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65.밧달리 경(bhaddālisuttaṃ)
13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 이여)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는다.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는 나는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활기가 있고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안다. 오라,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도록 하여라. 그대들도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을 때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활기가 있고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알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밧달리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는 것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는 저에게 걱정이 앞서고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밧달리여, 그대는 초청을 받은 곳에서 일부는 먹고 일부는 가지고 온 뒤에 먹어도 좋다. 밧달리여, 이렇게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는 그대도 자신의 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는 것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는 저에게 걱정이 앞서고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것을 학습계목으로 제정하여 공포를 하셨고, 밧달리 존자는 이 학습계목을 받아 지닐 수 없다고 비구 승가에 선언했다. 그리고 밧달리 존자는 안거의 석 달 동안을 세존의 곁에 오지 않았다. 스승의 교법에서 이 학습계목을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밧달리 존자(ayasma Bhaddali)가 누구인지 주석서는 설명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이 존자는 바로 전생에 까마귀 모태에 태어났다. 까마귀는 항상 배가 많이 고팠다. 그래서 그는 배고픈 장포(chataka-tthera)라고 불리기도 했다."(MA.iii.148)라고 적고 있는데 이런 이유로 그는 하루에 한 번만 먹는 것에 강하게 거부하는 것으로 본경에 나타나고 있다.
*'걱정이 앞서고 염려가 된다'라는 것은 그가 이렇게 먹을 때 평생 동안 범행을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이 앞서고 염려가 된다는 것이다.(MA.iii.148)
*'일부는 가지고 온 뒤에 먹어도 좋다'라는 것은 옛날의 장로들은 발우에 음식을 얻은 뒤 버터기름까지 받았을 때는 그 버터기름으로 인해 뜨거워진 것만 조금 먹고 손을 씻은 뒤 나머지는 밖으로 가져가서 그늘지고 물이 있는 편안한 곳에 앉아서 먹었다고 한다. 그와 관련하여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MA.iii.148)
*"그가 위와 같이 큰 소리로 말했을 때 세존께서는 그를 젲하시면서 "비구가 때 아닌 때에 딱딱한 것이나 부드러운 것을 먹으면 단타죄(單墮罪, pacittiya)에 해당된다."라고 학습계목(sikkha-pada)을 제정하셨다."(MA.ii.149)
135. 그 무렵에 많은 비구들이 '석 달의 안거가 끝나고 가사가 완성되면 세존께서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을 위해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자 밧달리 존자는 그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밧달리 존자에게 그 비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도반 밧달리여, 이것은 세존을 위해 가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석 달의 안거가 끝나고 가사가 완성되면 세존께서는 유행을 떠나실 것입니다. 오십시오, 도반 밧달리여, 그대가 선언한 것을 잘 숙고해 보십시오. 나중에 더 어려움이 있도록 하지 하십시오."라고.
"알겠습니다, 도반들이여."라고 밧달리 존자는 그 비구들에게 대답한 뒤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밧달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리석고 모르고 능숙하지 못함 때문에 제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비구 승가가 받아 지니도록 제정된 학습계목에 대한 실천을 감당할 수 없다고 선언한 저에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미래의 단속을 위해서 잘못에 대한 참회를 받아주십시오."라고.
"참으로 밧달리여, 그대는 어리석고 모르고 능숙하지 못함 때문에 그대는 잘못을 저질렀다. 나에 의해 비구 승가가 받아 지니도록 제정된 학습계목에 대한 닦음을 감당할 수 없다고 선언한 그대는, 밧달리여, '세존께서는 사왓티에 머무신다. 세존께서도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하지 못한 밧달리 비구라고 나를 아실 것이다.'라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꿰뚫어 보지 못했다). 밧달리여, 그대는 이런 상황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대는, 밧달리여, '많은 비구들이 사왓티에서 안거를 지냈다. 그들도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하지 못한 밧달리 비구라고 나를 알 것이다.'라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밧달리여, 그대는 이런 상황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대는, 밧달리여, '많은 비구니들이 사왓티에서 안거를 지냈다. 그들도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하지 못한 밧달리 비구라고 나를 알 것이다.'라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밧달리여, 그대는 이런 상황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대는, 밧달리여, '많은 청신사들이 사왓티에 살고 있다. 그들도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부에 충실하지 못한 밧달리 비구라고 나를 알 것이다.'라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밧달리여, 그대는 이런 상황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대는, 밧달리여, '많은 청신녀들이 사왓티에 살고 있다. 그들도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하지 못한 밧달리 비구라고 나를 알 것이다.'라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밧달리여, 그대는 이런 상황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대는, 밧달리여, '많은 외도의 사문‧바라문들이 사왓티에서 안거를 지냈다. 그들도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하지 못한 밧달리 비구, 사문 고따마의 제자인 어떤 장로비구라고 나를 알 것이다.'라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밧달리여, 그대는 이런 상황도 이해하지 못했다."
"세존이시여, 어리석고 모르고 능숙하지 못함 때문에 제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비구 승가가 받아 지니도록 제정된 학습계목에 대한 닦음을 감당할 수 없다고 선언한 저에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미래의 단속을 위해서 잘못에 대한 참회를 받아주십시오."라고.
"밧달리여, 나에 의해 비구 승가가 받아 지니도록 제정된 학습계목에 대한 닦음(실천)을 감당할 수 없다고 선언한 그대는 어리석고 모르고 능숙하지 못함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다.
136. 밧달리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양면으로 해탈한 비구가 있다. 내가 그에게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나를 위해 진흙탕을 건널 수 있도록 다리 역활을 해 달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가 그냥 지나가 버린다든가, 다른 쪽으로 몸을 돌려 외면한다거나, ‘저는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밧달리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지혜로 해탈한 비구가 있다. ··· 몸으로 체험한 비구가 있다. ··· 견해를 성취한 비구가 있다. ···믿음으로 해탈한 비구가 있다. ··· 법을 따르는 비구가 있다. ··· 믿음을 따르는 비구가 있다. 내가 그에게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나를 위해 진흙탕을 건널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해 달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가 그냥 지나가 버린다든가, 다른 쪽으로 몸을 돌려 외면한다거나, ‘저는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일곱 부류의 성인들은 본서 「끼따기리 경」(M70)에 자세히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일곱 부류의 성인들은 「디가 니까야」 제3권 「확신 경」(D28)과 「앙굿따라 니까야」 제4권 「사람 경」(A7.14)등에도 나타나고 「인시설론 주석서」(PugA.194-195)에 다음과 같이 잘 설명되고 있다.
"여덟 가지 증득(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이 8가지 본삼매를 말함)을 얻은 비구가 지혜를 중히 여기고 사마타로 명상하면서 어떤 특정한 무색계의 증득을 기초로 하여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도와 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 그가 예류도에 너무는 순간에는 '법을 따르는 자(dhammanusan)'라 하고, 예류과에서부터 아라한도까지 여섯 단계에 이를 때에는 '몸으로 체험한 자(kayasakhi)'라 하고, 마지막 아라한과에 이를 때에는 '양면으로 해탈한 자(ubhatobhagavimutti)'라 한다.
여덟 가지 증득을 얻지 못했거나 혹은 색계 4선만을 얻은 자가 오직 지혜를 중히 여기고 위빳사나(유위법들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로 명상하면서 상카라들만을 명상하거나 혹은 네 가지 색계 4선 가운데 어떤 하나를 명상하여 도와 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 그가 예류도에 머무는 순간에는 '법을 따르는 자'라 하고, 예류과에서부터 아라한도까지 여섯 단계에 머물 때에는 '견해를 얻은 자(ditthippatta)'라 하고, 마지막 아라한과에 이를 때에는 '지혜로 해탈한 자(dhammanusari)'라 한다. 여덟 가지 증득을 얻은 자가 믿음을 중히 여기고 사마로 명상하면서 어떤 특정한 증득을 기초로 하여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도와 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 그가 예류도에 머무는 순간에는 '믿음을 따르는 자(saddhanusari)'라 하고, 예류과에서부터 아라한도까지 여섯 단계에 머물 때에는 '몸으로 체험한 자(kayasakhi)'라 하고, 마지막 아라한과에 이를 때에는 '양면으로 해탈한 자'라 한다.
여덟 가지 증득을 얻지 못했거나 혹은 색계 4선만을 얻은 자가 오직 믿음을 중히 여기고 위빳사나로 명상하면서 상카라들만을 명상하거나 혹은 네 가지 색계선 가운데 어떤 하나를 명상하여 도와 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 그가 예류도에 머무는 순간에는 '믿음을 따르는 자(saddhanusari)'라 하고, 예류과에서부터 아라한도까지 여섯 단계에 머물 때에는 '믿음으로 해탈한 자(saddhavimutti)'라 하고, 마지막 아라한과에 이를 때에는 '지혜로 해탈한 자(pannavimutti)'라 한다."(PugA.194-195)
이를 정리해 보면 7가지가 된다. ①법을 따르는 자(dhammanusari) : 예류도에 머무는 순간. ②견해를 얻은 자(ditthippatta) : 예류과에서부터 아라한도까지 여섯 단계. ③지혜로 해탈 한 자(pannavimutti) : 아라한과. ④믿음을 따르는 자(saddhanusari) : 예류도에 머무는 순간. ⑤몸으로 체험한 자(kayasakhi) :예류과부터 아라한도까지의 여섯 단계. ⑥양면으로 해탈한 자(nbhatobhagavimutti) : 아라한과. ⑦믿음으로 해탈한 자(saddhavimutti) : 예류과에서부터 아라한도까지 여섯 단계.
"밧달리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밧달리여, 그대는 그때 양면으로 해탈한 자거나, 지혜로 해탈한 자거나, 몸으로 체험한 자거나, 견해를 성취한 자거나, 믿음으로 해탈한 자거나, 법을 따르는 자거나, 믿음을 따르는 자였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밧달리여, 그때 그대는 결핍되고 비어있고 잘못한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리석고 모르고 능숙하지 못함 때문에 제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비구 승가가 받아 지니도록 제정된 학습계목에 대한 닦음을 받아 지닐 수 없다고 선언한 저에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미래의 단속을 위해서 잘못에 대한 참회를 받아주십시오."
"밧달리여, 나에 으해 비구 승가가 받아 지니도록 제정된 학습계목에 대한 닦음을 감당할 수 없다고 선언한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고 모르고 능숙하지 못함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밧달리여, 그대가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답게 바로 잡았기 때문에 그대를 우리는 받아들인다. 비구여, 이 성스러운 율에서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답게 바로잡고, 미래에 단속하는 자는 향상한다.
137. 여기, 밧달리여, 어떤 비구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하지 못하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면, 나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앎(지.知)과 봄(견.見)의 성취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는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런 곳으로 가서 머무는 그에게 스승도 훈계하고,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도 관찰한 뒤에(알아 본 뒤에) 훈계하고, 신들도 훈계하고, 그 자신도 자신을 스스로 훈계한다. 스승으로부터도훈계를 받고,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로부터도 관찰한 뒤에 훈계를 받고, 신들로부터도 훈계를 받고, 그 자신도 자신을 스스로 훈계하는 그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앎과 봄의 성취를 실현하지 못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하지 못한 자에게 있는 것처럼 이렇게 그것이 있다(실현하지 못함이 있다).
138. 여기, 밧달리여, 어떤 비구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하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면, 나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앎과 봄의 성취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는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런 곳으로 가서 머무는 그에게 스승도 훈계하지 않고,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도 관찰한 뒤에 훈계하지 않고, 신들도 훈계하지 않고, 그 자신도 자신을 스스로 훈계하지 않는다. 스승으로부터도 훈계를 받지 않고,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로부터도 관찰한 뒤에 의 훈계를 받지 않고, 신들로부터도 훈계를 받지 않고, 그 자신이 자신으로부터도 스스로 훈계를 하지 않는 그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앎과 봄의 성취를 실현한다. 그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한 자에게 있는 것처럼 이렇게 그것이 있다.
139. 다시, 밧달리여,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한 자에게 있는 것처럼 이렇게 그것이 있다.
다시, 밧달리여,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라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한 자에게 있는 것처럼 이렇게 그것이 있다.
다시, 밧달리여,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한 자에게 있는 것처럼 이렇게 그것이 있다.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한 자에게 있는 것처럼 이렇게 그것이 있다.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삶에 관한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한 자에게 있는 것처럼 이렇게 그것이 있다.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그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볼 때 그는 감각적 쾌락에 기인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한다.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다. 그 원인 무엇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한 자에게 있는 것처럼 이렇게 그것이 있다(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140.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밧달리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이유로 여기 어떤 비구에게는 거듭 강제하여 승가의 조치를 취합니까?(승가갈마.僧伽羯磨.[kamma)를 합니까)?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이유로 어떤 비구에게는 그렇게 거듭 강제하여 승가의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까?"
"여기, 밧달리여, 어떤 비구는 상습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많은 잘못을 저지른다. 비구들로부터 잘못을 지적 받는 그는 자신의 잘못을 부정한다든가(다른 것에 의해 다른 것을 대처하고), 주제 밖의 이야기에 의해 이야기를 회피한다든가,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낸다. 바르게 고치지 않고, 순응하지 않고, 잘못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고, '승가가 마음에 들어 하는 행동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때, 밧달리여,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의논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 비구는 상습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많이 저지릅니다. 비구들로부터 지적을 받으면,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고, 주제 밖의 이야기에 의해 이야기를 회피하고,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냅니다. 바르게 고치지 않고, 순응하지 않고, 잘못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고, '승가가 마음에 들어 하는 행동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들은 이 사건을 빠르게 가라앉히지 않는 방법을 거듭 적용해 이 비구를 조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밧달리여, 비구들은 이 사건을 빠르게 가라앉히지 않는 방법을 이런 그 비구에게 거듭 적용해 조사한다.
*승가갈마(僧伽羯磨)[karma(산스크리트어), kamma(팔리어)]는 간단히 갈마라고도 한다. 포살(布薩)이나 자자(自恣)와 같은 승가의 규칙적인 행사를 비롯하여, 새로운 의결 사항이나 쟁사(諍事) 등이 생겼을 경우에 승가 구성원들의 의견을 확인하기 위하여 행하는 공식적인 회의이다. 갈마는 원칙적으로 승가 구성원들의 전원 출석에 의해 집행되며, 의결도 전원일치로 승인된다. 한국 불교에서는 대중공사라고도 한다.
141. 여기, 밧달리여, 어떤 비구는 상습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많이 저지른다. 비구들로부터 잘못을 지적 받는 그는 잘못을 부정하지 않고, 주제 밖의 이야기에 의해 이야기를 회피하지 않고,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내지 않는다. 바르게 고치고, 순응하고, 잘못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을 하고, '승가가 마음에 들어 하는 행동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때, 밧달리여,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도반들이여, 이 비구는 상습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많이 저지릅니다. 비구들로부터 잘못을 지적 받는 그는 잘못을 부정하지 않고, 주제 밖의 이야기에 의해 이야기를 회피하지 않고,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바르게 고치고, 순응하고, 잘못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을 하고, '승가가 마음에 들어 하는 행동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존자들은 이 사건을 빠르게 가라앉히는 방법을 거듭 적용해 이 비구를 조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밧달리여, 비구들은 이 사건을 빠르게 가라앉히는 방법을 이런 그 비구에게 거듭 적용해 조사한다.
142. 여기, 밧달리여, 어떤 비구는 우발적으로(고의적이지 않게) 잘못을 저지르고, 많이 저지르지 않는다. 그는 비구들로부터 잘못을 지적 받는 그는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고, 주제 밖의 이야기에 의해 이야기를 회피하고,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낸다. 바르게 고치지 않고, 순응하지 않고, 잘못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고, '승가가 마음에 들어 하는 행동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때, 밧달리여,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도반들이여, 이 비구는 우발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많이 저지르지 않습니다. 비구들로부터 지적을 받는 그는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고, 주제 밖의 이야기에 의해 이야기를 회피하고,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냅니다. 바르게 고치지 않고, 순응하지 않고, 잘못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고, '승가가 마으멩 들어 하는 행동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들이 이 사건을 빠르게 가라앉히지 않는 방법을 거듭 적용해 이 비구를 조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밧달리여, 비구들은 이 사건을 빠르게 가라앉히지 않는 방법을 이런 그 비구에게 거듭 적용해 조사한다.
143. 여기, 밧달리여, 어떤 비구는 우발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많이 저지르지 않는다. 비구들로부터 잘못을 지적 받는 그는 잘못을 부정하지 않고, 주제 밖의 이야기에 의해 이야기를 회피하지 않고,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내지 않는다. 바르게 고치고, 순응하고, 잘못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을 하고, '승가가 마음에 들어 하는 행동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때, 밧달리여,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도반들이여, 이 비구는 우발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많이 저지르지 않습니다. 비구들로부터 잘못을 지적 받는 그는 범계를 부정하지 않고, 주제 밖의 이야기에 의해 이야기를 회피하지 않고,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바르게 고치고, 순응하고, 잘못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을 하고, '승가가 마음에 들어 하는 행동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존자들은 이 사건을 빠르게 가라앉히는 방법을 거듭 적용해 이 비구를 조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밧달리여, 비구들은 이 사건을 빠르게 가라앉히는 방법을 이런 그 비구에게 거듭 적용해 조사한다.
144. 여기, 밧달리여, 어떤 비구는 단순히 믿음과 공경만으로 머문다. 거기서, 밧달리여,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도반들이여, 이 비구는 단순히 믿음과 공경만으로 머뭅니다. 만약일 우리가 이 비구에게 (잘못에 대해서) 거듭 강제하여 승가의 조치를 취한다하더라도 단순한 믿음과 공경이 그로부터 쇠퇴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라고.
예를 들면, 밧달리여, 애꾸눈인 사람이 있다. 그의 친구와 동료들과 일가친척들은 '나머지 한 눈마저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라고 하면서 그 하나의 눈을 보호할 것이다. 이처럼, 밧달리여, 여기 어떤 비구는 단순히 믿음과 공경만으로 머문다. 거기서, 밧달리여,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도반들이여, 이 비구는 단순히 믿음과 공경만으로 머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비구에게 거듭 강제하여 승가의 조치를 취한다하더라도 단순한 믿음과 공경이 그로부터 쇠퇴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라고.
밧달리여, 이런 원인, 이런 이유 때문에 여기 어떤 비구에게는 거듭 강제하여 승가의 조치를 취한다. 밧달리여, 이런 원인, 이런 이유 때문에 여기 어떤 비구에게는 거듭 강제하여 승가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단순히 믿음과 공경만으로 머문다'는 것은 스승과 은사를 향한 약간의 세속적인 믿음과 약간의 세속적인 공경으로 머문다는 뜻이다. 새로 출가한 자는 출가의 공덕을 알지 못하여 스승이나 은사를 향한 단순한 믿음으로 머문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약간의 도움을 받아 출가자로 머물 때 초월지를 얻는 큰 장로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판단으로 '꼭 훈계를 해야만 되는 것은 훈계하고, 그 이외는 하지 않는다'라고 세존께서 이것을 말씀하셨다.(MA.iii.154)
145.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이유 때문에 예전에는 더 적은 학습계목이 있었고 더 많은 비구들이 궁극의 지혜를 성취했습니까?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이유 때문에 지금은 더 많은 학습계목이 있고 더 적은 비구들이 궁극의 지혜를 성취합니까?"
"밧달리여, 그것은 이러하다. 중생들이 근기가 약할 때(쇠퇴할 때), 정법이 사라질 때, 더 많은 학습계목이 있고 더 적은 비구들이 궁극의 지혜를 성취한다. 밧달리여, 여기 번뇌의 영향을 받는 어떤 법들이(번뇌의 기반이 되는 사건들) 승가에 나타나지 않는 한 스승은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하지 않는다.
*이 말씀은 "번뇌 거리가 되는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 사건에 대한 학습계목을 제정하여 공표하지 않는다"는 「율장」에 나타나는 세존의 원칙을 언급하시는 것이다.
밧달리여, 여기 번뇌의 영향을 받는 어떤 법들이 승가에 나타날 때 스승은 그 번뇌의 영향을 받는 법들을 물리치기 위해 제자들에게 학습 계목을 제정한다. 밧달리여, 승가의 규모가 커지지 않는 한 여기 번뇌의 영향을 받는 어떤 법들은 승가에 나타나지 않는다. 밧달리여, 승가의 규모가 커지면 번뇌의 영향을 받는 어떤 법들이 승가에 나타난다. 그 번뇌의 영향을 받는 법들을 물리치기 위해 제자들에게 학습 계목을 제정한다.
밧달리여, 승가가 으뜸가는 얻음에 도달하지 않는 한, 으뜸가는 명성에 도달하지 않는 한, 심오한 앎에 도달하지 않는 한(많이 배우지 않는 한), 오래되지 않는 한 여기 번뇌의 영향을 받는 어떤 법들은 승가에 나타나지 않는다. 밧달리이여, 승가가 오래될 때 여기 번뇌의 영향을 받는 어떤 법들이 승가에 나타난다. 그러면 스승은 그 번뇌의 영향을 받는 법들을 물리치기 위해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한다.
146. 밧달리여, 내가 그대들에게 좋은 혈통을 가진 젊은 말의 비유로 법문을 설했을 때 그대들 몇 명이 거기에 있었다. 밧달리여, 그대는 그것을 기억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밧달리여, 그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제가, 세존이시여, 오랫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닦음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밧달리여, 단지 그런 원인, 그런 이유만이 아니다. 더욱이 밧달리여, 나는 그대에 대해 오랫동안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리고 있었다. '이 어리석은 자는 내가 법을 설하더라도 뜻을 파악하고 마음에 새기고 온 마음을 기울이고 귀 기울인 자로서 법을 듣지 않는다.'라고. 하지만, 밧달리여, 나는 그대에게 좋은 혈통을 가진 젊은 말의 비유의 법문을 설하겠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밧달리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147. "예를 들면, 밧달리여, 능숙한 말 조련사는 건강하고 좋은 혈통을 가진 말을 얻은 뒤에 첫번째로 굴레를 채우고 훈련을 시킨다. 예전에 그런 훈련을 해 본 적이 없는, 굴레를 차는 훈련을 받는 그 말은 어떤 훈련에 대해서든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버둥거린다. 계속되는 훈련, 점진적인 훈련을 받는 그 말은 그 상태에 대해 익숙해진다.
밧달리여, 계속되는 훈련, 점진적인 훈련을 받은 건강하고 좋은 혈통을 가진 말이 그 상태에 익숙해질 때, 그 말 조련사는 더 나아가 마구를 채우는 훈련을 시킨다. 예전에 그런 훈련을 해본 적이 없는, 마구를 차는 훈련을 받는 그 말은 어떤 훈련들에 대해서든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버둥거린다. 계속되는 훈련, 점진적인 훈련을 받는 그 말은 그 상태에 대해 익숙해진다.
밧달리여, 계속되는 훈련, 점진적인 훈련을 받은 건강하고 좋은 혈통을 가진 말이 그 상태에 익숙해질 때, 그 말 조련사는 더 나아가 보조를 맞추고, 둥글게 돌고, 뒷발로 차고, 달리고, 돌진하고, 왕의 품성을 갖추고, 왕의 자질을 갖추고, 최상의 속력을 갖추고, 최상의 말이 되고, 최상의 우정을 갖추는 훈련을 시킨다. 그 말이 보조를 맞추고, 둥글게 돌고, 뒷발로 차고, 달리고, 돌진하고, 왕의 품성을 갖추고, 왕의 자질을 갖추고, 최상의 속력을 갖추고, 최상의 말이 되고, 최상의 우정을 갖추는 훈련을 받는 그 말은 어떤 훈련에 대해서든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버둥거린다. 계속되는 훈련, 점진적인 훈련을 받는 그 말은 그 상태에 대해 익숙해진다.
밧달리여, 계속되는 훈련 점진적인 훈련을 받은 건강하고 좋은 혈통을 가진 말이 그 상태에 익숙해질 때, 능숙한 조련사는 최고로 단장하고 돌보아 주는 보답을 한다. 밧달리여, 이들 열 가지 요소들을 갖춘 건강하고 좋은 혈통을 가진 말은 왕에게 어울리고 왕에게 쓰일만하고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밧달리여, 열 가지 법들을 갖춘 비구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시중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다. 어떤 열 가지인가?
여기, 밧달리여, 비구는 무학(無學)의 바른 견해를 갖춘다. 무학의 바른 사유를 갖춘다. 무학의 바른 말을 갖춘다. 무학의 바른 행위를 갖춘다. 무학의 바른 생계를 갖춘다. 무학의 바른 정진을 갖춘다. 무학의 바른 마음챙김을 갖춘다. 무학의 바른 삼매를 갖춘다. 무학의 바른 지혜를 갖춘다. 무학의 바른 해탈을 갖춘다.
밧달리여, 이와 같은 열 가지 법들을 갖춘 비구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시중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밧달리 존자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밧달리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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