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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64. 말루꺄 큰(긴) 경(mahāmālukyasuttaṃ)

실론섬 2016. 4. 21. 20:45

MN 64. 말루꺄 큰(긴) 경(mahāmālukyasuttaṃ)

 

12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설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오하분결.五下分結)를 명심하고 있는가?"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말루꺄뿟따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명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루꺄뿟따여, 그대는 내가 설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어떻게 명심하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설하신 불변하는 나(我.아)가 있다는 견해(유신견.有身見)의 낮은 단계의 족쇄를 저는 명심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설하신 의심의 낮은 단계의 족쇄를 저는 명심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설하신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계금취.戒禁取)의 낮은 단계의 족쇄를 저는 명심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설하신 감각적 쾌락의 낮은 단계의 족쇄를 저는 명심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성냄(악의)의 낮은 단계의 족쇄를 저는 명심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말루꺄뿟따여, 그대는 누구에게 설해진 이런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이렇게 명심하는가? 말루꺄뿟따여, 외도 유행승들이 갓난 아이의 비유로써 비난하지 않겠는가? 어리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 아이에게는 불변하는 나가 있다는 생각조차도 없는데 어떻게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가 생기겠는가? 다만, 불변하는 나가 있다는 잠재성향이 잠재한다. 어리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 아이에게는 법이라는 생각조차도 없는데 어떻게 법에 대한 의심이 생기겠는가? 다만 의심의 잠재성향이 잠재한다. 어리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 아이에게는 계율이라는 생각조차 없는데 어떻게 계율들에 대해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이 생기겠는가? 다만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의 잠재성향이 잠재한다. 어리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 아이에게는 감각적 쾌락이라는 생각조차도 없는데 어떻게 감각적 쾌락들에 대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 생기겠는가? 다만 감각적 쾌락의 잠재성향으로 잠재한다. 어리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 아이에게는 중생이라는 생각조차 없는데 어떻게 중생에 대한 성냄이 생기겠는가? 다만 성냄의 잠재성향이 잠재한다. 말루꺄뿟따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런 갓난 아이의 비유로써 비난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적당한 때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주실 바로 그때입니다. 세존으로부터 잘 듣고 바구들은 명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난다여, 잘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같이 말씀하셨다. 

 

130. "여기, 아난다여, 거룩한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무지한 보통사람(범부)이 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범부는 불변하는 나가 있다는 견해에 매이고 불변하는 나가 있다는 견해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문다. 일어난 불변하는 나가 있다는 견해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에게 견고해지고 제거되지 않은 그 불변하는 나가 있다는 견해가 낮은 단계의 족쇄이다. 의심에 매이고 의심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문다. 일어난 의심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에게 견고해지고 제거되지 않은 그 의심이 낮은 단계의 족쇄이다.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에 매이고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문다. 일어난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에게 견고해지고 제거되지 않은 그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이 낮은 단계의 족쇄이다. 감각적 쾌락에 매이고 감각적 쾌락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문다. 일어난 감각적 쾌락의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에게 견고해지고 제거되지 않은 그  감각적 쾌락이 낮은 단계의 족쇄이다. 성냄에 매이고 성냄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문다. 일어난 성냄의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에게 견고해지고 제거되지 않은 그 성냄이 낮은 단계의 족쇄이다.

 

131. 여기, 아난다여, 거룩한 이를 알아보고, 거룩한 가르침(法)을 알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운 성스러운 제자가 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보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불변하는 나가 있다는 견해에 매이지 않고 불변하는 나가 있다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은 마음으로 머문다. 일어난 불변하는 나가 있다는 견해의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에게 잠재성향과 함께 불변하는 그 나가 있다는 견해는 제거된다. 의심에 매이지 않고 의심에 사로잡히지 않은 마음으로 머문다. 일어난 의심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에게 잠재성향과 함께 그 의심은 제거된다.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에 매이지 않고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은 마음으로 머문다. 일어난 일어난 계행과 의례의식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에게 잠재성향과 함께 그 계행과 의례의식은 제거된다. 감각적 쾌락에 매이지 않고 감각적 쾌락에 사로잡히지 않은 마음으로 머문다. 일어난 감각적 쾌락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에게 잠재성향과 함께 그 감각적 쾌락은 제거된다. 성냄에 매이지 않고 성냄에 사로잡히지 않은 마음으로 머문다. 일어난 성냄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에게 잠재성향과 함께 그 성냄은 제거된다(버려진다).

 

132.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길과 닦음에 오지 않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알거나 보거나 제거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예를 들면, 아난다여, 속재목을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껍질을 남겨두고, 속재목을 둘러싼 부분을 자르지 않고, 속재목을 자를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이처럼,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길과 닦음에 오지 않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알거나 보거나 제거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길과 닦음에 온 뒤에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알거나 보거나 제거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예를 들면, 아난다여, 속재목을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껍질을 잘라내고, 속재목을 둘러싼 부분을 잘라내고, 속재목을 자를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처럼,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길과 닦음에 온 뒤에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알거나 보거나 제거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예를 들면, 아난다여, 강가 강의 물이 가장자리까지 넘칠 듯 가득 차 있다. 그때 몸이 허약한 사람이 '나는 두 팔로 헤엄을 쳐서 이 강가 강의 흐름을 가로질러 안전하게 저 언덕에 도착해야 겠다.'라면서 올 것이다. 그는 두 팔로 헤엄을 쳐서 강가 강의 흐름을 가로질러 안전하게 저 언덕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아난다여, 나가 있다는 견해의 소멸을 위한 법들이 선언될 때, 마음이 그것에 들어가지 않고, 깨끗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안정되지 않고, 해탈하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예를 들면 저 허약한 사람이라고 이렇게 이것을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아난다여, 강가 강의 물이 가장자리까지 넘칠 듯 가득 차 있다. 그때 힘센 사람이 '나는 두 팔로 헤엄을 쳐서 이 강가 강의 흐름을 가로질러 안전하게 저 언덕에 도착해야 겠다.'라면서 올 것이다. 그는 두 팔로 헤엄을 쳐서 강가 강의 흐름을 가로질러 안전하게 저 언덕에 도착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아난다여, 나가 있다는 견해의 소멸을 위한 법들이 선언될 때, 마음이 그것에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을 가지고 안정되고 해탈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예를 들면 그 힘센 사람이라고 이렇게 이것을 보아야 한다.

 

133. 그러면,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길은 무엇이고, 닦음은 무엇인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재생를 가져오는 집착을 멀리 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을 제거하고, 몸의 부정(不淨)함을 가라앉혀서,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서 물질에 속하고 느낌에 속하고 인식에 속하고 형성에 속하고 의식에 속한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질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난이라고 결점이고 남(他)이고 부서지는 이고 공이고 무아라고 관찰한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리면서 불사(不死)의 경지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뛰어나다. '이것은 모든 행[行]을 그침이고,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음이고, 갈애의 부서짐이고, 탐욕의 사라짐이고, 소멸인 열반이다.'라고. 거기에 선 그는 번뇌들의 소멸을 얻는다. 만약 번뇌들의 소멸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 법을 좋아하고 그 법을 소망하기 때문에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제거했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하고, 거기서 완전한 열반하니, 그 세계에서 돌아 오지 않는 존재(불환자.不還者)'가 된다.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이런 길도 있고, 이런 닦음도 있다.  

 

*본경에 나열되는 '무상', '괴로움', '병', '종기', '쇠살(화살)', '재난', '결점', '남', '부서지기 마련인 것', '공한 것', '무아'의 11개 술어들은 각각 anicca, dukkha, roga, ganda, salla, agha, abadha, para, paloka, sunna, anatt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오온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 '남(para)'이라고, 무너진다는 뜻에서 '부서지기 마련인 것(aloka)'이라고, 중생이라고 할 것도 없다는 뜻에서 '공한 것(sunna)'이라고, 자아가 없다는 뜻에서 '무아(anatta)'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이 중에서 '무상하다는 것'과 '부서지기 마련인 것'의 두 단어는 무상의 특상을 말했고, '괴로움'부터 여섯 단어는 괴로움의 특상을, '남(para)'과 '공함(sunna)'과 '무아(anatta)'의 세 단어는 무아의 특상(anattalakkhana)를 말했다."(MA.ii.146)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서 물질에 속하고 느낌에 속하고 인식에 속하고 형성에 속하고 의식에 속한 법들을 ··· 그 세계에서 돌아 오지 않는 존재(불환자.不還者)'가 된다.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이런 길도 있고, 이런 닦음도 있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인식)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서 물질에 속하고 느낌에 속하고 인식에 속하고 형성에 속하고 의식에 속한 법들을 ··· 그 세계에서 돌아 오지 않는 존재(불환자.不還者)'가 된다.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이런 길도 있고, 이런 닦음도 있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서 물질에 속하고 느낌에 속하고 인식에 속하고 형성에 속하고 의식에 속한 법들을 ··· 그 세계에서 돌아 오지 않는 존재(불환자.不還者)'가 된다.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이런 길도 있고, 이런 닦음도 있다.  

 

아난다여, 다시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서 물질에 속하고 느낌에 속하고 인식에 속하고 형성에 속하고 의식에 속한 법들을 ··· 그 세계에서 돌아 오지 않는 존재(불환자.不還者)'가 된다.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이런 길도 있고, 이런 닦음도 있다. 

 

"세존이시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이런 길이 있고, 이런 닦음이 있는데도, 이제 무엇 때문에 여기 어떤 비구들은 마음의 해탈을 증득한 자들이고, 어떤 비구들은 지혜를 통한 해탈을 증득한 자들입니까?"

"아난다여, 여기에 대해 기능(근)의 차이를 나는 말한다."

 

*'여기에 대해 기능의 차이를 나는 말한다'에서 서로 다름이란 차이점을 말한다. ①사마타를 닦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비구에게는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이 강한데 그를 마음의 해탈을 증득한 자라 한다. 어떤 자에게는 지혜가 강한데 그를 지혜를 통한 해탈을 증득한 자라 한다. ②위빳사나를 닦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비구에게는 지혜가 강한데 그를 지혜를 통한 해탈을 증득한 자라 한다. 어떤 자에게는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이 강한데 그를 마음의 해탈을 증득한 자라 한다.  
두 명의 상수제자들은 사마타와 위빳사나 둘 모두를 강화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사리뿟따 존자는 지혜를 통한 해탈을 증득했고,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마음의 해탈을 증득했다. 이와 같이 기능의 차이가 여기서 그 이유라고 알아야 한다.(MA.iii.147-148)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말룽꺄 긴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