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24. 역마차 교대 경(rathavinītasuttaṃ)

실론섬 2016. 4. 2. 14:12

MN 24. 역마차 교대 경(rathavinītasuttaṃ)

 

25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기르는 곳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자띠부마에 머무는 많은 비구들이 자띠부마에서 안거를 마치고 세존에게 다가왔다. 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비구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중국에서 왕사성(王舍城)으로 옮긴 라자가하(Rajagaha)는 '왕(raja)의 집(gaha)라는 뜻이다. 인도 중원의 16개국 중에서 강성했던 마가다(Magadha)국의 수도였다. 빔비사라(Bimbisara)왕과 그의 아들 아자따삿뚜(Ajatasattu)가 세존 제세시에 이 나라의 왕이었다.     
*웰루와나(Veluvana)는 대나무 숲이라는 뜻이다. 

*자띠부마(자띠부마카. jati-bhumika)는 주석서에는 '고향에 머물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고향이란 세존께서 태어나신 까삘라왓투를 말한다.(Ibid)

"비구들이여, 자띠부마에 있는, 자띠부마에 머무는 비구들 가운데 누가 동료 수행자들에게서 '자신도 원하는 것이 적으면서 비구들에게도 원하는 것이 적으라고 말해주고(자신이 욕심이 없고 비구들에게도 욕심 없음에 관해 말해주고), 자신도 만족하면서 비구들에게도 만족하라고 말해주고, 자신도 홀로 머물면서 비구들에게도 홀로 머물라고 말해주고, 자신도 교제하지 않으면서 비구들에게도 교제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자신도 열심히 노력하면서 비구들에게도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해주고, 자신도 계(戒)를 갖추면서 비구들에게도 계(戒)를 갖추라고 말해주고, 자신도 삼매를 갖추면서 비구들에게도 삼매를 갖추라고 말해주고, 자신도 지혜를 갖추면서 비구들에게도 지혜를 갖추라고 말해주고, 자신도 해탈(解脫)을 증득하면서 비구들에게도 해탈을 증득 하라고 말해주고, 자신도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증득하면서 비구들에게도 해탈지견을 증득하라고 말해주는, 동료 수행자들을 위해 이끌어주고 일깨워주고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자이다.’라고 존경받는가?”라고.

"세존이시여, 뿐나 만따니뿟따라는 존자가, 자띠부마에 있는, 자띠부마에 머무는 비구들 가운데 동료 비구들에게서 '자신도 원하는 것이 적으면서 비구들에게도 원하는 것이 적으라고 말해주고, 자신도 만족하면서 ··· 동료 수행자들을 위해 이끌어주고 일깨워주고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자이다.’라고 존경받습니다."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āyasamā Puṇṇa Mantāṇiputta) 혹은 만따니의 아들 뿐나 존자는 우리에게 설법제일 부루나(富樓那) 존자로 알려진 분이다. 그는 까삘라왓투에서 가까운 도나왓투(Donavatthu)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만따니는 안냐꼰단냐 존자(āyasmā Aññakoṇḍañña, 『상윳따 니까야』 제1권 「꼰단냐 경」 (S8:9) §2의 주해 참조)의 여동생이었다. 꼰단냐 존자가 아라한이 된 후 그를 출가시켰다. 그는 까삘라왓투에서 머물면서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는 그의 동향 사람 500명을 출가하게 하여 열 가지 설법의 기본(dasa kathāvatthūni)을 가르쳤다 하며 그들 은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AA.i.199~204)  
그는 세존을 뵙기 위해서 사왓티로 왔으며 사리뿟따 존자가 그의 명성을 듣고 그를 시험한 것이 바로 이 「역마차 교대 경」 (M24)이다. 이 경에서 그는 세존의 가르침을 일곱 가지 청정[七淸淨]으로 요약 설명하여 사리뿟따 존자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으며 이것은 『청정도론』 등에서 상좌부 수행의 핵심으로 정착이 되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세존께서는 『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A1:14:1-9)에서 그를 “법을 설하는 자(dhamma-kathi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시는 것이다.  

*"'만족하고(santuttha)'라는 것은 얻은 필수품이 좋건 좋지 않건 어떤 것에도 만족한다는 말이다. 이 만족은 열 두가지가 있다. 먼저 옷에 대해서는 얻은 그대로 만족하고, 힘에 부합하는 것에 만족하고, 적당함에 따라 만족하는 세 가지 만족이 있다. 이와 같이 음식과 거처와 의약품의 나머지 필수품에도 적용되므로 만족에 열두 가지가 있게 된다."(MA.ii.129)
*"'홀로 머물고(한거를 하고, 여의고, pavivitta)'라는 것은 세 종류의 홀로 머묾을 말한다. 세 종류의 홀로 머묾이란 몸의 홀로 머묾, 마음의 홀로 머묾, 재생의 근거의 홀로 머묾이다. 이 중에서 "혼자 가고, 혼자 서고, 혼자 눕고, 혼자 자고, 혼자 마을로 탁발을 가고, 혼자 나오고, 혼자 경행하고, 혼자 움직이고, 혼자 머문다."라는 이것을 몸의 홀로 머묾이라 한다. 여덟 가지 증득(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을 마음의 홀로 머묾이라 한다. 열반을 재생의 근거의 홀로 머묾이라 한다."(MA.ii.143)
*"'교제를 하지 않는다(asamsattha)'는 것은 다섯 종류의 교제를 삼간다는 말이다. 그것은 듣는 교제(savana-samsagga), 보는 교제(dassana-samsagga), 잡담하는 교제(samullapana-samsagga), 함께 먹는 교제(sambhoga-samsagga), 몸에 닿는 교제(kaya-samsagga)이다.
이 중에서 듣는 교제란 '여기 비구가 어떤 마을이나 성읍에 예쁘고 아름답고 지극히 고운 피부를 가진 여자나 어린 소녀가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을 듣고는 그만 마음이 혼란하고 청정범행을 유지할 수가 없고 배움에 열의가 없어져서 재가로 돌아간다.'라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아름다운 형색에 관해 듣거나 혹은 자기 스스로 웃고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는 귀의 의식에서 일어난 탐욕을 말한다.    
어떤 비구는 그것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예쁘고 아름답고 지극히 고운 피부를 가진 여자나 어린 소녀를 본다. 보고는 그만 마음이 혼란하고 청정범행을 유지할 수가 없고 배움에 열의가 없어져서 재가로 돌아간다. 이처럼 이런 아름다운 형색을 보고는 눈의 의식에 의한 인식 과정에서 일어나는 탐욕을 일컬어 보는 교제라 한다.    
서로 잡담을 하다가 일어난 탐욕은 잡담하는 교제라 한다. 비구가 비구니의 것을 가지거나 혹은 비구니가 비구의 것을 가지고 함께 먹으면서 일어난 탐욕을 함께 먹는 교제라 한다. 손 잡는 등의 행동으로 일어난 탐욕을 몸의 교제라 한다."(MA>ii.143-145)  
*"'계를 갖춤(구족함, sila-sampanna)'에서 '계(sila)'는 네 가지 청정한 계를 말한다. '삼매(samadhi)'는 위빳사나의 기초가 되는 여덟 가지 증득을, '지혜(panna)'는 세간적인 지혜와 출세간의 지혜를, '해탈(vimutti)'은 성스러운 과(果)를, '해탈지견(vimutti-nana-dassana)'은 열아홉 가지 반조의 지혜(paccavekkhana-nana)를 말한다."(MA.ii.147)

네 가지 청정한 계란 계목의 단속에 관한 계, 감각기능의 단속에 관한 계, 생계의 청정에 관한 계, 필수품에 관한 계이다. 
열아홉 가지 반조의 지혜란 세 부류의 성자들(예류자, 일래자, 불환자)은 각각 다섯 가지를 반조한다. 즉 1도(道)를 반조하고 2과(果)를 반조하고 3버린 오염원들을 반조하고 4남아있는 오염원들을 반조하고 5열반을 반조한다. 마지막 아라한은 남아있는 오염원들이 없기 때문에 네 가지만 반조하여, 모두 열아홉 가지 반조의 지혜가 있다.   
*"'이끌어 주는(ovadaka)'라는 것은 지금 언급된 열 가지 대화의 주제를 통해 이끌어 주는 자라는 말이다.(MA.ii.147)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 가까이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는 이득이 있다.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에게 이득이 잘 얻어졌다.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이 조목 조목 스승의 앞에서 칭찬을 말하는 그에 대해 스승께서는 크게 기뻐하신다. 우리도 언제 시간이 되어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우정의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이득이 잘 얻어졌다(큰 이득이 있다, suladdha-labha)'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 '이득(labha)'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과 출가를 한 것 등의 공덕을 얻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뿐나 존자가 스승의 앞에서 이러한 칭찬을 들은 것을 뜻한다.  ''' 이처럼 현명한 자들에 의한 칭찬이 하나의 이득이고, 동료수행자들에 의한 것도 하나의 이득이고, 스승의 앞에서 한 것도 하나의 이득이고, '하나씩 조목조목'한 것도 하나의 이득이고, '스승께서 기뻐하신 것'도 하나의 이득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다섯 가지 이득을 두고 '이득이 잘 얻어졌다.'라고 했다.(MA.ii.148)

 

254. 그 후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 원하는 만큼 머무시고 사왓티를 향하여 유행을 떠나셨다. 차례로 유행을 하시어 사왓티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그곳 사왓타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다.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는 세존께서 사왓티에 도착하셔서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55. 그러자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는 거처를 정돈하고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 사왓티로 유행을 떠났다. 차례로 유행하여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신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뿐나 만따니뿟따를 세존께서는 법의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세존의 법의 말씀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격려되고 분발하고 기뻐한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그곳을 떠나서 낮 동안을 홀로 머묾을 위해 장님들의 숲으로 갔다.

 

256. 그때 어떤 비구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존자께서 뿐나 만따니뿟따라는 비구를 자주 칭찬하셨는데, 세존의 법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고 격려되고 분발하고 기뻐한 그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오른쪽으로 돌아 그곳을 떠나서 낮 동안의 홀로 머묾을 위해 장님들의 숲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는 좌구를 챙겨서 출발하여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의 머리를 바라보면서 그를 뒤따라갔다.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는 장님들의 숲으로 들어가서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서 어떤 나무 아래 앉았다. 사리뿟따 존자도 장님들의 숲으로 들어가서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서 어떤 나무 아래 앉았다.
사리뿟따 존자는 해거름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257. "도반이여, 그대는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세존에게서 범행의 삶을 삽니까)?"
"그렇습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계(계행)의 청정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도반이여, 마음의 청정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견해의 청정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도반이여, 의심을 넘어선 청정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길과 길 아님에 대한 지(知)와 견(見)의 청정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도반이여, 닦음에 대한 지(知)와 견(見)의 청정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지(知)와 견(見)의 청정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본경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 일곱 가지는 주석서 문헌들에서 '일곱 가지 청정[七淸淨, satta visuddhi]'으로 정착이 되었다. 그리고 이 일곱 가지 청정은『디가 니까야』제3권 「십상경」(D34)에도 나타나는데, 「십상경」 에서는 이 일곱 가지에다 두 가지 청정, 즉 지혜에 의한 청정(paññā-visuddhi)과 해탈에 의한 청정(vimutti-visuddhi)을 더하여 '아홉 가지 청정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구성요소(nava pārisuddhi-padhāniy-aṅgāni)'로 나타나고 있다. 간단하게 이 일곱 가지 청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계행의 청정(sīla-visuddhi)이란 계목(戒目)의 단속에 관한 계, 감각기능[根]의 단속에 관한 계, 생계의 청정에 관한 계, 필수품에 관한 계의 네 가지 청정한 계를 훼손하지 않고 잘 지니는 것이다.
②마음의 청정(citta-visuddhi)이란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하여 근접삼매와 본삼매를 증득하는 것이다.
③견의 청정(diṭṭhi-visuddhi)이란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온(오취온)의 고유성질을 파악하는 지혜이다.
④의심을 넘어선 청정(kaṅkhā-vitaraṅa-visuddhi)은 정신 · 물질에 대한 조건을 파악하여 삼세에 대한 의심을 극복하여 확립된 지혜이다.
⑤길과 길 아님에 대한 지와 견의 청정(maggāmagga-ñāṇadassana-visuddhi)은 위빳사나를 닦을 때 일어난 광명 등의 경계는 길이 아니라고, 무상·고· 무아로 통찰하는 것은 길이라고 정확하게 알아 확립된 지혜이다.
⑥닦음에 대한 지와 견의 청정(paṭipadā-ñāṇadassana-visuddhi)은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는 지혜(udayabbaya-anupassanā-ñāṇa)에서부터 진리에 수순하는 지혜(sacca-anulomika-ñāṇa)까지 이 아홉 가지 지혜이다.
⑦지.견의 청정(ñāṇadassana-visuddhi)은 네 가지 출세간도를 말한다.

 

"'도반이여, 계의 청정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라고 이렇게 질문 받고서 '아닙니다, 도반이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마음의 청정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라고 이렇게 질문 받고서 "아닙니다, 도반이여.'라고 말합니다. '도반이여, 견해의 청정을 목적으로 ··· 의심을 넘어선 청정을 목적으로  ··· 길과 길 아님에 대한 지와 견의 청정을 목적으로 ···  닦음에 대한 지와 견의 청정을 목적으로 ··· 지와 견의 청정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라고 이렇게 질문 받고서 '아닙니다, 도반이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무엇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무엇을 목적으로 세존에게서 범행(梵行)의 삶을 삽니까)?"
"도반이여,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다."

 

"도반이여, 계의 청정이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입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도반이여, 마음의 청정이 집착없는 완전한 열반입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견해의 청정이 집착없는 완전한 열반입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도반이여, 의심을 넘어선 청정이 집착없는 완전한 열반입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길과 길 아님에 대한 지와 견의 청정이 집착없는 완전한 열반입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도반이여, 닦음에 대한 지와 견의 청정이 집착없는 완전한 열반입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여." 

"도반이여, 지와 견의 청정이 집착없는 완전한 열반입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도반이여, 이 법들의 밖에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계의 청정이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입니까?'라고 이렇게 질문받고서 '아닙니다, 도반이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마음의 청정이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입니까?'라고 이렇게 질문받고서 '아닙니다, 도반이여.'라고 말합니다. '도반이여, 견해의 청정이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입니까?' ··· 의심을 넘어선 청정이 ··· 길과 길 아님에 대한 지와 견의 청정이 ··· 닦음에 대한 지와 견의 청정이 ···  지와 견의 청정이 집착없는 완전한 열반입니까?"라고 물으면 '아닙니다, 도반이여.'라고 말합니다. 도반이여, 이 말의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258. “만약, 도반이여, 세존께서 계(戒)의 청정을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집착이 있는 상태에 대해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 선언될 수 있습니다. 만약, 도반이여, 세존께서 마음의 청정을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집착이 있는 상태에 대해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 선언될 수 있습니다. 만약, 도반이여, 세존께서 견해의 청정을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집착이 있는 상태에 대해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 선언될 수 있습니다. 만약, 도반이여, 세존께서 의심을 넘어선 청정을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집착이 있는 상태에 대해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 선언될 수 있습니다. 만약, 도반이여, 세존께서 길과 길 아님에 대한 지(知)와 견(見)의 청정을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집착이 있는 상태에 대해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 선언될 수 있습니다. 만약, 도반이여, 세존께서 닦음에 대한 지(知)와 견(見)의 청정을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집착이 있는 상태에 대해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 선언될 수 있습니다. 만약, 도반이여, 세존께서 지(知)와 견(見)의 청정을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집착이 있는 상태에 대해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 선언될 수 있습니다. 만약, 도반이여, 이 법들의 밖에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이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면, 범부도 완전한 열반을 성취할 것입니다. 참으로, 도반이여, 범부는 이런 법들이 없기 때문입니다(범부는 이 법들의 밖입니다). 참으로, 도반이여, 그러니 그대에게 비유를 말하겠습니다. 비유에 의해서도 어떤 현명한 사람들은 말의 의미를 압니다."

 

259. "예를 들면, 도반이여, 사왓티에 살고 있는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에게 사께따에 어떤 긴급한 용무가 생길 것입니다. 그는 사왓티와 사께따 사이에 일곱 대의 역마차를 준비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도반이여,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는 사왓티에서 출발하여 도시의 끝에 있는 문에서 첫 번째 역마차에 오를 것입니다. 첫 번째 역마차(훈련된 마차)로 두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할 것이고, 첫 번째 역마차에서 내려 두 번째 역마차에 오를 것입니다. 두 번째 역마차로 세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할 것이고, 두 번째 역마차에서 내려 세 번째 역마차에 오를 것입니다. 세 번째 역마차로 네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할 것이고, 세 번째 역마차에서 내려 네 번째 역마차에 오를 것입니다. 네 번째 역마차로 다섯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할 것이고, 네 번째 역마차에서 내려 다섯 번째 역마차에 오를 것입니다. 다섯 번째 역마차로 이제 여섯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할 것이고, 다섯 번째 역마차에서 내려 여섯 번째 역마차에 오를 것입니다. 여섯 번째 역마차로 일곱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할 것이고, 여섯 번째 역마차에서 내려 일곱 번째 역마차에 오를  것입니다. 일곱 번째 역마차로 사께따의 도시 끝에 있는 문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렇게 도시의 끝에 있는 문에 도착한 그에게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과 일가친척들이 '대왕이시여, 왕께서는 이 역마차로 사왓티에서 사께따의 도시의 끝에 있는 문에 도착하셨습니까?'라고 물을 것입니다. 도반이여,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가 어떻게 말하는 것이 바르게 말하는 것입니까?"

"도반이여,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가 바르게 말한다면 '여기, 사왓티에 머무는 나에게 사께따에 긴급한 용무가 생겼다. 나는 사왓티와 사께따 사이에 일곱 대의 역마차를 준비시켰다. 그리고 나는 사왓티에서 출발하여 도시의 끝에 있는 문에서 첫 번째 역마차에 올랐다. 첫 번째 역마차로 두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했고, 첫 번째 역마차에서 내려 두 번째 역마차에 올랐다. 두 번째 역마차로 세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했고, 두 번째 역마차에서 내려 세 번째 역마차에 올랐다. 세 번째 역마차로 네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했고, 세 번째 역마차에서 내려 네 번째 역마차에 올랐다. 네 번째 역마차로 다섯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했고, 네 번째 역마차에서 내려 다섯 번째 역마차에 올랐다. 다섯 번째 역마차로 여섯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했고, 다섯 번째 역마차에서 내려 여섯 번째 역마차에 올랐다. 여섯 번째 역마차로 일곱 번째 역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했고, 여섯 번째 역마차에서 내려 일곱 번째 역마차에 올랐다. 일곱 번째 역마차로 사께따의 도시 끝에 있는 문에 도착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참으로 도반이여,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가 바르게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처럼, 도반이여, 계의 청정은 마음의 청정까지의 목표에 미치고(청정을 위한 것입니다), 마음의 청정은 견해의 청정까지의 목표에 미치고, 견해의 청정은 의심을 넘어선 청정까지의 목표에 미치고, 의심을 넘어선 청정은 길과 길 아님에 대한 지와 견의 청정까지의 목표에 미치고, 길과 길 아님에 대한 지와 견의 청정은 닦음에 대한 지와 견의 청정까지의 목표에 미치고, 지와 견의 청정은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의 목적에 미칩니다. 도반이여,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을 목적으로 세존의 밑에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입니다."

 

260. 이렇게 말했을 때, 사리뿟따 존자가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동료 비구들이 존자를 누구라고 말고 있습니까?"라고.
"도반이여, 나의 이름은 뿐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료 비구들은 나를 만따니뿟따라고 알고 있습니다(부릅니다)."
이렇게 말하자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반이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한 잘 배운 제자인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께서 심오한 주제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조목조목 설명하셨습니다.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를 만나고, 공경할 기회를 얻는 것은 동료 비구들에게는 이득이고, 큰 이득이 잘 얻어진 것입니다.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를 만나고, 공경하기 위해 동료 비구들이 방석을 머리에 얹고 올려 모셔야 한다 해도 그것은 그들에게 이득이고 큰 이득입니다.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를 만나고, 공경할 기회를 얻는 것은 우리에게도 이득이고 큰 이득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도반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동료 비구들은 존자를 누구라고 알고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도반이여, 나의 이름은 우빠띳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료 비구들은 나를 사리뿟따라고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존자여, 스승과 같은 제자와 말하면서도 우리는 사리뿟따 존자라고 몰랐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리뿟따 존자라고 알았더라면 이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반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반이여, 참으로 경이롭
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한 잘 배운 제자인 사리뿟따 존자께서 심오하고 심오한 주제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조목조목 질문하셨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를 만나고, 공경할 기회를 얻는 것은 동료 비구들에게 이득이고 큰 이득이 잘 얻어진 것입니다. 사리뿟따 존자를 만나고, 공경하기 위해 방석을 머리에 얹고 올려 모셔야 한다 해도 그것은 그들에게 이득이고 큰 이득입니다. 사리뿟따 존자를 만나고, 공경할 기회를 얻는 것은 우리에게도 이득이고, 큰 이득입니다." 

 

참으로 이렇게 그들 두 큰 용들은 서로서로 잘 말한 것에 대해 감사하였다.

 


역마차 교대 경(M24)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