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논문·평론

‘초기불교와 부파불교, 그리고 대승불교’/권오민

실론섬 2016. 9. 18. 15:28



(1)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문제이기에 오늘의 한국불교를 진단한다는 것인가? 그것도 2천년 가까이 ‘소승(Hīnayāna)’이라는 말로 폄하되었던 초기불교를 통해. 필자는 교학자인 까닭에 굳이 진단하라 한다면, 조금은 사치스러운 한담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신행의 토대가 되는 불교교학의 ‘사상적 혼돈’에서 문제를 찾고자 한다. 삼국시대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이래 신라의 불교는 ‘난국(蘭菊)의 미(美)를 다툰 호화찬란의 불교’였지만, 국가의 안태를 제불 보살에게 기원하는 것으로 능사로 삼은 고려불교는 5백년에 걸친 억불(抑佛)의 시대를 초래하였다.(김동화 박사)


억불의 첫 신호는 종파의 통폐합이었고(태종 7년 11종→7종, 세종 6년 →2종, 연산군 때 양종의 도회소 폐사), 승과제 폐지 이후 은둔의 불교, 기복의 민간신앙으로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갑오경장과 함께 승려의 도성출입이 해제되었지만 격변기의 시대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고, 해방과 더불어 비구 대처의 분규, 그것이 마무리되는 1970년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불교의 정체성’에 눈뜨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의 지대한 공헌자는 ‘불교교양대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불교의 종파적 전통이 사라졌기에 ‘불교’라는 이름의 온갖 사상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되어 한켠에서는 ‘자성을 찾아라’하고, 다른 한켠에서는 ‘자성이 없다’고 하며, 조석으로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을 외우면서도 불교는 인과법임을 강조한다.


주지하듯이,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 지혜의 종교이다. ‘불타’는 말 그대로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불교도의 이상인 열반(혹은 해탈)은 절대자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지혜)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가? 그런데 문제는, 관견(管見)을 통하는 한 그것이 불교의 장점인지 단점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불타의 깨달음은 다른 유일신교의 종교와 달리 지역과 시대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고 변용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2천 5백여 년에 걸친 불교사상사는 바로 무엇을,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해석의 도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시아 불교전통에서는 이러한 온갖 교학체계(혹은 그것을 전하는 여러 경전)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통해 우열을 평가함으로써 다양한 종파로서의 꽃을 피우게 된다. 이를테면 소승교-대승시교(始敎)-대승종교(終敎)-대승돈교(頓敎)-대승원교(圓敎)로 정리된 화엄교판(敎判)이나 화엄-아함-방등-반야-법화․열반으로 정리된 천태의 5시교판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전통적으로 초기불교나 부파불교(小乘三藏敎, 혹은 四諦敎)를 불교의 초보적 단계로 이해하거나 소승․열승(劣乘)․패종(敗種, 성불의 싹도 띄울 수 없는 종성), 혹은 악당․마구니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를 전 근대적인 왕조시대의 산물로 여기고서 근대불교학에서 제시한 초기불교­부파불교­대승불교라는 시대적 구분을 상식으로 여겨왔으며, 1980년 중반 이후 남방의 위파사나(전통적으로는 소승선)가 도입되고, 세계화 내지 여행자유화와 더불어 (혹은 전통불교에 대한 반동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초기불교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모색되었다.: “초기경전(4아함과 5니카야)은 불타의 친설이며, 초기불교는 불교의 원초적 형태이다.” 그리고 ‘근대불교학’이라는 방패를 앞세워 “대승경전은 후대 찬술된 것으로 권위를 높이기 위해 불설로 가탁된 것이고, 대승불교는 힌두교에 의해 윤색된 가짜불교이다”는 반동적 평가도 모색되었으며, 급기야 “초기불교로 되돌아가자”는 역사와 전통을 부정하는 ‘근본주의’적인 경향까지 나타나게 되었다.(이러한 ‘구호’는 군국주의 시대 일본 불교학계에서 생산된 것이다: 권오민, 「선전과 구호의 불교학을 비판한다」참조)


‘실증’을 무기로 한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성철 스님조차 “대승은 역사적으로는 비불설이지만, 사상적으로 진정한 불설”이라고 하였으며, 혹자는 초기불교에서의 연기(緣起)를 시대를 뛰어넘어 대승 공관(空觀)에 기초하여 해석하거나, 혹은 대승은 불타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부패한 부파(아비달마)불교를 비판하면서 생겨났다고 말하고서, 급기야 “초기불교는 대승불교와 그 근본에 있어 어떠한 차이도 없다”(일부 초기불교 전공자)거나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이론적 귀결이다”(일부 대승불교 전공자)고 하여 엉거주춤한 절충을 꾀하기도 하였다.


대다수의 불자들은 이에 침묵할 뿐이지만(교학에 대해 어떠한 이해도 없으므로), 일말의 식견을 갖는 이들은 이러한 논의에 휘둘리지 않을 수 없다. ‘본지풍광’을 종지로 삼는 조계선종의 출가자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를 오늘의 한국불교의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우리는 근대불교학에서 제시한 초기불교­부파(아비달마)불교­대승불교라는 시대적 구분에 따라 초기불교가 일어나고 부파불교가 일어나며, 그 후 기존의 전통(성문)불교와는 별도의 계통으로 대승불교가 일어났다고 여긴다. 혹 어떤 경우 부파불교가 일어나면서 초기불교는 끝나고,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부파불교는 끝난 것이라고 도식적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혹은 초기불교는 경장(經藏) 불교, 부파불교는 각각의 부파에 의해 산출된 논장(論藏: 아비달마) 불교로 엄격히 구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부파불교는 단순 명료한 초기불교를 제멋대로 현학적으로 해석하여 불타의 근본 취지를 상실한 불교, 부파불교 이후에 일어난 대승불교의 경전은 비불설 운운하며 이를 ‘당연한 상식’처럼 여긴다. 그러나 칼로 무 자르는 듯 한 이 같은 도식적 이해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현존하는 초기경전(4아함과 5니카야)과 율장(여섯 부파의 廣律)은 각각의 부파에 의해 찬집(纂集, 편찬 결집) 전승된 것으로, ‘아함(āgama)’과 ‘니카야(nīkāya)’라는 말 자체가 ‘전승되어 온 것’, ‘부파 혹은 부파에 의해 결집된 성전’이라는 뜻이다. 그들의 성전 결집의 기준은 『대반열반경』에서 설한 이른바 ‘4대교법(mahā apadesa)’이었다.: “어떤 비구가 어떤 법문(경․율․교법)을 ① 불타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② 대다수 박식한 장로들로 구성된 승가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③ 경과 율과 논모(論母, 주석)를 지닌 다수의 비구로부터, ④ 혹은 그러한 한 명의 비구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그의 말을 잘 듣고 단어와 문장을 잘 파악한 다음 경에 포함되어 있는지 율(vinaya, 調伏)을 드러내는지를 검토하여, 만약 그렇지 않다면 비불설로 판단하여 버려야 하고, 그러하다면 불설로 취해야 한다.”


이에 따르는 한, 한 명의 비구로부터 들은 것도 경과 율에 부합하면 불설로 취해야 하고, 불타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한 것조차 비불설로 배척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설자(說者)가 아니라 경을 관통하는 정신 즉 ‘법’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본(異本)의 『대반열반경』에서는 4대교법에 ‘법성(法性, 진실)에 위배되지 않으면 불설’이라는 말을 보태고 있으며, “사람(人)에 의지하지 말고 법(法)에, 밖으로 드러난 말(語)에 의지하지 말고 그 말에 담긴 뜻(義)에, 언어를 매개로 한 상대적 인식(識)에 의지하지 말고 통찰의 직관지(智)에, 그 뜻이 애매하거나 부실한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고 요의경에 의지하라”는 4의(依)의 체계도 성립한다.


이러한 4의설과 ‘법성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라는 불설의 정의는 당시 거의 모든 부파에서 암묵적으로 승인되었고, 이에 따라 불설의 취사(取捨) 개폐(開閉)가 가능하였으며, 자신들이 전승한 기존의 불설에 근거하여 새로운 경전도 찬술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에 의해 결집된 성전을 ‘성교(聖敎, buddha śāsana)’나 ‘아함(āgama, 혹은 니카야)’ 혹은 ‘불법’으로 호칭하여 ‘불설(buddha vacana)’과는 구분하였다. 팔리율(상좌부 전승)을 비롯한 모든 율장에서 “불설이란 불타가 설한 것과 성문(혹은 제자)․선인․천인․변화인이 설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사정이 반영된 것이며, 현존 『잡아함경』의 경우 실제로 그러하다.


그리고 불타법문의 취지나 요의를 추구하면서 다양한 경설을 널리 분별 해석(廣釋)하기도 하고 종합 정리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논모(論母, mātṛka) 혹은 논의(論議, upadeśa)라고 한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경장(經藏) 안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을 경전 안에 수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이라는 별도의 성전으로 독립되었다. 따라서 초기의 아비달마는 경장 안에 포함되어 있고(예컨대 중아함의 「근본분별품」의 10경, 小部經典의 Niddesa), 후기의 것 역시 경으로 불리기도 한다.(예컨대 『發智經』) 분별이나 해석 역시 불타가 한 것도 있고 사리불 등 성문이 한 것도 있지만, 상좌부나 유부에서는 다같이 근본 아비달마(7論)를 요의(了義)의 불설로 간주하기 때문에 경과 논(혹은 초기불교와 아비달불교)의 구분은 근본적으로 애매하다. 상좌부에서는 제5 니카야인 소부(Khuddhaka)의 제경을 경장에 포함시킬 것인가, 논장에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오랜 논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


나아가 대승경전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찬술될 수 있었을 것인데, 오늘 날 대승불교 흥기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학자들은 대개 그 기원을 전통 부파교단의 연장선상에서 찾고 있다. 대승경전 역시 이전의 경전을 수용하여 해석하고 새롭게 읽는 과정을 통해 종류와 분량이 확대되어 간 것이지 결코 ‘역사적 붓다’의 권위를 빌려 날조된 것이 아니며, 경전의 증광 또한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경전해석의 패턴을 의식하여 이루어진 것이지 결코 자유로이 무제한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화엄경(大方廣vaipulya佛華嚴經)』이나 『유마경(Vimalakīrti nirdeśa sūtra)』 등의 경명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불법(불교사상)의 다양성은 근본적으로 불교의 개방성에 기인한다. 불교는 결코 교조주의가 아니다. 깨달음은 누구에게도 열려있으며 진실은 누구에 의해서도 토론될 수 있다. ‘승가의 분열(破僧)’은 주의 주장을 달리함으로써 비롯되었다(이를 破法輪僧이라 한다)고 하겠지만, 현존의 율장에서는 수계작법이나 포살과 같은 갈마를 함께 하지 않는 것(이를 破羯磨僧이라 한다)으로 규정한다. 제바달다는 5법을 주장하여 파승자가 아니라 갈마를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승자이다. 불설의 기준을 ‘법성’에 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의 다양성은 처음부터 용인되었다는 말이다. ‘불법(불교사상)=불설=친설’이라는 도식은 우리의 강고한 선입견 중의 하나로, 시모다 마사히로(下田正弘)라는 불교학자는 이는 기독교의 연구양상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 근대불교학의 태생적 한계라고 말한다.


요컨대 대승경전이 날조된 후대 창작이라는 것은 ‘불법=불설’이라는 전제에서 비롯된 생각이며, ‘아비달마불교는 초기불교의 왜곡’이라거나 ‘대승불교는 초기불교로 되돌아가려는 운동’이라는 말 또한 불교의 전통과 역사성을 무시하고 불교의 시대적 구분을 도식적으로 이해한데서 비롯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잡아함과 중아함은 유부의 전승이고, 5니카야는 상좌부의 전승으로, 초기경전 자체가 이미 아비달마화한, 출가 승려를 위해 편찬된 교과서(E. 라모트; 櫻部建)였기 때문이며, 각각의 부파가 불타의 취지(dharma)를 밝히려고 하였듯이 대승불교 역시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의 모본ur-text이 된 원초적 형태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의 확인은 사실상 불가능할뿐더러 비바사사(毘婆沙師)를 비롯한 다수의 대․소승의 논사들은 제1결집은 멸실되었으며, 그 후로도 무량의 경전이 은몰하였다고 전한다.)


(3) 초기(아비달마)불교와 대승불교의 관심사


기존의 시각을 통해 본다면 전통의 성문승과 대승의 보살승 사이에는 분명 단절의 간격이 존재한다. 우리는 통상 법유(法有)와 법공(法空), 자리(自利)와 이타(利他), 혹은 불설(佛說)과 비불설(非佛說)이라는 모순개념을 통해 양자 사이의 간격을 확인한다.


우리가 아는 초기불교의 교학은 거의 대개 설일체유부와 상좌부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양 부파는 계통이 동일하다. 따라서 기본적 사유체계 역시 동일하다. 그들의 불교사상을 단시간에 간략히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필자 사견에 따르는 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유부에 의하면 세계(一切)는 알려진 것, 인식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식의 조건이 되는 12처설(處說)을 불타의 최승(最勝) 미묘(微妙)의 법문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조건에 따라 식(識)이 일어나며(18界), 이를 토대로 수(受)․상(想)․사(思) 등의 지식현상과, 탐․진․치 등의 온갖 번뇌와 업(5온)이 발생한다. 곧 세계란 번뇌와 업의 산물로서 본질적으로 무상(無常)하며, 자아란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가설적 존재로서 무아(無我)이다. 초기불교에서 무지(癡: 무명)란 우리에게 경험된 세계가 영원하며, 단일한 자아가 존재한다는 그릇된 믿음이다. 이러한 무지로 말미암아 탐욕과 증오가 일어나며, 그것은 우주도 파괴할만한 실제적인 힘(공능)을 갖는다.


이에 따라 전통의 성문불교에서는 무상과 무아에 관한 통찰력(慧)을 점차 고양시켜 마침내 금강석 같은 무루의 통찰력으로 탐욕 등을 끊으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끊는다’는 말은 ‘멸한다’는 말과 그 의미가 다르다. 우리는 담배를 끊을 수는 있어도 멸할 수는 없다. ‘담배를 끊는다’는 말은 담배와의 관계를 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실유(實有)이다. 또한 괴로움도, 탐욕을 끊고 열반(=滅: ‘끊음’의 확증, 解脫知見)을 증득하는 일도 나의 몫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도 대신 죽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자리(自利)이다. 업과 과보의 경우 역시 그러하다. 이른바 ‘자업자득’이다.


그런데 같은 상좌부 계통이지만 정량부나 독자부에서는 12처 뿐만 아니라 자아에 비견될만한 보특가라(補特伽羅)라는 실체를 주장하였으며, 이와 반대로 대중부 계통(이를테면 설가부)이나 경량부에서는 12처의 실재성을 부정하였다. 경량부에 의하는 한 안(眼) 등의 5근과 색(色) 등의 5경(境)은 대종극미의 화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에 근거하여 일어난 인식 또한 진실이 아니다. 혹은 그들은 인연에 의해 생겨난 것은 자성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고, 불타를 초월적 존재로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전승한 경전(아함과 니카야)은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의 경전이 존재하였다면 대승경전의 출현을 보다 용이하게 설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초기불교의 법계(제18界)와 『기신론』의 법계(진여)는 하늘과 땅만큼의 거리가 있지만, ‘계’를 제법의 종자(즉 隨界)로 이해하고 그러한 종종계(種種界)가 일심(일 찰나의 마음) 중에 갖추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경량부(상좌 슈리라타)의 해석을 빌리면 바로 연결될 수도 있다.(권오민, 「알라야식의 연원에 관한 일고」 참조)


대승 반야사상에 의하는 한 12처도, 인식도, 번뇌도, 업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번뇌는 끊어야 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자성(혹은 無相)으로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다. 꿈은 꿈을 깨기 전까지 엄연한 현실이지만, 깨어나는 순간 사라진다. 꿈속의 호랑이는 깨어나기 전까지 가공의 힘을 갖지만 깨어나는 순간 사라지듯이, 강력한 탐욕 또한 실체가 없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 사라진다. 탐욕 등의 번뇌는 초기(아비달마)불교에서처럼 ‘무상’ 등에 대한 무루의 통찰력으로 실제적으로 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의 예지(반야바라밀다)로 무자성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업과 과보 또한 역시 그러하다. 남의 번뇌(혹은 업)를 대신 끊어줄 수는 없지만, 그것이 무자성임은 일깨워줄 수는 있다. 꿈속의 호랑이를 대신 물리쳐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잠에서는 깨워줄 수 있다. 그래서 이타(利他)이다.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 『금강경』에서는 갠지스강의 모래알 보다 많은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울 만큼의 칠보 등을 보시하는 것보다 이러한 진실(반야바라밀다)의 법문을 다른 이에게 일러주는 복덕이 더욱 크다고 하였을 것이다. ‘이타’는 반야공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승에 있어 지혜(반야)와 자비는 결코 다른 말이 아니다. 티베트의 현자 밀라레빠도 말하였다고 한다. “자비심은 공의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대승의 반야 공사상을 조석으로 염불하듯 외운다.: “百劫積集罪 一念頓蕩盡 如火焚枯草 滅盡無有餘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천수경』) 

그렇지만 초기불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假令經百劫 所作業不亡 因緣會遇時 果報還自受.”(『근본유부 비나야』)


인간의 사상은 끊임없이 해석되고 변용되며, 불교사상 또한 결코 예외가 아니다. 해석과 변용을 허락하는 불교의 유연성(調柔)은 장점이라면 장점이지 결코 단점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여래 정법의 7선(善) 중의 하나이다. 불교 제파 사이의 단절의 간격은 해석과 변용을 고려하지 않은(혹은 고려하려고 하지 않는) 폐쇄적 불교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사실상 도그마이다.