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117. 커다란 마흔의 경(mahācattārīsakasuttaṃ)
13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기반을 가지고 필수품을 갖춘 성스러운 바른 삼매를 설하겠다.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기도록 하라. 나는 설할
것이다."라고.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기반을 가지고 필수품을 갖춘'으로 옮긴 것은 saupanisam saparikkharam이다. 이 뜻은 '조건과 도움이 되는 것이 함께한'이란 뜻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기반을 가지고 필수품을 갖춘 성스러운 바른 삼매인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의 일곱 가지 구성 요소를 갖춘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심일경성.心一境性), 비구들이여, 이것이 기반을 가졌다고도 필수품을 갖추었다고도 하는 성스러운 바른 삼매이다.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심일경성.心一境性 )은 cittassa ekaggata를 옮긴 것으로 니까야 경전에서 삼매를 정의하는 술어이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먼저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인가?
삿된 견해를 삿된 견해라고 철저히 알고(꿰뚫어 알고), 바른 견해를 바른 견해라고 철저히 안다. 이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른 견해가 앞선다(sammaditthi pubbangama)'라고 하셨다. '바른 견해(samma-ditthi)'는 두 종류인데 먼저 오는 것과 나중에 오는 것이다. 먼저 오는 것은 위빳사나의 바른 견해(vipassana-sammaditthi)이고, 나중에 오는 것은 도른 바른 견해(magga-sammaditthi)이다.
위빳사나의 바른 견해란 삼계의 형성된 것들(anusayita)을 무상 등으로 검증하는 것이고, 도의 바른 견해란 검증을 마친 뒤 [자신의 상속에서 긴 세월 잠재해 온 오염원의] 윤회를 끝장내면서 가라앉히면서 일어난다.
마치 농부가 밭을 일굴 때 처음에는 숲에 있는 나무를 베고 그 다음에 불을 놓는 것과 같다. 그 불이 처음에 베어낸 나무들을 남김없이 태우듯이 위빳사나의 바른 견해는 처음에 무상 등으로 형성된 것들을 검증하고 도의 바른 견해는 그 형성된 것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씨를 말리면서 일어난다. 이 두 종류의 바른 견해가 여기에 다 해당된다."(MA.iv.131)
*"'삿된 견해를 삿된 견해라고 꿰뚫어 안다(micchaditthim micchaditthi pajanati)'는 것은 그릇된 견해 그 자체가 바로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특징을 통찰하여 대상으로서 꿰뚫어 아는 것이고, 바른 견해는 통찰하는 역활로써 바른 견해를 얻은 것을 미혹하지 않음으로써 꿰뚫어 아는 것이다."(MA.iv.13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삿된 견해인가?
'보시도 없고 공물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다.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변화하여 생겨난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이 이 세상에는 없다.'라고 하는 것은 삿된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견해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바른 견해는 두 가지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 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하는 바른 견해가 있다.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견해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 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하는 바른 견해인가? '보시도 있고 공물도 있고 제사(헌공)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이 이 세상에는 있다.'라는 이것이 번뇌와 함께 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하는 바른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 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견해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마음을 가진 자, 번뇌 없는 마음을 가진 자,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의 지혜, 지혜의 기능(근), 지혜의 힘,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택법각지.擇法覺支], 바른 견해, 길의 요소를,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 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견해이다. 그는 삿된 견해를 버리고 바른 견해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바른 노력이다. 그는 마음챙기면서 삿된 견해를 버리고, 마음챙기면서 바른 견해를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바른 마음챙김이다. 이처럼 이 세 가지 법이 바른 견해를 따라 흐르고 따라 구르니 곧 바른 견해,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이다.
*"'지혜(panna)'란 계속해서 분석하여 불사의 문(amata-dvara)으로 인도해주고 보여 주기 때문에 지혜라 한다. 불사의 문을 보여준다는 뜻에 대해 지배하기(indattam karoti) 때문에 '지혜의 기능(panna-indriya)'이다. 무명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지혜의 힘(panna-bala)'이고,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되어 네 가지 진리의 법(사성제)을 선별하기 때문에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구성요소(dhamma-vicaya-sambojjhanga)'이다. 도를 성취함으로 빛나는 견해가 '바른 견해(samma-ditthi)'이고, 성스러운 도(ariya-magga)의 구성요소이기 대문에 '도의 구성요소(magganga)이다."(MA.iv.131-132)
137.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가?
삿된 사유를 삿된 사유라고 철저히 알고, 바른 사유를 바른 사유라고 철저히 안다. 이것이 바른 견해이다.
*"'삿된 사유를 삿된 사유라고 꿰뚫어 안다(micchasankappam micchasankappo ti pajanati)'고 하셨다. 삿된 사류를 삿된 사유라고 아는 것은 삿된 사유 그 자체가 바로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특징(lakkhana)을 통찰하여 [삿된 사유를] 대상으로 삼아서 꿰뚫어 아는 것이다. '바른 사유(samma-sankappa)'는 통찰하는 역활을 통해서 [바른 사유를 얻은 것을] 미혹하지 않아서 꿰뚫어 아는 것이다. 다음의 바른 말등에서도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MA.iv.132)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삿된 사유인가?
감각적 쾌락의 사유, 악의(성냄, 분노)의 사유, 해코지의 사유, 비구들이여, 이것이 삿된 사유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사유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바른 사유도 두 가지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하는바른 사유가 있다.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사유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몸과 생명에 대한 애착을 익게하는 바른 사유인가?
비구들이여, 출리의 사유, 성냄 없음의 사유, 해코지 않음의 사유,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이 익게하는 바른 사유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사유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마음을 가진 자, 번뇌 없는 마음을 가진 자,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의 생각, 사유, 마음의 전념, 마음의 고정, 마음의 지향, 말의 형성작용[口行],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바른 사유이다. 그는 삿된 사유를 버리고 바른 사유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바른 노력이다. 그는 마음챙기면서 삿된 사유를 버리고, 마음챙기면서 바른 사유를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바른 마음챙김이다. 이러한 세 가지 법이 바른 사유를 따라 흐르고 따라 구르니 곧 바른 견해,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이다.
138.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가?
삿된 말을 삿된 말이라고 철저히 알고, 바른 말을 바른 말이라고 철저히 안다. 이것이 바른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삿된 말인가?
거짓말, 이간하는 말(중상모략), 거친 말(욕설), 꾸며대는 말이 삿된 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말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바른 말도 두 가지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하는 바른 말이 있다.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바른 말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번뇌와 함게하고 공덕을 만들고 재생의 조건(몸과 생명에 대한 애착)을 익게하는 바른 말인가?
거짓을 말하는 것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꾸며대는 말을 삼가는 것이,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하는 바른 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말인가?
성스러운 마음을 가진 자, 번뇌 없는 마음을 가진 자, 성스러운 길을 갖춘 자,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의 말로 짓는 네 가지 나쁜 행위로부터 떠남, 제어, 자제, 삼감,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바른 말이라고 불린다. 그는 삿된 말을 버리고 바른 말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바른 노력이다. 그는 마음챙기면서 삿된 말을 버리고, 마음챙기면서 바른 말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바른 마음챙김이다. 이러한 세 가지 법이 바른 말을 따라 흐르고 따라 구르니 곧 바른 견해,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이다.
139.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가?
삿된 행위를 삿된 행위라고 철저히 알고, 바른 행위를 바른 행위라고 철저히 안다. 이것이 바른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삿된 행위인가?
비구들이여, 살아있는 생명을 죽임, 주지 않은 것을 가짐, 음행에 대해서 삿되게 행함, 비구들이여, 이것이 삿된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위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바른 행위도 두 가지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하는 바른 행위가 있다. 비구들이여, 번뇌에 물들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행위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하는 바른 행위인가?
비구들이여,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감,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것을 삼감,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하는 익게하는 바른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행위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마음을 가진 자, 번뇌 없는 마음을 가진 자, 성스러운 길을 갖춘 자,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의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행위로부터의 떠남, 제어, 자제, 삼감,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행위라고 불린다. 그는 삿된 행위를 버리고 바른 행위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바른 노력이다. 그는 마음챙기면서 삿된 행위를 버리고, 마음챙기면서 바른 행위를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바른 마음챙김이다. 이러한 세 가지 법이 바른 행위를 따라 흐르고 따라 구르니 곧 바른 견해,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이다.
140.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가?
그는 삿된 생계(생활)를 삿된 생계라고 철저히 알고, 바른 생계를 바른 생계라고 철저히 안다. 이것이 바른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삿된 생계인가?
사기, 아첨, 예언, 요술, 이득 때문에 이득을 추구함, 비구들이여, 이것이 삿된 생계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생계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바른 생계도 두 가지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하는 바른 생계가 있다.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생계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하는 바른 생계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들은 삿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생활로 생계를 유지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하는 바른 생계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생계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마음을 가진 자, 번뇌 없는 마음을 가진 자, 성스러운 길을 갖춘 자,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의 삿된 생계로부터의 떠남, 제어, 자제, 삼감, 비구들이,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지 않고 출세간의 것이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생계라고 불린다. 그는 삿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생계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비구들이, 이것이 바른 노력이다. 그는 마음챙기면서 삿된 생계를 버리고, 마음챙기면서 바른 생계를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바른 마음챙김이다. 이러한 세 가지 법이 바른 생계를 따라 흐르고 따라 구르니 곧 바른 견해,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이다.
141.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가?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를 가진 자에게 바른 사유가 가능하다. 바른 사유를 가진 자에게 바른 말이 가능하다. 바른 말을 가진 자에게 바른 행위가 가능하다. 바른 행위를 가진 자에게 바른 생계가 가능하다. 바른 생계를 가진 자에게 바른 노력이 가능하다. 바른 노력을 가진 자에게 바른 마음챙김이 가능하다. 바른 마음챙김을 가진 자에게 바른 삼매가 가능하다. 바른 삼매를 가진 자에게 바른 지혜가 가능하다. 바른 지혜를 가진 자에게 바른 해탈이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요소를 갖춘 유학과 열 가지 요소를 갖춘 아라한이 있다.(거기서도 바른 지혜로부터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을 제거하고 닦음의 완성으로 나아간다.)
142.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가?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를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견해가 부서진다. 그러면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도 부서진다. 그리고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다양한 선법들이 늘어나 충만해진다. 바른 사유를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사유가 부서진다. ··· 바른 말을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말이 부서진다. ··· 바른 행위를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행위가 부서진다. ··· 바른 생계를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생계가 부서진다. ··· 바른 노력을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노력이 부서진다. ··· 바른 마음챙김을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마음챙김이 부서진다. ··· 바른 삼매를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삼매가 부서진다. ··· 바른 지혜를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지혜가 부서진다. ··· 바른 해탈을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해탈이 부서진다. 그러면 삿된 해탈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도 부서진다. 그리고 바른 해탈을 조건으로 다양한 선법들이 늘어나 충만해진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스무 가지 선함의 편에 있는 요소와 스무 가지 선하지 않음의 편에 있는 요소가 있다. 이 커다란 마흔 가지 법문은 굴러졌다. 신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브라흐마가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이 사는 인간의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의 그 어느 누구도 이것을 멈추게 할 수 없다.
143. 비구들이여, 이 커다란 마흔 가지 법문에 대해 비난받아야 하고 거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지금‧여기에서 법다움을 갖춘 열 가지 이어지는 말들로 멸시받는다.
만약 그대가 바른 견해를 비난하면, 그대는 삿된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을 공경하고 칭송하는 것이 된다. 만약 그대가 바른 사유를 비난하면, 그대는 삿된 사유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을 공경하고 칭송하는 것이 된다. 만약 그대가 바른 말을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행위를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생계를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노력을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마음챙김을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삼매를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지혜를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해탈을 비난하면, 그대는 삿된 해탈을 가진 사문‧바라문들을 공경하고 칭송하는 것이 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 커다란 마흔 가지 법문에 대해 비난받아야 하고 거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지금‧여기에서 법다움을 갖춘 열 가지 이어지는 말들로 멸시받는다. 비구들이여, 옥깔라 지역 사람들과 왓사와 반냐 사람들과 같은 무인론자들과 도덕부정론자들과 허무론자들도 이 커다란 마흔 가지 법문에 대해 비난받아 비난받아야 하고 거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난과 분노와 책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커다란 마흔의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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