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102. 다섯이면서 셋 경(pañcattayasuttaṃ)
2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말하는 미래의 겁에 관한 교리(설.說)을 가진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는aparanta-kappaka(미래를 추측하는 자들)을 문맥에 맞게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미래를 추측하는 자들을 다음의 두 가지로 설명한다.
①미래에 대하여(aparanta) 추측하고(kappetva) 추론하여(vikappetva) 취하기 때문에 미래를 추측하는 자들(미래를 모색하는 자들)이라 한다. ②혹은 존재더미에 대하여 추측하는 자들을 미래를 추측하는 자들이라 한다. 이 단어에서 anta는 존재더미를 뜻하고, kappa는 갈애와 사견을 말한다. 그러므로 갈애와 사견을 거머쥐고 미래의 무더기(온)을 추측하면서 머물기 때문에 미래를 추측하는 자들이라 한다."(MA.iv.15-16)
*"그들이 이처럼 미래에 대하여 추측하면서 머물고 그것을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오직 미래(aparanta)로 치달리는 사견(ditthi)을 가지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진 자들(aparanta-anuditthino)'이라 한다."(MA.iv.16)
ⓐ'자아(我)는 인식(想)이 있고 죽은 뒤에 병(病)이 없다.'라고 여기서 어떤 자들은 말한다.
ⓑ'자아는 인식이 없고 죽은 뒤에 병이 없다.'라고 여기서 어떤 자들은 말한다.
ⓒ'자아는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죽은 뒤에 병이 없다.'라고 여기서 어떤 자들은 말한다.
ⓓ또는 어떤 자들은 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하거나, 지금·여기의 열반을 말한다.
이렇게 ①죽은 뒤에 병이 없는 자아의 존재를 선언한다.
②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한다.
③지금·여기의 열반을 말한다.
이렇게 이것들은 다섯이었다가 셋이 되고, 셋이었다가 다섯이 된다. 이것이 다섯이면서 셋의 요약이다.
*"'병이 없다(aroga. 병들지 않는다)'는 것은 죽은 뒤에도 영원하다(nicca)는 말이다."(MA.iv.16)
*"'자아는 인식이 있고 병이 없다(sanni atta hoti arogo param marana)'라는 이 주장은 열여섯 가지 인식이 있다는 이론을 설한 것이다."(MA.iv.16) 16가지 인식은 「디가 니까야」 「범망경」(D1)을 참조할 것.
*"'인식이 없다(asanni)'는 주장은 여덟 가지 인식이 없다는 이론(asanni-vada. 범망경 참조)을 설한 것이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neva-sanni-na-asanni)'라는 주장은 여덟 가지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이론(범망경 참조)을, 존재하고 있는 중생(sato va pana cattssa)'라는 주장은 일곱 가지 단멸의 이론(uccheda-vada.범망경 참조)을 설한 것이다."(MA.iv.16)
*"자아는 인식이 있다(sannim attanam)는 등은 자아가 있다는 것으로써 하나이고, 나머지 둘을 더하여 다섯이 셋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MA.iv.17)
22. 거기서, 비구들이여,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자아를 선언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물질이 있는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물질이 없는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물질이 있기도 하고 물질이 없기도 한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물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질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단일한 인식인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다양한 인식인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제한된 인식인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무한한 인식인 자아를 선언한다.
또는 ㉨이것을 넘어선 어떤 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무한하고 흔들림 없는 의식의 까시나를 [자아라고] 선언한다.
*'물질이 있는(물질이다.rupim)'라는 것은 업에서 생긴 물질(karaja-rupa)이나 혹은 까시나의 물질(kasina-rupa)을 말한다. 이 중에서 삼매의 증득을 얻은 자(labhi)는 까시나의 물질을 자아라고 움켜쥐고, 논리가(takki)는 두 종류의 물질을 모두 자아라고 움켜쥔다.(MA.iv.17)
*물질이 없는(비물질.arupi)'라는 것은, 무색계 증득의 표상(arupa-samapatti-nimitta)을 자아라고 하거나 혹은 인식의 무더기를 제외한 나머지 무색의 법들(seca-arupa-dhamma)을 자아라고 주장하면서 증득을 얻은 자나 논리가는 모두 이렇게 주장한다.(MA.iv.17)
*'이것을 넘어선 어떤 자들'이란 공무변처(空無邊處.kāsānañcāyatana)의 증득을 말한다. 즉 ①물질(색.色)에 대한[있다는-없다는-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인식을 넘어섬으로부터(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②제한된 인식이 줄어듦으로부터(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③다양한 인식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으로부터(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완전하게 물질에 대한 인식을(색상.色想)을 넘어서고, 제한된 인식이 줄어들고, 다양한 인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무한하고 흔들림 없는 의식의 까시나를'이란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무는 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식무변처(識無邊處)의 선언한다.
*"'[이런 견해를] 극복한 자들 중에서 어떤 자들(ekesam upativattatam)'이란 [앞에서] 간략하게 설한 일곱 가지 혹은 여덟 가지 인식을 극복한 자들을 뜻한다. 즉 어떤 자는 이 일곱 가지 인식이나 여덟 가지 인식을 극복할 수 있고 어떤 자는 극복할 수 없는데, 그중에서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 것이다.
마치 사람들이 강을 건넜을 때 어쩐 자는 큰 저수지로 가서 머물고 어떤 이는 큰 마을로 가서 머물듯이, 어떤 자는 무한하고(appamana) 흔들림 없는(anenjana) 식무변처를 자아라고 말하면서 머물고, 어떤 자는 무소유처를 자아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식무변처를 먼저 설명하기 위해 '의식의 까시나(vinnana-kasina)'라고 말했고 다음에 무소유처를 설명할 것이다."(MA.iv.17-18)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자아를 선언하는 그 사문․바라문들은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물질이 있는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물질이 없는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물질이 있기도 하고 물질이 없기도 한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물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질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단일한 인식인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다양한 인식인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제한된 인식인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데 무한한 인식인 자아를 선언한다. 또는 어떤 자들은 ㉨물질의 인식(色想.색상)들이든 비물질의 인식(無色想.무색상)들이든 단일한 인식들이든 다양한 인식들 가운데 청정하고 최상이고 으뜸이고 위없다고 알려진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한하고 흔들림없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선언한다. '이것은 유위(有爲.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行)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벗어남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물질의 인식(rupa-sanna)'이란 네 가지 색계의 인식(rupavacara-sanna)을 말하고, '비물질의 인식(arupa-sannana)'이란 공무변처와 식무변처의 인식을 말한다."(MA.iv.18)
*"'형성된 것들의 소멸(sankharanam nirodha)'이란 열반을 말한다."(MA.iv.19)
23. 거기서, 비구들이여,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없는 자아를 선언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없는데 물질(색.色)이 있는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없는데 물질이 없는(無色.비물질)을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없는데 물질이 있기도 하고 물질이 없기도 한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없는데 물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질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선언한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들은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자아를 선언하는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을 비난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인식은 병이고, 인식은 종기이고, 인식은 화살이다.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니 즉 인식이 없음이다. [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없는 자아를 자아를 선언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없는데 물질이 있는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없는데 물질이 없는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없는데 물질이 있기도 하고 물질이 없기도 한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없는데 물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질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선언한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나는 물질과 다른 곳에서(물질이 없고), 느낌과 다른 곳에서, 인식과 다른 곳에서, 형성들과 다른 곳에서 의식이 오고 감, 죽고 다시 태어남, 성장하고 증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을 선언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런 경우는 없다. '이것은 유위(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行)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벗어남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24. 거기서, 비구들이여,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선언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 물질이 있는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 물질이 없는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 물질이 있기도 하고 물질이 없기도 한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 물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질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선언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그들은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자아를 선언하는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을 비난한다. 또한,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없는 자아를 선언하는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을 비난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인식은 병이고, 인식은 종기이고, 인식은 화살이다. 인식이 없음은 혼란스러움이다.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니 즉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님(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이다. [말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선언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 물질이 있는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 물질이 없는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 물질이 있기도 하고 물질이 없기도 한 자아를 선언하거나,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 물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선언한다.
비구들이여, 보아서 알고, 들어서 알고, 생각해서 아는 것과 심리현상들에 의해 이 경지의 증득을 선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이나 누구든지, 비구들이여, 그것은 이 경지의 증득을 위해서는 방해되는 것이라고 알려진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 경지는 심리현상들이 일어나면 증득을 얻었다고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 경지는 아주 미세한 심리현상들에 의해 증득이 얻어지는 것이라고 알려진다. '이것은 유위(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行)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벗어남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보아서 알고 들어서 알고 생각해서 아는 것과 심리현상들에 의해'는 dittha-suta-muta-vinnatabba-sankhara-mattena인데 주석서는 dittha-suta-muta-vinnatabba-mattena와 sankhara-mattena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즉 '보아서 아는 것과 들어서 아는 것과 생각해서 아는 것에 의해, 또한 심리현상들에 의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MA.iv.20)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분별하여 아는 것을 말한다. 보고 듣고 생각해서 아는 것은 다섯 가지 감각의 문에서 인식이 일어난 것(panca-dvarika-sanna-pavatti-matta)을 두고 한 말이다. 심리현상들에 의해라는 것은 거친 심리현상들(olarika-sankhara)이 일어난 것을 말한다."(MA.iv.20)
*"'이 경지(etassa ayatanassa)'란 비상비비상처(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두고 한 말이다."(MA.iv.21)
*"'방해(byasana.재앙)'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다섯 문의 인식이 일어나거나 혹은 거친 심리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을 일어나지 않게 함으로써 그 [비상비비상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섯 문의 인식이나 거친 심리현상들]이 일어나면 그 [비상비비상처] 경지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MA.iv.21)
*"즉 [무소유처의 심리현상들이라는] 거친 심리현상들이 일어나면 [이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을] 얻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MA.iv.21)
*"아주 미세한 심리현상들에 의해 증득을 얻었다(sankhara-avasesa-samapatti-pattabbam)'라고 하셨다. 이것은 [보통의] 심리현상들 외에 수행을 통해 아주 미세한 경지에 이른 심리현상들이 일어남에 의해 이 경지를 증득했다는 뜻이다."(MA.iv.21)
25. 거기서, 비구들이여, ②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하는 그 사문.바라문들은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자아를 선언하는 그들 가운 어떤 자들을 비난한다. 또한,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없는 자아를 선언하는 그들 가운 어떤 자들도 비난한다. 또한, 죽은 뒤에 병이 없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선언하는 그들 가운에 어떤 자들도 비난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세 부류의]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모두 '우리는 죽은 뒤에 이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죽은 뒤에 이렇게 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집착을 선언한다. 예를 들면, 장사를 위해 나아가는 상인들은 '앞으로 이것은 나의 것이 될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이것이 얻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와 같이 이 사문·바라문들은 '우리는 죽은 뒤에 이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죽은 뒤에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선언할 때 상인의 비유가 분명해진다(마치 상인들처럼 여겨진다).
*"앞으로 나아가면서(uddham saram)'에서 '앞(uddham)'이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윤회에 대한 교리(anagata-samsara-vada)'이고, 그 미래의 윤회의 교리를 따르면서(saranti)는 뜻이다."(MA.iv.21)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②존재하고 있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하는 그들은 유신(有身. 존재더미)에 대한 두려움과 유신에 대한 혐오 때문에 유신의 주의를 달리고, 맴돈다. 예를 들면, 튼튼한 기둥이나 말뚝에 가죽 끈으로 묶인 개가 오로지 그 기둥이나 말뚝 주위를 달리고, 맴돈다. 이처럼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유신에 대한 두려움과 유신에 대한 혐오 때문에 유신의 주위를 달리고, 맴돈다. '이것은 유위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벗어남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몸이 존재한다(santo samvijjamano)고 여기는 것이 존재 더미(有身, sakkaya)이다. 존재하는 법의 적집(dhamma-samuha)이라는 뜻에서 집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오취온, upadana-kkhandha-pancaka]를 말한다. 그들은 그 오취온을 두려워한다."(MAT.ii.227)
*이 비유는 「상윳따 니까야」 제3권 「가죽 끈 경」(S22.99)에도 나타나고 있다. 주석서는 이 비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개(sunakha)'는 윤회에 빠진 어리석은 자(bala)와 같다. '가죽 끈(gaddula)'은 견해(ditthi)이고, '기둥(thambha)'은 존재더미(sakkaya)이다. 가죽 끈에 묶여서 기둥에 단단히 묶여 있는 개가 기둥 주위를 맴도는 것처럼, 견해와 갈애에 의해서 존재더미에 묶여 있는 범부도 존재더미 주위를 맴도는 것(sakkaya-anuparivattana)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SA.ii.327)
26. 비구들이여,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말하는 미래의 겁에 관한 교리를 말하는 사문·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모두 이 다섯 가지 경우이거나 그들 가운데 어떤 것을 말한다.
27. 비구들이여,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말하는 과거의 겁에 관한 교리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sassato atta ca loka xa)'라는 것은 물질 등에서 어떤 것을 자아(atta)이고 세상(loka)이라고 거머쥔 뒤 항상하고(sassata) 불사이고(amara) 영원하고(nicca) 견고하다(dhuva)고 선언하는 것이다(abhivadanti). 물질을 자아이고 세상이라고 거머쥔 뒤 항상하고 불사이고 영원하고 견고하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그렇게 느낌이나 인식이나 심리현상이나 의식을 자아이고 세상이라고 거머쥔 뒤 항상하고 불사이고 영원하고 견고하다고 선언한다.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asassato atta ca loko ca)'는 것에도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MA.iv.23)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바로 위 구문에서는 네 가지 상견(sassata-vada)를 설한 것이고, 이 구문은 일곱 가지 단견(uccheda-vada)를 설한 것이다."(MA.iv.23)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유한하다(끝이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유한하다(antava)'는 것은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고(saparivanta) 한계가 있고(paricchinna) 경계가 있다(parivatuma)는 것이다. 까시나를 확장하지 않은(avaddhita-kasina) 수행자가 그 까시나를 자아이고 세상이라고 거머쥐면서 이렇게 생각한다."(MA.iv.23-24)
ⓕ'자아와 세상은 무한하다(끝이 없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끝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두 번째 주장(ⓕ)은 까시나를 확장한 자(vaddhita-casina)가 선언하는 것이고, 세 번째 주장(ⓖ)은 옆(toriya)으로는 확장했지만 위.아래로는(uddham adho) 확장하지 않은 자가 선언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논리가들이 선언하는 것이다."(MA.iv.24)
ⓘ'자아와 세상은 같은 인식(단일한 인식)을 가졌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다른 인식(다양한 인식)을 가졌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제한된 인식을 가졌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무량한 인식을 가졌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삿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오로지 행복(즐거움)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오로지 즐거움만 느낀다(ekanta-sukhi)'는 것은 끊임없이 즐거움만 느끼는 것(nirantara-sukhi)이다. 이 견해는 증득을 얻은 자(labhi)와 전생을 기억하는 자(jati-ssara)와 논리가(takki)에게 일어난다. 증득을 얻은 자는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pubbe-nivasa-nana)를 통해 끄샤뜨리야 등의 가문에서 오직 즐거움뿐(ekanta-sukha)이었던 자신의 생을 기억하면서 이런 견해가 일어난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생을 기억하는 자도 현재의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과거 일곱 생 동안에도 이러한 즐거움뿐이었던 자신의 상태를 기억하면서 이런 견해가 일어난다. 그러나 논리가는 즐거움을 가질 때 '과거에도 나는 이와 같았다.'라고 추론하면서 이런 견해가 일어난다."(MA.iv.24)
ⓝ'자아와 세상은 오로지 괴로움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이 두번째 견해는 증득을 얻은 자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완전무결한 禪의 즐거움(ekanta jhana-sukha)으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생을 기억하는 자와 논리가가 괴로움을 겪을 때 그들에게는 이 견해가 일어난다."(MA.iv.24)
ⓞ'자아와 세상은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괴롭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 어떤 자는 말한다.
*"세 번째 견해(ⓞ)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인(vokinna-sukha-dukkha) 모두에게 일어난다.[모두란 증득을 얻은 자에게도 일어나고 논리가에게도 일어난다는 뜻이다.-MAT.ii.235) 네 번째(ⓟ) 견해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일어난다. 증득을 얻은 자의 경우 제4선에 의해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거나 전생에 제4선의 힘으로 태어난 범천을 기억할 때 이 견해가 일어난다. 전생을 기억하는 자의 경우에도 현재 중립적인 느낌(maijhatta)을 느낄 때 이 견해가 일어난고, 계속해서 생각하는 자(anussaranta)의 경우에도 중립에 이르렀던 상태만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이 견해가 일어난다. 논리가의 경우에도 현재에 중립을 유지할 때 과거에도 이와 같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하여 거머쥐면서 이런 견해가 일어난다."(MA.iv.24)
28. 거기서, 비구들이여,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러한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구전)과 다른 곳, 이론적인 추론과 다른 곳,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다른 곳에서 청정하고 순수한 개별적 앎(자기 스스로의 지혜)이 있을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청정하고 순수한 개별적인 앎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거기서 앎의 일부(단편적인 지혜)를 순수하게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집착이 알려지는 것이다. '이것은 유위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벗어남을 보는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이 '믿음(saddha)','경향(ruci)','구전(anussava)','이론적인 추론(akara-parivitakka)','사색하여 얻은 견해(ditthi-nijjhana-kkhanti)'의 다섯 가지 법은 외도들의 교단에도 있지만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a-nana)는 오직 세존의 교법(sasana)에만 있다."(MA.iv.25)
*"자기 스스로의 지혜(paccattamyeva nanam)'란 스스로 직접 얻은 지혜이고, 청정하다(parisuddham)'는 것은 오염원이 없다는 것(nirupakkilesa)이고, '순수하다(pariyodatam)'는 것은 빛나는 것을 말한다. 청정하고 순수한 개인적인 지혜는 위빠사나의 지혜를 말한다."(MA.iv.25)
29. 거기서, 비구들이여,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라는 ··· ⓓ'자아와 세상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 ⓔ'자아와 세상은 유한하다. 이것만이 진실고 다른 것은 거짓이'라는 ··· ⓕ'자아와 세상은 무한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 ⓖ'자아와 세상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 ⓗ'자아와 세상은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 ⓘ'자아와 세상은 같은 인식(단일한 인식)을 가졌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 ⓙ'자아와 세상은 다른 인식(다양한 인식)을 가졌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 ⓚ'자아와 세상은 제한된 인식을 가졌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 ⓛ'자아와 세상은 무량한 인식을 가졌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 ⓜ'자아와 세상은 오로지 행복(즐거움)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 ⓝ'자아와 세상은 오로지 괴로움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 ⓞ'자아와 세상은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 ⓟ'자아와 세상은 괴롭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러한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통(구전)과 다른 곳, 이론적인 추론과 다른 곳, 통찰과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다른 곳에서 청정하고 순수한 개별적 앎이 있을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청정하고 순수한 개별적인 앎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거기서 앎의 일부를 순수하게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집착이 알려지는 것이다. '이것은 유위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벗어남을 보는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30. 비구들이여, 여기 과거에 대한 견해를 붙잡지 않고, 미래에 대한 견해도 붙잡지 않고, 모든 감각적 쾌락의 족쇄를 버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여읨의 희열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니 즉 나는 여읨의 희열을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그 여읨의 희열이 소멸한다. 여읨의 희열의 소멸로부터 고뇌가 생기고, 고뇌의 소멸로부터 여읨의 희열이 생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늘이 떠난 것이 햇볕이 미치는 것이고(그늘이 없는 곳에 햇빛이 있고), 햇빛이 떠난 것이 그늘이 미치는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읨의 희열의 소멸로부터 고뇌가 생기고, 고뇌의 소멸로부터 여읨의 희열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과거에 대한 견해를 붙잡지 않고, 미래에 대한 견해도 붙잡지 않고, 모든 감각적 쾌락의 족쇄를 버린 이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는 여읨의 희열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니 즉 나는 여읨의 희열을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그 여읨의 희열이 소멸한다. 여읨의 희열의 소멸로부터 고뇌가 생기고, 고뇌의 소멸로부터 여읨의 희열이 생긴다. '이것은 유위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들에게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벗어남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31. 비구들이여, 여기 과거에 대한 견해를 붙잡지 않고, 미래에 대한 견해도 붙잡지 않고, 모든 감각적 쾌락의 족쇄를 버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여읨의 희열을 넘어선 개발된 느낌인 행복(세간을 떠난 즐거움)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니 즉 나는 개발된 느낌인 행복을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그 개발된 느낌인 행복이 소멸한다. 개발된 느낌인 행복의 소멸로부터 떠남과 희열이 생기고, 떠남과 희열의 소멸로부터 개발된 느낌인 행복이 생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늘이 없는 곳에 햇빛이 있고 햇빛이 없는 곳에 그늘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개발된 느낌인 행복의 소멸로부터 떠남과 희열이 생기고, 떠남과 희열의 소멸로부터 개발된 느낌인 행복이 생긴다.
*"여기서 '세속을 여읜 즐거움(niramisa sukha)'이란 제3선을 말한다."(MA.iv.26)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과거에 대한 견해를 붙잡지 않고, 미래에 대한 견해도 붙잡지 않고, 모든 감각적 쾌락의 족쇄를 버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여읨의 희열을 넘어선 개발된 느낌인 행복(세간을 떠난 즐거움)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니 즉 나는 개발된 느낌인 행복을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그 개발된 느낌인 행복이 소멸한다. 개발된 느낌인 행복의 소멸로부터 떠남과 희열이 생기고, 떠남과 희열의 소멸로부터 개발된 느낌인 행복이 생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늘이 없는 곳에 햇빛이 있고 햇빛이 없는 곳에 그늘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개발된 느낌인 행복의 소멸로부터 떠남과 희열이 생기고, 떠남과 희열의 소멸로부터 개발된 느낌인 행복이 생긴다. '이것은 유위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들애게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벗어남을 보는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32. 비구들이여, 여기 과거에 대한 견해를 붙잡지 않고, 미래에 대한 견해도 붙잡지 않고, 모든 감각적 쾌락의 족쇄를 버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여읨의 희열을 넘어서고, 개발된 느낌인 행복을 넘어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니 즉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소멸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소멸로부터 개발된 느낌인 행복이 생기고, 개발된 느낌인 행복의 소멸로부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늘이 떠난 것이 햇볕이 미치는 것이고, 햇볕이 떠난 것이 그늘이 미치는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소멸로 부터 개발된 느낌인 행복이 생기고, 개발된 느낌인 행복의 소멸로부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긴다.
*"여기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adukkhamasukha vedana)'은 제4선의 느낌을 말한다."(MA.iv.26)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과거에 대한 견해를 붙잡지 않고, 미래에 대한 견해도 붙잡지 않고, 모든 감각적 쾌락의 족쇄를 버린 이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는 여읨의 희열을 넘어서고, 개발된 느낌인 행복을 넘어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니 즉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소멸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소멸로부터 개발된 느낌인 행복이 생기고, 개발된 느낌의 행복의 소멸로부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긴다. '이것은 유위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들애게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벗어남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33. 비구들이여, 여기 과거에 대한 견해를 붙잡지 않고, 미래에 대한 견해도 붙잡지 않고, 모든 감각적 쾌락의 족쇄를 버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여읨의 희열을 넘어서고, 개발된 느낌인 행복을 넘어서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넘어서서 '나는 평화롭고, 나는 꺼졌고(열반에 들었다), 나는 집착이 없다.'라고 관찰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과거에 대한 견해를 붙잡지 않고, 미래에 대한 견해도 붙잡지 않고, 모든 감각적 쾌락의 족쇄를 버린 이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는 여읨의 희열을 넘어서고, 개발된 느낌인 행복도 넘어서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넘어서서 '나는 평화롭고, 나는 꺼졌고(열반에 들었다), 나는 집착이 없다.'라고 관찰한다. 참으로 이 존자는 열반에 적합한 닦음을 선언한다.
그런데 이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가 붙잡는 자여서 과거에 대한 견해를 붙잡거나, 붙잡는 자여서 미래에 대한 견해를 붙잡거나, 붙잡는 자여서 감각적 쾌락을 붙잡거나, 붙잡는 자여서 여읨의 희열을 붙잡거나, 붙잡는 자여서 개발된 느낌인 행복을 붙잡거나, 붙잡는 자여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붙잡는다. 그러면서도 이 존자가 '나는 평화롭고, 나는 꺼졌고, 나는 집착이 없다.'라고 관찰할 때 그 사문.바라문 존자에게 집착이 알려진다(집착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유위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들에게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벗어남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에 의한 위없는, 평화롭고 수승한 경지의 깨달음이니, 그것은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六觸處]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집착없이 해탈한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다섯과 셋 경(M102)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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