, 그들은 나에게서 보이는 것을 뒤따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는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홀로 머묾은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홀로 머물면서 기뻐하기는 어렵습니다. 생각건대,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에게 숲은 마음을 빼앗습니다.”
“그것은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그것은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바라문이여,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는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홀로 머묾을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홀로 머물면서 기뻐하기는 어렵습니다. 생각건대,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에게 숲은 마음을 빼앗습니다.
*자눗소니바라문(Jāṇussoṇī brahmaṇa)은 꼬살라의 유명한 바라문 마을이었던 잇차낭깔라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본경 등 적지 않은 경들이 그와 세존이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그는 세존께 큰 신뢰를 가진 재가신도였다. 그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높은 궁중제관이었으며 많은 재산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그의 부모가 지어준 개인적인 이름이 아니라 직위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SA.ii.74;MA.i.90) 앙굿따라 주석서는 누구든지 이 서열에 이른 자는 자눗소니 가문(Janussoni-kula)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AA.ii.115)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선남자]’은 kula-putta를 직역한 것이다. 주석서는 “두 가지 좋은 가문의 아들이 있다. 태생이 좋은 가문의 아들과 스승의 가문의 아들이다.”(MA.ⅰ.111)라고 주석하면서 대부분의 문맥에서 스승의 가문의 아들로 해석하고 있다. 물론 스승의 가문의 아들이란 부처님 가문의 아들, 즉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출가한 스님들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에서는 선남자로 옮겼으며 불자(佛子)라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홀로 머묾을 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몸으로부터의 홀로 머묾(kaya-viveka)를 행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혼자 있는 상태를 즐기기는 쉽지가 않다. 몸이 홀로 머물 때 마음은 그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이 세상 사람들은 둘씩 또는 여러명이 함께 있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에게 숲은 마음을 빼앗는다.'라고 했다. 근접삼매나 본삼매를 얻지 못한 자가 숲이나 밀림에 거주하면 그곳의 풀, 나뭇잎, 동물 등의 여러 가지 무서운 것으로 인해 그의 마음이 산란해진다는 말이다.(MA.i.112-113)
35. 바라문이여, 깨달음 이전,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던 나에게도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는 극복하기 어렵다. 홀로 머묾을 실천하기 어렵다. 홀로 머물면서 기뻐하기는 어렵다. 생각건대,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에게 숲은 마음을 빼앗는다.’라고.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청정하지 못한 몸의 업(행위)을 가진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참으로 청정하지 못한 몸의 업을 가진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청정하지 못한 몸의 업을 가지고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청정한 몸의 업을 가졌다. 나는 깊은 숲 속 외딴 거처에 머무는 청정한 몸의 업을 가진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바라문이여, 청정한 몸의 업을 가진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유익하지 못함(해로움,akusala)'이란 비난받아 마땅하고 안전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두려움(bhaya)'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뜻에서 유익하지 못함이고, '공포(bherava)'는 안전하지 못하다는 뜻에서 유익하지 못함이다.(MA.i.113-114)
36.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청정하지 못한 말의 업을 가진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 청정하지 못한 마음의 업을 가진 ··· 청정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참으로 청정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청정하지 못한 생활을 하면서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청정한 생활을 한다. 나는 깊은 숲 속 외딴 거처에 머무는 청정한 생활을 하는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바라문이여, 청정한 생활을 하는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37.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간탐(慳貪)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해 깊이 탐닉하는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간탐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해 깊이 탐닉하는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간탐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해 깊이 탐닉하면서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간탐하지 않는다. 나는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간탐하지 않는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바라문이여, 간탐하지 않는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38.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성냄의 마음과 잘못된 마음의 사유를 하는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참으로 성냄의 마음과 잘못된 마음의 사유의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성냄의 마음과 잘못된 마음의 사유를 하면서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자애의 마음을 가졌다. 나는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자애의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바라문이여, 자애의 마음을 가진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39.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해태와 혼침(혼침과 졸음)에 사로잡힌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참으로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힌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힌 채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해태와 혼침에서 벗어났다. 나는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해태와 혼침에서 벗어난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바라문이여, 해태와 혼침에서 벗어난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40.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들뜨고 산만한 마음을 가진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참으로 들뜨고 산만한 마음을 가진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들뜨고 산만한 마음을 가지고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가라앉은 마음을 가졌다. 나는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가라앉은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바라문이여, 가라앉은 마음을 가진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들뜸(uddhara)'은 하나의 대상에 대해 마음이 요동치는 것이다. 마치 깃대에 달려있는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처럼. '산만한 마음(마음이 고요하지 않음, avupasanta-citta)'은 마음이 가라앉지 않음을 말한다. 이것은 후회도 포함된다."(MA.i.116)
41.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불확실함과 의심을 가진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참으로 불확실함과 의심의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불확실함과 의심을 가지고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의심을 건넜다. 나는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의심을 건넌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바라문이여, 의심을 건넌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불확실함(의혹,kankha)'과 '의심(vicikiccha)'은 같은 것으로 다섯 번째 장애이다.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대상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 불확실함이고, '이것은 바로 그것이다.'라고 결정할 능력이 없는 상태를 의심이라 한다."(MA.i.116)
42.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얕보는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참으로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얕보는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얕보면서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나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얕보지 않는다. 나는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얕보지 않는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바라문이여, 나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얕보지 않는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43.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무서워하고 두려움에 떨어진(무서움과 두려움에 질려 있는)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참으로 무서워하고 두려움에 떨어진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무서워하고 두려움에 떨어진 채 깊은 숲 속의 외딴 처소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두려움에서 벗어났다. 나는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두려움에서 벗어난 성스러운 자들 가운에 하나다.'라고.
바라문이여, 두려움에서 벗어난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44.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갈망하는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참으로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갈망하는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갈망하면서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바라는 바가 적다. 나는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원하는 바가 적은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바라문이여, 원하는 바가 적은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45.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참으로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열심히 노력한다. 나는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열심히 노력하는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바라문이여, 열심히 노력하는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46.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않고 알아차림을 행하지 않는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참으로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않고 알아차림을 행하지 않는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않고 알아차림을 행하지 않으면서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마음챙김을 확립했다. 나는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마음챙김을 확립한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바라문이여, 마음챙김을 확립한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47.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삼매를 닦지 않고 산만한 마음을 가진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참으로 삼매를 닦지 않고 산만한 마음을 가진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삼매를 닦지 않고 산만한 마음을 가지고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삼매를 증득했다. 나는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삼매를 증득한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바라문이여, 삼매를 증득한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48.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지혜가 없고 무지한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누구든지 참으로 지혜가 없고 무지한 결점을 원인으로 유익하지 못한 두려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지혜가 없고 무지하게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지혜를 갖췄다. 나는 깊은 숲 속 의 외딴 거처에 머무는 지혜를 갖춘 성스러운 자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바라문이여, 지혜를 갖춘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더욱 숲 속에 머묾을 위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49.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특별하다고 알려진 보름의 14일과, 15일과 8일 날의 밤에 사원의 탑묘나, 숲 속의 탑묘나, 나무 아래의 탑묘나, 무섭고 소름끼치는 거처에 머물면서 두려움과 공포를 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그런 나는, 바라문이여, 나중에 특별하다고 알려진 보름의 14일과, 15일과 8일날 밤에 사원의 탑묘나, 숲속의 탑묘나, 나무 아래의 탑묘나, 무섭고 소름끼치는 거처에 머물렀습니다. 바라문이여, 거기에 내가 머물 때, 네 발 짐승이 접근하고, 공작새가 나뭇조각을 떨어뜨리고, 바람이 쓰레기와 낙옆더미를 흩날렸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두려움을 바라면서 머무는가? 어떤 상태로 있든 그대로의 나에게 그 두려움과 공포는 오고, 그런 상태로 있는 그대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칠 것이다.'라고.
바라문이여, 그런 내가 걷고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왔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걸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쳤습니다. 서지도 않고,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았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런 내가 서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왔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서 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쳤습니다. 걷거도 않고, 안지도 않고, 눕지도 않았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런 내가 앉아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왔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앉아 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쳤습니다. 눕지도 않고, 앉지도 않고, 걷지도 않았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런 내가 누워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왔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누워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쳤습니다. 앉지도 않고, 서지도 않고, 걷지도 않았습니다.
50. 바라문이여, 밤을 낮이라고 인식하고, 낮을 밤이라고 인식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이런 그 사문·바라문들의 혼란스러운 머묾에 대해 나는 말합니다. 그리고 바라문이여, 나는 밤을 밤으로 인식하고, 낮을 낮으로 인식합니다. 바라문이여,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연민하기 위하여,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혼란스럽지 않은 법을 갖춘 존재가 세상에 나타났다.'라고 바르게 말하는 자가 말한다면, 그것은 나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하는 것일까? ①출정에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②새소리(sankuna-ruta)때문이다.
①출정에 능숙하지 못함이란, 여기 어떤 자는 흰 색의 까시나를 얻어서 낮에 준비단계의 수행을 하여 낮에 증득(본삼매)에 들었다가 낮에 출정할 것이라고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그는 시간을 한정하는 데는 능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그는 낮을 넘어서 밤에 출정한다. 그는 흰 색 까시나가 가득하여 밤에 출정하였는데도 낮이라고 잘못 인식하는 것이다.
반대로 청색 까시나를 가져 밤에 본삼매에 들었다가 시간에 능숙하지 못해서 낮에 출정한 사람은 그 청색 까시나가 가득하여 낮에 출정하였는데도 밤이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출정에 능숙함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②새소리 때문이라는 것은 거처의 안(anto-sensana)에 앉아있는데 낮에 우는 새들(diva ravanaka-sakuna)인 까마귀 등에 달빛 등을 보고 낮이라고 생각하고 밤에 우는 것을 듣고 낮이라고 잘못 생각하거나, 밤에 우는 올빼미 등이 대낮에 어떤 이유 때문에 우는 것을 듣고 낮이라고 잘못 인식하는 것 등을 말한다.(MA.i.121-122)
51. 바라문이여, 나는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놓지치 않았고, 몸은 진정되어 흔들리지 않았고, 마음은 집중되어 삼매에 들었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기쁨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52. 나는 이렇게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했습니다. 나는 여러 전생을 기억했습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천 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계),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했습니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고통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나는 전생의 다양한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했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밤의 초야에 나에게 얻어진 첫 번째의 앎(명.明)입니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사라지고 명지가 생긴 것입니다.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긴 것입니다.
53. 나는 이렇게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삶에 대한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했습니다. 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보았습니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보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렸습니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보를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 것이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그러나 다른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해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올바른 견해를 지녀 올바른 견해의 견해의 업보를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의 세계에 태어난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보았습니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보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렸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이경에 도달한 두 번째의 앎입니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사라지고 명지가 생긴 것입니다.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긴 것입니다.
54. 나는 이렇게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음을 번뇌의 소멸에 대한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나에게 감각적 쾌락의 번뇌로부터도 마음이 해탈하였고, 존재에 의한 번뇌로부터도 마음이 해탈하였고, 무명의 번뇌로부터도 마음이 해탈하였습니다. 해탈했을 때 '나는해탈했다.’라는 앎이 있었습니다.‘태어남은 부수어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알았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삼경에 도달한 세 번째의 앎입니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사라지고 명지가 생긴 것입니다.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긴 것입니다.
55. 바라문이여,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오늘도 탐욕을 벗어나지 못하고, 성냄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깊은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문다.’라고. 그러나 바라문이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바라문이여, 나 자신의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머묾을 보고, 후대의 사람들을 연민하는 두 가지 이유를 보기 때문에 나는 숲 속의 외딴 거처에 머뭅니다."
56. "고따마 존자시여, 불가사의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한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 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를 밝혀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비구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
두려움과 공포 경이 끝났다.
'빠알리어 경전 > 맛지마 니까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MN 6. 원한다면 경(âkankheyyasuttam) (0) | 2016.03.27 |
---|---|
MN 5. 때(흠) 없음 경(Anaṅganasuttam) (0) | 2016.03.27 |
MN 3. 법의 상속자 경(Dhammadāyādasutta) (0) | 2016.03.26 |
MN 2. 모든 번뇌의 경(Sabbāsavasutta) (0) | 2016.03.26 |
제1장 근본 법문 품 - MN 1. 근본 법문 경(mūlapariyāyasuttaṃ) (0) | 2016.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