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105. 수낙캇따 경(sunakkhattasuttaṃ)
5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의 큰 숲에 있는 중각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많은 비구들이 세존의 곁에서 구경의 지혜를 선언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해야 할 일을 했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다음에는 현재 상태가 되지 않는다).'라고.
릿차위 후예인 수낙캇따가 "많은 비구들이 세존의 곁에서 ''우리는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라고 구경의 지혜를 선언했다."라고 들었다. 그러자 릿차위의 후예인 수낙캇따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아서 라차위의 후예인 수낙캇따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많은 비구가 세존의 곁에서 '우리는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구경의 지혜를 선언했다.'라고. 세존이시여, 세존의 곁에서'우리는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구경의 지혜를 선언한 그 비구들은 누구라도, 세존이시여, 바르게 구경의 지혜를 선언하였습니까 아니면 그들 가운데서 어떤 비구들은 구경의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서 지나친 자만심으로 구경의 지혜를 선언하였습니까?"라고.
*"'구경의 지혜(anna)'는 아라한과(arahatta)를 말한다."(MA.iv.51)
*'구경의 지혜를 선언한다.'는 annam vyakaroti를 옮긴 것이다. 구경의 지혜는 곧 아라한과를 말한다. 이것은 아라한과를 얻었을 때 생기는 지혜를 나타낸다. 여기서 보듯이 아라한과를 성취한 뒤에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안다.(khina jati vusitam brahmacariyam katam karaniyam naparam itthattayati pajanami)"라는 이런 구문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드러내는 것을 '구경의 지혜를 선언한다', 혹은 '구경의 지혜를 드러낸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지나친 자만심(adhimana)'이란 증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증득했다는 인식을 가지고(patta-sanni),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는 인식을 가져서(adhigata-sanni) 우리는 얻었다고 자만심(mana)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MA.iv.51)
56. "수낙캇따여, 내 곁에서 '우리는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구경의 지혜를 선언한 비구들 가운데 어떤 비구들은 바르게 구경의 지혜를 선언하였고, 그들 가운데 어떤 비구들은 구경의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서 지나친 자만심으로 구경의 지혜를 선언하였다. 거기서, 수낙캇따여, 바르게 구경의 지혜를 선언한 비구들에게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나친 자만심으로 구경의 지혜를 선언한 비구들에 대해서는, 수낙캇따여, 여래에게 '그들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쓸모없는 사람들은 질문을 거듭 준비해서(질문을 고안하여) 여래에게 와서 질문을 한다. 거기서 수낙캇따여, '그들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라는 여래의 생각도 바뀐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적절한 시간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법을 설하실 바로 적절한 시간입니다. 세존의 말씀을 듣고 비구들은 잘 가슴에 간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낙캇따여,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랏차위의 후예인 수낙캇따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마음이] 바뀐다(hoti annathattam).'라고 하셨다. 세존께서는 도닦는 자들(patipannaka)에게 법을 설하신다. 그러나 여기 자신의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보신다. '이들은 이 가르침을 듣고 잘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체하고, 증득하지 못하고서도 증득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오랜 세월 손해와 괴로움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이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법을 설하리라는 마음이 일어나지만 그 마음이 변해버린다."(MA.iv.51-52)
"즉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버린다는 뜻이다."(MAT.ii.247)
57. "수낙캇따여, 이런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 있다. 어떤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환락을 야기하는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 ··· 혀로 인식되는 맛들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환락을 야기하는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다. 수낙캇따여, 이런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 있다.
58. 여기 수낙캇따여,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기 어떤 사람은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기울일 것이다. 수낙캇따여,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과 관련된 것만을 생각하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진다. 그는 그런 부류의 사람과 교제하고 그를 통해서 만족을 얻는다. 고요함(흔들림이 없는)에 관한 것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알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그런 부류의 사람과 교제하지 않고 그를 통해 만족을 얻지 못한다. 예를 들면, 수낙캇따여, 오래 전에 자기 마을이나 성읍을 떠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가 최근에 그 마을이나 성읍에서 온 다른 사람을 볼 것이다. 그는 그 사람에게 그 마을이나 성읍의 안전과 번영과 재난 없음을 물을 것이다. 그 사람은 그에게 그 마을이나 성읍의 안전과 번영과 재난없음을 알려 줄 것이다. 수낙캇따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면 그 사람은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알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그 사람을 통해서 만족을 얻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처럼, 수낙캇따여, 여기 어떤 사람은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기울일 것이다. 수낙캇따여,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과 관련된 것만을 생각하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진다. 그는 그런 부류의 사람과 교제하고 그를 통해서 만족을 얻는다. 고요함(흔들림이 없는)에 관한 것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알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그런 부류의 사람과 교제하지 않고 그를 통해 만족을 얻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참으로 고요한 것의 족쇄에 의해 묶인 자가 아닌,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다.'라고.
*"'세속적인 것(lokamisa)'이란 윤회와 관계되고 감각적 쾌락과 관계되고 세상과 관계된(vattamisa-kamamisa-lokamisa)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여 있는 것을 말한다."(MA.iv.52)
59. 수낙캇따여, 그러나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수낙캇따여, 여기 어떤 사람은 흔들림 없음에 마음을 기울일 것이다. 수낙캇따여, 흔들림 없음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과 관련된 것만을 생각하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진다. 그는 그런 부류의 사람과 교제하고 그를 통해 만족을 얻는다. 세속적인 것에 관한 것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알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그런 부류의 사람과 교제하지 않고 그를 통해 만족을 얻지 못한다. 예를 들면, 수낙캇따여, 나무 줄기에서 떨어진 낙엽이 다시 푸른 잎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수낙캇따여, 고요함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에게 세속적인 것의 족쇄들은 깨어져 흩어졌다.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참으로 세속적인 세상의 족쇄에서 벗어나(묶이지 않은), 흔들린 없음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다.라고.
*"'흔들림 없음에 마음을 기울인다(anenja-adhimutta)'는 것은 오염원으로 촉촉해짐이 없는(kilesa-sincana-virahita) 본경의 아래에 나타나는 여섯 가지 증득(cha samapatti)으로 마음이 기울고 향하는 것을 말한다."(MA.iv.53)
60. 수낙캇따여, 또한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기 어떤 사람은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마음을 기울일 것이다. 수낙캇따여, 무소유처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과 관련된 것만을 생각하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진다. 그는 그런 부류의 사람과 교제하고 그를 통해 만족을 얻는다. 흔들림 없음에 관한 것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알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그런 부류의 사람과 교제하지 않고 그를 통해 만족을 얻지 못한다. 예를 들면, 수낙캇따여, 두 개로 깨어진 넓고 큰 바위는 다시 붙일 수 없다. 이처럼, 수낙캇따여, 무소유처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에게 흔들림 없음의 족쇄들은 깨어졌다.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참으로 흔들림 없음의 족쇄에서 벗어나, 무소유처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다.'라고.
*"주먹 크기의 작은 돌은 밀랍이나 시멘트로 접합할 수가 있지만 [두 쪽 나버린] 바윗돌은 붙일 수가 없다. 높은 단계의 증득을 얻은 자가 낮은 단계의 증득은 두 쪽 난 바윗돌과 같아서 그것을 증득하리라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과 관련하여 말씀하신 것이다."(MA.iv.53)
61. 수낙캇따여, 또한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기 어떤 사람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마음을 기울일 것이다. 수낙캇따여, 비상비비상처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과 관련된 것만을 생각하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진다. 그는 그런 부류의 사람과 교제하고 그를 통해 만족을 얻는다. 무소유처에 관한 것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알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그런 부류의 사람과 교제하지 않고 그를 통해 만족을 얻지 못한다. 예를 들면, 수낙캇따여, 좋아하는 맛난 음식을 먹은 사람이 남은 것을 버릴 것이다. 수낙캇따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데 그 사람에게 그 음식을 다시 먹고 싶은 마음이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그 음식에 대해 혐오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수낙캇따여, 비상비비상처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에게 무소유처의 족쇄들은 버려졌다.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참으로 무소유처의 족쇄에서 벗어나, 비상비비상처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다.'라고.
*"여덟 가지 증득을 얻은 사람(attha-samapatti-labhi)에게 낮은 단계의 증득은 마치 토해낸 배설물처럼(vanta-sadisa) 여겨지기 때문에 다시 증득에 들어야지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과 관련하여 말씀하신 것이다."(MA.iv.54)
62. 수낙캇따여, 또한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기 어떤 사람은 바른(완전한) 열반으로 마음을 마음을 기울일 것이다. 수낙캇따여,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사람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과 관련된 것만을 생각하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진다. 그는 그런 부류의 사람과 교제하고 그를 통해 만족을 얻는다. 비상비비상처에 관한 것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알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그런 부류의 사람과 교제하지 않고 그를 통해 만족을 얻지 못한다. 예를 들면, 수낙캇따여, 윗부분이 잘려버린 야자수는 다시 자랄 수가 없다. 이처럼, 수탁캇따여,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비상비비상처의 족쇄들은 뿌리 뽑혔고 윗 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참으로 비상비비상처의 족쇄에서 벗어나,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다.라고.
63. 수낙캇따여, 또한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기 어떤 비구는 이런 생각이 할 것이다. '사문에 의해서 '갈애는 화살이고, 무명은 독을 가진 결점이다. (무명이라는 독은) 탐욕과 성냄을 수단으로 괴롭힌다.'라고 말해졌다. 나에게 그 갈애의 화살은 버려졌고, 무명의 독의 결점은 제거되었다. 나는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인다.'라고. 그는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인 자에게 적절하지 않은 것들을 추구할 것이다. 눈으로 적절하지 않은 (도움이 되지 않는) 형색을 추구할 것이다. 귀로 적절하지 않은 소리를 추구할 것이다. 코로 적절하지 않은 냄새를 추구할 것이다. 혀로 적절하지 않은 맛을 추구할 것이다. 몸으로 적절하지 않은 감촉을 추구할 것이다. 마음으로 적절하지 않은 법을 추구할 것이다. 눈으로 적절하지 않은 형색을 추구하고, 귀로 적절하지 않은 소리를 추구하고, 코로 적절하지 않은 냄새를 추구하고, 혀로 적절하지 않은 맛을 추구하고, 몸으로 적절하지 않은 감촉을 추구하고, 마음으로 적절하지 않은 법을 추구하는 그에게 탐욕은 마음을 해칠 것이다. 그는 탐욕에 훼손된 마음으로 죽거나 죽을만큼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
*"'해칠 것이다(anuddhamseyya)'라는 것은 방해한다(vibadheyya)는 것이다. 왜냐하면 탐욕은 일어나자마자 유익한 마음이 발생할 기회를 빼앗아 버리고 그것을 방해한다. 그렇게 하면서 확고한 믿음으로 증장시킨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토해내어 그것을 말려 버리고(visoseti) 무미건조하게 한다(milapeti). 그러므로 주석서에서는 말려버린다, 무미건조하다는 뜻이라고 했다."(MAT.ii.249)
예를 들면, 수낙캇따여, 독이 가득 묻은 화살을 맞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의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과 일가친척들이 의사에게 치료받게 할 것이다. 그를 위해 그 의사는 칼로 그 상처의 표면을 가를 것이고, 칼로 상처의 표면을 가른 뒤에 조사되어야 하는 화살을 조사할 것이고, 조사해야 하는 조사한 뒤에 화살을 뽑을 것이고, 독은(독기는) 제거했지만 독의 흔적은 남아있을 것이다. 독의 흔적은 남았다고 알고 있는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아, 그대의 화살은 뽑히고 독은 제거되었지만 독의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에게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도움이 되는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대가 도움 되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상처가 나빠지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상처를 소독해야 하고 때때로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발라야 합니다. 그대가 때때로 상처를 소독하지 않고 때때로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바르지 않으면 오염된 피고름이 상처 부위를 덮을 것입니다. 바람과 햇볕에 노출되지 않게 하십시오. 그대가 바람과 햇볕에 노출하면 먼지가 상처 부위를 오염케 할 것입니다. 이 사람아, 상처 부위를 보호하고, 상처 부위를 치료하면서 머물러야 합니다.'라고.
그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나에게 화살은 뽑히고 독은 제거되었지만 독의 흔적은 남아있다. 그러나 나에게 장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는 도움 되지 않는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가 도움 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상처가 나빠질 것이다. 때때로 상처를 소독하지 않고 때때로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바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때때로 상처를 소독하지도 않고 때때로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바르지 않으면 오염된 피고름이 상처 부위를 덮을 것이다. 그는 바람과 햇볕에 노출할 것이다. 그가 바람과 햇볕에 노출하여 먼지가 상처 부위를 오염시킬 것이다. 그는 상처부위를 보호하고 상처 부위를 치료하면서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와 독은 제거했지만 독의 흔적은 아직 남아있는 것, 이 두 가지 때문에 상처 부위는 덧나게 될 것이다. 그는 덧난 상처 부위 때문에 죽거나 죽을만큼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이처럼, 수낙캇따여, 여기 어떤 비구는 이런 생각이 할 것이다. '사문에 의해서 '갈애는 화살이고, 무명은 독을 가진 결점이다. (무명이라는 독은) 탐욕과 성냄을 수단으로 괴롭힌다.'라고 말해졌다. 나에게 그 갈애의 화살은 버려졌고, 무명의 독의 결점은 제거되었다. 나는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인다.'라고. 그는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인 자에게 적절하지 않은 것들을 추구할 것이다. 눈으로 적절하지 않은 (도움이 되지 않는) 형색을 추구할 것이다. 귀로 적절하지 않은 소리를 추구할 것이다. 코로 적절하지 않은 냄새를 추구할 것이다. 혀로 적절하지 않은 맛을 추구할 것이다. 몸으로 적절하지 않은 감촉을 추구할 것이다. 마음으로 적절하지 않은 법을 추구할 것이다. 눈으로 적절하지 않은 형색을 추구하고, 귀로 적절하지 않은 소리를 추구하고, 코로 적절하지 않은 냄새를 추구하고, 혀로 적절하지 않은 맛을 추구하고, 몸으로 적절하지 않은 감촉을 추구하고, 마음으로 적절하지 않은 법을 추구하는 그에게 탐욕은 마음을 해칠 것이다. 그는 탐욕에 훼손된 마음으로 죽거나 죽을만큼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
64. 수낙캇따여, 그러나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기 어떤 비구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사문에 의해서 '갈애는 화살이고, 무명은 독을 가진 결점이다. (무명이라는 독은) 탐욕과 성냄을 수단으로 괴롭힌다.'라고 말해졌다. 나에게 그 갈애의 화살은 버려졌고, 무명의 독의 결점은 제거되었다. 나는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인다.'라고. 그가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일 때, 그는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눈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형색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귀로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 도움이 되지 않는 냄새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혀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맛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몸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감촉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눈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형색을 추구하지 않고, 귀로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추구하지 않고, 코로 도움이 되지 않는 냄새를 추구하지 않고, 혀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맛을 추구하지 않고, 몸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감촉을 추구하지 않고, 마음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을 추구하지 않는 그에게 탐욕이 마음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마음이 탐욕으로 훼손되지 않기 때문에 죽거나 죽을만큼의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수낙캇따여, 독이 가득 묻은 화살을 맞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의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과 일가친척들이 의사에게 치료받게 할 것이다. 그를 위해 그 의사는 칼로 그 상처의 표면을 가를 것이고, 칼로 상처의 표면을 가른 뒤에 조사되어야 하는 화살을 조사할 것이고, 조사해야 하는 조사한 뒤에 화살을 뽑을 것이고, 독은(독기는) 제거했지만 독의 흔적은 남아있을 것이다. 독의 흔적은 남았다고 알고 있는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아, 그대의 화살은 뽑히고 독은 제거되었지만 독의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에게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도움이 되는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대가 도움 되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상처가 나빠지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상처를 소독해야 하고 때때로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발라야 합니다. 그대가 때때로 상처를 소독하지 않고 때때로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바르지 않으면 오염된 피고름이 상처 부위를 덮을 것입니다. 바람과 햇볕에 노출되지 않게 하십시오. 그대가 바람과 햇볕에 노출하면 먼지가 상처 부위를 오염케 할 것입니다. 이 사람아, 상처 부위를 보호하고, 상처 부위를 치료하면서 머물러야 합니다.'라고.
그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나에게 화살은 뽑히고 어떤 독의 흔적도 없이 독이 제거되었다. 이것이 나에게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그는 도움 되는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가 도움 되는 음식을 먹으면 상처 부위가 나빠지지 않을 것이다. 때때로 상처를 소독하고 때때로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바를 것이다. 그가 때때로 상처를 소독하고 때때로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바르면 오염된 피고름이 상처 부위를 덮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바람과 햇볕에 노출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바람과 햇볕에 노출하지 않을 때 먼지가 상처 부위를 오염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상처 부위를 보호하면서 머물고 상처 부위를 치료하면서 머물 것이다. 그의 이런 도움 되는 행위와 어떤 흔적도 없이 독을 제거한 것, 이 두 가지 때문에 상처 부위는 덧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상처가 치료되어 상처 부위에 새살이 돋아나기 때문에 죽거나 죽을만큼의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수낙캇따여, 여기 어떤 비구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사문에 의해서 '갈애는 화살이고, 무명은 독을 가진 결점이다. (무명이라는 독은) 탐욕과 성냄을 수단으로 괴롭힌다.'라고 말해졌다. 나에게 그 갈애의 화살은 버려졌고, 무명의 독의 결점은 제거되었다. 나는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인다.'라고. 그가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일 때, 그는 바른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눈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형색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귀로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 도움이 되지 않는 냄새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혀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맛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몸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감촉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눈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형색을 추구하지 않고, 귀로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추구하지 않고, 코로 도움이 되지 않는 냄새를 추구하지 않고, 혀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맛을 추구하지 않고, 몸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감촉을 추구하지 않고, 마음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을 추구하지 않는 그에게 탐욕이 마음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마음이 탐욕으로 훼손되지 않기 때문에 죽거나 죽을만큼의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다.
65. 수낙캇따여, 이 비유는 뜻을 알게 하기 위해서 내가 만든 것이다. 여기서 이것이 그 뜻이다. 수낙캇따여, 상처 부위란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內處]를 말하는 것이다. 수낙캇따여, 독이란 무명을 말하는 것이다. 수낙캇따여, 화살이란 갈애를 말하는 것이다. 수낙캇따여, 조사란 마음챙김을 말하는 것이다. 수낙캇따여, 칼이란 성스러운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수낙캇따여, 의사란 여래·아라한·정등각을 말하는 것이다.
수낙캇따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에서 단속한 자, '재생의 조건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고 이렇게 알아서 재생의 조건이 없는 자, 재생의 조건을 부수었기 때문에 해탈한 자인 그 비구가 재생 조건 때문에 몸을 붙잡을 것이라거나 마음을 일으킬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예를 들면, 수낙캇따여, 아름다운 색깔과 향긋한 냄새의 맛있는 음료가 담긴 잔이 있다. 그리고 독이 섞인 것입니다. 거기에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여 행복을 원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이 올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낙캇따여? 그 사람은그 마실 것이 담긴 잔을 '내가 이것을 마시면 죽거나 죽을만큼의 고통을 당할 것이다.'라고 알면서도 마시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처럼, 수낙캇따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에서 단속한 자, '재생의 조건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고 이렇게 알아서 재생의 조건이 없는 자, 재생의 조건을 부수었기 때문에 해탈한 자인 그 비구가 재생 조건 때문에 몸을 붙잡을 것이라거나 마음을 일으킬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예를 들면, 수낙캇따여, 맹독을 가진 독사가 있다. 거기에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여 행복을 원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이 올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낙캇따여? 그 사람은 강한 독을 가진 독사에게 '내가 여기에 물리면 죽거나 죽을만큼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맹독을 가진 독사에게 손이나 손가락을 내어주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처럼, 수낙캇따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에서 단속한 자, '재생의 조건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고 이렇게 알아서 재생의 조건이 없는 자, 재생의 조건을 부수었기 때문에 해탈한 자인 그 비구가 재생 조건 때문에 몸을 붙잡을 것이라거나 마음을 일으킬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재생의 조건(upadhi)'이란 감각적 쾌락을 말한다."(MA.iv.56)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랏차위의 후예인 수낙캇따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수낙캇따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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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106.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함 경(âneñjasappāyasuttaṃ) (0) | 2016.05.25 |
MN 104. 사마가마 경(sāmagāmasuttaṃ) (0) | 2016.05.24 |
MN 103. 무엇이라고(어떻게 생각하는가) 경( kintisuttaṃ) (0) | 2016.05.20 |
MN 102. 다섯이면서 셋 경(pañcattayasuttaṃ) (0) | 2016.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