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의 분석 경(dhātuvibhaṅgasuttaṃ)

실론섬 2016. 6. 16. 19:22

MN 140. 요소의 분석 경(dhātuvibhaṅgasuttaṃ)

 

34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마가다를 유행하시던 세존께서 라자가하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도공(陶工) 박가와에게 가셨다. 가셔서는 도공 박가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박가와여, 만약 그대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그대의 작업장에서 하룻밤을 머물고자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부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먼저 와서 머무는 출가자가 있습니다세존이시여, 만약 그가 동의한다면(허락한다면) 두 분께서 편안하게 머무십시오."

 

*'도공 박가와'는 Bhaggava kumbha-kara를 옮긴 것이다. 여기서 박가와(Bhaggava)는 도공(kumbhakara)의 이름으로 나타나지만 박가와라는 단어 자체가 도공(potter)을 뜻하는 단어로 쓰인다.(PED) 「상윳따 니까야」 제1권 「가띠까라 경」(S1.50)과 「가띠까라 경」(S2.24)에서 세존께서는 가띠까라(Ghatikara. 문자적으로 도공을 뜻함)를 박가와로 부르고 계신다.    

*'그가 동의한다면...'이라고 박가와가 말한 것은 이와 같다. 박가와는 이렇게 생각했다. '출가자는 참으로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대중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만약 먼저 도착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반이여, 들어오지 마시오.내가 이 거처를 잡았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만일 이 사람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면 '도반이여, 여기서 나가시오. 내가 이 거처를 잡았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생기면 내가 두 사람 사이에 분쟁을 만드는 것이다. 한 번 준 것은 이미 준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MA.v.33)

 

그 무렵 세존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뿍꾸사띠라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그 도공의 작업장에 먼저 와서 머물고 있었다. 존께서는 뿍꾸사띠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뿍꾸사띠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그대에게 부담되지 않는다면 이 작업장에서 하룻밤을 머물고자 합니다."

"도반이여, 도공의 작업장은 넓습니다. 존자께서 편하게 머무십시오."

 

*주석서는 좋은 가문의 아들(선남자) 뿍꾸사띠에 대해서 14쪽에 이르는 긴 서술을 하고 있다.(MA.v.33-46) 그 이야기를 요약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도 중원에 위치하고 있는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 왕이 통치할 때 딱까실라라는 지역에 뿍꾸사띠라는 왕이 통치를 하고 있었다. 빔비사라 왕은 딱까실라에서 오는 상인들을 통해 뿍꾸사띠 왕이 아주 덕망이 높고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왕이라는 것과 나이도 동갑임을 알게 되었다. 빔비사라 왕은 기뻐서 뿍꾸사띠 왕과 친교를 맺기를 원했다. 뿍꾸사띠 왕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상인들을 격려했고 마가다에서 오는 상인들을 대접하면서 빔비사라 왕의 안부를 물었다. 이렇게 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만나적은 없었지만 우정이 깊어갔고 서로 선물을 교환하기도 했다. 그리고 빔비사라 왕은 딱까실라의 상인으로부터 딱까실라에는 불법승 삼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존을 그곳으로 가시게 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고, 사리뿟따 존자와 목갈라나 존자를 그곳으로 가게 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생각 끝에 그분들이 직접 가사는 것이나 다름없도록 가르침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황금 접시에 세존의 공덕을 한 쪽에 새기고, 가르침의 공덕을 한 쪽에 새기고, 승가의 공덕을 한 쪽에 새겼다. 또한 '세존의 가르침은 잘 설해졌고, 향상으로 인도하니 만일 내 친구가 가능하다면 집을 나와 출가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새겨서 뿍꾸사띠 왕에게 보냈다. 뿍꾸사띠 왕은 황금 쟁반에 새겨진 불법승의 공덕과 가르침등을 읽고서 기쁨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후 그는 왕국과 스승(세존)을 놓고 고민하다가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삭발을 하고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왕궁을 떠났다. 먼 길을 혼자서 떠나 여러 날을 걷은 뒤, 그날도 8요자나가 모자라는 200요자나를 걸었다. 제따 숲으로 들어가는 문 근처까지 갔었지만 스승님이 어디 계신지 묻지 않았다. 그는 45요자나나 되는 길을 지나쳐 버렸다. 해거름에 라자가하에 도착하여 스승님이 어디 계신지를 물었고, 자신이 45요자나나 지나쳐 온 사왓티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 그날은 이미 저문 탓에 하룻밤을 도공의 집에서 머물고 그 다음날 스승님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 세존께서도 그날 새벽에 신통력으로 세상을 둘러 보시다가 뿍꾸사띠를 보시고 '이 선남자는 단지 친구인 빔비사라 왕이 보내준 그 가르침을 읽고 왕국을 버리고 나를 믿고 출가하여 라자가하에 왔다. 만일 내가 그를 만나러 가지 않으면 그는 세 가지 사문의 결실을 통찰하지 못하고 하룻밤이 지난 뒤 의지처 없이 죽게 될 것이고, 내가 가서 법을 설하면 세 가지 사문의 결실을 얻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십만 겁을 더한 네 아승지 겁 동안 바라밀을 닦았다. 그러니 그를 구하리라.'라고 생각하셨다. 세존께서는 그가 왕국을 버리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걸어서 온 것을 생각하시면서 세존께서도 어떤 신통도 행하지 않고 두 발로 걸어서 라자가하로 가셨다. 세존은 32상 등의 대인상을 감추고 보통의 비구의 모습으로 45요자나를 걸어 해거름에 뿍꾸사띠가 먼저 도착해 머물고 있는 그 도공의 집에 도착하셨다.(MA.v.33-46)

 

그래서 세존께서는 도공의 작업장에 들어간 뒤 한 곁에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들고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밤새 앉아 시간을 보내셨다. 뿍꾸사띠 존자도 밤새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이처럼 세존께서도 존경 받고 순수한 혈통의 가문(asambhinna-maha sammata-vamsa)에서 태어났고, 뿍꾸사띠 선남자도 끄샤뜨리야 가문에서 태어났다. 세존께서도 강한 의지를 가지셨고, 선남자도 강한 의지를 가졌다. 세존께서도 왕국을 버리고 출가하셨고, 선남자도 그리하였다. 세존께서도 황금색의 피부(suvanna-vanna)를 가지셨고, 선남자도 그와 같았다. 세존께서도 증득을 얻으셨고, 선남자도 그와 같았다. 이처럼 두 분 모두 끄쌰뜨리야 출신이고, 두 분 모두 강한 의지를 가졌고, 두 분 모두 왕국을 버리고 출가했고, 두 분 모두 황금색 피부를 가졌고, 두 분 모두 증득을 얻어 도공의 집에 와서 앚아 있었다.  
이 두 사람에 의해 도공의 집은 아주 빛났다. 그중에서 세존께서는 '내가 45요자나를 걸어서 왔으니 잠깐 자리에 누워 피로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없이 앉아서 과의 증득(phala-samapatti)에 들어 머무셨고, 선남자도 '내가 192요자나를 걸어서 왔으니 잠시라도 누워서 피로를 물리쳐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이 앉아서 들숨날숨을 대상으로 제4선에 들어 머물렀다(anapana-catuttha-jjhanam samapajji). 이것을 두고 '밤새 앉아 시간을 보내셨다.'라고 한 것이다."(MA.v.47-48)   

 

그러자 세존께 이런 생각이 떠오르셨다.

'이 좋은 가문의 아들은 신심있게 행동한다. 그에게 내가 질문을 해야겠다.'라고.

그래서 세존께서는 뿍꾸사띠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대는 누구를 의지하여 출가하였습니까? 그대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그대는 누구의 법을 믿고 따릅니까?"

"도반이여, 사꺄 족에서 출가한 사꺄 족의 사문 고따마라는 분이 있습니다. 세존이신 그분 고따마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저는 그분 세존을 의지하여 출가하였습니다. 그분 세존이 저의 스승입니다. 저는 그분 세존의 법을 믿고 따릅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 세존·아라한·정등각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도반이여, 북쪽 지방에 사왓티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지금 그곳에 머무십니다."

"비구여, 그런데 그대는 그 세존을 전에 친견한 적이 있습니까? 보면 알아볼 수 있습니까?"

"도반이여, 나는 그 세존을 전에 친견한 적이 없습니다. 만나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자 세존께 이런 생각이 떠오르셨다.

'이 좋은 가문의 아들은 나를 믿고 출가했다. 내가 그에게 법을 설해야겠다.'라고.

그래서 세존께서는 뿍꾸사띠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내가 그대에게 법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뿍꾸사띠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43. "비구여, 사람은 여섯 가지 요소[界],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 열여덟 가지 마음의 고찰(행보), 네 가지 토대(기반)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서 있는 자는 공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공상이 일어나지 않을 때 그는 고요한 성자라고 불린다. 지혜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되고, 진리를 보호해야 하고, 버림을(포기를) 증장해야 하고, 고요함을 닦아야 한다. 이것이 요소의 분석의 개요이다.

 

*"세존께서는 선남자에게 예비단계의 도닦음(pubba-bhaga-patipada)에 대해 설하지 않으시고 처음부터 아라한과의 토대가 되는(pada-tthana-bhuta) 궁극적인 공함(accanta-sunnata) 즉 위빳사나의 특징(vipassana-lakkhana)을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예비단계의 도닦음이 청정하지 않은 자에게는 처음에 계를 통한 단속(sila-samvara), 감각기능들에 대해 문을 보호함(indriyesu-gutta-dvarata),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아는 것(bhojane mattannuta), 깨어있음에 전념함(jagariya-anuyoga), 일곱 가지 바른 법(satta saddhamma, 믿음이 있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많이 배웠고, 활발하게 정진하고,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지혜를 구족함-합송경(D33) 바른 법 경(A7.84) 등), 네 가지 禪(cattari jhanani)이라는 이러한 예비단계의 도닦음을 설하신다.   
그러나 그것이 청정한 자(parisuddha)에게는 그것을 설하지 않고 아라한과의 토대가 되는 위빳사나를 설하신다. 이 선남자는 예비단계의 도닦음이 청정하다. 가르침을 읽고 청정한 믿음이 생겨 들숨날숨으로 제4선을 일으켰고 192요자나나 되는 거리를 걸어오면서 여행의 의무(yana-hicca)를 다했으니 사미의 계(samanera-sila)를 구족했다(paripunna). 그러므로 이렇게 설하신 것이다."(MA.v.50)    
*"'요소(界, dhatu)'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vijjamana)이고, '사람(purisa)'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avijjamana). 세존께서는 어떤 곳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통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보이셨고, 어떤 곳에서는 그 반대로, 또 어떤 때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통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보이셨고, 어떤 때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통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이셨다. 여기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통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요소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pannatti)일 뿐이다. 사람은 여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세존께서 '사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바로 '요소'라고 말씀하시면 이 선남자가 의심(sandeha)할 수 있고 어리둥절(sammoha)할 수 있고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을 지 모르기 때문에 서서히 '사람'이라든지 '중생'이라든지 '인간'이라든지 하는 것은 개념일 뿐이지 궁극적으로 중생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요소에만 마음을 두어 세 가지 과를 통찰하게 하기 위해(pativijjhapeti) 이렇게 말씀하셨다."(MA.v.50-51) 

*"사람이 여섯 가지 요소와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와 열여덥 가지 마음의 고찰에서 선회하여 최고의 성취인 아라한과를 얻으려고 할 때 이 네 가지 토대에 굳게 서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네 가지 토대(catura-adhitthana)'라고 한다."(MA.v.51)
네 가지 토대는 「디가 니까야」 제3권 「합송 경」(D33)에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지혜의 토대(panna-adhitthana), 진리의 토대(sacca-adhitthana), 버림의 토대(caga-adhitthana), 고요함의 토대(upasama-adhitthana)이다.    
*'공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mannassa va nappavattanti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에서 "공상이나 자만이 일어나지 않는다(mannassa va manassa va nappavattanti)"(MA.v.51)라고 설명하고 있다. 
북주석서는 "자만이 완전히 끊어질 때(mane sabbaso samucchinne) 끊어지지 않고 고요해지지 않는 오염원은 없다(asamucchinno anupasanto kileso nama natthi). 그러므로 고요한 성자라 한다."(MAT.ii.398)라는 설명으로 '공상'이라는 뜻보다는 '자만'의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일어나지 않는다(nappavattanti)'는 것은 여섯 가지 문을 통해 일어난 자만의 흐름은 도에 의해 말려버리기 때문에(maggena visositaya) 완전히 없어지고 끊어져서 흐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MAT.ii.397)  
*"'고요한 성자(muni santa)'라고 하셨다. 번뇌 다한 성자(khin-asava-muni)는 고요하고(upasanta) 적멸하다(nibbuta)고 한다."(MA.v.51)
*"'지혜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pannam nappamajjeyya)'는 것은 아라한과의 지혜를 통찰하기 위해서는(pativijjhan-attha) 처음부터(adito) 사마디와 위빳사나의 지혜(samadhi-vipassana-panna)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MA.v.51-52)  
*"'진리를 보호해야 한다(saccam anurakkheyya)'는 것은 궁극적 진리인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말의 진리(vaci-sacca)를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MA.v.52)
"여기서 '진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문구는 계를 깨끗이 하는 것(sila-visodhana)을 말한다. 진리에 섰을 때(sacce thito) 받아 지닌 계를 허물지 않고(avikopetva) 완성하면서(paripurento) 삼매에 들게 한다. 그러므로 주석서에서 '말의 진리를 보호해야 한다(vacisaccam rakkheyya).'라고 했다."(MAT.ii.398)

 

344. '비구여, 여섯 가지 요소[界],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 허공의 요소[空界], 의식의 요소[識界]가 있다. '비구여, 여섯 가지 요소,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345. '비구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눈의 감각접촉의 장소, 귀의 감각접촉의 장소, 코의 감각접촉의 장소, 혀의 감각접촉의 장소, 몸의 감각접촉의 장소, 마음의 감각접촉의 장소가 있다. '비구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346. '비구여, 열여덟 가지 마음의 고찰(행보),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눈으로 형색을 보고서 만족을(기쁨을) 주는 형색을 고찰하고(형색으로 다가가고), 불만족(고뇌)을 주는 형색을 고찰하고, 평정을 주는 형색을 고찰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서 ··· 코로 냄새를 맡고서 ··· 혀로 맛을 맛보고서 ··· 몸으로 감촉(닿음)을 느끼고서 ···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인식하고서 만족을 주는 법을 고찰하고, 불만족을 주는 법을 고찰하고, 평정을 주는 법을 고찰한다. 이렇게 여섯 가지 만족의 고찰이 있고, 여섯 가지 불만족의 고찰이 있고, 여섯 가지 평정의 고찰이 있다. '비구여, 열여덟 가지 마음의 고찰,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347. '비구여, 네 가지 토대(기반),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지혜의 토대, 진리의 토대, 버림의 토대(포기의 토대), 고요함(가라앉음)의 토대이다. '비구여, 네 가지 토대,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토대(기반)'로 옮긴 원어는 addhitthana이다. 이 단어의 뜻은 이것에 의해서 선다거나, 거기에 선다거나, 이런저런 덕스러운 사람들의 토대인 장소라는 의미이다."(DA.iii.1022)   
*여기서 '지혜의 토대', '진리의 토대', '버림의 토대', 고요함의 토대'는 각각 pannaddhitthana, sacca-addhitthana, ㅊcaga-addhitthana, upasama-addhitthan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첫 번째 최상의 과에 대한 지혜(panna), 두 번째는 말에 대한 진리(sacca), 세 번째는 세속적인 것을 버림(caga), 네 번째는 오염원을 고요하게 함(upasama)을 말한다. 그리고 첫 번째는 업이 자신의 주인임에 대한 지혜나 위빳사나의 지혜로부터 시작하여 과에 대한 지혜를 설한 것이다. 두 번째는 말에 대한 진리로부터 시작하여 열반을, 세 번째는 세속적인 것을 버림으로부터 시작하여 최상의 도로써 오염원을 버림을, 네 번째는 증득을 흔들어 버리는 오염원들로부터 시작하여 최상의 도로써 오염원을 고요하게 함을 설하신 것이다."(DA.iii.1022-23)  

 

348. '비구여, 지혜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진리를 보호해야 하고, 버림을 증장해야 하고, 고요함을 닦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비구여, 어떻게 지혜를 소홀히 여기지 않는가? 이런 여섯 가지 요소가 있다. 땅(흙, 대지)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허공의 요소, 의식의 요소이다.

 

349. 비구여, 무엇이 땅(대지. 흙)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는 안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비구여, 무엇이 안의 땅의 요소인가? 예를 들면 머리카락․몸털․손발톱․치아․피부․살․힘줄․뼈․골수․콩팥․심장․간․늑막․비장․허파․창자․장간막․위.배설물 등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거칠고, 견고한 것 그리고 결합된 것은 어떤 것이든, 또한, 기타의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거칠고, 견고한 것 그리고 결합된 것은 어떤 것이든, 비구여, 이것은 안의 땅의 요소라고 불린다. 그리고 안의 땅의 요소와 밖의 땅의 요소, 이들은 단지 땅의 요소일 뿐이다. 이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땅의 요소에 대해 염오하고 마음이 땅의 요소에 대해 탐욕이 사라지게 한다.

 

350. 비구여, 무엇이 물의 요소[水界]인가? 물의 요소는 안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비구여, 무엇이 안의 물의 요소인가? 예를 들면 쓸개즙․가래.고름․피․땀․지방․눈물․기름․침․콧물․관절활액․오줌 등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액체이고 액체에 속하는 것 그리고 결합된 것, 또한, 어떤 것이든 기타의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액체이고 액체에 속하는 것, 그리고 결합된 것, 비구여, 이것은 안의 물의 요소라고 불린다. 그리고 안의 물의 요소와 밖의 물의 요소, 이들은 단지 물의 요소일 뿐이다. 이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본 뒤에 물의 요소에 대해 염오하고 마음이 물의 요소에 대해 탐욕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

 

351. 비구여, 무엇이 불의 요소[火界]인가? 불의 요소는 안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비구여, 무엇이 안의 불의 요소인가? 예를 들면 그것에 의해 따뜻해지고, 그것에 의해 썩게 하고, 그것에 의해 불타고, 그것에 의해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바르게 소화되는 등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열이고 열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된 것, 또한, 어떤 것이든 기타의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열이고 열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된 것, 비구여, 이것은 안의 불의 요소라 불린다. 그리고 안의 불의 요소와 밖의 불의 요소, 이들은 단지 불의 요소일 뿐이다. 이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불의 요소를 염오하고 마음이 불의 요소에 대해 탐욕이 사리지게 해야 한다.

 

352. 비구여, 무엇이 바람의 요소[風界]인가? 바람의 요소는 안의 것일 수 있고, 밖의 것일 수 있다. 그러면,  비구여, 무엇이 안의 바람의 요소인가? 예를 들면 올라가는 바람, 내려가는 바람, 몸 안의 빈 곳의 바람, 배 안에 있는 바람, 몸의 구성부분들을 이어 다니는 바람, 들숨과 날숨 등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기체이고 기체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된 것, 또한 어떤 것이든 기타의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기체이고 기체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된 것, 비구여, 이것은 안의 바람의 요소라고 불린다. 그리고 안의 바람의 요소든 밖의 바람의 요소든 그것은 단지 바람의 요소일 뿐이다. 이것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바람의 요소를 염오하고 마음이 바람의 요소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

 

353. 비구여, 무엇이 허공(공간)의 요소[空界]인가? 허공의 요소는 안의 것일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비구여, 무엇이 안의 허공의 요소인가? 예를 들면 귓구멍, 코구멍, 입속의 공간등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허공이고 허공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된 것, 그것에 의해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들을 삼키고, 먹고 마시고 맛본 것들이 채워지는 곳, 그것에 의해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들이 낮은 곳으로 나가는 것, 또한 어떤 것이든 기타의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허공이고 허공에 속한 것, 하늘과 하늘에 속한 것, 균열과 균열에 속한 것, 만져지지 않는 것, 살과 피에 의해 결합된 것, 비구여, 이것은 안의 허공의 요소라고 불린다. 그리고 안의 허공의 요소든 밖의 허공의 요소든 그것은 단지 허공의 요소일 뿐이다. 이것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허공의 요소를 염오하고 마음이 허공의 요소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

 

354. 그러면 다음으로는 깨끗하고 청정한 의식만이 남는다. 이 의식에 의해 무엇을 인식하는가? '즐거움'이라고도 인식하고, '괴로움'이라고도 인식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라고도 인식한다. 비구여, 즐거움을 느낄 감각접촉을 연(緣)하여 즐거운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나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즐거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그것에서 생긴, 즐거움이 경험될 그 감각접촉을 연하여 생긴 즐거운 느낌은 소멸하고 가라앉는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앞에서는 물질의 명상주제(rupa-kamma-tthana)를 설하셨고, 지금부터는 정신의 명상주제(arupa-kamma-tthana)를 느낌(vedena)을 통해 일으켜서 보이시기 위해 이 가르침을 시작하셨다."(MA.v.53)  
*"'깨끗하고 청정한(parisuddha pariyodata)'이라고 하셨다. 오염원이 없기 때문에(nirupakkilesa) '깨끗하고(parisuddha)', 빛나기 때문에(pabhassara) '청정하다(pariyodata).'"(MA.v.53)  
"즉 반대되는 법들이 사라졌기 때문에(patipakkha-vigama) 그의 마음이 청정하다. 그리하여 오염원이 없다고 했고, 오염원들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순수하다고 설명했다."(MAT.ii.399)
*"'남는다(avasissati)'는 것은 세존께서 [요약(uddittha, uddesa)만 설하셨고 분석(niddesa)은 설하셔야 하기 때문에-MAT.ii.399] 설명하실 것이 아직 남았고, 선남자가 통찰할 것이 아직 남았다는 뜻이다."(MA.v.53)  

 

355. 비구여, 괴로움을 느낄 감각접촉을 연하여 괴로운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괴로움을 경험하면서 '나는 괴로운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괴로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그것에서 생긴, 괴로움이 경험될 그 감각접촉을 연하여 생긴 괴로운 느낌은 소멸하고 가라앉는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356. 비구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감각접촉을 연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그것에서 생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될 그 감각접촉을 연하여 생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소멸하고 가라앉는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357. 예를 들면, 비구여, 두 개의 나무토막을 맞대어 마찰시키면 열이 생기고 불이 붙는다. 이 두 개의 나무토막을 분리하여 떼어 놓으면 거기서 생긴 열도 식고 가라앉는다. 이처럼, 비구여, 즐거움을 느낄 감각접촉을 연(緣)하여 즐거운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나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즐거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그것에서 생긴, 즐거움이 경험될 그 감각접촉을 연하여 생긴 즐거운 느낌은 소멸하고 가라앉는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358. 비구여, 괴로움을 느낄 감각접촉을 연하여 괴로운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괴로움을 경험하면서 '나는 괴로운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괴로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그것에서 생긴, 괴로움이 경험될 그 감각접촉을 연하여  생긴 괴로운 느낌은 소멸하고 가라앉는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359. 비구여,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감각접촉을 연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그것에서 생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될 그 감각접촉을 연하여 생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소멸하고 가라앉는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360. 그러면 다음으로 깨끗하고 청정하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빛나는 평정만이 남는다. 예를 들면, 비구여, 숙달된 금 세공인이나 금 세공인이나 금 세공인의 제자가 용광로를 준비할 것이다. 용광로를 준비한 뒤에 용광로 입구에 불을 붙일 것이다. 용광로 입구에 불이 붙은 뒤에 집게로 금을 집은 뒤에 용광로 안에 넣을 것이다. 용광로 안에 넣은 뒤에 적절한 때에 바람을 불어 가열할 것이고, 적절한 때에 물을 뿌려서 식혀주고, 적절한 때에 관찰할 것이다. 잘 제련되고 순수해지고 오염원이 버려지고 노란색을 얻은 그 금은 유연하고 준비되고 빛나게 된다. 허리띠거나, 귀걸이거나, 목걸이거나, 금으로 된 환이거나 장식품을 만들기 위해 원하는 것들의 목적을 실행한다. 이처럼, 비구여, 다음으로 깨끗하고 청정하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빛나는 평정만이 남는다.

 

361.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알아 차린다.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평정을 공무변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마음을 닦는다면, 그런 나에게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집착하는 평정은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평정을 식무변처로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마음을 닦는다면, 그런 나에게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집착하는 평정은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평정을 무소유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마음을 닦는다면, 그런 나에게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집착하는 평정은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평정을 비상비비상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마음을 닦는다면, 그런 나에게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집착하는 평정은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게 될 것이다.'라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는 tad-anudhamm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무색계禪(arupa-avacara-jjhana)이 법이고, 그것을 따르기 때문에 색계선이 그것을 따름이다."(MA.v.55)
복주석서는, '이것은 무색계의 유익함을 뒤따르는 법(arupavacarassa kusalassa anurupadhamma)인데, 그 도닦음으로써 무색계선을 얻는 예비단계의 도닦음(pubba-bhaga-patipada)이디."(MAT.ii.400)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것을 집착하여(tad-upadana)'라고 하셨다. 여기서 집착한다는 것은 그 도닦음으로(tassa patipattiya) 그것을 닦아서(patipajjamanena)라는 뜻이다."(MAT.ii.400)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게 될 것이다(ciram dighamaddhanam tittheyya)'라는 것은 2만 겁(kappa)을 될 것이라는 말이다."(MA.v.55)
아비담마 상가하(아비담마 길라잡이) 제5장에 의하면 공무변처의 중생들의 수명은 2만 겁이고, 식무변처는 4만 겁이며, 무소유처는 6만 겁이고, 비상비비상처는 8만 4천 겁이다.  

 

362.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알아 차린다. '만일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공무변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마음을 닦는다면, 이것은 형성된 것이다.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평정을 식무변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마음을 닦는다면, 이것은 형성된 것이다. 만일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평정을 무소유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마음을 닦는다면, 이것은 형성된 것이다. 만일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평정을 비상비비상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마음을 닦는다면, 이것은 형성된 것이다.'라고.  

 

*"네 가지 무색계선을 설명하고 나서 지금은 그것의 위험(adinava)을 보이시기 위해 이렇게 시작하셨다."(MA.v.55)
*"'이것은 형성된 것이다(sankhatam etam)'라고 하셨다. 즉 2만겁을 산다 하더라도 그것은 조건 지어진 것(pakappita)이고 형성된 것(sankhata)이고 만들어진 것(ayuhita)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상하고(anicca) 견고하지 못하고(adhuva) 영원하지 못하고(asassata) 그때뿐이고(tava-kalika), 그것은 죽고 무너지고 파괴되는 법(cavana-paribhedana-viddhamsana-dhamma)이다. 태어남을 따르고 늙음을 따르고 죽음을 따라 괴로움에 귀속된다(patitthita). 그것은 의지처가 되지 못하고(atana) 보호처가 되지 못하고(alena) 귀의처가 되지 못하고(asarana)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asarani-bhuta). 식무변처의 설명도 이와 같은 방법이다."(MA.v.55)  

 

그는 존재[유.有]나 비존재[무유.無有]를 형성하지도 않고 의도하지도 않는다. 존재나 비존재를 형성하지도 않고 그것을 의도하지도 않는 그는 세상에서 어떤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으면 동요하지 않는다. 동요하지 않을 때 그는 스스로 완전한 열반을 얻는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존재나 비존재(bhava va vibhava)'라는 것에는 성취(vuddhi)나 패배(parihaniya), 혹은 항상함과 단멸(sassat-uccheda)이 적용되어야 한다."(MA.v.57)  
*"'형성하지 않는다(nayuhati)'는 것은 존재를 받게 하는 의도를 지어(bhava-karana-cetana-vasena) 일을 모으지 않고(na samuheti) 쌓지 않는다(na sampindeti)는 뜻이고, '의도하지 않는다(na abhisancetayati)'는 것은 의도하는 일이 없음을 말한다."(MAT.ii.400)  
*"'그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na kinci loke upadiyati)'는 것은 세상의 물질 등에 대해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갈애를 가지고 취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MA.v.57)  

 

363. 만약 그가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 '이것은 무상하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리고, '묶일 것이 아니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리고, '기뻐할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만약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은 무상하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리고, '묶일 것이 아니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리고, '기뻐할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만약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은 무상하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리고, '묶일 것이 아니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리고, '기뻐할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364.그가 만약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 풀려난(거기에 매이지 않는) 자로서 그것을 느낀다. 만약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 풀려난 자로서 그것을 느낀다. 만약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 풀려난 자로서 그것을 느낀다. 몸이 끝나는 느낌을 느끼는 그는 '나는 몸이 끝나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느끼는 그는 '나는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그는 '몸이 무너진 뒤 생명이 끝나면, 바로 여기서 이 모든 느낌들은 기뻐할 것이라고는 없게 되고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풀려난 자로서 느낀다(visamyutta).'고 하셨다. 즐거운 느낌에 대하여 탐욕의 잠재성향(raga-anusaya)이 일어나거나 괴로운 느낌에 대하여 적의의 잠재성향(patigha-anusaya)이 일어나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끼에 대하여 무명의 잠재성향(avijjanusaya)이 일어나면, 이것은 거기에 묶여(samyutta)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풀려난 자로서 느낀다.'고 하셨다."(MA.v.58)  

*"'몸이 끝나는(몸의 마지막) 느낌(kaya-pariyantika vedana)'이란 몸의 최후(kaya-kotika)의 느낌을 말한다. 몸의 [마지막] 진행(kaya-pavatta)이 일어나서 그 다음에는 더 이상 느낌이 일어나지 않음(anuppajjana-vedana)을 뜻한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jivita-pariyantika vedena)'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설명이 적용된다."(MA.v.58)  
*"'기뻐할 것이라고는 없게 되고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anabhinanditani sitibhavissanti)'라고 하셨다. 열두 가지 감각장소에 대해 오염원들의 집착이 없기 때문에 기쁘게 여겨지지 않게 되고 바로 그 열두 가지 감각장소에서 느낌들은 소멸한다. 오염원들이란 것은 참으로 열반을 얻으면 소멸되고 다시 더 존재하지 않도록 그렇게 소멸되기 때문이다."(MA.v.58)   

 

365, 예를 들면, 비구여, 기름을 연(緣)하고 심지를 연(緣)하여 기름 등불이 탄다. 기름과 심지가 다 탄 그것에게 다른 기름과 심지가 주어지지 않으면 연료가 없는 기름 등불은 꺼진다. 이처럼 비구여, 몸이 끝나는 느낌을 느끼는 비구는 '나는 몸이 끝나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느끼는 그는 '나는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그는 '몸이 무너진 뒤에 생명이 끝나면, 바로 여기서 이 모든 느낌들은 기뻐할 것이라고는 없게 되고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그러므로 이렇게 갖춘 비구는 이런 완전한 지혜를 위한 토대를 갖추었다. 비구여, 참으로 모든 괴로움의 부서짐에 대한 앎이 완전한 성스러운 지혜이다.

 

366. 그에게 진리에 서 있는 이 해탈은 흔들림이 없다. 비구여, 허황한 법은 거짓이고, 허황하지 않은 법인 열반은 진리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갖춘 비구는 이 완전한 진리를 위한 토대를 갖추었다. 비구여, 참으로 허황하지 않은 법인 열반이 완전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367. 이전에 어리석은 자였던 그에게 재생의 근거가 있었고 거기에 빠졌다. 그것들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갖춘 비구는 이 최상의 버림을(포기를) 위한 토대를 갖추었다. 비구여, 참으로 모든 재생의 조건을 놓음이 최상의 성스러운 버림이다.

 

*"'재생의 근거(upadhi)'는 네 가지가 있다. 그것은 무더기라는 재생의 근거(khandhupadhi), 오염원이라는 재생의 근거(kilesupadhi), 업형성력이라는 재생의 근거(abhisankharupadhi),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쾌락이라는 재생의 근거(pancakamagunupadhi)이다."(MA.v.60) 복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설명한다.  
"거기에 근거하여(upadhi)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재생의 근거'라 한다. 이 설명은 네 가지 재생의 근거 가운데 무더기와 감각적 쾌락에 해당된다. 괴로움을 모으기 때문에 '재생의 근거'라 한다. 이 설명은 오염원과 업형성력이라는 재생의 근거에 해당된다."(MAT.ii.403)  
*"처음부터 사마타와 위빳사나로 오염원들을 버리고 예류도 등으로써 오염원들을 버리고 아라한도로써 오염원들을 버렸기 때문에 더 버릴 것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갖춘 비구는 이 최상의 버림을취한 토대를 갖추었다(evam samannagato bhikkhu imina paramena cagadhitthanena samannagato)'라고 하셨다."(MA.v.60)   

 

368. 이전에 어리석은 자였던 그에게 탐욕과 열망과 욕망이 있었다. 그것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이전에 어리석은 자였던 그에게 분노와 악의와 혐오가 있었다. 그것은 제거되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이전에 어리석은 자였던 그에게 무명과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그것은 제거되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갖춘 비구는 이 최상의 고요함(가라앉음)을 위한 토대를 갖추었다. 비구여, 참으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고요함이 최상의 성스러운 고요함이다. 비구여, '지혜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진리를 보호해야 한다. 버림을 증장해야 한다. 고요함을 닦아야 한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은 연(緣)하여 말했다.

 

369. '여기에 서 있는 자는 공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공상이 일어나지 않을 때 그는 고요한 성자라고 불린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비구여, '나는 있다.'라는 것은 공상(허황된 생각)이다. '이것은 나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나는 있을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나는 물질을 가진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나는 물질을 갖지 않은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나는 인식을 가진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나는 인식을 갖지 않은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나는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요 인식을 갖지 않은 것도 아닌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비구여, 공상은 병이고, 공상은 종기이고, 공상은 화살이다. 그러나, 비구여, 모든 공상을 넘어섰기 때문에 고요한 성자라고 불린다. 비구여, 고요한 성자는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동요하지 않고 갈망하지 않는다. 비구여, 그에게는 태어나야 할 어떤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태어나지 않는 그가 어떻게 늙을 것이고, 늙지 않는 그가 어떻게 죽을 것이고, 죽지 않는 그가 어떻게 흔들릴 것이고, 흔들지지 않는 그가 어떻게 갈망할 것인가? '여기에 서 있는 자는 공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공상이 일어나지 않을 때 고요한 성자라고 불린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비구여, 그대는 간략히 설한 이 여섯 가지 요소의 분석을 잘 간직하라."

 

370. 그러자 뿍꾸사띠 존자는 '참으로 스승께서 나에게 오셨다. 참으로 선서께서 나에게 오셨다. 참으로 정등각께서 나에게 오셨다.'라고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를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 세존의 발에 이마를 대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리석고 미혹하고 신중하지 못함 때문에 제가 잘못을 범했습니다. 세존을 도반이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 저에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가 미래에 다시 이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고 제 자신을 단속할 수 있도록 잘못에 대한 참회를 받아 주십시요."

"비구여, 나를 도반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음과 미혹함과 신중하지 못함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비구여, 그대는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답게 바로 잡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를 받아들인다. 비구여, 이 성스러운 율에서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답게 바로 잡고, 미래에 그러한 잘못을 단속하는 자는 향상한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 앞에서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비구여, 그대는 발우와 가사가 준비되었는가?"

"세존이시여, 저에게 발우와 가사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비구여, 여래는 발우와 가사를 구비하지 않은 자에게 구족계를 받게 하지 않는다."

 

그러자 뿍꾸사띠 존자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한 뒤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발우와 가사를 구하기 위해 떠났다. 발우와 가사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뿍꾸사띠 존자를 어떤 떠돌던 소가 생명을 빼앗았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세존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으로부터 간략하게 가르침을 받은 뿍꾸사띠라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가 간 곳은 어디입니까? 어디에 태어났습니까?"

"비구들이여, 좋은 가문의 아들 뿍꾸사띠는 현자이다.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닦았다. 법을 이유로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좋은 가문의 아들 뿍꾸사띠는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완전히 부수었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했다. 거기서 완전히 열반에 드는 자이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

 

*뿍꾸사띠는 발우와 가사를 구하러 다닐 때에도 빔비사라 왕이나 딱까살라의 상인들 가까이는 가지 않고 공동묘지나 쓰레기 더미 같은 곳에서 구하려 했다. 그렇게 하여 쓰레기 더미에서 천을 찾고 있을 때 그곳을 배회하던 어리 새끼가 달린 어미 소가 달려와 뿔로 들이받아 그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는 허공엣 생명이 다하여 떨어졌고 쓰레기 더미에 머리를 숙이고 앉았는데 마치 금으로 만든 동상 같았다. 그는 죽자마자 바로 무번천(avihabrahma-loka)에 태어났고, 거기에 태어나자마자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가 무번천에 태어나자 곧 바로 일곱 명이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MA.v.62) 계속해서 주석서는, 
"일곱 분의 비구들이 해탈하여
 무번천에 태어났다.
 탐욕과 성냄을 완전히 제거하여
 세상에 대한 애착을 건넜다."
라는 상윳따 니까야 제1권 가띠까라 경(S1.50)의 게송을 언급하면서 뿌꾸사띠 존자도 이 일곱 분의 비구들 가운데 한 분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MA.v.63)
무번천(無煩天, Aviha)은 불환자가 태어나는 다섯 가지 정거천(淨居天, Suddhavasa) 가운데 제일 낮은 천상이다. 주석서에서는 '자신이 성취한 것으로부터 떨어지지 않는다(na hayanti)고 해서 아위하(Aviha)라고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AibhA521;DA.ii.480)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요소의 분석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