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67. 짜뚜마 경(cātumasuttaṃ)
15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짜뚜마에서 아말라끼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오백 명의 비구들이 세존을 친견하기 위해 짜뚜마에 도착했다. 새로 온 방문객 비구들은 그곳에 이미 거주하고 있는 비구들과 함께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잠자리와 좌구를 준비하고, 발우와 가사를 정리하면서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드는 이들은 누구인가? 생각건대 어부들이 그물로 물고기를 끌어 올릴 때와 같구나."라고.
"이들은, 세존이시여, 세존을 친견하기 위해 짜뚜마에 도착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오백 명의 비구들입니다. 새로 온 방문객 비구들이 여기에 이미 거주하고 있는 비구들과 함께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잠자리와 좌구를 준비하고, 발우와 가사를 정리하면서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난다여, 그대는 나의 이름으로 '스승께서 존자들을 부릅니다'라고 그 비구들을 불러오라."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그 비구들에게 갔다. 가서는 그 비구들에게 "스승께서 존자들을 부릅니다."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그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한 뒤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누구이길래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드는가? 생각건대 어부들이 그물로 물고기를 끌어 올릴 때와 같구나."라고.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을 친견하기 위해 짜뚜마에 도착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오 백명 정도의 비구입니다. 그런 저희 새로 온 방문객 비구들이 여기에 이미 거주하고 있는 비구들과 함께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잠자리와 좌구를 준비하고, 발우와 가사를 정리하면서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가라,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내 곁에서 떠나라고 말한다. 그대들은 내 곁에 있지 말라."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났다. 그리고 비구들은 침구와 좌구를 정리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떠났다.
158. 그런데 그때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은 어떤 해야 할 일 때문에 집회소에 모여 있었다.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은 멀리서 그 비구들이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서는 그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그대 존자들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저희들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존자들께서는 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참으로 우리가 세존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도반들이여"라고 그 비구들은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기뻐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반겨주십시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예전에 세존께서는 비구 대중을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지금 비구 대중을 측은히 여겨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여기에는 이 법과 율에 최근에 온,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그들 중에는 달라지는 자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물을 얻지 못하는 어린 종자 가운데는 달라지는 것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존이시여, 여기에는 이 법과 율에 최근에 온,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그들 중에는 달라지는 자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어미를 보지 못하는 어린 송아지 중에는 달라지는 송아지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송아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기에는 이 법과 율에 최근에 온, 출가핝비 오래지 않은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그들 중에는 달라지는 자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기뻐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대중을 반겨주십시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예전에 세존께서는 비구 대중을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지금 비구 대중을 측은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159. 그때 사함빠디 범천이 세존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리고서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린 팔을 펴고 편 팔을 구부리듯 그렇게 빠른 시간에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 세존 앞에 나타났다.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 옷을 입고서 세존을 향해 합장하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기뻐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반겨주십시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예전에 세존께서는 비구 대중을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지금 비구 대중을 측은히 여겨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여기에는 이 법과 율에 최근에 온,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그들 중에는 달라지는 자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물을 얻지 못하는 어린 종자 가운데는 달라지는 것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존이시여, 여기에는 이 법과 율에 최근에 온,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그들 중에는 달라지는 자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어미를 보지 못하는 어린 송아지 중에는 달라지는 송아지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송아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기에는 이 법과 율에 최근에 온, 출가핝비 오래지 않은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그들 중에는 달라지는 자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기뻐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대중을 반겨주십시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예전에 세존께서는 비구 대중을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지금 비구 대중을 측은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160. 이렇게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과 사함빠띠 범천은 씨앗의 비유와 송아지의 비유로 세존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었다. 그러자 마하목갈라 존자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일어나시오.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과 사함빠띠 범천이 씨앗의 비유와 송아지의 비유를 통해 세존의 마음을 되돌렸습니다."라고.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비구들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리뿟따여, 내가 비구 대중들을 보고 떠나라고 할 때 그대에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떠나라고 하셨다(비구 승가를 내치셨다). 이제 세존께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에 전념하여 머무실 것이다. 우리도 이제 관심을 두지 않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으로 머물러야겠다.'" 라고.
"그만하라, 사리뿟따여, 그만하라, 사리뿟따여. 사리뿟따여, 그대는 다시는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
그리고 세존께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갈라나여, 내가 비구들에게 떠나라고 할 때 그대에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떠나라고 하셨다. 이제 세존께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에 전념하여 머무실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나와 사리뿟따 존자가 비구 승가를 보호할 것이다.'"라고.
"훌륭하고 훌륭하다, 목갈라나여! 참으로, 목갈라나여, 나 또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비구 대중을 보호해야 한다."
*"목갈라나 존자는 그곳에 남아 있었지만 천안(dibba-cakkhu)으로 범천이 가는 것을 보았고, 천이계(dibba sota-dhatu)로 간청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타심통(cetopariya-nana)으로 세존께서 마음을 바꾸신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어떤 비구를 보내어 부를 때 가는 것은 옳지 않다. 스승께서 사람을 보내기 전에 가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께서는 마음을 바꾸었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MA.ii.175)
*"'우리도 이제 관심을 두지 않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으로 머물러야겠다(mayampi dani appossukka ditthadhammasukhaviharam anuyutta viharissama).'라고 하였다. 이것은 '세존께서 이제 다른 일에 대해 일체 관심을 두지 않고 과(果)의 증득(phala-samapatti)에 몰입하여 머물고자 하신다. 스승께서 이제 자신이 하시고 싶은 대로 머무실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훈계하는 것에서 벗어났다. 남에게 훈계를 해서 무엇하겠는가? 이제 우리도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리라.'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MA.ii.175-176)
*사리뿟따 존자는 이 경우에 실수하여 자기의 책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비구 승가는 두 분의 큰 장로에게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그에게 '그만하라'라고 말문을 닫게 하셨다. 그러나 목갈라나 장로는 자신의 책임을 알아차리고 있었기 때문에 세존께서 그를 칭찬하신 것이다."(MA.ii.176)
161.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의심해야 하는 이런 네 가지 두려움이 있다. 어떤 넷인가? 파도의 두려움, 악어의 두려움, 소용돌이의 두려움, 상어의 두려움이다. 비구들이여,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의심해야 하는 이런 네 가지 두려움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기 이 법과 율에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의심해야 하는 네 가지 두려움이 있다. 어떤 넷 인가? 파도의 두려움,악어의 두려움, 소용돌이의 두려움, 상어의 두려움이다.
162. 비구들이여, 무엇이 파도의 두려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믿음이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라고 생각하여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그러면 그런 그 비구를 동료 수행자들이 훈계하고 가르친다.
'그대는 이렇게 나아가야 하고, 그대는 이렇게 물러나야 하고, 그대는 이렇게 앞을 보아야 하고, 그대는 이렇게 돌아보아야 하고, 그대는 이렇게 구부려야 하고, 그대는 이렇게 펴야하고, 그대는 이렇게 가사와 발우와 의복을 지녀야 합니다.'라고.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예전에 재가자였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훈계하고 가르쳤다. 그런데 생각건대 아들 정도이고, 생각건대 손자 정도인 이들이 우리를 훈계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짜증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그는 닦음을 포기하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파도의 두려움이 두려워 닦음을 포기하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간 비구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파도의 두려움이라는 것은 분노와 절망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파도의 두려움이라고 불린다.
163. 비구들이여, 무엇이 악어의 두려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믿음이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라고 생각하여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그러면 그런 그 비구를 동료 수행자들이 훈계하고 가르친다.
'그대는 이것은 씹어도 되고, 그대는 이것은 씹지 않아야 하고, 그대는 이것은 먹어도 되고, 그대는 이것은 먹지 않아야 하고, 그대는 이것은 맛볼 수 있고, 그대는 이것은 맛보지 않아야 하고, 그대는 이것은 마실 수 있고, 이것은 마시지 않아야 합니다. 그대가 씹어도 되는 적당한 것이고, 그대가 씹지 않아야 하는 적당하지 않은 것이고, 그대가 먹어도 되는 적당한 것이고, 그대가 먹지 않아야 하는 적당하지 않은 것이고, 그대가 맛보아도 되는 적당한 것이고, 그대가 맛보지 않아야 하는 적당하지 않은 것이고, 그대가 마셔도 되는 적당한 것이고, 그대가 마시지 않아야 하는 적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적당한 때에 그대는 씹어도 되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 그대는 씹지 않아야 하고, 적당한 때에 그대는 먹어도 되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 그대는 먹지 않아야 하고, 적당한 때에 그대는 맛보아도 되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 그대는 맛보지 않아야 하고, 적당한 때에 그대는 마셔도 되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 그대는 마시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예전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씹고, 원하지 않은 것는 씹지 않는 재가자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먹고, 원하지 않는 것은 먹지 않는 재가자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맛보고, 원하지 않은 것은 맛보지 않는 재가자였다. 우리는 원하는 것은 마시고, 원하지 않은 것은 마시지 않는 재가자였다. 우리는 적당한 것도 씹었고, 적당하지 않은 것도 씹었다. 우리는 적당한 것도 씹었고, 적당하지 않은 것도 씹었다. 우리는 적당한 것도 먹었고, 적당하지 않은 것도 먹었다. 우리는 적당한 것도 맛 보았고, 적당하지 않은 것도 맛보았다. 우리는 적당한 것도 마셨고, 적당하지 않은 것도 마셨다. 우리는 적당한 때에도 씹었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도 씹었다. 우리는 적당한 때에도 먹었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도 먹었다. 우리는 적당한 때에도 맛보았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도 맛보았다. 우리는 적당한 때에도 마셨고, 적당하지 때에도 마셨다. 신심 깊은 장자들이 낮의 적당하지 않은 때에 우리에게 맛있는 딱딱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공양 올리는데, 생각건대, 이 비구들은 우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 같구나.'라고.
짜증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그는 닦음을 포기하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악어의 두려움이 두려워 닦음을 포기하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간 비구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악어의 두려움이란 것은 음식에 대한 절제를 모르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164. 비구들이여, 무엇이 소용돌이의 두려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믿음이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라고 생각하여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이렇게 출가한 그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몸을 보호하지 않고, 말을 보호하지 않고, 마음을 보호하지 않고,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않고, 감각의 근들도 단속하지 않은 채 마을이나 성읍으로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들 만들고 부여한 것을 즐기는 장자나 장자의 아들을 본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예전에 재가자였을 때 우리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들이 만들고 부여한 것을 즐겼다. 나의 가문에는 재물이 있다.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나는 닦음을 포기하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가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지어야겠다.'라고.
그는 닦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소용돌이의 두려움이 두려워 닦음을 포기하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간 비구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소용돌이의 두려움이라는 것은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소용돌이의 두려움이라고 불린다.
165. 비구들이여, 무엇이 상어의 두려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믿음이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라고 생각하여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이렇게 출가한 그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몸을 보호하지 않고, 말을 보호하지 않고, 마음을 보호하지 않고,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않고, 감각의 근들도 단속하지 않은 채 마을이나 성읍으로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제대로 몸도 감싸지도 않고 제대로
옷을 입지 않은 여인을 본다. 그에게 제대로 몸을 감싸지도 않고 제대로 옷을 입지 않은 그런 여인을 본 뒤에 애욕으로 마음을 더럽힌다. 그는 애욕이 더럽힌 마음 때문에 닦음을 포기하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상어의 두려움이 두려워 닦음을 포기하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간 비구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상어의 두려움이라는 것은 여인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여기 이 법(法)과 율(律)에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의심해야 하는 네 가지 두려움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짜뚜마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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