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86. 앙굴리말라 경(aṅgulimālasuttaṃ)

실론섬 2016. 5. 3. 15:44

MN 86. 앙굴리말라 경(aṅgulimālasuttaṃ)

 

34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영토에 앙굴리말라라는 강도가 있었다. 그는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살해와 파괴를 일삼고 모든 생명들에게 자비가 없었다. 그때문에 마을도 마을이 아니게 되고 성읍도 성읍이 아니게 되고 지방도 지방이 아니게 황폐하고 피폐하게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인 뒤에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녔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시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사왓티로 탁발을 가셨다. 사왓티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처소를 정돈하시고 도적 앙굴리말라가 있는 길로 걸어가셨다. 소 치는 사람들과 양 치는 사람들과 농부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이 세존께서 도적도 앙굴리말라가 있는 길로 걸어 가시는 것을 보았다. 보고서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이 길을 가지 마십시오. 사문이시여, 이 길에는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살해와 파괴를 일삼고 모든 생명들에게 자비가 없는 앙굴리말라라는 도적이 있습니다. 그때문에 마을도 마을이 아니게 되고 성읍도 성읍이 아니게 되고 지방도 지방이 아니게 황폐하고 피폐하게 되었습니다. 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여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닙니다. 참으로 사문이여, 이 길을 열 사람이나 스무 사람이나 서른 사람이나 마흔 사람이나 쉰 사람이 모여서 함께 갑니다. 그래도 그들은 도적 앙굴리말라의 손에 죽음을 당합니다(손아귀에 걸려듭니다)."라고.

이렇게 말씀드렸을 때, 세존께서는 침묵하며 걸어가셨다. 두 번째도 소치는 사람들과 ··· 세 번째도 소 치는 사람들과 양 치는 사람들과 농부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이 세존께서 도적 앙굴리말라가 있는 길로 걸어 가시는 것을 보았다. 보고서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이 길을 가지 마십시오. 사문이시여, 이 길에는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살해와 파괴를 일삼고 모든 생명들에게 자비가 없는 앙굴리말라라는 도적이 있습니다. 그때문에 마을도 마을이 아니게 되고 성읍도 성읍이 아니게 되고 지방도 지방이 아니게 황폐학고 피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여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닙니다. 참으로 사문이여, 이 길을 열 사람이나 스무 사람이나 서른 사람이나 마흔 사람이나 쉰 사람이 모여서 함께 갑니다. 그래도 그들은 도적 앙굴리말라의 손에 죽음을 당합니다."라고. 

 

*"손가락으로 목걸이(화환)을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닌다(angulinam malam dhareti)라고 해서 '앙굴리말라(Angulimala)라고 했다. 무슨 까닭으로 걸고 다녔는가? 스승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앙굴리말라는 꼬살라 국왕의 궁중제관이었던 박가와(Bhaggava)라는 이름의 바라문을 아버지로 만따니(Mantani)라는 이름의 바라문 여자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그가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에 모든 도시의 무기들에 불이 났고, 왕궁의 길조에도 침실에 놓여있던 칼과 막대기에도 불이 났다. 바라문이 밖으로 나가 별자리를 살펴보다가 도둑의 별자리 아래에서 태어난 것을 알고 왕을 찾아가 쾌적한 침실을 원했다. 
왕은 '스승이시여, 쾌적한 침실이 어디 있습니까? 내 길상의 무기에 불이 났습니다. 왕국이나 내 생명에 무슨 변고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왕이여, 두려워 마십시오. 내 집에 남자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의 영향으로 궁궐뿐만 아니라 온 도시의 무기들에 불이 났습니다.' '스승이여,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대왕이여, 도둑이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도둑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왕국을 멸망시킬 도둑입니까?' '대왕이여, 한 사람의 도둑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왕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대왕이여, 그를 죽이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왕은 말했다. '한 사람의 도둑이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천 까리사나 되는 넓은 들판에 한 알의 벼이삭과 같습니다. 그냥 그를 키우십시오.' 그의 이름을 지으려 할 때 침실에 놓여있던 길상검과 막대기에도 불이 나고 덮개 위에 놓여있던 화살에도 불이 났지만 아무것도 손상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이름을 아힘사까(Ahimsaka, 아무것도 해치지 않는 자)라고 지었고, 얼마후 학업과 기술을 익히도록 하기 위해 딱까실라(Takkasila)로 보냈다. 
그는 법다운 제자가 되어 학업에 전념했다. 소임에도 충실했고 시봉도 성심껏 잘했고 마음에 들게 행하고 고운 말을 했다. 나머지 제자들보다 더 사랑을 받았다. 그들은 '젊은 바라문 아힘사까가 온 이후로 우리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그를 파멸시킬 것인가?'라고 앉아서 궁리를 했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보다 월등한 지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지혜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소임도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에 소임을 잘못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출생 신분이 좋았기 때문에 신분이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스승에게서 그를 떼어놓으면 그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계략이 떠올랐다. 그들은 스승을 찾아가 아힘사까가 스승을 배신했다는 거짓을 고했다. 스승은 처음에는 믿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호되게 나무라지만 결국 그 말을 믿게 되고 자기 부인과 아힘사까 사이에 부정한 관계가 있었다고 의심하면서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러다 '내가 이 제자를 죽이면 사방에 명성이 널리 퍼진 스승이 가지 곁에 학업을 배우러 온 학생에게 화르르 내어 생명을 앗아갔다.'라고 생각하면서 다시는 어떤 사람도 학업을 배우러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 이득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배움이 끝난 뒤에 제자들이 스승에게 올리는 선물을 떠올렸다. 
그는 아힘사까에게 제자가 스승께 올리는 선물로 천 명의 오른 손가락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아히사까는 바라문의 궁중제관의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스승은 지금까지 배운 학업과 기술에 대해 감사의 선물을 올리지 않으면 그 학업은 결실을 볼 수 없다면서 요구했고, 아힘사까는 다섯 개의 무기를 들고 스승께 절을 올리고 숲으로 들어갔다.그는 숲의 입구나 중앙이나 출구에서 사람들을 죽였다. 본래는 지혜를 가졌지만 생명을 죽이면서 그의 마음은 안정되지 못했고 서서히 숫자를 세는 것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손가락(anguli)를 뚫어 목걸이(mala)를 만들어 목게 걸고 다녔다. 그리하여 앙굴리말라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밤에는 마을 안으로 들어와 대문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여 마을과 성읍을 황폐화시켰다. 불안한 사람들이 왕궁 앞으로 모여들어 앙굴리말라라는 도적이 나타나 사람들을 죽인다고 울면서 대왕께 고했다. 앙굴리말라의 아버지인 박가와는 '분명 내 아들이다.'라고 알아차리고 부인에게 말했다. '앙굴리말라라는 도적이 나타났는데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분명 그대의 아들 아힘사까입니다. 이제 왕이 그를 붙잡아 들일 것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부인은 남편에게 아들을 데려올 것을 간청했지만 남편은 두려움으로 거절했다. 어머니의 가슴에 연민이 생겼고 내가 가서 내 아들을 데리고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길을 나섰다. 바로 그날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세상을 굽어 살펴 보시다가 앙굴리말라를 보시고 '내가 가면 이 사람에게 축복이 있을 것이다. 마을이 없는 숲에 서서 네 구절로 된 게송을 듣고 나의 곁에 춝하여 육신통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만약 내가 가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그에게 호의를 베풀리라고 생각하시면서 아침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탁발하러 갔다가 공양을 마치고 그를 거두고자 승원을 나섰고, 그 뜻을 보이기 위해 '그때 세존께서는'이라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MA.iii.328-331) 

 

348. 그러나 세존께서는 침묵하며 걸어가셨다. 도적 앙굴리말라가 멀리서 오고 있는 세존을 보았다. 보고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경의롭다, 참으로 놀랍다. 이 길은 열 사람이나 스무 사람이나 서른 사람이나 마흔 사람이나 쉰 사람이 모여서 함께 간다. 그래도 그들은모두 내 손에 죽음을 당한다. 그런데 이 사문은 둘도 아니고 혼자 운명에  끌린 듯이(강제된 듯이) 걸어 온다. 내가 이 사문의 목숨을 빼앗아야겠다.'라고.   

도적 앙굴리말라는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 통을 매고 세존의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세존께서는 도적 앙굴리말라가 온 힘을 다해 최대한 빨리 달려 가도 보통 걸음으로 가시는 세존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신통변화를 나투셨다. 그러자 도적 앙굴리말라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경이롭다, 참으로 놀랍다. 이전에 나는 달리는 코끼리도 따라가서 잡았고, 달리는 말도 따라가서 잡았고, 달리는 마차도 따라가서 잡았고, 달리는 사슴도 따라가서 잡았다. 그런데 내가 온 힘을 다해 최대한 빨리 달려 가도 이 사문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구나!.'라고. 

그는 걸음을 멈추고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멈춰라, 사문이여. 멈춰라, 사문이여."라고.

"나는 멈추었다, 앙굴리말라여, 그대도 멈추어라."

그러자 도적 앙굴리말라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꺄의 후손인 이 사문들은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인정한다. 그런데 이제 이 사문은 걸어 가면서도 '나는 멈추었다, 앙굴리말라여, 그대도 멈추어라.'라고 말했다. 나는 이 사문에게 물어봐야 겠다.'라고.

 

349. 강도 앙굴리말라는 세존께 게송으로 말했다. 

 

"사문이여, 그대는 가걸어 가면서도 '나는 멈추었다.'라고 말하고

멈춘 나에게 '멈추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문이여, 나는 그대에게 이 말의 의미를 묻는다.

어떻게 그대는 멈추었고, 나는 멈추지 않았는가?"라고.

 

'앙굴리말라여, 나는 멈추었으니

모든 존재에 대해 영원히 몽둥이를 내려놓았음이다.

그러나 그대는 생명들에 대해 자제가 없다(제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

 

"참으로 오랜 끝에야(마침내) 존경하는 분, 대성인

진실을 말하는 분이 나의 큰 숲에 오셨다.

그러니 나는 진실에 연결된 그대의 게송을 듣고서

악을 버리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때 도적은 칼과 무기를 

낭떠러지의 깊은 물구덩이에 버렸다.

거기서 도적은는 선서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하고

선서에게 출가를 요청했다.

신과 함께하는 세상의 스승이고

연민하는 성자인 붓다(불.佛)는

그때 '오라, 비구여.'라고 그에게 말했다.

이렇게 그는 비구가 되었다.

 

350. 세존께서는 앙굴리말라 존자를 뒤따르는 사문으로 하여(시자로 하여) 사왓티로 유행을 떠나셨다. 차례로 유행을 하시면서 사왓티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거기 사왓티에서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가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집무실에 많은 사람들의 무리가 모여서 높고 큰 목소리로 요란스러웠다.

"대왕이시여, 대왕의 영토 안에 앙굴라말라라는 도덕이 있는데 그는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살해와 파괴를 일삼고 모든 생명들에게 자비가 없습니다. 그때문에 마을도 마을이 아니게 되고 성읍도 성읍이 아니게 되고 지방도 지방이 아니게 황폐하고 피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여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닙니다. 대왕께서 그를 붙잡아서 감옥에 투옥하여 주십시오."라고.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이른 아침에 오백의 기마병들과 함께 사왓티를 나와 제타 숲으로 갔다. 마차로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려 걸어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마가다의 세니야 빔비사라 왕이 대왕을 공격하기라도 했습니까?, 아니면 웨살리의 릿차위나 다른 적대적인 왕들이 대왕을 공격하기라도 했습니까?"라고.

"마가다의 세니야 빔비사라 왕이 대왕을 공격해온 것도 아니고, 웨살리의 릿차위나 다른 적대적인 왕들이 공격해 온 것도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영토 안에 앙굴리말라라는 도적이 있는데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살해와 파괴를 일삼고 모든 생명들에게 자비가 없습니다. 그때문에 마을이 마을이 아니게 되고 성읍도 성읍이 아니게 되고 지방도 지방이 아니게 황폘하고 피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여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닙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를 붙잡아 감옥에 가둘 것입니다." 

"만약에, 대왕이여, 그대가 앙굴리말라를 보았을 때, 그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하루 한 끼만 먹고, 범행을 실천하고, 계를 지니고, 좋은 성품을 지니고 있다면 그를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우리는 그에게 절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자리에 앉기를 권하고, 의복과 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 등으로 공양하고, 법답게 그를 보살피고, 장애로부터 보호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존이시여, 계를 지키지 않고 나쁜 성품을 가진 자가 이렇게 계로써 제어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앙굴리말라 존자는가 세존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오른손을 들어 올린 뒤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여기 이 사람이 앙굴리말라입니다."라고.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두려움이 생기고, 깜짝 놀라고, 털이 곤두섰다. 세존께서는 두려움이 생기고 깜짝 놀라고 털이 곤두선 빠세나디 꼬살라 왕을 보시고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대왕이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대왕이여. 그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두려움과 놀라움과 털이 곤두선 것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앙굴라말라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앙굴리말라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정말 앙굴리말라 존자입니까?"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존자시여, 존자의 아버지의 성은 무엇이고 어머니의 성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아버지는 각가이고 어머니는 만따니입니다."

"존자시여, 각가 만따니뿟따 존자께서는 기뻐하십시오(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저는 각가 만따니뿟따 존자께 가사와 음식과 처소와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위해 힘쓰겠습니다(공양을 올리겠습니다)." 

 

*"'만따니뿟따(Mantani-putta)'는 만따니의 아들(putta)이란 말이다. 그의 어머니 성이 만따니였기 때문에 왕은 그를 만따니뿟따 즉 만따니의 아들이라 부른 것이다. 세존 당시에는 이런 이름이 아주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사리뿟따(Sariputta)이다. 사리뿟따 존자의 어머니 성이 사리(Sari)였기 때문에 사리의 아들이라는 의미에서 사리뿟따가 된 것이다. 이처럼 이름에 뿟따가 붙은 것은 모두 누군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리고 여기서 앙굴리말라의 아버지가 각가(Gagga)라고 불리는데 왕은 앙굴리말라도 각가라고 부르고 있다. DPPN은 각가가 족성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351. 그 무렵 앙굴리말라 존자는 숲 속에 머물고, 탁발음식만 수용하고, 분소의를 입고, 삼의(三衣)만 지닌 자였다. 그래서 앙굴리말라 존자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되었습니다, 대왕이여, 나의 삼의는 이미 갖추어졌습니다."라고.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이렇게 세존께서는 길들여지지 않은 자들을 길들이시고, 고요하지 못한 자들을 고요하게 하시고, 열반을 얻지 못한 자들을 열반을 얻게 하십니다. 참으로 저희가, 세존이시여, 몽둥이로도 칼로도 길들이지 못한 자를 세존께서는 몽둥이 없이 칼 없이 길들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의무가 많은 저희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대왕이여,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그곳을 떠나갔다. 

 

352. 앙굴리말라 존자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사왓티로 탁발을 갔다. 앙굴리말라 존자는 사왓티에서 차례대로 탁발하다가 어떤 여인이 순산을 하지 못하고 난산으로 고통을 받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중생들은 참으로 고통받고 있구나. 중생들은 참으로 고통받고 있구나."

사왓티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온 앙굴리말라 존자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앙굴리말라 존자는 세존께 이와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사왓티로 탁발을 갔습니다. 사왓티에서 차례대로 탁발하다가 어떤 여인이 순산을 하지 못하고 난산으로 고통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제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중생들은 참으로 고통받고 있구나. 중생들은 참으로 고통받고 있구나.'라고."  

 

*'중생들은 참으로 고통받구 있구나'로 옮긴 원어는 “kilissanti vata, bho, sattā; kilissanti vata, bho, sattā”ti! 이다. 이 말을 직역하면 '그대여, 참으로 중생들은 젖어있다. 그대여, 참으로 중생들은 젖어있다.' 라고 옮길 수 있다. 즉 늙고 죽음(노사.老死)의 윤회하는 삶에 수반되는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의 삶은 눈물 젖은 삶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앙굴리말라여, 그대는 그 여인에게 가라. 가서는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하라.

'자매여, 나는 태어날 때부터 고의로 살아있는 생명을 빼앗은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실에 의해 그대가 편안하기를, 태아도 편안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참으로 세존이시여, 그러면 그것은 제가 고의로 거짓을 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고의로 살아있는 많은 생명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그렇다면 앙굴리말라여, 그대는 그 여인에게 가라. 가서는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하라. 

'자매여, 나는 고결한 태생으로 거듭난 이후로 고의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빼앗은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이런 사실에 의해 그대가 편안하기를, 태아도 편안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세존께서 앙굴리말라에게 다시 태어난(도적에서 출가를 한 것) 청정한 비구의 복전(福田) 됨에 의지한 축원을 하라고 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앙굴리말라 존자는 세존께 대답하고서 그 여인에게 갔다. 가서는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자매여, 나는 고결한 태생으로 거듭난 이후로 고의로 살아있는 생명을 빼앗은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실에 의해 그대가 편안하기를, 태아도 편안하기를 바랍니다"라고.

그러자 그 여인은 편안해졌고, 태아도 편안해졌다.  

 

그리고 홀로 외딴 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로써 머문 앙굴리말라 존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목적인 그 위없는 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았다.

앙굴라말라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352. 앙굴리말라 존자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사왓티로 탁발을 갔다. 그때 어떤 사람이 던진 흙덩이가 앙굴리말라 존자의 몸을 때리고, 다른 사람이 던진 몽둥이가 앙굴리말라 존자의 몸을 때리고, 또 다른 사람이 던진 돌덩어리가 앙굴리말라 존자의 몸을 때렸다. 그러자 앙굴리말라 존자는 머리에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고, 발우가 부서지고, 가사가 찢어진 채로 세존께 다가갔다. 세존께서는 앙굴리말라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셨다. 보시고서 앙굴리말라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인내해야 한다, 바라문이여. 바라문이여, 그대가 수년, 수백 년, 수천 년을 지옥에서 겪어야 했을 업의 과보를 그대는 지금‧여기에서 겪는

것이다."라고.

 

*"'바라문(brahmana)'이라는 호칭으로 부른 것은 번뇌 다한 상태(khinasava-bhava)인 아라한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MA.iii.339)

 

그리고 외딴 곳에서 홀로 머물던  앙굴라말라 존자는 해탈의 행복을 경험했다. 그때 이런 감흥어를 읊었다.

 

'어떤 사람이 먼저는 방일했지만, 나중에 그는 방일하지 않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그는 이 세상을 밝힌다.

 

*"마치 오염원이 없어진 달이 세상을 비추듯이, 방일함이라는 오염원을 벗어난 방일하지 않는 비구는 자신의 무더기(온.蘊), 감각장소(처.處), 요소(계.界)라는 이 세상(loka)을 비춘다. 오염원인 어둠을 몰아낸다(vihata-kiles-andhakara)는 말이다."(MA.iii.340)  

 

그가 악하게 지은 업을 그는 선(善.유익함)으로 덮는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그는 이 세상을 밝힌다.

 

*"'선으로 덮는다(kusalena pidhiyati)'는 것은 도의 유익함으로 덮어 재생연결을 없애버리는 것이다."(MA.iii.340)

 

참으로 어떤 젊은 비구는 세존의 가르침에서 스스로 노력한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그는 이 세상을 밝힌다. 

 

*이 상의 세 게송은 장로의 감흥어를 읊은 것이다."(MA.iii.340)

 

참으로 나의 적들이 법의 말씀을 듣고 세존의 가르침에서 스스로 노력하기를!

나의 적들이 법으로 이끄는 평화로운 사람들을 섬기기를(어울리기를)!

 

참으로 나의 적들이 인내를 말하는 사람들과 온화함을 칭찬하는 사람들의 법을

때맞춰 듣고 그것을 따르기를!

 

그러면 분명 그들은 나를 해치지도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최상의 평화를 얻어 약하거나 강한 자들을 보호하기를!

 

*"'최상의 평화(parama santi)'란 평화로운 열반을 말한다."(MA.iii.341)
그리고 '약하거나 강한 자'는 tasa-thavare를 옮긴 것인데,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tasa는 갈애가 있는 자들을 뜻하고, thavara는 갈애가 없는 자들을 말한다. 이것의 의미는 '열반을 얻는 자는 갈애가 있거나 갈애가 없는 모든 자들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적들은 열반을 얻기를! 그리하여 그들은 절대로 나를 해치지 않기를'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세 게공은 자신의 보호를 위해서 읊은 것이다."(MA.iii.341)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를 만드는 사람들은 물길을 이끌고, 화살 만드는 사람들은 화살대를 곧게한다.

목수들은 나무를 다루고, 현자들은 자신을 다듬는다.

 

*""현자들은 자신을 다듬는다(attanam damayanti pandita)'라고 했다. '물을 끌어들이는 자들(nettika)'은 수로를 곧게 만들어 물을 끌어들이고, '화살을 만드는 자들(usukara)'은 화살대를 곧게 만들고, '목수들(tacchaka)'은 나무를 곧게 만들듯이, 현자는 자신을 다스려서 올곧게(ujukam) 만들고 온화하게 만든다는 말이다."(MA.iii.342) 

 

어떤 자들은 몽둥이로 길들이고, 갈고리와 채찍으로 길들인다.

그러나 나는 몽둥이도 없고 칼도 없는 여여한 분에 의해서 길들여졌다.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통해서 세존을 '여여한 분(tadi)'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석서를 인용한다.
"①그는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은 것에 대해 여여하다(itthanitthe tadi), ②그는 탐욕과 성냄 등의 모든 오염원들을 토해냈기 때문에 여여하다(vantaviti tadi), ③그는 탐.진.치 등의 모든 오염원들을 버렸기 때문에 여여하다(cattaviti tadi), ④그는 네 가지 폭류를 건넜기 때문에 여여하다(tinnaviti tadi), ⑤그가 구족한 여러 가지 특징의 설명이 그러하기 때문에 여여하다(tamniddesa tadi). 이와 같이 여여함의 특징을 구족했기 때문에 스승을 여여한 분이라고 한다."(MA.iii.342)      

*본래 여여라는 말은 불가(佛家)의 용어로 ‘변함이 없는 마음’, ‘속되지 않은 마음’이란 뜻이다. ‘여여(如如)’라는 한자는 원래 산스크리트어 ‘타타타(tatahta)’의 의역으로, ‘물건의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변화하는 세계의 변화하지 않는 존재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말한다.

 

예전에는 해치는 자였던 나에게 '해치지 않는 자'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제 나는 참된 이름이 있다.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예전에 심한 급류에 떠다니던 앙굴리말라라는 알려진 도적이었던

나는 의지처인 세존에게로 왔다.

 

예전에 나는 앙굴라말라라고 알려진 손에 피를 묻히는 자였다.

의지처로 간 자를 보라. 존재의 사슬을 끊었다.

 

악처로 인도하는 그런 업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업의 과보를 받았지만, 나는 빚 없이 음식을 수용한다.

 

어리석고 우둔한 사람들은 방일에 빠진다.

그러나 현자는 방일하지 않음을 최고의 재산처럼 보호한다.

 

방일에 빠지 말고 감각적 쾌락을 원하지 말라.

방일하지 않고 삼매를 닦는 사람은 큰 행복을 얻는다.

 

잘 왔다. 잘못 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잘못 안내된 것이 아니다.

잘 분별된 법에서 으뜸에 도달했다.

 

잘 왔다. 잘못 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잘못 안내된 것이 아니다.

세 가지 명지[삼명.三明]를 성취하고, 세존의 가르침을 실현했다.'

 

 

앙굴리말라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