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104. 사마가마 경(sāmagāmasuttaṃ)

실론섬 2016. 5. 24. 18:07

MN 104. 사마가마 경(sāmagāmasuttaṃ)

 

4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사마가마에 머물렀는데, 니간타 나따뿟따가 빠와에서 죽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가 죽자 분열된 니간타들은 둘로 갈라져서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에 입의 칼로 찌르며 머물렀다.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안다. 그대가 이 법과 율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대는 삿된 길을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르게 길을 닦는 자이다. 나의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의 말은 일관되지 않는다. 그대는 먼저 말해야 할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할 것을 먼저 말한다. 그대가 성취한 것은 논파되었다. 그대가 준비한 말은 비난되었다. 말을 취소하라. 아니면 할 수 있다면 설명해 보라.'라고. 

 

*사마가마(Sama-gama) 혹은 사마 마을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마가마(Samagama, 사마 마을)에는 기장(samaka)이 많이 자라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MA.iv.32;AA.iii.353)
「앙굿따라 니까야」 제4권 「사마까 경」(A6.21)도 이곳 사마가마에서 설해졌다. 이 「사마까 경」에서는 사마가마까(Samagamaka)로 나타나고 있다. DPPN에서 제시하듯이 웨단냐(Vedhanna) 가문이 사마가마에 정착하고 있던 것이 확실하다. 웨단냐 가문은 「디가 니까야」 제3권 「정신 경」(D29)에 나타난다.    

*빠와(Pava)는 말라들의 도시이다. 말라(Malla)는 인도 중원의 16개국 가운데 하나였다. 세존 시대에는 빠와(Pava)와 꾸시나라(Kusinara)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각각 빠와의 말라족 빠웨이야까말라(Paveyyaka-Malla)라 불리었고 꾸시나라의 말라들은 꼬시나라까(Kosinaraka)라 불리었다. 「디가 니까야」 제2권 「대반열반 경」(D16)에서 빠와의 말라들이 꾸시나라로 전령을 보내어서 세존의 사리를 나누어 줄 것을 요청한데서도 이 둘은 다른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세존께서 쭌다의 마지막 공양을 드신 곳도 바로 이 빠와였으며, 본경에서 보듯이 니간타 나따뿟따는 이곳에서 임종하였다.    

 

생각건대,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에게는 오직 논쟁과 다툼만이 있는 듯하였다. 니간타 나따뿟따의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들도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에게 싫증내는 모습이었고 싫어하는 모습이었고 배척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법과 율이 잘못 설해지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되지 않고 고요함으로 인도되지 않고 바르게 깨달은 자에 의해 선언되지 않고 기반이 무너지고 귀의처가 아니기 때문이였다.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anupasamasamvattanike)'라는 것은 이 법과 율은 탐욕 등을 고요하게 할 수 없어다는 뜻이다."(MA.iv.34)
*'기반이 무너진 것은' bhinna-thupa(탑이 무너진 것)을 옮긴 것인데 주석서에서 "기반이 무너진 것(bhinna-patittha)"(MA.iv.34)라고 설명하고 있다. 계속해서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는 나타뿟따만이 그들의 기반(patittha)인 탑(thupa)인데, 그 탑이 무너지고 부서졌다. 그래서 기반이 무너졌다고 했다."(Ibid) 

 

42. 그 당시 사미 쭌다가 빠와에서 안거를 마치고 사마가마로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사미 쭌다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니간타 나따뿟따가 빠와에서 죽고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자 분열된 니간타들은 둘로 갈라져서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에 입의 칼로 찌르며 머물렀습니다.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안다. 그대가 이 법과 율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대는 삿된 길을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르게 길을 닦는 자이다. 나의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의 말은 일관되지 않는다. 그대는 먼저 말해야 할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할 것을 먼저 말한다. 그대가 성취한 것은 논파되었다. 그대가 준비한 말은 비난되었다. 말을 취소하라. 아니면 할 수 있다면 설명해 보라.'라고. 생각건대,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에게는 오직 논쟁과 다툼만이 있는 듯하였습니다. 니간타 나따뿟따의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들들도 싫증내는 싫어하는 모습이었고 배척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법과 율이 잘못 설해지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되지 않고 고요함으로 인도되지 않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 선언된 것이 아니고 기반이 무너진 것이고 귀의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이렇게 말하자 아난다 존자는 사미 쭌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쭌다여, 이것은 세존을 친견하고 말씀드려야 할 일입니다. 갑시다, 도반 쭌다여. 세존께 가서 이 일을 말씀드립시다."라고.

"알겠습니다, 존자이시여."라고 사미 쭌다는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사미 쭌다(Cunda samanuddesa)'는 사리뿟따의 남동생이다. 구족계를 받기 전에 사미 쭌다라고 불리던 것이 장로가 된 뒤에도 그렇게 불렸다.(MA.iv.36) 또한 사미 쭌다는 마하쭌다 존자로도 쭌다 존자로도 쭌다까 존자로도 불렸다고 한다. 한때 그는 세존의 시자이기도 했다. 사리뿟따 존자에게는 세 명의 남동생 즉 쭌다(Cunda), 우빠세나(Upasena), 레와따(Revata)와 세 명의 여동생 즉 짤라(Cala), 우빠짤라(Upacala), 시수빠짤라(Sisupacala)가 있었는데 모두 출가하였다고 한다.(Dhp.A.ii.188) 짤라와 우빠짤라와 시수빠짤라의 게송은 상윳따 니까야 제1권 짤라 경 등(S5.6-8)의 세 개의 경에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와 쭌다 사미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사미 쭌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자시여, 니간타 나따뿟따가 빠와에서 죽은 뒤의 무렵이었습니다. 그가 죽자 분열된 니간타들은 둘로 갈라져서 ··· 기반이 무너지고 귀의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런 저에게, 세존이시여,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존께서 돌아가신 뒤 승가에 갈등이 생겨서는 안된다. 그 갈등은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신과 인간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위한 것이다.'라고." 

 

*"'신과 인간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괴로웅을 위한 것이다 (bahuno janassa anatthaya ahitaya dukkhaya devamanussanam)'라고 했다. 한 승원에서 일어난 분쟁(vivada)이 어떻게 많은 신과 사람들에게 손실과 손해와 괴로움을 가져오겠는가? 율장 대품의 꼬삼바까 건도(Kosambaka-kkhandhaka)에 나타나듯이 두 비구 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 그 승원의 제자들(antevasika)이 서로 다투고, 그들에게 훈계를 하면 비구 승가에서 분쟁이 생기고, 그리하여 그들의 신도들(upatthaka) 간에 분쟁이 생기고, 사람들을 돕는 신들(arakkha-devata)이 두 부류로 분리되어 차츰 한 승원에서 생긴 분쟁은 많은 이들에게 손실과 괴로움을 가져온다."(MA.iv.37)

 

43. "아난다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완전한 지혜에 의해 내가 설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사념처.四念處], 네 가지 노력[사정근.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사여의족.四如意足], 다섯 가지 근[오근.五根], 다섯 가지 힘[오력.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칠각지.七覺支]와 성스러운 여덟 가지 바른 길[팔지성도.八支聖道]의 법들에서, 아난다여, 그대는 다른 말을 하는 비구를 두 명이라도 보는가?" 

"세존이시여, 완전한 지혜에 의해 세존께서 저희들에게 설해주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과 네 가지 노력, 네 가지 성취수단, 다섯 가지 근, 다섯 가지 힘,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 성스러운 바른 길의 법들에서 저는 다른 말을 하는 비구를 두 명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세존을 우러르며(의지하면서) 머무는 사람들도 세존의 죽음 이후에는 승가에서 생활에 관계되거나 빠띠목카(계목)에 관계되어 갈등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그 갈등은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신과 인간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위한 것입니다."  

"아난다여, 생활에 관계되거나 빠띠목카에(계목)에 관계된 갈등은 사소한 것이다아난다여, 그러나 승가에 도(道)나 닦음(실천)에 관한 갈등이 일어난다면, 그 갈등은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신과 인간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위한 것이다.

*여기에 나타나고 있는 일곱 가지 주제는 37가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菩提分法, bodhipakkhiya dhamma)로 불린다. 이것은 우리에게 37보리분법(菩提分法)이나 37조도품(助道品)으로 잘 알려진 것이다. 이 일곱 가지 주제에 포함된 법들을 다 합하여 37가지가 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이를 37보리분법이라 불렀다. 37보리분법은 초기불교의 수행을 대표하는 것이다. 

 

44. 아난다여, 이런 여섯 가지 갈등의 뿌리가 있다. 어떤 여섯인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는 분노하고 원한을 가진 자다. 아난다여, 분노하고 원한을 가진 그 비구는 스승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법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승가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닦음에 대해서도 성취하지 못한다.

 

스승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물고, 법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물고, 승가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물고, 닦음에 대해서도 성취하지 못한 그는 승가에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신과 인간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위한 것인 갈등을 생겨나게 한다.    

 

아난다여, 만약 그대들에게 이러한 갈등의 뿌리가 안이거나 밖에서 관찰된다면, 그때, 아난다여, 그 악한 갈등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그대들에게 안이나 밖에서 이러한 갈등의 뿌리가 관찰되지 않는다면, 그때, 아난다여, 악한 갈등의 뿌리가 미래에 싹트지 않도록(흘러나오지 않도록) 닦아야 한다. 이렇게 이 악한 갈등의  뿌리가 버려지고, 이렇게 이 악한 갈등의 뿌리가 미래에 싹트지 않는다(흘러나오지 않는다).

 

45.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위선적이고 악의를 가진 자다(상대방을 경멸하고 업신여긴다) ··· 질투하고 인색한 자다 ··· 교활하고 사기치는 자다 ··· 악한 바램과 삿된 견해를 가진 자다 ··· 세속적인 것에 오염되고, 고치기 힘들고, (자기 견해를) 놓기 어려운 자다. 세속적인 것에 오염되고, 고치기 힘들고, 놓기 어려운 그 비구는 스승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법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승가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닦음에 대해서도 성취하지 못한다.

 

스승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물고, 법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물고, 승가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물고, 닦음에 대해서도 성취하지 못한 그는 승가에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신과 인간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위한 것인 갈등을 생겨나게 한다.      

아난다여, 만약 그대들에게 이러한 갈등의 뿌리가 안이거나 밖에서 관찰된다면, 그때, 아난다여, 그 악한 갈등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그대들에게 안이나 밖에서 이러한 갈등의 뿌리가 관찰되지 않는다면, 그때, 아난다여, 그 악한 갈등의 뿌리가 미래에 싹트지 않도록(흘러나오지 않도록) 닦아야 한다. 이렇게 이 악한 갈등의  뿌리가 버려지고, 이렇게 이 악한 갈등의 뿌리가 미래에 싹트지 않는다(흘러나오지 않는다).
아난다여, 이런 여섯 가지 갈등의 뿌리가 있다.

 

46. 아난다여, 네 가지 사건(승가갈마.대중공사.諍事)이 있다. 어떤 넷인가?

논쟁으로 인한 분쟁(vivadadhikaranam.論諍事), 고발로 인한 분쟁(anuvadadhikaranam.非難事), 계를 범한 것(범죄로 인한 분쟁)으로 인한 분쟁(apattadhikaranam.罪諍事), 절차로 인한 분쟁(kiccadhikaranam.行諍事)이다. 아난다여, 이런 네 가지 사건이 있다. 또한, 아난다여, 일곱 가지 이런 사건의 가라앉힘이 있다. 거듭 생기는 사건들의 그침과 가라앉음을 위해 대면하여 다스림을 행함(現前毘奈耶.현전비나야), 기억을 환기시켜 다스림을 행함(憶念毘奈耶.억념비나야),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 선고를 행함(不痴毘奈耶.불치비나야), 자백함을 행함(自認.자인), 다수결에 의함을 행함(多人語.다인어), 더 심문하여 자인케 함을 행함(覓罪相.멱죄상), 대표자의 인정으로 잘못을 풀로 덮어두는 방식을 햄함(如草覆地法.여초복지법)이다.

 

47. 아난다여, 어떻게 대면하여 대면하여 다스림이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들은 법이라거나 법이 아니라거나 율이라거나 율이 아니라며 갈등한다. 아난다여, 거기에 속한 그 비구들은 모두 함께 해야한다. 함께 모여서 법이 이끄는 대로 함께 논의해야 한다. 법이 이끄는 대로 논의한 뒤에 거기서 합의한 방법으로 그 사건을 가라앉혀야 한다. 이렇게, 아난다여, 대면하여 다스림(現前毘奈耶.현전비나야)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대면하여 다스림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48. 아난다여, 어떻게 다수결(더많은 사람의 의견을 구함)에 의함이 있는가?

만약, 아난다여, 그 비구들이 그 거처에서 그 사건을를 가라앉히는 것이 불가능하면, 아난다여, 그 비구들은 더 많은 비구들이 있는 거처로 가야 한다. 거기에서 모두 함께해야 한다. 함께 모여서 법이 이끄는 대로 논의해야 한다. 법이 이끄는 대로 논의한 뒤에 거기서 합의한 방법으로 그 사건을 가라앉혀야 한다. 이렇게, 아난다여, 다수결에 의함(多人語.다인어)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수결에 의함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49. 아난다여, 어떻게 기억을 환기시켜 다스림이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들이 '존자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바라이 죄)에 준하는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까?'라고 어떤 비구를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그런 계를 범했다고 질책한다. 그는 '도반들이여, 나는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아난다여, 그 비구에게는 기억을 환기시켜 다스림을 행해야 한다. 아나다여, 이렇게 기억을 환기시켜 다스림(憶念毘奈耶.억념비니야)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기억을 환기시켜 다스림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50. 아난다여, 어떻게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 선고가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들이 '존자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까?'라고 어떤 비구를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에 대해 질책한다. (그는 '도반들이여, 나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오시오, 존자여, 그대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라고 그것에 대해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도반들이여, 나는 정신이상 상태여서 마음이 전도(轉倒)되고 혼미하였습니다. 그런 정신이상 상태의 내가 사문답지 못한 말과 행동을 많이 행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나는 모르고 그런 행동을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난다여, 그 비구에게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 선고(不痴毘奈耶.불치비나야)가 행해져야 한다. 이렇게, 아난다여, 정신이상 상태에 의한 무좨 선고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 선고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51. 아난다여, 어떻게 자백함(고백함)이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질책 받거나 질책 받지 않은 비구가 잘못을 범한 것을 기억하고, 알리고, 분명히 한다. 아난다여, 그 비구보다 연장자인 비구에게 가서 윗옷을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 발에 이마를 대고 예배하고, 쪼그려 앉아서 합장한 뒤 이렇게 말해야 한다. '존자시여, 저는 이러저러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을 자백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비구는 말한다. 그는 '그대가 범한 것을 보았습니까?'라고 말한다. '예, 보았습니다.' '앞으로는 단속하겠습니까?' '단속하겠습니다.' 이렇게, 아난다여, 자백함(自認.자인)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백함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52. 아난다여, 어떻게 더 심문하여 자인케 함이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가 '존자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까?'라고 어떤 비구를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에 대해 질책한다. 그는 '도반들이여, 나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도반이여, 나는 사소한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다. '라고 말한다. 그것에 대해 설명하는 그는 '오시오, 존자여, 그대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라고 추궁 받는다. 그는 '도반들이여, 나는 이런 사소한 계를 범한 뒤에 질문 받지 않은 것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뒤에 질문 받은 것을 인정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 다른 자가 말한다. '도반이여, 그대는 묻지 않았다면 이러한 사소한 계를 범한 것도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묻는다고 어찌 그대가 이런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을 인정하겠습니까? 오시오, 존자가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라고. 그는 '나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너무 부끄럽고 감당할 수 없어서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아난다여, 더 심문하여 자인케 함(覓罪相.멱죄상)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더 심문하여 자인케함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53. 아난다여, 어떻게 대표자의 인정으로 잘못을 풀로 덮어두는 방식이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분쟁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갈등하며 머무는 비구들이 사문답지 않은 행동과 말을 많이 행한다. 아난다여, 거기에 속한 그 비구들은 모두 함께해야 한다. 함께 모인 뒤에 한쪽편의 비구들 가운데 경험이 있는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윗옷을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 쪼그려 앉아서 합장한 뒤 승가 대중에게 설명해야 한다. '존자들이여, 승가 대중은 나의 말을 들으십시오. 분쟁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갈등하며 머무는 우리들은 사문답지 않은 행동과 말을 많이 행했습니다. 만일 승가 대중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존자들을 위하고 나 자신을 위해 이 존자들이 계를 범한 것과 나 자신이 계를 범한 것을, 중대한 결점과 재가자에게 관계된 것은 제외하고, 승가 대중 가운데 대표자의 인정으로 잘못을 풀로 덮어두는 방식에 의해 자백할 것입니다.'라고. 그러면 다른 한쪽편의 비구들 가운데 경험이 있는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위옷을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 쪼그려 앉아서 합장한 뒤 승가 대중에게 설명해야 한다. '존자들이여, 승가 대중은 나의 말을 들으십시오. 분쟁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갈등하며 머무는 우리들은 사문답지 않은 행동과 말을 많이 행했습니다. 만일 승가 대중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존자들을 위하고 나 자신을 위해 이 존자들이 계를 범한 것과 나 자신이 계를 범한 것을, 중대한 결점과 재가자에게 관계된 것은 제외하고, 승가 대중 가운데 대표자의 인정으로 잘못을 풀로 덮어두는 방식에 의해 자백할 것입니다.'라고. 이렇게, 아난다여, 대표자의 인정으로 잘못을 풀로 덮어두는 방식(如草覆地法.여초복지법)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대표자의 인정으로 잘못을 풀로 덮어두는 방식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54. 아난다여, 이런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하는 법들은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 함으로, 일치로 이끈다. 어떤 여섯인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가 함께일 때든(함께 머물거나) 혼자일 때든(홀로 머물거나) 동료 수행자들에 대해서 자애와 함께하는 몸의 업(신업.身業)을 행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가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 비구들에 대해서 자애와 함께하는 말의 업(구업.口業)을 행한다. 이것이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가 혼자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 비구들에 대해서 자애와 함께하는 마음의 업(의업.意業)을 행한다. 이것이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가 적절하고 정당하고 법답게 얻은 것들은 그것이 비록 나누어서 사용하지 못할 만큼 얻어진 발우에 담긴 적은 것일지라도 계를 중시하는 동료 비구들과 나누거나 공동으로 사용한다. 이것이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아난다여,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벗어나게 하고, 현자들이 칭찬하고,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그런 계들을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 비구들과 함께 갖추어 머문다. 이것이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가 성스럽고, 출리로 이끌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에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바른 견해에 대해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그 바른 견해를 함께 갖추어 머문다. 이것이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해야 하는 법이다.

 

"만약, 아난다여, 그대들이 이런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하는 법들을 받아 지녀 실천하는데도, 아난다여, 그대들은 사소하건 중대하건 그대들이 동의할 수 없는 말이나 분쟁의 길을 보는가?"  

"아닙니,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런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하는 법들을 받아 지녀 실천하라. 그것은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사마가마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