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142. 보시의 분석 경(dakkhiṇāvibhaṅgasuttaṃn)
37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의 까삘라왓투에 있는 니그로다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한 벌의 새 옷을 가지고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아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가져온 이 한 벌의 새 옷은 세존을 위해서 직접 바느질하고 꿰맨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것을 연민으로 받아주십시오."라고.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할 때 그대가 가져온 것은 나에게 보시하는 것도 되고 승가에 보시한 것도 될 것입니다."라고.
두 번째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가져온 이 한 벌의 새 옷은 세존을 위해서 직접 바느질하고 꿰맨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것을 연민으로 받아주십시오."
두 번째도 세존께서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할 때 그대가 가져온 것은 나에게 보시하는 것도 되고 승가에 보시한 것도 될 것입니다."라고.
세 번째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가져 온 이 한 벌의 새 옷은 세존을 위해서 직접 바느질하고 꿰맨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것을 연민으로 받아주십시오."라고.
세 번째도 세존께서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할 때 그대가 가져온 것은 나에게 보시하는 것도 되고 승가에 보시한 것도 될 것입니다."라고.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apajapati Gotami) 비구니(장로니)는 데와다하(Devadaha)의 숩빠붓다(Suppabuddha)의 딸이며 세존의 어머니인 마하마야(Mahamaya) 부인의 동생이기도 하다. 마하마야 부인이 세존을 낳은 지 7일 만에 돌아가시자 세존을 양육하였으며 세존의 아버지인 숫도다나 왕과 결혼하여 세존의 계모가 되었다. 숫도다나 왕 사이에서 난다(Nanda)를 낳았는데 난다는 유모에게 맡기고 자신은 세존을 돌봤다고 한다. 세존께서 삭까족과 꼴리야족 사이에 로히니 강물 때문에 일어난 분쟁을 중재하러 오셨을 때 500명의 삭까족 남자들이 출가하였다. 마하빠자빠띠는 그들의 아내들과 함께 세존께 여인들도 출가하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였지만 세존께서는 거절하셨다. 세존께서는 웨살리로 가시자 그녀는 500명의 여인들과 함께 맨발로 웨살리까지 가서 간청을 하였지만 세존께서는 역시 거절하셨다. 아난다 존자가 그녀의 편을 들어서 팔경계법으로 중재를 하여 마침내 비구니 교단이 성립되게 되었다.(「앙굿따라 니까야」 제5권 「고따미 경」(A8.51);Vin.ii.253ff;A.iv.274ff)
참고로 팔경계법은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는 여인의 출가가 교단에 미칠 부정적 영향[정법(正法)의 유지 기간이 줄어듦 : 1,000년 → 500년] 때문에 여인의 출가를 불허하려 하였지만, 여인도 출가하여 공부하면 아라한을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의 측면 때문에, 호수에 미리 제방을 쌓듯이, 일곱 가지 존중법을 조건으로 여인의 출가를 허락함.
일곱 가지 존중법[팔경법(八敬法)/팔경계(八敬戒)] ― “이것도 존경하고 존중하고 우러르고 예배한 뒤에 살아있는 한 넘지 않아야 하는 법이다.”
①구족계를 받은 지 100년이 된 비구니가 그날 구족계를 받은 비구에게 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고 합장하여 경의를 표해야 한다. ②비구니가 비구가 없는 거주처에서 안거를 나서는 안 된다. ③보름마다 비구니는 비구 상가에 포살에 대한 질문과 가르침을 위한 방문의 두 가지 법을 요청해야 한다. ④안거에서 나온 비구니는 양 상가에서 본 것과 들은 것과 의심되는 것의 세 가지 경우에 대해 자자를 행해야 한다. ⑤무거운 법을 범한 비구니는 양 상가에서 보름 동안 참회해야 한다. ⑥두 번의 안거 동안 여섯 가지 법에 대해 공부한 식카마나는 양 상가에서 구족계를 받아야 한다. ⑦어떤 이유로도 비구니는 비구를 비난하고 비방해서는 안 된다. ⑧오늘부터 비구니들이 비구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지되고, 비구들이 비구니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는다.
*"언제 고따미는 세존께 한 벌의 옷(dussa-yuga)을 보시할 생각을 내었는가? 깨달음을 얻은 뒤 까빌라(Kapila-pura)를 처음으로 방문할 때였다. 그때 탁발을 가는 세존을 보고 숫도다나 왕(정반왕,Suddhodana-maha-raja)이 집으로 모시고 들어갔을 때 세존의 아름다운 모습(rupa-sobh-agga)을 보고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내 아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내 아들이 29년을 집에 있을 동안 내가 별로 해준게 없는데 지금이라도 가사(civara-sataka)를 보시(공양)하리라.'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시장에서 목화솜을 구해 와서 손수 물레질을 하고(pisitva) 마름질하고(pothetva) 가느다란 실(sukhuma-sutta)을 뽑아내고 하여 양재사(sippika)들의 도움으로 옷을 만들었다. 옷을 향내 나는 함(gandha-samugga)에 잘 넣고는 내 아들에게 보시라허 간다고 숫도다나 왕에게 말하고 왕도 길을 준비하고 치우게 하는 등 적극 협조했다. 마하빠자빠띠도 온갖 장신구로 장식을 잘하여 궁녀들에게 둘러싸인 채 옷이 담긴 함을 머리에 이고 세존께 다가갔다."(MA.v.66-67)
이 이야기는 「율장」 「소품」(Culavagga)의 제10장 「비구니 건도(建度)」 (Bhikkhuni-kkhandhaka, Vin.ii.253-256)에 나타나고 있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세존이시여, 제가 옷 가게에서 옷을 사서 백 명의 비구에게도 천 명의 비구에게도 십만 명의 비구에게도 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존을 위해 제가 손수 물레질하고 손수 바느질하여 가져온 것이니 세존께서 받아주십시오.'라고 간청하면서 말씀드렸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세 번 다 거절하셨다."(MA.v.67)
*"그러면 세존께서는 왜 자신에게 보시하려는 것을 비구 승가에게 보시하라고 하셨는가? 어머니에 대한 연민(anukampa) 때문이었다. 세존께만 보시하려는 의도(cetana)를 승가와 세존 둘 모두에게로 향한다면 그 의도는 결합되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MA.v.67)
377.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디 고따미가 가져온 한 벌의 새 옷을 받아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디 고따미는 이모로서, 유모로서, 양모로서, 수유자로서 세존께 많은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세존을 낳아주신 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신의 젖을 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세존 덕분에,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했습니다. 세존 덕분에,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났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났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났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났고, 술과 발효액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났습니다. 세존 덕분에,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분명한 믿음을 갖추고, 법에 분명한 믿음을 갖추고, 승가에 분명한 믿음을 갖추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율에 분명한 믿음을 갖추었습니다. 세존 덕분에,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괴로움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의심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역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라고.
378. "그것은 그렇다, 아난다여.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한다면, 아난다여, 그 처음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존경하고, 가사와 탁발음식과 병구완에 필요한 약품을 공양하는 것으로 쉽게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puggala puggalam agamma)'라는 것은 제자인 사람이(antevasika-puggala)이 스승인 사람(acariya-puggala)의 영향을 받는 것을 말한다."(MA.v.70)
*"스승을 만나면 인사하고, 그 지역에 스승이 머물면 행동할 때 머리 숙여 인사하고 걷고, 인사하고 앉고, 인사하고 눕는다. 멀리서 스승님이 오시는 것을 보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는 등 스승에게 적절한 행동(paccupakara)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씀이다."(MA.v.70)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술과 발효액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난다면, 아난다여, 그 처음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존경하고, 가사와 탁발음식과 병구완에 필요한 약품을 공양하는 것으로 쉽게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부처님에게 분명한 믿음을 갖추고, 법에 분명한 믿음을 갖추고, 승가에 분명한 믿음을 갖추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들을 갖춘다면, 아난다여, 그 처음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존경하고, 가사와 탁발음식과 병구완에 필요한 약품을 공양하는 것으로 쉽게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괴로움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의심이 없다면, 아난다여, 그 처음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존경하고, 가사와 탁발음식과 병구완에 필요한 약품을 공양하는 것으로 쉽게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379. 그리고, 아난다여, 사람에 대한 보시는 이런 열네 가지가 있다. 어떤 열넷 인가?
여래·아라한·정등각자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첫 번째 보시이다.
벽지불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두 번째 보시이다.
세존의 제자인 아라한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세 번째 보시이다.
아라한과의 실현을 위해 닦는 사람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네 번째 보시이다.
불환자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다섯 번째 보시이다.
불환과의 실현을 위해 닦는 사람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여섯 번째 보시이다.
일래자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일곱 번째 보시이다.
일래과의 실현을 위해 닦는 사람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여덟 번째 보시이다.
예류자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아홉 번째 보시이다.
예류과의 실현을 위해 닦는 사람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열 번째 보시이다.
욕탐이 없는 외도(탐욕을 여읜 이교도)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열한 번째 보시이다.
계를 중시하는(행실이 바른) 범부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열두 번째 보시이다.
계를 경시하는(행실이 나쁜) 범부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열세 번째 보시이다.
축생에게 보시한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열네 번째 보시이다.
*"'첫 번째(ayam pathama)'라고 하셨다. 여래께 올리는 이 보시(dakkhina)는 공덕(guna)의 측면에서도 첫 번째이고, 최상(jetthaka)의 측면에서도 첫 번째이다. 이것은 첫 번째(pathama)이고 최상(agga)이고 으뜸(jetthika)이다. 이 보시에 견줄 보시는 없다."(MA.v.71)
*"여기서 '탐욕을 여읜 이교도(bahiraka kamesu vitaraga)'란 업을 설하고 도덕적 행위를 설하면서(kamma-vadi-kiriya-vadi) 다섯 가지 신통력을 갖춘 자를 말한다."(MA.v.71)
*"'행실이 바른 범부(puthujjana-silavanta)'란 그의 본성이 소처럼 행동하는 자(go-sila-dhatuka)로써 속이거나 사기 치지 않고 다른 이를 괴롭히지도 않고 여법하고 바르게 농업이나 상업으로 삶을 영위하는 자이다."(MA.v.71)
즉 마치 소의 원래 품성이 유순하고 속이지 않는 것처럼 삼귀의나 오계를 수지하지는 않았더라도 천선으로 행실이 바른 범부를 말한다.
*"'행실이 나쁜 범부(puthujjana-dussila)'란 어부나 낚시꾼(kevatta-maccha-bandha) 등 다른 이를 괴롭혀 삶을 영위하는 자를 말한다."(MA.v.71)
*"'축생에게 보시하는 것(tiracchanagate danam deti)'이라고 하셨다. 양육(posana)하는 의미에서 보시한 것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한 조각이나 반 조각 정도 준 것도 해당되지 않는다. 개나 돼지나 닭이나 까마귀 등 어떤 것이 가까이 왔을 때 [이 보시가 미래에 나의 이익과행복이 되기를-MAT.ii.409] 바라면서 어떤 것을 보시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축생에게 보시하는 것에 해당된다."(MA.v.71)
거기서, 아난다여, 축생에게 보시한 것을 원인으로 보시는 백 배가 기대된다(백 배의 보답이 기대된다).
행실이 나쁜 범부에게 보시한 것을 원인으로 보시는 천 배가 기대된다.
행실이 바른 범부에게 보시하 것을 원인으로 보시는 십만 배가 기대된다.
감각적 쾌락의 탐욕을 여읜 외도에게 보시한 것을 원인으로 보시는 천만 배가 기대된다.
예류과의 실현을 위해 닦는 사람에게 보시한 것을 원인으로 보시는 헤아릴 수 없고 무량한 것이 기대된다. 그러니 예류자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할 것이고, 일래과의 실현을 위해 닦는 사람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할 것이고, 일래자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할 것이고, 불환과의 실현을 위해 닦는 사람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할 것이고, 불환자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할 것이고, 아라한과의 실현을 위해 닦는 사람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할 것이고, 아라한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할 것이고, 벽지불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할 것이고, 여래·아라한·정등각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할 것인가(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380. 또한, 아난다여, 승가를 위해 행하는 일곱 가지 보시가 있다. 어떤 일곱 가지인가?
부처님을 으뜸으로 하는 양쪽 승가에 보시한다(비구와 비구니 두 승가에 보시한다). 이것이 승가를 위해 행하는 첫 번째 보시이다.
여래가 완전한 열반에 들었을 때 양쪽 승가에 보시한다. 이것이 승가를 위해 행하는 두 번째 보시이다.
비구 승가에 보시한다. 이것이 승가를 위해 행하는 세 번째 보시이다.
비구니 승가에 보시한다. 이것이 승가를 위해 행하는 네 번째 보시이다.
'승가로부터 이 정도의 비구와 비구니를 저에게 특정해 주십시오.'라면서 보시한다. 이것이 승가를 위해 행하는 다섯 번째 보시이다.
'승가로부터 이 정도의 비구를 저에게 특정해 주십시오.'라면서 보시한다. 이것이 승가를 위해 행하는 여섯 번째 보시이다.
'승가로부터 이 정도의 비구니를 저에게 특정해 주십시오.'라면서 보시한다. 이것이 승가를 위해 행하는 일곱 번째 보시이다.
그런데 아난다여, 미래에 목에 노란 가사를 두르고,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악한 법을 지닌 일족들이 있을 것이다. 승가를 위하여, 계행이 청정치 못한 그들에 대해 보시할 것이다. 그때도, 아난다여, 승가를 위해 행하는 보시는 헤아릴 수 없고 무량하다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아난다여, 어떤 방법에 의해서든 승가를 위해 행하는 보시보다 사람에 대한 보시가 더 큰 결실이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일족들(gotrabhuno, 고뜨라부)'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들은 사문이라는 이름만 지니기 때문에(samanati gottamattam anubhavanti) 그런 일족이라 한다. '노란 가사를 목에 두른(kasava-kantha)'이라 하셨다. 그들은 노란 가사 조각을 목에 두르거나 팔에 묶어서 돌아다닌다. 집안에 자식과 아내를 두고 농업이나 상업 등의 직업(kasi-vanijjadi kammani)으로 그들을 부양한다."(MA.v.74)
*"여기서 '승가를 위해 그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보시를 베풀 것이다(tesu dussilesu sangham uddissa danam dassanti)'라고 하셨고, 계행이 청정치 못한 승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승가가 계행이 나쁘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승가를 위해, 승가에게 보시한다는 생각으로 계행이 나쁜 자에게 보시한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부처님을 으뜸으로 하는 승가에 하는 보시는 그 공덕을 헤아릴 수 없다고 설하셨다. 노란 가사를 목에 두른 승가(kasava-kantha-sangha)에 하는 보시도 그 공덕을 헤아릴 수 없다고 하셨다. 승가에게 하는 보시는 승가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데 승가를 존중하는 것(cittikara)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MA.v,74)
*"'승가를 위한 보시(sanghagata dakkhina)'라고 하셨다. 어떤 이는 승가에게 보시를 하리라는 생각으로 시물을 준비하여 승원에 가서는 '스님, 승가를 위해 비구 한 분을 [추천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는 승가에서 한 명의 비구를 추천받고는 '내가 한 명의 비구를 얻었다.'라고 생각한다. [한 개인에게로 마음이 기울었기 때문에(puggalavasena cittassa parinamitatta) 처음에 승가에 보시하리라는 생각이-MAT.ii.412] 다르게 나타난다. 그의 보시는 승가에게 한 보시가 아니다. 장로를 추천받고는 장로를 얻었다고 기쁨을 일으키면서 한 보시도 승가에게 한 보시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사미이건 비구이건 신참이건 장로이건 어리석은 자이건 현명한 자이건 어떤 이라도 승가에서 추천받고는 당황하지 않고 승가에 보시하리라는 생각으로 승가를 존중한다. 그의 보시는 승가에게 한 보시(dakkhina sanghagata)이다."(MA.v.74)
*「상윳따 니까야」 제1권 「공양하는 자 경」(S11.16)에서도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가지 도를 닦는 자들과 네 가지 과에 머무는 자들
이러한 승가는 올곧으며 지혜와 계를 갖추었다.
공양 올려 공덕 찾는 생명체들이 재생을 가져오는 공덕을 짓기 위해
이런 승가에 보시하면 큰 결실이 있다."
*"개인인 아라한에게 보시하는 것(dinna-dana)보다 승가를 대표하여 승가에서 지정하여(uddisitva) 준 사람이라면 그가 비록 계행이 나쁘더라도 그에게 보시하는 것이 그 공덕이 더 크다(maha-pphalatara)."(MA.v.75)
381. 아난다여, 이런 네 가지 청정한 보시가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아난다여, 주는 자 때문에 청정해지고 받는 자 때문은 아닌 보시가 있다(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받는 자 때문에 청정해지고 주는 자 때문은 아닌 보시가 있다(보시 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주는 자 때문에도 받는 자 때문에도 청정해지지 않는 보시가 있다(보시하는 자도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주는 자 때문에도 받는 자 때문에도 청정해지는 보시가 있다(보시하는 자도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어떻게 주는 자 때문에 청정해지고 받는 자 때문은 아닌 보시가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계행이 청정하고 선한 성품을 지닌 주는 자가 있고,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악한 성품을 지닌 받는 자들이 있다. 아난다여, 이렇게 주는 자 때문에 청정해지고 받는 자 때문은 아닌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어떻게 받는 자 때문에 청정해지고 주는 자 때문은 아닌 보시가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악한 성품을 지닌 주는 자가 있고, 계행이 청정하고 선한 성품을 지닌 받는 자들이 있다. 아난다여, 이렇게 받는 자 때문에 청정해지고 주는 자 때문은 아닌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어떻게 주는 자 때문에도 받는 자 때문에도 청정해지지 않는 보시가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악한 성품을 지닌 주는 자가 있고,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악한 성품을 지닌 받는 자들이 있다. 아난다여, 이렇게 주는 자 때문에도 받는 자 때문에도 청정해지지 않는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어떻게 주는 자 때문에도 받는 자 때문에도 청정해지는 보시가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계행이 청정하고 선한 성품을 지닌 주는 자가 있고, 계행이 청정하고 선한 성품을 지닌 받는 자들이 있다. 아난다여, 이렇게 주는 자 때문에도 받는 자 때문에도 청정해 지는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이런 네 가지 청정한 보시가 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인 선서께서는 이것을 말씀하신 뒤에 다시 이것을 말씀하셨다.
382. '계행이 청정한 자, 아주 착한 마음을 가진 자가
업(業)의 결실이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법답게 얻어진 것을
계행이 청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보시할 때
그 보시는 주는 자 때문에 청정해진다.
계행이 청정하지 않는 자, 착한 마음을 가지지 않은 자가
업(業)의 결실이 크다는 믿음 없이, 법답지 않게 얻어진 것을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보시할 때
그 보시는 받는 자 때문에 청정해진다.
계행이 청정하지 않는 자, 착한 마음을 가지지 않은 자가
업(業)의 결실이 크다는 믿음 없이, 법답지 않게 얻어진 것을
계행이 청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보시할 때
그 보시는 큰 결실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
계행이 청정한 자, 착한 마음을 가진 자가
업(業)의 결실이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법답게 얻어진 것을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보시할 때
그 보시는 참으로 큰 결실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탐욕이 없는 자, 착한 마음을 가진 자가
업(業)의 결실이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법답게 얻어진 것을
탐욕이 없는 자들에게 보시할 때
그 보시는 참으로 물질적인 보시 가운데 으뜸이다.'
보시의 분석 경이 끝났다.
제14장 분석 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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