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118.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ānāpānassatisuttaṃ)
14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아주 잘 알려진 많은 장로 제자들과 함께 동쪽 숲에 있는 미가라마뚜 강당에 머물렀는데, 사리뿟따 존자, 마하목갈라나 존자, 마하깟사빠 존자, 마하깟짜야나 존자, 마하꼿티따 존자, 마하꼿티까 존자, 마하깝삐나 존자, 마하쭌다 존자, 아누룻다 존자, 레왓따 존자, 아난다 존자 그리고 아주 잘 알려진 장로 제자들과 함께였다. 그때 장로 비구들은 신참 비구들을 설명하고 가르쳤다. 어떤 장로 비구들은 열 명의 비구들을 설명하고 가르쳤다. 어떤 장로 비구들은 스무 명의 비구들을 설명하고 가르쳤다. 어떤 장로 비구들은 서른 명의 비구들을 설명하고 가르쳤다. 어떤 장로 비구들은 마흔 명의 비구들을 설명하고 가르쳤다. 장로 비구들로부터 설명받고 가르침을 받는 그 신참 비구들은 고귀한 특별한 경지를 알게 되었다(고귀한 전후(前後)의 차이를 알았다).
*'설명하고 가르쳤다'는 것은 음식에 관한 친절함과 법에 관한 친절함인 두 종류의 친절로써 호의를 베풀면서 명상주제에 대한 설명하고 가르쳤다는 말이다.(MA.iv.137)
*'특별함을 알았다'라는 것은 계행을 구족함 등 이전의 특별함보다 더 고귀하며, 그 다음 단계인 까시나를 통한 준비의 마음등의 [선(禪)의] 특별함을 알았다는 뜻이다.(MA.iv.137)
145. 그 무렵 세존께서는 보름의 포살 날 밤, 충만한 보름달 아래 자자(自恣)를 위해 비구 대중에 둘러싸여 노지에 앉아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는 비구 승가를 둘러본 뒤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런 닦음을 유지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나의 마음은 이런 닦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달성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 나는 여기 사왓티에서 네 번째 달의 보름인 꼬무디까지 머물 것이다."라고.
지방에 거주하는 비구들은 '세존께서 거기 사왓티에서 네 번째 달의 보름인 꼬무디까지 머물 것이다.'라고 들었다. 지방에 거주하는 그 비구들은 세존을 친견하기 위해 사왓티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 장로 비구들은 더욱더 신참 비구들을 설명하고 가르쳤다. 어떤 장로 비구들은 열 명의 비구들을 설명하고 가르쳤다. 어떤 장로 비구들은 스무 명의 비구들을 설명하고 가르쳤다. 어떤 장로 비구들은 서른 명의 비구들을 설명하고 가르쳤다. 어떤 장로 비구들은 마흔 명의 비구들을 설명하고 가르쳤다. 장로 비구들로부터 설명받고 가르침을 받는 그 신참 비구들은 고귀한 특별한 경지를 알게 되었다.
*'자자(自恣.pavarana)'는 석 달의 안거가 끝날 때 모든 대중들이 모여서 석 달간의 생활을 되돌아 보고 반성하는 의식이다. 그래서 "안거를 마치는 자자(vassam-vuttha-pavarana)"(SA.i.276)라고도 부르고 있다. 자자는 연장자부터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본경에서처럼 혹시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지은 잘못이 있는가를 대중들에게 묻고 대중들의 책망을 기꺼이 받아 들이는 의식이다.
「상윳따 니까야 복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자란 도닦음을 청정(patipatti-visodhana)하게 하고 각자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vajja-sodhana)하기 위한 기회를 주는 것(okasa-dana)을 말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안거가 끝날 때 행해지는 것인데, 이것을 청정해지기 위한 고백(visuddhi-desana)이라고 한다."(SAT.i.253)
*'네 번째 달의 보름인 꼬무디(komudi catumasini)'란 우기철의 마지막 네 번째 달인 맛띠까 달의 보름이란 뜻이다. 왜냐하면 이 무렵에 수련(kumuda)이 피기 때문에 꼬무디(komudi)라 불리고, 우기(vassika)인 넉 달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네 번째 달(catumasini)'이다. 그러므로 '네 번째 달의 [보름인] 꼬무디'라 불린다."(MA.iv.137)
일반적으로 인도의 우기철은 다섯 달로 구성된다. 그것은 1아살하(Asalha) 2사와나(Savana) 3밧다라(Bhaddara 혹은 Potthapada) 4앗사유자(Assayuja) 5깟띠까(Kattika)이다. 이 가운데 네 번째 달인 앗사유자를 '앞의 깟띠까(Pubba-kattika)'라고 하기도 하고 다섯 번째 달인 깟띠까를 '뒤의 깟띠까(Pacchima-kattika)'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둘은 '깟띠까의 두 달(Kattika-dyemasika)'이라 불리기도 한다.
안거(vassa)는 아살하 달의 보름에서 시작해서 앗사유자의 보름에 마치는데 이렇게 되면 석달 간 결제를 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결재에 임하는 비구를 '깟띠까 석 달을 [결제한 자](Kattika-temasika)'라고 부른다. 마지막 깟띠까 달까지 포함하여 결제한 비구를 깟띠까 넉 달을 [결제한 자](Kattika-catumasini)'라 한다.
*"'오늘 해제를 하지 않고 그것이 올 때까지 어느 곳에도 가지 않고 오직 여기서 머물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비구들에게 해제일을 연기하는 것(pavarana-sangaha)에 대해 공고하면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해제일을 연기하는 것은 표백(表白, natti)으로만 결정하는 갈마(單白鞨磨, natti-kamma)를 통해서 행해진다. 이것은 누구에게는 해당되고 누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가? 어리석은 범부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위빳사나를 시작한 자와 성스러운 제자들에게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마타가 아직 약하거나 위빳사나가 약한 자에게는 해당된다. 그때 세존께서도 비구들의 마음의 작용을 검증하시면서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약한 것을 아시고 '오늘 해제를 하면 사방에서 안거를 지낸 비구들이 이곳으로 떠나올 것이다. 그들이 [여기 와서]장로 비구들로부터 거처를 얻어 머물면 특별함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약 유행하면서 떠나 버리면 이런 수행처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해제를 하지 않는다면 다른 비구들도 이 사왓티로 떠나오지 않을 것이고 나도 유행하면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구들의 거처도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각자 자기의 거처에서 편안히 머물면서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특별함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시면서 그날 해제를 하지 않고 까띠까 달의 보름날에 해제하리라라고 비구들에게 해제를 연기하는 것을 통고하셨다.
해제일이 연기되어 공부의 발판을 원하는 자에게 법사나 은사들(acariy-upajjhaya)이 다가가면 그자도 '만약 발판을 마련해 줄 적절한 분(nissaya-dayaka)이 오면 그분 곁에서 발판을 얻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여름의 마지막 달까지 머물 수 있다. 그리고 이 해제를 연기하는 것이 비록 단 한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든 대중에게 다 적용된다."(MA.iv.138)
*"'특별한 경지(visena)'라고 하셨다. 여기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약한 자들(taruna-samatha-vipassana)이 수행을 하여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강하게 되었을 때 이것은 예비단계의 특별함(pubbe visena)이라 하고, 그 뒤에 고요해진 마음으로 형성된 것(行)을 명상하면서 어떤 이들은 예류과를 얻고 ... 어떤 이들은 아라한과를 얻었을 때 이것은 그 다음의 고귀한 특별한(apara ulara visena)이라 한다."(MA.iv.139)
146. 그때 세존께서는 네 번째 달의 보름인 날(꼬무디), 보름의 포살 날 밤, 충만한 보름달 아래 비구 대중에 둘러싸여 노지에 앉아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는 비구 승가를 둘러본 뒤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대중은(모임은) 하챦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대중은 하챦은 말을 멀리 떠났다. 청정하고 본질에 확고하다. 비구들이여, 공양올려 마땅하며, 시중들어 마땅하며, 보시하여 마땅하며,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福田]인 것이 이 비구 승가이고 이 대중이다. 비구들이여, 적게 보시해도 큰 결실을 가져오고 많이 보시하면 더 큰 결실을 가져오는 것이 이 비구 승가이고 이 대중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이 이 비구 승가이고 이 대중이다. 친견하기 위해 어깨에 [먹을거리를 준비한] 자루를 메고 여러 요자나의 거리를 가는 것도 마땅한 것이 이 비구 승가이고, 이 대중이다(모임이다).
*"'어깨에 자루를 메고(putosenapi)'는 것은 여행 도중에 먹을 도시락(putosa=patheyya)을 멘다는 것으로 그 도시락을 싸 가지고서라도 마땅히 친견하러 가야 한다는 뜻이다."(MA.iv.139)
147.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이와 같은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다섯 가지 낮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하고,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불환자.不還者]인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이와 같은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돌아 올[일래자.一來]자이니,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을 끝낼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이와 같은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흐름에 든 자[예류자.預流者]이니 악처에 떨어지는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깨달음이 결정된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이와 같은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사념처.四念處)을 닦는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이와 같은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네 가지 바른 노력[사정근.四正勤]을 닦는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 네 가지 성취수단[사여의족.四如意足]을 ··· 다섯 가지 기능[오근.五根]을 ··· 다섯 가지 힘[오력.五力]을 ···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 요소[칠각지.七覺支]을 ··· 성스러운 여덟가지 바른 길(팔정도.八支聖道]을 닦는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이와 같은 비구들이 비구들이 있다.
*여기에 나타나고 있는 일곱 가지 주제는 37가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보리분법.菩提分法, bodhipakkhiya dhamma)로 불린다.
이것은 우리에게 37보리분법이나 37조도품(助道品)으로 잘 알려진 것이다. 이 일곱 가지 주제에 포함된 법들을 다 합하면 37가지가 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이를 37보리분법이라 불렀다. 37보리분법의 37가지 술어에 대한 간단한 언급과 정의는 본서 사꿀루다이 긴 경(M77)에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37가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은 세간적인 것과 출세간적인 것으로 설하셨다. 그 순간에 도를 닦는(maggam bhaventi) 비구들에게 이것은 출세간적인 것이고, 위빳사나를 시작한 자들(araddha-vipassaka)에게 이것은 세간적인 것이다."(MA.iv.139)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자애[慈]를 닦는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 연민[悲]을닦는데 전념하는 ··· 기뻐함[喜]을 닦는데 전념하는 ··· 평정[捨]을 닦는데 전념하는 ··· 부정[관]을 닦는데 전념하는··· 무상의 인식을 닦는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이와 같은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입출식념.入出息念)을 닦는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행할 때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성취한다. 네 가지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행할 때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충만하게 한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많이 익힐 때 명지(明知)와 해탈을 성취한다.
148.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힐 때(행할 때)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숲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로 가거나 빈집으로 간 비구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다. 그리고 그는 오직 마음챙기면서 마시고(들이쉬고), 오직 마음챙기면서 내쉰다.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는 parimukham satim upatthapetva를 옮긴 것이다. 위방가는 "이 마음챙김은 코끝이나 입의 표상(nasikagge va mukhanimitte va)에 확립되고 잘 확립되었다(upatthita hoti supatthita)고 해서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라고 한 것이다."(Vbh.252)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위방가 주석서는 "입의 표상(mukha-nimitta)이란 윗입술의 가운데 부분(uttar-otthassa-vemajjha-ppadeso)이라고 봐야 한다. 즉 코의 바람(nisaka-vata)이 닿는(patihannati) 곳을 말한다."(VbhA.368)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전면(全面 혹은 前面)에(parimukham)'는 구체적으로 코끝에나, 숨이 닿는 윗입술의 중간부분에 혹은 인중(人中) 즉 코 밑과 윗 입술 사이에 오목하게 골이 진 곳에라는 뜻이다.
길게 마실 때에는 '길게 마신다(들이쉰다)'고 알아차린다. 길게 내쉴 때에는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짧게 마실 때에는 '짧게 마신다'고 알아차린다. 짧게 내쉴 때에는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온 몸을 느끼면서 마시겠노라'며 익힌다. '온 몸을 느끼면서 내쉬겠노라'며 익힌다.
'육체적 현상[身行.신행]을 가라앉히면서 마시겠노라'며 익힌다. '육체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길게 마실 때에는'은 assasanto를 옮긴 것이다. '길게 마실때에는'은 '길게 마셔야겠다.'거나 '짧게 마셔야겠다.'거나 하는 그런 일체의 의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길게 마실 때에는 길게 마신다고 꿰뚫어 안다는 뜻이다. 「청정도론」(VIII.168)은 「무애해도」의 설명을 인용하여 '이렇게 꿰뚫어 알 때 열의(chanda)가 일어나고, 또한 환희(pamojja)가 일어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Ps.i.177)
*'온 몸을 느끼면서(경험하면서) 마시겠노라.'는 「청정도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온 들숨의 몸의 ··· 온 날숨의 몸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느끼면서, 분명하게 하면서 내쉬리라고 익힌다. 이와 같이 느끼면서, 분명하게 하면서 지혜와 함께한 마음으로 마시고(들이 쉬고) 내쉰다."(「청정도론」VIII.171)
여기서 밝히고 있듯이 이 문맥에서 몸(kaya)은 호흡 그 자체를 나타낸다.
*여기서 '육체적 현상(몸의 작용,身行, kaya-sankhara)'은 들숨날숨을 말한다. 「상윳따 니까야」 제4권 「까마부 경」(S41.6)에서 까마부 존자는 찟따 장자에게 "장자여, 들숨날숨은 몸에 속하는 것이고 이런 법들은 몸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들숨날숨은 육체적 현상(몸의 작용)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본서 제2권 「교리문답의 짧은 경」(M44)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청정도론」의 복주석서인 「빠라밋타 만주사」도 "여기서 '육체적 현상'이란 들숨날숨을 말한다. 비록 이것은 마음에서 생긴 것이지만 그것의 존재가 몸에 묶여 있고 몸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육체적 현상이라 부른다"(Pm.220)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쁨(희열)을 느끼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기쁨을 느끼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즐거움(행복)을 느끼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즐거움을 느끼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정신적 현상[心行]을 느끼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정신적 현상을 느끼면서 내쉬겠노라'라고 익힌다.
'정신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정신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노라'라고 익힌다.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기쁨을 느낀다(경험한다).(piti-patisamvedi.' 그것은 대상을 통해서와 미혹하지 않음을 통해서(arammanato ca asammohato ca)이다. ①그는 기쁨이 두 禪 [즉 초선과 제2선]에 든다. 그가 그것에 드는 순간에 禪을 얻음으로써 대상을 느꼈기(경험했기) 때문에 대상을 통해서 기쁨을 느낀다. ②기쁨이 있는 두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기쁨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그가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특상을 느끼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음을 통해서 기쁨을 경험한다."(「청정도론」 VII.226-227) 즉 ①은 사마타를 닦아서 禪에 들었을 때의 기쁨이고 ②는 禪에서 출정하여 무상.고.무아의 특상(lakkkhana)을 꿰뚫는 위빳사나를 할 때의 기쁨을 말한다.
*「청정도론」은 '기쁨을 느끼면서(sukha-patisamved)'도 기쁨의 느낌과 같은 방법으로 두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①사마타를 닦아서 禪에 들었을 때의 기쁨과 ②禪에서 출정하여 무상.고.무아의 특상을 꿰뚫는 위빳사나를 할 때의 기쁨을 말한다. 다른 점은 기쁨은 초선부터 제3선까지에서 느낀다는 것이다.(「청정도론」VII.229)
*정신적 현상(心行, 마음의 작용, citta-sankhara)은 느낌의 무더기(受.수)와 인식의 무더기(想蘊.상온)를 말한다. ··· 네 가지 禪들로 '정신적 현상을 느낀다(citta-sankhara-patisamvedi)'고 알아야 한다."(「청정도론」VIII.229)
본서 제2권 「교리문답의 짧은 경」(M44)에서도 "도반 위사카여, 들숨과 날숨이 몸의 작용이고(현상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말의 작용이고, 인식(想)과 느낌(受)이 마음의 작용입니다,"라고 하여 느낌과 인식을 마음의 작용(정신적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마음을 느끼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느끼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즐겁게 하면서(기쁘게 하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즐겁게 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집중 하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집중 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느끼면서(경험하면서)(citta-patisamvedi)'란 네 가지 禪들로 마음을 느낀다고 알아야 한다."(「청정도론」VIII.231)
*"'마음을 즐겁게 하면서(abhippamodayam cittam)'. 여기서는 삼매와 위빳사나의 두 가지 방법으로 즐겁게 한다. 어떻게 삼매를 통해 즐겁게 하는가? 기쁨(희열)(piti)이 있는 두 禪에 든다. 그 증득의 순간에 그 禪과 함께한 기쁨으로 마음을 반갑게 하고 기쁘게 한다. 어떻게 위빳사나를 통해 기쁘게 하는가? 기쁨이 있는 두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기쁨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이와 같이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禪과 함께한 기쁨을 대상으로 삼아 마음을 반갑게 하고 기쁘게 한다."(「청정도론」VIII.232)
*「청정도론」VIII.232는 두 가지로 '마음을 집중하면서(samadaha citta)'를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는 네 가지 禪에 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찰나삼매(刹那三昧, 순간적인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 찰나심일경성(刹那心一境性), khanika-citta-ekaggata)를 통해서다. 찰나삼매는 "그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마음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할 때 그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특상을 통찰하는 것"이라고 「청정도론」(VIII.232)은 정의하고 있다.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vimocayam cittam)'. 초선을 통해 장애들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하게 하면서, 제2선을 통해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로부터, 제3선을 통해 기쁨으로부터, 제4선을 통해 행복(즐거움)과 고통으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하게 하면서 들이쉬고 내쉰다. 혹은 그가 그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마음은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그가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무상의 관찰로 영원하다는 인식(nicca-sanna)으로부터, 괴로움의 관찰로 즐겁다는(행복하다는) 인식(sukha-sanna)으로부터, 무아의 관찰로 자아라는 인식(atta-sanna)으로부터, 염오와 관찰(nibbidanupassana)로 즐김(nandi)으로부터, 탐욕의 사라짐으로 탐욕(raga)으로부터, 소멸의 관찰로 일어남(samudaya)으로부터, 놓아버림의 관찰로 가짐(adana)으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하게 하면서 들이쉬고 내쉰다."(「청정도론」VIII.233)
'무상을 관찰하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탐냄을 떠나 관찰하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탐냄을 떠나 관찰하면서 내쉬겠노라'라고 익힌다.
'소멸을 관찰하면서 마시겠노라'며 익힌다.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버림(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마시겠노라'며 익힌다. '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무상을 관찰하면서(anicca-anupassi)'라고 했다. 여기서 무상한 것(anicca)이란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일어나고 멸하고 변하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uppada-vay-annathatta-bhava)이다. 무상한 성질(aniccata)이란 그들에게 존재하는 일어나고 멸하고 변하는 성질이다. 혹은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다. 생긴 무더기[온]가 그 본래의 모습으로 머물지 않고 순간적인 부서짐(khana-bhanga)을 통해 부서진다(bheda)는 뜻이다. 무상의 관찰이란 그 무상함으로 물질 등에 대해 무상하다고 관찰하는 것이다."(「청정도론」VIII.234)
*"'탐냄을 떠나 관찰하면서(viraga-anupassi)'. 여기 탐욕의 떠남은 파괴로서의 탐욕의 떠남과 절대적인 탐욕의 떠남(khaya-virago ca accanta-virago)의 두 가지가 있다. 여기서 파괴로서의 탐욕의 떠남이란 형성된 것들(行)이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것(khana-bhanga)이다. 절대적인 탐욕의 떠남이란 열반이다. 탐냄을 떠나 관찰함이란 이 둘의 관찰로 일어나는 위빳사나와 도(magga)이다. '소멸을 관찰하면서(nirodha-anupassi)'라는 구절에도 이 방법이 적용된다."(청정도론VIII.235)
*"여기서도 '버림(patinissagga)'은 두 가지이다. 버림으로서의 놓아버림과 들어감으로서의 버림(pariccaga-patinissaggo ca pakkhandana-patinissaggo ca)이다. 버림(놓아버림)의 관찰이란 버림 그 자체가 관찰(anupassana)이다. 이것은 위빳사나와 도의 동의어이다.
①위빳사나는 ㉮반대되는 것으로 대체하여 [과보로 나타난] 무더기들과, 업형성력(abhisankhara)들과 함께 오염원(kilesa)들을 버리기 때문에 ㉯형성된 것에 대해 [무상 등의] 결점을 보고 그 [형성된 것의] 반대인 열반으로 기울어짐으로써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각각 버림으로서의 놓아버림과 들어감으로서의 놓아버림이라고 한다.
②도는 ㉮근절(samuccheda)로써 무더기를 생기게 하는 업형성력들과 함께 오염원들을 버리기 때문에 ㉯열반을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각각 버림으로서의 놓아버림과 들어감으로서의 놓아버림이라 한다.
이 두 [위빳사나의 지혜와 도의 지혜]는 각각 이전의 지혜를 계속해서 따라 보기 때문에 관찰이라 한다."(「청정도론」VIII.236)
149.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어떻게 닦고 많이 익힐 때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성취하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길게 마실 때에는 '길게 마신다'고 알아차린다. 길게 내쉴 때에는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짧게 마실 때에는 '짧게 마신다'고 알아차린다. 짧게 내쉴 때에는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온 몸을 느끼면서 마시겠노라'며 익힌다. '온 몸을 느끼면서 내쉬겠노라'며 익힌다. '육체적 현상[身行]을 가라앉히면서 마시겠노라'며 익힌다. '육체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힐 때,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해서 몸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들숨과 날숨은 몸들 가운데 하나의 몸(한 가지 형태의 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 경우에 비구는 몸에 대해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하나의(한 가지 형태의) 몸(kay-annatara)이란 흙의 몸 등 네 가지 몸 가운데서 어떤 하나라고 나는 말한다. 즉 바람의 몸(風身.풍신, vayo-kaya)이라고 나는 말한다는 뜻이다. 혹은 눈의 감각장소, 귀의 감각장소 ... 덩어러진 [먹는] 음식이라는 이 25가지 물질의 부분들을 물질의 몸(色身.색신, rupa-kaya)이라 한다. 그중에서 들숨날숨은 감촉의 감각장소(觸處.촉처, photthabb-ayatana)에 포함되기 때문에 몸의 한 형태이다. 그 때문에 이와 같이 설하셨다."(MA.iv.140;SA.iii.270-271)'
*'그 경우에'라는 것은 네 가지 몸 가운데서 어떤 하나인 바람의 몸이다. 혹은 25가지 물질의 부분들인 물질의 몸 가운데 어떤 하나인 들숨날숨을 관찰하기 때문에 몸에서 몸을 관찰한다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느낌 등의 모든 곳에서 그 뜻을 알아야 한다.(MA.iii.271)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쁨을 느끼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기쁨을 느끼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줄거움을 느끼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즐거움을 느끼면서 내쉬겠노라'라고 익힌다. '정신적 현상[心行]을 느끼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정신적 현상을 느끼면서 내쉬겠노라'라고 익힌다.
'정신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정신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노라'라고 익힐 때, 비구들이여, 비구는 느낌에 대해서 느낌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들숨과 날숨에 잘 마음을 기울이는 것을 느낌들 가운데서 하나의 느낌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 경우에 비구는 느낌에 대해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마음을 기울이는 것(sadhukam manaskaram)'이란 기쁨 등을 느끼면서 생긴, 확실하게 마음을 기울임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기울임이 즐거운 느낌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다만 설명을 위주로 말씀하셨을 뿐이다. 마치 '무상에 대한 인식(無常想, anicca-sanna)의 수행에 몰두하고 전념한다.'라는 곳에서(「라훌라를 가르친 긴 경」(M62)) 인식(想, sanna)이라는 이름으로써 지혜(慧)를 설하신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여기서도 마음 기울임이라는 이름으로써 느낌을 설하셨다고 알아야 한다.
이 네 개조의 첫 번째 구절에서 기쁨의 제목 아래 느낌을 설했고, 두 번째 문구에서 즐거움(행복)이라고 한 것은 본성에 따라 설한 것이다. 정신적 현상(心行)의 두 문구에서는 "인식과 느낌은 마음부수이다. 이 법들은 마음과 결합된 마음의 작용이다,"(Ps.i.188)라는 말씀이 있고, 또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제외하고 마음과 연결된 모든 법들은 정신적 현상에 포함된다."(cf.Yam.i.229)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정신적 현상이라는 이름으로써 느낌을 설했다. 이 모든 것을 마음집중이라는 이름에 포함시켜 여기서 '마음집중'이라고 하셨다.(SA.iii.271)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이 느낌은 대상이 없기 때문에 느낌을 관찰할 수가 없다고 만약 말한다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마음챙김의 확립의 주석서에서도 "즐거움 등 각각의 토대를 대상으로 삼아 오직 느낌이 느끼지만 그 느낌의 일어남을 두고 '나는 느낀다.'라고 하는 일상적인 어법이 있다."(DA.i.775)라고 설했고, 나아가 기쁨의 느낌 등을 설명할 때에도 이것은 이미 설명했다.
「청정도론」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쁨(희열)의 느낌(경험)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즉 ①대상으로써 ②잊어버리지 않음으로써 느낀다. 어떻게 대상으로써 기쁨을 느끼는가? 그가 기쁨이 있는 두 가지의 禪(즉 초선과 제2선)에 들 때 그 증득의 순간에 禪을 얻음에 의해 대상으로써 기쁨을 경험한다. 대상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떻게 잊어버리지 않음으로써 기쁨을 느끼는가? 기쁨이 있는 두 가지의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기쁨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사한다. 그가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특상을 느끼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음으로써 기쁨을 느낀다."(Vis.VII.226-227)
「무애해도」도 이와 같이 설명한다."긴 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과 흩어지지 않음을 알 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지혜로 인해 기쁨을 느낀다."(Ps.1.177)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머지 구문들의 뜻도 알아야 한다.
이처럼 禪을 얻음에 의해 대상으로써 기쁨과 즐거움과 정신적 현상을 느끼듯이, 이 禪과 함께한 느낌이라 불리는 마음집중을 얻음에 의해 대상으로써 느낌을 느낀다. 그러므로 "그때 비구는 느낌들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 머문다."라고 하신 것은 참으로 잘 말씀하신 것이다."(MA.iv.140-141)
*'느낌들 가운데서 하나의 느낌(vedanasu vedanannataram)'이란 세 가지 느낌 가운데 하나인 즐거운 느낌(樂受, 녀ㅏㅗㅁㅍㄷㅇ뭄)을 두고 설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심.心)을 느끼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느끼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즐겁게 하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즐겁게 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집중하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힐 때,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에 대해서 마음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극복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마음챙김을 잊어 버리고 분명히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에게 들숨날숨에 대해 마음챙김을 닦는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 경우에 비구는 마음에 대해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마음챙김을 잊어버리고 분명히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가(mutthassatissa asampaianassa0'라는 구문에서 그 취지는 다음과 같다. 마음을 느끼면서 마시겠노라라는 방법으로 닦는 비구는 들술날숨의 어떤 표상을 대상으로 삼는다(arammanam karoti). 그러나 그의 마음은 대상에 대해 마음챙기고 분명히 알아차림을 확립하면서 닦기 때문에 그를 오직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자라고 불린다. 마음챙김을 잊어 버리고 분명히 알아차리지 않는 자에게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해 삼매를 닦는 수행(anapana-sati-samadhi-bhavana)은 없다. 그러므로 대상으로써 마음을 느끼는 것에 의해 그때 비구는 마음에 대해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며 머문다고 했다.'(SA.iii.372)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을 관찰하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탐냄을 떠나 관찰하면서 마시겠노라'고 익힌다. '탐냄을 떠나 관찰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소멸을 관찰하면서 마시겠노라'며 익힌다.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힌다. '버림을 관찰하면서 마시겠노라'며 익힌다. '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노라'고 익힐 때, 비구들이여, 비구는 법에 대해서 법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는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린 것을 지혜로써 보고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 경우에 비구는 법에 대해서 법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이렇게 익히고 많이 닦을 때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성취한다.
*"'그는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린 것을 지혜로써 보고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so yam tam abhijjhadomanassanam pahanam, tam pannaya disva sadhukam ajjhupekkhita).'라고 설하신 구문에서 '간탐(abhijjha)이라는 단어로 감각적 쾌락의 장애(kama-cchanda-nivarana)를 설하셨고, '싫어하는 마음(domanassa)'이라는 단어로 악의(byapada)의 장애를 설하셨다. 그리고 이 네 번째 네 개조는 위빳사나로써 설하셨다. 법을 관찰하는 것은 장애 등의 단락으로써 다섯 가지이다. (「대념처 경」(D22)에서 법에 마음챙기는 닦음(法念處.법념처)는 ①다섯 가지 장애(오개.五蓋) ②다섯 가지 무더기(오온.五蘊) ③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육내입처.六內外入處) ④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칠각지.七覺支) ⑤네 가지 진리(사성제)의 다섯 단락으로 분류되어 나타난다.) 그중에서 장애의 단락(nivarana-pabba)이 처음이고, 그중에서도 이 두 종류의 장애가 처음이다. 이와 같이 법을 관찰하는 것의 처음을 보이기 위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고 설하셨다.
'버림(pahana)'이란 무상의 관찰로써 항상하다는 인식[常]을 버리기 때문에 버림이라는 형태의 지혜를 뜻한다. '그것을 지혜로써 보고(tam pannaya disva)'란 무상, 탐욕의 사라짐, 소멸, 놓아버림의 지혜라 불리는(anicca-viraga-norodha-patinissagga-nana-sankhara) 그 버림의 지혜를 그 다음의 위빳사나의 지혜로써, 그것도 그 다음의 것으로써 본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그 다음 단계의 위빳사나를 보이셨다.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aijhupekkhita hoti)'란 ①사마타에 든 자가 평온하게 되는 것과 ②하나로 확립된 자가 평온하게 되는 것으로 두 종류의 평온함이 있다. 함께 생긴(sahajata) 법들에 대해서도 평온함이 있고, 대상에 대해서도 평온함이 있는데 여기서는 대상에 대한 평온함을 뜻한다."(MA.iv.142)
150.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힐 때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칠각지.七覺支)를 충만하게 하는가(성취하는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고,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때, 그에게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확립될 때, 비구에게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닭음의 구성요소(염각지.念覺支)가 생긴다(시작된다). 그때 비구는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그때 비구에게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그렇게 마음챙기면서 머무는 그는 그 법을 지혜로써 조사하고 점검하고 탐구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그렇게 마음챙기면서 머무는 비구가 그 법을 지혜로써 조사하고 점검하고 탐구할 때, 비구에게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택법각지.擇法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그 법을 지혜로써 조사하고 점검하고 탐구하는 그는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정진한다. 비구들이여, 그 법을 지혜로써 그 법을 조사하고 점검하고 탐구하는 비구가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정진할 때, 비구에게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정진각지.精進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열심히 정진하는 자에게 출세간적인 기쁨(희열)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열심히 정진하는 비구에게 출세간적인 기쁨이 생길때, 비구에게 기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희각지.喜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기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기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기쁨을 느끼는 자는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하다(진정된다). 비구가 기쁨을 느껴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할 때, 비구에게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경안각지.輕安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편안하다(passambhati)'는 것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불안이 편안하게 가라앉았기 때문에(kayika-cetasika-daratha-patippassaddhiya)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는 뜻이다."(MA.iv.143)
몸이 편안하고 즐거운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들어진다. 비구가 몸이 편안하고 즐거워 마음이 삼매에 들 때, 비구에게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정각지.定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그는 그렇게 삼매를 닦는 마음을 잘 지켜본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그렇게 삼매를 닦는 마음을 잘 지켜볼 때, 비구에게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사각지.捨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이와 같이 비구가 열네 가지 방법으로 몸을 파악할(kaya paigganaka) 때 그의 몸에 마음챙김인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고, 마음챙김과 함께한 지혜(nana)인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고, 반드시 그것과 함께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정진인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고, '희열'이 있고, '편안함'이 있고, 일념(citt-ekaggata)인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 그리고 이 여섯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이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음이라 불리는(anosakkana-anativattana-sankhata)인 '평정의 깨달음의 구성요소(upekkha-sambojjhanga)'가 있다. 마치 말들이 나란히 나아갈 때 마부가 '이놈이 느리다.'라면서 채찍질을 하거나 혹은 '이놈이 빠르다.'라면서 고삐를 잡아당겨 제어하는 일이 없이 다만 그렇게 볼 때(passamana) 확고함(thitakara)이 있는 것과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여섯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음이라 불리는 중립을 '평정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라 한다."(MA.iv.143)
151. 비구들이여, 비구가 느낌들에서 ··· 마음에서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고,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 때, 그에게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확립될 때, 그 비구에게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닭음의 구성요소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염각지.念覺支)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그렇게 마음챙기면서 머무는 그는 그 법을 지혜로써 관찰하고 조사하고 탐구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그렇게 마음챙기면서 머무는 비구가 그 법을 지혜로써 관찰하고 조사하고 탐구할 때, 비구에게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그 법을 지혜로써 관찰하고 조사하고 탐구하는 그는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정진한다. 비구들이여, 그 법을 지혜로써 그 법을 관찰하고 조사하고 탐구하는 비구가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정진할 때, 비구에게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열심히 정진하는 자에게 출세간적인 기쁨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열심히 정진하는 비구에게 출세간적인 기쁨이 생길때, 비구에게 기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기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기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기쁨을 느끼는 자에게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하다. 비구들이여 기쁨을 느껴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할 때, 비구에게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몸이 편안하고 즐거운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들어진다. 비구들이여, 몸이 편안하고 즐거워 비구의 마음이 삼매에 들 때, 비구에게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그는 그렇게 삼매를 닦는 마음을 잘 지켜본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그렇게 삼매를 닦는 마음을 잘 지켜볼 때, 비구에게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닦음을 통해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늘어나 충만해진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렇게 익히고 이렇게 많이 닦을 때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칠각지.七覺支)를 충만하게 한다."
152.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어떻게 닦고 많이 익힐 때 명지(明知)와 해탈을 성취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고요함에 의지하고 탐욕의 사라짐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놓아버림에 이르는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기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 구성요소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고요함에 의지하고 탐욕의 사라짐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놓아버림에 이르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이렇게 닦고 많이 익힐 때 명지와 해탈을 성취한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이 끝났다.
입출식념경(入出息念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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