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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106.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함 경(âneñjasappāyasuttaṃ)

실론섬 2016. 5. 25. 11:46

MN 106.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함 경(âneñjasappāyasuttaṃ)

 

66.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꾸루에서 까마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은 무상하고 허망하고 거짓이고 사실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비구들이여, 속임이고 어리석은 자의 읊조림이다.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의 이 둘은 마라의 영토이고, 마라의 범위이고, 단지 마라의 미끼이고, 단지 마라의 소유지이다. 여기에 나쁘고 선하지 않은 마음의 작용 때문에 간탐도 악의도 성급함(격분)도 있게 된다. 그것들은 여기에서 계속 노력하는 이 성스러운 제자에게 장애가 될 뿐이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의 이 둘은 마라의 영토이고, 마라의 범위이고, 단지 마라의 미끼이고, 단지 마라의 소유지이다. 여기에 나쁘고 선하지 않은 마음의 작용 때문에 간탐도 악의도 성급함(격분)도 있게 된다. 그것들은 여기에서 계속 노력하는 이 성스러운 제자에게 장애가 될 뿐이다. 나는 크고 귀한 마음으로 머물고, 마음을 확고히 해서 세상을 극복해야겠다. 참으로 참으로 크고 귀한 마음으로 머물고, 마음을 확고히 해서 세상을 극복하는 나에게 악하고 선하지 않은 마음의 작용 때문에 생기는 간탐도 악의도 성급함도 없을 것이다. 그것들의 버려짐에 의해서 나의 마음은 커지고 무량하게 잘 닦아질 것이다.'라고. 

이렇게 닦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마음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해탈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재생으로 나아가는) 의식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첫 번째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한 닦음이라고 선언된다.

 

*'이렇게 닦고 많이 머무는'은 tab-bahula-viharino를 옮긴 것인데, "감각적 쾌락을 몰아내어 반드시 그 닦음을 많이 행하면서 머문다." (MA.iv.59)라는 뜻이다.
*"'경지(ayatana)란 아라한과나 아라한과로 인도하는 위빳사나나 제4선으로 인도하는 근접삼매를 말한다.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ayatana cittam pasidati)'는 것은 아라한과로 인도하는 위빳사나를 얻거나 제4선으로 인도하는 근접삼매를 얻는 것을 말한다. 위빳사나는 지혜를 확고하게 하는 원인이고 근접삼매는 흔들림 없는 경지를 얻는 원인이다."(MA.iv.59-60) 

 

67.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 어떤 것이든 물질은 모두 네가지 근본물질[四大]과 그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들[所造色]이다.'라고. 

이렇게 닦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마음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해탈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의식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두 번째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한 닦음이라고 선언된다.

 

*"'이렇게 숙고한다(iti patisancikkhati).'는 것은 제4선을 얻고 나서 이렇게 숙고한다는 말이다. 이 비구는 이전의 비구보다 지혜가 더 크기 때문에 그 비구의 명상주제와 자신의 명상주제를 하나로 만들어서 명상한다."(MA.iv.62)   

*"물질을 제거한 닦음을 많이 행하면서 머문다는 말이다."(MA.iv.62)
*"여기서 '흔들림 없음을 증득한다'는 것은 공무변처의 흔들림 없음을 말한다."(MA.iv.62)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 지금·여기에 속한 물질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물질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물질에 대한 인식과 다음 세상에 속한 물질에 대한 인식, 이들은 모두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기뻐할 것이 못 되고, 좋아할 만한 것이 못 되고, 묶일만한 것이 못 된다.'라고. 

이렇게 닦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마음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해탈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의식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 번째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한 닦음이라고 선언된다.

 

*"공무변처를 얻고 나서 이렇게 숙고한다. 이 비구는 앞의 두 비구보다 지혜가 더 크기 때문에 그 두 비구들의 명상주제와 자신의 명상주제를 하나로 만들어 명상한다."(MA.iv.63)  
*"'기뻐할 것이 없다(naiam abhinanditum)'는 것은 갈애와 사견을 가지고 기뻐할 가치가 없다는 말이고, 나머지도 그와 같다."(MA.iv.63)

 

68.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 지금·여기에 속한 물질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물질들, 지금·여기에 속한 물질에 대한 인식과 다음 세상에 속한 물질에 대한 인식, 흔들리지 않은 경지에 대한 인식, 이들은 모두 인식들이다. 이들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 즉 무소유처(無所有處)는 평화롭고 뛰어나다.'라고. 

이렇게 닦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마음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해탈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의식이 무소유처의 경지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첫 번재 무소유처에 적합한 닦음이라고 선언된다.

 

*"무소유처(akincann-ayatana)라는 경지에 이르러 앞서 말한 이 모든 인식들은 남김없이 소멸한다."(MA.iv.63)
*"이 경지는 구성요소가 고요하고(anga-santat) 대상이 고요하기(arammana-santata) 때문에 '고요하다(santa)고 하고, 괴로움이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승하다'고 한다."(MA.iv.63)  

 

69. 다시, 비구들이여, 숲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로 가거나 비어 있는 장소에 간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이것은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에 의해 공하다.'라고. 

이렇게 닦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마음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무소유처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해탈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의식이 무소유처의 경지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도달할 것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두 번째 무소유처에 적합한 닦음이라고 선언된다.

 

*"식무변처(nivvananc-ayatana)를 얻고 나서 이렇게 숙고한다. 이 비구는 앞의 네 명의 비구보다 지혜가 더 커서 그 비구들이 명상주제와 자기의 명상주제, 즉 다섯 가지 명상주제를 하나로 만들어 명상한다."(MA.iv.63-64)  
*'이것은 자아나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sunnam idam attena va attaniyena va)'는 본서 제2권 교리문답의 긴 경(M43)에서 '공한 마음의 해탈(sunnata cetovimutti)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70.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어떤 것에도 나는 없다. 어디에도 어떤 목적으로도 어떤 것으로도 나의 것은 없다(나는 어디에도 누구에도 속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나의 것은 없다).'라고. 

이렇게 닦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마음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무소유처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해탈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의식이 무소유처의 경지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도달할 것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 번째 무소유처에 적합한 닦음이라고 선언된다.

 

*"식무변처를 얻고나서 이렇게 숙고한다. 이 비구는 앞의 다섯 명의 비구보다 지혜가 더 커서 그 비구들의 명상주제와 자기의 명상주제, 즉 여섯 가지 명상주제를 하나로 만들어 명상한다."(MA.iv.64)

*'나는 어디에도 누구에도 속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나의 것은 없다.'로 옮긴 원문 nāhaṃ kvacani kassaci kiñcanatasmiṃ, na ca mama kvacani kismiñci kiñcanaṃ natthi이다. 주석서는 이 문장은 ‘네 가지 방식으로 공함(suññatā)을 설한 것’(MA.ⅳ.64)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첫째, 나는 어디에도 없고, 둘째, 나는 누구에게 속한 것도 아니고, 셋째, 내 것은 어디에도 없고, 넷째, 누구에게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는 말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 지금·여기에 속한 물질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물질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물질들에 대한 인식과 다음 세상에 속한 물질들에 대한 인식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대한 인식과 무소유처에 대한 인식, 이들은 모두 인식들이다. 이들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 즉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는 평화롭고 뛰어나다.’라고.

이렇게 닦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마음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비상비비상처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해탈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의식이 비상비비상처의 경지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상비비상처에 적합한 닦음이라고 선언된다." 

 

*"식무변처를 얻고 나서 이렇게 숙고한다. 이 비구는 앞의 여섯 명의 비구보다 지혜가 더 커서 그 비구들의 명상주제와 자기의 명상주제 즉 일곱 가지 명상주제를 하나로 만들어 명상한다."(MA.iv.64)  

 

71. 이렇게 말씀하였을 때,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여기, 세존이시여, 비구는 이렇게 닦습니다.

'있지 않고 나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없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이것이 없었다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었을 것이고, 있지 않다면 내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있는 것, 존재하는 것을 나는 버린다.'라고.

그는 이렇게 평정을 얻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비구는 열반을 얻습니까 아니면 열반을 얻지 못합니까?"라고.

"여기서, 아난다여, 어떤 비구는 열반을 얻을 것이고, 여기서 어떤 비구는 열반을 얻지 못할 것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는 열반을 얻고 여기서 어떤 비구는 열반을 얻지 못하는 데는 무슨 원인, 무슨 조건이 있습니까?" 

"여기, 아난다여, 비구는 이렇게 닦는다.

'있지 않고 나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없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 있는 것, 존재하는 것을 나는 버린다.'라고.

그는 이렇게 평정을 얻는다. 그는 그 평정을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문다. 그 평정을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무는 그에게 의식은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집착한다. 아난다여, 집착이 (남아) 있는 비구는 열반을 얻지 못한다." 

"세존이시여,  집작하는 그 비구는 어디에서 집착합니까?"

"비상비비상처이다, 아난다여."

"세존이시여, (비상비비상처에) 집착하는 그 비구가 참으로 맨 앞에 있는 집착에 집착하는 것입니까(그 비구가 집착할 때 집착의 대상 가운데 최상의 대상에 집착하는 것입니까)?"

"아난다여, (비상비비상처에) 집착하는 그 비구는 참으로 맨 앞에 있는 집착에 집착하는 것이다.(참으로 그 비구가 집착할 때 집착의 대상 가운데 최상의 대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비상비비상처는 참으로 맨 앞에 있는 집착이다(집착의 대상 가운데 최상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있지 않고 나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없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 있는 것, 존재하는 것을 나는 버린다.'는 no cassa noca me siya na bhavissat na me bhavissati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생에(pubbe)다섯 종류의 업의 윤회(kamma-vatta)를 쌓지 않았다면 이와 같이 현재(etarahi) 다섯 종류의 과보의 윤회(vipaka-vatta)가 나에게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현재에 다섯 종류의 업의 윤회를 쌓지 않는다면 미래에(anagate) 나에게 다섯 종류의 과보의 윤회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MA.iv.65)
복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을 한다.
"'전생에 다섯 종류의 업의 윤회(pubbe pancavidham kammavatta)'란 전생의 업의 존재(purima-kamma-bhava)에서의 어리석음인 무명(moha avijja), 쌓음인 의도적 행위(ayuhana sankhara), 갈망인 갈애(nokanti tanha), 집착인 취착(upagamana upadana), 의도인 존재(cetana bhava), 이러한 업의 연속(kamma-ppabandha)을 말하고, '현재 다섯 종류의 과보의 윤회(etarahi pancavidham vipakavatta)'란 의식, 명색, 여섯 감각장소, 감각접촉, 느낌이라 불리는 현재 과보의 연속(vipaka-ppabandha)을 말한다."(MAT.ii.257)
*"'있는 것, 존재하는 것, 그것을 나는 버린다(yad atthi yambhutam tam pajahamiti)'라고 하셨다. 여기서 '있는 것, 존재하는 것(yad atthi yambhutam)'이란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 khandha-pancaka)인데, 그것을 버린다는 뜻이다."(MA.iv.65) 
"즉 오온과 관련된 탐욕을 버려서 미래에 다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서 버린다는 뜻이다."(MAT.ii.257
*"'평정을 얻는다(evam upekham patiabhati)'는 것은 위빳사나의 평정을 얻는다는 말이다."(MA.iv.66)  

 

72. 여기, 아난다여, 비구는 이렇게 닦는다.

'있지 않고 나의 것도 아니라면, 그것은 없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 있는 것, 존재하는 것을 나는 버린다.'라고.

그는 이렇게 평정을 얻는다. 그는 평정을 기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머물지 않는다. 그 평정을 기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묶여 머물지 않는 그에게 의식은 의지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집착하지 않는 비구는 열반을 얻는다(완전히 꺼진다)." 

 

73.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희에게 각각의 (증득을) 의지하여 폭류를 건너는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성스러운 해탈은 무엇입니까?"

"여기, 아난다여, 성스러운 제자인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과 다음 세상에 속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 지금·여기에 속한 물질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물질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물질들에 대한 인식과 다음 세상에 속한 물질들에 대한 인식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대한 인식과 무소유처에 대한 인식과 비상비비상처에 대한 인식, 이런 존재더미가 있는 한 존재더미이다집착하지 않음에 의한 마음의 해탈이 불사(不死)이다.

 

*"'존재더미(有身.유신)이 있는 한 이 모든 것이 존재더미이다(esa sakkayo yavata sakkayo)'라고 하셨다. 즉 삼계에 윤회한다고 하는(te-bhunaka-vatta-sankhara) 즉 존재더미(sakkaya)가 존재더미이다. 이것을 벗어나 존재더미라는 것은 있지 않다고 숙고한다는 말씀이다."(MA.iv.67)  

 

이렇게, 아난다여, 나는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한 닦음을 설했고, 무소유처에 적합한 닦음을 설했고, 비상비비상처에 적합한 닦음을 설했고, 각각의 (증득을) 의지하여 폭류를 건너는 것을 설했고, 성스러운 해탈을 설했다.

 

아난다여, 제자들을 위해 베푸는 자인 스승이 행해야 하는 것을, 연민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들을 위해서 했다. 아난다여, 나무 밑이 있고 빈 처소가 있다. 아난다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뉘우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함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