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023. 개미집 경(Vammikasuttaṃ)

실론섬 2016. 4. 2. 13:10

개미집 경 

M23 Majjhima Nikàya I 3. 3. Vammikasuttaü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꾸마라깟사빠 존자는 장님들의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밤이 아주 깊은 시간에 어떤 천신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장님들의 숲을 온통 환하게 밝히면서 꾸마라깟사빠 존자에게 다가왔다. 와서는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꾸마라깟사빠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꾸마라깟사빠(Kumārakassapa)는 그의 이름이다.어릴 적에 출가했기 때문에 세존께서 ‘깟사빠를 불러오라, 이 과일이나 혹은 먹거리를 깟사빠에게 줘라.’하고 말씀하실 때, 다른 비구들이 ‘어떤 깟사빠를 말씀하십니까?’ 라고 질문드리면 세존께서는 ‘어린(kumāra) 깟사빠를 말한다.’라고 이름을 붙인 때부터 시작하여 커서도 꾸마라깟사빠라고 불렸다. 또한 코살라의 왕인 빠세나디의 양자였기 때문에 그를 꾸마라깟사빠라고 인식했다.(MA.ⅱ.121) 
주석서에 의하면 꾸마라깟사빠 존자의 어머니는 라자가하 출신이라고 한다. 그녀는 출가하고자 하였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 결혼 한 뒤에 남편의 동의를 받아 비구니가 되어 사왓티에 머물렀다. 출가하고 보니 그녀는 임신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승가에서 큰 문제가 되었다. 세존께서는 우빨리 존자에게 사태 해결을 위임하셨고 상세한 조사 끝에 그녀는 결백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우빨리 존자는 세존으로부터 큰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자 빠세나디 왕이 깟사빠라는 이름을 지어 아이를 키웠으며 일곱 살에 출가하였다고 한다.(DA.ⅲ.808)
그는 어린 애(kumāra.꾸마라)였을 때 승가에 들어왔고 왕이 키웠기 때문에 꾸마라(왕자) 깟사빠라는 이름을 가졌다. 세존께서는 그를 다양한 설법을 하는 자들 가운데 최상이라고 칭송하셨다고 한다.(DA.ⅲ.808)
주석서는 본경을 통해서 존자가 아라한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MA.ⅱ.134)

"법구경 주석서"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는 그에 대한 애정 때문에 12년간을 울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녀는 길에서 존자를 만나자 그를 향해서 달려가서 그의 앞에서 넘어졌는데 자식에 대한 큰 애정 때문에 가슴에서 젖이 나와 가사를 적셨다고 한다. 깟사빠 존자는 그녀의 이러한 한결같은 자식에 대한 애정이 도를 증득할 인연이 됨을 알고 그녀를 심하게 나무랐다고 한다. 아들로부터 큭 경책을 받은 그녀는 바로 그날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DhpA.iii.147)
*'장님들의 숲'은 Andha-vana 를 옮긴 것인데 사왓티의 남쪽에 있는 숲의 이름이다. 비구와 비구니들이 거주하였다고 하며 특히 홀로 머묾에 몰두하는 자들이 거주하기에 좋은 숲으로 알려졌다. 깟사빠 세존 시대에 깟사빠 세존의 탑을 조성하기 위해서 야소다라(Yasodhara)라는 법을 암송하는 성스러운 사람이 제물을 가지고 이 숲으로 갔다고 한다. 거기에는 500명의 도적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야소다라의 눈을 손상시켜버렸다. 그 업의 과보로 그들도 장님으로 태어나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곳을 장님들의 숲이라 불렸다고 한다.(SA.i.189)

 

"비구여, 비구여, 이 개미집은 밤에는 연기가 나고, 낮에는 불이 붙습니다. 바라문은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칼을 가지고 파고 있던 현명한 자가 빗장을 보고서, '빗장이 있습니다. 존자시여.'라고 말하자 바라문은 '현명한 자여, 빗장을 제거하시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칼을 가지고 파고 있던 현명한 자가 부풀어 오른 개구리(뚜꺼비)를 보고서, '부풀어 오른 개구리가 있습니다, 존자시여.'라고 말하자 바라문은 '부풀어 오른 개구리를 제거하시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칼을 가지고 파고 있던 현명한 자가 교차로를 보고서, '교차로가 있습니다, 존자시여.'라고 말하자 바라문은 '교차로를 제거하시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칼을 가지고 파고 있던 현명한 자가 그물망을 보고서, '그물망이 있습니다, 존자시여.'라고 말하자 바라문은 '그물망을 제거하시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칼을 가지고 파고 있던 현명한 자가 거북이를 보고서, 거북이가 있습니다, 존자시여.'라고 말하자 바라문은 '거북이를 제거하시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칼을 가지고 파고 있던 현명한 자가 도살장을 보고서, '도살장이 있습니다, 존자시여.'라고 말하자 바라문은 '도살장을 제거하시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칼을 가지고 파고 있던 현명한 자가 고깃덩이를 보고서, 고깃덩이가 있습니다, 존자시요.'라고 말하자 바라문은 '고깃덩이를 제거하시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칼을 가지고 파고 있던 현명한 자가 용을 보고서, '용이 있습니다, 존자시여.'라고 말하자 바라문은 '용은 그대로 두시오. 용을 공격하지 마시오. 용에게 예배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현명한 자(paṇḍita)’란 열여덟 가지 요소[十八界]에 대해 능숙하고(dhātu-kusalatā), 열두 가지 감각장소[十二處]에 대해 능숙하고(āyatana-kusalatā), 연기의 구성요소에 대해 능숙하고 (paṭiccasamuppāda-kusalatā),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에 대해 능숙한 것(ṭhana-aṭṭhāna-kusalatā)인
이 네 가지를 통해 현명한 자라고 한다.”(MA.ⅳ.82)
이 정의는 본서 제4권 「여러 종류의 요소 경」(M115) 에 세존의 말씀으로 나타난다.
복주서는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열여덟 가지 요소[十八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아는 것이 요소에 능숙한 것이고, 감각장소에 대해 능숙한 것도 이런 방법과 같다.
무명 등 열두 가지 연기의 구성요소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연기의 구성요소에 대해 능숙한 것이고,
이것은 이 결과의 원인이고 이것은 원인이 아니라고, 이렇게 원인을 원인이라고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 아닌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아는 것을 원인과 원인이 아닌 것에 대해 능숙한 것이라고 한다.”(MAT.ⅱ.270) 
“‘장벽(빗장)을 제거하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시오.’라는 것은 이 장벽(laṅgi)이 ‘밤에 연기가 나고,  낮에 불타는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리고 더 깊이 파라는 말이다.
이것은 모든 구절에도 이와 같이 적용된다.”(MA.ⅱ.278)

 

비구여, 그대는 이 문제들을 세존께 가서 말씀드리십시오. 세존께서 그대에게 설명하는 대로 그것을 잘 간직하십시오. 비구여, 나는 신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이 사는 인간의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의 무리를 위해, 여래나 여래의 제자 또는 여기와 다른 곳에서 들은 뒤에, 이 문제들을 위한 확정적 설명으로 마음을 만족하게 할 사람을 나는 보지 못합니다."라고 그 천신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한 뒤에 거기서 사라졌다.

 

2. 꾸마라깟사빠 존자는 그 밤이 지나자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아서 꾸마라깟사빠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밤에 어떤 천신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장님들의 숲을 온통 환하게 밝히면서 저에게 다가와 한 곁에 섰습니다.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구여, 비구여, 이 개미집은 밤에는 연기가 나고, 낮에는 불이 붙습니다. 바라문은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칼을 가지고 파고 있던 현명한 자가 ··· 여래나 여래의 제자 또는 여기와 다른 곳에서 들은 뒤에, 이 문제들을 위한 확정적 설명으로 마음을 만족하게 할 사람을 나는 보지 못합니다."라고 그 천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뒤에 거기서 사라졌습니다.

세존이시여, 개미집은 무엇입니까? 밤에  연기가 난다는 것은 무엇이고, 낮에 불이 붙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라문은 무엇이고, 현명한 자는 무엇입니까? 칼은 무엇이고, 파는 것은 무엇입니까? 빗장은 무엇이고, 부풀어 오른 개구리는 무엇이고, 교차로는 무엇이고, 그물망은 무엇이고, 거북이는 무엇이고, 도살장은 무엇이고, 고깃덩이는 무엇입니까? 용은 무엇이니까?"라고.

3. "비구여, '개미집'이라는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이 몸을 두고 한 말이다. 그것은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유지되었고 무상하고 파괴되고 해체되고 부서지는 것이다.

비구여, 낮에 행위 한 것들에 대해 밤에 계속해서 사유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는 것이 밤에 연기가 나는 것이다. 비구여, 밤에 사유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한 뒤에 낮에 몸과 말과 마음으로 실행하는 것이 낮에 불이 붙는 것이다.

비구여, ‘바라문’이라는 것은 여래-아라한-정등각을 두고 한 말이다. 비구여, ‘현명한 자’라는 것은 유학(有學)인 비구를 두고 한 말이다.
비구여, ‘칼’이라는 것은 성스러운 지혜를 두고 한 말이다. 비구여, ‘파는 것’이라는 것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비구여, ‘빗장’이라는 것은 무명을 두고 한 말이다. 장벽을 제거하라는 것은 무명을 버리라는 것이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비구여, ‘부풀어 오른 개구리’라는 것은 분노와 절망을 두고 한 말이다. 부풀어 오른 개구리를 제거하라는 것은 분노와 절망을 버리라는 것이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비구여, ‘교차로'라는 것은 의심을 두고 한 말이다. 교차로를 제거하라는 것은 의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비구여, '그물망'이라는 것은 다섯 가지 장애를 두고 한 말이다. 감각적 쾌락의 장애, 성냄의 장애, 해태와 혼침의 장애, 들뜸과 후회의 장애, 의심의 장애이다. 그물망을 제거하하라는 것은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라는 것이다.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십시오.'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비구여, '거북이'이라는 것은 다섯가지 집착에 의한 온[五取蘊. 오취온]을 두고 한 말이다. 즉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色取蘊], 감수(느낌)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受取蘊], 지각작용(인식)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想取蘊], 형성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行取蘊], 의식(식별)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識取蘊]이다. 거북이를 제거하라는 것은 다섯가지 집착에 의한 온을 버리라는 것이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비구여, '도살장'이란 것은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즉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 ··· 혀로 인식되는 맛들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다. 도살장을 제거하라는 것은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버리라는 것이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 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비구여, '고기덩이'라는 것은 향락과 탐욕을 두고 한 말이다. 고기덩이를 제거하라는 것은 향락과 탐욕을 버리라는 것이다. '현명한 자여, 칼을 가지고 파시오.'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비구여, '용'이라는 것은 번뇌를 다한 비구를 두고 한 말이다. '용은 그대로 두시오. 용을 공격하지 마시오. 용에게 예배하시오.'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왜 세존께서는 무명(avijjā)을 ‘빗장(laṅgi)’이라고 하셨는가? 도시의 성문을 닫고 빗장을 채우면 사람들의 출입이 중단된다. 그리하여 도시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안에 머물고, 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밖에 머물게 되듯이, 지혜의 입(ñāṇa-mukha)에 무명의 빗장을 채우면 열반을 성취케 하는 지혜의 출현이 끊어져 버린다. 그러므로 무명을 빗장이라 했다.”(MA.ⅱ.131)

*여기서 ‘교차로(두 갈래의 길)’은 dvidhā-path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마치 재물과 재산을 가지고 황무지를 가던 사람이 교차로에 이르러 이 길을 가야할지 저 길을 가야할지 결정을 짓지 못하고 머물다가 도둑들에게 붙잡혀 파멸에 이르듯이, 근본명상주제를 들고 앉은 비구가 세존 등에 대해 ‘의심(vicikicchā)’이 일어나면 명상주제를 증장시킬 수가 없다. 그러면 오염원의 마라(kilesa-māra) 등 모든 마라들이 그를 붙잡아 파멸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의심은 교차로(dvidhā-patha)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하셨다.”(MA.ⅱ.132~133)

*'그물망(caṅkavāra)’에다 물을 부으면 한 항아리든, 두 항아리든, 백 항아리든 모두 흐르고 한 움큼의 물도 남지 않는다. 그와 같이 장애(nīvaraṇa)를 가진 사람사이에서는 유익한 법[善法, kusala-dhamma]이 머물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그물망은 ‘다섯 가지 장애들[五蓋, pañca nīvaraṇani]’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하셨다.”(MA.ⅱ.133)

*‘거북이(kumma)’는 네 발과 머리의 다섯 가지 부분을 가졌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가 모든 형성된 법들[有爲法, saṅkhātā dhammā]을 다 포함한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거북이는 ‘집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 pañc-upādāna-kkhandhā]’를 두고 한말이라고 하셨다.”(MA.ⅱ.133)

* '도살장'은 asi-sūnā를 옮긴 것인데,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에서 “asi-sūnā는 고기를 자르는(maṃsa-cchdaka) 칼(asi)과 자르는 받침대(adhikuṭṭana)를 말한다.”(MA.ⅱ.128)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sūnā 혹은 sūnā-ghara는 도살장을 뜻한다.(PED)
계속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마치 도마(sūnā) 위에 고기를 놓고 칼로 자르듯이, 이와 같이 감각적 욕망을 따르는 중생들은 대상으로서의 감각적 욕망(vatthu-kāma)에 놓여
오염원으로서의 감각적 욕망(kilesa-kāma)에 의해 절단된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칼과 도마는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pañca kāma-guṇa)에 묶인 것'’을 두고 한말이라고 하셨다.”(MA.ⅱ.133)

“여기 이 ‘고깃덩이(maṃsa-pesi)’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끄샤뜨리야 등 인간들도 그것을 좋아하고, 까마귀 등 동물들도 그것을 좋아한다.
이 중생들은 무명에 도취되어 향락과 탐욕에 다가가서 윤회를 좋아한다. 혹은 마치 고깃덩이를 두는 곳마다 거기에 잘 들러붙어 있듯이, 이러한 중생들도 ‘향락과 탐욕(nandi-rāga)’에 묶여 윤회에 들러붙어 있다. 괴로움을 경험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향락과 탐욕은 고깃덩이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고깃덩이는 향락과 탐욕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하셨다.”(MA.ⅱ.133~134)

 

4.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꾸마라깟사바 존자는 기뻐하며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찬탄하였다.

 

개미집 경(M23)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