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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22. 뱀의 비유 경(alagaddūpamasuttaṃ)

실론섬 2016. 4. 1. 13:11

MN 22. 뱀의 비유 경(alagaddūpamasuttaṃ)


23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과거에 독수리 사냥꾼이였던 아릿타 비구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삿되고 편향된 견해가 생겼다. 많은 비구들이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이런 삿되고 편향된 견해가 생겼다고 들었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아릿타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릿타여, 그대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삿되고 편향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참으로,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압니다."

 

*율장에 의하면 아릿타(Arittha)비구는 승가로부터 분리하는 거죄갈마(ukkhepaniya-kamma)를 받아서 승단으로부터 축출된 전력이 있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율장 주석서는 그를 교법의 적이라고 언급하고 있다.(VinA.iv.874)

*아릿타 비구는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고 주장하는데, 사자후의 긴 경(MN12)에서 설법하는 여래의 네 가지 확신(사무소외.四無所畏) 가운데 세 번째 확신에 대한 정반대의 주장이다.

*이것은 율장(律藏) 속죄죄(贖罪罪-pācittiya)의 계목(戒目)으로도 나타난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그 삿되고 편향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하려는 바램 때문에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도반 아릿타여.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도도반 아릿타여, 다양한 설법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은 장애가 된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됩니다. 세존께서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뼈다귀의 비유로써 ··· 고깃덩이의 비유로써 ··· 건초 횃불의 비유로써 ··· 숫불 구덩이의 비유로써 ··· 꿈의 비유로써 ··· 빌린 물건의 비유로써 ··· 나무 열매의 비유로써 ··· 도살장의 비유로써 ··· 칼과 창의 비유로써 ··· 뱀 머리의 비유로써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그러나 이렇게 그 비구들이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였지만,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강한 집착 때문에 “참으로,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압니다.”라고 그 삿되고 편향된 견해를 고집하여 말했다.

 

235. 과거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그 삿되고 편향된 견해를 여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아릿타 비구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삿되고 편향된 견해가 생겼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삿되고 편향된 견해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아릿타 비구에게 다가갔습니다. 가서는 과거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도반 아릿타여, 그대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삿되고 편향된 견해가 생긴 것이 사실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세존이시여,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가 저희들에게 ‘참으로,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그 삿되고 편향된 견해를 여의게 하려는 바램 때문에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했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도반 아릿타여.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다양한 설법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은 장애가 된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됩니다. 세존께서는 감각적 쾌락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뼈다귀의 비유로써 ··· 고깃덩이의 비유로써 ··· 건초 횃불의 비유로써 ··· 숫불 구덩이의 비유로써 ··· 꿈의 비유로써 ··· 빌린 물건의 비유로써 ··· 나무 열매의 비유로써 ··· 도살장의 비유로써 ··· 칼과 창의 비유로써 ··· 뱀 머리의 비유로써 감각적 쾌락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렇게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였지만,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강한 집착 때문에 “참으로,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압니다.”라고 그 삿되고 편향된 견해를 고집하여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그 삿되고 편향된 견해를 여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희들은 세존께 그 의미를 말씀드립니다."라고.

 

236. 그러자 세존 세존께서는 어떤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나의 말로써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불러오라. '도반 아릿타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릅니다.'라고."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한 뒤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릿타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그 비구에게 대답을 하고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릿타여, 그대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삿되고 편향된 견해가 생긴 것이 사실인가?”라고.

 

“참으로,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압니다.”

"어리석은 자여, 참으로 그대는 누구에게서 내가 설한 이런 가르침을 알았는가? 어리석은 자여, 다양한 설법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은 장애가 된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된다. 감각적 쾌락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나는 말했다. 뼈다귀의 비유로써 ··· 고깃덩이의 비유로써 ··· 건초 횃불의 비유로써 ··· 숫불 구덩이의 비유로써 ··· 꿈의 비유로써 ··· 빌린 물건의 비유로써 ··· 나무 열매의 비유로써 ··· 도살장의 비유로써 ··· 칼과 창의 비유로써 ··· 뱀 머리의 비유로써 감각적 쾌락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여, 그대는 자신의 잘못된 이해로 우리를 비방하고 자신을 해치고(망치고) 많은 악덕을 쌓는다. 어리석은 자여, 그것 때문에 그대에게 오랜 세월 불이익과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가 이 법과 율에서 조금이라도 지혜를 얻겠다는 바램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어찌 그러하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과거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침묵하고,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당황스럽게 앉아 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침묵하고,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당황스럽게 앉아 있는 과거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보면서 과거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여, 그것에 대한 그대 자신의 이 삿되고 편향된 견해에 의해 그대는 드러나게 될 것이다(삿되고 편향된 견해를 이제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다른 비구들에게 물을 것이다."

 

237. 그리고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자신의 잘못된 이해로 우리를 비방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이 아릿타 비구처럼 그대들도 이렇게 내가 설한 법을 알고 있는가?"라고.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다양한 설법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은 장애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됩니다. 감각적 쾌락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뼈다귀의 비유로써 ··· 뱀 머리의 비유로써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이렇게 내가 설한 법을 알고 있으니,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나는 다양한 설법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은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된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나는 말했다. 뼈다귀의 비유로써 ··· 뱀 머리의 비유로써 감각적 쾌락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이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자신의 잘못된 이해로 우리를 비방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다. 어리석은 자여, 그것 때문에 그대에게 오랜 세월 불이익과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그가 감각적 쾌락의 대상들과 다른 곳에서(대상들이 없이),  감각적 쾌락의 인식과 다른 곳에서(인식 없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일으킨 생각과 다른 곳에서(생각 없이) 감각적 쾌락의 삶을 수용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어떤 비구라도 장애가 되는 법들을 수용해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이러한 견해를 거머쥐고 있는 자가 오염원으로서 이 감각적 쾌락과, 오염원으로서의 감각적 쾌락과 관련된 인식과 일으킨 생각 없이, 이 법들을 버리고, 이 법들이 없이, 대상으로서의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고 성행위에 빠진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말씀이다.(MA.ii.105)

 

238.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경(經), 응송(應頌), 수기(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의 법을 익힌다. 그들은 그 법을 익힌 뒤에 그 법들에 대해 의미를 지혜로써 살펴보지(조사하지) 않는다. 지혜로써 의미를 살펴보지 않을 때, 그 법들은 그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이익 때문에 법을 익힌다. 그들은 어떤 목적을 위한 법을 익히지만, 그 법의 목적을 성취해 누리지 못한다(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잘못 붙잡은 그 법들은 오랫동안 불이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법들을 잘못 붙잡음이다(잘못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아홉 가지는 아홉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스승의 가르침(九分敎, 구분교, navanga-buddhu-sasana)'으로 불린다.

①경(經.sutta) - 경이라고 이름하는 붓다의 말씀.

②응송(應頌.geyya) - 게송과 함께하는 경. 
③수기(授記.veyyākaraṇa) - 전체 논장과 게송이 없는 경과 그 외에 다른 여덟 가지 구성요소에 포함되지 않는 세존의 말씀이 바로 상세한 설명이다. 확정적인 설명. 짧고 명확한 것.
④게송(偈頌.gātha) - 「법구경」과 「장로게」와 「장로니게」와 「숫따니빠따」에서 경이라는 이름이 없는 순수한 게송이 바로 게송이다. 시구로 되어 있는 가르침.
⑤감흥어(感興語.udāna) - 기쁨에서 생긴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 82가지 경들이 바로 감흥어이다. 어떤 일, 상황, 의미를 알고 혼잣말로 붓다께서 읊조리신 말씀들.
⑥여시어(如是語.itivuttaka) -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110가지 경들이다. 
⑦본생담(本生談.jātaka) - 아빤나까 본생담 등 550개의 본생담이다. 부처님의 여러 전생 이야기.
⑧미증유법(未曾有法.abbhutadhamma) - 희유한 공덕, 기적에 관한 교설, 놀랍고 경이로운 이야기. 감복시키는 가르침. acchariyaṃ bho abbhutaṃ bho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 가르침.
⑨문답(方等.vedalla) - 대화체의 가르침. 교리문답을 통해 이치를 알게 해 주는 가르침.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뱀을 원하고, 뱀을 쫓고, 뱀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가 큰 뱀을 볼 것이다. 그런 그가 뱀의 몸통이나 꼬리를 잡을 것이다. 그 뱀은 되돌아서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몸의 다른 어떤 부분을 물 것이다. 그는 그것 때문에 죽거나 죽음만큼의 고통을 당할 것이다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못 붙잡았음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경‧응송‧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본생담‧미증유법‧문답의 법을 익힌다. 그들은 그 법을 익힌 뒤에 그 법들에 대해 의미를 지혜로써 살펴보지 않는다. 지혜로써 의미를 살펴보지 않을 때, 그 법들은 그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이익 때문에 법을 익힌다. 그들은 어떤 목적을 위한 법을 익히지만, 그 법의 목적을 성취해 누리지 못한다. 그들에게 잘못 붙잡은 그 법들은 오랫동안 불이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비구들이여, 법들을 잘못 붙잡음이다.  

 

239.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경‧응송‧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본생담‧미증유법‧문답의 법을 익힌다. 그들은 그 법을 익힌 뒤에 그 법들에 대해 의미를 지혜로써 살펴본다. 지혜로써 의미를 살필 때 그 법들은 그들에게 기쁨을 준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이한 이익 때문에 법을 배우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목적을 위한 법을 익히고, 그 법의 목적을 성취해 누린다. 그들에게 잘 붙잡은 그 법들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 붙잡음이다(잘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뱀을 바라고, 뱀을 쫓고, 뱀을 찾아 돌아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가 큰 뱀을 볼 것이다. 그런 그가 염소의 발굽 모양의 막대기로 잘 누를 것이다. 염소의 발굽 모양의 막대기로 잘 누른 뒤에 목을 잘 잡을 것이다비구들이여, 어덯게 그 뱀이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몸의 다른 부분을 물 수 있겠는가! 그는 그것 때문에 죽거나 죽음만큼의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 잡았음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경‧응송‧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본생담‧미증유법‧문답의 법을 익힌다. 그들은 그 법을 익힌 뒤에 그 법들에 대해 의미를 지혜로써 살펴본다. 지혜로써 의미를 살필 때 그 법들은 그들에게 기쁨을 준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이한 이익 때문에 법을 배우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목적을 위한 법을 익히고, 그 법의 목적을 성취해 누린다. 그들에게 잘 붙잡은 그 법들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 붙잡음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어떤 것을 위해 내가 말한 것의 의미를 알아야 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것을 위해 내가 말한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그대들은 거기서 나에게 묻거나 또는 잘 배운 비구들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240. 비구들이여, 건넘을 위하여 그대들에게 뗏목에 비유한 법을 설하겠다. 붙잡음을 위해서가 아니다(그것은 건너기 위함이지 움켜쥐기 위함(집착)이 아니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설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그가 이쪽 강변은 위험하고 두렵고, 저쪽 강변은 안전하고 두려움이 없는 큰 강을 볼 것이다. 저쪽 강변으로 가는 배도 없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기 위한 다리도 없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큰 강은 이쪽 강변(언덕)은 위험하고 두렵고, 저쪽 강변은 안전하고 두려움이 없다. 그리고 저쪽 강변으로 가는 배도 없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기 위한 다리도 없다. 내가 풀과 나무토막과 가지와 잎들을 모으고 뗏목을 엮은 뒤에 그 뗏목에 의지해서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한 저쪽 강변으로 건너가면 어떨까?'라고.

그래서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풀과 나무토막과 가지와 잎들을 모으고 뗏목을 엮은 뒤에 그 뗏목에 의지해서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한 저쪽 강변으로 건너갈 것이다. 강을 건너 저쪽 강변에 닿은 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뗏목은 많은 역활을 했다. 나는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한 저쪽 강변으로 건넜다. 내가 이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면 어떨까?라고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이 그 뗏목에 대해 할 바를 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이 그 뗏목에 대해 할 바를 하는 것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건너서 저쪽 강변에 닿은 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뗏목은 많은 역활을 했다. 나는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한 저쪽 강변으로 건넜다. 나는 이 뗏목을 땅에 올려놓거나 물에 띄워 두고서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면 어떨까?라고.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는 그 사람이 그 뗏목에 대해 할 바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비구들이여, 그대들을 위해 뗏목에 비유한 법을 설했다. 아는 그대들은 법도 버려야 하니, 하물며 법이 아닌 것(비법.非法)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뗏목에 비유하여 그대들에게 설한 법을 이해하는 자들은 법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법들도 버려야 하거늘(dhammapi pahatabba)'에서 법들이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말한다. 세존께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해서도 그 열정과 욕망(chanda-raga)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사마타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말씀하셨는가?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초선을 제2선을 제3선을 제4선을 공무변처를 식무변처를 무소유처를 비상비비상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우다이여, 그러나 이것도 충번하지 못하다고 나는 말한다. 버려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넘어서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메추라기 비유 경」(MN66)    
그러면 어디에서 위빳사나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하셨는가?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와 같이 청정하고 이와 같이 깨끗한 견해를 집착하고 즐기고 재산으로 여기고 내 것으로 여긴다면, 법은 건너기 위한 것이지 움켜쥐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뗏목에 비유해서 설한 것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갈애 부서짐의 긴 경」(MN38)      
그러나 여기서는 둘 모두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하시면서 "법들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야 무엇하리(dhammapi vo pahatabba pageva adhamma)'라고 하신 것이다. 이 뜻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와 같이 고요하고 수승한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법들에 대해서도 욕망과 탐욕을 버릴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하물며 천하고 비열하고 사악하고 성행위에 빠지게 하는 비법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런 것에 대해 미혹하여 결점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아릿타는 다섯 가지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과 탐욕이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릿타처럼 그대들은 나의 교법에 진흙이나 쓰레기를 던지지 말라고 세존께서 이 가르침으로 아릿타를 꾸짖었다."(MA.ii.109)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석서는 법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해석하고 있을 뿐 법 자체를 버리라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41.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견해의 토대가 있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여기 거룩한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무지한 범부가 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해, 물질을 '이것은 내(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인식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형성들[行]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본 것, 들은 것, 닿아 안 것, 인식한 것, 얻은 것, 조사한 것, 마음[意]으로 고찰한 것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라는 견해의 토대에 대해서도 '이것은 내(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관찰한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여기 거룩한 이를 알아보고, 거룩한 법을 알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운 성스러운 제자가 있다. 그는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보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며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물질을 '이것은 내(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인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형성들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본 것, 들은 것, 닿아 안 것, 인식한 것, 얻은 것, 조사한 것, 마음[意]으로 고찰한 것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자아다. 그런 나는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라는 견해의 토대에 대해서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이렇게 여기는(관찰하는)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번민)하지 않는다."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다(etam mama)'라는 것은 갈애에 의한 움켜쥠이고, '이것은 나다(eso hamasmi)'라는 것은 자만에 의한 움켜쥠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다(eso me atta)'라는 것은 견해에 의한 움켜쥠이다. 이와 같이 물질의 대상들에 대해 갈애와 자만과 견해를 설하셨다. 느낌 등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MA.ii.110)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하지 않는다(asati na paritassati)'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움에 의한 번민이나 혹은 갈애에 의한 번민으로 번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MA.ii.111)  

 

242.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가 있습니까?"

"있다, 비구여."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여기, 비구여,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참으로 나의 것이 있었다. 참으로 그것이 나에게 없다. 참으로 나의 것이 있기를! 참으로 나는 그것을 얻지 못한다!'라고.

그는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한다. 비구여, 이렇게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가 있다."라고.

 

*주석서는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bahiddha asati)'이란 밖의 필수품이 왕이나 도둑이나 물이나 불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MA.ii.111)  

 

"세존이시여,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하지 않음이 있습니까?"

"있다, 비구여."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여기, 비구여,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참으로 나의 것이 있었다. 참으로 그것이 나에게 없다. 참으로 나의 것이 있기를! 참으로 나는 그것을 얻지 못한다!'라고.

그는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당황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렇게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하지 않음이 있다."라고.

 

"세존이시여,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가 있습니까?" 

"있다, 비구여." 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여기, 비구여, 어떤 사람은 이런 견해를 가졌다.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자아다. 그런 나는 죽은 뒤에 항상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머물 것이다).'라고. 

그는 모든 견해의 토대, 결심, 편견(선입감), 고집, 잠재성향들을 뿌리를 뽑기 위해, 모든 형성들의 그침을 위해,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기 위해, 갈애의 부서짐을 위해, 탐욕의 떠남을 위해, 소멸을 위해, 열반을 위해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설한 법을 듣는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참으로 나는 단멸할 것이다. 참으로 나는 파괴될 것이다. 참으로 나는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그는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한다. 비구여, 이렇게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가 있다."라고.

 

"세존이시여,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 않음이 있습니까?" 

"있다, 비구여."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여기, 비구여, 어떤 사람은 이런 견해를 가지지 않았다.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자아이다. 그런 나는 죽은 뒤에 항상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라고.

그는 모든 견해의 토대, 결심, 편견, 고집, 잠재성향들을 뿌리 뽑기 위해, 모든 형성들의 그침을 위해, 모든 재생의 근거의 놓음을 위해, 갈애의 부서짐을 위해, 탐욕의 떠남을 위해, 소멸을 위해, 열반을 위해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설한 법을 듣는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참으로 나는 단멸할 것이다. 참으로 나는 파괴될 것이다. 참으로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비구여, 그는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당황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렇게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 않음이 있다."라고.

 

*"'모든 형성된 것들(有爲.유위)의 그침을 위해(sabba-sankhara-samathaya)'라고 하셨다. 열반을 얻으면 모든 형성된 것들의 흔들림, 모든 형성된 것들의 동요, 모든 형성된 것들의 움직임이 그치고 고요해진다. 그러므로 열반은 모든 형성된 것들이 그치는 것이라 한다.     
그 열반을 얻으면 무더기라는 재생의 근거, 오염원이라는 재생의 근거, 업형성력이라는 재생의 근거,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이라는 재생의 근거 등 이러한 재생의 근거들이 내버려지고, 갈애가 소멸되고, 탐욕이 사라지고 소멸한다. 그래서 '모든 형성된 것들이 그치고,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리고, 갈애를 멸진하고, 탐욕을 사라지고 소멸함'이라고 하셨다."(MA.ii.112)      

 

243. "비구들이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존재이고,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라면(그대로 머물게 된다면) 그대들은 그 소유물을 붙잡아도 좋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존재이고,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는 소유물을 보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나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존재이, 오로지 그러게 영원히 서 있는 소유물을 보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집착하는 자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을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대들은 자아의 교리를 집착해도 좋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집착하는 자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을 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아의 교리를 보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나도 집착하는 자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을 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아의 교리를 보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의지하는 자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을 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대들은 견해에 의지해도 좋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의지하는 자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을 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견해에 의지하는 것을 보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나도 의지하는 자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을 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견해에 의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244. "'비구들이여, 자아가 있을 때 나의 자아에 속한 것이 있다.'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또는 자아에 속한 것이 있을 때 나의 자아가 있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자아도 자아에 속한 것도 사실로부터 믿을 만함으로부터 발견되지 않을 때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자아다. 그런 나는 죽은 뒤에 항상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나는 영원히 그렇게 존재할 것이다).'라는 견해의 토대는, 비구들이여, 전적으로 완전히 어리석은 법이 아닌가?"

"세존이시여, 어떻게 아니겠습니까까? 세존이시여, 참으로 전적으로 완전히 어리석은 법입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은 타당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느낌은 ··· 인식은 ··· 형성들은 ···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은 타당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그러므로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그러므로 형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그러므로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의식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한다.

 

245.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厭惡)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는 자는 탐욕이 떠난다. 탐욕이 떠남으로부터 해탈한다. 해탈할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는 빗장을 들어올린 자라고도, 도랑을 메운 자라고도, 기둥을 뽑은 자라고도, 방해받지 않는 자라고도, 깃발을 거두고 짐을 내려놓고 족쇄에서 벗어난 성자라고도 불린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빗장을 들어올린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무명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빗장을 들어 올린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도량을 메운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다시 존재로 이끄는 태어남의 윤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도랑을 메운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둥을 뽑은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갈애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둥을 뽑은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방해받지 않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방해받지 않는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깃발을 거두고 짐을 내려놓고 속박에서 벗어난 성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나라는 자만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깃발을 거두고 짐을 내려놓고 족쇄에서 벗어난 성자이다.

 

*"'성자(ariya)'란 오염원이 없는 청정한 자를 말한다.  
'깃발을 거두었다(panna-ddhaja)'는 것은 자만의 깃발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짐을 내려 놓았다(panna-bhara)'는 것은 무더기의 짐과 오염원의 짐과 업 형성력의 짐과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짐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내려 앉았기 때문에 짐을 내려 놓았다는 말이다. 특히 여기서는 자만의 짐을 내려 놓았기 때문에 짐을 내려 놓았다고 한다.  
'[속박에서] 벗어났다(visamyutta)'는 것은 네 가지 속박과 모든 오염원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자만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벗어났다.'는 말이다.(MA.ii.116)   
네 가지 속박은 감각적 쾌락의 속박, 존재의 속박, 견해의 속박, 무명의 속박이다. 주석서는 속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윤회에 속박시킨다'고 해서 속박이라 한다. 여기서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쾌락으로 된 것이 '감각적 쾌락의 속박'이다. 색계와 무색계의 존재에 대한 욕망이 '존재의 속박'이니 禪을 갈구하는 것이다. 영원하다는 견해와 함께하는 욕망과 62가지 견해가 '견해의 속박'이다. 사성제를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의 속박'이다."(AA.ii.13)       
*"'나라는 자만'이란 물질에 대해 '나다'라는 자만과 느낌, 인식, 형성들, 의식에 대해 '나다'라는 자만을 말한다."(MA.ii.116)

 

246. "비구들이여, 인드라와 함께하고, 범천과 함께하고, 빠자빠띠와 함께하는 신들은 이렇게 해탈한 마음을 가진 비구에게서 '여래의 의식이 의지한 이것'이라고 발견하지 못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여래를 '지금‧여기에서 발견되지 않는 자'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주장하고 이렇게 설하는 나를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사실 아니고, 헛되고, 거짓말로, 사실과 다르게 비난한다. 

'사문 고따마는 허무주의자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한다.'라고.

나는 그렇지 않고,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사실 아니고 헛되고 거짓말로 사실과 다르게 비난한다. 

'사문 고따마는 허무주의자다. 존재하고 있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오직  나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게 한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여래를 헐뜯고 중상모략하고 자극하고 불편하게 한다 해도, 비구들이여, 거기서 여래는 싫어하지 않고, 못마땅해하지 않고, 마음에 불만이 없다.

 

*"'여래의 의식(tathagatassa vinnana)'에서 여래로 옮긴 따타가따(tathagata)는 일반으로는 세존을 지칭하지만 여기서는 중생(satta), 여래, 번뇌 다한 최상의 인간을 뜻하기도 한다.(MA.ii.117)   
「상윳따 니까야」 제2권 「야마까 경」(S22.85)에 나타나는 "그대는 물질을 여래라고 관찰합니까? ···"라는 구절에 나타나는 여래를 중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여래라는 용어를 위의 주석서 인용에서 보듯이 더 넓은 의미로 해석해서 번뇌 다한 아라한에게도 적용시키고 있다. 주석서는 여래와 아라한의 두 가지를 통해서 본문을 설명한다.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①알려지지가 않는다(asamvijjamana), 혹은 ②알 수가 없다(avindeyya)는 뜻이다. tathagata를 중생으로 취할 때에는 알려지지가 않는다는 뜻이 적합하고, 번뇌 다한 자로 취할 때에는 알 수가 없다는 뜻이 적합하다. 
①이 중에서 첫 번째 뜻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지금 현재 살아있는 번뇌 다한 이도 여래, 중생,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재생연결식이 없고 완전히 소멸한 번뇌 다한 자를 어찌 중생이라고, 인간이라고 말하겠는가? 여래는 추적할 수가 없다. 궁극적인 뜻에서 중생이라고 이름할 자는 없기 때문이다.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의지하여 의식이 있다.'라고 찾아보지만 어떻게 찾겠는가?  
②두 번째 뜻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번뇌 다한 자가 지금 현재 살아있더라도 그의 의식을 인드라 등이 추적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드라나 브라흐마나 쁘라자빠띠를 포함한 신들은 번뇌 다한 이의 위빳사나의 마음이나 도의 마음이나 과의 마음을 찾으려고 해도 '이 대상을 의지해서 있다.'라고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재생연결식이 없고 완전히 소멸한 자를 알겠는가?"(MA.ii.117)  

 

비구들이여,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다 해도, 비구들이여, 거기서 여래는 기뻐하지 않고 만족해하지 않고, 마음으로 교만해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다 해도, 비구들이여, 거기서, 여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을 예전에 철저히 알았기 때문에 나에게 이러한 햄함[존경, 존중, 숭상, 예배]이 행해진다.'라고.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헐뜯고 중상모략하고 자극하고 불편하게한다 해도 그대들은 참으로 싫어하지 말고, 못마땅해하지 말고, 마음에 불만이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다 해도, 거기서 그대들은 참으로 기뻐하지 말고, 만족해하지 않고, 마음으로 교만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다 해도 거기서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것을 예전에 철저히 알았기 때문에 나에게 이러한 행함이 행해진다.'라고.

 

*"'예전에 철저히 안 것'이란 다섯 가지 무더기(khandha-pancaka,오온)를 말한다."(MA.ii.118)

 

247.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의 것이 아닌 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버려지면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그대들의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버려지면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느낌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버려지면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인식(지각)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버려지면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형성들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버려지면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의식는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버려지면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제따 숲에 있는 풀과 나무토막과 가지와 잎들을 어떤 사람이 가져가거나 태우거나 그것으로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할 것이다. 그러면 그대들에게 '이 사람이 나를 가져가고 태우고 나를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라는 생각이 들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그것은 자아거나 자아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자신도 아니고, 자신에게 속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의 것이 아닌 것은 버려야 한다. 그것이 버려지면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그대들의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버려지면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느낌은 ··· 비구들이여, 인식(지각)은 ··· 비구들이여, 형성들은 ··· 비구들이여, 의식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버려지면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248.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설명되었고 구속(속박)을 자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분명하고 열려있고 설명되었고 속박을 자른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에서,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 비구들의 윤회는 선언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설명되었고 속박을 자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분명하고 열려있고 설명되었고 속박을 자른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에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부순 비구들은 모두 [정거천에] 화생한다.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드는 자이니, 그 세계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 [不還者 불환자]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설명되었고 속박을 자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분명하고 열려있고 설명되었고 속박을 자른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에서, 세 가지 족쇄가 버려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진 비구들은 모두 한 번만 돌아올 자들이어서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一來者 일래자]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설명되었고 속박을 자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분명하고 열려있고 설명되었고 속박을 자른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에서, 세 가지 족쇄가 버려진 비구들은 모두 흐름에 든 자[預流]들이어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자, 해탈이 확실한 자,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다. [預流者 예류자]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설명되었고 속박을 자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분명하고 열려있고 설명되었고 속박을 자른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에서, 법을 따르는 자와 믿음을 따르는 자인 그 비구들은 모두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설명되었고 속박을 자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분명하고 열려있고 설명되었고 속박을 자른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에서,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 그들 모두는 천상으로 향하는 자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Alagaddūpamasuttaṃ niṭṭhitaṃ dutiyaṃ

뱀의 비유 경(M22)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