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48. 꼬삼비 경(kosambiyasuttaṃ)

실론섬 2016. 4. 13. 11:30

MN 48. 꼬삼비 경(kosambiyasuttaṃ)

 

49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삼비의 고시따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꼬삼비에서는 비구들이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에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있었다. 서로 간에 설득하지도 않고 화해하지도 않았다. 서로 간에 호의적으로 상대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았다.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여기, 세존이시여, 꼬삼비의 비구들은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에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며 머뭅니다. 서로 간에 설득하지도 않고 화해하지도 않습니다(서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서로 간에 호의적으로 상대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습니다(서로를 설득시키지도 못하고 설득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라고.

 

*꼬삼비(Kosambi)는 인도 중원의 16개국 가운데 하나인 왐사(Vamsa)의 수도였다. 주석서에 의하면 꼬삼비에는 세 개의 원림(승원)이 있었는데 본경에 나타나는 고시따 승원(Gositarama)은 고시따 상인이 만든 것이고 꾹꾸따 상인이 만든 꾹꾸따 승원(Kukkutarama)과 빠와리까 상인이 기증한 빠와리까 망고 숲(Pavarikambavana)이 있었다고 한다.(DA.i.319) 그외에도 우데나 공원과 심사빠 숲이 다른 경에 나타난다. 꼬삼비는 야무나 강변에 위치하며 현재 인도 웃따라쁘라데쉬 주의 알라하바드에서 150km 정도 떨어진 Kosam이라는 두 마을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DPPN)  
꼬삼비 사건은 율장 대품(Mahavagga, Vin.i.337)에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그 발단은 이러하다.    
"꼬삼비 지방의 고시따 승원에는 각기 오백명의 제자들을 거느린 학식과 덕망이 높은 두 비구가 살고 있었다. 이 두 스승 비구중 한 비구는 계를 가르치는 율사였고, 다른 한 비구는 경을 가르치는 강사(講師)였다. 어느 날 강사 비구는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다가 사소한 계율을 범했다. 계율에 따르면 화장실을 사용하고 난 다음 준비된 물통의 물을 쏟아 변기를 깨끗하게 씻은 다음에 물통을 거꾸로 해놓고 나와야만 하는데, 이 비구는 급히 나오다가 그만 완벽하게 뒷처리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공교롭게도 율사 비구가 그 뒤에 바로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어 그것을 발견했다. 율사 비구는 강사 비구에 물었다. "도반이여, 비구께서는 물통에 물을 남겨 놓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계율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습니까?" "저는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계율에 저촉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참회를 하겠습니다." 그러자 율사 비구는 말했다. "이것은 분명히 계율에 어긋납니다만,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꼭 허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율사 비구는 강사 비구에게 계율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고, 이 일은 없었던 일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자기의 제자들에게 돌아 간 율사 비구는 이렇게 말했다. "저 강사 비구는 계율을 범했다. 그러고도 자기의 허물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율사 비구의 제자들은 강사 비구의 제자들을 만나 그들의 스승을 비난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강사 비구의 제자들을 통하여 강사 비구에게도 전해졌다. 이에 강사 비구는 율사 비구를 찾아가 항의했다. "도반이여, 지난번에는 그 일이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므로 허물이 되지 않는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그것이 허물이라고 하시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렇게 시작된 다툼은 서로가 서로를 거짓말쟁이로 몰아 붙이게까지 되어 집단적인 사태로 번져갔다. 그런 끝내 마침내 율사 비구는 강사 비구의 허물을 공식적으로 선언해 버렸다. 율사 비구는 말하기를 이 허물에 대한 벌로써 모든 비구들은 강사 비구들에게 일체의 대화를 나누거나 말을 걸어와도 대답을 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두 비구 집단의 이런 불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급기야는 두 비구를 따르는 재가 신자들에게까지 번져갔다. 그리고 그들은 두 비구들을 따라서 배우는 비구들과 재가 신자들까지 두 파로 갈라지고 나자, 이번에는 신자들과 가까운 일반인들까지도 서로 불화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천인들과 범천들까지도 다툼이 일어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어떤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내 이름으로 그 비구들에게 말하라. '스승께서 그대 존자들을 부르십니다.'라고."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한 뒤 그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승께서 존자들을 부르십니다."라고.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그 비구들은 그 비구에게 대답한 뒤 하고 세존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에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며 머문다. 서로 간에 설득하지도 않고 화해하지도 않는다. 서로간에 호의적으로 상대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는다.'라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간에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머물 때,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 수행자들에 대해서 자애와 함께하는 몸의 업을 행하겠는가? ··· 자애와 함께하는 말의 업을 ···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 수행자들에 대해서 자애와 함께하는 마음의 업을 행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그대들이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에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머물 때,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 비구들에 대해 자애와 함께하는 몸의 업을 행하지 못하고, 자애와 함께하는 말의 업을 ···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마음의 업을 행하지 못한다. 그러나 쓸모없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누구인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는 자이기에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간에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며 머무는가? 서로 간에 설득하지도 않고 화해하지도 않는가? 서로간에 호의적으로 상대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는가? 쓸모없는 자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대들에게 오랫동안 불이익과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

 

492. 그리고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하는 법들은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끈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가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 수행자들에 대해서 자애와 함께하는 몸의 업을 행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가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 비구들에 대해서 자애와 함께하는 말의 업을 행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가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 비구들에 대해서 자애와 함께하는 마음의 업을 행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가 적절하고 정당하고 법답게 얻은 것들은 그것이 비록 나누어 사용하지 못할 만큼 얻어진 발우에 담긴 적은 것일지라도 계를 지키는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나누어서 사용한다(공동으로 사용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가 훼손되지 않았고, 뚫어지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고, 벗어나게 하고, 현자들이 찬탄하고, 들러붙지 않고, 삼매에 도움이 되는 그런 계들을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갖추어 머문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다.

 

*"'일곱 가지 범계(apatti)의 무더기들 가운데 처음이나 마지막의 학습계율을 파한 자의 계는 '훼손되었다(khanda)'고 한다. 마치 가장자리가 끊어진 천조각처럼.  
중간에 파한 자의 계는 '뚫어졌다(chiddam)'고 한다. 마치 중간에 구멍난 천 조각처럼.
그들을 차례대로 둘 혹은 셋을 파한 자의 계는 '오점이 있다(sabala)'고 한다. 마치 등이나 혹은 배에 나타난 얼룩덜룩한 검고 붉은 색깔을 가진 소처럼.
그 사이사이의 학습계율을 파한 자의 계는 '얼룩졌다(kammasa)'고 한다. 마치 여러 색깔의 반저으로 얼룩덜룩한 소처럼.
그러나 어떤 것도 범하지 않은 그의 계를 '훼손되지 않았고 뚫어지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다'고 한다.
이 계들은 갈애라는 노예 상태에서 풀려나 벗어나게 하므로 '벗어나게 한다(bhujossani)'고 한다.
세존 등 현자들이 찬탄하기 때문에 '현자들이 찬탄한다(vinnuppasatthani)'고 한다.
갈애와 사견이 들러붙지 않기 때문에 '들러붙지 않는다(aparamatthani)'고 한다.
근접삼매나 본삼매로 이끌기 때문에 '삼매에 도움이 된다(samadhi=samvattanikani)'고 한다."(MA.ii.400)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가 성스럽고, 출리(出離)로 이끌고, 그대로 실천하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견해에 대해서, 함게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그런 견해를 갖추어 머문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들 가운데 성스럽고, 출리(出離)로 인도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견해가 으뜸이고 포괄하는 것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뾰쪽지붕 건물 가운데 뾰쪽지붕이 으뜸이고 포괄하고 총체적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들 가운데 성스럽고, 출리(出離)로 인도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견해가 으뜸이고 포괄하는 것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493. 비구들이여, 성스럽고, 출리(出離)로 이끄는(성스러운 구원으로 이끄는) 이 견해는 어떻게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어떻게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 가거나 빈 집을 간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그 선입감이 스며든 마음을 가지면 나를 있는 그대로 꿰뜷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하는 안으로 버려지지 않은 어떤 선입감이 나에게 있는가(내 마음을 사로잡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게 하는, 그런 강박관념이 아직 제거되지 않은 채 내 안에 있는가)?'라고.

만약, 비구들이여, 욕탐(감각적 쾌락)이 스며든 비구라면, 스며든 마음을 가진 자이다. 만약, 비구들이여, 성냄이 스며든 비구라면, 스며든 마음을 가진 자이다. 만약, 비구들이여, 혼침과 해태가 스며든 비구라면, 스며든 마음을 가진 자이다. 만약, 비구들이여, 들뜸과 후회가 스며든 비구라면, 스며든 마음을 가진 자이다. 만약, 비구들이여, 의심이 스며든 비구라면, 스며든 마음을 가진 자이다. 만약, 비구들이여, 이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비구라면, 스며든 마음을 가진 자이다. 만약, 비구들이여, 저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비구라면, 스며든 마음을 가진 자이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며 머문다면, 스며든 마음을 가진 자이다.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안다. 

'그 선입감이 스며든 마음을 가지면 나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하는 안으로 버려지지 않은 어떤 선입감이 나에게 없다. 나의 마음은 진리를 진리의 깨달음을 위해 잘 지향되어 있다.'라고. 이것이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나누지 않는) 성스럽고 세상을 넘어선 첫 번째 앎의 성취이다.

 

*선입감으로 옮긴 단어는 pariyuṭṭhāna이다. 즉 스며든 마음을 가지면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지혜는 성인들에게만 있고 범부들에게는 없기 때문에 '성스럽다(ariya)'고 했고, 출세간법을 얻은 사람에게만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기 때문에 '출세간적(lokuttara)'이라고 했고, 범부들에게는 없기 때문에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다(asadharana puthujjanehi)'고 했다."(MA.ii.401)   

 

494.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이런 견해를 가지고 닦고 많이 행할 때(익힐 때) 나는 스스로 사마타[止]를 얻고 스스로 적멸을(꺼짐을) 는가?'라고. 그는 '내가 이런 견해를 가지고 닦고 많이 행할 때 나는 스스로 사마타[止]를 얻고 스스로 적멸을 얻는다.'라고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성스럽고 세상을 넘어선 두 번째 앎의 성취이다.

 

495.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여기의 승가 밖에 내 견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내가 갖춘 견해를 갖춘)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는가?'라고. 그는 '여기의 승가 밖에 내 견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없다.'라고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성스럽고 세상을 넘어선 세 번째 앎의 성취이다.

 

496.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갖추는 성품을 나도 갖추었는가?'라고.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은 어떻게 성품을 갖추었는가? 비구들이여,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 이런 성품이 있다. 

'복권(復權)이 제정된 조항을 범하더라도 즉시에 스승이나 현명한 동료 수행자에게 고백하고 드러내고 공개한다. 고백하고 드러내고 공개한 뒤에 미래를 단속한다.'라고.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리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손이나 발이 숯불 가까이 가면 재빨리 움추린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 이런 성품이 있다. '복권이 제정된 조항을 범하더라도 즉시에 스승이나 현명한 동료 수행자에게 고백하고 드러내고 공개한다. 고백하고 드러내고 공개한 뒤에 미래를 단속한다.'라고. 그는 '견해를 갖춘 사람이 갖추는 성품을 나도 갖추었다.'라고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성스럽고 세상을 넘어선 네 번째 앎의 성취이다.

 

497.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견해를 갖춘 사람의 성품을 나도 갖추었는가?'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견해를 갖춘 사람은 어떤 성품을 갖추었는가? 비구들이여,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 이런 성품이 있다. 

'동료 수행자를 위해 해야 하는 크고 작은 어떤 일들을 무엇이든지 거기서 열심히 한다. 그리고 높은 계의 닦음, 높은 마음의 닦음, 높은 지혜를 닦음을 위한 열의가 있다.'라고.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린 송아지가 있는 암소는 풀을 뜯고, 또한 송아지를 돌본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 이런 성품이 있다.' 동료 수행자를 위해 해야 하는 크고 작은 어떤 일들을 무엇이든지 거기에서 열심히 한다. 그리고 높은 계의 닦음, 높은 마음의 닦음, 높은 지혜를 닦음을 위한 열의가 있다.'라고. 그는 '견해를 갖춘 사람의 성품을 나도 갖추었다.'라고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성스럽고 세상을 넘어선 다섯 번째 앎의 성취이다.

 

*"어린 송아지(tarunayaccha)를 거느린 어미 소(gavi)는 들판에서 어린 송아지를 한 곳에 앉혀두고 혼자 멀리 가지 않는다. 어미 소는 송아지 근처에서 돌아다니면서 풀을 뜯고는 목을 길게 빼서 한쪽에 있는 송아지를 살펴본다. 그와 같이 예류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karaniyani)을 하면서 거기에 마음을 기울이고 또 한편으로는 근면함을 앞세워 예리한 열정과 큰 뜻을 품는다."(MA.ii.403)   

 

498.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견해를 갖춘 사람의 힘을 나도 갖추었는가?'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견해를 갖춘 사람은 어떤 힘을 갖추었는가? 비구들이여,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들이 설해질 때 분명히 받아 들이고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집중하여 귀 기울인 자로서 법을 듣는 것이 견해를 갖춘 사람의 힘이다. 그는 '견해를 갖춘 사람의 힘을 나도 갖추었다.'라고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성스럽고 세상은 넘어선 여섯 번째 앎의 성취이다.

 

499.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견해를 갖춘 사람의 힘을 나도 갖추었는가?’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견해를 갖춘 사람은 힘을 갖추는가? 비구들이여, 여래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들이 설해질 때 의미에 대한 앎을 얻고, 범에 대한 앎을 얻고, 법에 수반되는 환희를 얻는 것이 견해를 갖춘 사람의 힘이다. 그는 ‘견해를 갖춘 사람의 힘을 나도 갖추었다.’라고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성스럽고 세상을 넘어선 일곱 번째 앎의 성취이다.

500. 비구들이여, 이렇게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 예류과의 실현을 위한 올곧고 완전한 성품이 있다비구들이여, 이렇게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예류과를 성취한 것이다."라고.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꼬삼비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