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100. 상가라와 경(saṅgāravasuttaṃ)
47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에서 유행하고 계셨다. 그 무렵 다난자니라는 바라문 여인이 짠달라깝바에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세존과 법과 승가에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때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이 발을 헛디뎌 휘청거리면서도 세 번 감흥어를 읊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귀의합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귀의합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귀의합니다."라고.
*"'다난자니라는 바라문 여인(dhananjani nama brahmani)'은 예류과를 얻은 성스러운 여제자(sotapanna ariya-savika)였는데, 바라드와자라는 족성을 가진 바라문의 아내(bhariya)였다. 그녀는 남편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예전에는 가끔씩 바라문들을 초대하여 대접도 하고 했는데 이 바라문 여인과 결혼하고 예쁘고 좋은 가문 출신인 바라문 여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어 바라문들을 초대할 수 없었다. 그러자 바라문들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이제 그대는 바라문들에게 믿음이 없어졌구나. 그대는 단 하루도 바라문들을 대접하지 않는구나.'라고 그에게 압박을 하였다. 그는 집에 가서 바라문 여인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만일 부인이 하루만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지낼 수 있다면 그날 바라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나를 상관하지 말고 당신이 좋은 대로 대접을 하라고 말했다. 그는 바라문들을 초대하여 죽을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바라문들이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다난자니는 큰 옷을 입고 국자를 들독 바라문들의 음식 시중을 들다가 옷자락에 걸려 넘어졌는데, 바라문들의 음식 시중을 들고 있다는 생각조차 못한 채 습관적으로 갑자기 세존을 떠올리고는 감흥어를 읋었다. 바라문들이 그 감흥어를 듣고서 '이 사람을 양다리를 걸친 럿이고 사문 고따마를 돕기도 한다. 그러니 이 사람의 음식을 대접받지 않겠다.'며 분노하여 음식을 버리고 돌아가 버렸다.
그 바라문은 그녀에게 '처음부터 오늘 하루는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있기로 하지 않았소? 괜히 이만큼의 우유와 쌀 등을 소비했구려.'라며 심하게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천한 여인은 아무 때나 그 까까머리 사문을 칭송한다. 그러니 이제 내가 그대의 스승이라는 그 자와 논쟁을 해봐야겠다. 바라문 여인은 그에게 '바라문이여, 가시오. 당신이 직접 가서 알아보시오.'라고 말하고는 '바라문이여, 나는 참으로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과 사문.바라문들을 포함하고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들 가운데서 스승과 논쟁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다가가서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무엇을 끊어서 편안히 잠들고
무엇을 끊어서 슬퍼하지 않습니까?
고따마시여, 어떤 법을 죽이는 것을
당신은 허락합니까?"
스승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성냄을 끊어서 편안히 잠들고
성냄을 끊어서 슬퍼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성냄이란 뿌리에는 독이 있고
꼭대기에 꿀이 있어
그 성냄을 죽이는 것을 성자들은 칭송하니니
그것을 끊어 편안히 잠든다."
(이 두 게송은 「상윳따 니까야」 제1권 「다난자니 경」(S7.1)에 나타난다.)
이런 일화를 거쳐서 그는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에게는 악꼬사까 바라드와자(Akkosaka bharadvaja. 욕쟁이 바라드와자)라는 이름의 남동생이 있었는데 자기 형이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세존을 찾아가 비난을 퍼붓었지만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그 역시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상윳따 니까야」 제1권 「욕설 경」(S7.2)) 순다리까 바라드와자(Sudarikabharadvaja)라는 또 다른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도 세존을 찾아가 질문을 드렸고 대답을 들은 뒤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수다리까 경」(S7.9)) 삥갈라 바라드와자라는 또 다른 동생도 세존께 질문을 했고 세존의 대답이 끝나자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었었다."(MA.iii.451-452)
바라드와자 형제들에 대한 일화는 「상윳따 니까야」 제1권 「바라문 상윳따」(S7)의 「다난자니 경」(S7.1)에 나타나는데 이 상윳따 니까야의 13개 경들이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들의 일화를 담고 있다.
그 당시 세 가지 베다와 제사어휘와 문자와 어원과 다섯 번째로 역사를 통달했고, 베다의 문장에 숙달됐고, 문법을 알고, 세간의 철학과 대인상에 대해 부족함이 없는 상가라와라는 젊은 바라문이 짠짤리깝빠에 살고 있었다.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가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듣고는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저급하다. 이 다란자니 바라문 여인은 바라문 밖의 사람이다. 바라문들 가운데 있으면서 저 삭발한 사문을 칭찬하는 말을 한다."라고.
"착한 도련님, 정말 그대는 그분 세존의 계(戒)와 혜(慧)를 알지 못합니다. 만약, 잘 생긴 젊은이여, 그대가 그분 세존의 계(戒)와 혜(慧)를 안다면, 잘 생긴 젊은이여, 그분 세존을 비난하고 경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형수님, 사문 고따마가 짠짤리깝빠에 오면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착한 도련님."라고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에게 대답했다.
꼬살라에서 차례대로 유행하시면서 세존께서는 짠짤리깝빠에 도착하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짠짤리깝빠에 있는 또데이야 바라문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짠짤리깝빠에 도착한 세존이 또데이야 바라문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다고 들었다.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에게 이렇게 말했다.
"착한 도련님, 그분 세존께서 짠짤리깝빠에 도착해서 또데이야 바라문들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제, 착한 도련님,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친견하러 가십시오."
474. "알겠습니다, 형수님."이라고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는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에게 대답한 뒤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두 분이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신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아서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여, 지금·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 있습니다. 거기서,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는 지금·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까?"
*'지금.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는 dittha-dhamma-abhinna-vosana-parami-ppatta라는 긴 합성어를 풀어서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금.여기의 법(dittha-dhamma)이라고 널리 알려진 오직 자기존재(자신의 몸, atta-bhava)에 대해 잘 알아서 궁극적인 완성을 이룬(vosita-vosana) 뒤에 바라밀이라고 불리는(parami-sankhata) 모든 법들을 뛰어넘는(para-bhuta) 열반을 우리는 얻었다(patta)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청정범행의 근본(adibrabmacariya)을 가르친다.(patijananti)는 것이다."(MA.iii.453)
"바라드와자여, 지금·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에게도 차이가 있다고(다양하다고) 나는 말합니다. 바라드와자여, 전승을 잇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승에 의해 지금·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데(가르치는데), 예를 들면 세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입니다. 그리고,바라드와자여, 오직 믿음에 의해 지금·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예를 들면, 논리가와 탐구자(관찰자)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지금·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어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바라드와자여, 나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지금·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때, 바라드와자여, 내가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지금·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합니다.
475. 바라드와자여, 여기 내가 깨닫기 전, 아직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지 않은 보살이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한껏 치장하고 새까맣고 윤기 흐르는 머리 나풀대며 즐길 것 많던 젊은 나이에 부모와 친지들을 슬픔에 몰아 넣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노란 옷을 입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이렇게 무엇이 유익함(선.善)인지를 구하여 출가한 나는 위없이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 깔라마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범행을 닦고자 합니다.'라고.
이렇게 말하자, 바라드와자여, 알라라 깔라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자는 머무십시오.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수 있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완전히 익혔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나는 스스로 아는만큼 입을 열고 말을 통해 법에 대한 앎과 확실함을 말했습니다. '나는 알고 본다'라고 공언했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단지 믿음만으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 라고.
바라드와자여,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알라라 깔리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 깔라마시여, 얼마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십니까?'라고.
바라드와자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선언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다. ··· 마음챙김이 ··· 삼매가 ···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참으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리라.'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바라드와자여,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라라 깔라마시여, 존자께서는 얼마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것입니까?"
바라드와자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참으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리라.'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시여, 존자께서는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했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까?'라고.
'도반이여, 나는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합니다.'
'도반이시여, 나도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우리가 존자와 같은 동료 수행자를 보는 것은 참으로 이득이고 참으로 큰 이득입니다. 이렇게 내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선언한 그 법을 그대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대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무는 법을 나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선언합니다. 이렇게 내가 아는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그 법을 내가 압니다. 이렇게 그대는 나와 같고, 나는 그대와 같습니다. 오십시오, 도반이여. 이제 우리 둘이 함께 머물면서 이 대중들을 이끌어 나갑시다.'
바라드와자여, 참으로 이렇게 나의 스승이였던 알라라 깔라마는 제자인 나를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나를 존중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법은 염오(싫어하여 떠남)로, 탐욕의 떠남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완전한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단지 무소유처에 태어남으로 인도할 뿐이다.'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법으로부터 염오하여 떠났습니다.
476. 바라드와자여, 그렇게 무엇이 유익함인지를 구하는 나는 위없이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이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범행을 닦고자 합니다.'라고.
이렇게 말하자, 바라드와자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자는 머무십시오.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수 있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완전히 익혔다. 바라드와자여, 나는 스스로 아는만큼 입을 열고 말을 통해 법에 대한 앎과 확실함을 말했습니다. '나는 알고 본다'라고 공언했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라마는 이 법을 단지 믿음만으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 라고.
바라드와자여,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이시여, 얼마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십니까?'라고.
바라드와자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선언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다. ··· 마음챙김이 ··· 삼매가 ···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참으로 나는 라마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리라.'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웃다까 라마뿟따시여, 존자께서는 얼마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것입니까?"
바라드와자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인식하는 것도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웃다까 라마뿟따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웃다까 라마뿟따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웃다까 라마뿟따에게만 마음챙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웃다까 라마뿟따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웃다까 라마뿟따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참으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리라.'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비구들이여,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이시여, 존자께서는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하십니까?'라고.
'도반이여, 나는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합니다.'
'도반이시여, 나도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우리가 존자와 같은 동료 수행자를 보는 것은 참으로 이득이고 참으로 큰 이득입니다. 이렇게 내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선언한 그 법을 그대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대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무는 법을 나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선언합니다. 이렇게 내가 아는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그 법을 내가 압니다. 이렇게 그대는 나와 같고, 나는 그대와 같습니다. 오십시오, 도반이여. 이제 우리 둘이 함께 머물면서 이 대중들을 이끌어 나갑시다.'
바라드와자여, 참으로 이렇게 나의 스승이였던 알라라 깔라마는 제자인 나를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나를 존중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법은 염오(싫어하여 떠남)로, 탐욕의 떠남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완전한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단지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남으로 인도할 뿐이다.'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법으로부터 염오하여 떠났습니다.
5. 바라드와자여, 그렇게 무엇이 유익함인지를 구하는 나는 위없이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마가다 지방에서 차례로 유행하면서 우루웰라 근처의 쎄나니가마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땅과 고요한 숲과 유유히 흐르는 깨끗한 강과 튼튼한 강둑과 근처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을 보았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름다운 땅과 고요한 숲과 유유히 흐르는 깨끗한 강과 튼튼한 강둑과 근처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다. 참으로 이곳은 정진을 원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정진하기에 적당한 곳이다.'라고.
바라드와자여, 내가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세 가지 비유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면, 바라드와자여, 물 위에 놓여 있는 젖고 수액이 있는 나무토막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불을 피워야겠다. 열을 일으켜야겠다'라면서 부시 막대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 위에 놓여 있는 젖고 수액이 있는 그런 나무토막에 부시막대를 가지고 마찰시키는 그 사람은 불을 피우고 열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그 젖고 수액이 있는 나무토막은 또한 물 위에 놓여 있어서 불을 피우고 열을 일으키지 못하고 오히려 지치고 짜증 날 것입니다."
"이처럼, 바라드와자여, 만약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심.心)으로도 감각적 쾌락들에서 멀리 떠나지 못한 채 머물고, 또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망, 애착, 갈증, 뜨거움을 안으로 잘 제거하지 못하고 고요하게 하지 못합니다. 만약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지(知)와 견(見)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만약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지와 견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라드와자여, 나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른,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첫 번째 비유입니다.
478. 다시, 바라드와자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두 번째 비유가 뒤따라 나에게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면, 바라드와자여,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놓여 있는 젖고 수액이 있는 나무토막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불을 피워야겠다. 열을 일으켜야겠다.'라면서 부시 막대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놓여 있는 젖고 수액이 있는 나무토막에 부시막대를 마찰시키는 그 사람은 불을 피우고 열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아무리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놓여있더라도 젖고 수액이 있는 나무토막은 부시막대를 마찰시켜서 불을 피우고 열을 일으키지 못하고 오히려 지치고 짜증날 것입니다."
"이처럼, 바라드와자여, 만약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심.心)으로도 감각적 쾌락들에서 멀리 떠나 머물지만,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망, 애착, 갈증, 뜨거움을 안으로 잘 제거하지 못하고 고요하게 하지 못합니다. 만약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지(知)와 견(見)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만약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지와 견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라드와자여, 나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른,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두 번째 비유입니다.
479. 다시, 바라드와자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세 번째 비유가 뒤따라 나에게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면, 바라드와자여,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놓여 있는 마르고 수액이 없는 나무토막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불을 피워야겠다. 열을 일으켜야겠다.'라면서 부시막대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바닥에 놓여있는 마르고 수액이 없는 나무토막에 부시막대를 마찰시키는 그 사람은 불을 일으키고 열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마르고 수액이 없는 나무토막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놓여 있습니다."
"이처럼, 바라드와자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감각적 쾌락들을 멀리 떠나서 머물고, 또한 그들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망, 애착, 갈증, 뜨거움을 안으로 잘 제거하고 고요하게 합니다. 만약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그들은 지와 견과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그 사문.바라문들이 고행에 의한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지와 견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라드와자여, 나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른, 전에 들어보지 못한 떠오른 세 번째 비유입니다. 바라드와자여, 나에게 전에 들어보지 못한 이런 세 가지 비유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480.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나는 이와 이를 맞대고(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굳게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억제하고 다잡고 눌러 버려야겠다.'라고. 그런 나는, 바라드와자여, 이와 이를 맞대고 혀를 입천장에 굳게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억제하고 다잡고 눌러버렸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내가 그렇게 이와 이를 맞대고 혀를 입천장에 굳게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억제하고 다잡고 눌러버리자 양쪽 겨드랑이에서 땀이 흘렀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마치 힘센 사람이 허약한 사람의 머리를 쥐거나 몸통을 붙잡고는 억제하고 다잡고 눌러버리듯이 나는 이와 이를 맞대고 혀를 입천장에 굳게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억제하고 다잡고 눌러버렸습니다. 내가 그렇게 이와 이를 맞대고 혀를 입천장에 굳게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억제하고 다잡고 눌러버리자 양쪽 겨드랑이에서 땀이 흘렀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나에게 확고한 노력은 포기되지 않았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괴로운 노력 때문에 노력에 압도되었을 때 (고통스러운 노력으로 몸이 지쳐있었기 때문에) 나의 몸은 극도로 긴장되고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481.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숨을 쉬지 않는 선정(선.禪)을 닦아야겠다.'라고. 그런 나는, 바라드와자여,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렇게 내가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자 귀로부터 바람이 나오면서 엄청난 소리가 났습니다. 예를 들면, 대장간의 바람을 불고 있는 풀무의 엄청난 소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바라드와자여, 내가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자 귀로부터 바람이 나오면서 엄청난 소리가 났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나에게 확고한 노력은 포기되지 않았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괴로운 노력 때문에 노력에 압도되었을 때 나의 몸은 극도로 긴장되고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숨을 쉬지 않는 삼매를 (뎌욱더) 닦아야겠다.'라고. 그런 나는, 바라드와자여,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렇게 내가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자 엄청난 바람이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라드와자여, 힘센 사람이 예리한 칼로 머리를 쪼갤 것입니다. 이처럼, 바라드와자여, 내가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자 엄청난 바람이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나에게 확고한 노력은 포기되지 않았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괴로운 노력 때문에 노력에 압도되었을 때 나의 몸은 극도로 긴장되고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숨을 쉬지 않는 삼매를 닦아야겠다.'라고. 그런 나는, 바라드와자여,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렇게 내가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자 머리에 심한 두통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바라드와자여, 힘센 사람이 튼튼한 가죽 끈으로 머리를 감아쥘 것입니다. 이처럼, 바라드와자여, 내가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머리에 심한 두통이 생겼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나에게 확고한 노력은 포기되지 않았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괴로운 노력 때문에 노력에 압도되었을 때 나의 몸은 극도로 긴장되고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숨을 쉬지 않는 삼매를 닦아야겠다.'라고. 그런 나는, 바라드와자여,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렇게 내가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자 거센 바람이 배를 도려내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라드와자여, 능숙한 백정이나 백정의 제자가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써 배를 도려낼 것입니다. 이처럼, 바라드와자여, 내가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자 거센 바람이 배를 도려내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나에게 확고한 노력은 포기되지 않았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괴로운 노력 때문에 노력에 압도되었을 때 나의 몸은 극도로 긴장되고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숨을 쉬지 않는 삼매를 닦아야겠다.'라고. 그런 나는, 바라드와자여,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렇게 내가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자 몸에서 엄청난 열이 났습니다. 예를 들면, 바라드와자여, 힘센 두 사람이 힘없는 사람의 양팔을 잡고 숯불 구덩이 위에서 태우고 뜨겁게 할 것입니다. 이처럼, 바라드와자여,내가 입과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자 몸에 엄청난 열이 났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나에게 확고한 노력은 포기되지 않았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괴로운 노력 때문에 노력에 압도되었을 때 나의 몸은 극도로 긴장되고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를 보고서 신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죽었다.'라고. 다른 신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죽지 않았다. 그렇지만 죽어가고 있다.'라고. 다른 신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죽지 않았고, 죽지 않는다. 사문 고따마는 아라한이다. 아라한은 이처럼 머문다(아라한의 삶은 이런 것이다).'라고.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완전하게 단식을 실천해야겠다.'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러자 바라드와자여, 신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자여, 그대는 완전한 단식을 실천하지 마십시오. 존자여, 만약 그대가 완전한 단식을 실천한다면 그런 그대에게 우리가 하늘의 음식을 피부의 털구멍을 통해 넣어드리겠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그대를 유지하게 할 것입니다.'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내가 완전한 단식을 실천하면 이 신들이 나에게 하늘의 음식을 피부의 털구멍들을 통해 넣어 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나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완전한 단식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그 신들을 거절했습니다. '필요 없습니다.'라고 나는 말했습니다.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콩죽이나 편두죽이나 야생 완두죽이나 청완두죽 한 줌의 아주 적은 양의 음식을 먹어야겠다.'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아주 적은 양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오직 한 줌의 적은 양의 콩죽이나 편두죽이나 야생 완주죽이나 청완두죽을 먹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가 콩죽이나 편두죽이나 야생 완두죽이나 청완두죽 한 줌의 아주 적은 양의 음식을 먹는 나의 몸은 극도로 여위어 갔습니다. 예를 들면, 아시띠까 나무의 마디나 깔라 풀의 마디가 있습니다. 이처럼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사지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낙타의 발이 있습니다. 이처럼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엉덩이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구슬을 엮어 놓은 사슬이 있습니다. 이처럼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구부정한 척추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오래된 집의 서까래들은 부서지게 됩니다. 이처럼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갈비뼈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깊은 우물에는 물에 비친 별이 깊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동공 안에서 눈동자의 빛은 깊게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쓴 오이가 익기 전에 떨어져 바람과 햇빛에 닿으면 시듭니다. 이처럼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피부는 갈라지고 말라붙었습니다. 그런 내가, 바라드와자여, '뱃가죽을 만져야겠다.'라고 하면 등뼈를 잡았고, '등뼈를 만져야겠다.'라고 하면 뱃가죽을 잡았다. 바라드와자여,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나의 뱃가죽은 등뼈에 붙어버렸습니다. 그런 내가, 바라드와자여, '대변이나 소변을 보아야겠다.'라고 하면,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머리를 아래로 하며 넘어졌습니다. 그런 내가, 바라드와자여, 이 몸을 편안하게 하려고 손으로 사지를 문질렀습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에게 그 적은 음식의 섭취 때문에 손으로 사지를 문지르면 뿌리가 썩어서 냄새가 나는 털들이 몸에서 떨어졌습니다. 바라드와자여,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검다.'라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검지 않다. 사문 고따마는 노랗다.라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검지도 않고 노랗지도 않다. 사문 고따마는 황금색 피부를 가졌다.'라고. 바라드와자여, 그런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피부색은 깨끗하고 밝았지만 파괴되어 갔습니다.
482.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과거의 어떤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경험했던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 중에서 이것이 가장 혹독한 것이어서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없었다. 미래의 어떤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겸험할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 중에서 이것이 가장 혹독한 것이어서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없을 것이다. 현재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경험하는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로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 중에서 이것이 가장 혹독한 것이어서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이제 없다. 그러나 나는 이런 극심한,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면서도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증득하지 못했다. 참으로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있을까?'라고.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삭까족의 농경제 행사에서 시원한 잠부 나무 그늘에 앉아 있을 때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와 미세한 사유(지속적 고찰)를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과 즐거움(행복)이 있는 초선에 들어 머물렀던 것을 기억한다. 참으로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일까?'라고.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그 기억을 따라서 이런 의식이 있었습니다. '오직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이다.'라고.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감각적 쾌락들과 다른 곳, 선하지 않은 법들과 다른 곳에 있는 행복(즐거움)을 두려워하는가?'라고.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감각적 쾌락들과 다른 곳, 선하지 않은 법들과 다른 곳에 있는 행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483.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극도로 야윈 몸을 가지고 그런 행복을 얻기란 쉽지 않다. 나는 덩어리진 음식, 밥과 응유를 먹어야겠다.'라고. 그런 나는 바라드와자여, 덩어리진 음식, 밥과 응유를 먹었습니다. 그때, 바라드와자여, 나에게 '사문 고따마는 법을 증득할 것이다. 그 법을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다.'라면서 함께하는 다섯 비구가 있었습니다. 바라드와자여, 내가 덩어리진 음식, 밥과 응유를 먹었을 때, 그 함께하는 다섯 비구들은 나에게 '사문 고따마는 풍족하게 사는 자이다. 노력을 포기하고 풍족한 삶으로 되돌아갔다.'라고 염오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런 나는, 바라드와자여, 덩어리진 음식, 밥과 응유를 먹고서 몸을 회복한 뒤에,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 고찰.伺)를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 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기쁨을 떠난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 제4선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나는 이렇게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전생에 대해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했습니다. 그런 나는 여러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했습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무너지는 겁(세계), 이루어지는 겁,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을 기억했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슴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했습니.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밤의 초경(初更)에 나에게 얻어진 첫 번째 명지(明知)입니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생긴 것입니다.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생긴 것입니다.
484. 나는 이렇게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중생들의 죽음과 삶에 관련한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했습니다. 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天眼]으로 중생들 보았습니다. 죽고, 태어나고, 열등하고, 수승하고, 아름다운 용모와 추한 용모,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렸다. '이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았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났다. 혹은 다시, 그러나 이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았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 보았습니다. 죽고 태어나고, 열등하고 수승하고, 아름다운 용모와 추한 용모,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렸습니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밤의 이경(二更)에 나에게 얻어진 두 번째 명지(明知)입니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생긴 것입니다.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생긴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확립되고, 동요함이 없게 되었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했습니다. 그런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았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볼 때 나는 감각적 쾌락에 기인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했습니다. 존재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습니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겼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았습니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밤의 삼경(三更)에 나에게 얻어진 세 번째 명지(明知)입니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생긴 것입니다.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생긴 것입니다."
485. 이렇게 말씀하시자,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의 정진은 정말 적절합니다. 고결한 사람이여, 고따마 존자의 정진은 정말 그분 아라한·정등각과 같습니다. 참으로, 고따마 존자시여, 신은 있습니까?"
"바라드와자여, 나는 원인과 함께 높은 신을 압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신은 있습니까?'라고 질문드렸는데 '바라드와자여, 나는 원인과 함께 높은 신을 안다.'라고 존자께서는 대답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존자의 대답은 공허한 것이고 거짓이 아닙니까?"
"바라드와자여, '신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사람은 '신은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원인과 함께 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현명한 사람은 '신은 있다.'라는 확실한 결론을 얻습니다."
"그러면 왜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에게 첫 번째 방법으로 설명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바라드와자여, '신은 있다.'라는 것은 세상에서 고귀한 사람들에 의해 동의된 것입니다(세상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당연한 것입니다)."
486. 이렇게 말씀하시자 상가라와 바라문 수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진리)을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살아 있는 동안 귀의한 남신자로 받아주십시오.”
Saṅgāravasuttaṃ niṭṭhitaṃ dasamaṃ.
Brāhmaṇavaggo niṭṭhito pañcamo.
열 번째 상가라와 경이 끝났다.
제10장 바라문 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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