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68. 날라까빠나 경(naḷakapānasuttaṃ)
16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살라에서 날라까빠나의 빨라사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잘 알려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세존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그들은 아누룻다 존자, 받디야 존자, 끼밀라 존자, 바구 존자, 꼰단냐 존자, 레와따 존자, 아난다 존자와 그리고 다른 잘 알려진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이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노천에 앉아 계셨다. 세존께서는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 대해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범행을 기뻐하고 있는가?"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 비구들은 침묵했다.
두 번째도 세존께서는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 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범행을 기뻐하고 있는가?"라고.
두 번째도 그 비구들은 침묵했다.
세 번째도 세존께서는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 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범행을 기뻐하고 있는가?"라고.
세번 째도 그 비구들은 침묵했다.
*꼬살라의 날라까빠나 성읍(Nalakapana nigama)은 그곳에 있는 날라까빠나 호수(pokkharani)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주석서는 이 이름이 붙여진 전설을 자따까를 인용하면서 길게 설명하고 있다.(MA.ii.178-180) 이 마을에는 께따 숲(Keta-vana)과 빨라사 숲(Palasa-vana)이 있었다고 하는데 본경은 빨라사 숲에서 설해진 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제6권 「날라까빠나 경」(A10.67-68)도 이곳 빨라사 숲에서 설하신 것이다.
*바구 존자(ayasma Bhagu)는 사꺄족 출신이며 본경과 「율장」과 주석서 문헌에서는 성도 후에 까삘라왓투를 방문한 세존을 따라서 사까의 아누삐야(Anupiya)에서 아누룻다 존자(ayasma Anuruddha), 아난다(Ananda), 끼밀라(Kimbila), 데와닷따(Devadatta) 같은 왕자와 이발사 우빨리(Upali)를 비롯한 많은 사꺄의 청년들과 함께 출가하였다고 나타난다. (Vin.ii.180;AA.i.133;iv.127) 그는 발라깔로냐까라 마을(Balakalonakara)에 머물면서 거기서 아라한과를 얻었는데 이때 읊은 게송이 장로게(Thag.271-4)로 전해온다.
*꼰단냐 존자(ayasma Kondanna)는 사왓티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베다에 능통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원래 다나(Dhana)였다. 그가 꾼다다나 혹은 꼰단냐라고 불리게 된 데는 이상한 인연이 있다. 그는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였는데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신은 모르지만 젊은 여인의 모습이 항상 그를 따라 다녔다. 탁발을 가면 여인네들이 그에게 두 사람분의 음식을 주면서 '하는 당신 여자 친구의 것입니다.'하면서 놀렸고 비구들도 그를 '우리 존자는 참으로 꼬부라지기도(꾼다,kunda/konda)하지.'라면서 놀렸다고 한다. 그래의 그의 이름이 꾼다다나 혹은 꼰단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상심하여 탁발을 갈 수도 없었고 제대로 수행을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그에게 늘 공양을 베풀기로 약속을 하여 탁발을 가지 않고도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여인의 모습은 없어졌다고 한다.
167. 그러자 세존에게 '내가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 물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떠오르셨다. 세존께서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아누룻다여, 그대들은 범행을 기뻐하고 있는가?"라고 말씀하셨다.
"참으로, 세존이시여, 저희는 범행을 기뻐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아누룻다들이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범행을 기뻐하는 것은 그대들에게 어울리는 (적절한) 것이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한껏 치장하고 새까맣고 윤기 흐르는 머리칼을 나풀대며 즐길 것 많던 나이인 인생의 초년에 부모와 친지들을 슬픔에 몰아 넣고 수염과 머리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그런 그대들은, 아누룻다들이여, 왕의 명령 때문에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것도 아니고, 도둑의 협박 때문에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것도 아니고, 빚 때문에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것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에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것도 아니고, 생계 때문에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떨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라면서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아누룻다들이여, 이렇게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누룻다들이여, 감각적 쾌락들을 멀리 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을 멀리 떠난 희열(기쁨)과 행복(즐거움) 또는 그보다 더 평화로운 경지를 성취하지 못한 그에게 탐욕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성냄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해태와 혼침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들뜸과 후회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의심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싫어함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권태로움(게으름)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문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는 감각적 쾌락들을 멀리 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을 멀리 떠난 희열과 행복 또는 그보다 더 평화로운 다른 것을 성취하지 못한다(성취하지 못하면 이와 같이 된다).
*""탐욕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문다(tassa abhijjha pi cittam pariyadaya titthati)'고 하셨다. 감각적 쾌락들(kama)과 선하지 않은 법들(akusaladhamma)을 멀리 떠났으므로 초선 제2선이라 불리는 희열과 행복(piti-sukha)을 얻어야 한다. 만약 감각적 쾌락들을 멀리 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을 멀리 떠난 희열과 행복을 얻지 못하거나 혹은 더 높은 두 가지 禪(제3선과 제4선)과 네 가지 道의 더 평화로운 행복(santatara sukha)을 얻지 못하면, 이런 탐욕등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문다는 말씀이다."(MA.ii.181)
*'싫어함'은 arati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높은 유익한 법들(adhikusala dhamma)에 대한 불만스러움(ukkanthitata)이다."(MA.ii.181)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누룻다들이여, 감각적 쾌락들을 멀리 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을 멀리 떠난 희열과 행복 또는 그보다 더 평화로운 다른 것을 성취한 그에게 탐욕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않고, 성냄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않고, 해태와 혼침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않고, 들뜸과 후회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않고, 의심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않고, 싫어함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않고, 권태로움도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않는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는 감각적 쾌락들을 멀리 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을 멀리 떠난 희열과 행복 또는 그보다 더 평화로운 다른 것을 성취한다(성취하면 이와 같이 된다).
168.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나에 대해 '여래에게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과보가 괴로움인 번뇌들이 버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하면서(헤아리면서) 어떤 것을 수용하고,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감내하고,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피하고,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제거한다.'라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는 '여래에게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과보가 괴로움인 번뇌들이 버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수용하고,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감내하고,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피하고,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제거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에 대해 ‘여래에게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과보가 괴로움인 번뇌들이 버려졌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수용하고,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감내하고,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피하고,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제거한다.’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여래에게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과보가 괴로움인 번뇌들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예를 들면, 아누룻다들이여,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는 다시 자라지 못한다. 이처럼, 아누룻다들이여, 여래에게 오염원이고 미래에 다시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과보가 괴로움인 번뇌들은 모두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수용하고,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감내하고,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피하고, 숙고하면서 어떤 것을 제거한다(버린다).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함으로써, 감내함으로써, 피함으로써, 버림으로써 번뇌들을 없애는 이 네 가지 수행 방법은 본서 제1권 「모든 번뇌 경」(M2)에서 ③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④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⑤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⑥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로 포함되어 나타나고 있으니 참조하기 바람.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이유를 보기에 여래는 몸이 무너져 죽은 제자의 태어남에 대해서 '누구는 이런 곳에 태어났고, 누구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말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 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아누룻다들이여, 여래가 몸이 무너져 죽은 제자의 태어남에 대해서 '누구는 이런 곳에 태어났고, 누구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탁발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나를 이렇게 알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아누룻다들이여, 믿음이 있고, 큰 외경심이 있고, 큰 환희가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있다. 그들은 그 말을 들은 뒤에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들에게, 아누룻다들이여, 그것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169.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런 이름의 비구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에 대해 '궁극의 지혜에 확고하다[아라한].'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존자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런 이름의 비구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에 대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오하분결.五下分結)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하고,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니, 그 세계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불환자.不還者)]'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존자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런 이름의 비구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에 대해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더 돌아올 자[일래자.一來者]이니, 한 번만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존자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런 이름의 비구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에 대해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흐름에 든 자[예류자.預流者]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자, 해탈이 확실한 자,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존자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170.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비구니가 '이런 이름의 비구니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 비구니에 대해 '궁극의 지혜에 확고하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비구니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법은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비구니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 비구니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녀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비구니가 '이런 이름의 비구니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 비구니에 대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하고,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니, 그 세계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비구니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법은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비구니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 비구니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녀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비구니가 '이런 이름의 비구니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 비구니에 대해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더 돌아올 자이니, 한 번만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비구니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법은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비구니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 비구니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녀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비구니가 '이런 이름의 비구니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 비구니에 대해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흐름에 든 자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자, 해탈이 확실한 자,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비구니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법은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비구니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비구니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 비구니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녀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171.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청신사가 '이런 이름의 청신사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 청신사에 대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하고,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니, 그 세계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청신사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청신사의 법은 이러했고, 그 청신사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청신사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청신사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청신사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 청신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청신사는 편안히 머문다.
여기, 아누룻다여, 어떤 청신사가 '이런 이름의 청신사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 청신사에 대해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더 돌아올 자이니, 한 번만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청신사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청신사의 법은 이러했고, 그 청신사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청신사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청신사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청신사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 청신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청신사는 편안히 머문다.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청신사가 '이런 이름의 청신사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 청신사에 대해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흐름에 든 자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자, 해탈이 확실한 자,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청신사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청신사의 법은 이러했고, 그 청신사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청신사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청신사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청신사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 청신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청신사는 편안히 머문다.
172.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청신녀가 '이런 이름의 청신녀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 청신녀에 대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하고,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니, 그 세계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청신녀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청신녀의 법은 이러했고, 그 청신녀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청신녀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청신녀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청신녀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 청신녀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녀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청신녀는 편안히 머문다.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청신녀가 '이런 이름의 청신녀가 임종했다. 세존께서는 그 청신녀에 대해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더 돌아올 자]이니, 한 번만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청신녀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청신녀의 법은 이러했고, 그 청신녀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청신녀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청신녀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청신녀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 청신녀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녀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청신녀는 편안히 머문다.
여기, 아누룻다들이여, 어떤 청신녀가 '이런 이름의 청신녀가 몸이 무너져 죽었다. 세존께서는 그 청신녀에 대해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흐름에 든 자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자, 해탈이 확실한 자,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청신녀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청신녀의 법은 이러했고, 그 청신녀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청신녀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청신녀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청신녀에 대해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 청신녀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녀는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들이여, 청신녀는 편안히 머문다.
이렇게, 아누룻다들이여, 여래가 임종해서 가버린 제자의 태어남에 대해서 '누구는 이런 곳에 태어났고, 누구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탁발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나를 이렇게 알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아누룻다들이여, 믿음이 있고, 큰 외경심이 있고, 큰 환희가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있다. 그들은 그 말을 들은 뒤에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들에게, 아누룻다들이여, 그것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아누룻다 존자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날라까빠나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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